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가진 내력은 별거 없는데 무슨 수를 쓴 거야? 혹시 사술인 건…….”
‘사술’은 사특한 주술로, 사파나 마교에서 쓰는 것이다. 우리 같은 선사와는 평생 연이 없어야 하고, 만약 쓰는 걸 들켰다간 그대로 즉시 만고옥[晩告獄]에 갇히게 된다. 만고옥은 백[白] 연맹 산하 감옥이다.
“아니야.”
즉각 부정하며 몸을 약간 낮춰 언제든 튀어 나갈 자세를 취했다. 일부러 땅을 딛고 선 다리에도 힘을 줬다. 누가 봐도 전투에 나서기 직전의 긴장감으로 조여진 몸 같겠지만, 사실 이건 속임수다.
지금의 난 경지만 높은 애송이다. 내력은 물론 체력도 평범한 수준이고, 머릿속 체술 역시 몸이 못 따라가는 상황이다. 즉 내공과 법술의 수준만 높고 내력은 적고 무위는 얕다.
그래서 아까처럼 이기어검술을 할 생각인데, 검 한 자루로는 사각지대가 많이 생긴다.
그렇다고 없는 내력을 소분해서 만검술[萬劍術]-검 한 자루가 만[萬]개로 펼쳐지는 법술. 나머지 9999개는 실체가 있는 환영이다-을 펼치자니, 그러기엔 각각의 내구도가 너무 떨어진다. 상대는 고수이니 금방 격파될 거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찝찝해하는 얼굴로 날 힐끔거리는 남여연에게 내 선검을 내밀었다.
“사[邪]기나 마[魔]기가 느껴지는지 직접 확인해 봐.”
내 선선한 제안에 남여연이 이제는 아예 고개를 돌려 대놓고 나를 봤다. 지금이 정말 적과 대치한 상황이었다면 남여연은 방금 한눈을 판 그 순간에 목이 떨어졌을 거다.
하지만 우리와 적대하고 선 현교당 인사들은 제자리에서 우리를 주시하기만 했다. 섣불리 먼저 덤비지도, 공격하지도 않는다. 간혹 저들끼리 서로 눈짓을 주고받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이렇게 평온한 대치이니 대화로 해결해도 될 것 같긴 한데, 아무리 봐도 말이 통할 것 같은 상대가 아니다.
그 예로 현재 현교당 인사들은 죄다 이미 검을 빼 들고 있었다. 그 검 끝이 겨누고 있는 건 공교롭게도 전부 나다.
나를 쓰러트리고 남여연만 챙겨 가겠단 그 의사가 무척 노골적이게 드러났다.
그건 즉, 지금 남여연은 저들이 공격하기 꺼려 하는 대상이란 거고, 이는 나름 저들의 약점으로 작용될 거다.
“됐어, 나중에…….”
일단 눈앞의 상황에 집중하려는지 남여연이 거절했다. 나는 그 거절을 거절하고 남여연의 손에 내 선검, 댕댕을 쥐여 줬다.
“뭐야 이건? 무슨 짓이야?!”
남여연이 인상을 쓰며 낮게 윽박질렀다. 현교당이 언제 공격해 올지 몰라 신경 쓰이는지 정신은 이미 그쪽에 팔려 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남여연의 손에 댕댕을 붙여 버렸다. 법술로 서로 붙여 놓았으니 이제 웬만해선 떨어지지 않을 거다.
그 사실을 모르는 남여연은 내게 댕댕을 돌려주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놓으려 해도 놓아지질 않자,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곤 미간을 구긴다.
“너 미쳤어?”
내 빈손과 얼굴을 번갈아 보며 남여연이 속닥거렸다. 동시에 슬슬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현교당 인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점점 긴박하게 조여 오는 공기를 느끼며 나는 뒤로 선뜻 물러났다. 남여연은 이제 나만 보고 있었다. 의아함이 서린 얼굴이 험악하다.
“야, 진연, 너……!”
“남 공자.”
남여연의 말을 도중에 자르며 말했다.
“검무 추는 거 좋아해?”
내 물음에 대한 답은 남여연의 손에 쥐여진 댕댕이 움직이는 걸로 돌아왔다. 왜냐하면 사실 방금 건 자문자답이었기 때문이다.
남여연의 팔이 댕댕이 움직이는 궤적을 따라 이리저리 이끌린다. 속수무책으로 댕댕의 검로를 따라 쫓는 모습이 마치 허수아비 같다.
“진연!”
남여연은 당황한 얼굴로 나만 불렀다. 개가 말썽을 부리면 개 주인을 찾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내 이기어검술로 인해 남여연은 강제로 검무를 펼쳤다. 기실 보는 이에게나 검무이지, 막상 하는 당사자로선 검이 제멋대로 활개를 치고 있다 느낄 거다. 일례로 남여연은 지금 죽겠단 얼굴이었다.
뭐, 실제로는 제멋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거지만. 어쨌든 일종의 이기어검술이니까.
내 의지대로 내 선검이 하늘을 가르고 허공을 베며 검날로 빛을 비춰낸다. 호를 그리는 검등을 따라 남여연의 손목이 부드럽게 꺾이며 팔이 크게 휘둘러진다.
그래도 무공을 연마한 몸이라 그런지 나름 잘 따라가고 있다. 보법이 조금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럭저럭 볼만하다.
어디선가 날아온 솔잎이 검날에 길게 양분되며 그 너머로 남여연의 얼굴이 보였다. 처음 벙쪘던 얼굴은 사납게 일그러진 지 오래였다.
“장난해?”
입으로 성질을 부리며 남여연은 제 몸에 과하게 든 힘을 빼내려 애썼다. 괜한 반항심에 몸에 힘을 줘 봐야 고생하는 건 본인이라는 걸 알아차린 거다. 경직된 근육은 지독한 근육통을 부르는 법이니까.
저 홀로 수준 높은 검무를 펼치는 댕댕을 따라가는 데 급급한 남여연의 얼굴에 차츰 식은땀이 맺힌다. 눈가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파들 떨리고 있다.
댕댕에게 끌려다니며 검무를 추는 중간중간 남여연은 나와 눈을 맞췄다. 그때마다 이를 악물며 눈꼬리를 치켜뜬다. 어찌나 노려보는지 세모꼴인 눈이 삼백안이 되어 있다. 그 눈에 실핏줄까지 터지니 더욱 흉흉하다.
“춤만 추다 끝나면…….”
남여연의 경고성 어린 말은 검무를 추는 검 끝에 상대의 검이 맞부딪치며 끊겼다. 들어온 공격에 남여연의 표정이 곧바로 진중해진다.
상대와 몇 차례의 검격이 오가기 시작했다. 검의 단면이 번뜩인다. 그 산란한 빛 반사 속에서 수십의 합이 겨뤄졌다. 정확히는 내 댕댕이 합을 겨뤘고 남여연은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검무를 추는 검 끝이 상대의 검들을 교묘히 쳐내는 걸 지켜봤다. 이러고 있으니 사술인 괴뢰(꼭두각시) 법술을 쓰는 기분이다.
예상대로 현교당 인사들은 남여연을 죽이지 않았다. 대신 끝없이 나를 노렸지만, 그러기에 나는 이미 ‘검’과 ‘방패’로부터 적극적인 비호를 받고 있었다.
남여연의 손에서 휘둘러지는 댕댕은 내 ‘검’이었고, 그 댕댕에 이끌려 이리저리 움직여지는 남여연은 사각지대를 최소화해 주는 일종의 ‘방패’인 셈이었다.
문답무용으로 일관하던 현교당 인사들이 빠르게 서로 눈짓을 나눈다. 자연스럽게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다.
남여연은 댕댕에게 기대선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많이 지치긴 했지만 사지는 전부 멀쩡하다. 상대에게 해칠 마음이 없었단 방증이다. 그러니 남여연에게만큼은 이 싸움이 생사결이 될 수 없다.
잠시간의 소강상태에서 양측 모두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기진맥진한 상태인 남여연이 몸을 추스르며 바로 섰다. 호흡을 다스리는 옆얼굴에 결의가 서려 있다.
“진연.”
남여연이 나를 불렀다. 이기어검술을 다시 시작하자는 거다.
나는 남여연을 힐끔 일별한 뒤, 대치하고 서 있는 현교당 인사들을 봤다. 이렇게 계속 결투를 이어 가 봐야 지지부진한 시간 끌기만 될 거란 걸 상대측도 이젠 알 거다. 그러면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겠지.
과연, 다음 순간 현교당 인사 중 한 명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그에 남여연이 즉각 반응했다.
“진연, 빨리!”
나를 재촉하며 댕댕을 앞으로 겨눈다. 이기어검술 중이 아닌 댕댕의 검 끝은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 보니 그 검을 쥐고 있는 남여연의 손에 경련이 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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