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화 (28/41)

#Mission5. Passion Week in NYC (10)

굳이 예상을 할 필요도 없이, 에드워드의 의사를 확인한 케일리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거리낌 하나 없이 고개를 내렸다. 그가 먼저 시도한 입맞춤은 이걸로 두 번째였다. 처음도 오늘이었고, 두 번째도 오늘이었다. 둘 다 목적도 확실했다.

섹스를 하고 싶어서.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이, 욕정을 풀기 위한 몸짓이었다. 지나치게 노골적인 시작이라 기분을 잡칠 뻔한 에드워드는 곧 가볍게 제 입술을 핥는 뜨거운 살덩이에 소리 없는 한숨을 목 뒤로 삼켰다. 이제 와서 후회한들 달라지는 것도 없었다. 어차피 하는 거 즐기기라도 해야지, 이렇게 끌려가기만 하는 것도 억울했다.

커다란 손이 케일리의 뒤통수를 파고들었다. 단단한 손가락 끄트머리가 머리통을 움켜쥐었고, 자신의 쪽을 향해 힘을 줘 잡아당겼다. 고개를 살짝 비튼 에드워드의 입술이 케일리의 입술에 빈틈없이 맞물렸다. 자연스레 입술을 벌린 두 사내의 숨이 섞였다. 그 가운데에서 뜨거운 살덩이가 엉겨붙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살덩이를 탐욕스레 빨아 올렸다. 츕, 츄웁, 물기 어린 소리가 맞물린 입술 사이에서 간간이 새어나왔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타액이 섞여들었고, 꽉 맞물린 입술 사이에서 물소리를 세웠다.

에드워드도, 케일리도 눈을 감지 않았다. 흐릿한 밤색 시선을 집요하게 붙잡던 에드워드가 그의 허리에 팔을 감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운동을 즐기지 않는 케일리의 아랫배는 군살이 없었다. 자신의 위에 올라탄 살집 없는 몸을 끌어안자 저항 하나 없이 순순히 달라붙는 체온이 그대로 느껴졌다. 맞닿은 피부로부터 열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기묘한 착각이 들었다.

낯선 침실이었다. 갈아입을 옷을 찾을 필요도 없이 샤워를 마친 나신을 그대로 침대까지 끌고 온 두 사내의 사이에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뼈의 개수를 가늠하듯 등허리를 더듬어 내리는 손길을 느끼며 케일리는 에드워드의 목에 팔을 감았다. 어느새 제 영역인 양 입안을 파고 들어온 뜨거운 살덩이가 입을 가득 채웠다.

코로 숨을 몰아쉬며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입을 벌린 케일리가 허리를 들썩였다. 단단한 복근과 납작한 배 사이에서 완전히 모양을 갖춘 성기가 사정없이 짓뭉개졌다. 끄트머리에 힘이 들어간 살덩이가 케일리의 입천장을 느리게 긁어내렸다.

피부 위인지, 내장 안인지 모를 아랫배 근처가 끓어오르는 것처럼 뜨거웠다. 당장이라도 손톱을 세워 긁어내리고 싶을 만큼 간지러웠는데, 손을 뻗어봤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발가락을 오므린 케일리가 제 입을 가득 채운 뜨거운 살덩이 위에 제 혀를 비볐다. 어떻게든 해보라는 것처럼 매달려드는 혀를 뿌리까지 집어삼키는 것과 동시에, 에드워드가 허리를 쳐올렸다.

허벅지 위에 올라타 있던 케일리의 회음부를 어느새 단단히 선 성기가 찔러 올렸다. 예민한 살을 스치는 뜨거운 감각에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친 케일리의 눈가가 붉게 달아올랐다. 그 모습을 빠짐없이 시야에 담은 에드워드가 케일리의 혀를 놓아주었다. 부풀어 오른 아랫입술을 아쉬운 듯 잘근거린 후에야 떨어져나간 입술이 턱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갔다.

“하아…….”

뜨거운 숨이 하얀 목덜미에 이를 세운 에드워드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심장에서 가까운 경동맥이 지나가는 자리다. 몇 입이나 될까 가늠하는 것처럼 이로 꾸욱 피부를 압박했다. 당장이라도 꿰뚫고 들어올 것처럼 멈춰 있는 송곳니의 끄트머리는 뭉툭했다.

한숨처럼 숨을 뱉은 케일리가 에드워드의 머리카락 사이에 손가락을 얽어 넣었다. 부드러운 금빛 실이 손가락 사이를 부드럽게 빠져나갔다. 케일리의 두 손이 에드워드의 목을 감쌌다. 날카로운 턱선을 따라 올라온 손가락이 뺨이며 귀를 가볍게 스쳤다. 그렇게 뒷목과 머리카락 사이를 애무하듯 파고드는 손가락의 움직임은 마치 좀 더 강한 자극을 원하는 것처럼 에드워드를 재촉했다.

곰곰이 떠올리면 케일리는 첫 섹스에서도 비교적 적극적인 편이었지만, 그때는 피에 지배당하고 있었으니 별로 참고가 되지 않았다. 그런 주제에 본인이 하고 싶어지니 아무렇지 않게 입술부터 들이미는 것에도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기는 했다.

키스하고, 만지고, 허리를 흔들어 잔뜩 성난 제 성기를 남의 복근에 비벼드는 게 영락없이 발정 난 사내자식의 몸짓 그 자체였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드러누워 자신이 알아서 해주기를 기다렸다면 그건 그것대로 기분이 더러웠을 것 같지만…….

어려운 문제였다.

에드워드가 제 입을 채운 목덜미의 살을 한입 베어 물었다. 날카롭게 이를 세우는 그를 향해 느리게 숨을 뱉은 케일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마실 거예요?”

다소 잠긴 목소리가 그렇게 묻는다. 에드워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제 피를 몇 모금 먹이고, 자신도 재미를 볼 생각이었다. 물론 이런 재미는 아니었다. 준 만큼 얻어먹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없었다. 인간은 피를 새로 만들기까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지금 입을 대면 얼마를 마시든 꼼짝없이 하루 이틀은 쉬어야 했다.

좋아서 시작한 것도 아닌데 하다 멈춰야 하는 건 더 끔찍했다. 식욕과 성욕 사이에서 아주 조금 갈등한 에드워드가 힐끔 시선만 올려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아니.”

후각을 마비시킬 것처럼 끼쳐온 냄새는 옅어질 줄을 몰랐다. 케일리로부터 시작된 욕정의 냄새였다. 이상한 것은 그게 역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불순물이 섞이지 않아서인지, 상대가 케일리이기 때문인지를 가늠할 여유는 없었다.

감정의 냄새 안에 진짜 냄새도 섞여들었다. 몇 번인가 이를 세운 목덜미에 잇자국을 따라 피가 몰린 탓이다. 연하기 짝이 없는 피부 밑을 흐르는 것은 세상 그 어떤 별미보다 훌륭한 미식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먹을 수 없었다.

목 옆의 경동맥은 심장에서 가까운 신선한 피였다. 뇌에 공급하기 위한 가장 좋은 혈액을 펌프질하는 것이었다. 피부 한 꺼풀 아래에서 흐르는 혈액의 맛을 가늠하기라도 하듯 느리게 핥아올린 에드워드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 위에 코를 묻었다. 코끝에 비벼지는 부드러운 피부의 감촉, 그리고 달큰한 피 냄새가 적나라했다. 정말이지, 고문이 따로 없었다.

“그거 알아요?”

어느새 평소의 톤으로 돌아온 케일리가 그렇게 말했다. 도드라진 쇄골을 지나 어깨를 가볍게 깨문 에드워드가 “이번에는 또 뭘 알았으면 하는데?” 하며 심드렁하게 되물었다.

순혈 뱀파이어 중에도 계보가 있다면 아마 얼마 남지 않은 로열 블러드인 케일리와 엇비슷한 정도의 위치였을 에드워드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돌아가는 상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결과가 자신이 득을 보는 한이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는 에드워드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케일리는 창밖을 봤더니 구름이 떠 있다는 이야기라도 하듯 여상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오럴은 섹스가 아니래요.”

하얀 어깨에 선명한 잇자국을 남긴 후 심술이 덕지덕지 묻은 시선으로 그것을 확인하던 에드워드가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대체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느냐는 것처럼 어이없는 얼굴을 하는 에드워드를 향해 그가 말을 이었다.

“아까 할 마음이 들게 만들어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생각해봤거든요. 어떻게 하면 할 마음이 들지.”

에드워드가 극찬한 바 있는 논리비약 능력을 생각하면 대충 할 마음이 들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보다가 오럴까지 갔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사실 자위 쇼 정도에도 넘어가줬을 텐데, 케일리 주제에 오럴까지 고려했다는 건 의외로 감동적이었다. 그딴 걸 가지고 감동씩이나 해야 하는 게 다소 서글펐으나 어쩔 수 없었다.

오늘 저녁까지만 해도 에드워드의 머릿속에서 케일리는 한 마리의 애완 해파리였다. 바다 속을 유영하는 해파리와의 차이점은 피가 맛있다는 것 정도였다. 귀찮아서 숨은 어떻게 쉬나 가끔 진지하게 궁금해지는 천하의 케일리에게 봉사를 받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물론 잘할 거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그런 걸 해본 적이 있는지부터가 의문이었으니 말이다.

어찌됐건 거기까지는 보통 사람도 충분히 떠올릴 만한 결론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그 답으로 오럴을 떠올렸다는 것까지는 이해했어. 그 뒤는 뭔데?”

에드워드의 물음에 케일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어딘지 말끝이 늘어지는 나른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별로 의미는 없는데요. 그냥, 미국이잖아요. 오럴이고. 그래서 생각났다는 이야기예요.”

정말로 의미가 없는 헛소리였는지 제가 뱉어놓고서 조금 웃은 케일리가 에드워드의 귓가에 입술을 내렸다. 아프지 않게 이를 세워 몇 번인가 잘근거린 케일리가 고개를 숙여 눈을 마주쳐 왔다. 이번에는 또 무슨 개소린가 싶어 미간을 좁힌 채 어깨의 잇자국 위에 혀를 내어 할짝이던 에드워드의 머릿속에 어디서 많이 들어본 스캔들이 스쳤다.

미국이고, 오럴이고, 그래서 떠오를 만한 이야기. 오럴은 섹스가 아니다. 당연하게도 그 말 자체는 개소리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런 말을 지껄인 멍청이가 있기는 했다. 심지어 아주 유명한 멍청이였다.

“그래, 넌 일단 그 입을 좀 다무는 게 좋을 것 같구나. 네 말대로 차라리 좆이라도 물고 있는 게 낫겠어. 자꾸 헛소리가 나오는 걸 보면 입이 심심한 게 문제인 것 같으니까 말이야.”

대체 사고가 어떻게 굴러가야 한창 전희를 나누는 와중에 빌 클린턴의 해묵은 섹스 스캔들을 가지고 대화를 시도하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숨처럼 흘러나온 에드워드의 말이 저를 웃기기 위한 농담인 줄 알았는지 곱게 접힌 눈을 한 케일리가 헤프게 웃었다.

그 순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에드워드는 그게 산통 깨지 말고 입 좀 닥치라는 욕이었다는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진심으로 고민해야만 했다.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될 것 같은데요.”

차라리 마음먹은 김에 오럴이라도 시도해보라고 진지하게 충고하는 에드워드를 향해 케일리가 대답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진심으로 되물으려 입을 열던 에드워드가 일순 말을 멈췄다. 불쑥 손을 뻗은 케일리가 허리를 띄우는가 싶더니, 제 엉덩이 밑에 깔려 반쯤 형태를 갖춘 에드워드의 성기를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너, 그렇게 갑자기 잡으면……!”

“안 돼요? 하지만 양해를 구하고 잡는 것도 좀 분위기 깨지 않나요?”

“하, 분위기?”

네가 언제 그런 걸 고려했냐는 의심 섞인 시선에도 케일리는 굴복하지 않았다.

“나도 급해서. 정 원하면 나중에 입으로 해줄게요. 좀 잡고 흔들면 완전히 설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잡고 흔들……, 너 말이다, 그 망할 머릿속에는 섬세함과 배려라는 말이 아예 등재가 안 됐지?”

한 점 거리낄 것이 없다는 것처럼 당당한 얼굴로 에드워드를 마주한 케일리가 대답 대신 허리를 맞춰 제 것과 함께 두 개의 성기를 양손으로 가볍게 쥐었다.

꺼떡이며 자기주장을 하는 성기 두 개가 빈틈없이 맞닿았다. 끄트머리에서 새어나온 투명한 액체가 선단을 적셨다. 번들거리는 검붉은 대가리 위를 엄지로 문지르며 케일리가 고개를 숙여 에드워드의 귓가에 입술을 가지고 갔다.

섬세함, 배려……. 그런 게 필요하다면 원하는 대로. 그렇게 말하기라도 하듯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소름 끼칠 만큼 정중한 억양을 담고 느리게 흘러나왔다.

“에디, 성기를 애무해도 될까요?”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케일리의 손바닥은 모아 쥔 성기의 표면을 느리게 쓸어 올리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꼭 신사를 연기하는 난봉꾼에게 잘못 걸린 처녀가 된 기분이었다. 무엇 하나 들어맞는 게 없었는데도 그런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걸 보면 케일리가 난놈은 난놈이었다.

“니 맘대로 하세요…….”

누가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패배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 ◇

남의 소중한 생식기를 아무렇지 않게 움켜잡아 성의 없이 위 아래로 흔드는 손에 토정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굴욕적이었다.

그런데 그 똑똑한 머리를 하등 쓸모없이 굴려서는, 무성의한 수음에 사정한 배알 없는 성기를 내려다보던 케일리는 이 크기가 그냥은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에드워드의 것과 같이 케일리 또한 한 번 사정한 후였다.

그럼에도 맞닿아 있는 두 개의 성기는 풀이 죽기는커녕 팔팔하게 살아 다음을 기다리며 꺼떡거렸다. 케일리는 피를 마셨다는 핑계라도 있었는데, 에드워드에게는 없었다. 아무리 허리 아래로 살아가는 게 수컷의 생리라지만 배신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에드워드가 스스로의 하반신에 배신감을 느끼든 말든, 케일리는 제 쾌감을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간간이 눈살을 찌푸리고 느린 숨을 내뱉으면서도 빗나가는 손놀림으로 두 사람 몫의 정액을 손바닥에 펴 발랐다. 뭘 하는 짓인가 싶어 쳐다보는 에드워드를 향해 이것도 액체고 미끄러우니 쓸 만할 것이라 눈으로 웃는 데야 더 이상 되돌릴 말이 없었다.

분명 자신과 한 게 남자와는 처음 해보는 섹스라고 했는데, 왜 저렇게 익숙한 걸까.

에드워드가 의문을 가질 틈도 없이 불쑥 뒤로 옮겨간 케일리의 손가락이 스스로의 구멍을 파고들었다. 정액으로 번들거리는 손가락을 겁도 없이 쑤욱 비집고 넣는 모습을 에드워드는 다소 아연한 심경으로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여기까지 오면 어디까지 가나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자신의 허벅지에 걸터앉아 엉덩이를 들고 손에는 정액을 바른 채 스스로의 구멍을 헤집는 케일리의 모습을 구경하며 에드워드는 제 성기에 손을 가지고 갔다. 어느새 완전히 힘을 되찾은 자신의 것을 쥐고 느리게 흔드는 것보다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케일리의 자위가 훨씬 자극적이었다.

그러고 보면 쟤는 저게 애널자위랑 비슷한 행위라는 걸 알고 하는 걸까.

생각에도 필요성을 나누고 할지 말지를 결정할 것 같은 녀석이니 아마 만족스러운 삽입섹스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는 데서 판단을 끝낼 것 같기는 했다.

알게 된 지 몇 년이 지난 것도 아닌데 이렇게 간단히 파악할 수 있는 상대라는 걸 기뻐해야 할지, 그 단순함이 지나칠 때 오히려 가늠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에 통탄해야 할지 의문스러운 순간이었다.

케일리는 스스로의 육체에조차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이, 두 번째 손가락을 무식하게 쑤셔 넣었다. 하얀 엉덩이가 움칠 경련했고 욱여 들어간 손가락의 접합부가 죄어드는 구멍의 압력으로 붉게 달아오르는 모습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확실히, 지켜보다 보면 쾌감을 좇는 삽입자위라기보다는 좀 더 과격한 행위로 보이기는 했다.

뭐로 비유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도 않을 만큼 성의 없는 손놀림을 보면서도 허리 아래가 달아오른다는 사실이 에드워드는 다소 놀랍기까지 했다. 별달리 색정적인 광경도 아니었다.

케일리는 눈으로 보기에도 꾸역꾸역 힘으로만 구멍을 벌리고 있었다. 뭘 넣기 위해 달린 구멍이 아니니 저렇게 억지로 쑤셔 넣기만 하면 아플 법도 한데, 꾹 다물린 입술에서는 작은 신음 하나 새어나오지 않았다.

하여간 이상한 부분에서 독종이다. 에드워드의 허벅지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 엉덩이를 든 채 구멍을 넓히던 케일리가 곧 세 번째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꾸역꾸역이라는 말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모습을 바라보며 에드워드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 공감능력이 발달한 것도 아닌 데다가, 인간의 고통에 공감할 만큼 너그러운 것도 아니었는데 차라리 저가 손을 빌려주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광경이었다.

상체는 완전히 자신에게 기댄 채 목덜미에 이마를 붙인 케일리가 미간을 좁히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하기야, 저렇게 무식하게 쑤셔 넣는데 아프지 않을 리가 없었다. 억지로 쑤셔 넣으니 들어가기는 했지만, 슬쩍 보기에도 뻑뻑해 움직이는 게 가능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액에 젖어 번들거리는 손가락을 고집스레 집어넣은 케일리가 이번에는 그것을 느리게 빼냈다가, 다시 박아 넣는 왕복운동을 시작했다.

첫 섹스에서 느꼈던 지점을 찾아내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내부를 자극하며 움직이는 손가락은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마찰된 입구가 붉게 부풀어 올랐고 저가 생각하기에 그걸로 충분하다 싶었는지 고개를 돌린 케일리가 바로 눈앞에 있는 에드워드의 턱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거, 얼마나 더 해야 돼요?”

남의 허벅지에 걸터앉아 허리를 들고 제 구멍에 손가락을 꽂은 자세 그대로, 물음을 던지는 케일리에 에드워드는 어쩔 수 없다는 양 깊은 한숨을 뱉으며 달큰한 체취가 올라오는 머리카락 사이에 코를 비볐다. 하라는 대답은 안 하고 왜 머리 냄새나 맡느냐는 것처럼 눈가를 찡그린 케일리가 도리질을 쳤다.

“글쎄, 네 생각에는 얼마나 더 해야 할 것 같아?”

느긋하게 흘러나온 목소리와는 달리 에드워드의 성기는 이미 아랫배가 당길 정도로 팽팽하게 발기해 있었다. 하지만 케일리보다 훨씬 본능을 억누르는데 익숙한 그는 입술을 깨물며 “전에는 좀 더 쉬웠던 것 같은데…….” 중얼거리는 모습에 그제야 대충 같은 스타트 라인에 선 것 같다는 만족감으로 입가에 웃음을 매달았다.

에드워드는 오늘만 해도 평소처럼 굴려다 몇 번이나 강력한 어퍼컷에 얻어맞은 참이었다. 더 얻어맞았다가는 너덜너덜해져 당분간 시합을 쉬어야 할 터다.

걸어온 싸움은 피하지 않는다는 게 에드워드의 철학이었지만 이번의 경우 싸움을 시작한 것도 아니다. 아예 경기장의 링에 오르지도 못한 어이없는 상태나 다름없었다. 심지어는 그를 링에 오르지 못하게 만드는 게 바로 케일리 로체스터였다.

업어치든 메치든 그를 좋아하기로 결정한 건 온전히 자신의 감정이었다. 그걸 하지 말라느니 하라느니 충고하는 건 아무리 그 감정의 대상이라고 해도 참견할 권리가 없었다. 그가 혼자서 바르작대는 것을 구경하면서 내린 에드워드의 결론은 그랬다.

자신의 감정을 거절하는 것이야 그의 자유겠지만, 그 감정이 생겨나는 것을 막을 자격은 아무리 상대가 케일리라고 해도 가질 수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아프지도 않았던 것 같아.”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양, 제 뒤에 손가락을 꽂은 채 불만 어린 목소리로 토로하는 케일리에 에드워드가 생각했다. 그야, 전과 비교하면 같을 수가 없는 게 당연했다. 약으로 따지면 순도 높은 코카인과 헤로인을 섞어 만든 스피드볼의 옆에 고작 마리화나를 대놓을 수 없는 것과 비슷했다.

한껏 인상을 찌푸린 채 어떻게 좀 해보라는 양 자신을 올려다보는 케일리의 머리카락 사이를 에드워드의 손가락이 헤집고 들어갔다. 부드러운 밀빛 머리칼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갔고, 그대로 내려간 커다란 손이 케일리의 뒷목을 감싸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뜨겁게 열이 오른 이마에 제 이마를 마주했다. 서로의 코끝이 맞닿아 뭉개졌다. 불만을 담고 흐려진 밤색 눈동자에 대고 에드워드가 입술을 달싹였다. 속삭이는 것보다는 크고, 보통 때의 말소리보다는 작은 은근한 톤이었다.

“좀 도와줄까?”

한참을 끙끙대는 걸 구경만 하다, 이제야 손을 내미는 에드워드의 뻔뻔한 작태에 감정의 동요가 적은 케일리가 눈을 크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하지만 아랫배에 닿을 만큼 팽팽하게 발기해 꺼떡이는 성기와 당장이라도 손을 들어 긁어내리고 싶을 만큼 근지러운 뒷구멍의 상황이 급한 케일리는 가타부타 걸고 넘어가지 않고 곧장 대답했다.

“도와주세요.”

기억이란 언제나 과대평가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에드워드와의 첫 삽입섹스에서 느꼈던 쾌감이 그저 과장된 기억이라는 것도 일리는 있었다. 여자에게 삽입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쾌감을 느꼈고, 어딘지 약에 취한 것 같은 몽롱한 정신으로도 척추를 꿰뚫는 황홀감은 뇌 한구석에 들러붙어 있었다. 자신의 육체가 원하는 쾌락이 어떤 종류인지 모를 만큼 케일리는 멍청하지 않았다.

어떻게 도와줘, 맞닿은 입술이 그렇게 말했다. 뒷목을 감싼 손바닥의 온도만으로도 갈 수 있을 것처럼 온몸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목이 탔다. 저도 모르게 혀를 내 입술을 핥은 케일리는 에드워드가 쓸데없는 심술을 부리지 못하도록 짙게 가라앉은 새파란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한 채 또박또박 발음했다.

“내 애널에, 에디의 성기를 박고 흔들어주세요.”

먼저 손을 내밀기는 했지만, 설마하니 그렇게 노골적으로 대답 할 줄은 예상치 못했던 에드워드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굳었다. 하지만 자신만 매달리고, 자신만 마음을 빼앗긴 것 같아 느끼던 불공평한 응어리가 다소 풀리자 그 말까지 뒤로하고 괴롭혀야 할 이유도 없었다.

쓸데없는 생각 그만하고 빨리 박기나 하라는 것처럼 방금 전까지 제 손가락으로 넓히고 있던 구멍에서 손가락을 뺀 케일리가 두 팔을 뻗어 에드워드의 목에 감았고, 쓸데없는 말을 그만하라고 시위하듯 입을 맞췄다.

어린애 장난처럼 아랫입술을 할짝거리는 혀를 집어삼킨 에드워드가 촉촉한 살덩이를 제 것마냥 유린했다. 뜨겁게 열이 오른 두 개의 혀가 느리게 비벼졌다. 까슬한 감촉 위로 이어질 행위를 향한 기대감이 아랫배를 찌르르 울렸다. 짧게, 그러나 농밀한 키스가 끝나고 느린 숨과 함께 떨어진 입술이 잠시간 가만히 맞닿아 있었다.

케일리의 허리에 감긴 단단한 팔에 힘이 들어갔다. 감싸 안은 몸을 제 쪽으로 당긴 에드워드가 케일리의 귓가에 속삭였다.

“허리 좀 들어봐.”

순순히 엉덩이를 들자 불이 붙은 것처럼 뜨거운 살덩이가 입구에 닿았다. 케일리의 움직임을 돕듯 에드워드가 그의 허리를 잡아 지탱해주었다. 정액으로 인해 번들거리는 구멍은 붉게 달아오른 채 간간이 개폐했다.

당장이라도 미끄러져 들어갈 것처럼 단단한 선단 끄트머리가 입구에 닿았다. 느리게 주변을 맴돌며 감질나게 비벼드는 감촉에 어깨를 움츠리며 도리질을 친 케일리가 콱, 입가에 얼쩡거리던 에드워드의 입술을 깨물었다.

“흣……, 빨리!”

재촉하듯 흘러나온 젖은 목소리에 입구에 성기를 맞춘 에드워드가 느리게 대답을 돌렸다.

“분부대로.”

말이 끝나는 것보다 빠르게, 허리를 지탱하던 에드워드의 손이 떨어져나갔다. 툭, 중력을 따라 떨어진 엉덩이 사이로 흉흉하게 서 있던 성기가 마술처럼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건 아니었다. 뻐끔거리며 기대감을 드러내던 구멍 사이에 단번에 꽂힌 성기가 믿을 수 없을 만큼 깊게 박혔다. 아래에서 푹! 꽉 닫힌 살갗을 파고드는 소리가 난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 흐으……!”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문 케일리는 순식간에 밀고 들어온 뜨거운 살덩어리를 꽉 죄이는 감각에 몸서리쳤다. 자신의 몸인데도 마치 다른 사람의 것처럼 생경하게 느껴졌다. 뜨겁고, 굵고, 단단한 살덩이가 내벽을 비집고 들어왔다. 저도 모르게 엉덩이를 빼려 허리에 힘을 넣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예고 없이 꽉 죄인 내벽의 압박감에 헛숨을 들이켠 에드워드는, 입을 벌린 채 고개를 뒤로 젖힌 케일리의 도드라진 목젖을 혓바닥으로 비비며, 남은 기둥을 뿌리까지 쑤셔 넣었다.

하얀 엉덩이에 팽팽하게 긴장한 불알이 닿았다. 내벽에 꽉 들어찬 성기가 끝까지 밀고 들어온 참이다. 케일리가 숨을 고를 수 있도록 잠깐 멈춰 긴장한 허리를 느리게 쓸어내리던 에드워드의 시야에 문득 잘게 떨리는 눈가가 들어왔다.

붉게 달아오른 눈꼬리에서 또르르, 방울진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아픈 얼굴은 아니었다. 오히려 들어찬 성기의 감각만으로도 참을 수 없이 밀려드는 쾌감에 진저리를 치는 것처럼 밤색 시선이 허공에 흐트러졌다.

지나치게 죄는 내벽의 압박감에 에드워드도 슬슬 한계였다. 당장이라도 하얀 몸을 침대 위에 뒤집어놓고 제 욕심을 채우고 싶었다. 하지만 정신을 못 차리고 눈물만 흘리는 걸 잡고 아무렇게나 박아대면 아마 후회할 것 같았다.

뒤가 찢어지든 말든 몸의 주인은 아무 생각 없겠지만, 그걸 보는 자신이 후회하겠지. 고쳐줄 수 있는 것과 그런 꼴을 봐야 하는 건 엄연히 별개의 문제다. 그러니 먼저 반한 죄로 성기를 꽉꽉 무는 뜨거운 내벽의 압박감을 뒤로한 채 에드워드가 속삭였다.

“케일리, 케일리…….”

뒤로 재껴진 머리통을 감싸 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러자 허공을 헤매던 흐린 시선이 느리게 초점을 잡아갔다. 몽롱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케일리의 귀에 입술을 가지고 간 에드워드는 그가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느긋하고 정확한 발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힘을 빼야 움직이지.”

“아……, 으……그, 냥 움직……!”

“안 돼. 다치잖아.”

주로 네 후장과, 내 마음이.

뒷말을 삼킨 에드워드가 어린아이의 투정마냥 흐느끼며 제 어깨에 이마를 부비는 케일리를 도닥였다. 힘을 빼면 움직여주겠다는 쓸데없이 다정한 속삭임에 케일리가 입술을 깨물었다. 차라리 제 욕심대로 박아대는 편이 견디기 쉽다.

간간이 움틀거리는 성기의 뜨거운 감촉이 내벽에 그대로 전달되었는데, 더 이상 커질 수도 없을 만큼 발기한 주제에 에드워드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구멍 안에 좆을 파묻고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처럼 머리를 쓰다듬고, 허리 위를 느리게 쓸어주는 손길이 가증스러울 지경이었다.

몇 번인가 심호흡을 하고, 숨을 골랐지만 쉽게 힘이 빠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뒤가 덜 풀어진 것 같다. 그게 아니면 에드워드의 성기가 너무 커서 애널 섹스에는 별로 적합하지 않은 걸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든 케일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원인이 아니라 현상이었다. 굵고 단단한 그 끄트머리가 시원스럽게 긁고 지나가면 좋겠는데, 바로 근처까지 다가왔는데, 돌덩이라도 되는 양 꿈쩍을 안 했다.

촉, 초옥……. 물기 어린 입술 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언제까지고 기다려줄 수 있다는 것처럼 에드워드는 여유롭게 이마며 콧잔등에 입을 맞췄다. 결국 이를 악문 케일리가 허리에 힘을 넣었다. 에드워드의 어깨를 짚고 제 구멍에 박힌 성기 위에서 몸을 일으키자 쑥, 미끄러지듯 간단히 빠져나갔다.

“하읏!”

굵은 선단이 내벽을 긁었다. 그 선연한 감각에 몸서리를 친 케일리가 입구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끄트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한 손으로 움켜쥐기에도 버거운 성기가 잡혔다. 그걸 제 구멍에 제대로 맞춘 케일리가 돌발행동에 당황한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파란 눈동자를 쳐다봤다.

자신의 것과 같이 쾌감에 젖은 시선이 돌아왔다. 약간의 당황, 억눌린 쾌감, 그리고…… 숨길 생각도 없이 줄줄 새어나오는 감정의 폭포. 제 욕심을 좇아 곧장 허리를 내리려던 케일리가 멈칫했다.

별로 유쾌한 구경은 아니었다. 자신을 향한 타인의 감정이라는 건 언제나 귀찮고 성가셨다. 이쪽에서 마음을 받아줘도 성가셨고, 받아주지 않아도 그랬다. 어떤 마음이든 그랬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같은 무게로 같은 성질의 마음을 주고받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물며 다른 종족이다. 시대를 잘 타고나 같은 성별이라는 것까지는 장벽이 되지 않는다 쳐도, 종족은 어려웠다. 수컷 개와 수컷 인간이 진정한 사랑을 나눈다고 하면 전 세계 칠십억 인구가 비웃음만 돌릴 것이다. 개중 많은 이들이 정신병원을 추천하겠지. 케일리에게 있어서 에드워드의 애정은 그런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긍정적인 결말이 보이지 않았다.

깊은 한숨이 소리 없이 새어나갔다. 자신을 향하는 애정 어린 눈동자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이렇게 예쁜 눈을 하고, 어쩌다가 자신을 좋아하게 된 걸까.

아마 손만 뻗으면 미인으로 유명한 스웨덴의 공주가 상대라고 해도 간단히 넘길 수 있을 남자였다. 물론 그녀에게 뱀파이어라는 사실은 숨겨야겠지만, 어찌됐건 케일리가 생각하기에 저 마음은 방향을 잘못 잡았다.

쓸데없는 배려와 걱정, 그리고 애정이 담뿍 담긴 눈을 마주한 채 케일리가 입술을 내렸다. 감지 않는 눈 위에 입을 맞추었고, 약간의 짜증을 담아 혀를 내밀었다. 짐승이 장난을 치듯 눈동자로 내려오는 붉은 살덩이를 바라보면서도 에드워드는 눈을 감지 않았다.

하고 싶으면 하라는 것처럼 가만히 기다려주는 동작이 케일리의 기분을 더욱 가라앉혔다.

아플 텐데.

눈동자를 핥으면 아픈 게 당연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하지 말라는 말도, 몸짓도 없이 그저 받아들였다.

짜증나…….

무언가를 싫어하거나, 화를 내는 것처럼 소모적인 감정을 품는 법이 없던 케일리의 머릿속에 답지 않은 감정이 스쳤다. 그래. 이건 짜증이었다. 저런 식으로 상대방의 행동을 죄다 받아주는 건 육아법에서는 최악으로 꼽혔다. 물론 에드워드는 자신의 부모가 아니었고, 그러니 최악의 육아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겠지만 어찌됐건 최악이었다.

문득 케일리의 머릿속에 우스갯소리 하나가 스쳤다. 진지하게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한창 섹스하는 와중에 튀어나오는 청혼만큼 난감한 게 없다고 했었나. 지금 자신에게 닥친 상황이 딱 그 짝이었다.

허리 아래에서는 당장이라도 욕구를 풀고 싶어 했는데, 원하는 건 그뿐이었는데, 상대는 그렇지 않았다. 심술이 담긴 혀가 보석같이 파란 눈동자를 몇 번이나 핥아올렸다. 우습게도 흘러나오는 눈물의 맛은 달았다. 에드워드의 피가, 체액은 인간의 것과는 달리 나트륨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모양이다. 나트륨이 아니면 당일까? 그래도 이상했다.

생눈을 핥는 까슬한 감촉이 아플 법도 한데, 신음 하나 없이 그저 눈살만 찌푸린 에드워드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웃음이 섞인 목소리였다.

“케일리, 너 얼굴에 심술 꼈다.”

이쪽은 달갑지 않은 감정싸움에 참전할 생각도 없는데, 벌써부터 승전고를 울리기 시작한 것처럼 말이다. 그가 말하는 대로 단단히 심술이 난 얼굴로, 케일리는 고개를 내려 에드워드의 아랫입술을 콱 깨물었다.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양 이번에는 에드워드가 양손으로 움켜쥔 허리를 힘껏 내렸다. 푹, 꿰뚫듯 구멍을 치고 올라온 성기가 날카롭게 내벽을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시야가 검게 물들었고, 다음 순간 하얗게 점멸했다. 끔찍한 쾌감이 허리를 타고 목구멍까지 쳐 올랐다. 하지만 침실 안에는 아무런 소리도 퍼지지 않았다. 지금껏 참아왔던 것이 거짓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퍽, 퍽! 쳐올리는 에드워드가 케일리의 입술을 집어삼키듯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 ◆ ◇

끽, 끼익, 끼익.

침대의 조립부에서 시끄러운 잡음이 샜다. 공산품 냄새가 남은 싱글 베드용 매트리스는 개시 첫날부터 묵직한 성인 남성 둘을 올리고 무리한 운동을 받아야만 했으니 안 된 노릇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좁은 침대 위를 차지한 두 남자의 격렬한 움직임은 잦아들 줄을 몰랐다. 마른 허리를 커다란 손으로 움켜잡아 고정시킨 에드워드는 등을 보인 채 엉덩이를 세운 구멍에 제 것을 묻었다. 철퍽철퍽, 살갗 부딪히는 물기 어린 소리가 간헐적으로 공기를 가로질렀고 싸구려 포르노를 서라운드로 틀어놓은 양 귓가를 잠식했다.

“흐으…….”

힘없이 벌어진 입술 사이에서 흐느낌에 가까운 신음이 새어나왔다. 침대 위에 네발로 엎드린 채 엉덩이만 들고 있는 짐승의 성교와 같은 자세가 수치스러울 법도 했다. 그럼에도 케일리는 그저 구멍 끄트머리에 간당하게 걸린 뭉툭한 감촉에 진저리치며 허리를 들썩일 뿐이었다.

생리적인 눈물에 젖어 흐려진 밤색 눈가가 쾌감에 찌푸려졌고, 가볍게 도리질 친 하얀 뺨은 시트에 쓸려 붉은 자욱이 생겼다. 짐승처럼 엎드려 엉덩이를 흔들며 사내의 성기를 받아내는 자세에 굴욕감을 느낄 틈은 없었다. 사실, 그런 걸로 굴욕을 느낄 정도로 가는 신경줄도 아니기는 했다.

간간이 뒷목에 떨어지는 입술과 혀, 그리고 잘근잘근 연한 살을 짓씹는 감각이 선연했다. 파르르, 케일리의 등줄기가 잘게 떨렸다.

땅값 비싸기로는 미국을 떠나 세계에 그 악명을 떨치는 맨해튼 한복판치고는 제법 넓은 아파트였다. 게다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이번 사건에 준비한 감시용 부동산은 각 층을 통째로 매입해 비워뒀다고 했다.

소음이 샐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지만 두 남자 중 누구도 공간이 울릴 만큼 신음하지는 않았다. 그저 억누른 두 숨소리가 간간이 섞여들었고, 서로의 것에 상쇄되듯 사라져갔다.

동그랗게 올라붙은 하얀 엉덩이 사이에서 흉흉하게 선 살덩이가 빠져나갔다. 검붉게 핏줄이 선 그것은 달고 있는 몸의 유려한 외견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느리게 허리를 뒤로 빼자 굵은 선단이 내벽을 긁어내리듯 압박하며 빠져나갔다.

완전히 빠진 성기의 끄트머리에서 투명한 액체가 비져나왔다. 개폐하는 입구 근처를 의도적으로 비비는 생생한 감각에 “흣……, 빨리!” 하는 재촉과 함께 고개를 돌린 케일리가 손을 뻗어 에드워드의 팔뚝을 움켜쥐었다. 박을 거면 박고, 뺄 거면 빼라는 독촉과 같은 눈빛에 에드워드가 눈을 가늘게 떴다.

하여튼, 케일리 이 인간은 곧 죽어도 저밖에 모를 이기적인 놈이다.

노곤하게 풀린 내부가 단단히 힘을 되찾은 성기에 들러붙는 것만 같았다. 뜨거운 내벽이 성기를 감쌌고, 숨을 쉬듯 맥박에 맞춰 죄었다가 풀렸다. 성기를 박은 채 한 번 사정한 덕분에 출입은 한결 수월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꽉꽉 물어드는 촉촉한 감촉이 뇌까지 지배하는 것만 같았다. 케일리의 안에 들어간 성기만이 유일한 감각인 양 선뜻한 쾌감이 몇 번이고 파도를 치듯 몰려왔다.

정액으로 번들거리는 입구를 한계까지 발기한 성기가 빠르게 드나들었다. 얕게 허리를 쳐올리는 에드워드의 몸짓에 흐, 읏, 하으, 앓는 신음을 삼키는 케일리의 얼굴은 쾌감에 절어 아무렇게나 일그러져 있었다. 내벽 안 깊은 곳을 굵직한 선단이 묵직하게 긁고 지나갈 때마다 벌어진 입술 사이에서 “아, 아아!” 어찌할 바 모르는 교성이 터져 나왔다.

자꾸만 무너져 내리는 케일리를 지탱하기 위해 에드워드가 손을 뻗었다. 납작한 아랫배를 커다란 손바닥이 감쌌다. 그와 동시에 콱, 뿌리 끝까지 쳐 박힌 성기가 뱃가죽을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 흉흉하게 선 성기가 케일리의 구멍 사이로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을 만큼 깊게 박힌 성기의 감촉이 선연했다. 하릴없이 시트를 움켜쥔 손에 힘을 넣은 케일리가 흐윽, 잘게 흐느끼며 바르르 허리를 떨었다.

끝까지 박아 넣은 성기를 확인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에드워드의 손이 케일리의 아랫배를 손바닥으로 느리게 애무했다. 꾸욱, 뱃속에 들어찬 장기의 모형을 확인하듯 노골적으로 움직이는 뜨거운 손바닥의 감촉이 섬뜩했다. 에드워드의 손은 뱃가죽이 아니라 꼭 그 밑에 숨겨진 무언가를 만지고자 하는 것만 같았다.

엉덩이를 치켜들 힘도, 그럴 만한 정신도 없을 만큼 뇌 구석구석까지 다디단 쾌감에 젖은 케일리의 아랫배를 고쳐 쥔 에드워드가 느리게 허리를 움직였다. 더 이상 들어올 틈이 없이 꽉 맞물린 성기가 내벽을 비집고 원을 그리듯 움직였다. 숨을 쉬는 것도 버거울 만큼 꽉 들어찬 감각에 케일리가 간헐적으로 헐떡였다.

이어서, 구멍 안쪽에 턱 걸린 굵직한 선단이 내벽의 예민한 지점을 뭉개듯 비벼 올렸다.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올랐다. 소름은 곧 쾌감으로 바뀌었고, 뇌에 주사를 맞는 것처럼 끔찍한 쾌감이 직격했다.

“……하, 흐읏!”

어찌할 바를 모르고 벌어진 입술은 의미를 담지 못한 신음만 뱉어냈다. 허리를 숙이고 케일리의 등에 몸을 붙인 에드워드가 그의 뒷목을 물었다. 피를 마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목덜미를 뜯고 싶은 흉포한 충동을 뭉툭한 이가 잘근잘근 억눌렀다. 뒷목의 연한 살은 금세 붉게 자국을 만들었지만 그뿐이었다.

거기에서는 그로테스크한 뱀파이어 무비의 장면처럼 핏줄기가 흘러내리지도, 끔찍한 상처가 남는 일도 없었다. 집요하게 뒷목에 이를 대던 에드워드가 고개를 든 것은, 받아내는 케일리가 버거워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깊게 박아 넣은 성기를 느리게 빼 낼 즈음이었다.

내장을 압박하던 단단한 살덩이는 잔뜩 부풀어 오른 채 도드라진 혈관과 선단의 굴곡을 그대로 케일리의 내벽에 기억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느리게, 느리게 빠져나갔다.

시트에 이마를 처박고 완전히 빠져나가기를 감내하던 케일리의 등줄기가 파르르 경련했다. 그 위를 에드워드의 시선이 끈적하게 들러붙었다. 유려한 등허리의 선을 음미하듯 내려다보던 에드워드는 힘이 빠져 자꾸만 아래로 떨어지는 케일리의 허리를 움켜잡았다.

끄트머리가 간당하게 걸린 상태에서 잠시간 멈춘 에드워드를 향해 케일리가 고개를 돌렸다. 또르르, 눈꼬리에 맺혀 있던 눈물이 중력에 져 시트로 떨어졌다. 본능과 같이 케일리의 얼굴에 손을 뻗은 에드워드가 그의 뺨을 감싸 쥐었다. 체액에 젖어 엉망이 된 피부가 촉촉이 손바닥에 들러붙었다. 곧장 고개를 숙인 에드워드가 케일리의 얼굴을 자신의 쪽으로 가지고 왔다.

단번에 겹쳐진 입술 사이에서 혀가 얽혔다. 예민한 살덩이에 대고 자신의 것을 비비는 것과 동시에, 입구에 걸쳐 있던 성기가 퍽! 예고 없이 처박혔다. 눈을 크게 뜨고 허리를 떤 케일리의 신음이 에드워드의 입안으로 사라졌다. 입맞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포식과 같은 행위였다.

상대방의 쾌감을 이끌어내는 데 여념이 없는 다정한 입맞춤과는 별개로, 퍽, 퍽, 속도를 높이는 허리짓이 점점 격렬해졌다. 에드워드도, 케일리도, 끝이 다가온다는 것을 본능으로 직감했다. 에드워드가 아무렇게나 서 허공에 흔들리는 케일리의 성기를 한 손으로 쥐었다. 손이 또 다른 성기라도 되는 양 케일리의 것을 완전히 감쌌고 강약을 줘 죄었다가 힘을 풀기를 반복했다.

“하아…….”

빈틈없이 맞물려 있던 입술이 떨어져나갔다. 케일리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에드워드가 막판의 스퍼트를 올렸다. 온몸의 감각이 성기에만 몰린 것처럼, 끔찍하리만치 고조된 사정감이 뇌를 녹인다고 해도 믿길 것 같았다.

그것은 케일리도 다를 바 없어, 앞과 뒤에 쏟아지는 섬뜩한 쾌감을 견디지 못한 채 삼키지 못한 타액이 질질 흘렀다.

“아, 아, 아아……!”

먼저 절정에 달한 것은 케일리였다. 에드워드의 손에다 묽은 정액을 토해낸 케일리의 내벽이 수축했다. 제대로 신음조차 삼키지 못한 채 입을 벌리고 바르르 떠는 몸을 끌어당긴 에드워드가 더 이상 침범할 수 없을 만큼 깊숙이 성기를 꽂아 넣은 것과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 크흣!”

한계까지 부풀어 오른 성기가 움틀 경련했다. 마치 내장 안에도 감각이 있는 것만 같았다. 뜨거운 정액이 내벽에 터졌다. 뜨겁게 죄는 내벽 안에서 몇 번에 나눠 사정한 에드워드는 그 후에도 잠시간 뿌리 끝까지 박아 넣은 채 움직일 줄 몰랐다.

◇ ◆ ◇

“에디, 설마 그러고 자는 건 아니죠?”

눈을 가늘게 뜨고 얕은 숨을 밭던 케일리가 제 등에 몸을 겹치고 미동이 없는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섹스는 만족스러웠다. 오히려 지금까지 제법 진지하게 만났던 상대들과 나눈 행위가 어린애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로 황홀했다. 혹시 자신은 삽입보다는 삽입당하는 쪽에 재능이 있는 건 아닐까 실없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섹스가 좋았던 것과는 별개로 등 뒤를 덮쳐오는 무게는 다소 갑갑했다. 평소 같았으면 그렇게 잠이 들든 말든 내버려뒀을 텐데, 지금은 아니었다. 엉덩이 사이에 남아 있는 이물감도 거슬렸지만 노곤한 몸 상태로 하룻밤 내도록 깔개가 된다면 내일 아침 전신 근육통으로 고생할 게 뻔했다.

내벽을 빠듯하게 채운 것은 사정 전과 비교하면 다소 크기를 줄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버거운 압박감이었다. 게다가 다시 단단함을 되찾아 가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기 때문에 제 욕구를 해소한 케일리로서는 그다지 반가운 신호가 아니었다.

“넌 머리가 나쁜 건 아닌데 가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할 때가 있어.”

케일리의 등에 몸을 겹치고 엎드려 있던 에드워드가 그렇게 말했다. 너 같으면 이 상태로 잠이 올 것 같냐는 어이없는 어조가 뒤이어 튀어나왔다. 등에 딱 달라붙은 덕분에 에드워드의 입술이 귓등을 간질였다. 나른한 목소리와 함께 귓가를 간질이는 숨결에 솜털이 곤두섰다.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린 케일리가 말했다.

“큰일이네요.”

“뭐가?”

“방금 샤워했는데, 또 씻기 귀찮잖아요.”

“…….”

소리 없는 한숨과 함께 여전히 삽입된 채였던 성기를 빼낸 에드워드가 별말이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딜 가냐고 묻지도 않는 케일리를 내버려둔 채 침실을 나선 에드워드가 소음을 내는가 싶더니, 몇 분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젖은 타월과 마른 타월을 양손에 쥔 그가 침대에 널브러진 케일리의 몸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미지근한 물에 적신 감촉이 피부를 지나가는 것에 케일리는 가만히 눈을 끔뻑였다.

이런 걸 바라고 한 말은 아니다. 그래도 직접 씻으러 갈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거절하기가 싫었다. 자신이 조금만 더 부지런했더라면 팔을 들어 겨드랑이 밑까지 잊지 않고 조심스럽게 닦아 내리는 손길을 피하고 샤워룸에 들어갔을 텐데, 그건 좀 어려웠다.

엉덩이 사이로 새어나오는 뿌연 점액질을 겉으로 보이는 만큼만 적당히 닦아낸 에드워드가 제 것과 그의 것이 섞여 엉망이 된 시트도 걷어냈다. 다리 사이까지 꼼꼼하게 훑어낸 덕분에 샤워를 한 것까지는 아니라도 이대로 잘 수 있을 만큼은 상쾌해졌다. 효용이 끝난 젖은 타월이 철퍽 소리를 내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잠깐 내려둔 마른 타월로 남은 물기를 닦아낸 에드워드가 이번에는 클로젯을 열어 새 시트를 꺼냈다. 축 늘어진 케일리를 가볍게 들어 올려 바닥에 잠깐 내려놓은 후 훤히 드러난 매트리스에 새 시트를 갈았다. 손재주가 좋은지 요령 좋게 원상태로 되돌린 침대에 케일리를 올려놓는 것으로 에드워드의 일이 끝났다.

침대에 엎드려 턱을 괸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케일리의 시선을 마주한 채 에드워드가 잠시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침묵했다. 그러고는 곧 어딘지 아주 심각한 문제라도 발견한 것처럼, 에드워드가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귀찮아도 숨은 대신 쉬어달라고 하지 마, 알았지?”

나라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게 있으니까 최소한의 생명활동 정도는 알아서 해야 할 것 아니야.

제법 진지하게 덧붙이는 에드워드의 말에 케일리가 눈을 끔뻑였다. 그는 가끔 진담인지 농담인지 헷갈리는 말을 할 때가 있었는데,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인 것 같았다.

“그럼 다른 건 해달라고 해도 돼요?”

에드워드를 향해 던진 말은 농담도 아니고 진담도 아니었다. 그저 의중을 떠보기 위한 것이라기에는 가벼운 마음이었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기에는 약간의 심술이 섞여 있었다.

그가 진심이라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자신을 대상으로 상당히 곤란한 감정을 품게 되었다는 것도 명명백백했다. 모른 척을 하기에는 지나치게 노골적이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별달리 적극적인 행동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케일리의 입장에서는 다소 성가신 것이었으나, 그가 마음을 먹고 움직이지 않는 한 지금까지와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대답을 기다리듯 빤히 올려다보는 시선을 마주한 채 에드워드가 입매를 끌어당겼다. 자신을 귀찮아하는 심경이 고스란히 드러난 데다, 숨기려는 기색 하나 없는 게 괘씸했다. 하지만 그걸 두고 불평해봤자 손해 보는 건 자신뿐이다.

제 위치를 제대로 알고 던지는 건방진 물음에 옆자리에 누운 에드워드가 케일리의 머리를 들어 제 팔을 끼워 넣었다. 격렬한 정사로 구석에 처박힌 지저분한 베개를 다시 베는 건 내키지 않았으니 별수 없었다.

새로 꺼낸 시트를 끌어당겨 목까지 덮어준 에드워드가 대답했다.

“그러든지, 근데 공짜는 아니고.”

“얼마나 받을 건데요?”

“뭘 원하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지.”

“흠, 흥정을 해보라는 건가요?”

눈을 가늘게 뜨고 묻는 케일리를 향해 에드워드가 조금 웃었다. 머리는 좋은 주제에 타인을 파악하는 데에는 다소 경험이 부족했다. 아직 스물 몇 해밖에 살지 않은 어린애니 어쩔 수 없었고, 그 점이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차피 다 들통 난 마당에 쑥스러워하며 숨기는 것은 에드워드의 성격에 맞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팔을 벤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헤집으며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원래 내 것에는 관대해. 알렉스를 부탁하는 대가로 로저의 감시를 허락했을 정도로 관대했지. 키우던 애완견한테도 그렇게 관대한데, 너를 상대로 하면 어떨 것 같아?”

“그렇게 싫어하더니, 로저의 감시를 허락한 게 겨우 개 때문이었어요?”

“이래 봬도 난 내 건 제대로 책임을 지는 책임감 있는 뱀파이어라고. 게다가 알렉스는 착한 개야.”

“그래 봤자 개는 개……, 어쨌든 에디, 타인에게 약점을 훤히 드러내는 건 별로 좋은 전술이 아니라고 생각하진 않나 봐요?”

“네가 내 약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하나 봐?”

“뭐, 일반적인 관점에서는요.”

그래서 네가 내게 피를 먹인 게 아니냐며 빤히 마주쳐 오는 밤색 눈에 대고 에드워드가 말했다.

“널 좋아하지 말라고 했지. 그건 네가 날 좋아하게 되는 일은 없으리라는 선언 같은 건가?”

약간의 의문이 섞여 있었지만 케일리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 별로 개의치 않을 것 같은 어조였다. 사실 에드워드는 그랬다. 깊게 생각해봤자 케일리가 어째서 그런 말을 했는지, 그리고 왜 자신과 사랑에 빠질 수 없는지를 모조리 꿰뚫을 방법은 없었다.

그놈의 마법이 뭐라고 하든, 언제나 돌파구는 있는 법이다. 그러면 시간을 들여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에게 반하게 만들거나 혹은, 그가 인간이 아니게 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당장 지름길을 가지야 않겠지만 길이 없는 건 아니었다. 굳이 대답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처럼 나른하게 묻는 에드워드를 향해 케일리가 대답했다.

“아니요. 내가 타인에게 똑같은 무게의 마음을 돌려주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한 것뿐이에요. 다리 없는 사람이 히말라야를 등반하려고 한다면, 말리는 게 사람 된 도리잖아요.”

사실 케일리의 입장에서는, 그 충고가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에드워드를 위한 호의나 다름없었다. 그는 이미 몇 번이나 시도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런 게 가능했던 적은 없었다.

릴리도, 라일라도, 스테이시도 좋은 여자친구들이었다. 진심으로 자신을 좋아해주었고, 케일리는 한 번도 그녀들을 싫어한 적이 없었다. 그녀들의 고백을 받아준 것은 그래서였다. 싫어하지 않았고, 어느 쪽이냐고 하면 좋아했는데 그 마음이 똑같은 무게는 아니었다.

그녀들을 속이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도 전했다. 그래도 괜찮다는 상대를 굳이 애를 써가며 거절할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말은 언제나 비극으로 끝났다. 주고받을 수 없는 마음은 크기를 키울수록 끝을 낼 때의 상처도 커졌다. 케일리는 에드워드를 싫어하지 않았고, 오히려 좋아하는 편에 속했다. 그래서 그가 자신을 좋아했다가 종내에는 잔뜩 상처 입고 헤어진 그녀들과 같은 계단을 밟지는 않았으면 바랐다. 타인의 감정이라는 건 그저 받아주기만 하면 끝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의 효용을 따지는 케일리였지만, 감정이 얽힌, 더 정확히는 비이성적인 선택을 종용하게 만드는 도파민의 신경 흥분의 반작용에는 데일 만큼 데였다.

도파민, 페닐에틸아민, 옥시토신, 그리고 엔도르핀의 합주로 만들어진 마약과 같은 그 감정에는 대부분의 약이 흔히 그러하듯 부작용이 있었다. 사랑에 빠진 그녀들이 호르몬 칵테일의 중독자가 되도록 내버려두고 싫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받아주었다 어떤 일이 벌어졌던가.

그다지 후회할 것이 없는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씁쓸한 기억을 떠올리며 케일리는 무거운 숨을 삼켰다.

무인도에 납치를 당한 일이나, 반년간 이어진 가족 단위의 대규모 스토킹 같은 건 사실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차피 다 아는 사이에, 가족들 또한 범인은 꿰뚫고 있었다. 그녀들이 자신을 위험에 처하도록 만들지는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납치에 감금에 스토킹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줬지만, 어째서인지 마음만은 그러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받기만 하면 끝나는 것이라 착각을 했다.

그녀들이 최악의 최악까지 치달으며 실험하고 싶어 했던 건 팔아봤자 1파운드 지폐 한 장의 값도 받지 못할 그런 것의 존재 여부였다.

사랑이라는 게 그랬다.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었지만, 제자리를 찾아가지 못하면 안 타는 쓰레기만큼이나 처치하기 곤란했다. 그저 받기만 하는 건 돌려주는 것보다 훨씬 쉬웠고, 또한 무성의했다.

그리고 케일리는 무심함이 거절보다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가 살아온 세상에서 타인을 완전히 신뢰하고 마음을 내어준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그러리라고 멋대로 착각했다. 그 어이없는 교만이 불러온 참상을 케일리는 뼈아프게 기억했다.

릴리와 라일라, 그리고 스테이시는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더라도 런던 사교계의 일원으로 어린 시절부터 교류가 있었다. 그녀들의 마음을 가볍게 여긴 건 아니었다. 그저 이 세계에서는 감정마저도 값을 매겨 저울에 매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싫어하지 않는다면 받아줄 만했다.

너무 기울어지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게 정해진 수순이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마음과 같은 종류, 같은 무게를 되돌려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떠올리지 못했다. 게다가, 만일 생각을 했다 해도 결국 그런 마음을 가질 수는 없었을 터다.

없는 걸 내어달라 기대하는 이를 기대하도록 내버려두는 건 잔인한 일이었다. 그걸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알게 된 지금 케일리가 베풀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이자 최대한의 친절은 그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자신에게는 에드워드에게 돌려줄 수 있는 마음 같은 건 없었다. 만약 뱀파이어의 감정도 인간의 것과 같이 호르몬의 지배로 인한 한정된 기간의 착시에 불과하다면, 그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되돌려주는 것 외에 케일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케일리는 그의 마음을 받아줄 수도, 되돌려줄 수도 없었다.

단정짓듯 불가능을 내세우는 케일리를 잠시간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던 에드워드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가 하는 말이 거짓이거나, 회피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이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건 예상 못했는데. 사람 된 도리? 너 그런 거 신경 안 썼잖아. 뜬금없이 챙기는 척은 왜 하는 거야?”

에드워드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지금까지 세상에 타인이라고는 존재하지 않기라도 하는 양 저 하고 싶은 대로만 사는 것 차람 굴던 녀석이, 갑자기 생각해주는 척을 하니 오도도 소름까지 돋았다. 거짓말을 하는 냄새는 없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케일리가 가족이고 친구고 가리지 않고 저울에 올리고 주판을 두드리는 놈이라는 걸 이미 알게 된 후였다. 그런 인간말종을 상대하려면 이쪽도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자신은 케일리의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었지만 분명 그의 저울에서 제법 가치 있는 상품이었다. 그러니 좀 더 가치 있어지는 것도 완전히 불가능하지 않으리라, 에드워드는 답지 않게 긍정적인 생각을 품었다.

그렇게 딱 자른 에드워드의 반응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케일리였다. 지금까지의 이별은 언제나 참혹했다. 타인의 진심을 자신의 발로 짓뭉개는 것은 대단히 불유쾌한 경험이었다. 하물며 의도한 바가 아닌 참에야, 눈물을 흘리고 매달리고 거기에는 한 번도 마음이 있던 적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이들을 바라보는 심경이 기쁘고 행복할 수는 없었다.

케일리는 다소 무심한 면이 있었지만, 그 점이 그를 악한으로 만드는 건 아니다. 결국에는 상대방을 상처 입히기만 하고, 좋아했던 상대와 인사조차 나누지 못한 채 그들의 인생에서 배제되는 것이 아무렇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들을 좋아한 만큼 받은 사랑을 돌려줄 수 없어 미안했다.

모든 관계를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케일리의 방정식에 있어서, 사랑이라는 그 야속한 감정만이 유일무이한 오류였다. 어떻게 해도 결국 서로를 완전히 외면하기는 어려운 좁은 세계를 살아가던 케일리에게, 다른 종류이나마 마음을 주었던 이들과의 완전한 결별은 참혹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하물며 에드워드는 자신이 속한 세계의 일원이 아니었다. 런던 사교계에도, 정치계에도, 케일리가 몸담은 그 어디에도 에드워드와의 교차점이 없었다.

만약 자신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를 상처 입힌다면,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 이별하고, 자신의 인생에서 에드워드의 존재는 완전히 사라져버리겠지. 그런 걸 원하는 건 아니었다.

에드워드에게 직접 말했던 것처럼, 케일리는 지금의 상태가 썩 마음에 들었다. 아니, 꽤 좋았다. 그러니 에드워드가 자신이 결코 줄 수 없는 것을 바라지만 않는다면, 나머지는 뭐든 내어줄 의향이 있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걸 원하는 거라면, 무엇이든.

억울함을 담은 채 눈을 치켜뜨고 대답이 없는 케일리의 얼굴 위를 에드워드의 손이 덮었다. 따끈하게 데워진 체온이 눈꺼풀을 내렸고 남의 손에 의해 시야가 막힌 케일리가 항의하듯 그의 손을 치워내려던 순간이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내일부터 뉴욕이 사파리가 될 예정이니까 착한 인간은 잘 수 있을 때 자두기나 해. 얼굴에 잠이 덕지덕지 붙었네.”

아까는 심술이 붙었다더니, 이젠 잠이다. 노골적으로 대화를 끝내려 드는 에드워드의 태도에 케일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쓸데없다뇨. 난 어디까지나 에디를 위해서…….”

“나 원, 내일은 해가 북쪽에서 뜰 일이 있나. 내 건 내가 어련히 알아서 챙길 테니 걱정하덜 말고, 너야말로 챙기기 버거운 거 있으면 나한테 좀 나눠주기나 해봐. 보다시피 난 유능한 뱀파이어라 아주 안전하게 챙겨줄 수 있으니까 말이야. 챙기기 귀찮으면 몸이고 마음이고 죄다 떠넘겨도 상관없고.”

아무래도 에드워드가 말하는 ‘내 거’에 자신이 속하는 것 같았다. 이미 멋대로 카테고리 안에 분류한 주제에, 다른 것도 더 내놓으라고 뻔뻔스레 구는 에드워드의 손을 케일리가 제 얼굴 위에서 낑낑 치웠다. 턱을 괴고 누운 채 내려다보는 시선이 마치 잠투정 하는 어린애를 바라보는 것 같아 굴욕적이다.

뿐만 아니라 은근슬쩍 자신의 충고를 무시하고 멋대로 잘해주려 수작을 부리는 에드워드를 향해 케일리가 말했다.

“에디, 사람을 소유격으로 표현하는 건 1834년 이후로 금지된 일이에요.”

표면적으로는 그의 농을 농으로 받은 것이었지만, 말에는 뼈가 있었다. 그걸 못 알아들을 에드워드가 아니었음에도 짐짓 모르는 척 가증스럽게 눈을 깜빡인 에드워드가 묻는다.

“63년이 아니라?”

그가 알기로 인류의 역사에 길이 남은 미국의 열여섯 번째 대통령이 노예해방선언을 발표한 건 1863년의 일이었다. 그가 태어나기 전이었지만 뱀파이어는 본디 기억력이 좋았고 짜리몽땅한 인류의 역사를 기억하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건성으로 던진 에드워드의 물음에 케일리가 이번에는 제법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저는 애국자니까요.”

그러고 보니 영국에서 제도상의 노예가 사라진 건 그쯤이었다. 잘못하면 나라도 간단히 팔아먹을 것처럼 구는 주제에, 이럴 때만 애국을 찾는 걸 보면 확실히 정치인의 자식이기는 했다. 노골적으로 말을 돌리고 싶어 하는 게 눈에 빤히 보였다.

쇼를 참 잘하신다고 칭찬이라도 해줘야 하나, 에드워드는 아주 잠깐 고민했다.

“그러시겠지. 어쨌든 난 인간이 아니니까 상관없어. 게다가 내가 언제 널 노예 삼고 싶댔냐? 지금 하는 꼴을 보면 오히려 내가 네놈의 노예 같…….”

거기까지 말한 에드워드가 문득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식사시중에, 몸시중 들어, 잠자리 시중 들어, 자신이야말로 영락없는 노예 꼴이다. 케일리는 스스로를 소유격으로 표현하지 말라고 우길 입장이 아니었다. 까딱하면 의식도 못한 새 인간의 노예로 전락할 뻔한 에드워드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에드워드. 넌 어쩌다 여기까지 떨어졌냐.

속으로 한탄해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게다가 에드워드를 더욱 섬뜩하게 만드는 것은, 케일리가 자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반푼이가 되었으면 가슴 한켠으로 은근히 바라고 있다는 점이었다.

“에디,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피하기만 하는 게 능사는 아니에요.”

“누가 피한대? 누굴 비겁한 반푼이 취급하는 거야?”

“지금 피하고 있잖아요. 나한테 바라는 게 있어서 잘해주는 거라면 난 상관없어요. 피라면 마시고 싶은 만큼 마셔도 좋아요. 대신 나는 파트너 계약을 연장 받을 테고 나쁘지 않은 거래라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그 이상은 없다는 단호한 표정이 케일리의 얼굴에 완고히 자리 잡았다.

“내 건 내가 알아서 챙긴다고 했지? 거기에는 내 마음도 포함 돼. 그러니 넌 신경 쓸 필요 없어.”

케일리만큼이나 완고한 목소리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말장난에 불과했다. 에드워드의 마음은 자신에게 왔다. 그러니 그게 자신의 것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건 이상한 말이었다.

“곤란해요, 내가.”

“너 말이다, 언어폭력이라고 들어나 봤냐?”

어딘지 힐난을 담은 시선이 케일리를 향했다. 가뜩이나 어두컴컴한 미래를 알아서 흙발로 짓밟아주시는 님의 친절함에 감격해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런 에드워드를 향해, 케일리는 놀랍게도 네가 그런 말을 할 주제는 되냐는 양, 픽 웃었다. 비웃음보다는 그저 웃는 것처럼 보였지만 에드워드는 저 머릿속이 의외로 신랄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웃음이 비웃음으로 보이는 건 그저 자신의 피해망상이 아닐 테다. 그리고 곧장 이어진 케일리의 목소리가 에드워드의 예상을 뒷받침하는 좋은 증거가 되었다.

“그건 나보다 에디가 잘하는 거잖아요.”

확실히 어딘가 나른한 목소리로 케일리가 말했다. 눈꺼풀이 무거운 건 사실이었다. 하루 내도록 나돌아 다닌 데다 막판에는 제법 격렬한 차 사고에, 에드워드와 아킨시나의 대치까지 있었다. 돌아와서도 그다지 순조롭지는 못했던 탓에 몸도 정신도 휴식을 요구했다.

자칫 정신을 놓으면 곧장 수마에 휘말릴 것 같아 저도 모르게 베고 있던 에드워드의 팔에 뺨을 비볐다. 잘 먹고 잘 놀다가 잠이 쏟아지는 새끼 짐승 같은 몸짓이었다. 느리게 깜빡인 눈 사이로 순한 밤색 시선이 에드워드를 향했다. 슬슬 한계였다.

언어폭력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게다가 그건 네가 늘 하는 짓이잖아.

그렇게 말하는 뻔뻔한 눈빛에 대고 에드워드가 툭 내뱉었다.

“너 나한테 일부러 그러는 거지?”

“아, 티 나요?”

“짜증난다, 너.”

“그런 말 자주 들어요.”

에드워드의 표현 그대로 잠이 들러붙은 케일리의 목소리가 불만을 품고 느리게 흘러나왔다.

“정말이지, 큰일이네요. 어쩌다가 날 좋아하게 됐어요?”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그 말에 에드워드가 헛웃음을 웃었다.

“다른 놈들이라면 몰라도 네 걱정을 받으니까 좀 심각하게 느껴지기는 한다, 야.”

반쯤 감긴 눈을 한 케일리의 머리가 점점 무거워졌다. 조금 있으면 잠이 들 것 같았는데, 그것 참 끈질기게 입을 놀린다 싶었다. 빨리 잠이나 주무시라는 말을 대신해, 에드워드는 시트 위의 등이며 허리를 커다란 손으로 느리게 쓸어내렸다. 점점 깜빡이기 시작하는 눈꺼풀이 조금만 더 하면 잠이 들 것 같았다.

“에디는 가끔 나보다 사람 같을 때가 있어요.”

들릴 듯 말 듯 입술 사이를 새어나온 그 말에 에드워드가 반사적으로 답을 돌렸다.

“너야말로, 가끔 나보다 인간미 없을 때가 있어.”

아무리 좋아하는 상대라지만 웃기지도 않는 말을 꼬박꼬박 받아주는 건 힘들었다. 본능을 제어하는 것보다도, 입을 단속하는 게 에드워드에게는 더 어려운 일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몸짓과 말, 시선 하나에까지 비져나오는 애정을 숨기지도 않는 주제면서 당장 튀어나오는 날카로운 반박에 케일리가 저도 모르게 목을 울렸다. 목 안으로 사라지는 나직한 웃음을 들으며 에드워드는 폭 한숨을 쉬었다.

“그거 농담 아니고, 칭찬도 아니거든? 네 종을 부정당하고도 웃음이 나오냐?”

좋아하지는 말라면서 남의 팔은 잘 베고 자리 잡은 뻔뻔한 케일리가 말했다.

“그런 말을 에디한테 들을 줄은 예상 못해서……. 농담 아니라는 건 알아요. 옛날부터 자주 들었으니까.”

살살 눈이 감기기 시작한 케일리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에드워드가 잠시간 입을 다물었다. 케일리의 정수리에서는 자신에게서 나는 것과 같은 샴푸 냄새, 평소와 다름없는 그의 체향에 섞여 예민하게 후각에 집중해야 느껴질 만큼 희미한 서글픔의 향이 났다.

케일리 주제에. 인간미 없는 케일리 주제에, 왜 그런 감정을 느낀단 말인가.

말을 꺼낸 자신이 마치 그에게 잘못을 저지른 것만 같아 기분이 가라앉았다. 요정이 잠 가루를 뿌리듯 나지막한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흘러나왔다. 그 내용은 결코 자장가가 아니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에드워드의 목소리가 더할 나위 없이 다정했다는 것이었다.

“보통 인간들은 좀 더 듣는 사람을 생각하고 말을 하잖아. 난 인간이 아니니까 예외로 치고, 예의라든지 배려라든지 그런 변화구를 섞는다고. 너도 나쁜 의도로 그런 게 아니라는 건 알겠으니까, 구종을 늘려봐. 다른 사람들을 좀 따라 해보라고. 학교에서 수사법 같은 거 가르쳐주잖아. 공부도 잘했다며. 다른 애들한테 인간미 없다는 소리 듣고 다니지 말라고, 짜증나게.”

서서히 잦아드는 숨 사이로 케일리가 말했다. 귀를 쫑긋 세우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에는 에드워드의 투정 같은 불평불만에 대한 웃음이 섞여 있었다.

“나 수사학 잘해요. 전에 로저가 말했잖아요. 영어도 만점이었고 영문학도 만점이었다고.”

“근데 왜 언어체계가 그 모양 그 꼴인 거지?”

“만점이라 그런 거 아닐까요?”

“이해가 안 돼.”

“그런 시도가 비효율적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배부른 고양이마냥 잔뜩 늘어지는 목소리가 그렇게 말했다. 씻고 식사하고 허리 아래의 욕구를 푼 케일리의 육체가 자연스러운 수순인 양 결국에는 수마에 잡혀갔다.

나른한 시선이 깜빡깜빡 눈꺼풀 뒤로 모습을 감췄다가, 다시 나타났다.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꾸벅거리는 케일리의 얼굴 위로 커다란 손이 덮였다. 온도가 높은 부드러운 손바닥이 기분 좋았다.

잠을 잔 적이 없는 것처럼 일어나는 기상방법과 비슷하게, 잠에 빠질 때에도 꼭 기절하는 것처럼 곧장 의식을 잃는 녀석이었다. 눈 위를 덮은 에드워드의 손바닥 밑에서 고롱고롱 기분 좋은 숨소리가 들렸다.

잠에 빠진 케일리의 얼굴 위를 그 뒤로도 한참이나 덮고 있던 에드워드는 새벽이 지나 동이 튼 후에야 손을 거두어들였다. 밤새 조용하던 케일리의 휴대전화가 지잉지잉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옷 안에서 진동했다. 그것을 깨끗하게 무시한 채 에드워드는 순하게 잠에 빠진 얼굴을 질리지도 않고 구경했다.

시체보다는 좀 더 생기 있었고, 살아 있는 사람이라기에는 다소 무채색한 순한 얼굴은 쿡 찌르면 당장 눈을 뜨고 무슨 일이냐고 물을 것 같았다. 불면증 환자가 사흘 만에 단잠에 빠졌다고 해도 배려할 생각이 없는 에드워드가 숨소리까지 죽이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케일리가 자는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작은 움직임에도 곧장 잠에서 깨는 그를 깨우지 않기 위해.

좋아하지 말라고 했던가. 그리고 결코 누군가를 좋아할 수 없을 거라고.

그 말은, 지금까지 한 번도 케일리의 마음속 장벽을 허문 이가 없었다는 말이 된다. 그건 솔깃한 이야기다. 영원할 것만 같던 베를린 장벽도 결국에는 허물어졌다. 형태가 없기 때문에 더 어려울 수 있는가 하면, 형태가 없으니 쉬울 수도 있었다.

“넘치는 게 시간인데 뭐.”

에드워드는 의외로 많은 문제의 해결책이 시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시도해볼 가치는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