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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사형입니다-118화 (118/141)

<118화>

‘…왜 둘이 같이 있는 거지?’

속으로 생각하며 한쪽 눈썹을 까닥 치켜올리는 것과 동시에 무본이 넙죽 공수를 해 왔다.

“선사님…!”

날 부르며 훅 가까워지는 무본에 인상을 썼다.

“걸개. 왜 여기 있는 거야?”

“…예?”

“우리의 인연은 다 끝나지 않았나?”

홀가분하게 떠나던 뒤통수가 아직 눈에 선한데 왜 여기 있냔 말이다. 그것도 연연과 같이.

“그게…. 저…, 그런데 호칭이…?”

“이전 인연이 끝나면 그때의 호칭도 끝난 거지.”

“……그렇게 확실히 끝나는 건 줄은 몰랐습니다요.”

어색한 표정을 짓는 무본을 싸늘히 쳐다봤다. 무본의 옆에서 연못을 구경하고 있던 연연은 진작에 내 옆으로 와 섰다.

“사부~”

내가 부축하고 있는 심마가 신경 쓰이는지 연연이 나를 불렀다. …그리고 내가 방금 사라졌던 것에 대해서도 묻고 싶은 눈치이고.

“아니, 아니지. 확실히 끝났다곤 볼 순 없지요. 뭔가 이상하다 했더니만 두 분이서 아는 사이라면…, 헛! 역시 둘이서 짜고선 소인을 함정에 빠트린 거,”

“뭐?”

무본의 말을 도중에 끊으며 말했다. 그에 무본이 씩씩대며 바로 다시 입을 연다.

“소, 소인을 겁박해서…, 연화도의 전서용 매를 건드렸단 걸 빌미로 삼아 이렇게 묶어 놓았잖소! 소인한테는 교묘하게 애 보기를 시켜 놓고선 두 분이서는 그동안 어디에 가 있었습니까요? 인연이 끝이면 그대로 쭉 끝일 것이지 왜 소인을 가만두지 않는 것이오? 약속은 천금과 같은 것인데, 선사님이 한 번 내뱉은 약속을 이렇게 어겨도 되는 것이오? 허-! 이것 좀 보시구려…!”

말을 잇던 무본이 한 손을 들어 제 왼눈을 가리켰다. 무본의 손짓을 따라 본 그의 왼눈에는 작은 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보아하니 추적술과 그 외 여타 술식을 섞어 쓴 것 같았다.

작은 법진에 저만한 술식들을 다 담다니. 정교한 솜씨다.

“이 눈의 시야에서 자제분이 일각(15분)만 벗어나도 그대로 눈알이 생으로 뽑혀 나가게 만들다니! 귀신도 이리 악독하진 않을 것이외다…! 이래 놓고 애 잘 보고 있으란 말을 하는 건 대체…!”

“…….”

설움을 토로하는 무본을 가만히 지켜봤다. 내 시선 속에서 무본의 기세가 바람 앞에 놓인 등불처럼 휘청였다.

“……대체 말입니다요….”

그리고 곧 완전히 꺼졌다.

나는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대략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겠다.

심마는 처음부터 작정하고 있었던 거였다.

일단 여기서 계속 이럴 것 없이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오른팔로는 심마를 부축하고 왼손으로는 연연과 손을 맞잡았다.

어디로 갈지에 대한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처음부터 생각해 둔 곳은 거기뿐이었다. 초옥[草屋].

순간이동술을 펼치려는데 상황의 이상함을 느꼈는지 무본이 내게 바짝 다가온다.

“하이고-, 선사님! 저, 제 눈에 법진부터 좀 어떻게 해 주십시오…!”

퍽 간절하게 매달려 오는 무본을 시큰둥하게 내려다봤다. 내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불길함을 직감한 무본의 면상이 파리해진다.

그에 나는 보란 듯이 한쪽 입꼬리를 올려 피식 비소를 지었다.

“선사?”

이죽이며 반문하자 무본의 동공이 마구 떨린다. 나는 그 눈을 똑바로 직시하며 똑똑히 들었던 무본의 말을 그대로 되돌려줬다.

“사이비가 아니라?”

이제는 무본의 손발까지 벌벌 떨렸다.

“선사님!!”

무본이 아주 발악을 하며 나를 불러댄다. 부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넙죽 엎드리는 모습에 설핏 웃음 지었다. 같잖다.

뭐를 노린 노림수인지 뻔히 보인다. 내가 ‘선사’라는 호칭에 신경 쓰는 만큼 세간의 시선도 신경 쓰리라 믿고 벌이는 짓이겠지.

아주 틀린 추측은 아니다. 지금만큼은 주위의 이목을 끌고 싶지 않으니까.

무본이 상황을 더 번거롭게 만들기 전에 허공섭물을 이용해 무본을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허공에 멱살이 잡힌 채 끌려온 무본이 작게 숨을 들이 삼킨다.

“히익-!”

“…….”

그런 무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다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왜 네 법진을 어떻게 해 줘야 하지?”

내 물음에 무본의 입가가 파르르 떨린다. 무본은 나를 잠시 쳐다보다가 마지막 발악인지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그, 그야…! 이 법진은 선사님 친우분께서 하신 것 아닙니까요…?! 소인은 무고한대, 선사님 친우분이…!”

…친우?

지금 나와 심마를 한데 엮어서 친우라고 한 건가?

무본의 말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잠시간 생각하다, 곧 무본을 싸늘히 노려봤다.

“…선사님….”

무본이 졸도할 것 같은 얼굴로 날 불렀다. 그를 얼마간 바라보다가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눈 두 개 다 필요해?”

무본이 마구 고개를 내젓는다.

아주 적극적인 모습에 나는 눈을 살짝 내리떴다가, 이내 다시 무본을 보며 느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곤 무본의 귓가에 입을 대고 짤막하게 속삭였다.

“그럼 꺼져.”

축객령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허공섭물로 잡고 있던 무본의 멱살을 놓았다. 그리고 더 지체 없이 순간이동술을 발현했다.

내가 이제 떠나려 한다는 걸 알아챘는지, 거기에 용기를 얻은 무본이 내게 삿대질을 한 건 찰나의 순간이었다.

“이…, 이 악귀 같은 놈들아! 오늘의 원한은 잊지 않고,”

이어 울분에 받친 고함이 들려왔고,

“내 백배, 천배, 만 배로 갚아-”

그건 순간이동술로 주변 풍경이 초옥 앞마당으로 바뀌었음에도 계속 이어졌다.

여전히 내 앞에 서서 삿대질하고 있는 무본을 보았다. 나를 가리키고 있는 무본의 손끝이 슬그머니 오무려진다.

“…어? …가, 갚지 않고 당연히 바로 잊겠습니다요…? 허… 허허허….”

무본도 이 상황이 퍽 당황스러운지 헛소리를 지껄여댔다.

나는 무본에게서 천천히 시선을 돌려 그의 옷자락을 야무지게 붙잡고 있는 연연의 작은 손을 보았다. 연연이 무본을 잡은 탓에 술법의 영향력이 무본에게까지 끼친 거였다.

“연연.”

짤막하게 연연을 부르며 시선을 올렸다.

마주 본 연연은 입을 꾹 다문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묘한 고집이 서린 눈이었다.

…얘가 왜 이러지? 설마 그새 거지 놈이랑 정이 든 건 아닐 테고.

“고…, 공자…!”

상황을 살피던 무본이 제 살길을 찾아 허겁지겁 연연의 등 뒤로 몸을 숨겼다. 물론 덩치 차가 있어서 숨으려야 숨겨지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이리되니 연연이 나로부터 무본을 보호해 주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

나는 연연 등 뒤의 무본을 힐끗 보았다가 그대로 연연과 맞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연연은 내 손을 다시 맞잡아오지 않았다. 무본의 앞에 선 채 날 물끄러미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런 연연을 뒤로하고 심마를 부축한 채 초옥 안으로 들어갔다.

“소인은 속에 뭔가를 담아 두는 성격이 아닙니다요…!”

등 뒤로 들려오는 무본의 외침은 무시했다.

나는 곧장 주방을 지나쳐 안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장이 한 겹 둘러진 침상에 심마를 내려놓고 잠시간 팔짱을 끼고 서선 고민하다가, 다시 손을 뻗어 심마를 똑바로 눕혔다.

심마의 목 아래에 베개도 받쳐 주고 눈가에 남은 눈물 자국도 손으로 닦아 줬다. 그다음에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으로 목가의 맥을 다시금 짚어 보았다. 겉보기에 이상은 없었다.

맥을 짚었던 손을 아래로 내려 심마의 가슴을 짚었다. 내원근의 상태를 면밀하게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손바닥으로 가슴을 지그시 내리누르며 진기를 조금 집어넣었다. 만약 뭔가 문제가 발견된다면 여기에 둘 게 아니라 선문[門]에 던져 두고 와야 한다.

“쿨럭-”

몸에 진기가 들어오니 그 반발 작용으로 심마가 다시금 피를 토했다. 가뜩이나 피 묻은 면사가 그것 때문에 완전히 젖어서 그의 얼굴에 달라붙었다.

불편한지 심마가 끙끙 앓기 시작했다.

“으… 으음….”

잠시 뒤척이는 건가 싶더니, 심마가 불시에 손을 들어 제 얼굴로 가져갔다. 그를 지켜보고 있던 나는 늦지 않게 팔을 뻗어 그런 심마의 손을 잡아 내리눌렀다.

한 손이 막히자 심마가 연이어 다른 손을 든다. 그 손도 재빨리 잡아선 침상 위로 내리눌렀다.

심마의 두 손을 각각 양손으로 잡아 누른 터라, 별수 없이 심마의 위로 반쯤 올라탄 자세가 되어 버렸다.

위에서 심마를 내려다봤다. 내 머리카락이 심마의 얼굴 옆으로 길게 흘러내렸다.

“…….”

묘한 적막 속에서 나는 천천히 눈을 내리떴다. 피에 젖은 면사가 심마의 얼굴에 달라붙어, 그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높고 곧은 콧대 아래의 입매를 응시하다가, 초옥 안으로 들어오는 두 기척에 정신을 차렸다.

도로 상체를 일으키며 심마의 손목을 잡고 있던 손아귀의 힘을 천천히 풀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양손을 놓으며 심마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면사를 휙- 잡아챘다.

면사가 치워지고 드러난 맨얼굴은 내 예상대로였다.

“…너도, 나도, 언제까지 스스로를 속일 수 있을지 보자.”

낮게 중얼거리며 몸을 완전히 일으켜 세웠다. 그러곤 바로 옆 침상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네가 다른 사람처럼 다가온다면, 나도 널 다른 사람인 것처럼 대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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