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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사형입니다-80화 (80/141)

<80화>

연연에겐 그런 걸 보이고 싶지 않아서 이제껏 숨겨 왔었다. 왜냐하면 그건 ‘사혈귀존’을 상징하는 하나의 상징성이기 때문이다.

기실, 애초부터 난 연연을 귀곡에 속하게 둘 생각이 없었다. 연연을 빚은 건 귀곡에서였지만 본래 그 혼은 선인이었던 오연이었다.

원래대로라면 하늘에 속했어야 했을 이를 내 욕심에 희생시키고 죽인 걸로도 모자라, 그를 내가 있는 곳으로까지 끌어내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제자가 사부의 등을 보고 자란다면, 나는 그 아이의 눈이 닿는 곳에선 늘 백의만 입고 있을 거다.

비록 나는 이미 정도에서 벗어났다 하더라도,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할 작정이니까.

그런 의미로 최근에 가면 하나를 주조하기 시작했다.

연연에게 씌워 줄 가면으로, 차후에 귀곡 출신이라고 꼬리 잡히지 않기 위해 만든 정체 숨기기용이다.

가면을 만들면서까지 연연을 같이 데리고 나가려는 건, 내가 이곳에서 어떤 식으로 군림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에서 일말의 덕도 쌓지 않았다.

가뜩이나 귀신들은 본래 신의란 것이 없는 족속인데, 나는 거기에 더해 원한과 원망까지 쌓았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귀신 소굴에 연연만을 혼자 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긴 말 그대로 사방이 적뿐인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곳이니까.

그래서 그냥 데리고 다니기로 결심을 굳혔다. 이런 곳에 혼자 두는 것보단 그편이 훨씬 낫다.

“응? 연연.”

대답을 재촉하며 간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있던 연연이 그 상태로 크게 머리를 끄덕였다.

다음 순간, 연연의 신형이 한순간에 변했다.

아직 ‘사부’란 말밖에 하지 못하는 연연에겐 가진 재주가 하나 있는데, 바로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는 거다.

여기에 걸린 제약은 단 하나다.

무엇으로든 변할 수 있지만, 가능한 범위는 본인의 기억력에 따라 제한되어 있다. 즉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모습으로만 변할 수 있는 거다.

변신의 정확도와 세밀함이 기억력에 달려 있어, 눈썰미가 정말 좋아야 한다.

“…음…….”

나는 연연이 변한 모습을 보며 침음을 흘렸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정말 저화질이다. 뭉뚱그려져서 대충 표현된 이목구비는 낙서에 가까웠다. 극악의 난이도다.

세세히 살피다가 정말 모르겠어서, 일단 오른뺨에 콕 찍혀 있을 점부터 찾아봤다. 이미 속으로 확신하고 있는 놈이 한 명 있었기 때문이다.

심증을 바탕으로 찾아 보니… 과연. 역시나 있다.

다시 보니 눈매도 더럽고 전체적으로 날카로운 느낌인 게, 딱이네.

“아, 알았다.”

주먹 쥔 손으로 장난스럽게 손바닥을 내리치며 말했다.

“선양귀.”

발음을 분명히 하며 정답을 말했다. 은근히 싸해진 목소리가 똑똑히 울렸다.

나는 씩 웃으며 턱 끝을 살짝 치켜들었다. 의기양양한 눈으로 연연을 보고 있자니, 연연이 두 팔을 들어 제 머리 위로 동그라미를 그린다.

정답이란 뜻이다.

동그라미를 그린 뒤, 연연은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래, 선양귀란 말이지.

애 앞이니 표정 관리를 하면서 왼손을 슬그머니 등 뒤로 돌렸다.

등 뒤로 숨긴 손의 검지를 노크하듯 까닥였다. 그러고 얼마 있지 않아 누군가의 그림자가 겹문에 비쳤다.

“연연, 누가 온 것 같은데.”

닫혀 있는 겹문 쪽을 눈짓하며 말했다.

“응? 저기 봐봐. 누가 누구를 찾아온 걸까?”

연연의 관심을 그리로 돌리기 위해 살살 꾀듯 말했다.

날 빤히 보던 연연이 미적거리며 겹문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런 연연의 어깨를 두 손으로 가볍게 움켜잡고선 귓가에 입술을 대고 나직이 속삭였다.

“그림자의 귀가 위로 쫑긋 솟아 있고 몸체가 둥근 걸로 보아… 음… 사부가 맞춰 볼까, 어디 보자…….”

집중시키기 위해 일부러 목소리를 깔며 말끝을 끌었다. 어느 정도 침음을 흘리다가,

“…아! 정답. 귀돌이, 귀순이.”

결정타를 날렸다. 예상대로 연연의 눈이 살짝 커진다.

나는 잡고 있던 어깨를 슬며시 놨다. 언제든 연연이 저리로 달려갈 수 있게끔 말이다.

귀돌이, 귀순이는 일전에 연연을 위해 특별히 데려온 애완용 토끼다.

연연 혼자서는 이곳에서 많이 심심할 테니, 같이 어울려 놀 만한 게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데려왔다. 친구 삼아 놀면 아이 정서에도 좋을 것 같았고.

그래서 토끼들 목에 내 힘이 깃든 목걸이도 채워 줬다. 그래야만 귀곡의 귀기에서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키우려면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거기에 더해 특별히 이름도 하사해 줬다.

토끼는 귀가 길고, 암수 한 쌍으로 있으니 ‘귀돌이’, ‘귀순이’다. 내가 지었어도 참 잘 지었다.

종족 특징이 명료하게 드러나 있고 암컷, 수컷 구별도 잘 된다. 게다가 나름 귀엽기도 하다.

연연도 귀돌이, 귀순이를 마음에 들어 했다.

“가 보거라.”

살짝 턱짓하며 말했다.

연연은 내게 떠밀려 자리에서 일어섰다가 그대로 멈춰 서선 나를 돌아봤다. 잠시 시선이 마주쳤다. 날 빤히 보더니 곧 다시 몸을 돌려 겹문을 향해 종종걸음 친다.

겹문까지 걸어가는 동안은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단번에 겹문을 열고 나간 연연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선 토끼 두 마리를 품에 안아 들었다.

하얀 털이 귀돌이고, 회색 털이 귀순이다.

두 마리 전부 연연의 품에 안긴 걸 확인한 뒤, 두 손을 앞으로 모았다. 양손을 가볍게 교차하며 휘둘러 법진을 맺곤, 내원근에서 진기를 끌어올려 운기했다.

인간은 단전에서 내공을 운공하지만, 요, 마, 귀, 그리고 신선과 선인은 내원근에서 운기한다.

맺은 법진으로 다루는 술수도 각기 그 명칭이 다르다.

인간은 ‘법술’, 요, 마, 귀, 그리고 신선과 선인은 ‘술법’이다. 더 자세히 나누자면 신선과 선인이 다루는 술수는 ‘선[仙]술’이라 한다.

그리고 요[妖]는 ‘요원술’이라 하고, 마[魔]는 ‘마원술’, 귀[鬼]는 ‘귀원술’이다.

요원술, 마원술, 귀원술은 하나의 술수에서 파생된 것으로, 그 태초의 술수를 ‘진기술’이라고 한다.

진기술은 상고시대 때 혼돈에서 빠져나온 기운을 근본으로 두고 있다고 전해지는데, 그에 대한 자세한 건 알려져 있지 않다. 그저 공멸[共滅]의 힘을 갖고 있다고만 전해져 내려온다.

아마 천계의 높은 상선(지위가 높은 신선)들은 알고 있을 거다. 상고시대 때부터 있었다는 그 혼돈이 지금도 천계의 동쪽에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나는 인간으로서 법술을 익힌 게 반평생이라, 귀원술보다는 법술이 더 익숙했다. 그리고 선인의 제자로 오랜 세월을 지낸 터라 선술에도 익숙했다.

요, 마, 귀가 쓰는 ‘진기’란 결국 ‘본원진기’라서 ‘내공’과 아주 흡사하다. 그리고 ‘선기’(신선과 선인의 기운)만큼이나 강력하다

그런고로 나는 귀원술은 물론이고 법술도 쓸 수 있다. 내공이 아닌 진기를 운기해 쓰는 법술이라 본래의 것보다 더 큰 효력을 낼 수 있다.

또, 선술도 대충이나마 흉내 낼 수 있다. 신기하게도 내 안에는 선기가 미미하게 괴어 있었다.

물론 지금의 나는 귀족이고, 나를 이루는 기운도 극도의 귀기라서 이 선기를 운기할 순 없다. 하지만 선술의 법진은 그려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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