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영국 비밀보안국의 비밀 7
#Mission6. Like five-stages of death 사랑이나 죽음이나 그게 그거야 (4)
“대체…… 저건 뭐야?”
안타깝게도, 에드워드는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간 물음의 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뼈저리게, 잘. 의심의 여지 하나 없이 확실히.
천장에서 꺼떡이는 어두운 조명, 그 아래에 짙은 핏자국을 남긴 채 까득, 까득, 까득, 선홍빛 덩어리를, 검붉은 인간의 내장을 씹어 뜯는 생명체의 모습은 다른 것과 착각하기 민망할 정도로 명백했다. 한 줌짜리 궁둥짝에 깔고 앉은 알껍데기까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므로 에드워드가 내뱉은 의문의 방향은 ‘저 생물의 정체가 무엇인가’보다는 ‘대체 저걸 어디서 구했는가’에 걸려 있었다.
“전 몰라요. 기껏해야 먹이 조달에 투입된 말단이 거기까지 알고 있을 리가 없잖아요.”
까득까득 내장을 뜯어먹는 생명체를 내려다보며 어딘지 질린 얼굴을 한 리사의 대답에 에드워드는 어이가 없어 헛숨을 들이켰다. 저런 걸 깨워서 먹이까지 줘가며 키우는 주제에 뭔지도 모른다니……. 저걸 깨우겠다고 마음먹은 게 누군진 몰라도 확실한 것 하나가 있다.
놈은 제정신이 아니다.
“레이디피쉬, 그쪽 유치원에서는 저걸로 대체 뭘 하고 싶은 건데?”
정체는 모른다는 말이 목적도 모른다는 의미는 아니다. 최소한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뭘 하는지는 알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에드워드의 질문에 리사는 애꿎은 입술만 깨물었다. 에드워드는 게걸스럽게 내장을 섭식하는 생물에게서 몇 발짝 떨어진 채 서늘한 시선으로 대답을 종용했다.
그 생물이 뭔지 이미 알고 있는 듯, 확신에 찬 얼굴을 한 그를 마주한 채 리사는 마른침을 삼켰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인원이 적다. 평소 같았으면 저걸 감시하는 자들이 있어야 했는데, 사육장이 텅 비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닌가 머릿속 한켠으로 불안이 스쳤다. 만약 이대로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자신은 어떻게 되는 걸까?
모르겠다.
사실 그녀는 정말로,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처음부터 리사가 이 조직에 흘러들어온 것 자체가, 그녀가 아킨시나의 곁에 있기 위해 주어진 강압적인 선택이었다.
레드 마피아가 되는 것과, 레드 마피아의 수장이 꾸미는 꿍꿍이에 한 발을 담그는 것 중 달가운 선택은 없었다. 라이칸투성이인 마피아의 일원이 되는 것보다는 뭘 하는지 모를 비밀조직의 말단으로서 시키는 일만 묵묵히 수행하는 게 나아 보였던 것뿐이다.
조직에 대해 별달리 충성심을 가진 것도 아닌 리사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킨시나를 속이는 게 언제나 마음 안 좋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그와 함께 있으려면 무언가는 포기해야 했다.
게다가 아킨시나는 이미 미련을 버린 것처럼 굴었지만, 여전히 가족을 포기하지 못했다. 모든 걸 버리고 뭍으로 나온 자신과는 정반대의 남자를 리사는 원망하지 않았다. 그는 라이칸이었고, 피에 새겨진 본성이 그러했으니 어쩔 수 없다.
부친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증오하고, 그러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아킨시나를 지켜보는 건 가슴 아픈 일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자신이 필요했다.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동족 모두가 부친을 숭배했고 아킨시나를 봐주지 않았다. 자신마저 사라진다면, 아킨시나의 세계에는 고립밖에 남지 않았다.
그가 일에 매달리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아킨시나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힘으로 해내, 올곧이 인정받은 첫 번째 일이었다.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을 팔고 다니는 것을 그의 부친은 혀를 차며 싫어했지만, 그래도 아킨시나가 모델을 그만두지 않는 걸 보면 그 일이 그에게 있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지켜주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인 모양이다. 성정이 잔혹하기로 정평이 난 불사의 악귀를 바라보며 리사는 결국 아무런 대답도 돌리지 못한 채 느리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몰라. 난 아무것도 몰라.
촉촉이 젖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에드워드는 진짜 피에 젖은 악귀를 앞에 두고, 자신을 그런 괴물처럼 바라보는 세이렌이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내장을 생으로 뜯어먹는 날개 달린 악귀는 아무렇지 않으면서, 뱀파이어를 가지고는 겁에 질리다니. 어떻게 생겨먹은 신경줄이란 말인가.
“뭐, 어쨌든 수작 안 부리고 여기까지 곱게 안내해준 건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레이디피쉬, 그쪽은 이만 가봐도 돼. 이 정도면 필요한 건 다 얻은 것 같으니까.”
수작을 부릴 그릇도 안 되는 바다생물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찌됐건 도움을 얻은 건 사실이었다. 이렇게 쉽게 사건의 중심부에 접근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에드워드로서는 나쁘지 않은 수확이다.
그는 처음부터 비밀조직의 실체에는 별달리 관심이 없었다. 에드워드가 쫓는 건 리퍼였고 리퍼 사건만 해결하면 그걸로 임무는 끝난다. 조직이니 뭐니 귀찮은 일은 사전협의 된 사항이 아니니 뉴욕에서 떠맡으면 될 테고, 당장 급한 건 역시…….
“이걸 어떻게 처리하냐는 건데.”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간 혼잣말에 파드득 놀란 눈을 한 리사가 머뭇머뭇 물음을 던졌다. 에드워드를 향한 공포보다도, 귓가를 스친 이상한 단어에 호기심이 우선한 탓이었다.
“처리……라뇨?”
힐끗 그녀를 돌아본 에드워드가 다소 귀찮은 얼굴을 했지만, 여기까지 안내해준 답례 겸 제법 친절하게 대답을 돌렸다.
“저걸 천국에서 까면 천사가 되고, 지옥에서 까면 악마가 돼.”
꿀꺽, 마른침을 삼킨 리사가 재차 물었다.
“그러면……, 저 알을 지상에서 까면 어떻게 되나요?”
막 내장 하나를 볼이 가득 차도록 구겨 넣은 그것이 고개를 들어 에드워드를 바라보았다. 새빨간 홍채와 시선을 마주한 채 에드워드가 웃었다. 꿀처럼 달콤한 웃음이었다.
“보시다시피, 괴물이 되지.”
대단히 비밀스러운 진리를 가르쳐주기라도 하는 양 나지막한 목소리는 연기처럼 허공에 사라졌다. 뱀파이어 하나, 세이렌 하나, 그리고 괴물 하나가 있는 널따란 지하공간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그리 길지 않은 침묵을 지나쳐 정적을 깬 것은 에드워드도, 리사도 아니었다.
크르릉…….
붉게 물든 가지런한 이를 완전히 드러낸 채 위협적인 짐승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친 리사는 겁에 질린 얼굴로 입술을 떨었다. 그런 리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에드워드가 불쑥 괴물을 향해 손을 뻗었다.
피가 묻지 않은 곳은 지나치게 하얬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검붉은 얼룩이 장식하는 피부였다. 그 손이 닿은 곳은 괴물의 등이었다. 더 정확히는 날갯죽지. 느긋하게 뻗어나간 손길과는 달리 얼핏 보기에도 우악스러운 손놀림으로 날갯죽지를 움켜쥐었다.
끼이익!
괴상한 울음소리가 사납게 벌어진 입에서 뛰쳐나왔다. 제 팔뚝을 할퀴는 날카로운 손톱을 무시한 채, 에드워드는 그것을 대롱대롱 매달아 든 채 리사에게 쭉 내밀었다.
“너도 이해할 수 있는 단어로 설명해줘?”
가엾게도.
제 옷자락을 부여잡은 채 벌벌 떨고 있는 창백한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대답을 하기는커녕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저을 줄도 모르는 리사는 에드워드가 보기에 대단한 위선자였다. 그의 동정은 대부분이 비웃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실 동정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도 애매한 경멸이 푸른 눈동자를 스쳤다. 에드워드는 그녀의 이마에 괴물의 이마를 꾸욱 눌렀다
“이건 신이야.”
에드워드는 잔뜩 겁에 질린 리사가 시선을 피할 수 없도록, 모로 돌아간 그녀의 얼굴에 언뜻 인간의 아기 같은 생김새를 한 괴물을 가지고 가 그렇게 말했다.
붉게 물든 날개깃이 몇 번인가 저항하듯 파닥였다. 그러나 우악스러운 에드워드의 손길은 오히려 더 촘촘히 날갯죽지를 죄었고, 생존본능이 우선한 괴물의 포기로 작은 몸부림이 일단락되었다.
그 몸부림을 맞닿은 이마로 생생히 전달받은 리사는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듯 두 다리를 떨고 있을 정도였고, 에드워드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든가 말든가 에드워드는 상관없었다.
그녀에게는 스스로 만들어낸 괴물을 직시할 의무가 있다. 설사 리사가 거대한 소금 바다에 한 스푼의 독을 떨어뜨린 것뿐이라 하더라도, 그 순간 그녀는 이미 유죄였다. 책임이라는 건 그런 것이다.
“요즘 학계에서 유행하는 식으로 표현하자면, 이 웃긴 녀석의 이름은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쯤 될 것 같군.”
낑, 에드워드의 손 안에서 여전히 흉흉한 눈을 한 채 또르르 눈동자를 굴린 괴물이 리사를 직시했다.
흠칫, 몇 발짝인가 뒷걸음질을 친 리사가 꿀꺽 침을 삼켰다. 힘겹게 눈동자를 굴려 에드워드를 쳐다보는 것으로, 괴물의 시선을 빗겨낸 리사는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저건 실제하고 있는데 어떻게 망상(Delusion)이 될 수 있는 거죠? 신이라는 건 비유인가요? 하지만 아까는 분명 괴물이라고…….”
대화를 청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도피에 가까웠다. 지금껏 몇 달이라는 시간을 괴물의 사육에 손을 보탰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마주한 것은 처음이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니었다.
천국에서 태어나면 천사, 지옥에서 태어나면 악마, 지상에서 깨어난…… 괴물. 이해할 수 없는 단어가 머릿속을 혼잡하게 만들었고, 이내 뒤죽박죽 엉켜 검은 덩어리가 되었다.
“아,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 그럼 그쪽을 비유라고 해둘까? 엄밀히 말하면 이건 괴물이 아니야. 오히려 너희들보다도 훨씬, 신성한 존재지.”
혼란에 빠진 리사에게서 괴물을 떼어낸 에드워드가 그렇게 말했다. 허공에 달랑거리며 간헐적으로 날개를 파득거리는 모양을 쳐다보는 시선에는 성가심이 섞여 있었다. 에드워드 개인은 이 신성한 괴물에게 사감이 없었다.
리퍼 사건의 중심지라고는 해도 크기로 봐서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야 끼익끼익 울고, 주는 내장이나 주워먹는 정도다. 게다가 신은, 그러니까 뭐라고 정의내리기 힘든 이 생물은 굳이 내장이 아니라도 먹을 수 있는 게 많았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게 맞았다. 천사나 악마가 그러하듯, 그들은 다른 것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니 무언가를 단단히 착각해 인간의 내장을 가져다 나르고 그걸 먹게 된 지금 상황까지를 통틀어 보아도 죄가 있는 건 생물이 아니라 굳이 죄 없는 알을 최악의 방식으로 세상에 잡아 끌어낸 음모론자들이었다.
천사는 경멸하고, 악마는 혐오하는 그였지만, 알은 달랐다. 아직 태어나기도 전의 생명을 태어나서는 안 되는 장소에서 잡아 꺼내면 결말은 비극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쁜 결말 중에서도 가장 최악은 바로 그것이 살아남는 결말이었다. 지금 자신의 손에 매달린 ‘되다 만 신’과 같이.
알 속에 처박혀 있을 때는 악마가 될지 천사가 될지 콩닥콩닥 미래를 기대했을지도 모를 생물은 지상에 끌려 나온 순간 미래를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 차라리 여기서 끝을 내주는 게 자비라는 걸 에드워드는 알았다. 하지만 간간이 날개만 퍼득거리며 본능으로 강자의 눈치를 살피는 그것을 죽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 생물을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이유가 없었다. 어느 쪽이냐고 하면, 에드워드는 괴물을 동정하는 축에 속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구해야겠다거나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게 도와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알기로 악마고, 천사고 이미 수백 년은 새로 깨어나지 않는 정체된 종이었다. 대관절 어디서 멸종위기에 처한 알을 구했는지도 의문이지만, 깨우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시점에서 이 모든 걸 아무것도 모르고 저질렀을 리가 만무했다.
알일 때에는 아무것도 아닌, 그저 연약한 생명을 강제로 잡아 꺼내 천사도 악마도 아닌 무언가로 만드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는 머저리에게 동정의 여지는 없다.
“인간들의 이야기 중에 그런 게 있었지. 진리를 탐구하다 말고 착각에 빠져 마치 자신이 신이 된 양 착각하고 생명체를 창조하려 했던 한 머저리 과학자의 이야기.”
그 이야기는 오히려 21세기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게 비단 에드워드뿐만은 아닐 터다. 생명과학이 발전하고 사람들은 정말로 인간과 비슷한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들은 인간이 아니고 인간이 될 수도 없었다.
메리 셸리의 이야기처럼, 종내에는 흉악한 자신을 버리고 도망친 창조주를 죽여버린 배신당한 괴물의 비극적인 결말은 아직 현실이 되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하지만 인간의 시체를 먹여 키워낸 만들어진 신이 얼마나 자비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불러올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것을 만들어낸 자들이 원하는 결말이 찾아올 수는 없으리라는 것이었다.
“결말이 어떻게 됐는지는 누구나 알고 있지 않겠어? 신이 아닌 자들이 만들 수 있는 건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가엾은 크리쳐뿐이라는 걸.”
쩝쩝 입맛을 다시며 리사를 향해 탐욕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신을 훌쩍 던져 제 둥지에 돌려놓은 에드워드가 어깨를 으쓱했다. 날개를 적신 피가 모양 좋은 손에 묻어 검붉은 반점을 만들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낸 그는 말라붙은 피를 거칠게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너희는 자멸할 거야. 옛날이야기의 결말은 바뀌는 법이 없지.”
좀처럼 닦이지 않는 핏자국을 포기한 에드워드가 충격에 빠진 리사를 향해 기왕 시작한 충고를 마무리지었다.
“그러니까 너도 네 소중한 왕자님을 모시고 도망치는 게 좋을걸.”
사실, 그건 충고라기보다는 그녀가 저지른 짓을 자각할 수 있도록 다정하게 끔찍한 진실까지 이끌어준 심술에 가까운 행위였지만 말이다.
◇ ◆ ◇
들어갈 때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던 것처럼, 지상으로 빠져나가는 길의 수로도 텅 비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등 뒤로 NFL-내셔널 풋볼 리그.-에서 갓 낚아 온 쿼터백 클럽 같은 걸 거느리고 있는 화려한 외모의 사내와 맞닥뜨렸다.
남자는 입술과 코, 눈썹, 귀까지 꼼꼼하게 구멍을 뚫어 피어싱을 끼워 넣어 편견 없는 이의 간담마저 서늘하게 만드는 휘황찬란한 패션감각의 소유자였다.
외견의 화려함으로는 웬만해서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에드워드마저 한 수 접고 들어갈 수밖에 없을 정도로 외모에 과하게 신경을 쓴 것 같은 남자는 말없이 지나치려는 리사의 팔뚝을 잡아 세웠다.
“인어야, 오늘은 왜 다른 놈팡이를 달고 있어?”
가자미눈을 뜨고 에드워드를 쏘아본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 졸지에 놈팡이가 된 에드워드는 목소리에서부터 느껴지는 경박함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굳이 일을 귀찮게 만들고 싶지 않아 모른 척 입을 다물었다. 일순 낭패한 기색이 스쳤지만 의외로 표정을 다잡은 리사가 그를 향해 말했다.
“레닌은 다른 일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렇다고 내가 혼자 돌아다닐 수는 없잖아요?”
오늘따라 유난히 늦던 마중을 적당히 둘러대자 남자가 알아들었다는 양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하. 그러고 보니 나도 레닌이 불러서 내려가던 참이야. 걔가 뭘 잡아왔다고 자랑하던데, 솔직히 지하에서 전화 걸면 잘 안 들린다고 문자로 하라고 백번은 말했는데 절대 안 들어, 걘. 그 굵직한 소시지로 텍스트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날이 오면 난 감격해서 감격의 눈물로 대서양도 채울 수 있을걸?”
남자는 리사의 마중 담당인 구울을 들먹이며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대부분의 경우 아주 쓸 만한 재원이었으나, 구식에 멈춰 진화가 덜 된 부분이 있었다. 아니, 사실은 좀 많았다. 그래서 상대를 환장하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레닌이 아주 유능하다는 데에 이견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나저나 이 놈팡이는 누구야? 처음 보는 얼굴인데? 왕자님과 유쾌한 동료들은 어쩌고?”
리사가 왕의 알선으로 조직에 한쪽 발을 담갔던 그 때 부터, 남자는 줄곧 유리 아킨시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해왔다. 입만 열었다 하면 유리를 조롱하는 육지짐승을 리사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는 바다생물과는 상성이 나쁜 짐승이었다. 물웅덩이만 봐도 질색팔색을 하는 주제에 어째서인지 자신에게는 자꾸만 호의를 보이는 짐승이 리사는 불편했다. 그 호의가 상당히 일방적인 데다 반갑지도 않은 종류라는 것이 리사가 안고 있는 사소한 문제였지만 말이었다.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에드워드를 훑는 남자의 앞에 슬그머니 제 몸을 밀어 넣은 리사가 그의 시선을 차단했다. 남자가 에드워드를 쳐다보든 말든 제 알 바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벌어지면 물불 가리지 않는 남자와 물불을 가릴 필요가 없는 뱀파이어의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었다.
리사의 작고 유일한 바람은 오직, 무사히 유리의 곁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그를 끌어들이지 말아요. 그레고리는 피트가 잡아온 인간을 처리할 시간이 부족해서 먼저 내려갔어요. 난 레닌을 기다리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돌아가던 참이었고요.”
살아생전 유능한 외과의였던 그레고리와는 달리 리사는 평범한 세이렌이었다. 게다가 자신들이 사라진 공백에 의문을 가지지 않도록 아킨시나에게 최면을 걸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레고리보다 한발 늦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해서 먼저 도착한 그레고리가 적출한 장기에 후처리를 하는 게 리사의 주된 일이었다. 하지만 수가 적은 날에는 굳이 리사의 손이 필요한 만큼 일이 많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남자에게 의심을 살 이유는 없었다.
“흐응, 그래?”
눈을 가늘게 뜨고 에드워드에게서 리사로 시선을 옮긴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
평소에도 감이 좋은 남자지만, 오늘따라 언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걸렸다. 얼른 이곳을 벗어나는 게 좋겠어. 그렇게 생각한 리사가 제 뒤로 손을 뻗어 에드워드의 손목을 잡아챘다.
뱀파이어의 피부에 닿았다고 생각하니 손바닥 거죽이 생으로 깃털을 뽑은 닭껍질처럼 변할 것 같았다. 그래도 남자의 의심을 사는 것보다는 뱀파이어를 만지는 게 낫다. 뱀파이어를 만진다고 당장 죽지는 않겠지만, 남자의 의심을 사면 자신뿐만 아니라 아킨시나까지 위험해졌다.
남자는 유리만큼이나 호화스러운 환경에서 자라, 눈에 뵈는 게 별로 없었다. 그건 리사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다행스럽게도 뱀파이어는 리사의 손길을 뿌리치지 않았다. 아주 불쾌한 얼굴을 하며 잘생긴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리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리사는 눈매를 좁힌 채 자신을 지그시 응시하는 남자의 시선을 비껴 피했고 “그럼 급한 일이 있어서 이만.” 누가 들어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빠른 어조로 도도도 쏘아놓은 채 걸음을 옮겼다.
출구가 바로 코앞이다. 한 블록만 더 걸으면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있다. 복잡한 뉴욕의 지하를 죄다 파악하고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평소에는 레닌의 안내를 받았다.
그녀가 외우고 있는 길은 기껏해야 두세 종류뿐이었지만 실제로는 그 배수를 넘는 미로가 펼쳐진 것이 이곳 맨해튼의 지하수로였다.
남자를 스쳐 에드워드와 함께 출구를 향하는 참이었다. 뒤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잠깐.”
뚝. 리사가 걸음을 멈췄다. 바로 뒤를 따르던 에드워드는 끼이익, 녹슨 기계 소리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뻣뻣하게 고개를 돌리는 리사를 바라보며 소리 없이 혀를 찼다. 이렇게 읽기가 쉬워서야, 차라리 뭘 숨기고 있다고 동네방네 소리를 지르고 다니는 게 덜 갑갑할 지경이었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에드워드뿐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리사를 불러 세운 남자가 성큼 거리를 좁혔다. 그의 목적은 리사가 아니었다. 다짜고짜 얼굴부터 들이미는 상대를 마주한 채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에드워드가 말했다.
“너, 치과 안 다니지?”
바로 어제 만났다 헤어진 막역한 사이 같았다. 오늘 처음 만난 것뿐만 아니라 서로를 향한 강렬한 불쾌감을 첫인상으로 기억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무렇지 않은 어조의 물음을 일순 받아들이지 못한 남자가 눈을 끔뻑였다. 날카롭게 올라간 눈매가 질문의 의미를 눈치챘고, 곧 분노를 담은 서슬 퍼런 시선이 에드워드를 쏘아붙였다.
“내 치열은 완벽해!”
핀트가 어긋난 외침에 에드워드가 인상을 구겼다.
“아니, 네 입냄새 구리니까 주둥이 들이밀지 말라고. 치열은 훌륭하네. 철근도 씹어 먹게 생겼어.”
전자는 대부분의 진심을 담은 악담이었지만, 후자에는 뼈가 있었다.
에드워드는 동족과, 상극인 라이칸을 제외하면 이종을 외견으로만 맞히는 능력은 없었다. 하지만 모든 종에는 특징이 있었고 그 힌트를 알아챌 지식이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남자는 육지짐승이었다. 정확히 어떤 짐승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으나, 맹수의 일종이라는 건 확실했다. 그중에서도 네발로 뛰어다니며 무리지어 사냥하는 습성이 있는 종류의 짐승. 어느 쪽이든 바다생물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
조각 같은 얼굴이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꺼낸 말을 잠시간 곱씹은 남자가, 한 타이밍 늦게 그것이 자신을 향한 모욕임을 알아챘다. 사납게 굳어진 표정을 한 남자가 휙, 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거칠게 고개를 돌렸고 리사에게 소리쳤다.
“인어, 이건 대체 뭐야?”
퍼스널 스페이스라는 개념을 모르는 것처럼 얼굴 들이밀기를 참으로 좋아하는 남자의 등에 대고 에드워드가 말했다.
“그래, 좋아하는 애한테 입냄새나 풍기는 게 퍽이나 좋은 유혹이겠다.”
“뭐, 뭐, 뭐라고?”
“좋아하는 애한테 입냄새나 풍기는 게 퍽이나 좋은 유혹이겠다.”
저렇게 휙휙 고개를 돌려 대면 언젠가는 목이 꺾어지지는 않을까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에드워드가 친절하게 같은 말을 정확한 발음으로 반복하니, 귀까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남자가 버럭 소리쳤다.
“누가 두 번 말하래!”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하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인어!”
다시 한 번 애꿎은 리사를 호명한 남자의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졌다. 게다가 그는 좋아한다는 상대를 꼬박꼬박 이름이 아닌 종명으로 불렀다. 웃기는 놈이었다.
“그는…….”
사나운 기세로 빽빽 소리를 지르는 남자에 리사가 곤란한 얼굴로 입술을 뗐다. 어딘지 원망이 담긴 시선이 에드워드에게 머물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드워드는 뻔뻔한 표정을 받아칠 뿐이었다.
리사는 자신이 한 행위가 일종의 배신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곧이곧대로 남자에게 고백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리사는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남자는 조직원 대부분을 거느리는 간부였고, 그가 모르는 건방진 신참의 존재를 어필하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난 협박범이야.”
리사의 짐을 덜어주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싱긋 매력적인 미소를 띄운 채 에드워드가 말했다. 짐을 덜어주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리사는 생각했다.
“너…… 영어 할 줄 아는 건 맞지?”
여기서 제일 머리가 나빠 보이는 남자가 어딘지 걱정이 담긴 눈으로 에드워드를 쳐다봤다. 멍청이에게 동정을 받는 기분은 아주 더러웠다. 에드워드의 입매가 심술궂게 비틀렸다.
텍사스의 남부식 억양이 섞인 촌스러운 남자와 비교해서, 에드워드의 억양은 깔끔했다. 다소 잉글랜드의 남동부 억양이 남아 있었지만 그 점이 좋은 교육을 받았다는 점을 시사했기 때문에 마이너스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네가 하는 영어보다 훨씬 제대로 된 영어라고 볼 수 있지.”
영어의 기원을 따지면 미국보다는 훨씬 가까울 나라의 출신인 에드워드의 말에는 틀린 점이 없었다.
여왕의 억양(Queen’s English)을 완벽하게 흉내 내는 에드워드를 바라보며 남자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는 입가에 손을 대고 목소리를 죽인 후 리사를 향해 소곤거렸다.
“인어, 얘 좀 저능한 것 같아. 레닌한테 딴짓하지 말라고 일러놓을게. 다음부터는 그냥 레닌 데리고 다녀.”
억양으로 비꼬였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상대가 멍청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은, 확실히 에드워드의 실책이었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치만 보는 리사를 한번, 지능이 짐승 수준에서 멈춘 진화의 변방지대를 한번 한심하게 쳐다봤다. 확실히 짐승 중에는 민물고기를 잡아먹는 녀석들도 있으니 둘 사이의 상하관계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뉴욕 지하에서 벌어지는 일이 사이언톨로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수준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머저리에게 귀중한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누군지가 그렇게 궁금한가?”
“궁금한 게 아니라 내 구역에 들어온 놈을 확인하는 게 내 일이야! 너 같은 거에 관심이 있을 것 같아?”
아무래도 말을 더 섞으면 자신마저 같은 급으로 떨어질 것 같다. 게다가 솔직하게 말해봤자 그가 자신의 정체를 이민국까지 연결 지을 만큼 똑똑해 보이지도 않았고, 연결 짓는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 사실 그 점에 대해서는 동의해. 나도 네가 뭔지 관심 없거든. 게다가 난 바쁜 몸이라 여기서 시간낭비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내가 누군지 말해주면 귀찮게 굴지 않고 보내줄 건가? 아, 네 인어한테도 관심 없으니 걱정 마. 난 걜 여기 놔두고 가도 상관없거든.”
상대의 수준에 맞춰서 귀찮게 굴지 말고 이거나 먹고 떨어지라는 말을 적당히 포장한 에드워드를 향해 의심 섞인 눈을 가늘게 뜬 짐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뱀파이어.”
“……뱀파이어? 여기 미국인데?”
“뱀파이어는 여권도 없는 줄 아나?”
“하지만 여긴 뉴욕인데…….”
“공항에 뱀파이어 금지 표지판이라도 세워놨냐?”
뱀파이어가 유럽에만 몰려 있는 건 엉덩이가 무겁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그 외에도 사소한 이유를 대보라면 끝이 없었으나 그건 뿌리를 박고 살지 않는다는 이야기지, 아예 유럽 밖에는 얼씬도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에드워드만 해도 뉴욕이라는 도시를 좋아하지 않았고 오히려 정신 나간 놈들이 모여 미친 짓을 벌이는 파티랜드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일이 있으면 올 수도 있다. 셔터 아일랜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그 빌어먹을 섬에 가고 싶어서 가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무심하게 받아치는 에드워드를 바라보며 어딘지 배신감에 젖은 표정을 한 짐승이 이죽거렸다.
“뭐야, 이런 데 관심 없다고 콧대 세우더니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데?”
이래서 목이 빳빳한 놈들은 상종을 하면 안 된다느니 투덜거리는 남자를 바라보며 에드워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래도 그 콧대를 세운 콧대 빳빳한 놈들이 자신의 동족을 의미하는 것 같다. 순혈 뱀파이어에게까지 접촉했을 만큼 쓸데없는 일을 꾸미고 있다는 건 좀 거슬렸다.
아킨시나와 달리 리사와 그레고리는 등록되지 않은 이종이다. 아마 눈앞의 짐승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뱀파이어들은 기본적으로 이민국에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고 등록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지만 트러블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이종의 입장에서도 뱀파이어는 피라미드의 상층부에 위치하면서 그들의 편도 아니고 저들의 편도 아닌 귀찮은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족의식이 희박한 뱀파이어 전체를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무슨 계획을 꾸미든 그리 쉽게 전복되지는 않을 훌륭한 전력이 되었다.
이미 거절당한 것 같기는 했지만, 자신이 쫓던 게 생각보다 스케일이 큰 머저리들인 모양이다.
“나도 별로 관심 없어. 네놈들이 뭘 하려는지도 대충 짐작이 가긴 하지만…… 설마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머리가 있으면 그럴 수는 없다는 노골적인 비아냥거림을 담은 에드워드의 물음에 짐승이 되레 무슨 말을 하냐는 양 눈을 끔뻑였다. 날카로운 눈매 끄트머리에 달린 금속제 피어싱이 함께 움직여 그로테스크한 그림을 만들었다. 에드워드는 히피도, 갱스터도 싫어했다. 어느 쪽이 더 싫은지 쉽게 고를 수 없을 정도로, 싫어했다.
“지옥에나 꺼져버려!”
자신들의 계획이 어린애 장난 취급당했다는 걸 그제야 눈치챘는지, 씨근씨근 숨을 몰아쉬며 그렇게 소리치는 짐승에 에드워드가 일순 할 말을 잃었다.
지옥에나…….
이 시점에서 지옥을 꺼낼 순서가 정해져 있다면, 이쪽이 먼저다. 인간들의 종교에 별반 관심이 없는 에드워드도 알을 훔쳐 지옥과 천국 양측을 적으로 돌린 멍청이들이야말로 지옥의 분노를 걱정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았다. 지옥이라기보다는 알을 도난당한 악마들의 분노를 걱정해야 한다는 말이 어울리겠지만.
사실 그 알이 악마가 아니라 천사에게서 훔친 것이라면 일은 더 복잡해졌다. 악마는 알을 형제쯤으로 여겼지만 천사는 알을 자식처럼 여겼다.
“어 그래, 거기서 보자.”
뱀파이어의 기원은 악마와 한 갈래였다. 지금에 와서야 완전히 다른 종이 되었지만 시작은 같았다. 그러니 뱀파이어가 지옥에 가는 건 먼 옛날 떠난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지상의 짐승이 지옥에 떨어지는 건 그냥 벌이었다.
둘이 사이좋게 지옥에 가면 누가 더 손해를 보는 건지도 모른 채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는 짐승을 바라보며 에드워드는 그를 상대하는 것 자체가 수준 떨어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세계를 정복하고 나면, 제일 먼저 건방진 네놈들을 쫓아낼 테니까 두고 보라고!”
너무 어이가 없으면 말문이 막힌다고 하던가. 요즘 들어서 유독 자주 느끼는 답답함을 가슴 한켠에 아로새기며, 에드워드는 손을 들어 제 귀에 새끼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지금껏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았지만 스스로의 청력을 문제 삼은 적은 없었는데, 최근에는 차라리 청력에 문제가 있는 게 나을 것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 바로 지금 눈앞의 머저리가 한 헛소리 같은 이야기처럼.
“세계를…… 대체 뭐 하려고 정복하는데?”
저도 모르게 튀어나간 황당한 어조의 물음은 에드워드의 본의가 아니었다. 지금의 세계는 정복하는 의미가 없다. 산업혁명을 거슬러 봉건시대까지 돌아간다면 의미가 있을 수도 있지만 21세기에 세계 정복을? 이 복잡하고 다난한 지구의 지배권을 손에 넣어봤자 돌아오는 건 기껏해야 만성적인 편두통과 내장을 썩게 만들 스트레스뿐일 테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자유경제를 모조리 쫓아낼 생각이라면 모를까. 세계 정복이라는 다섯 살 꼬마도 원하지 않을 헛소리를 지껄이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걸 하고 싶은지 들어나 보자 싶은 심정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에드워드의 물음에 두 손을 허리에 올린 짐승이 턱을 치켜들었다. 유치원 연극무대에 올라간 어린애도 저것보다는 사리분별을 할 것 같았다. 놀라우리만치 멍청해 보이는 포즈를 취한 짐승이 이렇게 말했다.
“하등한 인간에게도, 쓸모없는 이민국에게도 지배당하고 싶지 않은 이종들의 혁명이지!”
아무래도 짐승이다 보니 혁명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지금 세계 인구의 31퍼센트가 크리스천이야. 무슬림의 증가추세로 10년 후면 30퍼센트 대를 돌파하고 크리스천을 이길 최다 지분을 차지할 예정인 데다, 불교와 힌두교를 합치면 전체 인구의 20퍼센트가 넘지. 종교가 없는 인간은 기껏해야 2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고.”
뻐기듯 내놓는 숫자는 에드워드가 아는 일반상식에 거의 근접했다. 아무래도 지능지수가 바닥까지 떨어진 건 아닌 것 같은데 어째서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걸까.
“크리스천과 무슬림, 그리고 유대인은 전부 같은 신을 모시잖아? 예수니 무함마드니 모세니 들먹이며 서로 자신들의 예언가가 정통이라고 우기느라 싸움박질을 하는 것뿐이라고. 거기서 우리가 살아 있는 ‘진짜’ 신을 내세워서 새로운 종교를 만들면, 인류의 반절 이상은 간단히 지배할 수 있게 된다 그 말이야!”
도널드 트럼프보다 한 터럭 정도 나은 연설실력이었으나, 딱 트럼프 정도로 실속이 없다.
“어때, 무시무시한 계획이지?”
무시무시했다. 뼛속까지 공포가 스며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무식함이었다.
“흠, 이해했어. 그러니까 요는, 네놈들이 단체로 정신이 나갔다는 거로군.”
자신이 들은 일련의 계획을 단번에 일축한 에드워드는 맨해튼 지하에 처박혀 신을 육성해 세계를 지배하려 드는 머저리들에게서 완전히 흥미가 떨어졌다.
솔직한 심정으로, 저런 웃기지도 않는 정복계획을 진지하게 실행할 정도면 차라리 사이언톨로지를 집어삼키는 게 빠를 것 같았다. 최소한 놈들은 탐 크루즈를 이용할 줄 알았다. 크루즈뿐만 아니라 다양한 셀러브리티의 영향력을 내세워 이미지 세탁을 했고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세를 키웠다.
하지만 눈앞의 멍청이들은 본인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건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머저리 집단으로만 보였다.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날뛰는 짐승을 내버려둔 채 에드워드가 가던 길을 계속 걸었다. 슬쩍 눈치를 보던 리사도 곧장 에드워드의 뒤를 따랐다.
빨리 케일리나 낚아서 런던에 돌아가고 싶었다. 시간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
◇ ◆ ◇
지하수로라고 하지만 결국에는 하수도다. 몇 시간 있지도 않았는데 벌써 몸에 구린내가 밴 것 같았다. 빨리 돌아가서 샤워나 해야겠다. 그 전에 오늘 얻은 정보를 뉴욕에 넘기면 자신의 역할은 끝날 테지.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수확이었다.
코끝을 찡그린 에드워드는 지상으로 나오는데 이용한 하수도 뚜껑을 낑낑 옮겨 원상태로 돌려놓는 리사를 무심하게 쳐다보다 골목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뉴욕의 하수도에서는 사람이 없는 출구를 찾는 게 제일 어려운 일이라고 우울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리사와 함께 지하에서 뺑뺑이를 돌았다. 뉴욕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는 에드워드지만, 그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브로드웨이에는 인적이 드문 하수도가 드물었다. 리사를 내버려둔 채 건물과 건물의 사이에 생긴 좁은 골목을 빠져나온 에드워드가 현재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설렁설렁 걸어보니 제법 큰 맥도날드 근처에 타임 스퀘어가 보였다. 제대로 나온 것 같기는 했는데, 지리를 모르니 건물이 특정돼도 케일리를 던져둔 장소까지 가는 길은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길잡이를 기다리는 게 낫겠다 싶어 타임 스퀘어의 계단 빈자리에 다리를 꼬고 앉은 에드워드가 제 무릎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었다. 종종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시선 정도는 공기 중에 산소가 있는 것만큼이나 당연하게 공존하며 살아온 에드워드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상으로 벗어나는 짧은 시간 동안 알게 된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이 있었다. 뉴욕의 지하수로 중 폐쇄된 경로 대부분을 이종들이 이용하고 있으며 그 탓에 규모의 파악이 쉽지 않았다는 것. 조직의 규모가 생각 외로 크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인간들을 지배하려 드는 계획에는 농담이 섞이지 않았다는 것.
말단에서 움직이는 인간들은 컬트에 빠진 심신 미약자를 끌어들인 것이기 때문에 꼬리가 잡혀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그들을 조종하는 술사들이 상부에 꽁꽁 숨어 있기 때문에 리사도 실제로 본 적은 없다니 그 점도 이상했다.
에드워드가 데이브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면, 정보차단을 위한 술법은 생각 외로 정밀했다. 그런 수준의 술자를 데리고 있는 조직이 이렇게까지 허술할 수도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할 정도로, 에드워드가 직접 눈으로 확인한 비밀조직의 실태는 처참했다. 아니, 조직의 실태라기보다는 나름대로 상부의 일원으로 보이는 짐승의 지능수준이 처참한 것이기는 했지만서도.
리사는 그녀 스스로 말한 것처럼 아는 게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아마도 이종의 규모는 이 정도에, 인간은 이 정도가 아닐까. 어렴풋이 그런 목적이라는 걸 짐작했지만 실제로 듣는 건 처음이다. 하지만 그 남자는 허술할지언정 허풍을 떨 성격은 아니다. 그런 식의 사소한 정보뿐이었다.
에드워드는 그녀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야 할 이유도 없었고 그녀에게도 자신을 속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심하지 않는다는 게 신뢰한다는 뜻도 아니었지만, 생각을 거듭할수록 확신이 생기기도 했다. 먼저 자신이 눈으로 확인한 부분만 종합해도 그녀의 말은 신빙성을 더했다. 조직의 규모가 생각 외로 크다는 것부터 그랬다.
고작해야 이 정도로 크다는 말을 붙이는 게 인간들에게는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에드워드가 보기에는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고작해야 이 정도밖에 모르는데도 조직의 구성이 참으로 묘했다. 강시에 술사, 라이칸의 왕이 엮인 데다 세이렌과 수인, 만들어진 신까지 여섯 종이 한 조직에 엮여 있었다.
원래 이종들은 조직적인 움직임을 잘 못했다.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종과 종 사이의 감정이었다. 야생만 봐도 토끼와 사자가 편을 먹고 같은 목표를 향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비슷한 맹수인 치타와 사자도 그랬다. 기린과 사슴이 같은 초식동물이라도 어울려 다니지 않는 것과도 비슷했다.
개미와 진딧물의 공생이나,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이종들은 웬만해서는 이런 식의 조직적인 계획을 짜고, 실행할 정도의 여력이 없었다. 같은 종 안에서도 온갖 잡음이 튀어나오는데 다른 종을 끌어 모으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조직은 의외로 체계가 잘 잡혀 있었다. 언뜻 체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 특히 그러했다. 이종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이 보기에는 감시조차 없이 툭 떨궈놓은 신의 존재나, 소규모 그룹으로만 움직이는 독단적인 단위가 이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종은 인간의 군인에 대면 상하관계가 애매한 SAS-영국 육군 특수부대.-의 일당백 괴물들과 비슷한 존재였다. 쓸데없이 묶어서 머릿수로 밀고 가는 것보다, 어느 정도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게 전략적으로 우수한 결과를 낸다.
게다가 에드워드는 곧바로 핵심에 관계한 아킨시나의 보모 레이디를 통했기 때문에 간단히 중심부를 찾아간 것이지, 오랜 기간 그들을 쫓고 있다는 데이브들은 비밀조직이 제 앞마당 지하에 둥지를 트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상태다. 자신이 뱀파이어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의심을 사지 않고 접근하기는 어려웠을 테지.
그렇게 생각하면 이민국은커녕 인간과도 손을 잡지 않는 오만함으로 유명한 동족들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까지 오만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목에 깁스를 한 것처럼 굴어대니 뱀파이어라는 사실만 밝히면 웬만해서는 의심을 사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종교를 만들겠다는 발상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나 그 방법이 참으로 이종다운 무식함을 자랑하는 것에 대해서는 에드워드도 할 말이 없었다. 최소한 핵미사일과 맨몸으로 싸우겠다는 것보다야 나은 방법은 맞았다. 문제는 발상이 아니라, 방법이었다.
그렇게 인간을 지배하고 싶으면 좀 더 그들을 연구하는 성의라도 보여야 할 텐데, 놈들은 언제나 인류를 지나치게 얕봤고 그래서 인류보다 훨씬 우수한 신체와 두뇌를 가지고도 이겨먹지를 못했다. 그러니 언제까지고 소수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일 테지.
이민국에서 골머리를 앓는 것처럼, 이종들 사이에도 과격파는 많았다. 특히 이민국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급진파와, 이민국은 긍정하지만 인간이 지배계층처럼 구는 현 태세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진보파는 비슷한 사상을 가진 것 같으면서도 이민국에 대한 의견 불일치 탓에 사이가 안 좋기로 유명한 주요세력 중 하나였다.
이민국과 인간을 긍정하고 그들의 규칙에 따르는 온건 보수파와 적극적으로 이민국을 지지하는 보수파만 해도 그랬다. 뼈대를 보면 같은 의견이었지만, 온건 보수파는 보수파가 이민국의 입 안의 혀마냥 구는 자존심 없는 쓰레기라고 비난했다.
종의 문제뿐만 아니라 이민국이나 인간에 대한 정치적 입장까지 극과 극으로 나뉘는 상황에서 하나의 조직을 만들어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게 만든다는 건 어려운 문제였다. 그걸 해낸 자가 있다는 것 자체가 에드워드는 하나의 위협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비밀조직의 목표는 명확했다. 이민국의 존재를 부정하는 급진파, 그리고 이민국은 긍정하나 인간을 부정하는 진보파의 성향을 적절히 섞은 것이겠지. 보수파 중에도 이민국이나 인간에 대해 부정적인 자들은 많았지만, 그들 대부분은 필요불가피함을 인정했다.
그러니 온건 보수에 속하는 뱀파이어가 이번 계획에 발을 담그지 않은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전력에 더해지면 더할 나위 없는 아군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뱀파이어가 인간의 편이나 이민국의 편에 서지는 않을 테니 그들의 입장에서 특별히 견제할 필요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되짚으면 자신과 같은 이레귤러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한 게, 그들의 가장 큰 패인이라고 볼 수 있었다.
결국 조직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민국에 속해 있는 뱀파이어라는 존재 자체가 그들에게 위협이 되었다는 가엾은 결론을 도출해낸 에드워드는, 머릿속으로 간단히 정리한 정보를 데이브에게 전달하기 전에 먼저 케일리를 회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난 에드워드는 헉헉 숨을 몰아쉬며 자신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쏘아보는 간 큰 세이렌을 발견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하얀 이마를 바라보며 자신을 찾으러 뛰어다닌 건가, 일순 어이없는 심정이 들었다. 별반 의리를 찾을 관계도 아닌 데다 뱀파이어는 원래 의리 같은 걸 몰랐는데, 어째서 배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쳐다본단 말인가.
황당해하는 에드워드를 향해 한참이나 숨을 고른 그녀가 말했다.
“저, 난 유리에게 돌아갈 생각이에요.”
“음? 그걸 왜 나한테 보고하지?”
“유리의 휴대전화, 돌려주세요.”
아……. 그러고 보니 그녀의 것을 케일리에게 던졌으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건 유리 아킨시나의 휴대전화였다.
“그러지 뭐. 마지막으로 전화 한 통만 쓰고.”
어딘지 불만 어린 얼굴을 하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무시한 채 에드워드가 아까와 같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재미없는 통화 연결음이 몇 번이나 울리는 동안 케일리의 목소리는 들릴 줄을 몰랐다. 결국 사서함으로 넘어가는 무성의한 기계음에 인상을 찌푸린 에드워드가 다시 한 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전히 답은 없었다.
◇ ◆ ◇
감이라는 게 그렇다. 나쁜 예감의 적중은 기억에 강하게 남는다. 반대로 빗나간 예감은 서서히 잊혀지고, 결국에는 ‘나쁜 예감은 언제나 들어맞는다’라는 웃지 못할 학습을 하는 것이다.
에드워드는 애초 감이라는 것을 그렇게 신뢰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경우, 냉정하게 생각해서 케일리와 연락이 되지 않는 것 자체가 그리 좋은 방향으로 굴러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는 총 두 개다. 자신이 던져준 유리 아킨시나의 것, 그리고 뉴욕 관리국의 지급품. 지급품은 번호를 모르니 당장 연락할 수 없지만 아킨시나의 것을 받지 않는 건 이상했다.
하얗게 질린 리사를 끌고 우사인 볼트를 놀라게 만들 속도로 브로드웨이 한복판을 질주했다. 타임 스퀘어가 교차하는 7번가를 빠르게 벗어나 브로드웨이를 따라 옥외 촬영장인 46번가에 도착한 건 십 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다.
“유리가……, 유리가 없어졌어요!”
끔찍한 재해를 목격하기라도 한 것처럼, 리사가 새된 목소리를 냈다. 그녀의 말처럼 아침과 변함없는 거리에서는 부가티도, 케일리도, 심지어는 유리 아킨시나의 모습마저 한 터럭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미 정오를 넘어선 시간이다. 새벽부터 대기하던 옥외촬영팀은 철수한 후였고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 이족보행하는 토끼를 쫓아 빠진 구멍에서 새로운 세계에 멀뚱히 떨어진 것보다도 황당한 일이었다.
마치 그들이 처음부터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리사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털썩 주저앉았다.
“유리……!”
당장 쓰러질 것처럼 창백한 혈색을 한 리사를 무시한 채 에드워드가 빠득, 이를 갈았다.
케일리, 그 멍청이가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쏘고 튀라고 한 건 분명 자신이었다. 하지만 튀려면 어디로 튈 거다 연락할 수단을 남겨야 할 게 아닌가. 휴대전화와 부가티, 그리고 아킨시나까지 세트로 둘러메고 사라진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에드워드는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케일리가 어지간한 이유 없이 그 둘을 끌고 사라질 인물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지간한 이유가 있었다는 뜻인데, 그게 뭔지 짚이는 구석이 있어야지. 아킨시나의 옆에 두는 게 안전하리라 판단했던 스스로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후회와는 거리가 먼 생을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최근 들어서 스스로의 실책에 뒤통수를 맞는 일이 유독 잦다. 원인은 대단히 명확했다. 케일리 로체스터. 그 망할 인간이 자신의 삶에 끼어들기 시작한 순간부터 모든 게 틀어지기 시작했다. 일직선으로 정도를 걸은 적이 없는 에드워드였지만, 지금 자신이 걷는 길은 길도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문제는 자신이 제대로 된 길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제대로 된 길은 아니었으나, 어찌어찌 길다운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다 케일리를 만났고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할지도 모를 만큼 의심쩍은 샛길로 빠졌다. 무성히 자란 수풀에, 돌부리에, 야생동물까지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는 곳이었지만 원래의 길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케일리의 부재를 인식한 순간부터,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 스스로를 눈치챈 건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였다. 에드워드는 자신이 당연스레 케일리의 회수를 생각하는 것보다도, 우선순위의 막대한 변경을 이제야 알아챘다는 게 훨씬 소름 끼쳤다.
그를 향한 감정을 인정한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이번에는 자신이 그를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재어봐야 했다. 거기에 한계가 있기는 한 건지 의문이 들었지만, 없다면 없는 대로 새로운 문제를 끌어안는 꼴이 되었다.
어찌됐건 지금 당장은 쓸데없는 상념에 빠질 여유가 없었다. 그 망할 인간이 자신의 어디까지를 침식했는지 알아보는 건 일단 옆구리에 끼워놓은 후에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레이디피쉬, 네 왕자님한테 인간을 잡아먹는 습성 같은 게 있는 건 아니겠지?”
만약 그런 악취미가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처럼 흉흉한 시선을 보내는 뱀파이어에 리사가 황당한 얼굴을 했다.
대체 왜 뜬금없이 그런 말을……. 어이가 없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리사를 바라보며 그가 친절하게 자신의 말을 정리해주었다.
“네 왕자가 범인이 아니라면, 다른 위협이 있었다는 말이 돼. 노려진 게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네 왕자가 아니면 내 파트너겠지.”
에드워드가 생각하기에 케일리는 아직 이종들에게 원한을 사고 다닐 만큼 얼굴이 팔리지 않았다. 그러니 목적은 아킨시나일 확률이 높다. 그건 별로 좋지 않은 징조다. 아킨시나 본인에게는 손을 대기 어려워도, 그 옆에 붙어 있는 인간을 건드리는 건 쉽다. 특히 이종에게 있어서 인간의 목숨이라는 게 얼마나 하잘것없는지를 생각하면 미래는 점점 암담해지기만 했다.
다행히도 ‘보험’이 듣는 한 케일리가 쉽게 죽는 일은 없을 테다. 시간을 제대로 맞추기만 한다면.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 거죠? 당신 파트너의 잘못일 가능성도 있잖아요!”
유리에게 있어서 모델 일은 유일한 도피처였다. 지금껏 모스크바에 받아들여지지도 못한 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감금되다시피 살아가던 그가 왕에게 한 처음이자 마지막 반항이기도 했다. 혈연을 끊어내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숨이 막힌 채 질식사해야 하는 건 아니다. 유리는 그 일을 쉽게 버릴 수 없다. 그러니 그가 위험한 행동을 할 가능성은 없다시피 했다.
리사의 입장에서는 케일리를 의심하는 게 당연했다. 대체 뭐가 그렇게 확신이 있기에, 기껏해야 인간을 상대로 견고한 신뢰를 보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뱀파이어 주제에, 인간을? 그런 비난 담긴 시선을 당당히 마주한 채 에드워드가 대답을 돌렸다.
“걘 목숨이 위험한 정도가 아니면 안 움직일 놈이니까.”
“…….”
“너도 네 왕자가 땅으로 꺼지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잖아? 그러니까 이건 제삼자의 범행일 가능성이 높겠지.”
그 말에는 리사도 동의했다.
“짐작 가는 구석이라도 있나 봐요?”
“아니, 하나도.”
“그럼…… 어떻게 하죠?”
“글쎄. 일단은 물량으로 밀어보려고 하는데.”
“물……량?”
인상을 찌푸리며 의문을 표하는 리사를 향해 에드워드가 갑자기 화제를 바꿨다.
“그건 그렇고, 네가 인간 사냥을 하던 조직의 윗선에 왕이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나?”
가볍게 흘러나온 것치고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뱀파이어의 혀 위를 굴러 나온 단어가 대단히 이질적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리사는 그가 지칭하는 대상을 비교적 정확히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그건…… 갑자기 왜 묻죠?”
별로 반가운 상대도 아니었기 때문에 뾰족하게 튀어나간 리사의 물음에 에드워드는 순순히 답을 둘렸다.
“왕자를 구하기 위해서는 왕을 배신해야 할 테니까.”
배려라기보다는 확인이었다. 그녀가 케일리를 회수하는 데 도움이 될지, 아니면 방해가 될지는 중요한 문제였다.
만약 그녀가 케일리의 덤으로 회수될 아킨시나보다도 그의 부친인 왕을 중요시 여긴다면 데리고 가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들의 실종에 관계된 자들의 목적이 케일리든, 아킨시나든 이번 사건과 관계가 없을 확률은 적었다. 그렇다면 리사에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대부분 손에 넣은 상태이니 이쪽은 아쉬울 게 없다.
그런 에드워드의 계산을 알아듣지 못한 리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친절함과는 거리가 먼 에드워드였지만,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선택지를 주기로 했다. 어쩌면 리사가 케일리의 탐색에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데리고 가봤자 도움이 안 될 가능성이 높은 듯했지만, 어쨌든 그녀에게는 동기가 있다. 아킨시나를 찾겠다는 간절한 동기. 간절함은 의외로 도움이 된다. 게다가 세이렌은 유용한 재원이었다. 전투로 시간을 낭비하기 전에 상대를 처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난 지금부터 이민국의 손을 빌리러 갈 거야. 사람을 찾는 데 제일 쓸 만한 건 머릿수니까.”
“이민……국?”
“나와 내 파트너는 이민국의 요원이니까.”
지구에 둥지를 튼 이종이라면 모를 수 없는 단어였다. 눈을 큼지막하게 뜬 리사가 놀라워하는 게 뱀파이어가 이민국의 요원이라는 점인지, 아니면 이민국이 아킨시나의 수색을 도울 거라는 건지까지는 몰랐다. 그래도 에드워드는 그녀가 생각 외로 쓸 만한 말이라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었다.
마음을 다잡은 것처럼 단단한 표정으로 돌아온 리사가 이렇게 말했다.
“난 원래 왕에게 충성하지 않아요.”
빨리 유리를 찾으러 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재촉하는 눈짓을 하는 리사를 바라보며 에드워드는 조금 웃었다. 케일리를 놓친 자신만큼이나, 간절해 보이는 눈이었기 때문이다.
◇ ◆ ◇
에드워드는 케일리에게 지급된 휴대전화 번호를 몰랐다. 아킨시나의 것은 연결되지 않았지만 그쪽은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데이브와 연락할 수단도 없다. 그러니 일단은 본부로 돌아가는 게 급선무였다.
나오는 길에 강탈한 차는 아무렇게나 길거리에 세워놨던 탓에 이미 견인당한 모양이다. 택시를 잡아 뉴욕 이민국의 본거지에 도착한 것은 점심정체가 겹쳐 반시간이 훨씬 지난 후였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에드워드가 선택한 방법은 대단히 단순한 동시에 파괴적인 것이었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생체센서의 출입구를 힘껏 걷어차 부숴버렸다.
몇 겹으로 된 철문이 볼썽사납게 어그러져가는 것과 함께, 건물 전체를 울리는 경보음이 귀를 찢듯 퍼져나갔다. 삼 분이 채 지나지 않아 무장한 요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에드워드는 승리의 미소를 띠었다.
“어이, 데이브. 내가 좋은 걸 낚아 왔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상쾌한 미소를 지은 채 에드워드가 그렇게 말했다. 무장요원들 사이에 섞여 헐레벌떡 뛰어 내려온 데이브는 CCTV에 잡힌 뱀파이어의 모습에 뱃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간이 방광 밑까지 떨어진 기분이었다.
게다가 ‘좋은 거’랍시고 내밀어 보이는 게 겁먹은 눈빛을 한 여자인 부분에서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좀처럼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저건 농담일까? 설마 헌팅에 성공했다고 자랑하는 건 아니겠지? 근데 저 뱀파이어, 파트너랑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거 아니었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뒤로한 채 데이브는 먼저 상식인의 입장에서 에드워드에게 소박한 부탁을 던졌다.
“다음에 남의 집을 방문할 때는 노크를 해주면 안 될까?”
“예의 있는 방문객이 되어볼까 했더니, 초인종이 없더라고.”
“거짓말하지 마. 건물 입구로 평범하게 들어오면 프런트에 안내데스크까지 있다고!”
“다음부터는 프런트를 이용하도록 하지.”
남의 지부의 문짝 하나를 못 쓰게 만들어놓고선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하는 그의 태도에 말없이 이마를 짚은 데이브가 무장요원들에게 손짓했다. 같은 편이니까 철수. 망가진 문을 처리하기 위해 남은 두엇을 제외하고는 나올 때만큼이나 발 빠르게 사라지는 그들을 무시한 채 에드워드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데이브의 뒤를 따랐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왕자님 일은 잘 처리됐나 봐?”
새벽과 비하면 어느 정도 사람의 몰골을 한 데이브가 물었다. 이쪽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뛰어다닌 사이 단잠이라도 자고 일어난 것 같은 얼굴을 보니 심사가 뒤틀린 에드워드는 속내와 어울리지 않는 시원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니, 완전히 망쳤지. 완전히 개판이 됐다 보니 고양이 손이라도 필요한 상황이라 너희 손을 좀 빌려볼까 하고.”
마치 사건은 해결됐고 너희는 개입할 필요도 없다는 말처럼 상쾌한 어조였다.
표정과 목소리, 그리고 내용의 괴리에 잠시간 혼돈에 빠진 데이브가 곧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입을 쩍 벌렸다. 개판이 될 정도로 사건을 망치려면 대체 무슨 짓을 해야 하는 걸까? 유리 아킨시나를 협박하겠다는 것부터가 계획이라고 해줄 수도 없을 만큼 난폭한 수단이기는 했지만…….
잠깐, 그러고 보니 저 ‘좋은 것’의 생김새가 아무래도 자신들이 목격한 내장 약탈범과 흡사했다. 아니, 굳이 잘 보지 않아도 그냥 그 여자였다.
장시간의 외과수술을 죄다 목격했던 데이브는 피로에 절어 기름때가 낀 양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걷어차 굴리며 어째서 저 둘이 함께 있는지를 알아내려 노력했다. 하지만 별로 떠오르는 게 없다.
어쩌다 저 둘이 사이좋게 등장한 걸까? 리퍼를 잡기 위해 왕자를 협박하겠다던 뱀파이어가 뭘 어떻게 하면 이런 식으로 귀환할 수 있는 걸까? 데이브의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그럴듯한 가설 하나도 세울 수가 없었다.
“뭘…… 어떻게 망쳤는데?”
약간의 두려움을 담은 채 날아온 물음에 에드워드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케일리와 아킨시나를 통째로 강탈당했어. 뉴욕의 강도는 담이 큰 모양이더군.”
그 말을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데이브는 좀처럼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지만 에드워드의 눈빛은 그렇지 못했다. 몇 번 마주치지 않았지만 데이브는 그가 지금까지 자신들을 대할 때 제법 배려를 한 편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지금껏 줄곧 푸른색이었던 눈이 선홍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가볍게 튀어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바늘처럼 따갑게 피부를 찔렀다. 아마 자신을 위협하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닐 터다. 그랬다면 그의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테니 말이다.
뱀파이어의 힘은 미지에 싸인 부분이 많았고 데이브도 자세히 아는 건 거의 없었지만, 뱀파이어 너드인 동료에게 주워들은 지식이 몇 있다. 그중에서도 ‘붉은 눈’에 대한 이야기는 대단히 인상이 깊었기 때문에 줄곧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에드워드는 확실히 분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분노가 무엇을 향한 것인지 데이브는 확신하기가 어려웠다.
“짚이는 구석은 있고?”
“전혀.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 둘을 단번에 낚아챘다는 시점에서 그런 짓을 해낼 인간이 존재할 리 없다는 건 알 수 있겠군.”
“그건 그렇지…….”
“이종이라고 해도 이상해. 케일리는 이민국에 들어온 지 몇 달도 안 된 신참인 데다, 이번 사건이 정식으로 맡은 첫 일이니까. 이종에게 원한을 사고 다닐 만한 일 자체가 없었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다는 건 말도 안 되지.”
그러니 문제는 네 왕자일 것이라는 의도를 담아 노골적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에드워드의 시선에 리사가 어깨를 움츠렸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변명은 있다. 그의 파트너가 이종에게 원한을 살 만큼 활동적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유리에게도 정확히 들어맞았다. 그는 어린 시절을 내도록 별장에 갇혀 지냈고 허울뿐인 자유를 얻은 것도 기껏해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인간들과 엮이는 일이야 많았지만, 그중 이종에게 원한을 살 만한 사건은 없었다. 애초에 아킨시나는 이종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긴 했지만……. 어쨌든 리사에게도 할 말은 많았다.
억울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리퍼에 데이브가 식은땀을 닦았다. 수술침대 앞에서는 그렇게 섬뜩한 얼굴을 하던 여자가 억울함을 토로해봤자 와 닿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데이브는 리사가 내장을 갈무리하는 모습을 라이브로 관람했다 보니 오히려 연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섬뜩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런 데이브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사가 “유리도 그래요. 개인적인 원한관계도 없을 뿐더러, 그를 납치해서 이득을 보는 이종은 없다고요.”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돼?”
케일리의 실종은 데이브에게도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이쪽의 요청으로 머나먼 타국에서 지원을 나온 요원의 신변이 위험하다는 것 자체가 외교문제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이민국의 임무야 언제나 위험을 동반하고 있었고 겉으로 정치적 문제가 일어나지야 않겠지만, 훨씬 귀찮은 일로 번지기는 쉬웠다.
이종들에게는 국경이 없다. 즉, 각국의 이민국은 항시 협력 체제를 유지해야만 했다. 그러니 타국의 이민국과의 사이에 잡음이 나올 만한 일을 내버려두는 건 책임자로서 좋은 대처가 아니다. 케일리의 실종을 최우선 사항으로 둬야 하는 이유는 그 외에도 서른 가지 정도를 댈 수 있었다.
팀원들을 불러 모으며 그렇게 묻는 데이브를 향해 에드워드가 대답했다.
“일단 네가 움직일 수 있는 인원은 전부 모아. 수색은 손발이 많은 게 유리하니까. 짚이는 구석이 아예 없다 보니 오히려 포위망을 좁히기는 쉬울 거야. 케일리가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를 추적하는 건 크게 기대하고 있지도 않아. 진짜 납치라면 제일 먼저 처리하는 게 휴대전화니까. 나머지는…… 역시 이 빌어먹을 섬을 벗어나지 않았기를 기도하면서 이 잡듯 뒤지는 수밖에 없겠지.”
“알겠어. 왕자님도 같이 사라졌다니까 근처 주에도 수사에 필요한 공조라고 연락을 넣어놓을게. 손이 빈 요원들은 움직일 수 있을 거야.”
“아, 그리고 수색을 시작하기 전에 몇 가지 알려둘 게 있어.”
“여기서 더 받아들였다가는, 뇌가 터질지도 몰라…….”
“네가 기다려마지 않던 정보를 가져왔으니, 고맙게 생각하라고. 내가 직접 움직여서 네놈들의 일을 대신 해준 거나 다름없으니까 말이야.”
오만하기 짝이 없는 서두와 함께 시작된 비밀조직의 실체는, 데이브와 그의 부하들을 경악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칠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