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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사형입니다-138화 (138/141)

<138화>

어검을 해 단번에 호수를 건너 누각 맨 위층에 도착했다.

약속대로 누각에 왔다.

내가 먼저 검에서 내려서고 그다음에 심마가 내려섰다. 선검을 도로 패용한 뒤 잡고 있던 심마의 손목을 놓았다. 그러곤 전면의 풍경에 시선을 두었다.

가까이 드넓게 펼쳐진 숲과 아래의 넓은 호수, 그리고 선선한 바람까지. 아래쪽의 파초나무를 내려다봤다.

절경까진 아니지만 나쁘진 않다. 이게 심마가 나와 보고 싶었던 경관인 거지?

왠지 모를 감상이 든다.

딩-

그때 뒤에서 금의 현을 튕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누각에 칠현금이 놓여 있었지.

선뜻 돌아본 뒤에는 금을 앞에 둔 심마가 있었다. 정갈하게 앉아선 금 위에 두 손을 올려 둔 채 선선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진연.”

고개를 숙인 상태로 시선만 올려 나를 본다.

“어검을 태워 준 답례로 금을 연주할까 하는데, 어때?”

“…….”

나는 완전히 심마에게로 돌아서선 누각 난간에 비스듬히 몸을 기댔다.

“……할 줄 아는 연주가 있어?”

“듣고 싶은 거 있어?”

“…내가 듣고 싶어 할 것 같은 걸 연주해 봐.”

“하하하-”

내 말에 가벼운 웃음을 터트리며 심마가 다소곳이 눈을 내리깐다. 칠현금을 내려다보는 얼굴에 웃음기가 가시며 사뭇 진지해진다.

사락- 어깨 아래로 흘러내리는 심마의 검은 머리카락에 잠시 시선을 줬다가, 수려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 그 얼굴을 봤다.

딩-

그리고 금의 현을 튕기는 길고 가는 손가락을 보았다.

곧 맑고 투명한 선율이 아름답게 울려 퍼졌다. 구슬프면서도 때로는 격정적이고, 가끔은 다정한 연주 소리를 들으며 나는 고개를 돌려 등 뒤의 호수를 보았다.

미약하게 부는 바람에 소맷자락이 흔들린다.

다시 바라본 풍경은 그야말로 선경[仙境, 경치가 신비롭고 그윽한 곳]이었다.

나는 심마가 금을 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무겁게 응어리졌던 내 안에 그 금 연주가 쌓이며 내 속을 더 짓누른다.

참을 수 없어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풀리는 것은 응어리진 마음이고, 남는 것은 그의 금 연주다.

“…….”

결국 나는, …단 한순간도 너를 사랑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거야.

금 연주가 끝났을 무렵엔 나는 심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심마 또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낯익다.

원멸 이전이든 후든 너는 정말 한결같다. 나를 보는 눈, 내게 하는 말, 그리고 방금 한 연주.

…우사. 나는 역시 원멸 이전의 네가 내게 한 모든 짓을 용서할 수 없어. 하지만 정말로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었다면….

…부탁이야, 우사. 뭔가가 있었단 걸 내게 보여 줘.

네가 나를 배신하고 끝내 내 약지마저 잘라 간 그 모든 게, 내 감정을 농락하고 짓밟고 마지막까지 그런 유언을 남겨 내가 원멸을 하게 만든 그 모든 게…, 원멸 이전에는 너를 죽게 만들고, 원멸 이후엔 스승을 죽이고 끝낸 나 자신마저 죽인 내가 지금 이런 생을 사는 게…….

가슴 안에서 심마가 해 준 금 연주와 함께 눈물이 흐른다.

“마음에 들어?”

심마가 내게 물었다.

그에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번만큼은 절대 날 배신하지 마, 우사.’

“마음에 들어.”

내심은 숨기고 호탕하게 말한 뒤, 천천히 심마에게 다가가 그 옆에 앉았다.

“다른 건 없어?”

가부좌를 틀고 앉아선 오른 다리에 팔을 올린 채 턱을 괬다. 그 상태로 금 위에 올려진 심마의 두 손을 보았다.

곧 가타부타 말없이 심마의 손이 금 위에서 움직였다. 현을 튕기며 누르는 그 유려한 손짓을 가만히 응시하다 천천히 시선을 들어 심마를 보았다.

눈이 마주치고 심마가 웃었다.

* * *

호연루[好延]에서 일어선 건 해가 뉘엿뉘엿 지는 걸 보고서였다.

함께 첩산에서 내려가는데 심마가 느닷없이 저잣거리의 닭고기꼬치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 말에 아까 약속한 식사 대접이 생각났다. 그리고 또, 초옥에 먹을 게 없단 무본의 말도 떠올라 바로 저잣거리로 향했다.

저잣거리에 도착했을 땐 북소리와 함께 술[戌] 시(오후 7시에서 오후 9시까지의 시간) 임을 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거리는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곳곳에 널려 있는 환한 등불 아래 상인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낙주의 기풍은 여기 저잣거리, 그리고 저쪽의 장원[牆垣]. 이렇게 두 갈래로 갈라져 있지만, 나는 둘 중 낙주의 진면목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유로운 풍경 속에 선 심마는 즐거워 보였다. 미소가 입가와 눈꼬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진연, 이리 와.”

반보 앞장서서 걷던 심마가 근처의 좌판을 보곤 나를 손짓해 불렀다.

자욱한 연기와 맛있는 냄새만으로도 뭐를 파는 노점인지 알 수 있었다.

닭고기꼬치를 파는 노점이다. 그렇게 먹고 싶었나.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심마를 쫓아 그 옆에 나란히 섰다.

“매운맛이랑 소금 맛으로 하나씩 주시오.”

심마가 나서서 주문했다.

그때와 달리 이번엔 줄이 그다지 길지 않아 금방 닭꼬치를 받을 수 있었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닭꼬치 두 개가 심마의 손으로 옮겨 가는 걸 보며 전낭을 열어 값을 치렀다.

“여기. 매운맛이지?”

두 개 중 양념이 더 진해 보이는 닭꼬치를 내게 건네며 심마가 말했다.

…별로 먹을 생각은 없었는데.

그래도 주니 받아서 입에 물었다. 매콤한 향과 함께 감칠맛이 입안에 번진다.

음. 뭐, 맛있네.

파와 함께 고기를 한 입 더 빼 먹으며 우물거리다가 시선을 느끼곤 앞을 봤다. 심마가 웃음기가 담긴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 손에 쥐고 있는 제 몫의 닭꼬치엔 입도 대지 않은 채 나만 보고 있다.

뭘 보냐는 눈빛을 보내며 한쪽 눈썹을 추켜세우자, 그제야 내게서 시선을 떼며 본인 몫의 닭꼬치를 한 입 먹는다.

나란히 닭꼬치를 먹으며 저잣거리를 천천히 거닐었다. 주변의 번잡한 소음과 시야를 어지럽히는 홍등의 불빛이 소란하다.

거리에 비해 사람도 많고 물건들도 많으니 곁을 지나치는 행인과 어깨를 부딪치는 일은 예삿일이었다. 그런데도 불쾌하거나 거슬리지 않았다.

한 손에 반쯤 먹은 닭꼬치를 든 채 심마와 나란히 걷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맛있어?”

그새 자신의 몫을 다 먹은 심마가 물었다.

“응.”

가볍게 대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심마가 그런 날 물끄러미 보더니 입을 벌린다.

“아-.”

내 쪽으로 비스듬히 허리를 숙이며 작게 소리를 내는 그를 멀뚱히 봤다.

무슨 뜻으로 이러는 건지 바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머릿속이 고장 나며 덩달아 몸도 고장 난 것 같다. 나는 닭꼬치를 든 손을 머뭇대다가 어색하게 내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자 심마가 씩 웃는다. 반달로 휘어지는 눈매가 수려하다.

“안 줄 거야?”

장난스런 목소리엔 웃음기가 베여 있었다.

“…네 건 다 먹었잖아.”

잠시 멍하니 있다가 작은 목소리로 꿍얼대듯 말했다.

왜 갑자기 내 걸 달라는 거야?

혹시 닭꼬치가 더 먹고 싶은 건가?

문득 든 생각에 나는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인파에 가려져 노점이 어디 있는지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 걷진 않았으니 돌아가자면 금방 돌아갈 순 있을 거다.

“됐어.”

내 의중을 눈치챘는지 심마가 덥석 내 왼손을 잡아 오며 말했다. 얼떨결에 심마에게 잡힌 내 왼손을 내려다봤다.

“어차피 사도 하나 다 못 먹어.”

머리맡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다시 시선을 들어 심마를 보았다. 심마는 혀끝을 빼꼼 보이며 장난스럽게 미간을 구겼다.

“매운 건 익숙지 않거든. 그런데 당신이 맛있게 먹길래 그냥 궁금했어.”

“…….”

나는 먹다 만 내 닭꼬치로 시선을 돌렸다.

‘매운맛을 못 먹는 건 여전하네.’

잠시 고민하다가 꼬치에 꿰여 있는 닭고기를 심마의 입가에 대 줬다. 휘둥그렇게 떠진 심마의 눈을 마주하고 있자니 왠지 우스운 기분이 들어서 옅게 웃었다. 그러자 심마도 마주 웃으며 닭고기를 먹었다.

“맵다.”

간단명료한 심마의 감상을 들으며 나는 마지막 하나 남은 닭고기를 파와 함께 빼 먹었다.

이상하게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다 먹은 꼬치는 근처에 버리고 아까보다 신난 걸음으로 거리를 걸었다. 심마는 주변을 구경하다가도 시시때때로 나를 돌아봤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손가락을 굽혀 심마의 손을 마주 잡고 있었다.

노점상에서 들려오는 호객 소리와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시시비비를 가리는 소음들, 그리고 떠들썩한 목소리와 시끌벅적한 웃음소리. 맛있고 달콤한 냄새와 눈을 즐겁게 하는 색색의 풍경들.

심마는 뭔가 신기한 게 있으면 꼭 나를 데리고 가선 보여 줬고, 맛있어 보여 내가 눈길을 주는 건 그도 먹고 싶다며 사들였다. 그런데 막상 사면 심마는 맛만 보는 정도였고, 결국 봉지째 들고 먹는 건 나였다.

화과자점에서 산 장미떡과 계화떡, 부용고(간식의 일종)를 한 팔로 안고선 걷고 있는데 근처 좌판의 탕후루가 눈에 들어왔다.

설탕물을 입혀 굳힌 탕후루가 홍등 아래에서 반질반질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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