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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사형입니다-139화 (139/141)

<139화>

탕후루를 빤히 보다가 무심결에 고개를 돌려 심마를 보았다. 마침 심마도 나를 보고 있었다.

굳이 대화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뜻이 통했다.

심마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얼른 심마를 따라 탕후루 가게로 향했다. 등의 불빛이 우리의 머리맡에서 부드럽게 일렁인다.

“어서 오십시오! 뭐로 드릴까요?”

탕후루 가게 주인이 물었다. 심마는 줄곧 나만 보고 있었다.

“산딸기.”

심마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심마가 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를 돌려선 가게 주인에게 ‘산딸기로 하나 주시오.’라고 말했다.

가게 주인이 산딸기 탕후루를 하나 건네는 걸 보곤 급히 전낭을 꺼내는데, 심마가 먼저 은전을 가게 주인에게 던져 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큰 횡재에 가게 주인이 입을 못 다물며 어쩔 줄 몰라 한다.

“심마?”

내가 부르자, 심마가 받아 든 산딸기 탕후루를 건네며 눈썹을 찡긋거린다.

“이번엔 내가 내게 해 줘.”

그에 나는 피식 웃으며 가게 주인을 향해 호탕하게 말했다.

“잘 먹겠소.”

내 말에 가게 주인이 황송해하며 거듭 인사를 한다. 그런 그를 등지고 다시 거리를 걸었다. 가까이 사람들이 둥글게 몰려 있는 걸 보곤 그리로 걸어가다가 문득 힐끗 시선을 돌려 심마를 보았다.

내게 산딸기 탕후루를 건네주며 내 품에 있던 먹을거리를 대신 든 심마는 무척 들떠 보였다. 환하게 빛나는 안색 위로 떠오른 미소는 무척이나 화사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 보니 주변 이들의 이목을 적지 않게 끌고 있었다.

장신구를 파는 가게에 서 있는 여인들이며, 길 가장자리에 둘, 셋 모여 있는 아낙들이 심마를 보며 저들끼리 귀엣말하며 웃고 있다. 무슨 말을 하고 있을지 뻔히 예상이 간다. 노골적으로 훔쳐보는 눈길 하며 상기된 뺨까지.

나는 새삼스런 눈으로 다시 심마를 보았다.

확실히 용모가 잘나긴 했지. 그것도 그냥 잘난 게 아닌, 빼어나게 잘났다.

“응?”

내 시선을 눈치챈 심마가 나를 돌아보며 작게 침음을 내뱉는다. 그에 가볍게 고개를 저어 보인 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환호성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안에 뭐가 있길래 저러는 거지?

겹겹이 포진해 있는 사람들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자 화기가 화악 느껴졌다.

원형으로 둥글게 모여 있는 사람들의 한가운데엔 두 남자가 있었다. 한 명은 머리가 벗겨진 배불뚝이였고, 나머지 한 명은 성인 남자 키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소인이었다.

배불뚝이가 검지와 엄지를 둥글게 맞대고선 그 구멍 안으로 입김을 불자 불꽃이 화악 일었다. 길게 넘실거리는 불꽃 끄트머리는 주홍색이었다.

소인은 그 옆에서 시시한 재주를 선보이고 있었다.

이제 보니 사람들이 여기 모여 있는 게 묘기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작은 공 열 개를 양손으로 번갈아 가며 던졌다 받는 잔재주를 구경하고 있는데, 심마가 맞잡은 손에 힘을 더한다.

꼭- 전해져 오는 힘에, 뭔가 싶어 바로 심마를 쳐다보았다. 심마는 정면의 공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술을 달싹여 그를 불렀다.

“심마?”

내 부름에 그제야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재밌어?”

내게 묻는 심마의 얼굴 위로 불꽃의 음영이 드리워진다.

나는 심마를 가만히 올려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심마는 기쁜 낯빛으로 다시 시선을 돌려 앞의 공연에 눈길을 줬다.

우리는 얼마간 공연을 본 뒤, 중간에 살짝 빠져나와 다른 곳으로 향했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거리 한편에 벌인 좌판을 보았다. 조잡한 나무 탁자 위에 여러 개의 가면을 늘여 놓고 있었는데 낯익은 생김새에 끌려 다가갔다.

손을 맞잡고 있던 터라 자연스럽게 심마와 함께 가면을 파는 노점 앞에 섰다.

의자에 늘어지게 앉아 있던 주인이 벌떡 일어나선 우리를 맞이했다.

“하이고, 어서 오십시오! 공자님들, 잘 찾아오셨습니다! 여기 있는 것 전부 낙주에서 알아주는 장인이 손수 깎아 만든 것입니다!”

상인의 말이 아주 없는 소리는 아닌지, 조잡한 나무 탁자에 비해 가면들은 그럭저럭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나는 이목구비가 뚜렷한 심마의 옆얼굴을 힐끗 보았다가 앞의 가면을 응시했다.

일단 가장 눈에 익는 것부터 집어 들었다. 바로 코가 삐뚤어지게 취한 노인 가면이다.

나는 이걸로 하고, 심마 거는….

가면 위를 배회하던 손끝이 오른쪽에서 네 번째 가면에 멈췄다.

‘이건….’

심술궂게 생긴 귀신 가면이다.

가면의 눈가 부분에 검붉게 칠해진 무늬와 오른쪽 턱선부터 뺨까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붉은 반점.

나도 모르게 가면을 집어 들자, 옆에 서 있던 심마가 내 쪽으로 비스듬히 몸을 기울인 채 고개를 숙인다.

그 모습에서 나는 지난날을 떠올렸다. 때마침 지금 심마의 어깨 너머로 붉은 홍등이 보인다. 바람에 휘날리는 휘장과 그 너머의 밤하늘.

‘나, 백아는 흐린 날에도, 맑은 날에도.’

환청이 들려왔다.

원멸 이전 우사의 목소리다.

‘해와 달이 부러워할 정도로 진연 형을 한평생 행복하게 해 주겠습니다.’

자신감 넘치던 그 쾌활한 목소리는 기억 한 편으로 스러져 묻히고, 이제 내 앞에 남은 건 심마다.

“진연?”

의아해하는 심마의 목소리에 끌려 깊은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있는데, 심마가 가면을 쥐고 있는 내 손을 제 얼굴 쪽으로 잡아당겨 본인의 얼굴에 가면을 씌운다.

“어때?”

귀신 가면을 쓰고선 심마가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가면의 눈구멍 너머로 보이는 심마의 두 눈엔 정이 담겨 있었다. 가면에 가려져 있어도 지금 웃고 있단 걸 알겠다.

‘부부의 연을 맺으면 서로의 천명이 이어져서 영원히 함께하게 된다고 해. 죽음도 가를 수 없는 거지. 그래서 보통 혼례의 증인으로 북두성군[도교에서 인간의 수명(죽음)을 관장하는 신]을 세우는 거야.’

문득, 원멸 이전의 어느 날, 정원의 가산[정원용의 야트막한 산]에 앉아선 우사가 했던 말이 뇌리에 스친다.

‘…만약 혼례를 저버리는 행동을 하게 되면 북두성군은 그자의 천명에 죄를 물어. …벌로써 그자의 연인을 죽이는 거지. 다신 살아생전의 그 연인을 만날 수 없는 벌을. 내세에도, 그리고 내세의 내세에도. 마음이 닿아 또다시 서로 정인이 되면 죽음이 둘을 갈라 헤어지게 해.’

나직한 목소리로 풀던 그 이야기가 정말인지, 아니면 그저 오래된 이야깃거리인진 모른다.

하지만 원멸 이전에 우사는 내 약지를 자르란 유언을 마지막으로 남겼고, 원멸 이후의 나는 처음부터 북두성군과는 은근히 척지는 사이였다.

‘…앞으로는 내가 형을 만나러 올 일 없을 거야. 그러니 그렇게 울 것 없이, 내가 미우면 날 욕하면서 떠나.’

…그때 해 준 이야기가 정말이라면, 우사는 왜 내 약지를 자른 걸까?

그렇게 되면 죽는 건 결국 본인이 될 텐데.

이해할 수 없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사, 나는 왜 너를 이해할 수가 없는 걸까.

…애초부터 틀린 답을 들고 있어서 그런 걸까…?

…어쩌면…….

눈앞에 떠오른 우사의 환영을 쫓으며 생각에 잠겼다.

환영 속 우사의 뒷모습은 흐릿하게 일렁이다가,

‘내가 아직도 형을 사랑한다고 생각해?’

그 당시엔 비아냥이라고 생각했던 말을 끝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앞에는 귀신 가면이 벗겨진 심마가 있었다.

나는 두 눈을 느리게 깜박이며 심마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내려 손안의 귀신 가면을 보았다.

나도 모르는 새에 귀신 가면을 들고 있던 팔을 내린 거였다.

함께 들고 있던 코가 삐뚤어지게 취한 노인 가면은 땅에 떨어져 있었다.

나는 다시 시선을 들어 심마와 눈을 맞췄다.

“진연?”

날 부르는 심마의 두 눈에 의문이 떠오른다.

“왜 그래? 괜찮아?”

아. 의문만 있는 게 아니라 날 향한 걱정도 있었다.

“어디 안 좋은 거야?”

재차 물으며 한 손으로 내 이마를 짚는다. 그 다정한 손길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곤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가, 심마와 아직 맞잡고 있는 손을 의식했다. 서로 이어져 있으니 뒤로 물러나 봤자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짧게 말하며, 방금 물러났던 것보다 더 가까이 심마에게 다가섰다. 그러곤 나를 바라보는 심마의 얼굴에 도로 귀신 가면을 씌워 줬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너를 믿어 볼게, 심마.’

속으로 작게 중얼거리며 귀신 가면을 쓴 심마와 눈을 맞춘 채 뒤로 살짝 몸을 물렸다. 그 순간 발아래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발을 떼자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에 취한 노인 가면이 보였다. 밟은 부분이 깨지고 금이 가 있었다.

“하이고. 그거 못쓰게 되었네…!”

노점의 주인장이 낮게 탄식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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