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나는 남여연이 가면을 안 쓰고 있었단 걸 그제야 알아챘다. 그리고 내가 알던 그 얼굴이 아니란 것도 이제야 알았다.
내가 아는 남여연은 남소위와 흡사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몽경에서 봤을 때와 같았다.
나도 모르는 무의식중에 몽경에서 봤던 기억으로 남여연이라 인식한 뒤 쫓았나 보다. 몽경에서 자고, 그러니까 남여연은 정소양과 빼닮은 얼굴이었다.
몽경 속 기억에서도 그렇고, 지금 이 얼굴도 그렇고. 이게 남여연의 진짜 얼굴인 건가? 그렇다면 남소위를 닮은 그 얼굴은 뭐지?
하기야 생각해 보니, 남여연이 남소위와 닮았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말이 안 되긴 하다.
남여연은 남해검문의 직계가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닮은 게 정소양이라니. 정소양은 사해필성 성주잖아.
대체 남해검문은 뭘 숨기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남여연의 얼굴은 왜 갑자기 바뀐 거야?
어쨌든 현교당이 남여연을 쫓고 있던 이유는 이제 대충 알겠다.
“제기랄!”
마침 남여연이 욕설을 씹어뱉듯 말했다. 그게 지금의 내 심경을 대변하는 듯했다.
한 손으로 내 오른팔을 움켜쥔 남여연은 그대로 질주했다. 확 당겨진 내 몸은 일순 몇 초간 허공에 붕 떴다가 급격히 끌려갔다.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힘이었다. 순간 오른 어깨가 뜯겨 나가는 줄 알았다.
현교당의 일[一]인과 맞서고 있는 내 선검을 일별할 새도 없었다.
나는 일단 남여연에게 맞춰 내달렸다. 계속 끌려가다간 정말로 오른 어깨가 빠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제대로 달리기 시작하자 그제야 남여연이 붙잡고 있던 내 팔을 놨다.
“내 뒤에 따라붙은 게 지금 몇 명인지 알아?!”
나란히 허공을 박차고 달리는 와중에 남여연이 버럭 성을 냈다.
“어쩌자고 혼자 온 거야?”
“나 혼자로 충분해.”
고개를 돌려 흘낏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충분하긴 개뿔! 지금 나랑 같이 쫓기는 신세가 된 거 안 보여?!”
몸으로는 허공답보를 하랴, 입으로는 짜증을 부리랴. 골고루 바쁜 남여연의 숨이 조금씩 거칠어진다. 성질을 부리느라 힘에 부친 모양이다.
“너나 유계나 왜 쫓기고 있었던 거야?”
달리면서 틈틈이 주변 지형과 뒤를 쫓는 현교당 인사들을 살폈다. 뒤이어 쫓아오는 폼들이 그렇게 위협적이진 않다. 이렇게 보니, 역시 유계가 당하고 있던 추격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그쪽이 맹렬한 추격이라면, 이쪽은 집요한 추적이다.
문제는 뒤를 쫓는 게 하나같이 고수여서 따돌리기가 만만찮다는 거다. 마차를 습격한 사해필성 선사들이 이대제자 수준이라면, 지금 우리를 뒤쫓고 있는 현교당 인사들은 그보다 월등하게 수준이 높다. 게다가 수적으로도 차이가 크다.
“유계, 그 호랑말코 같은 놈!”
옆에서 남여연이 이를 갈며 욕설을 내뱉는다.
“그 자식이 내 가면을 부수는 바람에 이 사달이 난 거야! 틀림없어!”
“너 그럼 네 본래 얼굴이 어떤지 알고 있었어?”
“뭐?”
그게 무슨 멍청한 소리냐는 듯 거칠게 반문하며 남여연이 눈을 굴려 나를 본다.
우리 사이로 나무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허공을 밟는 남여연의 보법은 사납기 그지없었다. 간간이 나뭇가지 위를 디딜 때마다 나뭇잎이 흔들리며 떨어졌다.
“당연히 알지!”
미간을 찌푸리며 남여연이 말했다.
“내가 형님을… 닮은 건 사해필성 모두가 알아.”
이로써 남여연은 자신의 본래 얼굴이 어떤지 모른다는 게 확실해졌다. 그렇다면 그동안 누군가 남여연의 얼굴에 술법을 걸어 두었다는 게 된다.
남여연이 진짜로 닮은 대상은 남소위가 아닌, 사해필성의 성주 ‘정소양’이다.
“그러니 이번에도 사해필성에서 보낸 자들일 거다.”
인상을 쓰는 남여연의 낯빛이 어둡다.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리는 그 옆얼굴을 보았다. 지금 이 상황이 많이 심란한지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 있다.
나는 얼마간 달리다가 어느 순간 돌연 멈춰 섰다. 남여연에게 따로 언질을 해 두지 않아서, 그 잠깐 새에 남여연의 신형이 훅- 멀어졌다.
나는 곧바로 뒤돌아섰다. 이대로 계속 달려 봐야 끝이 안 날 테니 여기서 결착을 보자.
순식간에 가까워진 현교당 인사들을 마주 노려보며 한 손을 앞으로 뻗었다. 손끝에 고인 내력은 선검과 이어져 있었다. 그 내력을 끌어당기자, 멀리서부터 내 선검이 이리로 쇄도해 날아왔다.
날아온 선검을 허공에서 낚아채 잡으며 손안에서 유려하게 돌렸다.
나와 대치해 선 선사들은 총 아홉 명이다. 내 선검이 아까 맞붙었던 한 명을 낙오시켰는지 한 명이 줄었다.
“잘했어.”
입꼬리를 끌어 올려 미소 지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자 선검이 작게 공명한다.
원래 내 검도 아닌데 이렇게나 잘 길들여 버렸다. 이렇게까지 길이 잘 든 걸 돌려주는 건, 이 선검에게도 본래 주인에게도 못 할 짓이다.
선검은 선검 대로 섭섭해할 테고, 본래 주인도 마음이 좋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이 선검은 그냥 내가 갖기로 했다.
이제 내 것이니 이름도 내가 지어 줘야지. 따로 원래 이름이 있었을지 몰라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법이니까.
“댕댕.”
이름을 짓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댕댕’은 내게 잔흔처럼 남아 있는 아주 오래전의 기억으로, 일종의 언어유희이다. 본래는 멍멍이란 뜻이다. 즉, ‘번견’이란 함축적 의미를 갖고 있는 셈이다.
부르기도 쉽고, 귀엽고. 의미도 있고. ‘댕댕’. 음. 마음에 든다.
“야! 진연!!”
때마침 뒤에서부터 고함과 함께 요란한 기척이 거칠게 내달려왔다. 남여연이 내 부재를 알아채곤 돌아오는 모양이다.
“장난해? 미쳤어? 혼자서 멈추면 어쩌자는 거야?!”
“돌아왔네.”
“당연히……!”
버럭 소리 지르려던 남여연은 우리 앞에 대치해 선 현교당 인사들을 보곤 입을 다물었다.
“…이제 어쩔 거야?”
내 옆으로 와 서며 남여연이 물었다.
“무슨 방책이라도 있어?”
“없…….”
“없다고 하지 마. 없다고 하면 가만 안 둘 거다.”
나처럼 선검을 빼 들어 현교당 인사들을 향해 겨누며 남여연이 말했다.
“제기랄! 너랑 한배를 탄 게 내 천추의 한이다!”
어찌나 이를 악물고 말하는지 말하는 중간중간 이가 갈리는 게 느껴진다.
“네가 타고 있는 배에 내가 올라타 준 거지. 대체 언제까지 쫓기고만 있을 생각이었어?”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맞받아치며 단전의 내공을 운공 했다.
“남여연, 지금부터 이 배의 타는 내가 잡는다.”
힐끔 곁눈으로 남여연을 일별했다. 때마침 남여연도 나를 보고 있었다. 서로의 시선이 한순간 맞아떨어졌다. 남여연의 짜증 서린 얼굴에 삐딱한 웃음이 지어졌다. 어이없음과 곧 벌어질 전투에 대한 흥분이 뒤섞인 웃음이었다.
“그래서, 그 말 하려고 갑자기 멈춰 선 거냐? 그럼 이제 이 배는 어디로 가는 건데?”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리는 남여연의 낯빛에 결의와 초조함이 어렸다.
“저승 문턱.”
호쾌하게 답하며 검날에 내력을 씌웠다. 내공이 코딱지만 해서 검기가 휘황하진 않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감지덕지다.
“너! 그 검기는 대체…….”
내 검기를 본 남여연의 눈이 커진다.
검에 내력을 덧씌우는 건 이현[二玄]의 경지이기 때문이다.
현[玄]은 내공의 경지를 나누는 단위로, 일현부터 오현까지 있다. 이현 이상의 경지는 대개 서른 넘어서 들어서고 아주 특출한 수재들은 약관의 나이로 들어선다.
이제 내 나이가 10대 중반이니 나이에 비해 아주 뛰어난 경지라 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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