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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사형입니다-124화 (124/141)

<124화>

“예?”

무본이 당황한 기색이 가득한 목소리로 허둥대더니,

“하이고-, 그게 무슨 무서운 소리를…! 아닙니다요! 일단 끝까지 들어보시오. 아직 소인의 말은 안 끝났으니, 어허, 뭐든 끝까지 들어야 하는 법입니다요…!”

마구 말을 뱉어낸다.

내 쪽을 과하게 흘끗대는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척, 무표정한 낯으로 연연의 머리를 도로 묶어 주었다. 원래의 고수머리와 달리 이번에는 양 갈래로 나눠 만두 머리를 해줬다.

이번엔 너무 당기지 않게 약간 헐렁하게 묶었다. 그 바람에 만두가 좀 푹 퍼진 모양이 되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화관이 머리에 걸리지 않는다.

높이며 크기며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는 연연의 만두를 보았다. …이렇게 보니 만두라기보단 강아지 귀 모양에 더 가깝다. 쫑긋 선 귀가 아닌 덮여 있는 귀 말이다.

“흠흠. …하지만 공자, 그런데 말입니다요.”

헛기침과 함께 무본은 내뱉은 말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는 것 또한 정[情]입니다요. 거기서 우연이란 것이 생겨나고, 인연이 빚어지며 마침내 운명으로 완성되는 것이지요. 운명 안의 수많은 정[情]. 그것들이 얽히고 섥혀 은원을 낳고, 그 모든 은원들이 삶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을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래도 무엇도 아쉽지 않구나.’

환청의 마지막 말이 뇌리에 울려 퍼졌다.

나는 무본의 말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천천히 시선을 돌려 무본을 보았다.

“그러니 사제지간에 정이 있다는 건, 두 분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지요. 그런 것입니다요, 공자.”

‘함께.’

그 단어를 속으로 되뇌며 곁눈으로 힐끔 연연을 보았다. 과연, ‘함께’란 단어가 마음에 들었는지 연연의 얼굴이 밝다.

나는 다시 시선을 돌려 무본을 보았다. 기다렸단 듯 눈이 마주쳤다. 무본이 비굴한 웃음을 흘리며 양손을 제 바지춤에 쓱쓱 비빈다. 손에 땀이라도 찬 모양이다.

“헤헤…. 어떠셨습니까요, 선사님?”

무본이 내게 은근히 물어왔다.

지금 나보고 감상평이라도 해 달라는 건가. 나는 피식 웃으며 도로 시선을 거뒀다. 연연은 바뀐 머리가 신기한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어 댔다.

“…왼쪽 눈의 것과 같은 법진을 혀에 새겨 줄까 했는데,”

“예??”

“말하는 것을 좋아하니 일각(15분)이라도 말하지 않으면 혀가 그대로 안쪽으로 말리는 것으로. -어떤가?”

시선을 먼 풍경에 둔 채 대수롭잖게 말을 이었다.

“그, 그러면 죽습니다요…!”

무본이 기겁하며 외쳤다. 그래도 목소리는 한껏 낮춰 연연의 관심을 과히 끌진 않았다.

“그렇겠지.”

가볍게 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면서 눈만 옆으로 굴려 무본을 보았다. 무본은 질린 낯으로 엉거주춤 몸을 뒤로 빼고 있었다.

나는 이어 고개까지 무본에게로 비스듬히 돌리며 양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

“벌써부터 죽지 마, 무본.”

낮게 속삭이듯 말했다.

무본이 두 눈을 크게 뜨며 숨을 깊이 들이켠다. 이어,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무본이 곧 목을 움츠린다.

“…예….”

머잖아 무본이 답했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였다.

“다신 죽을 짓 않겠습, 아니, 아예 입을 다물고,”

“아니.”

한 손을 내저으며 무본의 말을 도중에 잘라 버렸다.

“그건 안 돼.”

“…예?”

“네 놈의 쓸모는 그 혀에 있으니까.”

“…혀 말입니까요?”

의아해하며 반문하는 무본을 말없이 미소로만 응대해 주자, 무본의 얼굴이 점점 울상이 되어 간다. 그도 그럴 것이 외줄타기나 마찬가지인 신세가 되었으니.

할 말이 많은 얼굴로 붕어마냥 입을 뻐금대던 무본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어깨가 아래로 축 처졌다.

“…소인은 제 명에 죽고 싶습니다요.”

아니, 아무 말도 못 하진 않았다. 기어코 한 마디 내뱉곤 내 눈치를 흘끗 본다.

역시, 이래야 걸개 놈이지.

시답잖다 생각하며 나는 짐짓 자애롭게 웃었다.

“바라는 게 그거라면 못 들어줄 것도 없지.”

부드러운 어투로 대꾸하며 걸개 무본을 향해 내 한 손을 펼쳐 보였다. 힘을 준 손의 손등에 뼈대가 도드라진다.

처음엔 무본의 얼굴을 가렸던 손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 무본의 목가를 얼핏 가렸다. 그 상태로 느리게 팔을 뻗었다.

무본은 불안한 얼굴로 눈을 굴려댔다. 섣불리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있는 무본의 목에 닿기 직전, 손을 멈추었다.

제 목 가까이에서 멈춘 내 손끝을 보곤 무본이 얼핏 안도감을 내비친다. 그 순간 무본의 옷깃이 내 쪽으로 훅 당겨졌다. 허공섭물이었다.

다음 순간, 무본의 목은 내 손 안에 들어와 있었다.

“-히익!”

아직 조르지도 않았는데 무본이 목 졸린 소리를 낸다. 그에 난 한쪽 입꼬리를 삐죽 올려 비소했다.

“이제부터는 내가 네 명[命, 목숨]이다.”

이건 통보였다.

“네 놈의 명줄을 내가 쥐었으니, 이제부터는 내가 네 천명인 셈이지.”

무본의 목을 가벼이 움켜쥐는 시늉을 했다가 빠르게 거둬선 옷깃을 정돈해 주었다.

“이로써 네 놈의 운명이 정해졌는데, 아까 한 말에 따르면 우리 사이에도 정[情]이 있게 되는 셈인 건가?”

“…딸꾹. 딸꾹!”

“은원[恩怨]이란 이름의 그 정[情]말이야. …하이고야-.”

무본의 입버릇을 따라 하며 손을 완전히 거뒀다. 무본의 딸꾹질이 좀처럼 그치지 않는다.

문득 모든 게 지겨워졌다.

…심마는 언제 돌아오는 거지? 언제까지고 여기서 시답잖게 시간을 죽일 순 없다.

나는 느른히 시선을 내리깔아 손톱 끝을 매만졌다. 아까 무본의 목을 스치며 피를 봤다.

손톱 끝에 묻은 무본의 피를 성가시게 보다가 삼매진화를 발현했다.

진기가 운기되며 손끝에서 불꽃이 일었다. 무본의 피가 불에 타 버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손에 남은 그을음을 보며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엄지로 그을음이 남은 손끝을 문지르며 느리게 시선을 들었다. 어느새 딸꾹질을 그친 무본이 한 손으로 제 목을 감싸 쥐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눈을 굴려 곁눈으로 연연을 힐끔 보았다.

연연은 나를 보고 있었다. 다시 천천히 시선을 돌려 무본을 보았다.

삼매진화는 기[氣]를 태워 일으키는 불꽃인 만큼 내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건 즉 기의 성질이 내재되어 있다는 뜻이다.

진기와 선기는 서로 상충된다는 그 성질이 말이다. 그렇기에 진기와 선기는 서로를 태우면 그을음이 남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그을음이 남는 것은 아니다. 그것도 본연의 격이 상대에게 비벼볼 정도가 될 때의 이야기다.

…그런데 지금 내 손에 그을음이 남았다.

나는 한쪽 입꼬리 끝을 삐딱하게 휘어 올렸다.

저 걸개 놈이 변용술을 쓰고 있단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저 개방들 하는 짓거리가 다 그러하니 그냥 넘겼을 뿐. 그런데 설마하니 저 인면피 아래에 더한 걸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눈앞에 저건 신선, 혹은 그에 준하는 무언가다.

귀족의 정점에 선 내게 그을음을 남길 정도면 단순히 선인으로 그치진 않을 테니까.

나는 내게 남은 그을음을 마저 전부 태워 버렸다.

서로의 격이 비슷할진 몰라도 힘의 고강함에선 차원이 다르다.

이제 내 손에는 남은 그을음따윈 없었다. 나는 다른 한쪽 입꼬리도 대칭으로 싱긋 올렸다.

묘한 침묵이 흘렀다. 연연은 나를 보고, 나는 무본을 보고, 무본은 나와 연연을 번갈아 보는 대치 속에서 흐르는 공기가 차츰 무거워진다. 그리고 그럴수록 점점 머릿속이 차갑게 식으며 심기가 뒤틀렸다.

갑자기 말문이 튼 연연과 연연이 감싸고 도는 저것. …그리고 연연에게서 본 그 환영과 환청들.

어디서부터…, 아니, 언제부터였을까.

둘 사이에 있을 모종의 인연이 무엇이든, 그것보다는 내가 연연의 일에 애초부터 소외되어 있었단 것이 더 마음을 휘저었다. 다시 사제지간이 되었어도 우리는 여전한 거다.

그가 진정 관계를 맺은 건 내가 아니다.

바로 지금처럼. 결국 연연이 말문을 튼 것도 무본에 의해서고, 그 첫마디도 무본을 감싸는 말이었다. …나는 늘 한 발자국 떨어져 있다.

‘연연. 이게 네 우연이고 인연이야?’

속으로 중얼거리며 무본을 싸늘히 주시했다.

이제 보니 정이 두터운 건 우리 사제지간이 아니라, 너와 저 걸개였군. 지금껏 둘이 함께 더불어 있었던 걸 보니.

내가 손끝을 까닥 움직인 순간, 동시에 연연의 몸이 움찔거렸다. 날 경계하며 예의주시하고 있는 거다. 저 걸개를 또다시 감싸 주려고.

“…….”

피식 실소하며 손에 힘을 풀었다. 그리고 머잖아 표정을 굳히며 입가에 짓고 있던 미소도 지웠다. 더는 웃을 수 없었다.

‘…네 모든 정을 내게 주었다고?’

속으로 짧게 읊조리며 이어 바로 부정했다.

‘아니.’

‘아니야.’

연거푸 중얼거리며 소매 아래의 한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단번에 손을 썼다. 횡으로 휘두른 팔의 긴 소맷자락이 크게 펄럭이며 거기서 인 바람에 내력이 실렸다. 그리고 기습적으로 무본을 겨냥한 손끝에는 살기가 맺혀 있었다.

바람은 돌풍이 되고, 내 손에 인 살기는 폭발적으로 쏘아져 나갔다.

무본의 곁에 연연이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차피 연연에겐 비껴가게 했기 때문이다.

……늘 이런 식이지. 당신한테 난 아무것도 아닌데도.

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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