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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사형입니다-85화 (85/141)

<85화>

나를 부르는 얼굴이 추위에 빨갛게 얼어 있다.

계속 이 추위에 내버려 뒀다간 병에는 안 걸려도 골병은 들겠다.

안 되겠다. 동동에게 별다른 소식도 없으니 이만 잠시 객점으로 가야겠어. 가서 몸 좀 녹여 줘야지.

연연에게 토끼 수염이 그려진 반가면을 씌워 준 뒤, 다시 한 팔로 가뿐히 안아 들었다.

“눈이 더 쌓일 때까지 우리는 객점에 있자.”

자리에서 일어나 느긋이 몇 걸음 옮겼다. 걸음걸음마다 한 획씩 법진이 그려진다.

한 보 한 보 그려진 법진이 이어져 완전한 법진으로 완성됐다.

발아래 피워 낸 법진은 순간 전이 술법이었다.

내원근의 진기가 운기되며 법진이 발현되기 직전, 연연이 근처 나무에서 매화꽃 한 송이를 꺾었다.

그리고 도착한 곤륜산 인근 마을에서 연연은 내 귓가에 매화꽃을 꽂아 줬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다.

연연이 귓등에 꽂아 준 매화꽃에서 퍼지는 향기가 그윽하다.

나는 미소 지으며 연연의 얼굴 위로 고개를 숙였다. 서로의 코끝이 살짝 맞닿았다.

“예쁘다.”

내가 속삭여 준 말에 연연이 웃었다.

* * *

곤륜산 인근 마을의 여화 객잔.

가게 문을 열자 훈기가 화악- 끼쳐 들었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던 떠들썩한 소리가 커지며 북적이는 전경이 시야 가득 들어왔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음과 흥청거리는 분위기에 놀랐는지 연연이 잠시 멈칫거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연연은 곧 바쁘게 눈을 굴려 주변을 둘러보다가, 내 손을 꼭 맞잡아 왔다.

긴장으로 조금 얼어 있는 연연을 일별한 뒤, 안심하란 의미로 맞잡은 손을 살짝 흔들어 줬다. 그러곤 안쪽에서 달려오는 점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서 오십시…….”

“두 명. 방 있나?”

맞댄 두 손바닥을 싹싹 비비며 굽실거리는 점원을 향해 은전 한 닢을 튕기며 말했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은전이 점원이 내민 손 위로 안착했다.

“하이고! 당연히 있습죠! 있습니다!”

은전을 재빨리 소매 안으로 집어넣으며 점원이 앞장섰다.

“각자 방을 따로 쓰시는 게 아니라면, 2층에 제일 넓은 방 하나는 어떠십니까? 이 객점에서 가장 좋은 방이 하나 비어 있습니다.”

북적이는 1층을 돌아,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오르며 점원이 말했다.

“그러게.”

점원의 뒤를 쫓으며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식사도 그리로 올릴까요?”

점원이 바로 말을 받으며 되물었다.

그러고 보니 때마침 저녁 시간대다. 1층 식당은 꽉 차 있었다. 주방에서부터 풍겨 오는 음식 냄새가 객점 안을 꽉 채웠다.

술잔을 내려놓는 소리와 접시와 수저가 마찰하는 소리로 소란스럽다.

어쩔까 고민하며 연연을 내려다봤다. 나와 꼭 맞잡고 있는 작은 손에도 잠시 시선을 줬다.

연연은 도자기 인형이다.

도자기 인형은 음식을 섭취할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나도 음식을 안 먹어도 상관없는 몸이다.

우리 둘 다 굳이 먹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식도락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먹을 필요가 없는 거지, 먹어선 안 되는 건 아니었으니까.

연연의 시선이 1층을 향해 있는 걸 확인한 뒤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음.”

짧게 침음을 내는 걸로도 의사소통은 충분히 되었다. 자고로 점원의 눈치란 받은 돈의 액수에 좌지우지되는 법이다. 그리고 은전 한 닢은 절대 적은 돈이 아니었다.

과연, 점원은 식사도 바로 준비하겠다고 호들갑을 떨며 답해 왔다.

2층 계단 끝까지 올라가 긴 복도를 걸었다. 안내받은 방은 제일 안쪽에 있었다.

“청소는 이미 다 되어 있습니다.”

방의 문 앞에서 비켜서며 점원이 말했다.

나는 그런 점원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곧바로 문 앞에 섰다.

드르륵-

한 손으로 문을 열며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나와 손을 맞잡고 있는 연연도 덩달아 따라 들어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눈에 들어온 것은, 정면에 배치된 탁자와 의자였다. 그 너머의 대각선에는 낮은 단 위 좌상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 뒤 벽면에 둥근 창이 크게 나 있었다.

시선을 돌려 방 안을 크게 둘러봤다.

좌우의 병풍 위로 휘장이 늘어져 있었는데 그 뒤로는 보나 마나 침상이 자리해 있을 거다.

나쁘지 않다.

공간도 적절히 분리되어 있고, 생각보다 더 괜찮다. 나름 쾌적하니 하룻밤 머물기에는 나쁘지 않다.

“그럼 바로 준비해서 올리겠습니다, 나리.”

문 바깥에서 점원이 말했다. 내가 대답이 없자 점원은 잠시 공백을 둔 뒤, 곧 소리 없이 문을 닫고 물러났다.

“어때?”

연연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연연은 주변을 휘휘 둘러보더니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처음 온 객점이 신기한지 이곳저곳 부산스럽게 구경한다. 탁상 위의 종과 향로를 들었다 놓길 반복한 다음에, 병풍 쪽으로 뛰어갔다.

병풍을 한쪽으로 젖혀 놓고선 휘장 너머 침상 위로 뛰어 눕는 연연을 바라봤다. 그 바람에 가지런히 개어져 있던 이불이 엉망이 되었다.

침상이 각각 하나씩 두 개가 놓여 있어 다행이지.

“연연. 그 침상은 네가 쓰거라.”

침상이 있는 병풍을 지나쳐 좌상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그러자 연연이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나는 기척이 느껴진다.

둥근 창 앞에 자리한 좌상은 짙은 색의 낮은 걸상과 책상으로 이뤄져 있었다. 걸상에는 금색 자수가 수놓인 방석이 올려져 있었다.

두 개의 계단으로 이뤄진 낮은 단을 올라가 좌상에 앉았다. 앞의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자리에도 같은 걸상이 놓여 있었다.

아직 비어 있는 맞은편에 시선을 뒀다.

한쪽 무릎을 세워 앉은 뒤, 한 손으로 창문을 열었다. 부드럽게 열린 창 너머로 차가운 공기가 불어왔다.

노을이 내리기 시작한 하늘 아래로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 거리가 보인다.

하나둘 켜지는 홍등에 잠시 시선을 줬다가,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곁에 온 연연이 내 옆에 앉았다. 토끼 가면은 침상 위에 벗어 두고 왔는지 맨얼굴이다.

“구경은 다 했어?”

내가 물었다.

연연은 내 뒤로 펼쳐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데 한 눈 팔린 연연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내 시선을 느낀 연연이 그제야 나를 마주 본다.

“응.”

연연은 입을 꾹 다문 채 목을 울려 소리를 냈다. 고개도 같이 끄덕이는 연연을 보고 있자니, 새삼 연연의 언어발달 정도가 신경 쓰인다.

그 속을 완전히 채워 주지 못해서 그런지 연연은 말이 많이 늦었다. 아니, 이건 늦되다는 말로 표현될 게 아니다. 할 수 있는 말이 ‘사부’란 단어 하나뿐이었으니까.

‘사부’. 그게 다다.

지금까지는 그러려니 하며 지냈지만, 계속 이대로 둘 수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이젠 더 이상 귀곡 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긴 귀곡 바깥이기도 하니, 만일에 대비해 몇 개의 단어 정도는 더 발음할 수 있는 편이 낫다.

고심이 길어지며 나도 모르게 한 손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검지로 툭, 툭 두드리다가 내가 두드리는 소리에 엇비슷한 소리 하나가 섞이는 걸 깨닫곤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

범인은 연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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