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3. Edward in wonderland (7)
출발할 때와는 달리 한껏 가벼워진 몸과 기분으로 훈련시설에 돌아온 에드워드는 건물 밑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아이작의 모습에 미간을 좁혔다.
그럼 그렇지, 있을 줄 알았어.
예상한 일이었지만 불쾌감이 드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며 낄낄대고 있었을 것이 분명한 녀석들의 얼굴이야 서넛 떠올랐지만, 총 책임자가 나설 줄은 몰랐기 때문에 다소 의외이기는 했다. 기껏해야 이번 야외훈련의 주관자인 헨리가 남의 훈련을 망치지 말라며 징징거리는 정도겠거니 했건만.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자신을 아주 묘한 눈으로 쳐다보는 아이작이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에드워드의 기분 또한 하강곡선을 그렸다.
자신이 케일리를 안아 들고 있는 모습을 다른 놈들이 보는 것 자체가 대단히 기분 더러운 일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기절해서 축 늘어진 걸 그대로 방치할 수도 없으니 선택의 여지랄 것도 없었지만.
솔직한 말로, 훈련이고 뭐고 애초에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실제로 임무를 실패하기는 했으니 사회생활의 일환으로 빌어먹을 상사 놈들의 장단을 맞춰주기 위해 참가한 것일 뿐.-. 게다가 에드워드가 보기에 놈들이 바라던 훈련생 사이의 반목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건 공공의 적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이해였다. 주로 라이칸 쪽에서 인간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다소 부조리하기는 할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어쩌겠는가. 인간이 머릿수가 많은 쪽이었고 다수의 사회에 섞여 살려면 그들에 대한 이해는 필수였다. 어디서 솜털도 다 벗겨지지 않은 새끼 라이칸들을 데리고 와서는 인간들치고는 백전노장들 사이에 툭 던져놓으니 불협화음이 지독할 밖에.
그 점을 알면서도 내버려두는 것이 -B 지구 관리자들의 질 나쁜 점이라 생각했지만 계약서에 사인을 한 건 결국 라이칸들 자신일 테니 이 경우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그러게 무리 속에서 적당히 보살핌을 받으며 인간 사회를 배워 나가면 될 것을 무엇하러 이런 사지까지 기어든 것인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자신처럼 식습관에 크나큰 문제를 안고 있어서 종족들 사이에 섞이기가 대단히 꺼림칙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면 모를까.
집이 최고라는 진리를 모르는 어린 라이칸들을 비웃은 에드워드는 건물 앞에 서 있는 아이작을 모르는 척 지나쳤다. 스윽,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안으로 들어가는 에드워드의 뒤를 쫓으며 아이작은 그와 보조를 맞췄다. 자신의 옆을 말없이 따라붙는 그의 표정이 매우 미묘한 것에, 에드워드는 심심한 어조로 물음을 던졌다.
“똥 마렵냐?”
화장실 저기 있다, 여자 화장실의 표지판을 턱짓하며 덧붙이는 그를 향해 아이작이 대답했다.
“그럴 리가. 할 말이 있느냐는 물음이라면 상당히 많을 거라는 걸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당연한 수순으로 아이작은 그가 공주님 모시듯 곱게 안아 옮기는 케일리를 노골적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기절을 한 건지 죽은 건지 헷갈릴 정도로 하얗게 질린 얼굴색에 비해 표정만은 숙면을 취하는 양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간간이 미약한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더라면 수명을 다 살고 죽은 행복한 시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겨우 이틀간의 짧았던 야외훈련에서 저 온건한 얼굴이 저지른 미친 짓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아이작에게는 케일리를 수식하는 데에 평화라는 말을 붙일 생각이 없었지만 말이다.
“내가 니들이 뭔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알아. 난 초능력자가 아니야.”
할 말이 많은 아이작을 향해 에드워드가 코웃음을 치며 그렇게 말했다.
“그 비슷한 건 읽잖아.”
“그거 초능력 아니다.”
“나도 아는데……. 어쨌든 이것 참,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네. 아무거나 주워먹고 다니는 거 싫어한다면서. 했던 말을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 바꾸면 없어 보인다고.”
게다가 네가 들고 있는 걔 인간이다……?
인간을 앞에 둔 에드워드의 반응은 분류할 필요도 없이 푹 썩은 음식물 쓰레기를 코앞에 들이밀어진 사람 정도였으니 아이작의 반응이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뱀파이어들이 어떻게 하면 양질의 인간을 먹을 수 있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그 수법을 발전시켜가는 것과 비교하면, 흡사 뱀파이어계의 수도승 취급을 받던-대부분 나쁜 의미로.- 그였다. 그런 에드워드가 인간의 피를, 그것도 본인의 의지로 마셨다는 것이 순혈 뱀파이어들의 사이에 퍼지는 순간 어떤 난리가 날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일단 누구보다 먼저 그 애쉬포드 가의 가주가 신발을 신는 것도 잊고 맨발로 쳐들어올 거라고 아이작은 확신했다.
“얜 ‘아무거나’가 아니야.”
짜증스럽게 대답한 에드워드에 아이작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어머어머 세상에, 얘가 지금 다른 사람 편든 거야? 심지어 본인을 탈 것 취급했던 인간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아이작이 눈을 동그랗게 떴고, 뒤이어 반박의 말을 던졌다.
“야, 페어리가 걔 홈리스였다는 거 다 불었거든.”
어디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덜떨어진 걸 주워 왔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는데, ‘아무거나’가 아니라는 말도 웃겼다. 실상 페어리의 계약조건에 대한 것이 사실이라면 에드워드의 품에 안겨 있는 저 인간은 적어도 인간 사회에서는 매우 하자가 있는 것으로 분류될 상이었다.
그 사실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는 에드워드가 인상을 썼고, 불퉁하게 대답했다.
“다이아몬드도 발견되기 전까지는 산 구석에 처박혀 있는 법이지.”
“너…… 먹지도 못하는 걸 대고 그런 비유하는 놈 아니었잖아. 갑자기 왜 그래. 머리 다쳤어? 뱀파이어도 머리에 뇌 있지? 너한테 문제 생기면 우리가 큰일 나거든……. 귀하신 몸 잘 좀 챙겨주라.”
진심으로 간이 콩알만 해진 아이작이 그렇게 말하자 에드워드는 더 대답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입을 다물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자신에게 배정된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버튼을 누른 에드워드에게 뒤이어 올라탄 아이작이 말했다.
“어쨌든, 1등이 너란 걸 알면 헨리가 적잖이 실망하겠어.”
이번 야외훈련의 총 책임자인 헨리는 당연스럽게도 훈련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하고 있었다. 에드워드가 무슨 사고를 치는지 즐겁게 관람하고자 전자레인지에 넣으면 팝콘이 되는 옥수수 과자까지 박스로 사들고 자리를 잡았던 헨리가 의자에서 굴러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본 아이작이었다.
하기야, 그가 본 광경이 다소 충격적이기는 했다. 적외선 카메라에 잡힌 케일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지켜본 아이작은 그의 훈련 성적표가 하루 내내 백지인 것에 대해 헨리를 추궁하지 않았다.
솔직한 말로, 전술이고 전략이고 어떻게 평가가 가능한 수준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런 주제에 결과가 좋다. 보통 사람은 언감생심 상상도 하지 못할 미친 수단을 이용해 최단시간에 얻을 수 있는 최대의 결과를 손에 쥐는 그 모습은 확실히 충격적이었다.
“우리 팀 빠진다고 해. 그럼 두 번째로 들어온 놈이 1등이겠네.”
그렇게 대답하는 에드워드에 아이작이 힐끗 케일리를 내려다보았다. 녹음된 오디오에 따르면 그는 1등이 매우 하고 싶은 모양이라, 제 피를 대가로 그 에드워드를 부려먹을 정도였다. 그런 팀메이트의 유지를 이어갈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에드워드에게 아이작이 말했다.
“네 파트너가 싫어할 텐데. 1등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더만.”
에드워드는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 입매를 비틀었다.
“아닐걸. 얘한테는 1등을 하는 게 아니라 훈련 안 해도 된다는 게 더 중요하니까.”
어째서일까. 그 말이 굉장히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은.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에드워드가 성큼 걸음을 내딛었다. 그를 따라 내린 아이작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에드워드에게 물었다.
“그런데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아니, 뭘 하러 가는 거냐고 물어야 하나?”
당장 숨이 끊겨도 이상하지 않을 인간 하나를 데리고 에드워드가 향하는 장소가 말이 안 됐다. 병동에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에드워드에게 인간을 치료할 수 있는 뛰어난 의료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돌아가는 길이야 본인의 숙소인 것 같았다만…… 왜 하필 지금 거기에 가려는 것인가? 아니, 가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그 물음에 에드워드가 힐끗 아이작을 뒤돌아보았고 가벼운 어조로 대답했다.
“얘 수혈.”
그러니까……, 누구 피를 누구에게?
그 물음이 나오기도 전에 에드워드는 자신에게 할당된 방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 ◆ ◇
끼이익, 달칵.
오토록 잠기는 소리를 뒤로한 채, 에드워드는 축 늘어진 케일리를 안아 들고 곧장 욕실을 향했다. 땀에 절어 흙먼지부터 시작해 엉겨붙은 나뭇잎까지 엉망진창이라는 말로도 모자라는 그 꼴부터 어떻게든 해야겠다 생각한 탓이었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틀고 케일리를 던져 넣으려다 말고, 에드워드는 깁스한 팔을 내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대로 물속에 달랑 집어넣으면 상처가 덧난다. 어쩔 수 없이 입고 있는 옷부터 벗겨내 깁스한 팔과 상체를 욕조 바깥에 걸쳐지도록 자리를 잡은 에드워드가 샤워기를 들었다.
‘일단 머리부터 감기고, 팔에 물이 닿지 않도록 몸을 씻겨야지.’
하도 비정상적인 모습만 보다 보니 세균이며 바이러스에는 감염되지도 않을 것 같은 케일리였지만, 일단은 평범한 인간이었고 자신은 의사면허는커녕 보건의료와 일억 광년쯤 동떨어진 뱀파이어였다. 불법 의료시술을 하기 전에 위생상태를 철저히 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만약 케일리가 맛있는 음식이 아니었다면 세균에 감염되든 에일리언에게 세뇌되든 알 바 아니었다. 하지만 이 녀석은 맛있었고, 어린 시절 키우던 도베르만보다는 훨씬 얌전했다.
일단 정신을 잃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에게 물을 튀길 염려도 없었고, 무엇보다 제 손으로 샤워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되면 좋아서 온몸을 늘어뜨렸으면 늘어뜨렸지 반항을 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먹을 음식의 위생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목욕시중을 드는 것이 뭐 그리 큰 문제겠느냐, 스스로에게 되뇌며 에드워드는 옅은 밀빛 머리카락에 샴푸거품을 만들어갔다.
훤한 욕실 조명 밑에 다 벗겨놓으니 뱀파이어에게 있는지 없는지 애매한 측은지심이 고개를 들 만큼 처참한 몸뚱이가 보였다. 한 팔은 부러진 것도 아니고 완전히 으스러져 깁스를 하고 있질 않나, 허벅지에는 총상이, 목덜미에는 짐승에게 물어뜯긴 상처가 뱀파이어의 피로 인해 겨우 뚜껑만 닫힌 상태였다.
이걸 하나하나 신경 쓰면서 씻는 게 매우 귀찮은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은 에드워드가 샤워기를 들었다. 일단 머리카락에 묻은 샴푸를 깨끗하게 씻어내고 쏴아아, 케일리의 얼굴 위로 뜨거운 물을 쏘니 바다에서 갓 꺼낸 물고기마냥 파드득 튀어 올랐다.
“어푸어푸!”
입에 들어간 물을 뱉어내며 숨을 몰아쉬는 케일리를 바라보며 에드워드가 말했다.
“너 그 팔, 귀찮지?”
기절한 사람을 깨우는 방법 중에서도 가장 배려 없는 것을 고르라고 하면 에드워드의 물고문을 꼽을 수 있으리라 케일리는 생각했다. 어쨌든 정신이 번쩍 들기는 들어,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리니 사방이 새하얀 게 정글은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머리카락에서 뚝뚝 떨어지는 뜨거운 물에서 좋은 냄새가 났다. 샴푸인가. 그럼 여기는 정글이 아니라 욕실…….
“1등 했어요?”
자신의 질문은 들은 척도 않고 번쩍 고개를 들고 환한 미소를 짓는 그 모습에 에드워드가 잠시간 할 말을 잃었다. 이 와중에 제일 먼저 묻는다는 게 그거다. 다른 사람이 봤으면 어지간히 승부욕이 강하구나 착각할지도 몰랐지만, 에드워드는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 뭐. 넌 일관성이라도 있으니 다행이지.”
고개를 끄덕이며 1등은 했다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에드워드를 향해 케일리가 기쁨에 찬 얼굴로 두 손을 번쩍 들려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깁스한 오른쪽 어깨가 잠시간 경련했고 결국 멀쩡한 왼손만 들고 기쁨을 표현한 케일리를 에드워드는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그럼 우리 쉬는 거네요!”
싱글벙글 웃으며 그렇게 말한 케일리가 대답이 없는 에드워드의 안색을 살피며 덧붙였다.
“그런데 저 기절한 후로 얼마나 지났나요? 혹시 이틀 정도 꼬박 기절해 있었던 건 아니겠죠. 그러면 안 되는데…….”
끝으로 갈수록 침울해지는 표정을 바라보며 에드워드가 어깨를 으쓱했다. 쉴 수 있다. 아마 케일리가 생각하는 그런 휴식은 아니겠지만. 대답을 기다리는 케일리를 향해 에드워드가 말했다.
“너 훈련 안 받아도 돼.”
“저, 떨어졌나요?”
본인도 전술과 전략적으로 훌륭한 방법을 썼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뭐, 마지막에 가서는 기절해 짐짝마냥 날라져 왔으니 그 정도 상황판단이 안 되는 것도 문제이기는 했다.
“아니, 어느 쪽이냐면 붙은 거지.”
케일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떻게요?”
“내가 붙였거든.”
의기양양하게 대답한 에드워드는 좀 더 기뻐할 거라고 예상한 케일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취직은 하고 싶지만 훈련은 하기 싫다는 그의 요구를 다이렉트하게 이루어줬는데 왜 저런 표정을 하는 걸까. 왜 호의를 베풀어줬더니 배신당한 것 같은 얼굴이야?
어이가 없다.
눈을 가늘게 뜨고 왜 저러나 싶어 케일리를 쳐다보는 에드워드를 향해 대답이 돌아왔다.
“그거…… 처음부터 해줬으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해본 적 없겠죠?”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겠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에드워드가 말했다.
“어. 그때는 네가 무슨 맛인지 몰랐잖아.”
어딘지 납득한 듯 시무룩한 얼굴을 한 케일리가 그러고 보니, 하며 화제를 바꿨다. 그는 원래 지나간 일에 미련을 갖는 타입은 아니었다.
“팔 이야기는 뭐예요? 물론 불편하기는 하지만 이제 일주일 좀 됐으니 앞으로 1, 2주는 더 불편해야 하는데요.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쩔 수 없기도 하고요.”
어깨를 으쓱하며 그렇게 말하는 케일리에, 여전히 물이 흐르고 있던 샤워기를 잠근 에드워드가 아무렇지 않은 어조로 툭 내던졌다.
“바로 나을 방법이 있다면?”
마치 ‘집 앞에 핫도그 트럭에서는 핫도그를 팔잖아?’라고 묻는 것처럼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돌아온 물음에 케일리가 두어 번 눈을 깜빡였다. 뼈가 으스러졌는데 그걸 고칠 방법이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자신을 치료해줬던 용은 분명 그렇게 편리한 마법은 없다고 했다.
그런 마법이 있다고 해도 팔이 먼저 죽거나 팔만 살아남는 기형적인 결과를 낳을 테니 겨우 팔 하나를 위해서 순리를 거스르는 것은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말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케일리의 의문이 어디를 향했는지 눈치챈 듯, 에드워드가 느릿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아, 맞아. 그렌샤의 말대로 마법 같은 걸로 낫게 만들면 패널티를 감당해야 하는 데다 나는 마법을 쓸 줄 몰라. 그러니 내가 쓰려는 건 완전히 다른 방법인 셈이지.”
뱀파이어에게만 가능한 방법. 입가에 진한 미소를 걸치며 속삭이듯 덧붙인 목소리는 확실히 케일리에게 닿은 모양이었다. 욕조에 팔을 걸친 채 상체를 내민 케일리가 반짝반짝 빛이 나는 눈으로 물었다.
“그런 게 있어요?”
이미 자신의 왼팔은 충분히 혹사당한 상태였다. 이대로는 오른팔이 다 나은 후에 공평함을 위해 왼팔이 파업에 들어갈 차례였다. 비단 두 배의 노동을 강요당하는 왼팔뿐만 아니라 -B 지구에 들어온 후부터 전체적으로 전에 없는 노동 강도를 버티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었다.
게다가 팔이며 다리며 목이며 이곳저곳이 성치 못하다 보니 의외로 불편함이 많았다. 지금껏 크게 병치레 한 일도, 크게 다친 적도 없어 가볍게 생각한 케일리였다. 설마하니 부상이 부상을 부르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만약 오른팔을 정상적으로 쓸 수만 있었더라면, 정글에서도 에드워드라는 카드를 이용할 필요 없이 많은 난관을 제힘으로 넘길 수 있었을 것이라 케일리는 굳게 믿었다.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케일리를 향해 에드워드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뱀파이어의 피를 이용하면 가능해. 거의 나와 같은 속도로 회복할 수 있지.”
“총 맞아도 바로 구멍 막히는 그런 것처럼요?”
“맞아. 물론, 영구적인 건 아니지만…….”
그건 아주 위험한 방법이거든. 일시적으로, 요컨대 지금 네 몸에 있는 상처를 단숨에 회복하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렇게 덧붙이는 에드워드를 향해 케일리가“그럼 왜 진작 안 해줬어요?”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까와 정확히 같은 말을 내뱉었다.
역시나 “그때는 네가 맛있는 줄 몰랐고.” 하고 정확히 같은 대답을 돌리자 침울하게 납득하는 케일리의 모습을 바라보던 에드워드는, 쟤를 설득하고 싶으면 일 분 정도의 시간과 개도 안 주워 갈 이유 하나만 있으면 될 것 같다고 진지하게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단, 좀 귀찮다는 단점이 있어.”
“……귀찮다고요?”
얼마나 귀찮은지에 따라 대답이 달라질 것 같은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케일리에 에드워드가 그와 눈을 마주한 채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주 많이.”
“아, 그럼 됐어요. 그냥 일주일 더 버티죠 뭐. 일주일이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고.”
아쉬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케일리는 이미 머릿속에서 저울질을 끝낸 것 같았다. 아주 많이 귀찮다면 아무리 큰 상처라도 감내하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칭찬해야 할지, 아니면 보통 사람들은 거기서 과정이 좀 귀찮더라도 바로 회복하는 쪽을 선택한다는 상식을 주입해야 할지 에드워드는 잠시간 고민했다.
어느 쪽이든 아주 귀찮음에 대한 케일리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았으므로, 심술궂은 손을 뻗어 물에 젖어 축 가라앉은 머리카락을 쭈욱 잡아당긴 에드워드가 말했다.
“아니, 귀찮은 건 네가 아니라 나.”
잡아당기면 당기는 대로 주르륵 딸려 올라오는 자그마한 머리통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자 반짝, 맑은 밤색 눈이 빛났다.
“그러면 할래요!”
그러면이라는 말이 아주 거슬리기는 했지만, 거기까지는 걸고넘어지지 않기로 했다. 단순해서 편리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저 단순함이 가끔 화를 돋운다는 것을 새삼 자각한 에드워드가 젖은 머리칼을 뒤로 넘겼고 손을 내려 그의 볼을 감싸 쥐었다.
그다지 부드러운 손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우악스럽게 쥐는 것도 아니라, 볼과 귀를 덮는 커다란 손에 케일리는 눈을 깜빡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뭘 하든 네 마음대로 하시라는 철저한 신뢰를 담은 그 눈빛에 에드워드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이건 신뢰가 아닌가?
애초에 타인이 자신을 이유 없이 해치리라는 의심이 없는 케일리가 보이는 태도는 신뢰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 생명체로서의 본능을 방기한 무책임함은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별달리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던 에드워드는 눈앞의 상대를 정의 내리기를 그만뒀다. 일반적이지 않을 일반적인 단어로 정의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었다.
빈 욕조에 전라로 들어가 있는 인간 사내를 두고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차라리 어린 시절 키우던 개가 복잡한 사고를 하지 않을까 진지하게 생각한 에드워드가 손에 쥔 얼굴에 대고 말했다.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확인해두도록 하지.”
“뭔데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건 나에게 귀찮은 방법이다. 네가 도중에 귀찮아질 만한 일을 벌인다면, 나는 바로 치료를 포기하고 네 양팔을 부러뜨릴 거고 필요하다면 더한 짓도 할 거다.”
“뭔진 모르겠지만, 제가 그런 짓을 안 하면 된다는 말이죠?”
“그렇지.”
자신을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팔다리를 제대로 못 쓰는 게 귀찮기는 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낫고 싶었다.
뱀파이어의 피를 이용해 치료한다는 게 그렇게 위험한 일인가? 잠시간 고민에 빠진 케일리에게 에드워드가 말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네 상처를 전부 낫게 하는 데 하룻밤도 걸리지 않으리라는 거지.”
뱀파이어가 인간의 피를 흡혈하는 것은 식사에 속했다. 즉, 뱀파이어의 피에 인간의 피가 섞이는 것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그것을 소화시켜 생명 에너지로 전환시킨다는 뜻이었다.
반대로, 인간에게 뱀파이어의 피를 섭식하게 만드는 것 또한 가능했다. 인간의 피에 뱀파이어의 피를 섞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시게 만들어 소화기관에서 직접 흡수하게 만드는 것이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비유는 약물을 혈관에 직접 주사하지 않고 위나 장벽으로 흡수시키는 것을 들 수 있었다. 말하자면, 뱀파이어의 피 자체가 가진 치유능력을 이용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인간이라는 특성에 변화를 주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면, 뱀파이어의 피를 섭식한 인간이 일시적으로 피를 제공한 뱀파이어와 정확히 같은 신체능력을 얻게 된다는 것이었다. 즉, 피를 나눠주는 뱀파이어에게 있어서도 적잖은 리스크를 동반하는 행위였다.
뱀파이어가 권속을 만들 때 이용하는 방법은 피를 먹이는 것이 아니라 피를 섞는 것이기 때문에 권속이 된 인간이 숙주 뱀파이어를 공격할 수 없었다. 해서 어지간한 뱀파이어들은 권속을 만들지언정 인간에게 피를 먹이는 위험을 떠안지는 않았다.
에드워드는 케일리를 권속으로 만들 생각이 없었으며, 자신의 편의를 위해 그를 빨리 고쳐놓고자 했기 때문에 그 방법을 꺼내든 것이다. 만약 상대가 케일리같이 생각도, 야망도, 욕망도 없는 독특한 인간이 아니었더라면 어불성설,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에드워드의 말에 잠시간 고민하는가 싶었던 케일리가 느리게 눈을 깜빡였고, 바로 눈앞까지 다가온 파란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좋아요, 그렇게 하세요.”
그것은 에드워드가 말한 귀찮아질 만한 일을 결단코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스스로를 향한 믿음이었다. 케일리는 자신과 평생을 함께 살아온 스스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신했다. 그리고, 자신의 좌우명은 저에너지 고효율이다.
자동차 회사의 사훈으로 삼으면 딱 좋을 그 좌우명은 케일리의 근간을 만드는 것이었으며, 그가 지키는 유일한 동시에 절대적인 룰이었다.
게다가 에드워드의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지금 있는 상처가 순식간에 나은 후 팔을 부러트린다는 뜻이니 그것도 나쁜 결과는 아니었다. 병동에 있는 용의 말에 따르면 뼈를 바스라트린 것보다 부러트리는 게 훨씬 치료하기 쉽다니 말이다. 어느 쪽이든 자신에게는 이득이었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부터 너에게 내 피를 먹일 거다.”
그렇게 말하며 케일리의 얼굴에서 손을 뗀 에드워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입고 있던 지급복의 상의를 벗어 던지는가 싶더니, 빈 욕조에 케일리를 정자세로 눕혔다. 순순한 태도로 자신을 따르는 케일리를 바라보는 에드워드가 희미하게 웃었다.
개를 키우는 인간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확실히, 이런 식의 맹목적인 지지를 받는 것은 나쁜 기분이 아니었다. 권속을 만드는 것처럼 강제적이고 본능적인 연결점 없이도 느낄 수 있는 우월감이 의외로 달콤하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나이프를 꺼내 든 에드워드가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텅 빈 욕조에 등을 기대고 누운 케일리의 허리를 제 무릎 사이에 단단히 고정시키고 무릎으로 제 몸을 지탱시킨 에드워드가 한 손으로 케일리의 얼굴을 쥐었다. 입을 벌리라는 듯 입술 사이를 파고 들어오는 손가락이 뜨거웠다. 순순히 입을 벌린 케일리가 순종적인 눈으로 에드워드를 올려다보았다.
얼굴의 반쪽과 귀를 꽉 잡아 고정시킨 에드워드는 그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손에 힘을 주었다. 손에 쥔 나이프를 입으로 가져가는 에드워드를 바라보며 케일리가 그의 엄지를 입에 담은 채 우물우물 말했다.
“그거 많이 아파요?”
제 입으로 나이프를 가져가다 말고, 자신을 향해 돌아온 케일리의 물음에 에드워드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본인의 고통은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주제에, 타인의 고통에는 걱정스러운 눈을 하다니. 그것 참 이해할 수 없는 알고리즘으로 돌아가는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하며 에드워드가 말했다. 그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아니었다.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테니 지금부터는 딱 두 가지만 생각해.”
케일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고 칭찬을 하듯 얌전히 누운 그의 혀를 엄지로 스치듯 쓰다듬은 에드워드가 이어서 설명했다.
“뱀파이어의 피는 인간에게 두 가지 작용을 하지. 첫째는 뱀파이어의 체세포를 그대로 소화기관으로 흡수해 뛰어난 치유능력을 발휘해서 모든 기관의 하자를 치료한다. 그 과정에서 노화하거나 죽어가는 세포를 살리는 일도 있기 때문에 불로불사, 혹은 젊어지는 약으로 블랙마켓에 도는 경우도 있어. 양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그 팔다리를 한 번에 고치려면 어지간히 마셔야 할 테니 다소 겉으로 영향이 드러날 수도 있겠군.”
에드워드가 인간의 피를 마시는 것도, 권속을 만드는 것도 꺼려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불로불사를 원하는 인간, 젊음을 되찾고 싶어 하는 인간들은 탐욕을 목적으로 뱀파이어를 찾았다. 그들의 추악한 욕심을 순순히 채워줄 만큼 에드워드는 성격이 곱지 못했다.
뱀파이어는 권속을 만들 때 흡혈행위를 이용한다. 그러니 맛도 없고 욕심만 가득한 인간의 피를 구역질을 참아가며 빨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두 번째는…….”
또한, 많은 인간들이 뱀파이어의 피를 갈구하는 생물의 본능에 가까운 두 번째 이유를 설명하려던 에드워드가 말을 멈췄다. 솔직하게 말하면, 에드워드는 인간에게 자신의 피를 먹여보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어떤 작용을 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경험한 적은 없었다.
또한 그것이 인간의 윤리관에서 매우 배덕한 행위라는 것까지 포함해, 굳이 미리 알고 마실 필요가 없다 판단 내린 그가 이렇게 말했다.
“마셔보면 알 거다.”
손에 들고 있던 나이프의 손잡이를 입에 문 에드워드가, 날카롭게 날이 선 그것에 자신의 손목을 깊게 그었다.
자신의 얼굴을 고정한 에드워드의 손으로 바위처럼 단단하게 힘이 들어갔고, 그의 무릎 사이에 눌린 상체 또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살과 근육이 훤히 보일 만큼 깊게 베인 손목의 상처를 동그랗게 뜬 눈으로 올려다보는 것도 잠시, 케일리는 입안에 퍼지는 뜨겁고 비릿한 액체에 질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