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3. Edward in wonderland (1)
연수를 받겠다는 케일리의 말에 에드워드는 자신이 그를 생각해가며 뜯어말릴 필요도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그런 걱정을 할 사이도 아니었다.- 그대로 -B 지구의 연수시설로 이동했다.
기밀 유지를 빌미로 지하에 만들어진 훈련시설 런던 지국을 통한 지하 이동수단을 사용해야만 다다를 수 있었고, 마침 임무 실패로 인해 당분간 한가해진 에드워드가 케일리의 안내를 맡게 된 결과였다.
-B 지구가 위치한 런던 동부의 구 슬럼가로부터 제법 거리가 있는 지하시설이 정확히 어느 지역에 만들어져 있는지까지는 에드워드도 알지 못했다.
입사 전 테스트나 다름없는 연수원의 역할을 가진 지하시설 안에는 지상과 흡사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문을 통해 갈 수 없는 이유는 공간왜곡 마법 사이에서 벌어지는 간섭과 관련된 문제라는 설명을 들었지만 무슨 뜻인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뱀파이어의 능력은 마법이 아니었고 에드워드는 마법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있다.
소음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B 지구용 지하철(Underground)은 인간들이 이용하는 런던 지하의 것보다 훨씬 밑에서 달리는 특수한 이동수단이었다. 레일은 마법으로 깔렸지만 그 위를 달리는 차체는 일본과 독일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인류의 기술이었다.
최고 시속을 1,500킬로미터까지 올릴 수 있는 그것은 마법이 아니라 전기로 움직였고, 800킬로미터에서 900킬로미터 정도로 지하를 달렸기 때문에 문 정도는 아니라도 제법 쓸 만한 이동수단으로 꼽혔다.
지하철은 무인 운행이었으며 탑승자는 케일리와 에드워드뿐이었다. 처음 타보는 그것에도 신기해하는 기색이 없는 케일리를 바라보며 턱을 괸 채 새카만 창밖을 응시하던 에드워드가 별안간 물음을 던졌다.
“넌 여기 오기 전까지는 뭘 하면서 살았냐?”
보통의 경우 사소한 습관이나 손의 굳은살 위치, 어휘의 선택 같은 것들을 통해 그 사람의 출신부터 시작해 살아온 환경과 성격, 더 나아가서는 직업까지도 유추하는 것이 가능했다.
예를 들면 전직 군인과 프리랜서 용병만 비교하더라도 명령체계에 대한 인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비슷한 직종 안에서도 그들을 가르는 기준은 명확히 존재했다. 이혼 전문 변호사와 기업분쟁 전문 변호사의 사고방식이 다른 만큼이나, 직업이 삶의 방식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했다.
그러나 에드워드가 느끼기에, 케일리에게서는 그런 종류의 영향력이 보이지 않았다. 내근직이라기엔 현장에 익숙해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고, 외근직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상황에 대해 수동적인 면이 있었다.
사격실력만 따지면 제대로 훈련받은 전직 군인이나 특수부대 출신이라고 해도 크게 의아하지는 않을 수준이었지만, 케일리는 성격상 수직적인 명령체계에서 움직이기에는 치명적인 단점을 지녔다.
상대방의 위치나 성격을 파악하기 전에 이미 모든 이를 같은 라인에 두고 평등하게 대하는 태도는 군부대 같은 곳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전문직 종사자라기에는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때문에 에드워드는 앞으로 함께 일을 수행해야 하는 파트너로서 케일리를 어디에 써먹을 수 있는지 파악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질문을 던졌다. 그의 물음에 잠시간 생각에 잠겼던 케일리가 아, 하고 이해했다는 듯 대답을 돌렸다.
“전화를 했죠.”
콜센터…… 같은 걸 말하는 건가. 케일리의 대화방식을 잠시간 회상해보던 에드워드는, 저런 걸 가지고 콜센터를 운영하면 그나마 제일 나은 결말이 대화의 끝에 빡친 클레이머가 트럭을 몰고 찾아와 콜센터에 차를 처박는 장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간 그 처참한 광경을 상상하던 에드워드의 귀에 케일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전화하기 전에는 페이터노스터에 누워 있었어요. 거기서 잠깐 살았거든요.”
듣자 하니, 정말로 ‘여기에 오기 직전에 무슨 행동을 하고 있었는지’를 말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거 말고 일, 네놈의 직업 말이다.”
분명 평범한 물음을 던졌는데 빗나간 대답이 돌아오니 대화를 이어갈 의지가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이미 시작한 걸 무를 수도 없어 에드워드는 질문을 바꿨다. 이번에는 제대로 이해했는지 올바른 대답이 돌아왔다.
“아, 직업이요. 회사원이었죠. 보통 다 그렇지 않나요?”
그가 말하는 보통이 자신이 아는 보통과 같은 뜻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일단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뭐 그렇기는 하지. 회사에도 종류가 있잖아. 사무직인지 영업인지 뭐 그런 거. 정확히 무슨 일을 했는지를 말해봐. 네가 뭘 할 줄 아는지 알아야 너한테 뭘 시킬 수 있는지 판단할 것 아냐.”
질문의 궁극적인 목적까지 전달하자 케일리는 “그것도 그러네요.” 하며 곰곰이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지금까지 일곱 개의 회사를 거쳐왔고 최종적으로 전부 도산했다는 기나긴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업무를 에드워드에게 설명하는 것은 생각 외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가 원하는 대답이 실제로 어떤 직무를 맡았냐는 것이었으므로 케일리는 자신의 마지막 회사의 직무를 설명하기로 마음먹었다.
“보통 서류를 읽고 사인하는 일이었죠. 다음에 무슨 상품을 개발할지 정하고, 예산이 얼마나 드는지나, 얼마만큼의 기간이 필요한지, 리소스는 뭐가 필요한지 같은 내용이었어요.”
“더럽게 평범하네.”
“보통이죠.”
“회사는 왜 그만뒀는데?”
“아, 그만둔 게 아니라 도산했어요.”
그 회사가 정확히 일곱 번째였으며, 그 전에도 여섯 개의 사업체를 말아먹은 전적이 있다는 사실을 홀랑 숨긴 케일리는 다소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만약 일곱 번째 회사가 도산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깁스를 할 일도 없었을 것이며,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 할 이유도, 새로운 집을 찾아야 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큰 성공을 바란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어째서인지 사업에 손을 댔다 하면 깨끗하게 말아먹는 걸 보면 자신은 사업을 하지 않는 편이 좋았을는지도 몰랐다.
한참은 늦은 깨달음에 젖어 있는 케일리를 향해 에드워드가 말했다.
“어떻게 망했기에 이직도 못하고 길바닥에 나앉아?”
에드워드가 자신을 도산한 직장 탓에 집을 잃고 홈리스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케일리는, 어떻게 망했는지를 대답하기 위해 기억을 되짚었다.
“그게…… 복합적인 이유인데, 제일 큰 문제가 된 건 서류에 사인을 잘못한 것 때문이었죠.”
“사인 하나로 회사가 망했다고?”
그게 아니라 아예 읽지도 않은 거 아니냐?
의심 어린 목소리로 케일리가 근로계약서를 대하던 자세를 떠올리던 에드워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니요, 확실히 읽었어요.” 대답하는 것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다면 제대로 읽고 사인을 해도 문제가 생겼다는 말인데.
“그게, 일이 그렇게 되기도 하더라고요.”
케일리는 작은 한숨과 함께 당시를 회상했다.
분명 서류는 제대로 읽었다. 레이튼은 케일리에게 올라오는 서류를 먼저 검토하고 문제가 될 조항이 없는지 확인했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자리를 비운 날 사장실까지 직접 찾아온 협력업체를 막을 예지력까지는 지니지 못했었다.
직접 찾아온 협력업체 대표가 내민 것은 이미 결재가 끝난 계약서의 수정조항에 대한 협의였다. 그것은 상대측의 설명만 들었을 때 별달리 문제가 없는 내용이었는데…….
“무슨 서류에 사인을 했기에?”
“협력업체에 대한 수익 분배 수정조항과 각종 업무재해에 대한 보장 비율 조정 서류였죠.”
“별것도 아니잖아. 그걸 어떻게 잘못해야 회사가 망한다는 거냐.”
“그렇지만도 않더라고요. 그 서류에 사인한 덕분에 그쪽 업체 직원에게 지급하게 된 조정액이 1년 만에 회사 자본금의 두 배를 넘어서게 됐거든요. 길게 보고 투자한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되겠냐고 물어봤는데, 안 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으니 파산신청을 했어요. 자금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사실 적자만 보던 참이었고 사업성은 없는 데다 계속 끌고 가면 구멍만 커지니까요.”
협력업체 대표는 레이튼이 돌아와서 검토하지 않으면 사인할 수 없다는 케일리의 말에, 그렇다면 서류를 검토라도 해줄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겠다는 대답을 돌렸다. 케일리는 포기가 빠른 편이었고 검토해주기만 하면 떠난다는 말을 그대로 믿었다.
정말로 서류를 읽기만 하고 돌려주는 케일리에 대표는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렸다. 여기에 사인해주지 않으면 원래의 비율을 가지고는 저들 업체가 망하게 된다는 인간적인 호소에도 케일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서류에 사인을 잘못해서-사실 서류를 읽는 것도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 문제를 일으킨 전적이 있었고, 레이튼에게 단단히 주의를 받았기 때문에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완곡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상대측 대표는 케일리를 협박했다. 만약 이 서류에 사인하지 않는다면 이쪽이 계약파기로 피해를 입는 한이 있어도 모든 사업을 무산시키겠노라고. 케일리에게 있어서 막대한 비율의 계약조정을 하는 것보다, 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훨씬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그는 두말없이 사인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업무재해의 보상액을 조금 올리는 것으로 인해 큰 문제가 일어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지나치게 순진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케일리는 업무재해의 범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고, 상대 업체는 사기계약에 가까운 수정조항으로 그를 등쳐 먹었다는 슬픈 결말이었다.
“그 전에는? 회사원 말고 다른 건 해본 적 없냐?”
“전에도 회사원이었죠. 전 회사도 망했는데…… 거기선 사람을 잘못 봐서 문제가 생겼죠.”
“사람을 잘못 봐서…… 회사가 망해? 뭘 어떻게 잘못 봤는데?”
“아, 그 사람이 말하기를 본인이 영업부 사원인데 거래처에 당장 원본을 보여줘야 하는 사업계획 서류가 있다기에 제가 가진 원본을 잠깐 빌려드렸거든요. 연관사업 자료도 브리핑에 필요하다고 해서 드렸는데 경쟁사 직원이었지 뭐예요.
사실 그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는데-결정적인 원인이 되기는 했지만- 환경문제 때문에 보강장치를 위한 서류는 별도 진행 중이라 그게 빠진 채로 전달됐고 결국 환경법 위반까지 더해서 소송에 걸리니 이것저것 문제도 복잡하고 귀찮아져서…….”
말끝을 흐렸지만 결말은 예상되었다. 망했다는 뜻이다.
“넌 확인도 안 하고 그렇게 중요한 서류를 막 넘겨주냐?”
“확인이야 했죠.”
“어떻게?”
“그분한테 우리 회사 직원이냐고 물어봤어요. 맞다고 했으니까 제대로 확인은 한 거죠. 나쁜 건 그런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 아닌가요?”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되묻는 케일리에게 에드워드는 돌려줄 말이 없었다. 거짓말을 하는 놈이 나쁘다는 원론적인 논리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악하다는 인간으로부터 나온 가설마저 무시하는 네놈이 나쁘다는 사실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막막했다. 성선설을 믿는 인간들도 저렇게까지 타인을 신뢰하지는 않았다.
사실 잘 생각해보면 저건 신뢰조차 아니었다. 그저 의심하는 건 아주 귀찮은 일이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는 대신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넘기고 본인은 편하겠다는 완곡적인 표현에 불과했다.
“넌 웬만하면 잠입수사는 하지 말아야겠다. 적, 아군 구분도 못하는 걸 어디다 써먹으라고…….”
중세를 살았으면 성문을 두들기는 적군에게 네가 아군이냐 적군이냐 물어보고 아군이라 대답하면 곧이곧대로 믿고 순순히 성 문을 열어줄 천하의 매국노 같은 놈이 아닐 수 없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미래도 케일리로 인해 도산했다는 회사처럼 캄캄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던 사이 어느새 멈춘 지하철 문이 열렸다.
“아, 도착한 것 같네요.”
고작해야 한 시간이 되지 않는 이동시간이 에드워드에게는 마치 반나절은 혹사당한 것처럼 느껴졌다. 육체적인 피로보다는 주로 정신이 피곤했다.
에드워드와 케일리가 지하철에서 내리자 승강장 저편에서 둘의 도착에 맞춰 마중을 나온 듯 -B 지구의 로고가 박힌 훈련복 차림의 사내가 다가왔다.
에드워드보다 조금 작은 키였지만 울퉁불퉁한 근육질 몸이 인상적인 남자는 몸의 부피에 비해 가벼운 걸음으로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안녕하세요, 에드워드! 생각보다 시기가 빨라졌네요. 페어리에게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적어도 일주일 정도가 늦춰질 줄 알았어요.”
에드워드와는 이미 안면이 있는 듯 그를 향해 상쾌하게 웃어 보인 사내가 그렇게 하자, 에드워드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본인이 괜찮다니 미룰 필요가 없어졌지.”
그렇냐며 고개를 끄덕인 사내가 에드워드의 옆에 선 케일리에게 말했다.
“아, 그래요? 이쪽이 케일리겠네요. 반가워요, 저는 필드요원의 연수시설을 담당하는 총 책임자 아이작 넬슨입니다. 별로 들은 이야기는 없지만, 벌써부터 친근하게 느껴져요. 에드워드의 파트너라니 고생길이 훤하네요. 어쨌든 4주 동안 잘 부탁해요.”
오른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는 아이작에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려다 말고 케일리가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오른손과 악수를 하기 위해서는 오른손이 필요했는데, 현재 자신의 오른손은 악수를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잠시간 고민한 케일리는 차선책-이라기보다는 멀쩡한 손이 왼손밖에 없었으므로 하나밖에 없는 선택지를.-으로 왼손을 내밀었다.
“케일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앗! 미안해요, 내 정신 좀 봐. 자, 자, 왼손 악수……. 일단 오늘 온다는 이야기를 한 시간 전에 들어서 바로 훈련에 들어갈 수는 없고, 팔도 그러니까 간단한 테스트부터 해볼까요?”
“테스트요?”
“네, 필드요원의 연수 스케줄은 총 28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번 분기 연수는 이미 엿새가 흘렀기 때문에 그만큼의 보충을 하거나, 테스트를 통과해야 해요. 사실 테스트 자체는 간단한 체력검사와 각 훈련과정의 레벨을 조정하기 위한 연수 전 평가니 부담 가질 필요는 없고요.
테스트 성적이 우수하면 연수가 단축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게 흔하지는 않으니까 너무 기대하지는 않는 편이 좋아요. 최종평가는 연수 마지막에 종합 테스트에서 결정되니 너무 부담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미안한 얼굴로 두 손을 내밀어 케일리의 왼손을 잡고 흔든 아이작이 앞장서 걸었고 에드워드와 케일리가 그 뒤를 따랐다.
승강장에서 이어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도착한 곳은 벽면이 통유리로 된 건물 안이었다. 창밖으로는, 하늘 대신 끝없이 높은 하얀 천장이 머리 위를 장식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지상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널따란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바닥에는 깨끗하게 깔린 잔디에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숲이 이어졌다.
만약 사전에 지하라는 사실을 듣지 않았더라면, 이곳이 땅 밑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정교한 공간이었다.
“입사 전 연수기간의 훈련에서는 훈련관과 연수 강사밖에 없는 이 건물 안에서 함부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룰이 있어요. 이 지하시설에는 비협조적인 불법체류자 감금시설부터 시작해서, 필드요원의 승급 심사장까지 가까이 가면 위험한 구역이 포함되어 있거든요.
그것 말고도 지켜야 할 사항이 정리된 책자를 줄 테니까 오늘 테스트가 끝나고 돌아가서 찬찬히 읽어보세요. 이 시설에는 인간에게 온건한 종족만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서, 조심해야 할 게 많거든요.”
케일리와 에드워드를 데리고 간단한 테스트를 위한 훈련실로 향하는 동안 아이작이 몇 가지 주의사항을 설명했다. 그중에서도 아이작은 이 연수시설은 입사 전 연수만을 위해 이용되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건물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인간에게 온건하지 않은 종족이라는 건 보통 어떤 건가요?”
아이작의 설명을 잠자코 듣고 있던 케일리가 물음을 던졌다.
“음……. 글쎄요, 일단 제일 흔한 예로는 케일리의 옆에 있는 그도 대표적으로 인간에게 온건하지 않은 종족에 속하기는 해요.”
“에드워드가요?”
“그는 뱀파이어니까요. 에드워드야 뱀파이어들 중에서는 특수하게 인간을 걸어다니는 도시락쯤으로 생각하지 않는 케이스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이상한 식성을 가진 뱀파이어는 드무니까요. 대부분의 뱀파이어들은 인간을 코스요리 비슷한 걸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돼요.”
에드워드 하나를 가지고 모든 뱀파이어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며 엄한 얼굴로 충고하는 아이작은 “사실 뱀파이어는 오히려 걱정할 필요가 없는 편이기는 해요. 우리 업무를 하면서 다른 뱀파이어와 만날 확률은 유로 밀리언에 당첨될 확률보다 적으니까요.”라고 웃으며 덧붙였다.
“뱀파이어가 그렇게 적나요?”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 케일리에게 먼저 대답한 것은 에드워드였다.
“아니, 그들은 -B 지구의 관할이 될 만한 사건에 끼어들지 않는 것뿐이야.”
“뱀파이어들은 싸움을 싫어하나 봐요?”
“그런 게 아니라…… 아니, 뭐 결론적으로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군. 이쪽의 관할 사건이 되려면 먼저 등록되지 않은 이종족이면서 해당 국가의 인간들이 정한 법에 반하는 행동을 해야 해. 물론 그 안에는 몇 가지 예외조항이 있고, 뱀파이어에게 적용되는 건 식사에 대한 부분이지. 식사를 위해 인간을 채집하는 것을 예외조항으로 허용 받은 상태고, 나머지를 제대로 지키면 등록된 뱀파이어가 이민국과 엮일 일은 없어.”
그중에서도 영국의 뱀파이어들은 대부분의 수백 년을 이어온 유서 깊은 가문의 수뇌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정, 재계에서 순혈 뱀파이어의 모습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태어난 후 빠른 성장기를 거쳐 일정한 시기로부터 외견의 성장이 멈추는 특징이 있었지만, 늙어가는 것처럼 외모를 꾸며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들 사이에 쉽게 섞여들었다. 이종들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인간들을 등쳐 먹는 종족 중 하나이니 트러블을 싫어하는 것도 당연했다.
에드워드의 설명에 아이작이 동의한다는 양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의 말이 맞아요. 애초에 뱀파이어와 인간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는 건 순혈 뱀파이어를 비롯한 몇몇 종족들뿐이니 만나도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등록된 이종족들은 개인정보 보호법으로 이종 주민 정보를 보호받고 있기 때문에 -B 지구의 요원이라고 해도 그들을 완전히 구분할 방법은 없어요. 그때그때 임무와 관련된 자들에 대한 필요 최소한의 정보밖에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 말대로라면, 비단 뱀파이어가 아니더라도 에드워드처럼 외견으로 인간과 구분되지 않는 이종족들을 조심할 방법이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상대가 어떤 종족인지 알 도리가 없으니, 미리 조심 할 방법도 없는 거 아닌가요?”
케일리의 물음에 아이작이 눈을 빛내며 제 목에 걸려 있는 초록색 목줄의 사원증을 들어 보였다.
“이 안에서는 상대방의 위험도를 파악할 수 있도록 각각 색이 다른 사원증을 목에 거는 게 의무화되어 있으니 그것만 외우면 문제없어요.”
“참고로 초록색은 아주 안전하다는 뜻이에요.”
아이작이 덧붙였다.
“아하. 그럼 뱀파이어 말고는 어떤 종족을 조심해야 하죠?”
“일단은 인간을 먹는 자들을 조심해야겠죠. 먹기 위해서 해치는 게 아니라면, 결국 종족이라는 큰 울타리를 가지고 상대를 판단하는 건 의미가 없잖아요? 개별적인 특성이 흉포하거나, 인간을 싫어한다거나, 뭐 그런 녀석들도 있기는 하지만 먹지 않는 종족들은 비교적 온건하다고 볼 수 있어요. 문제는 포식자들이죠. 그러고 보니 케일리가 최근에 만났다는 구울만 해도 인간을 주식으로 삼는 대표적인…….”
거기까지 말한 아이작이 걸음을 멈추고 사원증을 들어 눈앞에 있는 카드키에 가져다 댔다.
삑, 소리와 함께 열린 문 너머에는 군부대를 연상시키는 딱딱한 사격시설이 펼쳐져 있었다. 텅 빈 사격실의 제일 가까운 부스로 케일리와 에드워드를 안내한 아이작이 사격부스 안에 준비되어 있는 총기 중 가장 일반적인 40구경 반자동 권총 하나를 들어 케일리에게 건네며 말했다.
“사격을 잘한다는 말을 들어서, 사격부터 시작해볼까 했는데, 오른손잡이면 좀 곤란해지겠네요.”
일단 왼손으로 총을 받아든 케일리가 아이작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눈을 깜빡이는데, 에드워드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어차피 테스트니까 상관없지 않나?”
“그건 그렇지만, 잘하는데 부상 때문에 초반 성적이 낮은 건 좀 불쌍하지 않아요? 연봉 책정에도 반영된다고요.”
“그거야 본인 사정이고.”
“파트너면 좀 챙기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지금 여기까지 따라온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챙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 안 들고?”
이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몹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는 에드워드의 말에 아이작이 하, 어이가 없다는 듯 숨을 내뱉었다.
“임무 실패해서 스케줄 비었으니 늦어진 연수기간만큼 강사 시키라고 위에서 지시 내려왔는데,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하시네.”
아이작의 말에 이번에는 에드워드가 입을 다물었다. 괜히 생색을 내려다 본전도 못 찾은 꼴이 되었다.
“케일리, 그래서 어때요? 오른손잡이? 왼손잡이?”
사격부스 안에 설치된 훈련용 시스템을 가동시키며 목표물 세팅을 시작한 아이작의 물음에 케일리가 대답했다.
“딱히 정해놓은 건 없는데요.”
보통 사람들이 어떤 손을 쓸지 정해놓고 쓰지는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고서라도, 어떤 손을 주로 쓰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치고는 상당히 엇나간 케일리의 말에 아이작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그가 보통 사람과 다른 신경의 소유자라는 것을 어느 정도 파악한 에드워드가 질문을 바꿨다.
“양손잡이란 말이냐?”
“아니요, 정말로 정하고 쓰는 손이 없다는 뜻인데요.”
이번에는 에드워드도 교신에 실패했다. 첫 번째 목표물 세팅을 끝낸 아이작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케일리를 향해 물었다.
“……? 저, 케일리 평소에 무슨 손으로 글씨 써요?”
“덜 지친 손으로 쓰죠.”
“총은 무슨 손?”
“그날 일 덜한 손이요.”
“결과는?”
“컨디션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보통 거의 똑같죠. 오른손이나 왼손이나 제 손인데 달라질 게 있나요?”
또박또박 아이작의 질문에 곧장 대답하는 케일리에 에드워드가 이상한 얼굴을 했다.
그 정교한 사격을 양손으로 다 해낼 수 있다고?
말도 안 된다.
“왜…… 그렇게 된 건지 물어도 되나요?”
보통 사람들에게는-사람이 아니라 이종족이라고 해도.- 자주 쓰는 손이라는 개념이 있고 양손잡이라고 해도 대개 오른손으로 식사를 먹고 왼손으로 글씨를 쓴다거나,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지만 왼손으로도 어느 정도 쓸 수는 있다는 정도로 사용되었다.
케일리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에게 있어서 왼손을 쓰는 것과 오른손을 쓰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는 뜻이었는데, 그런 게 가능한 사람을 아이작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다년간의 훈련으로 양손을 쓸 수 있게 된 자들조차 같은 사람의 기관임에도 필적의 차이, 혹은 사격능력의 정교함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구울을 제압한 케일리의 대단한 사격실력을 전해 들은 아이작이 케일리의 양손을 특수한 훈련을 통한 결과물이라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쪽이 귀찮아할까 봐 공평하게 써왔거든요.”
돌아온 케일리의 대답은 맥이 빠질 정도로 황당한 내용이었다. 먼저 그 황당함을 지적한 것은, 어느새 미간에 주름을 새긴 에드워드였다.
“넌 손에도 뇌가 달렸냐, 손이 귀찮아하게? 왜 손한테 네 귀찮음의 책임을 떠넘겨, 죄 없는 손한테.”
어째서인지 자신을 비난하면서도 자신의 손의 편은 들어주는 에드워드의 이중성을, 한 바퀴 선회한 비꼼이 아닌 직설법이라 받아들인 케일리가 말했다.
“제 뇌에서 결정한 걸 손이 따르니까, 어느 손을 쓰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건 문제 아닌가요?”
그 결정이라는 게 ‘손, 펜을 잡아.’라는 것일 때 오른손이 움직이면 펜을, 왼손이 움직이면 잉크를 잡는다면 분명 뇌에 문제가 있는 것일 수는 있었다. 하지만 오른손도 펜을 쥐고 왼손도 펜을 쥐었는데 결과가 완전히 똑같다는 건 기네스북에 왼손과 오른손의 완전 일치 사례로 등재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인류 진화의 새로운 지평이었다.
케일리가 생각하는 뇌의 명령체계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이미 근본부터 다른 것 같다는 부분을 어떻게 지적해야 하나 고민하며 에드워드가 일단 제일 간단하고 근본적인 오류부터 짚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결과가 달라져도 문제없지. 보통은 안 비슷하니까.”
두어 번 눈을 깜빡인 케일리가 의아함을 담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건 확실히 이상하네요.”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는 아이작이야말로 따스한 멘털 케어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드워드는 순순히 스스로의 문제점을 인정하는 케일리에 가늘게 뜬 눈으로 의심 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았지만 그 점에만큼은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스스로 이상하다는 걸 알고 있다니 그거 하나는 다행이다. 넌 네 동족들한테 날 잡고 사과 좀 해라. 네가 걔들 평균을 다 까먹고 있잖아.”
에드워드는 인간이라는 종족의 평균은 그렇게 최악까지 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종종 뱀파이어를 상회하는-타고난 육체나 종으로서의 특성에 주어진 능력을 제외한 부분에서.- 천재를 배출하기도 하는 가능성을 지녔다고 냉철하게 판단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구상의 최상위 포식자는 인류가 아니라 뱀파이어가 되었을 테니 어찌 보면 당연히 인정해야 할 부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케일리는 그런 인류의 가능성마저 진창에 처박는 하향평준화를 담당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본인이 인류 평균을 까먹는다는 신랄한 감상에도 불구하고 상처는커녕 스크래치조차 입지 않은 케일리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두 손을 다 쓰는 편이 편하니까 결과적으로 좋은 일 아닌가요? 오른손이 가까우면 오른손이 가고, 왼손이 가까우면 왼손이 가고. 사이좋고 공평하고 딱 좋잖아요. 어차피 두 갠데.”
“네 몸에 붙어 있는 시점에서 이미 걔 둘은 충분히 사이 좋아. 같은 영양소 공급 받아, 같은 혈액 공유해, 거기서 뭘 더 친해지려고.”
“지금 사이 나빠지려던 중이었어요.”
“왜, 이번엔 또 뭐가 문젠데.”
“오른손이 혼자 장기휴가 들어갔잖아요.”
어딘지 우울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부스에 걸린 헤드셋을 머리에 쓴 케일리는 잠시 내려놓았던 권총을 들었다. 묵직하게 장전된 40구경 글록 35를 왼손에 거머쥔 케일리가 왼발을 한 발짝 내딛어 자세를 잡았다.
정확한 조준과 사격 반동을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두 손 그립이 안정적이었지만, 40구경 반자동 정도라면 한 손으로도 쏠 만하다.
오른팔에 충격이 가지 않도록 하체에 힘을 실어 10미터 앞의 저난이도 표적, 동그란 목표물의 정중앙을 조준한 후에야 방아쇠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어느새 얇은 파일첩과 펜을 손에 든 아이작이 에드워드와 함께 몇 발짝 뒤로 물러나 그 광경을 관찰했다.
탕, 탕, 탕.
“오, 듣던 대로 정확하네요. 호흡도 안정적이고 나쁜 습관도 없고, 깔끔해요.”
정확히 삼 초, 오 초, 팔 초의 간격으로 표적의 정중앙을 맞힌 케일리의 사격은 깔끔하고 안정적이었다. 세 발의 총성이 들렸음에도 10미터 앞의 목표물에는 중앙을 꿰뚫은 자국밖에 없었기 때문에 저난이도 표적이라는 점을 미뤄두더라도 충분히 훌륭한 실력임에는 틀림없었다.
한 팔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친 팔에 부담을 줄이는 그립법과 하체로 충격을 완화시키는 밸런스 조정까지 흠잡을 구석이 없는 케일리를 향해 감탄 어린 시선을 보낸 아이작이 다음 표적을 준비했다.
20미터.
전방 20미터 앞에 나타난 것은 각각 다른 자세를 취한 거대한 불곰 모양의 패널. 세 개로 늘어난 목표물이 일정한 간격을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규칙적인 움직임이었기 때문에 조준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움직이는 복수의 목표를 맞히는 것은 정지한 목표에 비해 난이도가 높았다. 목표물이 세 개라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케일리는 가장 왼쪽에 있는 패널 조준을 시작했다.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이번에도 표적 하나당 세 발을, 각각 머리에 정확히 맞힌 케일리가 헤드셋을 벗었다.
그의 사격 장면을 흥미진진한 눈으로 지켜보며 체크리스트 위로 펜을 움직이던 아이작이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자, 방아쇠에서 손을 뗀 케일리가 엄지와 검지를 이용한 어정쩡한 자세로 총신을 들어 보였다.
“세 발 남았는데요.”
모든 총은 장전되어 있다고 간주하고 조심스럽게 다룰 것, 목표물 이외에 총구를 향하지 말 것, 조준이 끝날 때까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지 말 것. 기본수칙까지 완벽……함.
평가 리스트에 체크를 추가한 아이작이 에드워드에게 말했다.
“뭐 해요, 장전 안 하시고.”
“왜 내가……?”
“여기서 제일 한가하시잖아요.”
그 후로도 한동안, 에드워드는 총을 바꿔가며 장전을 요구하는 케일리를 노려보며 묵묵히 탄창을 갈아 끼워야 했다.
◇ ◆ ◇
“……사격 만점, 체력검사 만점, 화기 이론 만점, 이종족 이론 0점, 전략전술 0점. 에드워드, 댁 파트너 인간 맞기는 하답니까? 밸런스 패치 실패한 인공지능 뭐 그런 거 아니고……?”
총 세 시간의 테스트를 마치고 결과를 손에 쥔 아이작이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식사를 드는 케일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에드워드와 함께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홀로 식사하는 케일리의 모습을 바라보는 에드워드 또한 형용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복잡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오른손과 왼손을 공평하게 대한다더니 왼손으로도 자연스럽게 식사를 해결하고 있었다.
“기타 경력 및 자격 설문에서 나온 거 읊어봐요? 사격 국가대표 주니어 경력, 승마 국가대표 주니어 경력에 영어, 독어, 스페인어, 이태리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 비즈니스 레벨 구사 가능. 심지어 사무 변호사 자격증까지 있다는데 왜 여기 자원했는지 이해됩니까?”
신체구조부터 인간과 동떨어진 이종족들이 드글거리는 -B 지구 안에서도 상위 클래스에 속하는 케일리의 테스트 결과에 놀란 것은 아이작뿐만이 아니었다.
사격실력이 뛰어나다는 것과 판단능력에 엄청난 결점이 있다는 것 정도밖에 파악하지 못한 에드워드도 팔 하나를 쓰지 못하는 상태에서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 표적의 300미터 사격까지 오차율 없이 완벽히 해내는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케일리의 놀라운 인체의 신비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체력검사에서는 모든 종목을 빠르고,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끝내 보였다.
뿐만 아니라 100미터, 300미터, 5킬로미터를 연속으로 정해진 시간 안에 주파해야 하는 마지막 검사항목에서는 단거리 기록으로만 우사인 볼트의 세계 신기록에 근접한 경이로운 타임을 냈다. 장거리에서도 페이스 분배라는 개념이 없어 보이는 속도로 주파해냈기 때문에 여타 스포츠에 비해 선수생명이 긴 장거리에 나간다면 세계 제일의 자리도 꿈은 아닐 지경이었다.
그랬는데.
“잘 봐, 전략전술 부분에서 우선순위 책정이 완전히 미쳐 돌아가는 거 보이지? 이게 바로 그 이유라고 생각하면 간단하지 않아?”
아이작이 혼란에 빠져 케일리의 차트를 뒤적거리는데, 에드워드가 테스트 차트의 한 부분을 가리키며 고민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듯 비웃음을 머금었다. 에드워드의 손가락이 가리킨 부분을 읽어내리며 아이작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전략과 전술의 이론과 이해. 리스크 매니지먼트에 대한 이해가 없음. 우선순위에 대한 이해가 없음. 코스트 퍼포먼스에 대한 이해에 문제가 보임.]
요는, 이 인간에게 있어서는 목숨과 슈크림이 같은 값이라는 뜻이었다. 그것 참 처참하기 짝이 없는 결과였다.
“저, 댁 파트너는 전략전술만 문제인 게 아니라, 이종족 이론도 처참하거든요. 웃어넘길 일이 아니라고요. 어쩐지 인간이 구울하고 붙어서 이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좀 수상하다 했어요. 토끼가 사자랑 붙어먹었다고 하면 차라리 이해나 가지, 인간이 구울에……. 댁 파트너 구울이 뭔지도 모르고 덤빈 거 맞죠?”
좀비는 상상의 산물이며, 구울은 실존한다는 정도의 현실적인 차이가 있을지언정, 인간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속의 이종족들만 대충 파악하는 과목인 이종족 이론에서도 케일리는 처참한 성적을 보였다.
보통 사람들이 상식선에서 알고 있는 부분까지도 완벽하게 왜곡된 답변을 보여준 것은, 기본적으로 그가 이종족이라는 것 자체에 관심을 둔 적 없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산타클로스와 자원봉사자의 차이를 알 수 없다고 기술해놓은 항목을 톡톡 펜 끝으로 두드리며 아이작이 심각한 얼굴을 했다.
“구울이 뭔지만 몰랐을 것 같냐? 걔가 구울인지도 몰랐다던데.”
코웃음을 치며 대답한 에드워드에 아이작은 자신의 짐작이 맞아떨어졌다는 순수한 기쁨과, 그래서 저 신입요원을 어떻게 써 먹어야 할지 막막한 미래를 동시에 표현한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와……. 혹시 댁 파트너 목숨 금고에 키핑해놓고 여벌 따로 하나 챙겨 다닌대요? 상대가 뭔지도 모르고 덤비길 왜 덤벼요. 일반인들은 원래 그렇게 겁이 없나? 하기야, 제일 크게 잘못 만나봤자 러시안 마피아라고 생각하면 그럴 만한가 싶기도 하지만. 하도 이쪽 세계 사람들만 상대하다 보니 나도 상식적인 게 뭔지 헷갈리기 시작하네.”
“나도 몰라. 인간의 상식을 나한테 물으면 어쩌라는 거야. 게다가 저런 것들을 쓸 만하게 만드는 게 네 일이잖아. 알아서 잘해보라고.”
“저걸 가져다 써야 하는 건 에드워드 당신인데요.”
“…….”
“…….”
아이작과 에드워드의 사이를 어색한 침묵이 메꿨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전략전술, 이종족 이해만 어떻게 평균까지 끌어올려놓으면 된다는 거니까 그렇게까지 최악은 아니지 않아요? 다른 건 한 달 가지고 해결하기 어렵지만, 이건 단순 암기만 시켜놔도 어느 정도 해결되잖아요. 포지티브, 포지티브.”
에드워드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이며 다년간의 훈련경험을 되새긴 이때의 아이작은 안타깝게도, 케일리가 안고 있는 문제의 원인이 이론의 부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 ◆ ◇
정오 무렵 도착해 빠듯하게 채워진 테스트를 끝낸 것은 저녁을 마치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바깥세상과 흡사한 일몰의 전경이 창밖을 장식하기 시작할 무렵, 별달리 피곤한 기색이 없는 케일리는 어느새 식사를 마친 후 제 몫의 식기를 정리하고 있었다. 미식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바에야, 인간과 같은 식사를 챙겨먹을 필요가 없는 에드워드는 아이작과 함께 테스트 결과를 되짚던 참이었다.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케일리가 그들을 향해 물었다.
“오늘 스케줄은 이걸로 끝인가요?”
인간인지 인공지능인지 의심스러운-아이작은 개인적으로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케일리의 물음에 그는 싱긋, 영업용 스마일을 띤 채 투철한 서비스정신으로 상냥한 설명까지 덧붙여 대답을 돌렸다.
“그렇습니다. 본격적인 훈련은 스케줄상 내일 오후부터 합류할 수 있을 테니 오늘은 돌아가서 푹 쉬세요. 사실 테스트도 각 과목의 담당 교관에게 받아야 하는데, 지금 이쪽 인원이 훈련 나가 있어서 건물이 텅 비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대신 맡은 것뿐이라, 내일부터는 각 과목의 교관들에게 지도를 받게 될 겁니다.”
그러고 보니 테스트를 위해 제법 돌아다니는 내도록 한 번도 다른 이종과 마주치지 않기는 했다. 식당에는 식사를 배식하는 담당자가 서 있었지만 저녁을 먹으로 오는 발길은 없었고 사격장부터 시작해서 페이퍼 테스트를 친 대학 강의실을 연상시키는 넓은 공간에서도, 체력검사를 받은 야외훈련장에서도, 에드워드와 아이작을 제외한 얼굴은 만나지 못했다.
훈련을 ‘나가 있다’라는 게 어디를 뜻하는 건지도 의문이었지만, 아이작의 설명에서 등장하는 어휘의 사용이 매우 불길했다.
“강사가 아니라 교관……?”
“네. 일단은 입사 전 연수라고 부르고야 있지만, 세부 내용은 대충 특수부대 훈련보다 허들이 높다고 보면 얼추 틀린 말은 아니라서요. 기본적으로 -B 지구 자체가 정부 산하기관이기도 하고, 이종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보니 요구되는 능력치가 높은 편이죠. 일종의 자치 정부 안의 군대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그러니 연수가 아니라 훈련, 강사가 아니라 교관이 맞는 표현이 됩니다.”
“훈련에서는 정확히 뭘 하는데요?”
점점 어두워지는 케일리의 표정에도 굴하지 않고 아이작이 화사한 미소를 돌려보냈다.
케일리가 아직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것을 떠올린 참에 들고 있던 파일 속에서 수 페이지의 소책자까지 꺼내 간략하게 정리된 스케줄 페이지를 펼쳐 보였고 내일부터 훈련에 참가하게 될 가련한 예비요원에게 닥칠 시련을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개인 퍼포먼스가 중요한 훈련은 사격과 행군 정도고, 나머지는 전부 팀워크와 전략전술 훈련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월요일에 각종 이론 강의가 몰려 있고, 화요일부터 수요일에는 무박 2일로 지하시설에 준비된 숲 속으로 행군을 나가죠. 총 거리는 200킬로미터인데 완전 군장 하고 나가니까 처음 하는 사람한테는 좀 힘들 겁니다.
참고로 거기도 팀플레이기는 하지만, 요는 무박 하면서 끝내야 하는 거라 다른 팀 견제하고 떨궈내면서까지 하는 팀은 드물어요. 제 몸 챙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되니까요. 그리고 팀 내 탈락자가 생기면 전원 불합격이니 자기 팀 정도는 챙겨야 하죠.
행군 끝나면 목요일 반나절 쉬고 오후부터 금요일까지 랜덤으로 배치된 팀 대항으로 ATT(Army Training Test 전술 훈련), 끝나면 주말 동안 ATT 성적 우수 팀은 쉬고 나머지 팀은 반성의 의미로 1박짜리 행군을 나가죠. 가끔 행군 말고 다른 게 걸릴 때도 있는데, 그럴 땐 보통 밖에 나가요.”
오늘은 주말이었고, 아이작이 말하는 스케줄대로라면 성적 우수 팀은 쉬고 나머지 팀이 반성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반성의 의미로 행군……. 지금껏 살아오며 들은 반성 중 가장 골수에 와 닿는 방법의 반성이었다.
자신이 입사한 직장에 대해 크게 잘못 생각한 것 같다는 사실을 깨달은 케일리가 잠시간 말을 잃은 사이, 아이작이 산뜻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케일리는 팔도 하나 못 쓰고, 중도 참가라 다른 사람들보다 훈련 숙련도도 떨어질 테니까 어느 정도 핸디캡은 있을 거예요. 그만큼 점수가 낮아질 수는 있는데……. 사실 이 연수에서 훈련 성적이 정하는 건 연봉과 파트너 레벨뿐이거든요. 연봉에 크게 미련이 없으면 파트너 문제가 되는데, 케일리의 경우 정규채용이 아니니까 성적에 너무 연연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아니 제가 걱정하는 건 그런 게 아니라…….”
아이작의 핀트가 어긋난 상냥함에 케일리는 자신이 원하는 건 연봉이나 누가 누가 파트너가 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저차원적인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대체 왜, 입대를 한 것도 아닌데 완전 군장을 하고 행군을 해야 하며,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팀을 짜서 ATT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이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잠시간 고민에 빠졌다.
탈락자가 생기면 전원 불합격. 성적이 저조한 팀은 반성의 의미로 1박 행군이라니. 현대 영국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전체주의 파시즘적 운영을 당당히 자행하고 있는 정부의 비밀시설을 BBC에 제보하고 싶었다. 그러면 자신은 기껏 새로 얻은 직장을 잃게 되겠지만, 적어도 같은 피해를 입게 될 미래의 신입요원들을 파시즘의 구렁텅이에서 지켜낼 수 있겠지.
진심으로 재취직을 생각해야 하나 갈등하기 시작한 케일리의 어두운 표정에 아이작이 덩달아 걱정 담긴 얼굴로 그의 안색을 살폈다.
“아, 에드워드랑 파트너 하는 게 싫어서 그런 겁니까? 아무래도 그 부분만은 어쩔 수가 없다 보니……. 페어리 마법조건에 통과해서 에드워드의 파트너로 구인된 거라, 마법계약을 바꿀 수는 없거든요.
사실 케일리 정도면 전략전술만 어느 정도 익혀놓으면 충분히 우수한 요원이니 이쪽에서도 가능한 한 희망사항을 들어주고는 싶지만, 아무래도 이 경우 에드워드가 우리 쪽 실적의 5할을 차지하는 괴물딱지다 보니…….”
바로 옆에 있는 에드워드에게 모든 책임을 돌린 아이작의 말에 잠자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에드워드가 불쑥, 삐뚜름한 자세로 손을 뻗어 아이작이 들고 있던 소책자의 스케줄 부분을 툭툭 두드리며 끼어들었다.
“걘 파트너가 나라서 문제라는 게 아니라, 훈련 내용이 좆같아서 문제라고 하는 거다, 이 머저리야.”
신랄한 에드워드의 말에 상처받은 표정을 한 아이작이 구원을 요청하듯 케일리를 쳐다보자.
“맞아요, 저는 훈련 내용이 문제라고 생각한 것뿐이에요.”
기대를 배반하고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케일리가 말을 이었다.
“에드워드가 파트너인 건 아무래도 좋지만, 훈련 내용과 초과업무시간을 노동법 위반으로 고소하고 싶어졌는데, 여기 정부기관이고 예외 업종에 속한다고 했죠……. 입사 도로 무를 수는 없나요?”
“아하하, 농담을 재밌게 하시네! 계약서 사인할 때 다 적혀 있잖아요. 연수에서 탈락하는 것 외에는 계약기간만큼 일해야만 하고, 마법으로 구속되는 계약이기 때문에 파기방법은 원론적으로는 더 강한 마법으로 부딪히는 것밖에 없어요.
그런데 아마 지구에 있는 마법사 중에 페어리보다 강한 마법을 쓰는 건 용 정도밖에 없는데, 케일리를 대신해서 페어리와 척질 만큼 친한 용 알아요? 그럼 이야기가 좀 달라지고.”
용이라면 한 마리 아는 얼굴이 있었으나, 지구에 있는 용을 제외한 마법사 중에 가장 강하다는 페어리와 기꺼이 적이 되어줄 만큼 친한 용은 없었다. 우스갯소리처럼 받아친 아이작의 말에 케일리의 얼굴은 피크닉 날 아침 호우주의보라도 본 사람처럼 어두워졌다.
“자, 그럼 숙소로 돌아가는 길까지 마중해줄게요. 오늘은 보안카드가 없으니까 제가 직접 나갔지만, 내일 아침에는 마중 나간 사람이 케일리의 카드를 줄 테니 직접 여기까지 오갈 수 있을 거예요. 다른 훈련자들은 전부 연수시설에 머무르기 때문에 출퇴근을 하지 않으니까, 출근 늦지 않도록 조심하고요!”
소책자를 내밀며 건넨 아이작의 말에 케일리가 그것을 받아들며 대답했다.
“그럼 저도 오늘부터 여기 머무르는 걸로 해주세요.”
“뭐, 방이야 많으니 문제없기는 한데, 갑자기 왜……? 역시 에드워드랑 파트너 하는 게 싫은 거 아니에요?”
페어리의 말에 따르면 재고의 여지 없이 에드워드의 숙소를 골랐다던 케일리가 갑자기 마음을 바꾼 이유를 알 수가 없어-무엇보다 훈련 내용이 아주 마음에 안 든다고 스스로 표명할 정도였기 때문에.- 아이작이 이유를 묻자, 케일리가 단칼에 대답했다.
“아뇨, 출퇴근하기 귀찮아서요.”
“그……, 이유가 그거라면 처음부터 이쪽으로 오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처음에는 출퇴근 생각을 안 했어요.”
“그럼 무슨 생각으로……?”
“모르는 사람이 더즌으로 있는 거랑 모르는 뱀파이어가 하나 있는 것 중에 택일하는 생각이었죠.”
아이작은 더 이상 묻는 것을 포기한 채 이번 기수 연수생들이 쓰고 있는 플로어에 새로운 방을 내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