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6. Like five-stages of death 사랑이나 죽음이나 그게 그거야 (1)
마치 사람이 달라진 것만 같다는 관용구가 있다.
수많은 문화권의 수많은 언어에 비슷한 용례의 표현이 존재한다는 건 사람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와 같다고 케일리는 생각했다. 시대나 국가, 인종과 언어의 벽을 뛰어넘고 존재하는 관용구였다. 말하자면, 그 표현은 인류에게 주어진 일종의 가능성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변할 수 있다. 희대의 악인이 회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법 시스템조차도 고려했다. 그러니 그 명제가 거짓일 리는 없다. 하지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 되는 것처럼 돌변하는 건 아주 어려웠으며, 시간을 들여 서서히 바뀌어나가거나 결국에는 바뀌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해서, 어떤 사람이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처럼 돌변하는 건 그다지 정상적인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떤 뱀파이어가 마치 다른 뱀파이어처럼 변하는 건 어떨까?
제법 그럴듯하게 차려진 레토르트 식품을 향해 일회용 스푼을 가지고 간 케일리가 그런 생각을 했다. 페어리의 사무실에서 만났던 첫날과 비교하면 에드워드는 확실히 다른 뱀파이어가 된 것처럼 변해 있었다.
파트너고 각자의 목숨은 각자 챙기는 게 당연하며, 서로의 목숨을 구해줄 만한 일을 만들지 않도록 유능한 동시에 목숨 아끼느라 일을 그르치는 일도 없을 괴물이 아니면 팀을 꾸릴 생각도 없다는 조건으로 페어리를 뒤집어놓았던 남자였다.
그 조건에 자신이 모두 해당되는지는 둘째치더라도, 지금의 관계는 필드요원으로서의 파트너라기보다는 꼭 다른 의미의 파트너-Civil Partnership(동성결혼을 대신하는 영국의 제도).-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같은 집, 혹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한 지 벌써 두 달이 넘어가고 있었고 매 끼 식사를 에드워드가 챙겨주었다. 에드워드의 식사는 아주 드물게 자신의 피를 흡혈하는 것이었는데, 그러면 그는 아주 기분이 좋아지고 마치 이 세상이 전쟁이 없고 평화만 가득한 에덴의 동산이 된 것처럼 너그러워졌다.
몸을 섞은 건 두말할 것도 없었으며 이미 양측의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 인사도 나눴다. 물론 그런 의미로 파트너십을 인정받기 위해 만난 건 아니었지만 지금 와서 떠올리면 이상하게도, 그와 자신이 그런 관계가 되는 데 있어서 필요하다 싶은 절차는 이미 다 밟은 후였다.
처음부터 에드워드가 호의적이었던 건 아니었다. 구울과의 대치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마치 잘못 산 사기 부동산에 딸린 이중 계약자 대하듯 굴었던 남자였다.
아마 내버려뒀어도 살아남았겠지만, 좀 더 빠르게 상황을 타파한 구울 사건 이후로 시선이 변하기는 했다. 그래도 지금처럼 드라마틱한 변화는 아니었다. 확실한 전환점은 연수원에서의 정글 훈련이었다. 즉, 자신의 피를 마신 후 에드워드의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였다. 그의 감정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좀 더 빨리 눈치채지 못했다. 에드워드는 첫 만남부터 불만스러운 식생활에 대해 이야기했고, 어쩌다 보니 자신이 그의 까다로운 입맛에 부합하는 음식이라는 걸 알게 됐다. 케일리로서는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그가 잘해주는 것도 어디까지나 살아 움직이는 유일한 음식에 대한 일종의 관리라고 여겼다. 식용 가축을 돌보는 목장에서도 가축이 건강하고 맛있을 수 있도록 케어하는 건 당연한 일과였다. 에드워드가 자신에게 하는 행동의 대부분을 그런 맥락으로 이해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돌이켜보면 에드워드는 천천히 변했다. 자신이 변화의 이유를 깨닫는 게 늦었을 뿐이었다. 그러니 마냥 그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불공평하다는 사실은 알았다.
지금 완전히 본심을 드러낸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빤했다. 자신을 좋아하지 말라고 한 것은, 기대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멋대로 기대하고 멋대로 실망했다. 기대는 괜찮았다.
문제는 다음 단계에서 생겼다. 자신에게 실망한 에드워드는 곤란하다. 그러니 그가 자신을 좋아하는 건 곤란한 일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의사를 그다지 존중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최근에는 거의 잠도 자지 않는 주제에, 마치 연인을 대하듯 같은 침대에서 눈을 뜨며 케일리는 그렇게 나온다면야 이쪽에서도 그의 마음을 존중할 필요가 없으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간단한 일이었다. 자신의 호의를 무시하는 에드워드의 호의를 무시한다는 대단히 유치한 대처였으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게 의외로 그런 방식이 잘 먹힐 때가 있다.
케일리는 욕심이 없다는 점에서 별종 취급을 받으며 살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상식선의 인생을 걸어왔다. 꼭 해야만 하는 건 다 했다.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 놓인 또래들이 할 줄 아는 건 대부분 할 줄 알았다. 그저 열심히 하거나 노력하거나 야망을 가지고 쟁취하러 나서지 않는 점만이 그들과 케일리의 유일한 차이였다.
에드워드와의 관계가 어딜 봐도 직장동료, 혹은 업무상의 파트너라는 범위의 상식을 벗어나고 있다는 건 자명했다. 물론 파트너라는 단어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었지만, 케일리가 동의한 파트너십과 에드워드가 원하는 파트너십이 상당히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건 문제였다.
어쩌면 그는 원래 이런 뱀파이어였는데, 본모습을 보이기까지 시간이 걸린 건 아닐까. 그렇게 해석할 여지도 없는 건 아니었다. 만약 로저가 ‘우리 애는 이렇게 섬세한 걸 챙기지 않았어, 너한테 과하게 잘해주잖아.’ 따위의 발언을 던지지 않았더라면 케일리는 그쪽으로 의견을 틀었을 터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원래 이렇게 섬세하지도, 타인에게 잘해주지도 않는 뱀파이어다.
그러니 식사를 챙겨주고 몸을 닦아주고 내키지 않는 섹스에도 몸을 내어주며 심지어는 안전을 위한 보험으로 스스로의 피까지 내어주는 놀라우리만치 다정한 태도는 자신에게 한정된 것이라는 말이 되었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는 에드워드는 아침부터 허락도 받지 않은 채 자신의 것을 꺼내 긴 통화를 하고 있었다. 아직 동이 튼 지 얼마 되지 않아 창밖이 어슴푸레했는데, 일어났으면 식사부터 하고 샤워를 하라며 자신을 내보낸 뒤로도 벌써 십오 분이 넘도록 통화 중이었다.
꼭 안 잔 것처럼 잠에서 깨는 덕분에 B급 호러영화의 언데드 같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던 케일리지만, 겉으로 보기에 그렇다고 실제로도 멀쩡한 건 아니었다. 아직 덜 깬 뇌는 에드워드의 명령을 착실하게 따라 몸을 움직였다.
침실에서 나와 식탁 앞에 앉으며 얼핏 들은 바로는, 데이브 혹은 미국 이민국의 다른 요원과 통화하는 것 같았다. 사실 그들 외에는 에드워드가 새벽부터 잠자코 받아줄 만한 상대가 없기도 했다.
아킨시나의 감시임무를 던져버린 것뿐만 아니라 연락 하나 없이 하룻밤 내내 잠수를 탔으니 아무리 에드워드라도 느끼는 바가 있을 테다. 지급받은 마세라티는 웨스트사이드의 도로 한복판에 내팽개친 채였고 휴대전화까지 잃어버렸다. 순혈 뱀파이어를 상대로 신변 걱정을 하지야 않겠지만, 그 외의 많은 게 걱정됐겠지.
오히려 직접 쳐들어오지 않은 게 이상할 지경이다. 에드워드가 사용하고 있는 휴대전화는 미국 이민국의 지급품이었다. 이 아파트 또한 미국 이민국의 소유였고 찾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신들의 행방을 쫓을 수 있었다.
그렇게까지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거나, 다른 이유가 있었겠지.
케일리가 식사를 다 끝내고도 영 나오지 않는 에드워드에 샤워까지 마치고 어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나왔다. 마침 휴대전화를 들고 침실에서 나온 에드워드가 말하기를, 이미 건물 앞까지 뉴욕 지부에서 나온 마중이 도착해 있단다.
현관을 나가자 정부요원들이 타고 다니는 SUV치고는 지나치게 화려한 벤틀리의 벤테이가가 보였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것은 뉴욕에 온 첫날 인사만 나눴던 데이브의 부하였다. 클라라라고 했던가. 정보 담당이라던 살만의 태블릿을 약탈했던 바로 그 요원.
흔한 인사말 하나 나누지 않고 창문을 내린 그녀가 뒷좌석을 턱짓했다. 그다지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마디쯤 복장 뒤집어질 말을 던질 법도 한 에드워드조차 가만히 뒷좌석에 올라탔을 정도였다.
벤타이가의 내부는 마세라티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아늑했다. SUV가 이렇게까지 럭셔리할 필요가 있는지 궁금해지는 시점이었다. 에드워드를 이어 케일리가 탑승하는 것까지 힐끗 확인한 클라라가 예고 하나 없이 액셀을 밟았다.
맨해튼 시가지를 그야말로 미친 듯이 달리는 클라라의 거친 운전은 라이센스를 유지하는 게 기적이라고 생각될 만큼 양심이 없었다. 마치 신호등과 속도제한은 정부의 뒷배가 없는 가엾은 우민들을 위한 속박이라고 주장하고 싶기라도 한 것 같았다.
리스한 것이나 다름없는 타국 정부의 재산을 한 순간의 기분으로 망가뜨리고 길거리에 내팽개치기까지 한 에드워드와, 에드워드가 그런 짓을 저지르게 만든 원인인 케일리는 불평불만을 할 입이 없었다. 차가 없으니 그녀의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고, 바로 어제 새로운 국면을 맞닥뜨린 사건에 대해서도 논의도 필요했다.
클라라의 차에서 보낸 시간은 삼십 분이 채 되지 않을 짧은 시간 동안, 케일리와 에드워드는 지옥으로 가는 데는 거창한 준비물이 없이 정신 나간 운전자와 자동차 한 대면 충분하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뉴욕 지부에 도착한 후에도 클라라는 말이 없었다. 잘못 건드리면 끊어질 것처럼 날카로운 분위기를 한 그녀는 두 팔의 소매를 어깨까지 걷어붙이고 있었는데, 훤히 드러난 팔뚝에는 몸을 만드는 데 일절 관심이 없는 케일리의 눈에도 대단히 공을 들여 단련된 것처럼 보이는 굉장한 근육이 맵시 있게 붙어 있었다.
화가 난 킹콩처럼 쿵쿵 걷는 클라라의 뒤를 따라가자 요전에 들렀던 컨퍼런스 룸보다는 좀 더 생활감이 있는 공간이 드러났다. 사무실보다는 오히려 무대의 백스테이지와 같은 어수선한 공간이었다.
침대며 소파를 비롯해 커다란 철제 냉장고에 그럴듯한 오피스 데스크와 로커까지 용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장소였다. 인기척이 없는 안쪽을 슥슥 둘러본 클라라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던 손바닥만 한 총을 집어 들었다.
지켜보는 케일리의 입장에서는 클라라가 갑자기 총은 왜 집어 드는지보다도, 어째서 바닥에 총이 떨어져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에드워드 또한 그녀의 행동이 신경 쓰였던 모양으로, 제 쪽으로 케일리를 끌어당겨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하는 모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이 쳐다보든 말든 하등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클라라는 천장을 향해 총을 들었다.
눈 밑이 죽어 퀭한 얼굴로 척 보기에 아무도 없는 사무실 안을 둘러보며 총을 드는 모습을 바라보던 케일리가 에드워드를 향해 속삭였다.
“저분, 설마 저대로 쏘려는 건 아니겠…….”
탕!
설마는 언제나 사람을 잡았다. 운전을 그따위로 할 때는 조금 의심했지만, 설마하니 미친 분일 리는 없으리라 생각했으나 그것조차 착각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답지 않게 놀란 눈을 뜨고 클라라를 바라본 케일리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다음 순간, 그녀가 어떤 의도로 총을 쐈는지 알 수 있는 일이 벌어졌다.
천장에는 총알의 흔적이 없었고, 귀를 찢는 소음과 바닥을 데구루루 구르는 탄피만이 발포의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공포탄이었다. 그리고 그 시끄러운 소음에 파드득 몸을 일으키는 몇 구의 시체가 보였다. 아니, 시체처럼 늘어져 있던 사람이었다.
소파며 바닥에 아무렇게나 늘어져 숨소리 하나 없이 단잠에 빠져 있던 데이브와 드류, 살만과 아르고야가 별안간 전쟁 선포라도 들은 것처럼 허둥지둥했다.
기껏해야 일주일 조금 지난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체가 움직인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초췌한 모습들이었다. 천하의 에드워드조차 저 정도면 그냥 자게 내버려두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였으니 데이브들의 상태는 상당히 심각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적을 찾아 무기를 꺼내 드는 어수선한 모습을 눈짓하며 클라라가 말했다.
“쫄지 마, 공포탄이니까.”
푹 들어간 퀭한 눈을 한 그녀의 얼굴이 음험해 보이는 건 착각이 아닐 터다. 별로 위험한 것도 아니라며 손에 쥔 총을 흔들어 보이기까지 하는 그녀의 친절함은 아무래도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 빨리 왔네? 하기야 이 시간이면 차 막힐 일도 없으니 당연한가.”
자신의 부하가 교통법규를 콧등으로 무시한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에드워드와 케일리를 바라보며 흐린 눈을 깜빡이며 그렇게 말한 데이브가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섰다.
클라라의 손에 들린 총을 본 순간 대번에 상황을 파악한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냉장고를 열어 에너지 드링크의 탭을 따는 것이었다. 그는 두 마리의 황소가 서로를 향해 돌격하는 동물학대성 로고가 인상적인 캔을 단번에 비웠다. 카페인으로 도핑을 하려는 것도 아닐 텐데 연거푸 세 캔을 아작 낸 후에야 냉장고에 처박았던 데이브가 고개를 들었다.
“에드워드, 케일리! 오래간만이야. 그쪽 상황은 좀 어때, 순조롭고?”
다 죽은 얼굴을 한 주제에 기분 나쁠 정도로 화사한 웃음을 만면에 띤 데이브가 손을 흔들며 경쾌하게 인사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에드워드는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고, 케일리는 한 타이밍 늦게 어색한 웃음을 되돌렸다. 임무에 대한 물음이 걸린 것은 아니었다. 밝기만 한 데이브의 목소리에서는 연상할 수 없는 처참한 몰골이 그들을 맞이하는 시청각 교란이 문제일 뿐.
데이브의 부하인 살만과 드류, 아르고야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좀비처럼 늘어진 채 인상을 찌푸린 채였다. 얼마나 혹사하면 저렇게까지 피폐해질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초췌한 꼴을 한 그들을 어이없이 바라보던 에드워드가 나직하게 말했다.
“70년대쯤 런던을 장악했던 히피들이 꼭 저런 꼴을 하고 있었지.”
혼잣말처럼 흘러나왔지만 누구도 놓치지 못할 또렷한 목소리였다.
“에디…….”
그때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케일리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는 광경이었지만, 에드워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정확히 이해했다. 사실 케일리도 그 비슷한 생각을 하기는 했다. 굳이 상상력을 동원 할 필요도 없이, 그들은 뉴욕 빈민가를 3년 정도 굴러다니다 온 홈리스 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실 홈리스가 저들보다 나은 점도 있었다. 최소한 홈리스는 밤에 잠을 잘 테니 한숨도 못 잔 핏발 선 눈으로 환하게 웃어 보인다는 호러 쇼를 연출하지는 않을 테니까.
“아니, 농담이 아니라니까. 코를 썩게 만드는 구린내까지 비슷하잖아. 놈들이 원하는 건 자유(Freedom)가 아니라 공짜 마약(Free Drug)이었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묘한 구린내를 풀풀 풍기는 놈들이었는데, 요즘도 그러고 다니는 걸 보면 시대가 달라졌다고 해서 별반 진화한 것도 없어 보이긴 하더군.”
케일리 또한 마약 태우는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당사자를 앞에 두고 노골적으로 코를 잡으며 인상을 찌푸리는 게 예의에 어긋난다는 건 안다.
게다가 데이브들은 마약을 한 히피가 아니라 잠복수사로 고생하다 돌아온 가엾은 공무원이었다. 그런 데이브를 바라보며 에드워드는 정말로 못 맡아줄 냄새라고 주장하는 양, 코를 쥐는 걸로도 모자라 남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잠 한숨 못 잔 초췌한 얼굴로도 애써 웃음을 지으며 환영까지 해준 데이브를 입만 산 평화주의자와 동급으로 끌어내려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정신적 타격을 입었던 데이브가 짐짓 상처받은 얼굴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히피라는 족속을 대단히 싫어하는 것처럼 인상을 구긴 에드워드가 말을 이었다.
“길거리에 나앉아서 기타 치면서 평화 평화 외치며 대마나 빨지 말고, 어디 버스라도 하나 대절해서 대마밭 여행이나 떠나는 게 거리의 평화를 지키는 길이라고.”
히피들에게 장악당한 런던 거리가 얼마나 구렸는지 너는 모를 것이라며 코맹맹이 소리로 말하는 파트너를 바라보며 케일리는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안 그래도 입버릇이 고약한 남자였는데, 냄새문제가 얽히면 수위가 에스컬레이트 하는 경향이 있다.
데이브들에게서 다소 하수구 냄새 비슷한 것이 나기는 했지만, 확실히 계속 맡다가는 오늘 아침식사와 재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구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저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었다.
“평화로울지는 모르겠지만, 깨끗한 거리가 되기는 하겠네요.”
그렇다고 에드워드가 자신의 충고를 새겨들을 뱀파이어도 아니었다. 어쩔 수 없다는 양 그렇게 말하는 케일리를 향해 에드워드가 단호한 어조로 대답을 돌렸다.
“그게 포인트야, 청결. 중세 이후로 인간들이 청결을 찾기 시작한 게 얼마나 획기적인 일인지 알기나 해? 아직도 악취를 풍기는 파리 같은 동네도 있지만, 그래도 100년 전이랑 비교하면 나아진 편이라고. 어쨌든 난 이런 환경에서 대화 못하니까 냄새 빼고 오든가, 아니면 우리가 알아서 나가고.”
평소 같았으면 비틀린 성격에서 비롯된 심술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아무래도 오늘의 에드워드는 농담을 하는 것처럼 들리지가 않았다. 표정도 진지했고 코를 틀어쥔 덕분에 목소리도 우스꽝스러웠는데 정작 본인은 웃음기 하나 없었다.
그러고 보면 페어리의 요정가루 때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후각이 예민한 데다 조금만 마음에 안 드는 냄새가 나도 못 참는 성격인 것 같기는 했다. 하기야, 그렇지 않았더라면 동족들에게 비웃음 당하고 이종들에게는 별종 취급 받으며 쓰레기 같은 혈액 팩만 먹고 살지는 않았겠지.
“저, 에드워드? 우리 중에 대마 빤 사람 아무도 없는데…….”
데이브 또한 에드워드가 매우 진지하게 자신들을 살아 숨 쉬는 악취덩어리로 취급한다는 걸 깨달은 양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데이브를 향해 에드워드가 대답했다.
“그렇군. 그럼 그 냄새는 체취라는 말인데, 손님을 불러다 놓고 양심이 있긴 한 건가?”
“어쩔 수 없잖아. 나흘을 꼬박 추적하다가, 두 시간 전에야 겨우 잠복 끝내고 지하수로를 빠져나왔는데 씻을 틈이 어디 있었겠어! 우리도 최소한의 수면은 취해야 생존할 수 있거든!”
게다가 너희가 손님은 무슨 손님이야. 일도 내팽개치고 홀랑 튄 주제에 양심이 있긴 한 건가?
마지막으로 에드워드의 말을 그대로 돌린 데이브가 억울함을 토로했다. 천하의 데이브가 목소리를 높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에드워드를 놀라운 얼굴로 바라보는 건 비단 클라라뿐만이 아니었다. 뉴욕 지부뿐만 아니라 미국의 관리국 내에서도 포지티브의 아이콘으로 재수 없는 상사 톱 오브 톱에 랭크인 되는 ‘그’ 데이브다.
연일 이어진 하드한 수사에 지쳐 있다는 걸 감안해도, 머나먼 타국에서 날아온 지원요원을 대하는 데이브의 태도는 평소의 그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놀란 얼굴을 하는 게 당연할 만큼 그답지 않았다. 그러나 데이브의 부하들은 에드워드를 향한 그의 억울함을 이해한다는 듯 옹기종기 모여들어 등이며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그것 참 눈물겨운 동료애라고 칭찬을 해야 할지, 넷을 모아놓으니 냄새가 더 고약하니 좀 떨어지기라도 하라고 타박을 해야 할지 고민스러운 광경이었다.
“그렇게 급했으면 위치추적이라도 했으면 될 것 아니야. 할 수 있는 걸 안 한 게 누군데 뭘 믿고 남 탓을 하는 거지?”
정론이었다. 워낙 맞는 말이신 터라 잠시간 반박할 말을 잃었던 데이브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드류가 슬그머니 손을 들어 벌어진 데이브의 턱을 다물어주었다. 한 덩치 하는 사내들 넷이 모여 하수도 냄새를 풀풀 풍기며 동료애를 자랑하는 모습은 그다지 유쾌한 광경은 아니었다.
에드워드의 비웃음 섞인 물음에 멈칫 했던 데이브가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뜨는가 싶더니 이렇게 말했다.
“음, 물론 네 말대로이기는 해. 하지만 이 경우 추적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보다는,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매달까 하는 문제였다고.”
아무래도 에드워드의 선택이 현명했던 것 같다고 생각하며 슬그머니 손을 들어 코를 틀어쥔 케일리가 데이브의 말에 의문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뜬금없이 고양이 이야기는 왜 튀어나오는 걸까. 물론 그게 비유적인 표현이라는 건 알았지만 상황에 맞지가 않았다. 케일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데이브의 옆에 서 있던 드류가 그 말이 맞다는 양 고개를 끄덕이며 제 상사를 변호했다.
“맞아, 우린 몸값이 마세라티보다 싼 마당에 마세라티도 아무렇지 않게 박아버리는 순혈 뱀파이어를 쫓아갔다가 무슨 사달이 나라고. 괜히 방울 달러 갔다 마세라티 꼴이 나면 데이지한테는 또 뭐라고 설명하고? 가뜩이나 내가 CIA 같은 데서 일한다고 착각하고 이웃들 사이에서 내 이야기가 나오면 어색하게 구는 사람이란 말이야.
게다가 우린 어제 하루 동안 겪은 일만으로도 충분히 정신과 육체의 건강에 씻을 수 없는 데미지를 입었어. 휴식과 안정이 절실한 때였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거지.”
쓸데없이 사족이 많은 변명이었으나 요컨대, 에드워드가 사정없이 박아놓은 마세라티와 같은 꼴이 나고 싶지 않아 튀었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면 마중을 나온 게 하필이면 클라라인 것도 이상했다.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마세라티보다 싼 몸값의 인간 같은 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제거할 것처럼 굴었으면서 마중은 어떻게 나온 걸까.
그런 케일리와 에드워드의 의문을 해소시켜준 것은 이어지는 클라라의 어이없는 목소리였다.
“하여튼 찌질한 새끼들. 운전도 나한테 떠맡겨놓고 자존심도 없냐? 니들 불알은 달아뒀다 어디다 써? 위험할 때 딸랑딸랑 울리는 경보용인가 보지?”
“그, 그건……! 네가 가위바위보 도마뱀 스팍에서 져서 그런 거잖아!”
“가위바위보 도마뱀 스팍 같은 찌질한 손장난이 아니라 법보다 빠른 주먹으로 정하자고 했더니 무시한 게 누군데.”
“클라라…….”
때 아닌 두통이 밀려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데이브가 제 이마를 짚었다.
첫날에도 느꼈지만 클라라에게는 상사를 향한 존중은커녕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존중마저 없는 것 같았다. 그녀의 상사가 아니라는데 가슴 한켠으로 안도를 느낀 케일리는 두 사람의 입에서 나온 가위바위보 도마뱀 스팍이 대체 무슨 암호인지 궁금해졌다.
“어쨌든, 에드워드 말대로 우리 좀 냄새나는 건 사실이니까 일단 씻어야 할 것 같기는 해. 저쪽에서 움직이기 전에 다시 미행을 시작해야 하니 늦장 부릴 시간도 없어.”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는 데이브가 비척비척 사무실 안쪽으로 향했다. 사무실 구석의 활짝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것은 하얀 세면대였다. 아마 내부에 샤워실이 구비되어 있는 모양이다.
동의한다는 듯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던 네 남자가 좀비 아포칼립스에 출연하는 배우마냥 뛰어난 재현도를 자랑하며 비틀비틀 샤워실을 향했다.
그러던 도중, 제일 뒤에서 따라가던 데이브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에드워드와 케일리, 그리고 클라라를 향해 고개를 돌린 그가 말했다.
“아. 그건 그렇고, 우리 쪽에서 밤사이에 새롭게 알아낸 게 있어.”
드디어 코를 잡았던 손을 뗀 에드워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걸 꼭 지금 말해야 하나?”
빨리 씻고 나와서 하라는 것처럼 인상을 쓰는 그를 향해 데이브가 꾀죄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중요한 거라고.”
“잠복에서 뭐 괜찮은 거라도 건졌나 보지?”
“괜찮은 거라니! 그냥 괜찮은 게 아니라, 완전 끝내주는 걸 건졌다고.”
“아킨시나를 엮어 넣을 증거라도 나왔나?”
“……그렇게까지 끝내주는 건 아니고. 리퍼들이 장기를 모아서 뭘 하는지를 알아냈어.”
거기까지 말하고 잠깐 말을 멈춘 데이브의 얼굴이 묘하게 창백했다. 나쁜 기억을 떠올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북한 표정이 떠오른 얼굴로 가만히 입술을 다물고 있던 그가 어둡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사육.”
그렇게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데이브가 저런 얼굴을 하는 게 그다지 흔한 일은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첫 만남부터 시종일관 조증에 걸린 것처럼 유쾌한 태도를 유지하던 남자였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초능력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것까지 포함해, 데이브 같은 사람이 저런 식의 반응을 보인다는 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나타내는 척도나 다름없었다.
끝내주는 걸 건졌다고 뻐기듯 말을 꺼낸 것치고는 상당히 우중충한 표정에 에드워드가 미간을 좁히며 자신이 들은 단어를 확인하듯 반복했다.
“사육?”
데이브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놈들은 인간을 사냥해 척출한 장기를 먹이로 주고 있었어.”
에드워드가 물었다.
“누구한테?”
그가 알기로 인간의 내장을 먹는 생물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뱀파이어는 인간의 혈액만을 섭식했고 장기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라이칸은 인간고기를 선호하지 않았다. 먹을 수 있었으나 노폐물이 가득한 데다 특유의 누린내도 고약했고 잘못 잡아먹으면 인간 경찰의 추적으로 귀찮아지는 경우도 많다. 구울은 인간을 먹었지만 그들의 식성은 대체로 시체를 선호했다.
살아 있는 인간의 내장을 먹는 이종. 그것도 이렇게 대대적으로 인간 사냥을 해서 ‘사육’당할 만한 종족이 뭐가 있을까.
생각에 잠긴 에드워드의 귓가에 어이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건 우리도 몰라. 처음 보는 거였으니까.”
모르는 건 어쩔 수 없다며 어깨를 으쓱한 데이브가 말을 이었다.
“게다가 본거지가 꽤 깊숙한 바람에 우리 애들도 돌아갈 타이밍을 못 잡아서 하마터면 꼬리 잡힐 뻔했는데, 겨우 도망쳐 나온 거라고. 원래 우린 잠입수사 같은 건 안 어울리는 유닛이라 어쩔 수 없어. 우리 팀은 전투 유닛이라고.”
다 죽어가는 얼굴을 하고 그렇게 말하는 데이브를 못 써먹을 쓰레기처럼 바라보는 건 에드워드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편인 주제에 클라라 또한 변명을 늘어놓는 데이브를 대단히 하찮은 것 보듯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어쩔 작정인데?”
“우리가 눈으로 본 걸 토대로 예측하거나, 제대로 아는 녀석을 데리고 한 번 더 잠입해서 우리가 상대하는 게 뭔지 제대로 알아내는 수밖에 방법이 없겠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별로 좋은 예감이 들지는 않았다. 에드워드가 알기로 이종 중에서 지금 인간들이 납치되는 것과 비슷한 속도로 내장을 먹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종은 거의 없었다.
설사 인간의 내장을 먹는 이종이 있다 하더라도, 내장을 먹는다기보다는 인간을 먹는 것에 가까웠다. 굳이 속만 척출해 가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실상 대부분의 이종은 인간을 즐겨 먹지 않았다. 먹을 게 그것밖에 없다면 먹기야 하겠지만, 맛이 있어서 찾아 먹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또한 시발점으로 여겨지는 파리의 연쇄살인사건부터 뒤쫓았을 때, 인간들이 실종되는 속도를 계산하면 지금쯤 이종들 사이에서도 무언가 소문이 돌아야 했다. 그럼에도 이번 연계수사를 제외하면 크게 주목을 끌지 않고 있는 것도 특이한 점이었다.
관리국은 각국의 정부 산하에 포함되어 있는 공무집행기관이었다. 경찰기관에서 발견한 미해결 특이 범죄는 결국 관리국으로 넘어오게 되어 있다.
큰 소란이 되지 않을 정도로만 사냥한 후, 요령 좋게 국경을 넘나들고 있는 탓일까. 현 시점에서는 별달리 떠오르는 그럴듯한 이유가 없었다.
데이브가 무언가를 목격한 것처럼 굴면서도, 그게 뭔지는 말하지 못하는 것 또한 그다지 긍정적인 징조는 아니었다. 겉모습만으로는 종을 구분할 수 없는 이종은 보통 먹이사슬의 상위에 위치한 이들이었다. 즉, 뱀파이어와 라이칸, 혹은 용과 유니콘처럼 인간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이들이거나, 혹은…….
“두 눈 멀쩡히 뜨고도 뱀파이어와 라이칸이 구분 안 되는 머저리들이 한 번 더 가서 뭘 하게? 시간이 넘쳐흘러? 혹시 니들도 죽을 날이 까마득해서 시간을 막 낭비하는 게 고상한 취미야?”
그렇다면야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는 것처럼 비꼰 에드워드가 보란 듯이 코웃음을 쳤다. 데이브가 사건의 실마리를 잡은 척을 해놓고서는 무엇 하나 도움 안 되는 수수께끼만 늘어놓는 판에야 고운 말이 나갈 리가 없었다. 물론 제대로 된 실마리를 들고 왔다고 해도 고운 말은 나가지 않았겠지만서도.
또한 보고도 뭔지 모른다면서 한 번 더 가보겠다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에드워드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부려먹으려는 수작으로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아마 그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을 테다. 데이브 또한 에드워드가 무슨 말을 하는지 곧장 이해한 것처럼 허를 찔린 얼굴을 했으니 말이다.
잠시간 말문이 막힌 데이브가 마치 약점을 잡히지 않으려 발버둥 치듯 곧장 받아쳤다.
“뭐, 우리끼리 가면 그 말대로 되겠지. 하지만 사건이 하나로 뭉친 마당에 계속 팀을 나눠서 움직일 필요는 없지 않아? 가뜩이나 적은 전력을 분산시키는 거야말로 낭비라고.”
“그래서 날 이용하시겠다?”
“이용이라기보다는 협력을 요청하는 건데 너무 곡해하지 말아줘.”
“명분이 그럴듯한 헛소리도 헛소리는 헛소리지.”
“너 지금 헛소리라는 말 세 번이나 한 거 알아?”
“구린내 그만 풍기고 씻으러 들어갈 생각은 아직도 안 드나 보군. 아직 잠이 덜 깨서 머리가 안 돌아가는 거라면 내가 훌륭한 각성방법을 하나 아는데 어떻게, 도와줄까?”
여전히 코끝을 찡그리고 있던 에드워드가 씩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은근하게 흘러나온 목소리는 마치 뱀파이어들만 아는 끝내주는 피로 회복법이 있다는 것처럼 유혹적인 어조였다. 비단 케일리에게만 그렇게 들린 게 아닌 것처럼, 데이브가 곧장 떡밥을 물었다.
“응? 뭔데? 안 그래도 카페인 정도로는 영 정신이 번쩍 들지가 않…… 헉! 지금 뭐 하는 거야?”
“도와달라기에 오랜만에 친절을 발휘해볼까 하고.”
“친절의 뜻이 바뀌었어! 친절은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라고!”
휭, 바람 소리가 귀를 스쳤고 생존본능에 가까운 반사신경으로 몸을 굴린 데이브가 제 뒤의 벽에 꽂힌 나이프를 돌아보며 사납게 외쳤다.
바닥에는 총이 굴러다니고 오피스 데스크에는 나이프가 널브러져 있는 덕분에 손만 뻗으면 무기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방금 에드워드가 던진 나이프는 드류의 수집품 중 하나였다. 몸 곳곳에 주렁주렁 나이프를 달고 다니는 드류의 주특기는 근접전투였다.
잠을 못 자 해롱거리는 주제에 용케 날아가는 나이프를 피해낸 데이브의 묘기에 그 모습을 구경하던 클라라가 짝짝 박수를 쳤다. 감탄이라기보다는 조롱을 담은 부하의 격려에 데이브의 표정이 한층 어두워졌다.
죄 없는 인간의 잠이 아니라, 목을 달아나게 만들 뻔한 주제에 죄책감 하나 없이 빤질한 얼굴을 들고 선 에드워드와 짝짝 박수까지 치며 즐거워하는 클라라를 지나 개중 가장 정상으로 보이는 케일리를 쳐다보며 데이브가 매달리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너 쟤 파트너잖아, 좀 말려줄 수는 없었던 거야?
마치 눈으로 대화를 건네는 것 같은 그를 향해 케일리는 단호하게 시선으로 대답했다.
갑자기 전 왜 쳐다보시는지?
안타깝게도 같은 종이라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는 두 사람 사이에는 시선만으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할 만한 요소가 없었다.
“아, 미안. 내가 말실수를 했어. 미국식으로 제대로 말하면 폭력쯤 될 것 같군. 어쨌든 효과는 확실하니 문제없겠지?”
“문제밖에 없거든! 게다가 나라는 무슨 상관이야? 친절함은 영어 쓰는 나라에서는 전부 똑같은 뜻이라고!”
“사과까지 받아놓고서 말이 많군. 내가 쓸데없이 입 놀리는 나쁜 버릇을 고치는 훌륭한 방법을 하나 아는데 어떻게, 도와줄까?”
한 번 속지 두 번 속냐.
방금 전에 비슷한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칼을 맞을 뻔한 데이브는, 이번에야말로 필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잠을 깨게 해준다면서 목을 날리려고 든 미친 뱀파이어라면 입을 다물게 만들기 위해 무슨 짓을 할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마침 손 뻗으면 닿는 거리에는 드류의 컬렉션이 좌르륵 전시되어 있었다. 칼 없이도 충분히 괴물인데 거기에 세계의 흉기 박람회 미니어처가 놓여 있으니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도 당연했다. 데이브가 나이프를 피하느라 한바탕 바닥을 구른 몸을 일으켜 슬금슬금 샤워장을 향해 뒷걸음질 치며 투덜거렸다.
“역시 신사의 나라라는 건 죄다 환상이었어. 내가 만났던 영국 놈들 중에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혔던 건 단 한 명도 없었다고. 영국인만 그런 것도 아니야. 영국 뱀파이어, 영국 요정, 영국 유니콘까지 하나같이…… 앞에 영국 붙는 것 중에 제대로 된 게 생기려면 역사부터 갈아엎어야 할걸?”
맹수 앞에 등을 보이지 않듯 에드워드를 마주한 채 게걸음을 걷는 데이브의 꼬락서니는 참으로 딱했다. 도망을 치는 와중에도 입 놀리기를 잊지 않는 데이브를 향해 에드워드가 어이없는 얼굴로 말했다.
“왜, 너도 마음에 안 드는 나라는 여차하면 죄다 갈아엎고 석기시대로 만들 생각인가 보지?”
심심하면 남의 나라에 폭탄을 던져 석기시대(Stone Age)로 만들려 들던 데이브와 같은 국적의 폭발광 깡패를 떠올리며 그렇게 묻자, 데이브가 울컥 반박했다.
“르메이 장군님을 욕보이지 마. 너도 그때에 태어났으면 똑같았을 거라고!”
“미안하지만 난 걔보다 먼저 태어나서 더 오래 살고 있는데.”
“저……, 어느 시대에 태어나셨는지?”
“글쎄, 대충 산업혁명 말기쯤? 네놈들이 폭탄을 던져서 석기시대를 만들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지. 내 모국은 산업혁명의 발상지라고. 돌을 들고 시작해서 철도를 만드는 미친놈들이 가득한 나라에는 안 통하는 전술이야.”
그러니 폭탄은 내려두고 입 좀 닥치라는 에드워드의 시선을 받으며 데이브는 새삼스럽게 질린 얼굴을 했다. 그가 순혈 뱀파이어라는 사실은 이미 들어 알았지만, 역사책에서나 나온 인물을 옆집 개 대하듯 언급하는 것부터 아무렇지 않게 산업혁명을 들먹이는 게 아득하기만 했다.
100년을 넘게 살고도 저 성격이라니. 확실히 인간들처럼 나이를 먹으면 과거의 잘못을 후회하고 인격적으로 성장한다는 말이 뱀파이어에게까지 해당되는 건 아닌 모양이다. 인간들에게도 해당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으니 어쩔 수 없기야 하겠지만서도.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세월도 해결하지 못하는 더러운 성격에 대해 한탄하던 데이브를 어딘지 딱한 시선으로 지켜보던 케일리가 에드워드의 팔을 잡았다. 왜 그러냐는 양 힐끔 시선을 주는 에드워드를 빤히 올려다보던 케일리가 데이브를 가리키며 말했다.
“에디, 그만 놀고 보내줘요.”
드디어! 드디어 상식인이 나타났다. 환하게 밝아진 얼굴로 데이브가 케일리를 구세주 보듯 쳐다보았다.
부하인 클라라는 근처에 영화관이라도 있었다면 당장 팝콘을 사 들고 와 자리 잡고 구경할 기세였고, 에드워드는 말 한마디를 져줄 생각이 없을 뿐더러 어딘지 심사가 뒤틀린 것처럼 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첫날과 비슷한 정도의 비웃음이었으나 눈빛이 달랐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세라티를 박고 튄 것도 관련이 있겠지. 가엾은 마세라티.
데이브는 공무원의 연봉으로는 손을 뻗기가 힘든 드림카를 아무렇지 않게 망가뜨려놓고서 죄책감 하나 없이 등장하는 에드워드가 부러웠다. 물론 타려고만 한다면 얼마든지 끌고 다닐 수 있었지만, 정부 소유라는 걸 떠올리면 시트에 앉아 있기만 해도 가끔 거북해질 때가 있었다.
그게 아니면 마중을 갔던 클라라가 거슬리는 행동을 한 것일 수도 있었다. 클라라의 운전솜씨는 뉴욕의 교통경찰에게 악명이 자자했다. 사실 운전만 개처럼 하는 건 아니었고, 성격도 좀 그랬다. 만약 그녀가 공무수행 중이라는 특권을 누릴 수 없었다면, 국가는 이미 10년쯤 전에 클라라의 라이센스를 빼앗았을 것이다.
어찌됐건, 성격이 사람보다 짐승에 가까운 사파리 안에서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인간과 조우한 데이브가 감격한 것도 잠시, “왜, 오래간만에 쉬운 놈을 만나서 스트레스도 풀고 딱 좋은데?”라는 뻔뻔한 말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에드워드가 당당히 스트레스 해소 중이라 선언하자 케일리가 그러면 안 된다고 어린아이를 설득하듯 느리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같이 놀면 냄새 배요.”
설마하니 에드워드도 아니고 어딜 봐도 상식적인 인간인 케일리의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케일리를 바라보던 그의 파트너는 누굴 배신하든 간에 자신을 배신한 것만 아니라면 상관없다는 투로 가볍게 긍정했다.
“맞아, 넌 원래 그런 놈이었지.”
그놈이 그놈이었다. 데이브가 브루투스에게 배신당한 시저 왕처럼 절망했다. 이 공간에 상식인 같은 건 없었다. 전부 자신의 착각이었다. 그나마 상식적인 부하들은 등 뒤에서 쏴아아 물소리와 함께 과거의 구린내를 떨쳐내고 있었으니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옆집에 맡겨둔 안젤리나와 스칼렛, 니콜의 사랑스러운 애교로 너덜해진 정신을 치유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임무를 빨리 끝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데이브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샤워실을 향했다.
◇ ◆ ◇
“그러니까, 좀 새 같았어.”
“다리만 있는 게 아니라 팔도 있었습니다.”
“몸 전체가 붉은빛이었죠.”
“그건 내장 집어 먹다 질질 흘려서 그런 거 아니었나?”
데이브와 아르고야, 살만, 드류가 순서대로 말했다. 여전히 은은한 구린내를 풍겼지만, 코를 썩게 만들던 악취보다는 다소 나아진 베타 팀이 테이블을 둘러싸고 토론을 시작했다.
비밀조직 리퍼가 내장을 끌어다 모아 무언가를 사육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해서 사건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수사 결과를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모아놓고 보니 아직 실마리라고 할 만한 것도 거의 없었다. 일주일 전과 비교하면 비밀조직과 리퍼의 관계가 명확해졌다는 것 정도가 새로운 사실일까.
그리고 리퍼의 정체가 아킨시나의 두 고용인이었으며, 리퍼가 복수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또한 척출해간 내장의 용도도 밝혀졌지만 그걸 가지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킨시나를 배후로 잡아넣기에는 리퍼가 내장을 꺼내던 때의 살아 숨 쉬는 알리바이가 바로 이쪽 수사관인 케일리였으니 그것도 요원했다. 그렇다고 아킨시나를 수사대상에서 제외하는 것도 애매했다. 그의 피고용인 둘이 리퍼인데 그걸 아킨시나가 모른다는 건 말도 안 됐다.
“몰라, 어쨌든 몸은 작은 게 더럽게 처먹더라. 난 그걸 그런 식으로 막 주워 먹으려고 뽑아 가는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문명인의 자세를 완전히 잃어버린 광경이었어. 내가 보는 게 현실인지, 디스커버리 채널인지 헷갈릴 지경이었으니까.”
비위가 약한지 어딘지 핏기가 가신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데이브를 케일리는 가엾은 시선으로 쳐다봤다. 그의 말과는 달리 지금 당장 텔레비전을 켜 디스커버리 채널을 틀면, 정글을 탐험하다 말고 배가 고프면 지나가던 뱀을 낚아채 희고 반들반들한 배에 그대로 입을 가져가는 무시무시한 영국인이 있다는 현실을 모르는 모양인 듯한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미식가로 유명한 그 남자는 배가 고프면 뱀뿐만 아니라 개미와 구더기, 펄떡이는 활어까지 산 채로 입에 넣었지만 아마 데이브는 그 광경을 보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
“어때, 이 정도면 우리가 본 게 뭔지 알 것 같아?”
좀 새 같고, 다리가 아니라 팔도 있는 데다 붉은빛을 띠었지만 먹던 내장을 질질 흘리는 자그마한 몸집의 무언가에 대해 잠깐 생각해보던 에드워드가 싱긋 웃으며 대답을 돌렸다.
“네놈들의 눈알을 뽑아다 까마귀에게 먹이로 던져주는 게 장기적으로 보면 지구에 이득이 되리란 걸 알게 된 것 같긴 해.”
“어쩔 수 없잖아. 눈으로 본 것만으로 이종을 분류할 수 있었으면 필드요원이 아니라 연구직에 있었을 거라고. 게다가 연구직에도 그런 고난이도의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애들은 거의 없어.”
“초능력자라고 자기소개를 했던 것치고는 나약한 말이로군.”
“내 초능력은 물리법칙에만 적용돼…….”
그것도 아주 국한적으로.
약간의 억울함을 담아 주장하는 데이브를 무시한 채 에드워드가 턱을 괴었다. 그들이 묘사하는 겉모습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색깔은 그렇다 치고, 몸집이 작고 언뜻 새 같은데 팔다리가 달린 이종 같은 건 거의 모든 종족이 그랬다.
특히 타자의 사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들면 아직 스스로를 가누지 못할 정도로 어리거나, 혹은 약해져 있다는 의미일 테니 전자의 경우 더더욱 종을 특정하기가 어려워진다.
이종이라고 해도 새끼들을 섞어놓으면 구분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뱀파이어의 새끼는 겉으로 보기에 인간 아기와 같았으며 라이칸의 새끼는 50퍼센트의 확률로 인간 아기나 늑대의 아기로 태어난다. 최종적으로 어느 쪽으로든 변할 수 있었지만 새끼일 때 비슷한 종과 섞어놓고 완벽하게 구분하는 건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기는 했다. 어젯밤 아킨시나와의 대치에서 눈치챘으나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닌 데다 후에 케일리가 던진 폭탄발언 때문에 까맣게 잊고 있던 일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확실히 좀 이상했다.
아킨시나는 러시아의 라이칸이었다. 에드워드가 알기로 러시아의 라이칸은 유럽의 라이칸들과는 달리 소규모 부족의 군락을 이루지 않았다. 오히려 훨씬 큰 규모의, 그래, 좀 더 국가와 비슷한 형태의 지배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킨시나는 동족이 아니라 이종을 끌고 다녔다. 그건 확실히 특이한 점이 맞았다.
“니들이 보고 온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먹여 살리는 게 뭔지는 알고 있지.”
자신의 눈과 코로 확신한 매니저의 독특한 정체를 떠올리며 에드워드가 말했다. 그러고 보면 그 매니저도 살아 있는 인간의 피를 필요로 할 테니, 내장을 척출하는 리퍼가 아니라 연쇄살인범이라고 하면 쉽게 납득할 수 있기는 했다.
“먹여 살리는 거? 아, 혹시 리퍼를 말하는 건가?”
데이브의 한 타이밍 늦은 물음에 에드워드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둘 다는 아니고 하나만. 여자 쪽은 아직 몰라. 라이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말했듯 이종들끼리도 타종을 알아맞히는 건 어려워. 동족이라면 모를까.”
“나머지 하나는 어떻게 맞힌 건데? 설마 매니저가 뱀파이어라는 재수 없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겠…….”
“강시(Jiangshi).”
에드워드의 입에서 불쑥 생소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단번에 알아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베타 팀의 다섯 명과 케일리가 동시에 에드워드에게 시선을 주목했다.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데이브였다.
“강…… 뭐?”
이민국에서 일한 것도 슬슬 10년이 넘어가지만 들어본 기억이 없는 단어였다. 박식하면 박식한 대로 너드 취급을 하고 무식하면 무식한 대로 말로 된 나이프를 푹푹 꽂아대는 에드워드도 이번에는 별다른 조롱이 없이 곧장 설명했다.
“강시. 통통 튀어다니는 차이니즈 뱀파이어인지 고스트인지 하는 그놈들.”
우그러진 운전석에서 튀어나온 매니저의 찢어진 옷 사이로, 문양이 보였다. 그의 짐작이 확신으로 바뀐 것은 냄새 때문이었다. 남자에게서는 시체 썩는 내가 났다. 제법 방부처리가 잘되어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머리를 처박아 다 썩어 검은 피를 흘려대는 데야 줄줄 새어나오는 역한 냄새를 숨길 길이 없었다.
몸에 새겨진 기묘한 언어의 문신, 그리고 시체 썩는 내. 에드워드는 수십 년 전 중국에서 비슷한 것과 대치한 적이 있었다. 구울보다는 약했지만 이미 죽어 있으니 다시 죽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아주 번거로운 상대였다. 강시는 결코 혼자 움직이지 못했다. 그 뒤에 죽은 자를 조종하는 술사가 있을 테고, 그걸 찾아내는 건 강시를 죽이는 것만큼이나 성가셨다.
강시는 이종이라기보다는 좀 더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생물병기에 어울린다고 에드워드는 생각했다.
“아,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 했는데 생각이 났어요. 에디가 준 백과사전에서 읽었는데, 강시는 픽션이 아니라 진짜였나 봐요.”
책에서 본 삽화와 아킨시나의 매니저는 복장부터 시작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지만 에드워드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 거겠지. 게다가 그 백과사전의 삽화에서는 뱀파이어도 그다지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눈앞의 에드워드를 보면 백과사전의 삽화보다 패션지의 표지를 장식하는 게 어울릴 외관이니 그림을 너무 믿지 않는 게 좋겠다고 케일리는 생각했다.
천 페이지가 넘는 하드커버 너드북을 언급하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케일리의 괴물 같은 기억력에 새삼 질린 얼굴을 한 에드워드가 문득 눈을 가늘게 떴다. 사실 던져주기는 했지만 직접 읽은 적은 없어서 그 안에 용이나 유니콘, 뱀파이어 같은 게 실려 있으니 기본지식을 쌓는 데는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에드워드였다.
하지만 강시는 이종이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면 프랑켄슈타인과 비슷한 것이어야 아귀가 들어맞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준 건 세계 신화와 몬스터 백과사전이었을 텐데?”
케일리를 향해 그렇게 묻자 어깨를 으쓱한 그가 대답했다.
“중국의 몬스터로 분류되어 있던데요.”
“걔 시체야.”
“분류학자가 일을 안 했나 봐요.”
“세계 신화와 몬스터를 분류하는 학자 같은 건 없으니까……? 어쨌든 뭔지 알고 있다니 잘됐네. 쟤들한테는 네가 설명해줘.”
여전히 벙찐 얼굴로 자신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듣기만 하는 베타 팀을 턱짓하며 에드워드가 말했다. 데이브들을 귀찮게 여기는 게 역력한 태도였다.
실상 에드워드가 미국까지 소환되었던 유일한 이유는 유리 아킨시나에게 들켜도 맞설 수 있는 몇 안 되는 신분이었기 때문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어차피 감시임무도 이틀을 남긴 참이었는데 여기서 새로운 일을 떠맡는 게 달갑지 않은 것이다.
에드워드와는 궤를 달리하지만, 역시나 새로운 일을 떠맡는 걸 좋아하지 않는 케일리가 뉴욕행 비행기 안에서 읽은 백과사전을 떠올렸다. 그는 한 페이지에 걸친 설명과 기괴한 삽화가 인상적이었던 강시항목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주문을 적은 그림으로 시체를 조종할 수 있어요.”
당연하게도 베타 팀의 전원이 알아듣지 못할 말을 들은 양, 눈을 끔뻑였다.
“아냐, 그건 너무 생략했어.”
“끝이 안 좋았던 시체만 조종할 수 있어요?”
“별로 쓸모가 없잖아.”
“새처럼 날기도 한다던데. 혹시 거기서 내장을 먹고 있었다는 것도 강시 새끼였던 건 아닐까요? 새 같았다잖아요.”
새끼 강시도 아니고 강시 새끼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케일리를 잠시간 마주 보던 에드워드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도 지금까지 자신의 말을 제법 귀담아듣던 녀석이었는데, 점점 막 나가기 시작했다.
케일리의 태도는 그의 가족과 대면했던 자선파티에서 목격했던 뻔뻔한 모습과도 닮아 있었다. 일정 선만 지키면 뭘 저지르든 그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당당한 자신감이었다.
만난 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가족이나 친구 같은 거리에서 막 대해주니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할지, 그나마 챙기던 최소한의 인간성이라도 챙겨보라고 타박해야 할지 의문이었다.
“시체는 새끼 못 낳아. 그리고 새같이 생겼다는 말은 너무 애매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봐. 그 쓸모없는 눈알이 뭘 보고 소나 말이 아니라 새라는 생각을 했는지 근거가 있을 테니까.”
설마 근거 없이 막 던진 건 아니겠지, 하고 의심을 담은 에드워드의 말에 제일 먼저 새라는 말을 꺼낸 데이브가 입을 열었다.
“꽤 거리가 있어서 정확한 건 아니지만, 사람이라기에는 신체구조가 이상했어. 언뜻 어린애 같아 보이기도 했는데 두 손을 모으고 쪼그려 앉아서 내장을 씹어 먹고 있었다고. 이상한 껍질 같은 걸 깔고 앉아 있기도 했고, 막 알아서 깨어난 새처럼.
게다가 내가 본 건 옆모습뿐이라 정면은 몰라. 계속 먹기만 하느라 얼굴을 파묻고 있어서 잘 안 보였으니까. 지하수로를 따라 들어갔기 때문에 벽에 붙은 하수구 구멍에 딱 붙어서 숨어 있었던 데다 더 자세히 알아볼 방법이 없으니 일단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 광경을 다시 떠올리기라도 했는지 핏기가 싹 가신 얼굴로 간간이 눈살을 찌푸리며 데이브가 자신이 본 것을 가감 없이 설명했다.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양 고개를 끄덕이는 데이브의 부하들을 바라보며 에드워드가 톡톡, 검지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 이상한 신체구조라는 게 정확히 뭐였지?”
무언가 떠오를 것 같기도 했는데, 그것의 정체가 들어 있는 머릿속 한켠에 뿌옇게 성에가 낀 것처럼 흐릿했다. 조금만 더 실마리가 있으면 정답을 얻을 수 있을 텐데. 다소 갑갑함을 느끼며 대답을 기다리는 에드워드를 향해 이번에는 살만이 가만히 입을 열었다.
“케일리의 말이 맞아요. 우리가 정확히 봤다면 그쪽 파트너의 말대로, 그건 날 수 있었을 겁니다.”
아주 작았지만, 그것의 등에는 분명히 날개가 달려 있었으니까요.
어딘지 석연찮은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스스로가 목격한 기묘한 광경에 대한 거부감을 감추지 않은 살만의 대답에 에드워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날개가 달린 생물. 더 정확히는, 인간과 비슷한 용모에 날개가 달린 이종. 인간의 내장을 섭식한 것뿐만이 아니라, 초반에 사라졌다는 캐트시의 이야기는 그것이 캐트시를 먹지 않았기 때문에 타깃을 바꾸었을 확률이 높았다. 비밀조직의 위험을 무릅쓴 사육까지 이쪽이 쥐고 있는 정보를 다 모아놓으면 결국 데이브가 말했던 음모론이 신빙성을 얻었다.
인간이든 이종이든 조직을 이루어 이상한 걸 키우는 건 두 가지 경우밖에 없었다.
첫째, 신비로운 생물을 손에 넣어 새로운 종교라도 만들겠다는 일종의 정신병.
둘째, 위험한 생물을 이용해 세계를 손에 넣겠다는 일종의 정신병.
어느 쪽이든 의외로 흔히 벌어지고 있었으나, 실패로 끝나는 일이 대부분인 일이었다.
“그게 뭔지 테이블을 빙 둘러싸고 회의해서 밝혀내는 것보다, 차라리 리퍼를 모조리 잡아넣고 신문하는 게 빠를 지경이로군.”
불쑥 튀어나온 에드워드의 말은 틀린 구석이 없었다. 그들이 본 것을 다시 봐도 뭔지 맞힐 수 있으리란 확신이 없다면, 어떤 목적으로 대체 뭘 사육하는 건지 장본인들을 모아놓는 게 훨씬 현명했다.
문제는 지금껏 조직의 말단을 잡아왔지만 족족 죽어 자빠졌다는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말단이 아니라 몸통과 대가리를 통째로 들고 오는 걸로 모든 게 해결된다.
고도의 정신조종이 가능한 마법사가 있다면, 시체를 움직이는 술자가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둘 다 잡아다가 족치면 끝이라는 무식하고 확실한 방법을 떠올리는 에드워드를 향해 데이브가 말했다.
“그 말에는 나도 동의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어.”
“네놈들이 쓸모없다는 문제 말고도 다른 게 있다고?”
“그래도 우린 임무를 도중에 내팽개치지는 않았잖아! 어쨌든, 그 문제 말인데. 만약에 유리 아킨시나가 이 조직에 얽혀 있다면 우리가 상대하는 게 러시아의 라이칸일 수도 있다는 뜻이 되잖아? 그건 좀, 아니, 큰 문제거든?”
“글쎄.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어째서?”
처음부터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던 러시아의 라이칸 왕자를 들먹였음에도 에드워드의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그 또한 정치싸움에 휘말리는 걸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던 데이브에게는 의외로운 일이었다. 그의 의문을 떨쳐주기 위한 친절은 아니었겠지만, 에드워드는 한술 더 떠 이건 유리한 상황이라는 논조의 대답을 돌렸다.
“네 말을 그대로 반전하면, 오히려 상황은 유리 아킨시나에게 불리해. 놈이 엮여 있다면, 러시아의 라이칸은 조약을 어기고 인간을 사냥 한 꼴이 되니까. 게다가 등록되지 않은 이종을 사육하고 있다면 거기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지.
그런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뉴욕의 구린내 나는 지하까지 숨어서 키우고 있는 게 아닌가? 너야말로 범인이 놈들이라면 대체 뭘 목적으로 그런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들이 몰래 숨어서 세계 정복이라도 준비하고 있을 것 같나 보지?”
정신 나간 음모론자를 대하는 듯 조롱 어린 에드워드의 말에 데이브가 울컥했다.
“그런 것까지는 아니지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뉴욕에 나타나는 부활절 신봉자들은 대체로 세계 정복 같은 걸 노리고 있다고. 악마를 부활시키겠다느니, 예수를 부활시키겠다느니, 그 외에도 세상에 부활시킬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지 알기나 해?”
그의 불평은 의외로 근거가 탄탄했다. 무엇보다 제법 오랫동안 뉴욕의 이민국에서 일한 덕분에 온갖 종류의 괴짜 이종을 잡아들였으며, 워낙 괴상한 사건이라 이종의 범죄로 치부되어 관리국까지 넘어온 인간들의 범죄도 많았다.
뉴욕을 담당한다는 건 세계에서 정제해 모아놓은 우수한 정신병자만을 상대하는 것과 비슷했다. 제정신인 놈들은 인간이든 이종이든 처음부터 관리국의 범죄자 리스트에 올라오지도 않았다.
“저도 데이브의 말에 동감해요. 음모론이라는 게 꼭 비웃어 넘길 문제는 아니잖아요? 이번에 터진 파마나 문서 프로젝트도 처음에는 음모론에 불과했어요.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도 중세에는 실존하는 조직이었죠. 음모론이라는 게 그냥 거기서 생겨나는 건 아니니까, 이번처럼 실체가 있다면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다고 가정하는 게 논리적이죠.”
발언권을 요청하듯 얌전히 한 손을 든 케일리가 에드워드를 중심으로 자신에게 모인 시선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케일리의 말대로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가 세계의 배후에서 실질적인 지배자로 움직인다는 것은 대표적인 음모론 중 하나였다. 따지고 보면 사이언톨로지라든지 로마의 가톨릭교회도 음모론자들의 달콤한 먹이 중 하나다.
그 외에도 유대인들이 비슷한 포지션에 들어갔고, 좀 더 작은 범위에서는 록펠러 가문이나 로스차일드 가문이 어마어마한 경제력을 자랑하는 검은 이익집단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망상증 환자의 음모론인 것만은 아니었다. 음모론에 엮이는 곳들은 어디 한 구석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었고, 그 실체도 확실했다.
만약 모든 음모론이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망상에 불과했다면 그걸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이 나오기 전에, 몰매를 맞고 사라졌을 테다. 한편으로는 그렇다고 해서 그 음모론들이 사실이라는 뜻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반증을 할 수 없는 건, 그저 증명을 해낼 수 없을 만큼 애매모호하고 터무니없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음모론자들 덕분에 그들에게 집중된 세간의 이목은 넘칠 만큼 높았다. 그들을 의심하는 세력도 꾸준했으나 아무것도 튀어나오지 않는 건 거기에 아무것도 없다는 이유가 가장 타당했다.
케일리가 말한 파마나 문서 프로젝트만 해도 그랬다. 21세기 저널리즘의 승리로 불리는 그 사건처럼, 진짜는 언젠가는 터진다. 인간들은 언제나 폭로전을 사랑했다. 음모를 꾸미고 음모를 사랑하는 만큼이나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위키리크스는 훌륭한 방증이었다.
100여 년을 살아오며 깨달은 삶의 지혜를 가진 에드워드가 가슴 깊숙한 곳에서 우러난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른 이들의 존재를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케일리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테이블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선 그가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네 헛소리라면 나중에 얼마든지 들어줄 테니 일단 여기서 나가도록 하자.”
아무리 생각해도 데이브가 케일리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그리고 더 이상 놈들에게 얻을 정보도 없다. 협력을 바란다면 아직 유리 아킨시나를 제대로 엮어 넣지 못했으니 움직여줄 심산은 있었다. 다만, 놈들의 폰이 되어 앞으로 한 칸씩 착실히 나아갈 생각이 없는 것뿐이었다.
얼떨결에 따라 일어난 케일리가 의아한 표정을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듯 배신감을 드러내는 네 명의-그 순간, 클라라는 드르렁 코를 골며 졸고 있었다.- 인간은 거슬리지도 않았다.
“대체 무슨 애완동물을 숨어 기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추리게임을 한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니잖아? 그렇다면 주인한테 찾아가 대체 뭘 키우냐고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르겠지.”
“주인?”
“유리 아킨시나.”
에드워드의 솔직한 대답에 네 남자가 일제히 입을 쩍 벌렸다. 그들의 경악 어린 얼굴을 무시한 에드워드의 방법 자체는 틀린 게 아니었다. 목적이 불분명한 지하조직이 뭘 사육하는지 알아내려면 주인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르고 확실했다.
다만, 데이브들이 그걸 몰라서 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게 터무니없이 위험한 동시에 자칫하면 겨우 잡은 실마리를 완전히 놓치게 될 리스크를 안고 있을 뿐.
“찾아가서 물어보면…… 솔직하게 말해줄까요?”
데이브가 입만 뻐끔거리며 뒷수습이라고는 머릿속에 들어 있지 않은 것처럼 폭탄을 던진 에드워드를 어떻게 말려야 하나 당황한 때였다. 다른 방향으로 걱정 어린 표정을 한 케일리가 에드워드를 향해 그렇게 물었다.
어제 그렇게 자존심을 긁어놓은 후였다. 실제로 아킨시나가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양 사이드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코웃음을 치며 저쪽 편으로 넘어갈 것 같았다.
“재수 없으면 한바탕 피를 보겠지만, 놈이 무죄라면 상황이 좀 달라질걸? 놈이 그러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지나가는 뱀파이어 하나에 그렇게까지 쩔쩔맬 위치는 아니잖아? 그런데도 몸을 사렸다는 건 그만큼 놈에게 있어서 지금의 위치가 중요하다는 뜻이지.
생각해봐. 유리 아킨시나가 이번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놈의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가 리퍼일 때 우리가 찾아가는 걸 제일 걱정해야 하는 건 누굴까?”
백과사전을 읽었다면 케일리도 강시의 효용을 알고 있을 테다. 또한 이종들의 히에라르키는 인간들과 비교하면 훨씬 복잡한 데다 객관적인 수치만 가지고는 비교하기가 어려웠지만, 그 안에서 뱀파이어나 라이칸이 상위에 존재한다는 건 확실했다. 즉, 강시 정도를 가지고 라이칸이나 뱀파이어를 어떻게 해보는 건 어려웠다.
매니저가 강시인 동시에 리퍼라면, 스타일리스트인 동시에 리퍼인 그녀 또한 무언가 숨기는 구석이 있어야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유리 아킨시나가 리퍼에 관한 진실을 모른다는 것 자체가 고용주인 아킨시나를 곤경에 몰아넣는 일이 될 테지.
일주일간 지켜본 결과, 유리 아킨시나는 의외로 성실한 데다 쉬는 시간도 아까운 것처럼 모든 일에 진지하게 임했다. 케일리를 홀랑 낚아채 사라진 것에 다소 심술을 부리기는 했지만 꼬마 라이칸과 리퍼의 관계성은 반반, 아니 그것보다 낮은 확률로 접점이 없으리라 에드워드는 생각했다.
그와 같은 결론을 낸 케일리가 느리게 고개를 기울였다.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
에드워드가 구구단을 맞힌 꼬마에게 스마일 스티커를 하사하듯 뿌듯한 얼굴로 씩 웃으며 케일리의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빙고.”
처음 뉴욕에 왔을 때부터 열흘 이상을 머무를 생각은 없었다. 남은 이틀 안에 유리 아킨시나를 엮어 넣거나, 혹은 놈을 이쪽으로 끌어들여 베타 님이 쫓던 비밀조직의 실체를 밝혀낸다는 게 에드워드의 계획이었다. 실상 계획이라고 하기에는 별달리 세운 것도 없었지만 사건 자체가 그랬다.
이종과의 전투에 특화된 이민국의 필드요원을 끌고 가서 본거지를 박살내면 끝나는 일을 굳이 질질 끄는 건 실체 없는 이종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만전을 기하는 게 프로토콜이기 때문이다.
이종들은 원래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을 잘했다. 영국의 고룡이 열 살 먹은 계집애의 모습을 한 채 돌아다니며 젊은 이종들에게서 마법 약의 재료-주로 신체의 일부.-를 강탈하고 다니는 것이 범죄가 아닌 것과 비슷했다. 이종의 범죄는 구분하기도 어려웠고 실체를 잡는 것도 까다로웠다.
이번에도 만약 인간들이 대량으로 실종되지 않았더라면 이민국이 쉽게 움직이기는 어려웠을 터다. 캐트시의 실종보다 인간의 실종이 훨씬 좋은 명분이었다. 어느 쪽이든, 뉴욕 이민국이 감당할 뒤탈을 에드워드가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유리 아킨시나를 물먹이고 싶은 건 별개의 문제로, 에드워드는 이번 일을 빨리 정리하고 영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지난 100년간 쓰지 않은 휴가를 이번 기회에 몰아 쓰면서 어떻게 케일리 저 인간을 손안에 넣을 수 있을까 방법을 강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어찌됐건 에드워드의 입장에서는 처음의 출장일정을 더 늘리고 싶지 않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뉴욕에는 장애물이 너무 많았다. 멋대로 케일리를 스튜디오에 끌어들인 카메라맨부터 시작해, 자신이 한눈을 판 새 녀석을 낚아챈 유리 아킨시나도 있었다. 한 번도 좋아한 적은 없었지만, 다시 생각해도 마음에 안 드는 도시였다.
케일리의 등에 손을 가져간 에드워드가 얼른 나가자는 듯 툭 가볍게 밀었다. 이미 임무에 관해서는 에드워드에게 전임한다는 합의가 끝난 후였기 때문에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두 남자가 사이좋게 사무실을 빠져나가려는데, 데이브가 소리쳤다.
“에드워드, 설마 진짜 물어보러 가려는 건 아니지?!”
슥 고개를 돌린 에드워드가 말했다.
“오히려 왜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은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쁜 작전도 아니었고, 아킨시나의 무죄가 밝혀진다면 그것대로 이쪽이 움직이기 편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킨시나를 정리하는 동시에 이민국의 수사 사실이 드러나게 되면 놈들도 가만히 손가락을 빨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데이브는 이번에야말로 꼬리가 아니라 몸통을 잡아 최소한의 피해로 사건을 종결시킬 요량이었다. 베타 팀의 전력손실을 고려해 최소한 하루는 휴식을 취한 뒤 그들의 꿍꿍이를 파헤칠 수 있도록 2차 잠입을 시도하려던 데이브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
아무래도 당장 일정이 빈 필드요원들을 죄다 끌어 모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