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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사형입니다-100화 (100/141)

<100화>

나란히 멀어지고 있는 그 두 선사 중 오른쪽에 선 이의 뒷모습이 유난히 눈에 박혔다. 반 묶음 한 머리를 고정하고 있는 머리 장식이 눈에 익어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치던 찰나에 희미하게 느껴졌던 동동의 기운.

걸음이 저절로 뒤쪽으로 틀어지며, 나는 이제 거의 뒤돌아섰다. 이번엔 허상이 아니다.

네가 대체 왜 여기에……. 옆에는 누구지?

“…혹시 아는 사람입니까요?”

개아무개가 내게 물었다. 그 물음에 나는 바로 시선을 거두었다.

‘가.’

‘안 찾을게.’

‘원멸’ 이전에 우사가 벼랑 위에서 내게 한 말이 떠올랐다.

‘…가.’

‘나도 너 안 찾을게.’

11년 전, 사해필성의 성루 아래로 떨어지며 내가 우사에게 한 말도 떠올랐다.

그 두 개의 기억이 서로 맞물리며, 서로가 서로를 투영시킨다.

“아니.”

간략하게 답하며 도로 고개를 돌렸다.

“예예…….”

개아무개가 나와 멀어져 가는 두 선사를 번갈아 쳐다보며 시원찮게 대답한다. 그러다 다시 내 눈치를 힐끔 살피더니 곁으로 붙어 온다.

“그러고 보니 요 근래 낙주에 쉬쉬하며 도는 소문이 하나 있습니다요.”

은밀히 걸어 오는 말에 가볍게 고개를 까닥여 보였다. 알았으니 어서 말해 보란 뜻이었다.

“…최근에 ‘연화경’이 불의의 사고를 당해 죽다 살아났다 합니다.”

‘연화경’이라면 연화산문의 문주이다.

“그런데 그 뒤로 사람이 달라졌다고들 합니다요, 대인. 막역한 사이인 ‘설가[家]-연화산문의 중심세가-’의 가주를 멀리하고 웬 외지인을 가까이한다던데, 그 사이가 무척 절친해서,”

“연화산문의 설가[家]라. ……설휘랑.”

연연의 곁으로 가 서며 말했다. 지난 기억을 되짚는 것에 가까운 혼잣말이었다.

11년 전 사해혈사 때, 날 추격한 후기지수들 중에 연화산문의 설휘랑도 있었다.

“아, 예, 대인. 6년 전에 설가[家]의 이랑(둘째 아들)인 설휘랑이 가주 위[位]에 올랐습니다요.”

본래 가주 위[位]는 장자가 물려받는 법이지 않나?

“장자는?”

문득 든 생각을 무심결에 내뱉으며 연연이 보고 있는 것을 굽어봤다.

“장자는 오래전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요.”

곁에서 개아무개의 대답이 들려왔다.

나는 소매 안에서 전낭(지갑)을 꺼냈다.

“연연.”

내 부름에 연연이 좌판 앞에 쭈그려 앉은 자세 그대로 머리만 위로 젖혀 나를 올려다본다. 나를 보는 얼굴에 배시시 웃음이 퍼진다.

“그거 갖고 싶어?”

내가 묻자 연연이 눈을 한 번 굴리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전낭에서 동전 몇 닢을 꺼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있던 연연은 진작에 두 손을 곱게 모아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허리를 굽혀, 그 내민 양손 위에 동전들을 올려줬다.

연연의 손이 오므려지며 동전들을 꼭 쥐는 걸 보곤 숙였던 허리를 천천히 폈다. 연연은 다시 좌판 구경 삼매경에 빠졌다. 그 앞에서 좌판 주인이 연연의 흥미를 끌려 애쓰며 부단히 호객행위를 한다.

나는 그 야단스러운 광경을 일별한 뒤 개아무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내 눈길을 받은 개아무개가 슬그머니 눈을 내리깔며 헤실헤실 웃는다. 엉거주춤 모은 두 손은 파리 마냥 싹싹 비벼대고 있다.

“연화경이 가깝게 지내고 있다는 그 외지인에 관해 알려진 건 없습니까?”

“그것이…, 면사로 얼굴까지 가리고 있어서 도통 없습니다요. 그저 그 둘이 마치, …아주 오랜 지인 같다는 소문만 무성해서… 더 알 수 없는 노릇입죠. ‘연화경’이란 것 자체가 좁게는 연화산문, 넓게는 낙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사인데…….”

그 외지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단 거군.

개아무개의 뒷말은 대충 흘려들으며 근처 노점으로 눈길을 돌렸다. 가까이에 서책과 화첩을 파는 좌판이 있었다. 한쪽엔 붓으로 그린 인물화도 쌓여 있었는데, 걔 중 한 초상이 내 관심을 끌었다.

“…어떻게 주변 인물들도 모르는 지인이 갑자기 나타날 수 있는지. 어허- 참으로 알 수가 없는…, 저, 대인……?”

주절대던 개아무개가 나를 부르며 눈치를 살핀다. 이제야 입을 다문 개아무개를 흘낏 쳐다봤다.

내 시선이 닿기 무섭게 또 엉성한 웃음을 흘리며 어깨를 움츠린다. 나는 내친김에 개아무개 쪽으로 몸을 조금 더 틀었다. 그러자 개아무개의 동공이 떨린다.

“저, 대인……?”

“선생은 사혈귀존에 대해 얼마큼 알고 있습니까?”

“사, 사혈귀존이라면…, 세간에 알려진 것만큼밖에 알지 못합니다요.”

당혹감이 가득한 낯짝으로 떨떠름히 답한다. 그에 나는 한 손을 들어 내 턱을 쓸었다.

“세간에 알려진 만큼이라면, 그자가 제 스승을 죽인 걸 스스로의 자랑으로 삼은 악귀이고, 현재는 귀곡의 주인이란 것 말이겠군요.”

“예…….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턱을 쓸던 손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저기에 사혈귀존의 초상화가 있기에.”

엄지로 뒤쪽을 가리킴과 동시에 좌판 쪽을 흘낏 곁눈질하며 말했다. 개아무개의 시선이 내 손끝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으로 곧장 향한다.

좌판이 있는 내 뒤를 흘긋대는 개아무개를 보았다.

“…한 장 사 올까요?”

머잖아 개아무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글쎄.”

모호한 한 음절을 흘리며 한 손으로 내 멱리의 너울을 천천히 걷었다.

너울이 걷히며 내 얼굴을 마주한 개아무개의 면상엔 충격이 떠올라 있었다. 무엇에 대한 충격인지 가늠해 볼 것도 없었다. 얼빠진 낯짝에 감탄이 서려 있었으니까. 사혈귀존에 대한 공포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다.

의뭉스런 미소를 흘리며 나는 너울을 걷었던 손을 도로 내려 뒷짐 졌다.

“됐습니다.”

그 말만 간단히 하곤 개아무개에게서 약간 몸을 틀었다.

“모…, 모사반안! 모사반안[貌似潘安]이란 말로도 부족한 용모이십니다요, 대인.”

곁에서 개아무개가 촐싹댄다. 그에 나는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을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좌판대의 초상화에 둔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도 보고 있는 저 ‘사혈귀존을 그린 초상화’가 나를 조금도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쩐지 멱리를 쓰지 않았을 때도 날 알아보는 이가 없더니만.

그래도 11년 전에 내 얼굴을 본 이가 무수히 많았는데 어떻게 저렇게까지 와전될 수가 있는 거지? 혹 어떤 모종의 정치적 이유 때문인 건가?

사람들은 외적인 것에 약하니, 일부러 저렇게 악독하게 그린 건지도 모른다. 귀족(귀신)들의 정점에 섰다는 악귀에 어울리게 말이다.

어쨌든 세간에 알려진 사혈귀존의 용모는 흉측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개방 끄나풀로 확신하고 있는 저 걸개도 내 얼굴에서 사혈귀존이란 별호를 떠올리지 못하고 있고 말이다.

“사부!”

연연의 목소리가 날 상념에서 일깨웠다.

“음?”

고개를 돌려 내려다보자 품 안 가득 장난감을 안고 있는 연연이 보였다. 그 앞의 좌판 주인은 싱글벙글 웃고 있다.

“돈이 조금 부족하길래, 저 막대 인형은 그냥 제자 분께 덤으로 드렸습니다, 나리.”

좌판 주인이 인심 좋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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