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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사형입니다-102화 (102/141)

<102화>

“……아니, 그러니까-, 알려 주시는 건 어떠실는지…. …끄응-”

말끝을 흐리며 무본이 앓는 소리를 냈다.

나는 그런 무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가벼운 숨을 내쉬었다.

“좋습니다, 선생.”

어쩔 수 없단 투로 말하며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하나 더 말하자면, 난 외선[外仙]입니다.”

“예? 외선이라 하면……?”

“‘바깥의 것들(요, 마, 귀)과 인간을 대하는 데 있어 차별을 두지 않는다.’ 내 눈에는 어떤 목숨이든 경중이랄 것 없이 다 같아 보인다는 뜻의 호[號]입니다.”

“예?”

외선에 대해 설명하기 무섭게 반문이 뒤따라왔다.

저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나온 반응이었는지 무본이 두 눈을 느리게 끔벅였다.

다음 순간, 무본이 허둥대며 다급히 입을 열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대인. 소인이 ‘다르다’라고 말한 것은 그게 아니라…….”

방금 내 말이 어처구니없게 들렸다고 시위라도 하는 듯한 무본을 지그시 응시했다. 날 보는 낯짝에 당황과 어이없음이 교차하고 있다.

그 멍청한 면상을 보고 있으려니 어쩐지 짜증이 치민다.

“선생은 내가 외선이란 게 이상한가?”

내 싸늘한 물음에 무본의 표정이 애매해진다.

“그건 아니지만, …어허-, 그것이, …아무래도 소인이 말한 ‘여타 선사들과 같아 보이지 않는단’ 것이, 그…, 공명함[公明]과 자비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닌지라…….”

“…….”

일단 들어나 보잔 심산으로 나는 더 말하지 않았다.

“…….”

내가 침묵하고 있으니 무본도 더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길어진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길어지는 침묵 속에서 우리가 선 공간의 분위기가 점점 싸늘하게 가라앉는다. 쎄함 가운데 주변을 둘러싼 풍경은 여전히 떠들썩했다.

야시장의 환락이 주변을 겉돌수록 그와 유리된 이 자리의 침묵은 더욱 무거워져만 갔다.

결국 나는 가벼운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고 여기 서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짐짓 아무렇지 않게 서두를 꺼내며 한쪽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중 무엇으로 할 건지?”

아까 내밀었던 선택지였다.

“이제 내가 대답을 들어야겠습니다, 선생.”

장단은 이만하면 충분히 맞춰 줬다.

“…두 번째로 하겠소이다.”

침음을 흘리며 무본이 마지못해 답했다. 지금의 대화 흐름이 마뜩잖단 기색이 여실하다.

“선생이 그러길 바란다면야.”

가볍게 응수하며 피식 웃었다.

“……이제 대인께서 숙식할 곳을 소인이 알아봐 주면 되는 것이오?”

“숙식. 숙식이라.”

나직이 읊조리며 잠시 고민하다가 곧 결정을 내렸다.

“아무리 이 낙주에 타 분타가 못 들어섰다 해도, 매듭이 세 개인 선생이 똬리를 틀었을 정도면 안가[安家]몇 채는 갖췄을 터. -오늘 이렇게 환락이 가득한 거리를 걸으니 내 심신이 몹시 피로해서 말입니다. 낙주 사람들은 모르는 한적하고 조용한 곳이 좋겠습니다, 선생.”

“지금 그 말은…, 대인, 개방의 안가[安家]는 외부인에게 공개가-”

“아아, 그리고 사합원[四合院]까진 됐고, 오두막 정도가 괜찮겠는데.”

주거의 형태까지 따져 골랐다. 그래도 하룻밤 머물 곳이니 어떤 데서 밤을 보낼 건지는 내가 정해야지.

“……오두막. 오두막 정도라면야.”

무본이 혼자서 중얼거린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얼굴은 심각함을 넘어 자못 절박해 보이기까지 했다.

스스로를 납득시키려 애쓰는 게 보여, 나는 기꺼이 대답을 기다려 주기로 했다. 저리 살길을 모색하려 아등바등하니 말이다.

“아!”

머잖아 무본이 짤막한 탄성을 내뱉으며 오른 주먹으로 왼손바닥을 내리쳤다.

탁!

“있습니다요.”

다시 처음의 말투로 돌아온 무본이 내게 말했다.

“저 숲 안쪽에 초옥[草屋] 한 채가 있긴 한데, 그…, 빈집으로 방치해 둔 지가 오래되어서 괜찮을는지……. 그, 그래도 무척 한적하고 조용한 곳이란 건 보증합니다요! 바닥만 좀 쓸어 내고 침구만 정리하면 하룻밤 머무는 데엔 손색이 없을 거외다.”

무본이 손으로 가리킨 방향을 보며 고개를 대충 끄덕였다.

“절대 나쁘진 않을 겁니다요, 대인.”

“상관없습니다.”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첨언을 붙이는 무본에 딱 잘라 말했다. 시선은 여전히 저 숲에 둔 채였다.

“예? 예-. 역시 대인배다운 면모이시니, 그래서 대인인가 봅니다요. 헤헤…….”

“이 거리엔 ‘심마[心魔]’가 있으니 말입니다.”

“……심마[心魔]요?”

아까보다 작은 목소리로 되묻는 무본에, 나는 그대로 시선을 돌려 그를 봤다. 고개를 끄덕여 주자 무본의 표정이 요상해진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날 멀거니 보다가 입을 벌렸다.

“아-”

곧 깊은 탄식인지 탄성인지 모를 감탄이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곤륜에서 오신 분이신지라 풍속이 다르기도 하니 그렇게 느낄 수도 있는, …있긴 합죠. 있긴 한데, 그래도… 예예-, 있긴 합니다요.”

잇다 말길 반복하던 말은 맥을 못 추다가 결국 싱겁게 끝났다.

“그럼 갑시다, 선생.”

내 말에 무본이 내 눈치를 본다. 그러다 기어코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그래도 여기가 낙주인데.”

발음이 뭉개진 꿍얼거림이었다. 그 말만 간신히 내뱉고선 바로 후다닥 앞장서 걷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여기는 낙주다’, 그 한 마디에 무엇이 함축되어 있는지 안다. 선문세가인 연화산문이 비호하는 곳인 만큼 이 거리에 ‘심마’라는 단어를 붙이는 데엔 어폐가 있단 거겠지.

심마는 번뇌를 가져오는 상념이다. 마음 깊은 곳, 가장 내밀한 곳에 자리 잡게 두면, …그래, 인간으로 치면 주화입마가 되는 거다. 그리고 인간 이외의 이들에겐 ‘얽힘’이 된다.

서로의 천명이 얽혀 매듭지어지게 되고, 이렇게 만들어진 매듭은 그 자체가 하나의 시험이 된다.

때론 당사자들을 죽이기도 하고…, 때로는 ‘하늘에 정해진 천명’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깨달음을 주기도 하는 시험이 말이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이 시험, ‘얽힘’은 목숨을 건 도박인 셈이었다.

‘얽힘’은 인과를 뜻하고, 이는 그 자체로 천라지망인지라, ‘매듭’을 풀어낸다는 행위 자체가 천라지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의 기회를 상징하니 잘만 한다면야…….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겠지.’

……우사가 왜 심마로써 내 앞에 나타났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아까도 내 곁을 스쳐 지나갔었고.

혹시 내 주변을 맴돌고 있는 건 아니겠지?

퍼뜩 든 의심에 눈썹을 찡그렸다.

곤륜산에서의 모습을 보자면 아주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이 정도로 속단하는 건 좀 과하다.

‘…뭐, 일단 두고 볼까.’

진상이 어떨지는 차차 두고 보면 알게 될 일이다.

나는 속에 미심쩍음을 품고선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

* * *

곤륜보다 아래 지역인 낙주는 봄이 더 이르게 찾아와 있었다. 추위가 한풀 꺾인 걸 보면 말이다.

개아무개, 무본의 안내를 받고 찾은 개방의 안가[安家]는 협곡 너머에 있었다.

협곡에 다다르기 위해선 길이 나지 않은 거친 산세를 지나야 했다.

이미 해가 진 터라 우리가 숲에 들어섰을 땐 어둠만 가득했다. 주변은 온통 나무로 빽빽했고, 어둠보다도 더 짙은 나무 그림자가 길 위로 새카맣게 드리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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