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호칭이라면-. 다른 연화도들은 그자를 ‘귀군[貴君]’이라고 부릅니다요.”
‘…귀군[貴君].’
“특징은?”
“아주 잘생긴 미남이라고 하던데, 그야말로 절세미인이라고,”
“…….”
“낙주에서 제일가는 미남인 연화경보다도 훨씬 잘생겼다던데…, 글쎄,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답니다요. 면사로 얼굴의 절반을 가렸다는데 어떻게 잘생긴 걸 안다는 건지. …막-, 잘생김이 면사를 뚫고 나오나?”
구시렁거리는 무본의 잡설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잠깐 상념에 잠겼다가 곧바로 빠져나왔다.
‘설마. …아니겠지.’
과한 생각일 거다.
나는 고개를 가볍게 흔들어 방금 떠오른 상념을 털어 버렸다.
“…어쨌든 ‘연화도’가 된다는 것은 이 낙주에 있어 큰 경사임에 틀림없겠습니다.”
이제 코앞으로 가까워진 연못 위 구름다리를 보며 말했다.
“예. 그렇고말고요! 안 그래도 이번에 연화도의 일원이 된 ‘칠이랑’이 조만간 큰 잔치를 열 거라고 소문이 자자합니다요! 간만에 배에 기름칠 좀 할 수 있는 거죠. 흐흐….”
“…흠.”
“아주 성대할 겁니다!”
잔치에서 먹을 생각만 해도 신나는지 무본이 시시덕댔다.
구름다리 바로 앞에 당도한 나는 그 위로 천천히 올라갔다. 심마의 환영을 봤던 그 구름다리다.
“……서로 간 결속력이 대단한 집단이니 모두가 축하하러 와 줄 테고…?”
“하이고- 분명 연화경까지 올 터인데- 당연한 말입지요.”
“아- 연화경.”
나는 입꼬리를 휘어 미소 지었다.
느린 걸음으로도 구름다리 정상은 꾸준히 가까워졌다.
“그날 대부분의 연화도들이 저 전각에 있을 거다, 라.”
“…선사님도 가실 생각이십니까요?”
무본이 물었다. 동시에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마침내 구름다리 정상에 다다랐다. 그 위에서 앞의 정경을 바라보았다.
“그날은 문을 개방할 테니 선사라면 누구나 술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을 겁니다요. 소인은 다른 거지들과 후문을 이용할 거라 마주치진 못하겠지만…. 어쨌든 오시렵니까요?”
“…내일, 그믐달이 뜨는 밤에 약속이 있습니다.”
가벼운 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약속이 맞으면 바로 낙주를 떠날 예정입니다.”
천천히 시선을 내리떠 아래에 일렁이는 호숫물을 보았다.
호수에 비치는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머리 위로 선회하고 있는 매 한 마리를 발견했다.
고개를 들어 매를 찾아 눈을 굴렸다. 희미하게 선기가 느껴지는 걸로 보아 선사들 사이에서 전령의 역할을 하는 새인 게 분명하다.
“허어- 그거 참으로 아쉽습니다요. 그러면 선사님께선 잔치에는 못 오시겠,”
“벌써부터 아쉬움을 논할 것 없습니다.”
매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무본의 말을 끊었다.
“약속이 깨지면 잔치에 갈 터이니.”
커다란 양 날개를 활짝 펼친 채 창공을 활공하고 있는 매를 향해 오른팔을 내밀었다. 그리고 가볍게 쥐고 있던 오른 주먹에 일순 힘을 줬다. 그 순간 보이지 않는 힘에 끌려 매가 내 팔 위로 안착했다.
놀라 뻣뻣하게 얼어붙어선 옴짝달싹도 않는 매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똑바로 시선이 마주침과 동시에 내게 정신을 장악당한 매의 동공이 커졌다. 두 눈이 새카맣게 물들며 마침내 안광을 잃었다. 술법의 일종인 정신지배술이었다.
아까보다 편한 자세로 자리를 잡는 매의 배를 살살 쓰다듬어 줬다. 왼손으로 매의 턱 안쪽을 쓰다듬다가 엄지로 부리를 스치듯 매만졌다.
매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예상대로라고 해야 할지.
이 매한테는 스스로 금제를 풀 능력이 없다. 그래서 내 지배하에 들어왔어도 전언[傳言]을 말하지 못하는 거다.
선사들이 쓰는 ‘전령새’들은 전부 다 선기에 의해서만 속에 품은 ‘전언’을 뱉어 낸다. 예외는 없다.
전령새에 걸린 금제 자체가 선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라 전언을 알아내려면 반드시 선기가 필요하다.
진기밖에 운기할 수 없는 나만으로는 안 된다. 이 상태에서 내가 기껏 할 수 있는 거라곤 매의 모가지를 꺾어 아무도 전언을 못 듣게 하는 것뿐이다.
“사부!”
연연이 나를 불렀다.
“음?”
매에게서 시선을 돌려 내려다본 연연은 상기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매가 신기한 눈치였다. 날 올려다보는 두 눈이 반짝거린다.
“가까이서 보고 싶어?”
“응!”
묻기 무섭게 연연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 왔다. 그에 나는 자세를 낮추며 매가 앉아 있는 오른팔을 연연의 눈높이까지 내렸다.
정신지배에 걸린 매는 내 팔을 붙들고 앉은 채 얌전히 있었다. 연연이 갑자기 얼굴을 들이밀어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연연은 매의 부리 끝에 제 콧등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서 매를 구경했다. 저렇게 지근거리여서야, 매의 눈밖에 보이지 않겠다 싶을 정도였다.
나는 연연이 웬만큼 구경했다 싶을 때쯤 다시 팔을 들어 아까의 위치로 올렸다.
“선생.”
그리고 무본을 불렀다.
그가 해 줘야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매의 부리를 손끝으로 한 번만 건드려 주겠습니까?”
“…부리 말입니까요?”
“선기를 담아서 살짝 건드려 주면 됩니다. 그러면 그걸로 선생과 나 사이의 빚은 끝입니다.”
“……끝. 끝이라면, 그 말은 이걸 마지막으로 완전히 끝이라는…! 그런 말씀이오?!”
반색하며 되물어오는 무본에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야 물론. 이후로 나와 선생 간에는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허어-”
“서로 각자 제 길을 가는 거지요.”
“그, 그런데 이거… 전령용 매 같은데…?”
무본이 말끝을 흐리며 힐끗 내 눈치를 살폈다. 주저하는 기색에 나는 옆으로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
그래서 하기 싫단 거냐는 의미를 담아 물끄러미 바라보자, 무본이 마구 손사래를 친다.
“아니, 아닙니다요! 그게 아니라…!”
횡설수설 말을 잇던 무본의 두 눈에 결의가 서린 건 다음 순간이었다. 무언가 결단을 내린 얼굴로 크게 숨을 들이켜더니,
“선사님!”
우렁찬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이어서 무본의 목울대가 꿀꺽 울렸다.
“?”
뭐 하자는 건가 싶어서 일단 지켜봤다.
무본은 내가 보는 앞에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양팔을 휘젓는 동작은 얼핏 보기엔 체술 같았는데, 묘하게 움츠러들어 있어 어설픈 맨손체조 같기도 한 모양새였다. 우스꽝스런 모습이었지만 별 감흥은 일지 않았다.
그때 무본이 돌연 넘어지는 시늉을 했다.
“어익후-!”
어색하기 그지없는 비명 소리와 함께 무본의 팔이 내 쪽으로 휘둘러졌다. 나는 그 한순간의 궤적을 처음부터 끝까지 눈으로 좇으며 피하지 않았다.
선기를 품은 무본의 손끝이 매의 부리를 정확히 스쳤다. 그리고 곧장 휘둘렀던 팔을 잽싸게 회수하며 내게 공수 자세를 취했다.
“만남에 이별이 뒤따르는 건 세상의 이치이니, 아쉬움은 남기지 않겠소이다…!”
냉큼 그 말만 남기곤 후다닥 돌아서서 줄행랑을 쳤다.
나는 무본의 뒤통수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 모든 게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선기에 반응한 매가 미처 부리를 벌리기도 전이었다.
그야말로 아주 인상적인 처세술이었다. 어떻게든 이 일과 엮이지 않겠단 의지가 아주 분명히 전해져 왔다.
나는 순식간에 멀어진 무본의 뒷모습을 보며 실소를 흘렸다. 그러곤 매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선기는 전령새의 부리를 열리게 할 뿐, 그 안에 담긴 전령을 알아내려면 부리 안쪽에 그려진 고유의 암호문을 풀어야 한다.
나는 매의 부리 안쪽을 힐끗 들여다봤다. 그저 그런 술식의 법진이었다. 어쩌면 생각보다 별거 아닌 전언일 수도 있겠다.
뭐, 일단 한 번 들어나 볼까.
나는 왼손의 검지와 중지만 펼쳐 암호문을 향해 겨눴다.
손가락 끝에 고인 진기가 줄기줄기 뻗치며 허공에서 저들끼리 이지러지고 흩어지며 섞이길 반복했다.
허공의 진력이 파훼문(암호문을 푸는 술식)으로 완성되기까지는 숨 한 번 고를 시간이면 충분했다.
완성된 파훼문이 암호문이 있을 매의 부리 안쪽으로 들어가기 직전,
딱-!
매의 부리가 닫혔다.
선력이 아닌, 순수 힘으로 닫힌 거였다.
매의 부리를 잡고 있는 검지와 엄지를 따라 시선을 위로 올렸다. 길고 곧은 손가락과 흰 손등에 이어 검은 소맷자락 아래로 드러난 탄탄한 팔까지.
쭉 시선을 올려 어느새 내 곁에 서 있는 심마를 보았다.
“이건 나한테 온 전령이오.”
심마가 나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심마.”
나직이 입을 달싹여 그를 불렀다.
언제부터 내 주변에 있었던 거지? 무본과 나눈 문답은 어디까지 들었을까.
내가 물끄러미 노려보고 있으니 심마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점점 짙어진다.
나는 왼손을 들어 매의 부리를 쥔 심마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이제는 내 매야.”
그만 놓고 꺼지라는 눈빛으로 쏘아보며 말했다.
“이게 왜,”
“내 손에 들어왔으니 내 매지.”
심마의 말을 가차 없이 끊으며 말했다. 동시에 손목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우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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