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연연이 내게 혹독한 스승이었던 오연이라 하더라도, 나는 내가 받은 대로 똑같이 돌려주고 싶지 않다.
나는 연연에게 있어, 내가 바랐던 스승의 모습으로 있고 싶다. 그렇게 보이고 싶다.
그런 스승이 되고 싶다.
곧 닫혀 있던 겹문이 살짝 열리며 그 틈새로 연연이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입가를 풀던 손을 내려 슬며시 호접등을 도로 들었다.
호접등은 등 뒤로 감추고, 나머지 한 손을 연연을 향해 뻗었다. 그러자 연연이 곧장 달려와 앉아 있는 내 품에 안겼다.
나를 끌어안은 아이의 머리를 장난스럽게 헤집었다. 내 투박한 손길을 따라 연연의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린다.
“사부.”
산발이 된 머리로 날 올려다보며 연연이 나를 불렀다. 그런 연연과 눈을 맞추며 싱긋 웃었다.
“사부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느냐?”
연연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들어 횡으로 한 번 휘둘렀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감색 피풍의가 나타났다.
등 뒤에 두고 있던 손까지 앞으로 내밀어 두 손으로 피풍의를 받았다. 그러곤 연연에게 직접 피풍의를 입혀 줬다.
귀곡은 공기가 스산하고 온도가 낮으니 따듯하게 입어야 한다. 연연은 도자기 인형이라 아무리 추워도 감기는 안 걸리겠지만, 그래도 더위와 추위는 느끼니까.
“자, 이제 됐다.”
옷깃까지 정리해 준 뒤 마지막으로 옷자락을 팡팡 두드려 줬다. 그리고 상체를 뒤로 조금 물려 연연을 전체적으로 살폈다.
두툼한 피풍의를 입은 연연은 아까보다 훨씬 동그래져 있었다.
이제야 좀 따듯해 보인다.
따듯해 보인다는 데에 흡족해하고 있는데 연연이 돌연 다시 나를 끌어안아 왔다.
두 팔로 내 머리를 끌어안은 탓에 그 품에 코를 박았다.
처음엔 놀라서 멍하니 눈을 깜박이다가, 얼굴에 닿는 푹신하고 따듯한 감촉에 그냥 아예 얼굴을 묻어 버렸다.
연연이 그런 내 머리를 툭툭 쓰다듬는다.
“……연연.”
그 상태로 고개만 들어 연연을 올려다봤다. 그러자 연연이 두 손을 사용해 내 머리를 마구잡이로 쓰다듬는다. 순식간에 연연과 똑같이 머리가 산발이 되었다.
…지금 복수하는 건가?
순간적으로 든 생각에 피식 웃으며 일부러 엄한 표정을 지었다.
“이놈-”
한쪽 눈썹을 까닥이며 ‘이놈’했다.
그러자 연연이 날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슬금슬금 머리를 다시 정리해 주기 시작한다.
문제는 정리해 준답시고 하는 손 빗질이 매우 거칠었다는 거다.
엉킨 머리카락을 거의 쥐어뜯다시피 하는 매서운 손속에 비명이 절로 나온다.
“아! 아야. …윽!”
엄살을 피우며 연연의 두 손을 양손으로 움켜잡았다.
“항복, 항복.”
빠르게 말하며 연연을 올려다봤다.
“사부가 졌다.”
잡은 연연의 두 손을 내 머리에서 떼어 내며 눈을 맞췄다. 연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날 쳐다보고 있었다.
잡고 있던 연연의 손을 가볍게 당겨 내 옆에 앉게끔 했다. 그리고 다시금 보니 아까 내가 너무 헝클여 놨는지, 머리가 아주 엉망이다.
연연을 내게서 돌아앉게 한 뒤 나는 그 등 뒤에 자리 잡고선 오른손 끝을 까닥였다. 근처 탁자 위에 올려 뒀던 함이 저절로 열리며 그 안에서 빗이 떠올랐다.
허공섭물을 고도로 응용한 술법이었다.
까닥였던 오른손 끝을 횡으로 짧게 긋자 빗이 내게로 쏘아져 날아왔다. 오른손 안으로 날아든 빗을 자연스럽게 잡아챘다.
손안의 빗을 빙글빙글 돌리며 다른 한 손으로 연연의 머리카락을 대충 손 빗질했다. 일단 겉으로나마 헝클어진 걸 살살 풀어 준 뒤에 빗을 갖다 댔다.
최대한 아프지 않게 신경 써서 살살 빗겨 줬다.
“어때, 하나도 안 아프지? 봐, 연연. 이렇게 상대의 머리카락을 아낄 줄 알아야지.”
방금 내가 빗은 부분을 흡족하게 보며 말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에 잠시 빗질을 멈췄다.
“연연.”
빗의 뒷부분으로 연연의 정수리를 툭툭 두드리며 불렀다. 연연이 고개를 위로 젖혀 나를 올려다본다.
마주 고개를 내려 그런 연연과 눈을 맞췄다.
“우리는 이제… 여기서 나가게 될 거야. …일이 생겼거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야. 그 일을 하는 여정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고, 무엇도 장담할 수 없지만…….”
“사부.”
“응?”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이며 되묻는 것과 동시에 연연이 그대로 뒤로 누워 버렸다. 나는 내 품 안으로 누운 연연을 내려다봤다.
“…아직 덜 빗었는데.”
코끝으로 가는 숨을 내쉬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렇게 제멋대로여서야.”
손안에서 빗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그냥 내 머리나 빗었다.
연연은 길게 풀어 헤쳐진 내 머리카락 끝을 땋으며 놀았다. 나는 연연이 허술하게 땋은 그 부분은 빼놓고 나머지만 단정하게 빗었다.
“…하나는 약속할게. 약속할 수 있어.”
그리고 아까 미처 끝맺지 못한 말을 이어 말하며 빗질을 끝냈다.
“내가, 이 사부가 널 보살펴 주마. 알겠느냐, 응? 연연.”
나를 올려다보는 연연의 두 눈이 느리게 깜박인다. 그게 마치 알겠다는 대답 같아서 나는 입꼬리를 끌어 올려 웃었다.
“네 헝클어진 머리도 보살펴 주고. 자, 알았으면 이제 일어나거라. 어서.”
빗 끄트머리로 연연의 이마를 툭 치며 말했다. 연연은 눈만 껌벅이더니 이내 구르듯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아까 가지런히 빗은 부분이 도로아미타불 된 걸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사부 노릇도 쉬운 게 아니네.
다시 차분히 머리를 빗어 준 뒤 감색 머리끈으로 마무리했다. 하나로 높이 올려 묶은 고수머리는 뒤에서 보기엔 좌우균형도 맞고 제법 그럴싸했다.
바로 연연의 몸을 내게로 돌렸다. 정면에서도 괜찮게 보이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면에서 본 연연의 얼굴은 양옆으로 너무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눈썹 양 끝과 눈꼬리 끝이 위로 바짝 치켜 올라가 있었다. 머리를 묶을 때 너무 당겨 묶었나 보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눈썹을 까닥였다.
“뭐, 나쁘진 않네.”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감상평을 한 뒤, 이번엔 내 머리를 묶기 위해 입에 얇은 핀을 물었다.
우선 머리카락을 반만 틀어 올려 핀으로 고정한 뒤, 검은색 바탕에 붉은 문양이 들어간 관을 씌우고 비녀로 고정했다.
그다음엔 연연이 땋아 놓은 부분을 찾아서 풀어지지 않게끔 그 끝을 단색 머리끈으로 묶었다. 내친김에 리본 모양으로 묶은 뒤 연연에게 보여 줬다.
“봐봐. 어때?”
“…!”
마음에 드는지 연연의 두 눈이 반짝거린다.
그런 연연의 눈앞에 리본으로 묶은 머리를 대고 흔들며 나직이 운을 뗐다.
“풀지 않고 이렇게 해 두는 게 너도 더 좋지? 어쨌든, 연연 네가 기왕에 정성 들인 걸 내가 신경 써 주는 거니까.”
연연이 바로 고개를 끄덕인다. 땋은 머리카락 끝에서 눈을 떼지 않는 모습에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열렬한 반응이다.
“좋아!”
내가 말했다.
“이 정도야 얼마든지 이대로 남겨 둘 수 있지. …단, 이 사부가 묻는 말에 제대로 답한다면 말이야.”
내 말에 연연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그런 연연과 똑바로 눈을 맞추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연연. …내가 여기 있다고 네게 알려 준 게 누구야?”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름 심각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조금만 타이밍이 어긋났어도 연연에게 좋지 않은 꼴을 보일 뻔했다. 바로 그 동동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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