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41)

#Mission3. Edward in wonderland (4)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새벽 한가운데에서 숙소에 돌아오니 벽에 걸린 시침이 4를 가리키고 있었다. 성큼 침대로 걸어온 에드워드는 단잠에 빠진 케일리의 엉덩이를 걷어차기 위해 다리를 치켜올렸다. 당장 일어나지 않으면 그대로 내리꽂힐 듯 인내심이 없는 에드워드의 다리가 예고 없는 수직하강을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일어나!” 하는 성의 없는 목소리가 던져졌다.

“왜요?”

방금 전까지 숙면을 취하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말끔한 얼굴을 한 케일리가 벌떡 일어났다. 깜짝 놀라 허공에 한 다리를 치켜든 채 잠시간 말을 잃은 에드워드가 표정을 구겼다.

이 새끼는 잠도 꼭 지놈처럼 깨네? 진짜 자고 있던 거 맞아?

자고 있는 놈들을 깨워본 게 처음이 아니었건만, 이런 식으로 잠에서 깨는 놈은 확실히 처음이었다. 렘수면도, 논렘수면도 아닌 케일리 수면이라도 취하고 있었던 걸까.

가늘게 뜬 눈으로 의심을 담아 그를 내려다보자 맑은 밤색 눈이 마주쳐왔다.

“좋은 아침이네요.”

지지리도 케일리스러운 놈 같으니라고.

더 이상 그를 욕할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은 에드워드가 다리를 내리며 대답했다.

“완전 군장을 하고 수백 킬로를 걸어야 하는 환상적인 아침이지.”

훈련 시작을 위한 소집 시간은 5시였기 때문에 아직 한 시간 남짓의 여유가 있었지만, 에드워드가 보기에 케일리는 군장이 뭔지도, 완전 군장이 뭔지도 모르는 생초짜가 분명했다. 그런 놈이 팔 하나를 덜렁거리며 낑낑대다가는 한 시간이 웬 말인가. 준비하는 데만 그 배가 걸릴 테지.

그런 이유로 새벽 한복판에 케일리를 깨워놓은 건 아니었고, 그저 새근새근 잘도 자는 케일리가 어딘지 얄미워 일찌감치 두들겨 깨우려고 작정을 하고 있던 에드워드는 그가 기상 후 약 십오 분이 지난 시점에서 다친 팔을 피해서 의외로 안정된 군장을 마친 것을 바라보며 칫, 혀를 찼다.

물론 군장 안에는 알기 쉽게 설명된 매뉴얼이 들어 있기는 했지만-군 지급품과 같은 것을 사용하기 때문에 제조사의 친절과 배려가 동봉되어 있었다.- 초짜면 초짜답게 서투른 모습도 보여야 인간미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요령 좋게도 탄창까지 그나마 움직이는 제 손이 닿는 위치에 옮겨다는 모습을 보며 에드워드가 혀를 내둘렀다.

쟤 혹시 전생에 2차 대전 참전했던 참전 용사라 몸에 전투 기억이 남아 있다거나 뭐 그런 건가? 근데 저 군장은 21세기에 나온 제품이잖아. 웃기지도 않는 놈.

세상 모든 사람이 설명서만 가지고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면 서비스 콜센터 직원들이 좀 더 편한 삶을 살았으리라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에드워드가 느긋하게 자신의 군장을 챙기는데, 이미 제 준비를 끝마친 케일리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여기 지급 화기가 소총뿐인데요.”

어째서 내부훈련에 실탄과 총까지 짊어지고 나가야 하는지는 의문이었지만, 어쨌든 필요한 것을 모두 챙긴 케일리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팔뚝 길이만 한 소총을 집어 들고 고민에 빠졌다. 설마 이것밖에 없는 걸까. 설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느새 제 몫의 군장을 끝낸 에드워드가 힐끗 케일리를 쳐다보더니 픽 웃으며 대답했다.

“너 군대에서 권총 쓴다는 소리 들어봤냐?”

확실히, 들어본 적이 없기는 했다. 하지만.

“여기…… 군대 아니잖아요.”

군장을 짊어 진 시점에서 그 말이 통용될지는 의문이었지만 어쨌든 이곳은 명목상 군대가 아니었고 새벽부터 쫓아 나가야 하는 이 상황 또한 훈련이 아니라 연수였다. 그러므로 군대와 같은 룰을 적용할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 케일리의 주장이었다. 에드워드는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 웃음소리조차 내지 않고 그를 비웃었다.

“군장에 권총 끼고 간다는 말은 들어봤고?”

억울했다. 스스로가 사격을 어렵다 생각한 적이 없기는 했지만, 세상에는 물리법칙상 불가능한 것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자면, 물구나무를 선 채 다리로 걷는 것이라든지, 트렁크에 타고 액셀을 밟는 것과 같은 행위가 그러했다. 그리고 양손으로 조준하도록 만들어진 소총을 한 손으로 쏘는 것도 비슷했다.

실탄을 쏘는 것뿐이라면 탄창 장전하고 조준하고 안전장치 풀고 방아쇠를 당기는 걸로 끝나겠지만 사격이란 실탄을 쏘기만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조준에도 양손이 필요하고 사격 시 반동으로 인한 조준 이탈을 방지하는 데에도 양손이 필요했다. 애초에, 한쪽 손을 못 쓰면 차라리 탄창을 빼고 소총을 둔기로 사용하는 것이 훨씬 명중률이 높았다. 그냥 배트처럼 휘두르면 되니까. 휘두르는 거라면 한 손으로도 가능하다.

케일리가 상식적인 반박을 떠올리다 말고 에드워드를 향해 물었다.

“뱀파이어는 한 손으로도 소총이 쏴지나 봐요?”

만약 종의 차이 때문에 그가 자신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라면 납득이 갔다. 그렇다면 인간의 육체적 한계는 여전히 양손 없이 소총을 쏠 수 없을 정도로 미개하다고 알려줄 셈이었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깨끗하게 빗나갔다.

“실탄 버릴 일 있냐? 당연히 두 손으로 쏘지.”

아무래도 소총과 탄창이 전부 무용지물이 될 것 같았다.

“그럼 화기는 놓고 가도 될까요?”

솔직한 심정으로, 케일리가 생각하기에 이 훈련에서 굳이 실탄을 쓸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제 저녁식사를 하며 본 인간들은 어느 정도 상식이 있어 보였고 총을 쥐었다고 신이 나서 쏘아 갈기는 정신 이상자는 아닐 것이었다.

라이칸들이야 아직 두 마리밖에 겪지 못해 모르겠지만, 그들 또한 자신이 스트랩을 가진 훈련생이라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이를 갈면서도 돌아섰다. 그러니 상식선으로 화기 없이도 사흘 정도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는데.

“그거 없이 어떻게 싸우려고?”

에드워드의 생각은 아닌 모양이었다.

“대관절 적군도 없는 훈련상황에서 누구와 왜 총까지 들고 싸워야 하는지 이해가 잘…….”

“네가 열심히 만들어놨다는 적은 생각 안 나냐? 그 개새끼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고? 사흘이나 풀밭에 풀어놓은 상태에서?”

“하지만 그분들이 먼저 시비를 거셨는데요.”

“당사자들한테 중요한 건 늘 결말이지.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가 중요한 건 높은 애들이 누구부터 조질까 결정할 때뿐이고.”

그 말을 들으며 케일리는 들고 있던 소총을 미련 없이 내려놓았다. 쓸데없이 무거운 여분의 탄창과 총알까지 내려놓으니 적어도 4킬로그램은 줄어든 기분이었다.

에드워드로 말할 것 같으면, 구구절절 입 아프게 개인 화기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해놨더니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것처럼 그걸 죄 풀어놓는 케일리가 어이가 없었다.

아무렴 저도 인간인데, 전과 같이 상대가 구울이라 이종족임이 확실한 상황이 아닌 데에야 같은 인간들과 총질을 해야 한다는 데 거부감이 든 것일 수도 있었다. 라이칸이 섞여 있다 해도 훈련생의 반절은 평범한-진짜 평범한 인간들이 들으면 쌍심지를 켤 일이었다.- 인간이었다.

무기를 내려놓는 저 멍청한 행동은 동족상잔에 대한 일반적인 인간의 사고인가, 짐작하며 에드워드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야, 너 내 말 제대로 들었냐? 그거 없으면 네 흐물거리는 대가리에 바람구멍이 날지도…….”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케일리가 멀쩡한 왼손을 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

“권총 주세요.”

“……뭐?”

“어차피 저건 가져가봤자 못 쏘잖아요. 쓸 수 있는 무기를 달라고요.”

거, 너 혹시 나한테 언제 무기 맡겨놨었냐……?

저도 모르게 허리춤에 차고 있던 글록을 툭 던져준 에드워드가 빈 허리춤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요령 좋게도 깁스한 팔과 겨드랑이 사이에 총을 끼워 장전상태까지 확인한 녀석은 마치 처음부터 제 것이었다는 양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챙겨 넣었다.

“하나뿐이에요?”

“넌 내가 무슨 걸어다니는 무기고로 보이냐?”

“권총 하나로 소총 들고 다니는 애들이랑 싸우기 힘든데……. 뭐, 없는 걸 아쉬워해서 어떡하겠어요. 하는 수 없죠.”

나름대로 납득한 모양이셨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젖은 에드워드가 군장을 짊어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왼쪽에 유난히 무게가 실린 언밸런스함을 자랑하는 완전군장을 한 케일리가 숙소 문을 열고 나서며 에드워드를 돌아보았다.

“또 뭐?”

진짜로 더 없다며 허리춤을 두들겨 보인 에드워드를 향해 케일리가 뻔뻔하게 물었다.

“혹시 여분 탄창 가진 건 없어요?”

얜…… 어디 던져놔도 목숨 부지 못할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겠다.

아직 며칠 겪지도 못한 미래의 파트너에 대한 새로운 페이지가 쓰이는 순간이었다.

◇ ◆ ◇

소집장소인 1층 로비에는 완전군장을 한 수십 명의 사내들이 우글거렸다. 분명 좁은 곳은 아니었음에도 보기만 해도 갑갑해지는 광경이었다.

인구밀도가 높아 숨 쉬기도 힘들어 보이는 그 안으로 섞여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케일리와, 밑으로 내려오는 내내 잔뜩 구겨진 얼굴을 한 에드워드는 반반으로 나뉘어 시끌벅적한 두 무리에서 조금 떨어진 구석에 섰다.

아무래도 오른쪽에 매튜와 시릴의 모습이 보이는 걸 보니 그쪽이 라이칸, 왼쪽이 인간인 모양이었다.

“오, 에드워드. 자네도 훈련에 참가하는 건가? 자네가 임무에 실패했다는 말만 해도 믿기 어려웠는데, 심지어 훈련에 참가하기까지 한다는 소리를 아이작에게 들었을 때는 어디서 쓰레기 같은 약을 하고 왔나 다들 말이 많았네만 내 눈으로 군장 한 모습까지 봤으니 믿을 수밖에 없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림과 동시에 어제 연수에서 본 강사들과는 또 달랐지만, 같은 로고가 새겨진 제복을 차려입은 중년의 사내가 제일 먼저 발견한 에드워드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안 그래도 구겨진 표정에 험악함이 더해졌고, 여유롭게 손까지 흔들며 여유로운 얼굴로 복장을 뒤집는 교관을 향해 에드워드가 대답했다.

“할 일이 그렇게 없나 보지? 심심하면 발이나 닦고 잠이나 처자. 시도 때도 없이 휴대전화를 들고 트위터나 하는 애새끼들이 나을 지경이로군. 낫살이나 먹어서 사방팔방에 궁금하지도 않은 네놈의 일과를 떠벌리는 꼴이랑 비교하면 그네들은 양손으로 휴대전화를 움켜쥔 꼬락서니가 웃기기라도 하니 말이야.”

비죽 올라간 비틀린 얼굴에서부터 흘러나온 신랄한 비꼼에 교관은 쯧쯧, 고개를 가로저으며 반박했다.

“에드워드, 트위터가 뭔지도 아는가? 드디어 21세기의 문명에 적응할 마음이 들었다니 다행이야.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는 세대가 안 맞아서 트위터는 안 한다네. 주로 사내 인트라넷의 익명 게시판을 이용하지.

거기에다 아이작이 자네가 훈련 참가한다고 신이 나서 글을 올려놨거든. 한번 보러 가지 그러나? 줄줄이 달린 코멘트가 아주 가관일세.”

심지어 빨리 가서 확인해보라며 조언까지 던져주는 모습에 에드워드는 묵묵히 발을 들어 지나가는 교관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별안간 군홧발에 걷어차인 중년의 교관은 “어이쿠야, 훈련생이 교관 잡네!” 하고 그것 참 작위적인 대사를 읊으며 경악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훈련생들의 사이를 헤쳐갔다.

“대충 모인 것 같군.”

제일 앞자리에서 짝짝, 손뼉을 치자 그에게로 시선이 주목되었다.

“제군들, 저번 훈련에서도 본 얼굴들이니 따로 소개는 필요 없겠지. 오늘 훈련은 2주차 특별 프로그램으로, 기존의 무박 2일 행군에서 추가된 내용이 있는 것이라네. 한 번만 설명할 테니 잘 듣도록.”

로비를 채운 훈련생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소란스러웠던 흔적은 간데없었고, 숨소리 하나 없이 조용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목적지까지는 헬기로 이동하며, 행군 거리는 총 300킬로미터다. 목적지로부터 이곳 기지까지 일직선으로 걸어오면 그 거리라는 거고, 직선거리 횡단이 안 되면 더 길어질 수도 있지.

총 일정은 무박 4일. 도착해보면 알겠지만 지형적 여건이 아주 까다로운 곳이다. 제군들이 어제 배운 신선한 생존술을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지.”

그 말에 케일리의 표정이 밝아졌다. 목적지까지 행군, 돌아오는 길도 행군인 것보다야 훨씬 나았다. 직선 횡단이 안 될 수도 있다는 말에는 다소 실망했지만, 가능한 한 짧은 거리를 고르면 대충 300킬로미터 내외로 도착할 수 있으리라는 뜻이었다. 무박 4일, 즉 원래 2일, 2일로 나누어지는 훈련을 하나로 합친 내용이라는 말이니 이번 훈련을 빨리 끝낼수록 휴식시간은 반비례해서 길어졌다.

어제 배운 신선한 생존술이라는 게 다소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말이었다.

“이번 프로그램의 목적은 첫째, 필드요원의 기본형태인 2인 1조 팀 운용의 간접경험이며, 둘째, 각종 임무상황에 따라 내외부에서 다른 팀과의 합동작전을 대비한 유닛 단위의 ATT(전술 훈련)을 경험하는 것이다. 자신의 유닛을 제외한 모든 유닛이 적이지만, 현재 같은 유닛을 짠 팀은 아군이다.

자신의 유닛을 지키며 다른 유닛을 낙오시키는 것 또한 전술의 일환이지. 다른 유닛과 손을 잡고 세력을 형성하는 것도 가능하네. 어쨌든 목적은 자신이 소속된 유닛을 최소한의 피해로 가장 먼저 골인시키는 것이라는 걸 새겨두게.”

결국 이곳에 있는 누구라도 적이 될 수 있었으며, 동시에 누구든지 아군으로 포섭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차라리 아군 적군이 완전히 정해지는 편이 쉬웠다.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전략전술을 짜야 했고 누구와 손을 잡을지, 누구를 적으로 삼을지 모든 것을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한다는 것은 의외로 난이도가 높은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훈련을 하면 실전에 투입됐을 때 어떤 식으로 기지를 발휘할지, 혹은 어디가 그 요원의 바닥인지까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기는 했다. 자신이 훈련생이 아니었더라면 참 잘 짜인 프로그램이라며 긍정했으리라 생각하며 케일리는 침울한 표정으로 이어지는 교관의 설명을 경청했다.

“이번 훈련에서는 2인 1조를 짤 팀원을 임의로 선택할 수 있다. 랜덤이 아니지. 2인 1조 팀을 짤 상대를 정하면, 유닛을 맺을 다른 팀을 정한다. 한 유닛은 최소 1팀, 최대 5팀까지로 제한되어 있지. 즉, 자신이 있다면 다른 팀과 공조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참고로 무조건 1등으로 도착했다고 그 팀이 승리하는 것은 아니니 주의하도록.”

결국 이 훈련의 맹점은 ‘누구와’ 팀을 맺을 것이며, ‘어느 팀과’ 유닛을, 즉 동맹을 맺을 것인지에서 이미 결과가 판가름 나는 것과 진배없었다.

훈련생들의 수준이 비등하면 비등할수록 의외의 결과를 불러올 가능성도 있었지만 글쎄, 개개인의 역량이 높은 이들끼리 팀을 먹으면 결국 그 우수한 팀이 승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랜덤 훈련보다 훨씬 까다로운 새로운 훈련 내용에, 훈련생들 사이를 빠른 눈빛이 오갔다.

누구와 팀을 짜는가. 어느 팀과 유닛을 짜는가.

그것이야말로, 다른 훈련생들의 역량을 파악하는 능력, 타인의 능력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능력, 스스로의 위치를 파악하는 능력을 요하는 훌륭한 전술적 판단을 필요로 하는 이 훈련의 첫 번째 스텝이었다.

“최종결과는 등수, 유닛의 피해상황, 실제 훈련 안에서 벌어진 전투의 전략전술, 그리고 각종 생존술을 종합해서 나온다. 훈련지에서는 모든 상황이 영상으로 기록되니 주의하도록. 또한, 모든 요원들에게 GPS가 붙어 있으며 바이탈-맥박, 혈압, 호흡, 체온 수치.-을 감시하고 있으며 위급상황에서는 교관이 투입되기도 한다. 다만, 당장 목숨이 오가는 정도의 위기가 아니면 자체 해결하기를 권장하고 있으니 참고하도록.”

거기까지 단숨에 설명을 끝낸 교관이 벽에 걸린 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 그럼 지금 여기서 팀을 짤 시간을 주겠다. 시간은 오 분이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인간은 인간대로, 라이칸은 라이칸대로 두 명씩 짝을 지어가기 시작했다.

오 분이라……. 지나치게 짧았다. 통성명만 해도 반은 사라질 짧은 제한시간 동안 4일간 동고동락할 파트너를 구하라니. 너무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에, 케일리는 분주하게 팀을 맺기 시작한 사람들 중 제일 가까이에 있던 훈련생의 팔을 붙잡았다.

바로 지척에 있던 에드워드가 그것을 눈치채고 채 말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저랑 파트너 하지 않으시겠어요?”

별안간 팔뚝을 잡힌 사내가 미간을 좁히며 케일리를 향해 물었다.

“뉘신지……?”

아차차. 자기소개를 잊었다. 케일리는 제일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이유로 잡아 세운 훈련생의 얼굴이 어제 저녁식사 때 특수부대 전역자라고 소개받았던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운이 좋네. 특수부대 전역했고 팔도 둘 다 멀쩡하니 쓸 만하겠어.’

“아, 저는 케일리입니다. 어제부터 훈련에 합류해서 아는 얼굴이 없네요. 어쨌든 잡담은 됐고, 저랑 파트너 하지 않으시겠어요?”

“싫은데. 난 벌써 파트너 정했어. 딴 데 가서 알아보슈.”

별 비리비리하게 생긴 게……, 라고 결코 작지 않은 중얼거림과 함께 멀어지는 사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케일리는 침울한 얼굴을 했다.

설마하니 여기 있는 사람을 한 명씩 다 붙잡고 물어봐도 같은 반응이 돌아오는 걸까? 비리비리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아무리 생존과 관련된 일이라지만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는 건 나쁜 일이다. 모든 사람은 인류라는 공통점 안에서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케일리에게 있어서-설사 그것이 사람을 차별하는 것에 대한 지독한 귀찮음에서 비롯했다 할지라도.- 사내의 반응은 꽤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케일리의 행동은 옆자리에 서 있던 에드워드에게 충격을 주었다.

“너…… 지금 뭐 하냐?”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는가 싶더니 다시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을 잡으러 걸음을 내딛는 케일리를 불러 세웠다. 에드워드의 물음에 케일리는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양 대답을 돌렸다.

“뭘 하긴요, 파트너 구하죠.”

“…….”

머리가 나쁜 건 아니라고 했던 것도 전부 취소다. 아주 끝내주는 새대가리임에 틀림없는 미래의 파트너를 바라보며 에드워드는 잠시간 말을 골랐다.

네 두개골 속에는 뇌를 대신해서 정어리 파이를 넣고 다니냐고 해도 ‘제 머리가 도시락으로 보이나요?’ 따위의 핀트 어긋난 대답이 돌아올 것 같아 다른 놈들과 차별화된 직설법을 고르기로 마음먹었다. 괜히 저 녀석을 비꼬아보려다 자신의 내장이 뒤틀릴 가능성이 높았다.

“파트너를 왜……?”

“왜라뇨, 훈련 참가해야 하잖아요.”

“야 너……, 그 훈련을 왜 참가하는 건지는 기억하지?”

“당연하죠. 임무 시작하기 전에 연수 통과해야 정식 고용되는 거라고……. ……그러네요, 구할 필요 없었네요.”

괜한 체력소모를 했다며 자책하는 케일리를 보며 네놈의 사고방식에는 필요와 불필요에 따라 에너지를 쓰고 아끼고밖에 없느냐고 멱살이라도 잡고 짤짤 흔들며 묻고 싶었지만 그만뒀다. 아무래도 대답을 들어봤자 자신의 답답함만 늘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말로 하면 알아들을 귀는 있는 것 같다는 부분 정도일까. 말만 알아듣지 말고, 분위기를 파악할 줄 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았지만 말이다.

정확히 오 분이 경과한 순간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팀을 만들지 못한 훈련생은 아무도 없었다. 두 명씩 짝을 지은 훈련생들을 바라보며 교관이 말했다.

“그럼 앞으로 오 분을 더 줄 테니, 동맹을 맺을 유닛을 정해라. 물론 본인의 팀만으로도 자신이 있다면 유닛을 만들지 않아도 좋다. 그 경우 두 명을 최소 인원 1 유닛으로 계산한다.”

처음의 설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팀플레이 내용이었다.

“최소 유닛 단위는 한 팀에 두 명이며, 최대 다섯 팀 열 명까지로 제한을 두겠다. 유닛간의 동맹을 맺는 것도 가능하지만 최종평가에서 각각의 유닛별로 점수 계산이 따로 들어가니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다. 결국 초반에 유닛끼리 동맹을 맺으면 후반 동맹 유닛간의 경쟁이 필요하게 된다. 그 룰까지 포함해 전략전술 평가에 들어간다는 걸 염두에 두도록.”

결국 한 유닛 이상의 동맹을 만들어봤자 최종평가는 따로 들어가니 신중히 판단하라는 뜻이었다. 하기야, 그렇지 않으면 유닛 대항전을 하는 의미가 없다. 어쨌든 실전에서는 최종적으로 자신이 소속된 조직의 이득을 취해야 하니 반목하는 관계가 훈련처럼 쉽게 동맹으로 돌아서기는 어려울 테니 말이다.

“시작.”

교관의 말을 신호로 로비는 순식간에 스스로의 팀을 사고파는 프리마켓이 되었다. 이미 안면을 익히고 한주간의 합동훈련을 마친 탓인지 어느 정도 성향과 역량파악이 된 팀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동맹이 맺어졌다.

굳이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팀 대항 훈련에서는 인원이 많을수록 유리했다. 무엇보다 전략전술에서는 한 사람의 가치가 전술적 접근방식 자체를 바꿔놓는 중요한 리소스로 작용했으니 최대 제한수인 다섯 팀을 채워 유닛을 만들려는 그들의 시도는 적절했다. 바로 눈앞에서 훈련생들이 삼삼오오 유닛을 구성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별다른 감흥이 없는 얼굴로 케일리가 말했다.

“우리도 유닛 만들어야 할까요?”

“글쎄, 지금 나한테 누린내 나는 개새끼들과 음식물 쓰레기 중에서 협력할 대상을 골라달라는 조언을 구하는 거라면 양쪽의 정신건강을 위해 처음부터 안 만드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겠지.”

“이유는 다르지만 저도 썩 내키지는 않아서 그냥 이대로 가면 될 것 같네요.”

총 일 분도 걸리지 않은 유닛 결성은 그렇게 끝이 났다. 에드워드와 케일리는 2인 1조의 최소 유닛으로 훈련에 임하기로 결정했다. 에드워드로서는 별달리 부담을 느끼는 조합도 아니었던 것이, 애초에 그의 눈에서 로비를 꽉 채운 훈련생들은 기껏해야 인간이 아니면 새끼 라이칸이었고 과장을 보태지 않아도 한 손가락 정도면 처리할 수 있는 압도적인 신체능력의 차이가 있었다.

그 와중에 케일리라는 자신의 예비 파트너로 말할 것 같으면, 이미 구울과의 전투에서 제 능력을 충분히 증명해 보였으니 달고 다니면서 크게 거슬리지는 않겠거니 생각한 탓이었다. 당연하게도, 케일리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모르는 이들과 팀을 짜고 전술전략까지 짜며 행동하는 것보다는, 아는 뱀파이어 한 명과 공조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라 판단했을 뿐이었다. 어찌됐건 두 사람은 의견이 일치된 시점에서 남은 사 분간 유닛을 만들기 위해 동서분주하는 훈련생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채 가만히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또한 당연하게도, 에드워드는 누린내 나는 개새끼라 칭해진 라이칸들과 음식물 쓰레기라 칭해진 인간들이 별달리 조심히 내뱉지도 않은 말을 받아들이고 불쾌한 기색으로 그들을 힐끔거린다는 사실도 알아챘지만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분위기를 파악하고 눈치를 보는 것조차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로 여기는 케일리만이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평화로운 심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기껏해야 최장 나흘짜리 훈련에 왜 완전군장이 필요하죠?”

바리바리 짊어진 군장을 하고 셀프 세일즈를 하는 훈련생들을 바라보며 케일리가 문득 말을 꺼냈다.

그것도 그랬다. 완전군장이란 기본군장에 장기주둔을 위한 생필품을 추가한 것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때 짊어지고 움직이는 건 평범한 에너지 낭비였다.

전투에 집중하기만 하는 데에도 필요한 것들이 산더미인데, 생필품까지 챙기고 다녀야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의 적절한 지적에 에드워드는 간단히 답을 돌렸다.

“완전군장이 훨씬 무거우니까.”

선진국의 가전제품 개발팀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은 에너지 효율 신봉자인 케일리로서는 결코 납득할 수 없는 답이었다.

“필수인 이유가 무거워서라고요?”

“네 말대로, 기껏해야 나흘에 텐트에 갈아입을 옷까지 바리바리 짊어지고 가는 이유가 따로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그럼 나 이거 다 놓고 가도 되나요?”

“일부러 무거우라고 들려 보냈는데 놔두고 가라고 할 것 같아?”

픽 웃으며 대답한 에드워드에 케일리는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 양 절망적인 얼굴로 망연히 중얼거렸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죠? 그건 마치 저를 힘들게 하려고 일부러 쓸모도 없는 군장을 준비했다는 것처럼 들려요.”

“그것 참 빨리도 눈치챘군 그래.”

자신이 몸담은 직장이 어떤 장소인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에드워드는 멀찍하니 떨어져 있는 교관을 응시하며 억울한 시선을 보내는 케일리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여기 교관들이 하나같이 글러먹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라면, 동감이야. 이 시설에 처박혀 있는 놈들치고 제정신 박힌 놈이 없지. 내가 100년은 굴러서 아는데, 그냥 포기하는 게 빨라. 저 새끼들이랑은 말이 안 통하거든.”

지금껏 발을 맞춰왔던 파트너들에게 악감정이 있을지언정, 아직 별다른 문제를 저지르지 않은-적어도 집안을 짐승 소굴로 만들거나, 야밤에 습격해 뱀파이어 요리를 만들려 시도하려는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케일리에게 크게 반감을 가질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에드워드는 -B 지구의 행정 직원들을 싫어했으면 싫어했지 결코 좋아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함께 욕을 해줄 상대가 나타났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그의 신랄한 평에 케일리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말이 안 통하는 상대와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어쩔 수 없었다.

별로 쓸모는 없지만 꼭 짊어지고 나가야 한다는 완전군장은 훈련지에 도착하면 아무 데나 던져버리고 움직여야지. CCTV가 있다고는 하지만 일부러 버렸는지 분실한 건지 모르도록 교묘하게 투기하면 될 거다.

그렇게 케일리가 힘만 낭비하게 만드는 군장에 대해 은밀한 계획을 세우는 사이, 제한시간 오 분이 흘렀고 총 일곱 개의 유닛이 만들어졌다. 라이칸으로 구성된 열 명 단위의 2유닛, 그리고 인간으로 구성된 열 명 단위의 4유닛, 마지막으로 인간 하나와 뱀파이어 하나로 이루어진 두 명 단위의 1유닛.

케일리와 에드워드를 제외한 전 훈련생이 최대 유닛 인원을 채우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인간 두 명으로 구성된 유난히도 약소한 유닛 구성을 보며 혀를 끌끌 차며 교관이 다가와 말했다.

“거참. 아무리 에드워드 자네 팀이라지만, 이거야 원 다른 훈련생들 보기에 너무 불공평하지 않겠나?”

“내가 이 훈련에 참가하는 것 자체가 불공평하다고 하면 이해가 가겠군.”

“뭐,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이번 쿼터 훈련생들은 레벨이 높아. 다들 현역에서 쌩쌩 구르다 와서 전투센스도 훌륭하고 당장 필드에 내보내도 문제가 없을 정도는 되거든. 자네도 너무 자만하지 않는 게 좋을 걸세. 세상에는 만약과 기적과 예외라는 게 존재하는 법이거든.”

“여기서 그런 걸 일으킬 싹이 있다면, 그건 아마 내 옆에 있는 이 멍청이 정도일걸?”

비웃는 듯한 웃음과 함께 되돌린 그 말에 교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기껏 조언을 해줘도 들을 귀가 없는 뱀파이어를 상대로 별달리 건넬 말이 없기도 했다.

확실히, 인간과 라이칸을 상대로 하면 뱀파이어는 압도적으로 강한 종이었다. 물론, 그가 순혈 뱀파이어로서의 힘을 모두 사용할 수 있을 때의 이야기였지만.

“그렇다면야 뭐.”

순순히 물러난 교관이 훈련생들을 향해 말했다.

“제군들, 유닛 분배도 끝났으니 출발하도록 하지. 목적지까지는 헬기로 한 시간, 약 6시 도착을 예정하고 있네. 각자 위치로 이동, 헬기에 탑승하도록.”

건물 앞에 마련되어 있는 헬기 착륙장을 향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훈련생들의 뒤를 따르는 에드워드와 케일리는 유난히 걸음이 느긋했다.

그것 참, 에드워드가 여유로운 것이야 충분히 이해가 갔지만 그의 파트너인 케일리라는 청년은 팔 하나에 깁스를 하고 있으면서도 별달리 불안한 기색이 없으니 지켜보는 교관은 의문스럽기가 짝이 없었다.

심지어 에드워드가 저 성격에 사사건건 저를 위험에서 구해줄 리도 없을 텐데, 무슨 배짱으로 단둘이서만 유닛을 결성한단 말인가. 에드워드의 파트너라는 청년이 사실은 인간인 척하는 이종이라도 되나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훈련생들의 제일 뒤꽁무니를 따라가는 두 사람의 옆을 따라 걸으며 교관은 문득 눈앞에서 걸어가는 훈련생들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에드워드를 향해 말했다.

“그건 그렇고 에드워드. 자네, 만에 하나라도 여기 있는 훈련생들을 뷔페처럼 골라 먹는 건 자제해주게나. 자네 일이나 별로 걱정하는 사람이 없기야 하지만, 자네도 그 고약한 다이어트를 100년은 이어왔으니 인내심이 예전 같지만은 않을 거 아닌가.”

그가 뱀파이어였기 때문에 의례적으로 건넨 주의에 불과했다. 에드워드가 최소한 100년은 인간의 피에 입을 대지 않았다는 사실은 순혈 뱀파이어들뿐만 아니라 지구에 주둔하는 이종들 사이에서는 썩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다지 좋은 방향은 아니었지만, 어찌됐든 그는 괴이한 식성의 뱀파이어로 이름을 날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뱀파이어라는 이유로 배척을 당하기도 했다.

포식자와 피식자를 전투훈련에 밀어 넣는 입장에서 그 정도 주의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에드워드는 별 같잖은 소리를 다 한다는 듯 하, 숨을 내뱉었고 헬기에 올라타며 교관을 향해 비꼬듯 말했다.

“너 같으면 저런 쓰레기들을 보고 그럴 생각이 들 것 같냐?”

쏘아붙이듯 튀어나간 날카로운 목소리에 그다지 넓지 않은 헬기에 제각각 자리를 잡고 앉은 훈련생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에드워드의 의도는 ‘맛대가리 없는 음식물 쓰레기를 내가 먹을 것 같으냐’였지만, 이미 튀어나간 말의 의미는 왜곡 전달된 후였다.

헬기를 가득 채운 사내들의 눈빛이 흉흉하게 변했다. 졸지에 쓰레기 취급을 당했으니 그럴 만했다. 먼저 헬기에 올라탄 케일리는 다른 훈련생들이 에드워드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것을 확인하고는 뒤따라 올라타는 그를 향해 위로하듯 말했다.

“에드워드,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어차피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적이잖아요.”

“네놈이 제일 적 같거든?”

이 상황에서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 배려였다. 아무래도 목적지에 도착하면 눈칫밥이라는 것을 구해 먹여야겠다고 생각하며 에드워드는 똥 씹은 얼굴로 케일리의 옆자리에 앉았다. 별 위협거리도 되지 않는 인간 한 무리와 라이칸 한 무리가 아득바득 이를 갈며 자신을 적대시하고 있었다.

아주 신이 나는군 그래.

케일리 저놈은 개새끼들한테 원한을 사지를 않나, 별 햇병아리 같은 인간 놈들이 앞뒤 분간도 못하고 살의를 불태우지를 않나.

사이좋게 전투놀이를 할 생각은 없었건만, 그렇다고 부러 쫓아다니며 인간&개사냥을 할 생각도 없었던 계획이 무참하게 날아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머지않아 헬기가 떠올랐고, 헬기 안은 침묵에 잠겼다.

저 멀리 사라지는 헬기를 올려다보며 교관은 에드워드의 말에 꽁 얼어붙던 헬기의 공기를 떠올렸다.

“그래서 내가 늘 말하지 않았나, 자네는 무엇보다 입단속을 먼저 해야 앞으로의 삶이 평탄할 것 같다고 말일세.”

◇ ◆ ◇

헬기 바깥 풍경이 점점 푸르게 우거져 바닥조차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높게 자랐는지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들이 녹빛의 지붕처럼 보였다.

한 팔로 완전군장을 한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낙하산을 타고 다우림 한가운데에 떨어진 케일리는 적어도 건물 3층 높이는 될 나무덩굴에 대롱대롱 매달려 한숨을 내쉬었다.

“뭐, 그래도 유닛 별로 낙하위치가 다른 건 다행이네요. 여기 꼼짝없이 매달려서는 전술이고 전략이고 시작도 하기 전에 끝장났을 테니까.”

앞서 뛰어내린 에드워드는 역시나 14미터가량의 높이의 나무에 걸린 채로 케일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다행은 무슨, 지금부터가 진짜 거지같아질 예정투성인데.”

힐끗 케일리를 바라본 에드워드는 바리바리 군장을 짊어진 채 나이프를 꺼내 낙하산 줄을 잘라버렸다. 그 높이에서 떨어지면 다리가……, 하고 생각한 것도 잠시, 케일리는 나무에서 뛰어내린 고양이처럼 유려하게 착지한 에드워드를 내려다보며 탄성을 올렸다.

와우. 어떻게 하는지 알면 나도 써먹을 텐데.

아쉽게도 케일리가 알고 있는 것은 낙법 정도였는데, 10미터가 넘는 높이에서 완전군장을 한 채 쓰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나무 밑은 평지도 아니었고 우거진 밀림 속에서 깔끔하게 낙법 착지가 가능하리라 기대하는 것보다는 더 나은 방법이 있을 게 분명했다.

음……. 이 높이에서 팔 하나를 못 쓰는 상태로 어떻게 내려가면 좋을까?

잠시간 고민하던 케일리는 일단 짊어지고 있던 군장을 하나 둘 풀어냈다.

쿵, 쿵, 쿵.

도합 50킬로그램에 달하는 애물단지가 묵직한 소리와 함께 낙하했다. 점점 가벼워지는 몸에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케일리는 다리를 휘저어 나무의 위치를 확인했다.

“너 이 새끼, 밑에 사람 있는 거 안 보이냐?”

“사람 아니잖아요.”

“개 같은…… 야, 그걸 던질 거면 던진다고 말을 하든지! 그럼 피할 것 아냐?!”

“피해놓고선 뭘.”

길길이 날뛰며 화를 내는 에드워드를 힐끗 본 케일리는 엄살도 심해, 생각하며 왼쪽 팔로 낙하산 끈을 단단히 감아쥐었다.

뛰어내려서 해결이 날 위치까지는 현수하강 할 수밖에 없었다. 낙하산 줄은 보통 250킬로그램까지는 버티도록 설계되어 있으니 절벽에서 레펠을 할 때와 같은 이치로 내려가면 그대로 뛰어내리는 것보다야 안전했다.

줄 길이가 어디까지 허락할지 모른다는 문제가 있기야 했지만, 잡고 내려갈 줄이 있는 게 어딘가.

한 팔로 상체의 무게를 고정하고 발은 나무의 흠을 짚어가며 케일리는 요령 좋게 밑으로 밑으로 내려갔다. 결국 예상했던 대로 3미터 높이에서 낙하산 줄이 팽팽히 당겨졌기 때문에 여기서는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빼곡히 들어찬 나무뿌리며 덩굴, 그리고 바위 때문에 팔을 보호하며 굴러 떨어지는 것보다 나은 방법을 생각해낸 케일리가 낙하산 줄을 나이프로 잘랐다.

“윽.”

비스듬한 바위 언덕에 미끄러지듯 떨어진 케일리는 두 발을 모아 무릎을 약간 굽힌 자세로 착지했다.

이어서 밸런스를 잃은 몸을 옆으로 굴리며 언덕을 내려오니 양다리에 전해진 몸무게의 반절 정도의 충격은 있었지만, 흙투성이가 된 것 외에 별다른 데미지는 없었다. 팔을 이용한 낙법을 사용할 수 없을 때 높은 곳에서 떨어져야 한다면 다리를 이용해 충격을 완화시키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

툭툭 흙을 털고 일어나 바닥에 뒹구는 군장을 주섬주섬 짊어지기 시작하는 케일리를 바라보며 에드워드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너 그런 건 다 어디서 배워 온 거냐?”

어디 특수부대 출신도 아니고 용병 구르다 온 것도 아닌 게 신통방통한 몸놀림을 보이니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에드워드마저도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사격술뿐만 아니라 체술에도 일가견이 있는지 제법 그럴듯하게 문제를 해결한 케일리는 슬슬 저 짐덩이를 직접 둘러메고 내려와야 하나 고민하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드워드를 무안하게 만들었다.

“아, 이것도 사격 배울 때 같이 배웠어요.”

“설마하니 그때는 진짜로 이런 걸 써먹을 일이 생기리라곤 상상도 못했지만요.”

당시를 추억하기라도 하는 양 아련하게 덧붙인 케일리는 금세 군장을 끝냈고 에드워드에게 말했다.

“자, 그럼 빨리 결승점에 도착해서 푹 쉬죠!”

씩씩하게 걷기 시작한 것은 참으로 좋은 징조였지만, 에드워드는 그 꼴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성큼, 울창한 정글 안으로 걸음을 내딛는 케일리의 군장을 에드워드가 잡아 세웠다.

“야, 이 머저리야. 너 지금 대체 어디로 가려는 거냐?”

“어디냐니, 결승점으로…….”

“거기 방향 반대거든?!”

“아.”

에드워드의 말에 나아가려던 방향에서 몸을 돌려세운 케일리가 다시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놈과 함께 이 드넓은 다우림을 횡단할 수 있을까?

걱정까지 갈 필요도 없이, 자신이 대관절 무슨 이유로 저 귀찮은 걸 질질 끌고 다녀야 하냐는 근원적인 의문을 되새기며 에드워드는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길도 모르는 주제에 당당히 앞으로만 나아가는 꼴을 단속하기 위해서는 자신이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그러고 보니까 방향이 이쪽인 건 어떻게 알았어요?”

“네놈이 나무 위에서 낑낑거릴 때 그림자를 봤지. 헬기를 타고 올 때 건물에서 여기까지의 방향을 봐뒀으니 지금 있는 장소와 가야 할 방향만 제대로 알면 답이 나올 거 아냐.”

“아, 그것도 그러네요. 다른 유닛들도 슬슬 헬기에서 내렸겠죠?”

“그렇겠지.”

“뭐, 그래도 생각했던 것보다는 한적하게 걸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다 같은 데 떨어뜨려놓고 싸움박질을 시키려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니고. 이렇게 일직선으로 가다 보면 다른 유닛이랑 안 만나고 평화롭게 끝날 것 같지 않아요?”

체력 테스트에서 전 종목에 대해 우수한 성적을 보여준 것처럼, 한참을 걸어가면서도 별달리 지친 기색이 없는 것만은 칭찬할 만했다.

굳이 케일리가 아니더라도 이 훈련에 참가한 이들이 하루 이틀 숲을 행군한다고 지쳐 쓰러지지야 않겠지만, 습도가 높고 빽빽이 들어선 나무 탓에 볕이 들지 않는 환경적 요인도 무시할 것이 아니었다. 일반인들은 삼십 분을 채 가지 않아 탈수며 폐소공포증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잘 걸어가는 것과는 별개로, 그놈의 입이 지껄이는 헛소리는 아직 이 훈련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쯧, 혀를 차며 역시나 지친 기색이 없는 목소리로 케일리를 타박했다.

“나 참, 평화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놈들도 전부 같은 방향으로 갈 건데 이 숲이 넓으면 얼마나 넓을까? 당연히 만나게 돼 있는 거지. 문제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느냐인데, 네 말처럼 한곳에 떨궈서 초장부터 싸우라고 놔두는 게 장기적으로 보면 훨씬 쉬울 수가 있어.

이 상태로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까지 예상하고 대비해야 하는 데다, 우리는 나머지 전 유닛과 적대하는 중이라고.”

비관주의자는 아니었지만 현 상황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것은 전투 시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어려운 필수 요건이었다. 아하. 고개를 끄덕인 케일리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덜 평화로운 상황에 약간의 실망을 담은 얼굴로 걸음을 재촉했다.

어찌됐건, 다른 유닛과 만나기 전에 결승점에 도착한다면 해결될 문제였다.

◇ ◆ ◇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줄줄 흐르는 땀을 간간이 닦아내며 케일리와 에드워드는 울창하게 우거진 숲 속을 헤쳐나갔다. 세 시간, 아니 넉넉잡아 네 시간은 쉬지 않고 걸었다. 별달리 위협적인 동물과 만나지도 않았고 주변 풍경은 두 시간 내내 똑같았다.

수 미터 앞을 내다볼 수 없이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 도착한 시간으로 가늠하면 슬슬 정오 즈음이었다. 처음 출발할 때에 비하면 확실히 걸음이 무거워진 케일리를 바라보며 에드워드가 하늘 위를 올려다보았다.

해가 머리 꼭대기에 떠봤자 우거진 나무 탓에 볕이 들지도 못할 테니 별달리 시간을 가늠 할 이유도 없었지만 인간인 케일리는 잠깐이나마 휴식을 취해야 할 테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는 것 하나는 대단하다고 내심 감탄하며 에드워드가 걸음을 멈췄다.

마침 개울이 나타났다. 끔찍한 속도로 떨어지는 칼로리를 보충하고, 슬슬 비어가는 수통을 채우기에도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어이, 케일리. 좀 쉬었다 가지.”

속눈썹에 맺힌 땀방울을 훔치며 케일리가 말했다.

“벌써요?”

“네 체력이 쓸 만하다는 건 알겠는데 인간의 몸에는 한계라는 게 있는 거다, 멍청아. 그게 어디쯤 있는지도 모르고 자만하다가 널브러지기라도 하면 난 너 버리고 혼자 갈 테니 쉬자고 할 때 쉬어.”

“그러죠 뭐.”

선선히 대답한 케일리는 제 옆에 선 나무 밑에 군장을 풀고 신발과 양말까지 벗어 내려놓은 후 졸졸졸 흐르는 개울에 발을 담갔다.

그보다 위쪽에서 제 몫의 수통을 채우던 에드워드가 그 모습을 보고 일순 표정을 일그러뜨렸지만 하류에 있는 발 담근 물이 역류해서 수통으로 들어올 것도 아니니 뭐라 할 말은 없었다.

“사실 저도 에드워드가 쓰러지면 끌고 갈 수는 없을 것 같았는데 다행이에요. 한 팔로 끌기에는 아무래도 여기 지형이 좀…….”

그 와중에도 착실하게 입을 놀리는 케일리를 바라보며 에드워드는 잠시간 손에 든 수통을 들고 고민했다.

이걸 들고 저놈의 대가리를 후려치면 제대로 된 사고를 하게 될까?

……아서야지.

여기서 더 심각해지면 답도 없었다.

챙겨온 군장에서 전투식량을 꺼낸 케일리가 초코바 하나를 꺼내 물었다. 우물우물, 어린 시절에도 먹어본 적이 없는 캐러멜 초코바의 맛은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혀가 녹을 정도로 달다는 것을 제외하면 꿀꺽 삼킬 때마다 허했던 뱃속을 채워갔다.

뒤이어 케일리가 손에 쥔 것은, 그것을 샌드위치라고 부르면 진짜 샌드위치가 대성통곡을 할 것이 분명한 괴식이었다. 그럼에도 의외로 맛은 나쁘지 않아 한 입 두 입 베어 물며 남은 메뉴를 살피던 케일리의 표정이 별안간 시무룩하게 가라앉았다.

수통을 채우고 차가운 개울물에 머리를 식힌 에드워드가 어둠침침한 얼굴로 점심식사를 하는 케일리를 쳐다보며 의아한 표정을 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땀 좀 흘리는 것 외에는 별달리 힘든 기색도 없던 놈이 점심까지 주섬주섬 잘도 꺼내 먹다가 혼자 무드를 잡고 앉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제 군장 안을 뒤적이며 에드워드가 케일리를 향해 물었다.

“왜 잘 처먹다 말고 그런 얼굴이야?”

침울하게 젖은 밤색 눈동자가 에드워드를 올려다보았다. 잘 먹던 사료를 별안간 빼앗긴 아프간하운드마냥 촉촉이 젖은 기분 나쁜 눈깔이다. 왜 저러나 싶어 무슨 말을 하나 기다린 에드워드는 이어진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쿠키는 있는데 홍차가 없어요…….”

“…….”

빌어먹을 영국 놈.

친숙함까지 느껴지는 케일리의 항의에-놀랍게도 저 머저리 같은 투정을 에드워드는 아주 빈번히 듣는 편이었다.- 저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어째서 영국 놈들은 사막 한가운데서든 정글 한복판에서든 홍차를 찾아대는 걸까. 전생에 홍차 못 마셔 죽은 귀신이라도 들러붙은 것일는지도 몰랐다.

엑소시즘……. 저놈들한테는 아주 강력한 엑소시즘이 필요해.

뱀파이어 주제에 다분히 종교적인 해결법으로 도피한 에드워드는 울망울망 눈시울을 붉히며 쿠키를 처먹기 시작한 케일리를 무시한 채 군장을 풀어 자신의 전투식량을 꺼내 들었다.

“윈델이, 그애는 제 사촌동생인데 열여섯에 자원입대 했거든요. 어쨌든 몇 년 전에 윈델이 말하기를 전투식량 안에는 홍차 티백이 들어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여긴 없잖아요.

이건 혹시 신참을 향한 신종 괴롭힘 같은 걸까요? 혹시 에드워드의 식량에도 홍차가 없는 거면 제조사의 실수일지도 모르지만 저만 없는 거면 역시 괴롭힘일 확률이…….”

“만약에 그런 거라면 정말이지 어마어마하게 악독한 사람들이네요. 다른 것도 아니고 홍차를 가지고 사람을 괴롭히려 들다니.” 하며 그 와중에도 홍차 타령을 그만두지 않는 케일리의 말을 귓등으로 흘린 에드워드가 군장에서 꺼낸 식량상자는 어째서인지 무게감이 남달랐다.

아이작이 따로 챙겨놓았다며 자신만만하게 자랑했던 특별식의 정체를 단번에 눈치챈 에드워드는 잠시간 말을 잃었다.

“미친놈…….”

말이야 말이지, 에드워드는 처음부터 연수를 거치지 않고 요원이 되었기 때문에 군장을 짊어져볼 일이 없었다.

심지어 100년 전에는 이런 훈련시설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입사 테스트는 실전에서 치르는 방식이었다. 이번 훈련에 참가하면서 처음으로 군장이라는 쓸모없는 것을 챙겨본 에드워드는 아이작이 특별히 신경 썼다는 전투식량을 보고 그의 정신상태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별 쓸모도 없을 식량을 왜 특별히씩이나 챙겨주는가 했다.

“와, 그것만 있으면 다음 인류의 3차 대전에는 뱀파이어도 참전해도 되겠네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케일리의 평온한 평가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영국군의 보급형 전투식량과 흡사한 패키지의 포장을 한 쿨러였다.

아이스 쿨러 박스. 무언가를 보랭하기 위해 이용하는 휴대용 이동수단. 제법 묵직한 쿨러 안에는 네 개의 혈액 팩이 들어 있었다. 친절하게도 개별 포장된 스트로 네 개를 포함한 채.

“어쩐지 무겁더라니.”

보통의 순혈 뱀파이어는 약 3리터의 살아 있는 혈액을 섭취하는 것으로 한 달을 버텼다. 죽은 생명체의 피로는 15리터, 더해서 뽑아놓은 지 오래된 피로는 그보다도 많은 양을 필요로 했지만 능력의 저하를 감수한다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양은 그 반절 정도였다.

오래된 죽은피로 연명하는 에드워드가 능력의 저하를 감수하고 필요로 하는 필수량은 사흘에 500밀리의 혈액 팩 하나 정도였다. 그마저도 어렵다면 일주일에 한 팩으로도 버틸 수야 있었다.

그러니 열두 시간 전투용 식량이 혈액 팩 네 개인 것은 아주 다분히 의도적인 배분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런 걸 나흘치나 넣었으니 무겁지 않고 배기겠는가. 손에 쥔 차가운 혈액 팩을 잔뜩 찌푸린 얼굴로 잠시간 내려다본 에드워드는 여기까지 짊어지고 온 스스로의 노고를 생각해서 스트로를 꽂았다.

그래, 음식에는 잘못이 없어. 아무리 맛이 없는 보급식량이라도 음식에는 죄가 없지.

죄는 인간 놈들이 짓는 거니까 사사건건 뒤통수를 치려고 드는 아이작 그놈의 새끼를 조져놔야…….

“밑은 볕이 안 들어서 시원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덥네요.”

땀에 전 셔츠를 펄럭이며 케일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배를 채우니 잊고 있던 더위가 몰려왔다. 차가운 개울에 발을 담그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체는 여전히 뜨거웠다.

피부 바깥이 아니라 몸 안에서부터 열이 나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혈액 팩 두 개를 비운 에드워드는 머리 위에 쏟아부은 개울물을 털어내며 대답했다.

“다우림은 원래 아열대에만 있으니 더운 게 당연하지. 여기는 일 년 내내 습도도 높고 온도도 높아. 그러니 제일 주의해야 하는 건 첫째가 탈수고 둘째가 열사병이다. 목이 마르거나 더운 걸 미련하게 참다가는 그대로 찜통 구이가 되기 십상이니 말이야.”

인간과 비교하면 뱀파이어는 기온의 변화로 인한 영향을 적게 받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더위를 느끼지 않는 것도 아니다. 습도 높은 공기가 끈적끈적하게 들러붙는 것에 불쾌감을 느낀 에드워드는 차라리 시원하게 땀을 흘리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별수 없이 개울물이라도 뒤집어쓰니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점심식사를 끝낸 케일리도 벗어놓은 양말과 군화를 신었다. 한 끼 식사로는 큰 차이도 없었지만 어쨌든 다소 줄어든 무게의 군장도 짊어지니 등줄기를 타고 주르륵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확실히 지금 예열된 오븐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기는 하네요.”

정글 속에 떨어진 지 약 네 시간을 경과한 이 순간, 케일리의 입에서도 드디어 제법 인간다운 불평이 흘러나왔다.

“네가 무슨 개구리냐?”

인내심이라고 하기에도 뭣하고, 그렇다고 아주 둔하다고 하기에도 미묘한 그의 생태에 개울을 따라 걷기 시작한 케일리의 뒤를 따르던 에드워드가 그렇게 말했다. 물론 걷는 내내 덥다 더워 타령을 했어도 말이 곱게 튀어나가지는 않았겠지만, 네 시간을 찜통 속에 불평 한마디 없이 걷다 이제야 튀어나온 태평한 감상이 어이없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저놈 혹시 냄비에 넣어서 삶으면 뜨뜻하고 좋다고 드러눕는 거 아니야?

두 세기 전쯤 수조에 가엾은 개구리를 넣고 천천히 온도를 높여 종래에는 삶아 죽였던 잔혹한 인간 과학자의 실험을 떠올리며 제법 신빙성 있는 의심을 머릿속에 띄운 에드워드를 향해 케일리가 대답했다.

“네? 혹시 제가 개구리로 보이는 거면 시력에 크게 문제 있는 거니까 병원부터 가봐야 할 것 같은데요.”

분명 틀린 대답은 아니었는데, 보통 대화라는 것은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다. 적어도 에드워드의 경험상 인간의 언어체계에는 비유법, 강조법, 변화법과 같은 다양한 수사법이 존재했고 단어와 문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가 생겼다. 어딘지 불쌍한 것을 보듯 자신을 돌아보는 케일리의 눈빛이 핀트를 잘못 잡은 바로 이 순간처럼.

“아니 그게 아니라, 개구리는 느긋하게 삶으면 저가 삶아지는지 구워지는지도 모르고 물이 따듯하다고 즐기는 머저리 같은 양서류고 네놈이 딱 그렇다는 말……. 근데 왜 내가 이런 것까지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거지?”

유치원생을 가르치듯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거다, 답답한 심정으로 토로하던 에드워드가 문득 생각했다. 왜 받을 필요도 없는 똥개 훈련을 받으며 입에 단내가 나도록 정글을 헤집으며 친절한 국어 교사 노릇까지 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케일리 저놈과 대화하다 보면 자꾸만 페이스를 잃게 된다. 더 이상 말려들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흉흉한 눈빛으로 걷기나 하라고 면박을 준 에드워드에게 케일리가 말했다.

“제 생각에는 에드워드의 화법에 문제가 있으니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배로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그게 귀찮으면 커뮤니케이션을 포기한다는 선택도 있어요. 저는 후자를 추천할게요.”

쉴 새 없이 걸으면서 입도 바쁜 너는 심심할 틈이 없어서 좋겠다. 삶에 도움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되지 않는 조언에 코웃음을 친 에드워드가 대답했다.

“그래……, 네 뉴런의 부족한 전기신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얼마 남지 않은 여력으로 날 생각해주는 마음이 고맙다 못해 눈물이 다 나려고 한다.”

“저 깨끗한 손수건 있는데 빌려드려요?”

“필요할 것 같냐?”

“글쎄요, 앞으로 눈물이 날 예정이라면 필요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건 눈치가 없는 건지, 없는 척하는 건지…….

영국 태생은 아니었지만 퍽 오랜 기간 살아온 이 나라에서 비꼼과 조크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는 신랄한 화법은 그리 드물지 않았고 살아가는 데 있어 하등의 지장을 느낀 적이 없었건만-도가 지나친 덕분에 적이 아주 많아지기는 했다.- 이상하게도 케일리만은 의도한 바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너 뇌 없는 개구리 같다는 말을 직설적으로 던지지 않으면 저 녀석에게는 닿지 않는 걸까. 그런데 직접 화법을 이용한다고 해서 별달리 풀이 죽을 것 같지도 않았다.

혹시…… 쟤 진짜 수사법이 뭔지 모르는 거 아닌가?

제법 신빙성 있는 의심의 싹을 틔운 에드워드와, 앞으로 앞으로 걸어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케일리는 그 후로도 한참을 쉬지 않고 걸었다.

◇ ◆ ◇

“벌써 날이 어두워지네요.”

“좀 있으면 5시쯤 될걸. 슬슬 해 질 때도 됐지.”

“그렇게 빨리 져요? 우리 얼마쯤 걸었죠? 휴식시간 빼고도 어림잡아 여덟 시간은 왔으니 50킬로미터는 될 것 같은데……그래도 한참은 걸어야 하네요. 이거 혹시 낮에만 걸으면 아무 일 없어도 제시간에 도착 못하는 거 아니에요?”

결승점까지의 직선거리는 약 300킬로미터였으니 오늘 걸은 것과 같은 속도로는 도저히 도착할 수 없는 거리인 것은 확실했다.

아직 앞뒤 분간은 가능할 정도의 밝기였지만 뉘엿뉘엿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본인의 입으로 2.0의 시력이라던 케일리라고 해도 달빛조차 들어오지 못하는 빽빽한 밀림에서는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터였다. 위험을 무릅쓰고 야간행군을 하는 것보다는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 다시 걷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슬슬 컴컴하게 가라앉는 밀림 속에서 그나마 나무가 적은 평지를 찾아낸 둘은 가까운 나무에 군장을 풀어놓고 잠자리를 다듬었다. 그래 봤자 흙 위의 나뭇잎과 가지, 그리고 그 사이에 섞인 벌레를 치워내는 간단한 과정이었지만 밀림에서는 그것이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독을 가진 뱀이나 곤충은 대부분 썩은 식물 밑에 숨어든다. 흙바닥만 남기고 깨끗하게 쓸어내면 잠을 자는 사이 그런 것들에 당할 확률은 거의 없어졌다.

“근데 여기 텐트 두 개는 못 칠 것 같은데요.”

물이 흐르는 곳을 제외하면 나무가 없는 장소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겨우 일인용 텐트 하나를 칠 만한 공간이 마련된 시점에서 케일리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완전군장의 부속품 중 하나인 일인 텐트는 성인 남성의 몸 하나를 겨우 뉘일 정도였고 그들이 찾아낸 잠자리가 딱 그 정도의 크기였다. 이미 수 미터 앞의 풍경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컴컴해진 시야 안에서 텐트를 꺼내 조립하기 시작한 에드워드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렇겠지.”

“그럼 어떡하죠?”

“하나만 쳐야지.”

어둠 속에서도 별달리 제약을 받지 않는 뱀파이어의 시야로 텐트 하나를 뚝딱 조립해낸 에드워드가 허리를 곧게 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흠잡을 구석 하나 없이 깨끗하게 만들어진 텐트를 뒤로한 에드워드가 나무 옆에 내려둔 군장 옆에 놓인 소총을 들며 케일리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너 첫날부터 라이칸이랑 대거리 했다며? 걔들한테 뭔 짓 했냐?”

역시나 허리춤에 차고 있던 권총을 꺼낸 케일리는 어느새 캄캄해진 정글 속에서 억울함을 담은 목소리가 항변했다.

“뭔 짓이라뇨. 그분들이 저한테 시비를 걸었죠. 그리고 제 생각에 저분들은 저한테 화가 난 게 아니라 에드워드한테 화가 난 사람들 같은데요.”

평범한 인간의 시력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어두운 숲 너머를 향해, 케일리는 곧장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이런저런 식생활적 이유로 뱀파이어치고는 화기 의존도가 높은 편인 에드워드의 글록 35를, 케일리는 마치 제 것처럼 거머쥐고 있는 상태였다.

풀 장전으로 열다섯 발을 겨우 채우는 총 하나 외에는 쓸 만한 장거리 화기가 없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탓에, 그는 숨을 죽이고 어둠 너머를 신중하게 주시하기만 했다. 마치 숲 너머 어둠 속에 몸을 감춘 미지의 적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런 케일리를 바라보며 군장의 주머니를 뒤져 여분의 탄창을 꺼내 뒷주머니에 쑤셔 넣은 에드워드가 웃기지도 않는다는 양 코웃음을 쳤다.

“야, 그쪽에 아무도 없거든.”

“사방이 숲이다 보니 방향감각을 잡기가 어렵네요. 소리는 저쪽에서 난 것 같았는데.”

“나기는 뭐가 나? 반대쪽이다, 멍청아. 네놈 서 있는 등 뒤쪽.”

철컥. 그 말과 동시에 흉흉한 정전음이 이어졌다.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에드워드의 모습도 겨우 그만한 형체가 있다는 정도를 인식하는 것이 고작인 어둠 속에서 케일리는 한 바퀴 빙 돌아서 적이 있다는 방향을 멀찍하니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하루 내내 걸은 정글의 소리에는 익숙해졌기 때문에 먼 곳에서부터 규칙적으로 가까워지는 숨죽인 소리에 무언가가 온다는 사실은 눈치챘지만, 역시 방향과 머릿수, 그리고 거리까지는 가늠할 수 없었다.

이런 시야에서 전투를 해야 하는 건가. 그냥 평화롭고 사이좋게 결승점까지 달리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상대방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의문이었다.

“진짜로 뭐가 보이긴 해요?”

어느새 자신의 바로 옆에 선 에드워드를 올려다보며 케일리가 물었다.

“겁도 없이 고양이를 사냥하려 드는 쥐새끼들을 말하는 거면, 아직 시야에 들어오지는 않았다만. 냄새가 점점 진해지는 걸 보니 그렇게 멀지도 않은 것 같기는 하군.”

어차피 보이지도 않는 주제에 정확히 자신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별달리 당황한 기색이 없는 걸 보니 침착함을 유지하는 그 성격 하나는 끝내주게 현장 친화적이라 생각하며 에드워드가 가볍게 대답하자, 케일리가 정면으로 시선을 되돌리며 물었다.

“혹시 조상분이 야행성 짐승이셨나요?”

“야만성 뱀파이어셨다.”

“저희 아버지가 부러워할 것 같네요.”

뜬금없이 제 핏줄의 명예를 훼손하려 드는 케일리의 발언에 에드워드는 어이가 없었다. 그런 에드워드를 향해 케일리는 워낙 밤 사냥을 좋아하시는 분이라서요, 여상하게 덧붙이며 멀쩡한 왼손에 쥔 총신을 만지작거렸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밤 사냥을 간 게 벌써 몇 년 전이었더라……. 퍽 오래된 기억을 되짚던 케일리는 그것이 별달리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라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그때도 분명 이렇게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적외선 소총을 들고 나섰다가 잘못된 생물을 쏘아 문제를 일으켰었다. 다행히도 지금은 적외선 소총은커녕 시야확보도 되지 않는 밀림 한가운데서 권총 하나만 달랑 쥐고 서 있기야 했지만…….

자신의 목숨과 상대방의 목숨 중 어느 것에 무게를 두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케일리는 단연 스스로의 손을 드는 종류의 인간이었기 때문에 그리 희망적인 상황도 아니기는 했다.

시야가 확보되든 되지 않든 움직이는 생물을 맞히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움직이는 생물을 살려놓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살리려고 마음먹고 대적하기 위해서는 이쪽의 위험을 감수해야 했는데, 거기서부터는 사격실력이나 시야확보보다 그 저울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의 문제가 되기 십상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에드워드에게는 이 상황이 좀 더 깨끗하게 보이고 있는 것 같다는 부분 정도일까.

“너, 안 보이는 것도 맞힐 수 있냐?”

잠시간 말이 없던 에드워드가 그렇게 묻자, 케일리가 대답했다.

“음, 꼭 보여야만 맞힐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역시 보이는 편이 쉽죠. 기척으로 맞히는 것 정도는 가능한데, 문제는 어디를 맞히게 될지 저도 장담할 수 없다는 부분이라서요…….”

거기까지 말한 케일리가 말끝을 흐렸다. 확실히, 사격 테스트에서도 눈으로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지나가는 표적을 정확히 맞히기는 했다. 그 표적이 흔적도 없이 허공에서 산산조각 나던 처참한 모습을 떠올리며 에드워드는 잠시간 침묵에 잠겼다.

녀석이 쥐고 있는 게 산탄총도 아니고 표적이 손바닥만 한 원반도 아닌데 큰일이야 있겠냐 싶기야 했지만 본인이 어디를 맞힐지 장담할 수 없다고 호언장담까지 해주면 이쪽도 덩달아 불안해지는 법이었다.

“그냥 좀 궁금해서 그런 건데, 여기서 잘못된 상대를 잘못 쏘면 어떻게 되나요? 그것도 치외법권으로 처리될까요? 치외법권이라는 게 밖에서 소송 안 걸린다는 것뿐인 것 같던데. 역시 잘못 쏘면 많이 귀찮아지겠죠?”

특수한 상황 탓에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역시 케일리 저놈의 감각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많았다. 녀석에게 없는 게 양심인지, 생각인지를 곰곰이 되짚어보던 에드워드는 아무래도 둘 다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만약 놈에게 건강하고 인간다운 양심이 있었다면 살아 있는 무언가를 쏜다는 가정에서 뒤처리의 귀찮음을 먼저 떠올리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또한 생각이 있었다면 저가 누구를 공격하는 상황보다 공격에 당하는 상황을 먼저 가정해야 순서가 맞았다.

제 코앞에 라이칸이 아가리를 쩌억 벌리고 서도 태평하게 흰소리나 늘어놓을 눈 뜬 장님 주제에 무슨 똥배짱으로 오발탄 쏠 걱정부터 하고 자빠진단 말인가.

“그건 그렇고 저쪽도 움직임이 없네요. 오늘은 포기한 건가?”

사방이 정글이라 정확히 어느 방향인지까지는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에드워드와 자신 이외의 존재가 다수 접근했다는 것까지는 기척과 소리로 파악한 케일리였다.

하지만 이쪽이 불분명한 시야와 기동성을 낮추는 지형 안에서 섣불리 돌격하지 않는 것처럼, 상대방 또한 신중했다. 어느 순간부터 완전히 기척을 감춘 채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케일리에 에드워드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렇진 않을걸. 아직 냄새가 짙어. 기다리는 것 같군. 저쪽에서도 이쪽을 보는 데는 한계가 있어. 무엇보다 시야를 막는 게 어둠뿐인 건 아니니까. 지긋지긋하던 나무가 이렇게도 도움이 되는군 그래.”

“그러네요. 조금만 떨어져도 나무에 가려 안 보일 테니 결국 저쪽도 쉽게 움직일 수는 없는 건가? 이거 혹시 밤새도록 누가 먼저 움직일지 인내심 싸움이나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죠?”

“왜 아닌 것 같은데?”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 중에서도 가장 최악을 돌려주는 에드워드에 케일리가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설마하니 첫날부터 뜬눈으로 날밤을 새야 할 줄은 몰랐다. 물론 교관이 무박 4일짜리 훈련이란 말을 하기야 했지만 잠을 못 자게 방해하는 것도 아닐 테고 완전군장까지 챙겨줬으니 어떻게든 눈을 붙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런 복병이 숨어 있을 줄이야…….

“저분들은 힘이 남아돈답니까?”

텐트까지 다 만들어놓고 잠은 못 잔다는 잔인한 말에 억울함을 담아 항변하자, 에드워드는 제가 들고 있던 소총을 들어 어둠 저편을 가리켰다.

“그거 물어보러 쟤들한테 갔다 오면 밤 산책도 되고 딱 좋겠네.”

“그래야겠네요.”

“그래 잘 생각했…… 뭐? 야, 너 어디 가?”

언제나와 같이 무심하게 던진 말에 케일리가 정말로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고 에드워드는 입을 쩍 벌린 채 저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다. 풀벌레 소리에 간간이 낮게 죽인 서로의 목소리만 들리던 정글 한가운데에 에드워드의 고함이 울려 퍼졌다.

별안간 자리를 박차고 튀어나간 케일리는 처음 에드워드가 가리킨 적이 있는 방향을 향해 달려 나갔다. 나무며 바위와 같은 장애물은 먼저 내딛은 발돋움과 왼손에 쥔 권총을 휘둘러가며 요령 좋게 피하며.

“어디긴요, 평화롭게 대화로 해결하러 산책 가고 있는 거죠.”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는 케일리가 밟는 풀 소리 사이로 에드워드에게 정확히 전달되었다.

“시간은 금이라잖아요. 밤새 체력도 낭비하고 시간도 금도 낭비하느니 속전속결로 결판내는 게 나아요.”

적진 한가운데에 돌진하며 내뱉는 그 말이 에드워드에게는 속전속결로 뒤지고 싶다는 염불로 들렸다. 쥐새끼마냥 쏙쏙 나무 틈을 피해 적진 한가운데로 돌진하던 뒷모습이 순식간에 어둠 속에 녹아내렸다.

누가 보면 내가 아니라 네놈이 뱀파이어인 줄 알겠다.

어이를 상실한 에드워드가 그렇게 생각하며 장전한 소총을 늘어뜨린 채 케일리가 달려간 방향을 빠른 걸음으로 쫓았다. 그깟 장난감 같은 권총 하나를 가지고 팔 병신이 뭘 할 수 있는지 한번 해보기나 하라는 기분이 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편이 다른 놈들에게 개죽 취급당하는 건 배알이 틀려서 손놓고 구경할 수만은 없다는 비틀린 호의가 반의 반 정도였다.

딱히 케일리의 백업을 위해 함께 참여한 것도 아니었지만, 마음에 안 드는 아는 놈과 마음에 안 드는 모르는 놈들이 있으면, 마음에 안 드는 아는 놈의 편을 드는 게 일반적인 심리라고 에드워드는 생각했다.

여차하면 도와줄 요량이기는 했지만 일단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엄호나 할까 싶어 케일리가 달려간 일직선에서 조금 빗겨간 루트로 소리 없는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이곳은 기껏해야 지하 훈련시설 안이었고 전투가 가능한 머릿수라고 해야 훈련생 도합 오륙십 정도다. 한 유닛의 인원은 기껏해야 열.

냄새로 상대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눈치챈 에드워드는 그들이 최소한 라이칸과 결탁하지는 않으리라 확신했기 때문에 최대 수는 서른 정도로 가정했다. 그래 봤자 최대다. 냄새의 농도와 기척으로 봤을 때 숨어 있는 놈들은 많으면 다섯, 적으면 셋. 그 정도라면 케일리 단신으로도 승산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구울을 상대로도 그럴듯하게 대치해 보인 녀석의 전투실력을 생각하면 훈련 받은 군인 셋 정도도 거뜬할 테니 말이다. 훈련 받은 특수부대 정도면 슬슬 계산이 어려워지기는 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결국 상대방의 무장 강도와 실력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에드워드는 이번 훈련에 참가한 인간들의 전투능력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허나 날고 기어야 한낱 인간 나부랭이가 무리를 지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최근 들어 인간이라는 종족에 대한 한계치와 정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고는 해도 에드워드는 고작해야 인간 몇을 상대로 고전하리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시야가 불확실하다거나, 덜떨어진 같은 편이 멍청한 실수를 저지른다고 해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이 훈련 자체가 그에게 있어서는 빨리 해치워버리고 싶은 귀찮은 짐덩이에 불과했다.

“뭐, 케일리 저놈도 이번 기회에 생각을 하고 움직이는 법을 배울 수도 있겠지.”

여차하면 죽기 직전에는 건져내야지, 생각하며 에드워드는 빠른 속도로 직진하는 케일리를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따라붙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생각을 하고 움직이는 법을 이 기회에 배워놓지 않으면 자신이 손을 쓸 수 없는 상대-구울이라든지 용과 같은.-와 대치한 상황에서 진정으로 목숨이 오가는 대형사고를 칠지도 몰랐다. 파트너로 시한폭탄을 데리고 다니는 건 아무리 불사에 가까운 뱀파이어라 해도 영 찝찝했으니, 저놈의 못 써먹을 단점 몇 개를 이번 훈련에서 고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그럭저럭 숲 안의 정경이 눈에 익기 시작한 에드워드의 시야에 바위를 밟고 도약해 부웅 허공에 떠오르는 케일리의 모습이 보였다.

만약 그가 총구를 겨눈 바위 뒤편에 몸을 한껏 낮춘 한 야생곰과 같은 인영이 없었더라면 에드워드는 근질거리는 입을 참지 않고 놀렸을 것이었다.

네가 날파리도 아닌데, 뜬금없이 날긴 왜 날아오르고 난리니.

다행인 점은 에드워드가 케일리와는 달리 생각을 하고 살아간다는 것이었으며, 또한 그는 이 웃기지도 않는 상황을 반 이상 어린애 장난이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말없이 자리를 잡고 바위 위에 소총을 고정한 에드워드는 스코프 렌즈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것은 어둠 속의 적을 조준하기 위한 용도는 아니었다. 상식을 교묘하게 기만하는 인간 케일리가 이번에는 또 어떤 방법으로 위기를 모면할지 구경하기 위해, 에드워드는 제 손에 쥔 도구를 훌륭하게 이용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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