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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사형입니다-63화 (63/141)

<63화>

“남여연과 유계는 어디에 있어?”

방에서 나와 긴 복도를 걸으며 물었다. 내 말에 백아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눈을 느리게 깜박인다.

두 사람에겐 일말의 관심도 두지 않았었나 보다.

“제가 가서 바로 찾아볼게요.”

즉시 대답하며 곧바로 움직이려는 백아를 붙잡았다.

“잠깐…….”

같이 찾으러 가자고 말할 생각이었다. 무심코 백아의 어깨를 붙잡아 세웠다.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백아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그 어깨를 붙잡은 손의 검지를 슬쩍 내밀었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냥 무심결에 나온 행동이었다.

나를 돌아보는 백아의 뺨에 내 손가락이 콕 닿았다. 불시에 뺨을 찔린 백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사형?”

멍하니 나를 부르는 백아에 슬그머니 검지를 오므렸다. 처음엔 멋쩍음에 모호한 웃음만 흘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백아의 무구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짓궂은 마음이 생긴다.

입매를 휘어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아예 두 손을 뻗었다. 내민 양손으로 단번에 백아의 양 뺨을 감쌌다. 손바닥에 와 닿는 감촉이 매끄럽다.

“같이 가.”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내가 말했다.

내게 얼굴을 잡힌 백아는 조금 혼란스러워 보였다. 두 눈이 평소보다 약간 더 빠르게 깜박인다. 눈을 깜박일 때마다 팔랑거리는 긴 속눈썹이 마치 나비의 날갯짓 같다.

두 손으로 감싸 쥔 백아의 양 뺨이 뜨듯해지며 귀 끝이 빨갛게 물들 무렵에서야 백아가 느른히 두 눈을 내리깔며 답했다.

“네, 사형.”

얌전히 답하는 백아의 양 입꼬리 끝이 미묘하게 위로 올라가 있다. 같이 가자는 내 말이 기쁜 모양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알게 모르게 침잠해 있었는데, 이제 좀 풀렸다.

“좋아.”

호쾌하게 답하며 백아의 얼굴을 놔줬다.

백아가 내리떴던 눈을 들어 나를 본다. 마주한 시선에 씩 웃어 보였다. 그런 날 보는 백아의 입매가 싱그럽게 호선을 그리며 눈매가 살짝 접힌다. 그 웃는 얼굴이 몹시 수려해 속으로 감탄했다.

무슨 후광이 비치는 것 같네.

속으로 짧은 감상을 남기며 자연스럽게 백아보다 반걸음 앞장섰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몸에 감겨 오는 옷자락에 냉기가 묻어 있다. 방 안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바깥에 나오니 좀 춥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 정도의 추위는 아니었는데. 시시각각 한기가 더해지니, 이제 정말 완연한 겨울에 접어들었단 생각이 든다.

회귀한 직후엔 겨울의 초입이었는데. 벌써 연말이 가까워졌다. 곧 해가 바뀔 거다.

그나저나 이렇게 추운데 백아는 괜찮을까? 가뜩이나 추위에 많이 약한데. 빙옥에서 졸던 걸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백아, 춥진…….”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어깨에 무언가가 닿았다. 동시에 온몸이 순식간에 따듯해졌다. 체온 유지를 도와주는 술법이다. 내가 추워하는 걸 알아챈 모양이다.

내가 위해 주기도 전에 먼저 챙김을 받았다.

입가에 쓴웃음을 머금으며 곧바로 백아를 돌아봤다.

“너…….”

선뜻 내뱉은 말을 바로 잇지 못했다. 백아를 돌아보는 내 뺨에 부드러운 무언가가 닿았기 때문이다.

백아의 무구한 얼굴이 시야 가득 들어온다. 어느새 두 손으로 내 양어깨를 감싸 잡고 있는 백아는 등 뒤에 바짝 붙어 서 있었다. 거의 기대다시피 한 자세였지만 체중은 하나도 싣지 않았다.

백아는 내 목덜미에 얼굴을 바투 붙이고 있었다. 그 상태로 날 지그시 바라보는 각도였으니, 방금 내 뺨에 닿은 건…….

백아의 오뚝한 코끝과 엷은 미소를 띠고 있는 입술을 번갈아 쳐다봤다. …방금 내 뺨에 닿은 건 저 둘 중 하나인데.

“사형, 밖으로 나오니 추워져서 조금 졸려요.”

백아가 내 상념을 가르며 말을 걸어왔다. 졸리다는 말에 바로 정신이 그리로 집중됐다.

“선술은? 지금 나한테 해 준 걸 스스로한테도 걸 수 있지 않아?”

급히 백아를 향해 돌아서며 물었다.

“네. 사형한테 먼저 걸어 드렸으니 이제는 저한테도 하면 돼요. 그 잠깐 동안만 안아 주…….”

“……왜 너한테 먼저 안 하고.”

이어지는 백아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손끝이 움찔 떨린다. 좀 전 백아의 말이 내 안 무언가를 건드렸다.

움찔 떨린 손끝을 천천히 움츠렸다. 엄지손톱으로 손 안쪽을 짓뭉개듯 세게 긁었다. 날카롭게 퍼지는 통증이 무감하게 느껴질 정도로 속에서 밀려오는 감정이 버겁다. 그 감정에서 퍼지는 한기 때문에 숨을 길게 삼켰다. 표정이 무겁게 굳는 게 느껴진다.

“사형……?”

백아가 의아해하며 나를 부른다. 내게 뻗어지는 백아의 손을 천천히 밀어 냈다.

“…….”

백아는 더는 나를 부르지 않았다. 내가 밀어 낸 백아의 손이 허공에서 길을 잃었다. 나만을 바라보는 백아의 두 눈에 동요가 인다.

턱 끝을 살짝 치켜든 채 그런 백아를 말없이 응시하다가, 내 손에 상처 내는 것을 그만뒀다. 몽경 안에서 본 우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저 나를 위해 준 것뿐인데. 나는 왜, …나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

치미는 감정을 억지로 눌러 버리고 내가 먼저 두 팔을 벌려 백아를 힘껏 끌어안았다. 품 안의 백아가 그대로 얼어붙는 게 느껴진다. 크게 당황했는지 숨도 쉬지 않는 백아의 등을 천천히 토닥였다.

잠시 후, 백아가 아주 느리게 숨을 몰아쉰다. 뒤이어 두 손을 움직여 나를 마주 끌어안아 줬다. 그에 나는 묘한 기분에 휩싸여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나도 네가 날 위해 주는 거 알아. 하지만 졸음이 올 정도로 많이 추우면 네 몸부터 덥혀.”

울컥하며 속의 말을 가감 없이 꺼냈다가, 다시 몽경에서 봤던 우사의 울먹이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자 뒤의 말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직설적으로 말하기가 어렵다. 붕어처럼 입을 뻐금거렸다가 아랫입술을 한 번 깨물었다.

“…다음부터는 꼭 그렇게 해.”

잠시간의 침묵 끝에 그 말을 덧붙였다. 품에 안겨 있는 백아의 몸이 움찔 떨린다.

“내가 널 챙기지 못할망정, …이런 식으로 네가 날 챙기지 마.”

“……사형이 내 사형이기 때문에요?”

백아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사형의 사제라서요?”

연이어 묻는 백아에 깊은숨을 내쉬며 짧게 답했다.

“그래.”

백아는 잠시 말이 없다가, 나를 천천히 밀어냈다. 백아가 먼저 나를 밀어낸 건 처음이다. 끌어안고 있던 팔이 자연히 풀리면서 나는 백아가 미는 대로 뒤로 물러났다.

“백아, 이제 네 몸에도 선술 걸었어?”

그리고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을 물었다.

“네.”

“…응.”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서 백아를 완전히 놔줬다. 그리고 뒤로 반걸음 더 물러나 백아를 찬찬히 살폈다.

이제 정말로 괜찮아졌는지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다시금 본 백아는 어딘가 좀 허전해 보였다. 뭐가 허전한 건지 잠시 고민하다가 한 박자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왜 이걸 이제야 알아챈 거지?

“백아, 장포는?”

한쪽 눈썹을 까닥이며 물었다. 순간 백아의 시선이 뒤쪽을 힐끔 곁눈질했다. 나는 그 시선이 닿은 방향을 향해 한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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