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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사형입니다-117화 (117/141)

<117화>

우득-

무언가가 부러지는 소리 같은 게 났지만 애써 무시했다. 손아귀 힘만 티 나지 않게 슬쩍 풀었다.

“…손수건은 찢어 버렸고, 고약은 버리고 갔으면서 이건 당신 거라고?”

“그래.”

길게 생각하지 않고 곧바로 대꾸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심마가 곧장 반박해 올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들려온 건 예상외의 반문이었다.

“이 매가 마음에 들어?”

심마가 내게 물었다.

순간 잠깐 멈칫했다. 순순히 이 매를 주겠다는 건가 싶을 때, 심마가 미소 지으며 이어 말했다.

“그럼 가져가. 이 안에 담긴 전언까지 전부 다.”

찰나의 순간, 매의 부리를 잡고 있는 심마의 손끝에서 선기가 반짝 점멸했다. 암호문을 파훼해 버린 것이다.

이어, 매에게서 작은 법진 하나가 스며 나와 허공에 떠올랐다. 매가 속에 품고 있던 전언이 법진의 형식을 띠고 있었던 거다.

기껏해야 전음이나 들려올 줄 알았는데…!

일순 낭패감을 느꼈다.

전음이 아닌 법진이라니. 20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구나. 세월의 흐름에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며, 제멋대로 발현되려는 법진부터 멈추려 했다.

오른팔에는 매가 앉아 있으니 심마의 손목을 잡고 있던 왼손을 쓰려고 손에 주고 있던 힘을 풀었다.

“읏.”

그런데 그때 심마가 작게 신음을 흘렸다. 살짝 놓은 내 손 아래로 보이는 심마의 손목은 붉었다. 내 손 모양대로 붉게 자국이 남은 거다.

척 봐도 몹시 아파 보였다. 나는 멈칫하며 두 눈만 깜박였다. 심마의 손목을 완전히 놓지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다시 잡지도 않은 채 법진 발현을 멈출 시간을 날려 버렸다.

마침내 법진이 완전히 발현되었다. 응축되어 있던 선력이 술법을 발현시켰다. 그 아래에서 심마는 오직 나만을 바라보았다.

“이 전령새는 급한 일이 있을 때만 쓰이는 거야.”

내게 말하는 심마의 눈매가 미묘한 호선을 그린다.

“그래서 상대를 소환하는 법진이 각인되어 있지.”

“너…, 다 알고서 나한테…!”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같이 가 줘. 나 손목도 부러졌어.”

“어차피 금방 나을 거잖아!”

“내가?”

아닌 척 반문하는 심마의 가증스러움에 살짝 인상을 썼다.

그 경이로운 회복력은, 11년 전, 사해필성으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두 눈으로 똑똑히 봐 잘 알고 있다.

당시, 그는 남소위한테서 입은 검상이 아프다고 했고, 나는 그 말에 상처를 확인하려고 직접 웃옷을 벗겼었다. 그리고 그때 본 상처는 이미 거의 아물어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굉장한 회복력이었다.

나는 심마의 손목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심마는 여전히 나만 보았다.

“나는 아니야.”

나직이 말하는 심마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팔 위에 앉아 있던 매가 푸드덕대며 날아갔다. 암호문이 파훼되며 정신지배술도 같이 풀린 것이다.

이제 심마와 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심마를 마주 보며 두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쉽게 다치고, 빠르게 낫지 않아. 나약하기가 유리 같은 몸이지.”

‘…헛소리하긴.’

속으로 중얼거리며 심마에게서 시선을 떼 주변으로 눈을 굴렸다.

처음엔 마주한 시선을 피할 목적으로 그런 거였는데, 주위를 보다 보니 잊고 있던 게 생각났다.

‘연연…!’

아차 하며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앞에 서 있는 심마를 한쪽 팔로 거칠게 밀치며 사방을 크게 둘러봤다. 주변은 어느새 숲이었다. 심마에게 정신이 팔려 주위 경관이 달라진 것도 모르고 있었다.

다급히 주변을 훑어보다가 무작정 앞으로 뛰어나가려 했다.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오로지 연연을 찾아야 한단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날 심마가 붙잡았다. 내 팔목을 잡은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그리고 곧장 심마를 돌아봤다.

“연연은 어디에 있어?”

격앙된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그대로 토해 냈다.

“아. 그 제자?”

“그래!”

대수롭잖게 반응하는 심마에 더 열을 냈다.

“그거라면 아까 거기에 있을 거야. 구름다리 위.”

“같이 옮겨 온 거 아니었어?!”

“왜? 내가 같이 가자고 한 건 당신이야.”

“…….”

나는 입을 다문 채 심마를 노려봤다. 더 말을 섞을 필요 없다. 소매 아래 두 손을 꽉 주먹 쥐었다가 불시에 심마를 향해 날렸다. 심마는 뒤로 조금 몸을 물려 내 주먹을 피했다.

그래, 피할 줄 알았다.

나는 주먹을 휘두르던 힘을 이용해 그대로 몸을 빙글 돌리며 돌려차기를 했다.

퍽-!

이 또한 심마의 한 손에 막혔지만, 타격이 들어간 게 보였다.

나는 바로 심마를 향해 팔을 쭉 뻗었다.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내력을 담은 장풍이었다. 내 손바닥이 심마의 가슴을 가볍게 밀치는 순간, 기[氣]가 폭발하며 기운의 파동이 원형으로 넓게 퍼졌다.

퍼억-!!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고 힘껏 날린 장력이었다.

천룡이라면 이 정도는 괜찮을 거란 생각이 머리 한편에 있었다.

심마는 피를 한 움큼 토하며 다섯 장(일 장은 3m)을 날아가 나무에 세게 부딪쳤다.

비틀거리며 선 심마의 피에 젖은 옷깃을 잠시간 응시하다가, 냉랭히 돌아섰다. 하지만 마음속까진 완전히 냉정해질 수 없었다. 바로 걸음을 떼지 못하고 심마에게서 등을 진 채 잠시 서 있었다.

주변의 나무들에서 떨어진 나뭇잎과 꽃잎들이 사방으로 나부껴 시야를 가렸다.

“…잠깐만. …가지 마.”

등 뒤로 심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 붙잡는 그 말에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어서 연연에게 가봐야 한다.

마음을 다잡고 걸음을 떼려는 그때,

풀썩-

무언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나는 잠시 갈등하다가 슬그머니 뒤를 돌아봤다.

심마가 쓰러져 있었다.

“…!”

앞뒤 따질 겨를 없이 심마에게 달려갔다.

땅 위로 드러난 나무뿌리에 기댄 채 쓰러져 있는 심마는 의식이 없어 보였다. 얼굴은 창백했고 면사 아래로는 각혈한 흔적이 뚜렷했다.

새하얗게 질린 낯빛과 옷깃의 핏자국이 극단적인 대비를 이루었다.

두 손으로 심마의 양어깨를 잡아 일으켜 앉혔다. 그러곤 나무에 등을 기대게 한 채 잠시간 상태를 살폈다. 맥도 짚어 보고 감긴 눈도 까뒤집어 봤다.

가슴에 귀까지 대본 뒤에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예상외로 내상이 심각했지만, 죽을 정도까진 아니었다.

의식을 잃은 심마의 얼굴을 가까이서 들여다봤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알아서 낫겠지.

“…….”

나는 이제 그만 가야겠다. 너무 시간을 지체했다.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심마가 한 손으로 내 손을 잡아 왔다.

기절한 상태라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 같았다. 나는 내게 닿은 심마의 손을 조심스럽게 떼어 냈다.

그리고 더는 지체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연에게 가기 위해 심마에게서 등을 지고 돌아섰다가,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라는 생각에 심마를 돌아봤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의식을 잃은 채 나무에 기대앉아 있는 심마의 눈가 아래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뺨을 타고 흐른 눈물이 면사에 스미는 걸 망연히 지켜보았다.

“…….”

심마는 울고 있었다.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가 심마에게로 향했다. 스스로 벌린 거리를 다시 좁히는 걸음은 무겁고 굼떴다.

나는 심마의 곁에 한쪽 무릎을 굽히고 천천히 앉았다.

…내가 너를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너를 어떻게 해야 해.

“…….”

고민은 일단 옆으로 치워 두고 심마를 향해 손을 뻗었다. 축 늘어진 한쪽 팔부터 우선 내 어깨 위로 걸치고, 그다음에 심마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러곤 잠시 코끝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내게 기대 오는 심마를 힐끗 봤다가 다리에 힘을 줘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신을 잃은 심마는 축 늘어져선 자꾸만 미끄러지려 했다. 별수 없이 심마의 허리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줬다. 그리고 이리저리 자세를 잡다 보니 좀 전보단 안정적인 부축이 되었다.

“…하여간. 왜 울어 가지고.”

입안으로 투덜대며 빠르게 내원근을 운기했다. 아까 심마한테 장풍을 날렸을 때 퍼진 진기를 느꼈는지, 선사들이 이 근방을 배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환술을 이용해 지각을 어지럽힌 덕에 아직 여기까진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것도 언제까지일지 모른다. …그리고 서둘러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도 있고 말이다.

하여튼, 연연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가만두지 않을 거다.

곁눈으로 심마를 흘겨본 뒤 바로 법진을 구현했다. 발아래에 적당한 크기로 생겨난 법진에서 진기가 흘렀다.

진기가 법진의 술식을 덧그리듯 그 위로 돌며 술법이 발현되었다. 연연에게 붙여 둔 ‘결정’을 좌표로 한 순간이동술이었다.

다음 순간, 우리는 아까의 구름다리 위에 있었다. 변하지 않은 장소에 안도의 숨을 내쉰 것도 잠시,

“하이고- 내가 이번이 삼재던가. 사이비[似而非] 피하니 웬…. 뭘 봐, 이놈아. 그래, 네 사부 이야기하는 거 맞…….”

바로 코앞에서 들려오는 한탄 소리가 낯익었다.

한 박자 뒤늦게 날 발견한 상대가 두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뜬다. 나는 그런 무본을 떨떠름히 봤다. 그리고 그 옆의 연연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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