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6. Like five-stages of death 사랑이나 죽음이나 그게 그거야 (6)
“컥!”
볼썽사나운 소리의 출처는 자신의 입이었다. 아랫배를 강타하는 충격에 숨을 들이켰다. 쿨럭, 통증 섞인 기침과 함께 눈을 뜨자 머리 위에서 벼락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너 이 자식, 이젠 하다 하다 투신까지 하냐?!”
설마 ‘이 머저리 새끼가!’라는 것도 진짜로 이 남자가 외친 걸까.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 입버릇을 못 고쳐서 어쩌나 걱정했는데, 마지막이 아니라니 다행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다 큰 뱀파이어의 언어생활을 교정할 만큼 의욕적인 케일리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다행이었다.
“……에디?”
눈을 깜빡이며 잠시간 숨을 골랐고, 어떻게 왔냐, 언제 왔냐, 어쩌다 꼴이 그렇게 됐냐 등등의 질문을 넣어놓은 채 케일리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에드워드는 어디 하수도에서 진창 구르고 온 것처럼 멀쩡한 구석이 없었다. 다친 곳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뭘 뒤집어쓴 것처럼 지저분했다.
타르 공장에서 일하다 오기라도 한 걸까. 누가 더 더러워질 수 있는지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아 조금 쑥스러웠다. 아니, 사실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에드워드를 떠올렸던 게 착각이라는 사실이 좀 더 쑥스럽기는 했지만.
타이밍 좋게 제일 먼저 도착한 에드워드는, 새끼 익룡마냥 입을 벌리고 케일리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던 괴물보다 한발 앞서 뛰어올라 그를 낚아챘다. 그 과정이 다소 험악해 뱃속에 있던 장기에 다소 무리가 갔을 수도 있지만 잡아먹히는 것과 비교하면 내장도 이해해줄 거다.
케일리의 허리를 한 팔로 끌어안은 채 에드워드가 새장에 매달려 밑을 살폈다. 하나둘, 뒤에서 쫓아오던 이민국 요원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건의 원흉이자 지능지수가 플라나리아를 간신히 뛰어넘는 새끼 익룡의 납치범들도 어디서 신나게 얻어터진 몰골로 끌려오고 있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케일리가 불쑥 말했다.
“죽는 줄 알았어요.”
사실 이렇게 그의 팔에 안겨 있는데도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온몸에는 여전히 감각이 없었고, 고작해야 몇 마디 입을 놀리는 게 다였다.
어쩌면 정신을 잃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아직 깨어 있고 싶어서 뭐라도 말을 만들었다. 에드워드도, 자신도 무사히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누가 할 소리를!”
어이없다는 양 대번에 돌아온 대답에 케일리는 결국 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댄 채 웃을 수밖에 없었다. 팔을 벌려 그를 끌어안을 힘도 없었다. 하지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것만 끝내면, 일단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로, 이번에야말로 죽을 거라고 생각해서 마지막으로 에디한테 전할 말이 있었는데…….”
자신을 구하러 오지 말라거나, 아킨시나와 친구가 되는 건 어떠냐는 둥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무리 돌아봐도 미련 많은 삶이 아니었는데, 단 두 마디를 돌려주지 못한 게 아쉬웠을 뿐이다. 꼭 지금이 아니라도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도 하고 싶었다.
눈꺼풀이 내려가는 걸 힘줘 막으며 잠시간 말을 멈춘 케일리에 그의 무사를 확인한 에드워드가 선수를 쳤다.
“넌 말이다, 그 끈질긴 생명력이 장점이니까 그나마 있는 것까지 버리려고 하지 마. 너무 많은 건 바라지도 않으니까, 내가 도착할 때까지만 살아남으란 말이…….”
가물가물 잠인지 기절인지 모를 애매모호한 경계에서 케일리는 그리 낯설지 않은 핏빛 홍채와 시선이 부딪혔다. 에드워드의 것은 아니었다. 자신을 끌어안은 에드워드의 머리는 옆에 있었고, 그와 정면으로 시선을 부딪히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가만히 고개를 든 케일리가 자신을 끌어안은 에드워드를 있는 힘껏 밀어낸 것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생존본능보다도 한발 앞선 이성의 판단이었다.
“윽, 너 갑자기 이게 뭐 하는 짓……!”
“해치워!”
에드워드가 별안간 얻어맞은 것과 동시에 귀를 괴롭히는 쇳소리 섞인 외침이 올랐다.
그리고 정확히 같은 순간, 에드워드의 심장을 노리던 날개 달린 짐승과 마주한 채 케일리는 자신의 왼쪽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거기에는 피로 물든 작은 손목이 추수 감사절 터키의 커다란 포크처럼 꽂혀 있었다. 짐승이 눈을 깜빡였다. 케일리는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역시, 떨어지기 전 눈이 마주쳤다는 건 자신의 착각이 아니었다.
자신의 심장에 손가락을 박은 채 소리 없는 비명을 옹알이 하는 짐승을 향해 케일리가 손을 뻗었다. 더 이상 남은 힘이 없었지만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피가 말라붙지 않은 부위의 머리카락은 갓 태어난 짐승의 것처럼 보드라웠다. 꼭 아기 같았다.
“안녕, 꼬마야?”
울컥,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뜨거운 덩어리를 간신히 삼켜낸 케일리의 입가를 타고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뒤를 돌아보면 에드워드가 ‘이 머저리가, 또 미친 짓을 저질러?’ 하고 소리칠 것 같았다. 그런 상상을 하니 다소 마음이 편해졌다.
어차피 그는 줄곧 자신을 미친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마지막까지 그런 콘셉트를 고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마지막…… 오늘만 해도 몇 번째인지 모를 생각이었다. 어쩌면 이번에도 질리지 않고 살아남을지도.
그랬으면 좋겠다. 막상 그의 얼굴을 보고 안도 섞인 타박을 듣고 나니 별로 죽고 싶지가 않았다. 미련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에드워드와 함께, 살고 싶었다.
머릿속 한켠을 파고드는 욕심을 가만히 서랍에 넣어둔 채, 케일리는 가는 손목이 박힌 자신의 가슴께를 내려다보며 느리게, 그러나 정확하게 날개 달린 새끼를 향해 말했다.
“부탁이 있는데, 에디를 상처 입히지 말아줄래?”
뒤에서 “죽여버려! 둘 다, 갈기갈기 찢어버리라고!” 악에 받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잠시간 멈춰 있던 날개가 재생 버튼을 누른 것처럼 필사적으로 파닥였다. 케일리는 느리게 추락하는 스스로의 몸을 느끼며 그러고 보니 저 꼬마는 새장까지 날아오르는 것만으로도 썩 버거운 펭귄의 동류였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쿵.
등으로부터 떨어진 전신에 충격이 달렸다. 별로 아프지는 않았다. 심장을 쥔 팔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분수처럼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 광경을 남의 것처럼 무심히 바라보며 케일리는 마지막 힘을 다해 허공을 뒤졌다.
에드워드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별로 긴말도 아니었는데, 그것만 말하면 안 될까. 죽는 건 그 다음이야.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케일리의 시야에 에드워드가 들어왔다.
그는 처음 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저가 우는 줄도 모른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케일리?”
새장에서 내려온 에드워드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것처럼 황급히 바닥에 내려왔다. 어떻게든 피를 멈추기 위해 가슴을 압박하는 손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별로 효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픈 것보다는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는 게 힘들었다. 너무 힘들어서 그냥 눈을 감고 조금만 잘 테니까, 일어나서 다시 보자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그것도 어려웠다.
“케일리, 케일리! 이…… 이 멍청한……, 누가, 누가……!”
세상 그 어떤 멍청한 인간이 뱀파이어를 구하려 목숨을 건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힘없는 손가락이 툭, 뺨을 스쳤다. 축축하게 젖은 감촉에 ‘누가 구해달라고 부탁이라도 했어?’ 소리치려던 에드워드가 멍하니 제 얼굴을 쓸었다.
왜 이렇게 젖은 거지?
당황 섞인 시선이 그제야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살아 있다는 데 정신이 팔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원래도 창백한 케일리는 정말로 시체처럼 질려 있었다.
너덜해진 옷 사이로 드러난 피부는 온통 멍투성이였고, 몇 번인가 물어뜯은 흔적이 남은 입술이 엉망진창이었다. 에드워드는 투둑, 손등에 떨어진 물방울이 자신의 눈물이라는 걸 뒤늦게 알아챘다.
마지막으로 보는 게 우는 얼굴이라는 건 가슴 아픈 일이로구나.
눈살을 찌푸리며 그렇게 생각한 케일리는 더 늦기 전에 꼭 하고 싶었던 말을 위해 넘어오는 핏물을 가까스로 삼켰다. 긴말은 못하겠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에드워드라면 충분히 알아들을 테니까.
“나도……, 그래요.”
쿨럭, 창백한 입가에 피가 산란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은 더 이상 미동도 없었다. 여전히 온기가 남은 가슴께도 박동하지 않았다. 덜덜 떨리는 손을 한 에드워드가 축 늘어진 몸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짙은 감정의 잔재가 후각을 마비시킬 것처럼 폭력적인 기세로 파고들었다.
“케일리.”
같은 감정을 가지게 된 그가 더 이상 맛있는 음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우려가 어이없을 정도로, 지독하리만치 매혹적인 냄새였다.
◇ ◆ ◇
문득 고개를 든 에드워드는 붉게 물든 고통과 눈이 마주쳤다. 괴물의 손에는 으깨진 선홍빛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동족의 어린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눈이었다. 세로로 찢어진 동공은 케일리와 제 손을 번갈아 보며 혼란에 빠져 있었다.
등 뒤에서 쇳물 섞인 사나운 목소리가 짐승을 종용했다. 그것은 몇 번인가 에드워드를 향해 달려드는가 싶다가도, 제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에 찬 비명을 질러댔다.
평소 같았으면 값싼 동정 정도야 던져줬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게 죄책감을 가졌다기보다는 제 생명을 저울에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갓 태어난 순혈 뱀파이어도 비슷했다. 넘쳐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모든 걸 파괴한다. 이 경우, 힘을 주체하지 못한다기보다는 보다 강력한 힘을 앞에 두고 사술의 지배를 본능이 억제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 같았지만.
짐승과 짐승을 조종하려 드는 목소리를 에드워드는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지금은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머저리들을 처단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게 있었다.
“케일리.”
대답 없는 그의 이름을 가만히 읊조리며 에드워드는 케일리의 머리를 제 무릎에 뉘였다. 그리고선 허리춤의 나이프를 꺼낸 에드워드가 그걸 제 팔에 대고 그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어 내렸다.
피부 밑의 근육과 뼈가 훤히 드러나도록 칼질을 한 에드워드는 쏟아지는 피를 케일리의 입가에 밀어 넣었다. 가라앉은 눈꺼풀은 아무것도 삼킬 줄을 몰랐다.
조심스러운 손이 턱을 잡아들고 강제로 입을 벌렸다. 그 안으로 꿀렁이며 흘러나오는 피를 흘려보냈지만 제대로 넘어가는 건 한 모금도 없었다. 턱을 따라 핏물이 웅덩이를 만들었다.
툭, 투둑.
피웅덩이 위에 투명한 물방울이 떨어졌다.
“케일리, 부탁이니까 마셔줘.”
물기 어린 목소리가 속삭이듯 애원했다.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인간이든 짐승이든, 누군가를 권속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동의가 필요하다. 동의를 얻어낼 수 없다면 자신의 피로 전신을 채워 지배해야 했다. 어느 쪽이든 죽은 이를 상대로는 쓸 수 없는 방법이었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손은 그렇지 못했다. 눈도, 코도, 입도 제멋대로 움직였다. 줄줄 떨어지는 눈물이 그러했고, 좀 더 많은 양을 줘야 마실 수 있는 걸까, 돌아가지 않는 머리가 손을 들어 새로운 상처를 만들었다. 긴 시간은 아니었다. 미동 하나 없는 하얀 입가가 어느새 온통 피로 물들었다.
“그만둬, 에드워드.”
조심스럽게 날아온 목소리는 데이브의 것이었다. 현명하게도 그는 손을 뻗거나 너무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괴물의 둥지에서 몇 발짝인가 떨어진 거리에서 숨이 멎은 인간을 끌어안은 뱀파이어에게 그가 선고했다.
“죽었어, 그만 놔줘.”
콱!
빠르게 아물어가는 상처 위에 나이프가 꽂혔다. 그제야 케일리로부터 시선을 뗀 에드워드가 핏빛으로 변색된 서늘한 눈으로 데이브를 응시했다.
괴물의 것과 정확히 같은, 선홍빛 눈동자를 마주하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필드 책임자인 데이브에게는 자신의 작전에 참가한 요원을 통제할 의무가 있다. 그게 설사 머리끝까지 분노한 순혈 뱀파이어라고 해도, 임무를 방기할 수는 없었다.
꿀꺽, 데이브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진실을 말하는 게 이렇게 어려웠던 적이 있었던가. 눈앞의 존재가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생물이라는 걸 통감했다.
데이브가 말했다.
“아무리 너라도, 죽은 인간을 살려낼 수는 없어.”
뚝, 후드득.
희고 모양 좋은 뺨의 굴곡을 따라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투명한 물방울은 중력을 따라 썩은 하수도 바닥에 내리꽂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들 중 누구 하나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에드워드에게도 죽은 걸 살려내는 재주는 없었다. 순혈 뱀파이어가 아니라 그 할애비가 와도 해내지 못할 일이다.
멍청하게도 불사의 괴물을 살리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던진 멍청이에게 숨을 불어넣으려면 지옥으로 달려가 떨어진 영혼을 끌고 와도 불가능하다. 자신을 위해 심장을 바친 어리석은 인간을 위해서는 눈물조차 아까워야 했다. 그를 만나기 전의 자신이라면, 그래야 옳았다.
간이나, 폐나, 아니면 신장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최소한 자신이 그를 권속으로 만들 시간이 주어졌을 텐데.
하지만 심장이었다. 짐승이 파괴한 것은 기껏해야 주먹 두 개짜리 고깃덩어리였지만, 에드워드가 무엇보다도 잃고 싶지 않은 유일한 존재 그 자체였다.
하필이면.
심장을.
멍한 눈을 한 뱀파이어가 가만히 품 안의 몸뚱이에 손을 뻗었다. 한 팔에 아직 온기가 남은 인간을 소중히 끌어안은 채, 나머지 손이 날개 달린 가엾은 괴물의 뒷덜미를 움켜쥐었다.
그르렁 목을 울린 짐승이 숨을 죽이고 그의 눈치를 살폈다. 술사는 짐승에게 몇 번인가 명령을 내렸지만, 순혈 뱀파이어보다 더 강한 지배의 능력을 가진 종족은 손에 꼽힌다.
짐승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한 채 에드워드는 완전한 복종을 건네받았다.
“마셔.”
그가 겁에 질린 생물의 머리통을 제 상처 위에 처박으며 명령했다. 거기에 더 이상 애절함은 남아 있지 않았다. 차갑게 식은 목소리가 서릿발처럼 공간을 잠식했다. 위아래로 길게 찢어진 짐승의 동공이 가늘게 경련했다. 에드워드는 가만히 고개를 숙여 감정 없는 명령을 속삭였다.
“마셔, 그렇지 않으면 네 목을 따버릴 테니까.”
바들바들 떨던 작은 입이 피투성이가 된 에드워드의 팔뚝을 야무지게 파고들었다. 혈관을 통해 빠져나가는 피의 감각이 선연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드워드는 자신의 피를 새끼 괴물에게 퍼다 주는 동시에, 놈을 들어 올려 땅딸막한 목덜미에 콱 이를 박았다.
괴물이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입을 떼지는 않았다. 강한 힘에 지배당한 본능이, 그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는 걸 감지한 탓이었다.
괴물의 피가 입을 가득 채웠다. 괴물의 입안을 에드워드의 피가 채워갔다. 에드워드는 사정을 봐주지 않고 작은 몸에서 있는 대로 피를 빨아냈다. 괴물의 눈에서 서서히 초점이 사라져갔다. 그게 바로 에드워드의 목적이었다.
땡그란 눈동자가 형체 없는 지배에 완전히 잠식된 것을 확인한 후에야, 에드워드는 짐승의 목덜미에서 입을 뗐다. 그렇게, 에드워드는 도베르만 알렉스를 이은 자신의 두 번째 권속에게 명령했다.
“다 쓸어버려.”
자신의 팔뚝에 이를 박고 있던 짐승을 떼어낸 에드워드가 허리를 숙여 케일리를 안아 들었다. 지저분한 둥지에서 느린 걸음으로 내려오며, 그는 힐끔 뒤를 돌아봤고 눈이 부시도록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널 괴롭혔던 쓰레기들을, 전부 죽여버리는 거야.”
속삭이듯 흘러나온 그 목소리는, 흉포한 죽음의 전주곡이 되었다.
◇ ◆ ◇
후회는 언제나 대처하기에 너무 늦은 타이밍에 찾아온다.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후회하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후에 후회하는 게 나은 선택이었다. 적어도 에드워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후회하겠지.
머릿속을 스친 생각을 남자는 가만히 밀어냈다.
상관없어.
까짓 후회, 좀 하면 어때.
아무도 없는 하수도의 빈 구석에서 에드워드는 제 가슴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팠다. 심장을 생으로 뜯기는 것만 같이 지독한 고통이 전신을 지배했다. 눈앞이 핏빛으로 붉어졌고 당장이라도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자 본능이 내달렸다. 그래도 참았다. 그 모든 흉포한 감정을 억누르고, 에드워드는 평생 이어질 것처럼 느리게 케일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요정의 마법은 일종의 예언이다.
‘절대로 반하지 않을 인간’.
어쩌면 그 빌어먹을 이빨 요정의 조건마법은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예견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 자신에게는 이 방법밖에 없었고 고민하거나 지체할 시간도 없었다. 케일리 로체스터를 좋아한다는 건, 처음부터 죽을병에 걸린 시한부같이 선택지가 적은 일이었다.
처음에는 부정했고, 다음으로 혼란이 찾아왔다. 곧 자신의 감정에 타협했고 어떻게든 상대를 움직여보겠다는 생각은 깨끗하게 포기했다. 그리고 그냥 케일리 로체스터라는 인간 자체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완전히 수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목숨을 붙여놓아야 했다. 고작해야 남들 다 하는 사랑을 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이렇게까지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한다는 게 우습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더럽고 아니꼬웠다. 그런데도 포기할 수가 없다.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둘 수밖에.
“부탁이야, 케일리.”
고통으로 인해 엉망진창 망가진 입술이 희미하게 떨렸다.
“돌아와줘.”
붉게 물든 손 위에는 박동하는 목숨 하나가 얹혀 있었다.
◇ ◆ ◇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그 남자가, 그 멍청한 인간이 그런 짓을 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아마 자신이 아닌 누구라도 그러했을 테다. 케일리 로체니라는 인간을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타인을, 뱀파이어를 위해 몸을 던질 정도로 미련한 자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내가…… 내가 그런 말을 했기 때문에…….”
자괴감에 젖은 목소리가 무참히 허공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그 오만한 사내의 심장을 갈라, 마음을 파헤쳐, 자신을 대신해 비웃어주라는 유치한 간계였다.
말 그대로, 죽여도 죽지 않을 뱀파이어를 위해 제 심장을 바치는 머저리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있었다. 게다가 주저 없이 제 목숨을 던졌다.
시체를 안고 떠난 뒷모습에 이어 아비규환이 벌어졌다. 순식간에 두 배의 크기로 자라난 날개를 이용해 도망치는 이종을 잡아 찢는 모습은 라이칸인 아킨시나의 눈에도 처참한 광기로 비쳤다.
마치 제 숙주의 분노를 계승한 양 날뛰는 짐승의 모습을 인간들은 그저 망연히 방관했다. 짐승은 오로지 스스로를 사육했던 이종만을 골라 찢어발겼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말을 보탤 수 없는 슬픈 광경이었다.
이후, 심판의 날이라 불리게 될 뉴욕 보안국 역사상 최대의 살육은 바로 그런 전말이었다.
◇ ◆ ◇
선선한 봄바람이 커튼을 들썩였다.
아직 겨울 내를 벗지 못해 시린 공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문득 고개를 든 에드워드는 창을 닫는 게 좋을까 잠시간 고민했다. 보존이 잘된 붉은 커버의 고서는 1865년 발간된 루이스 캐럴의 소설 초판본이었다.
말장난의 천재로 불리는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에드워드에게는 제법 흥미로운 책이었으나, 고서에 그다지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장갑을 끼고 예각으로 펼쳐보는 등의 유난은 떨지 않았다.
출장 차 뉴욕에 들른 로저가 선물로 가지고 온 그 책의 낙찰가가 300만 달러에 호가한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도 에드워드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코웃음을 쳤을 터다.
소파의 팔걸이에 다리를 올린 채 잔뜩 늘어져 책을 읽던 에드워드는 문득 코끝을 아리게 하던 찬바람이 멈춘 것에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요령 좋게 창틀을 타고 올라가 걸레질을 하는 단풍잎 같은 손이 있었다.
청소는 사용인들의 일이라고 해봤자 들어먹지 않는 고집에 네가 고생하지, 내가 고생하냐 싶어 내버려둔 게 벌써 두 달이나 지속되었다. 빵이나 축내는 버러지보다야 뭐라도 하는 게 좋겠지만, 기껏해야 서너 살 먹은 어린애가 이곳저곳 걸레질을 하는 모습은 아무래도 남들 보기에 좋은 광경이 아니었다.
날개가 없어진 후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며 줄곧 끙끙대던 힐에게 던져준 옷은 등에 날개 비스무리한 쿠션이 달린 웃긴 디자인이었다. 정작 당사자는 그게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불평을 관두고 파닥이지도 못하는 쿠션 날개를 달고 총총 잘만 돌아다녔다.
진짜 날개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지만 어쨌든 잘 어울리기는 했다. 녀석에게 별달리 좋은 감정이 없는 에드워드마저도 가끔 그게 천사처럼 사랑스럽게 느껴질 만큼 힐은 예쁜 아이였다.
알렉스가 그러하듯, 에드워드는 두 번째 권속도 로저의 저택에 떠맡긴 상태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자신과 자신의 심장도 로저에게 위탁하고 있는 정도일까.
케일리의 가슴에서 남은 심장의 잔해를 꺼내고 자신의 것을 집어넣으면서, 에드워드는 많은 것을 예상했다. 그중에는 길길이 날뛰는 로저도 포함되었다. 하지만 만신창이가 된 그가 런던에 돌아왔을 때, 로저는 말없이 방을 내어줄 뿐이었다.
그 뒤로도 종종 케일리를-더 정확히는 에드워드의 심장을.- 확인하기 위해 드나들었지만 별다른 말은 없었다. 그는 아주 오래 산 뱀파이어였고, 자식의 행동이 얼마나 큰 결심을 필요로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는 몇 안 되는 이들 중 하나였다.
뱀파이어의 심장은 철의 심장이라고 불린다. 그중에서도 특히 순혈의 것은 끈질긴 생명력을 지녀 그걸 얻은 자들에게 근사치의 불로장생을 선물했다. 순혈 뱀파이어에게서 심장을 빼앗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종은 거의 없었고, 그만한 힘을 가진 이들은 이미 불로불사이니 그게 노려지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어찌됐건 그랬다.
그럼에도 뱀파이어의 심장은 죽은 것을 살려내지는 못한다. 그래서 에드워드는 케일리의 이미 죽은 부위를 모조리 도려내야 했다. 아직 생명이 붙어 있던 부위는 죽은 세포를 도려내는 고통에 몸부림쳤고, 죽어가던 세포를 재구성하는 끔찍한 순간을 고스란히 겪어야만 했다.
제 목을 조르고, 상처 입히고,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차라리 죽으려 드는 본능만 남은 육체를 끌어안으며 에드워드는 지옥을 보았다. 그것은 사랑하는 이의 고통을 대신해줄 수 없이 그저 끝이 찾아오기만을 하염없이 인내할 수밖에 없는 무간의 지옥이었다.
케일리의 뱃속에서 신장 하나를 꺼냈다. 간은 반절 이상을 도려냈다. 제일 먼저 죽은 폐는 갱생의 여지가 없었다. 이것저것 죽은 것들을 도려내다 보니 제 형체를 보존한 건 자신이 선물한 심장뿐이었다. 그래도 그는 살아남았다. 폐가 없어 더 이상 숨을 쉬지는 못했지만, 완전히 엉망이 된 속에 비해 그나마 겉가죽이 멀쩡해 보이니 그 점은 다행이었다.
케일리의 심장이 안정적으로 뛸 때까지, 에드워드는 자신의 피를 흘려보냈다. 뱀파이어의 피는 재생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살아남은 세포를 활성화시키고,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데 제격이었다.
그렇게 살려놨는데, 두 달이 넘도록 눈 한번 떠주지 않는 상대를 야속하게 느끼는 단계는 끝난 지 오래였다. 에드워드는 아주 오래 살 예정이었고 인내심으로 동족들 사이에서 희대의 독종이라 회자되는 끈질긴 종자이기도 했다.
팔랑.
한참이나 멈춰 있던 에드워드의 손이 다음 장을 넘겼다. 책 속에서 앨리스는 ‘나를 마셔!’라고 적힌 수상한 병을 입에 털어 넣던 참이다. 길 가다 아무거나 주워먹으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지 못한 게 분명한, 말도 못하게 멍청한 계집애다.
오늘따라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참이나 가정교육이 필요한 계집아이의 모험을 노려보던 에드워드가 결국 책에 처박았던 고개를 들고 뚝, 뚜둑, 목을 꺾었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 소파에 앉아 책만 읽었던 것 같기는 했다. 가끔 로저가 내미는 혈액 팩을 비우는 것 외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다 보니 시간의 흐름도 애매했다.
기왕 책을 덮은 김에 케일리나 닦아줄까.
별달리 생명활동도 하지 않는 육체였지만 가끔 손을 봐주는 게 좋을 거라고 에드워드는 생각했다.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라도 가만히 두면 먼지가 쌓이는 법이다. 게다가 케일리는 아무렇게나 내버려두는 장식품이 아니다.
생각이 난 김에 움직이라고, 에드워드는 짐짓 허리를 두드리며 소파에서 일어서 침대를 향했다.
저가 잠자는 숲 속의 미녀도 아니면서,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릴 줄을 모르는 단정한 얼굴이 있다. 에드워드가 침대 위의 쿠션을 끌어 모아 그의 등 아래에 쑤셔 넣었다. 축 늘어진 몸을 기대 앉히고 따듯한 물과 타월을 가지러 돌아선 순간이었다.
“……!”
자그마한 움직임이었다. 뱀파이어가 아니었더라면 알아채지 못했을 정도로, 희미한 소리였다.
생각보다도 먼저 몸이 움직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인형처럼 늘어져 있던 케일리를 향해 돌아선 에드워드는 자신의 감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바로 어젯밤 잠에 들었다 깬 것처럼, 느리게, 슬로 모션으로 돌린 세상에 사는 것처럼 느리게, 그가 눈을 떴다.
반투명한 선홍빛 눈동자와 바다를 담은 양 파란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잠시간 말이 없던 두 사람 중 먼저 입을 연 것은 케일리였다.
“나, 뱀파이어가 된 건가요?”
낮게 잠긴 목소리가 시간의 흐름을 방증했다. 꽤 오랫동안 목을 쓰지 않았던 것처럼 목이 껄끄러웠다. 그런 케일리를 향해 에드워드가 협탁에 놓인 물잔을 건넸다. 아직 온기가 남은 미지근한 물을 몇 모금인가 삼키자 한결 편해졌다.
“아니, 넌 뱀파이어가 된 게 아니야.”
그의 손에서 잔을 돌려받은 에드워드가 그렇게 말했다. 평정을 가장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고 표정이 사라진 서늘한 눈매가 가늘게 경련했다.
“아직 인간이에요?”
“그것도 아니.”
“그럼 지금의 난 뭐죠?”
로봇처럼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케일리를 향해 에드워드가 입을 꾹 다물었다. 케일리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의 이기심이 그에게 던진 고통의 순간을, 만약 기억하고 있다면 이렇게 대할 수는 없었다.
다행이다. 일순 지독한 안도가 에드워드를 스쳤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었다. 그는 잠시간 고민에 빠졌다.
그에게 진실을 말하면, 뭐라고 할까. 네 심장 같은 건 필요 없으니 돌려주겠다고 할까. 그렇게 큰 건 받을 수 없으니 사양을 할까.
어느 쪽이든 들어줄 수 없는 청이다. 그래도 케일리를 속일 수는 없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자신의 심장을 얻은 덕분에 가슴 안에 박동하는 거짓말 탐지기를 가진 꼴이 되었다. 에드워드는 결국 진실을 토로했다.
“내 심장.”
이미 한번 죽었던 케일리는 자신의 심장에 기생한 채 생명을 받아 가는 존재였다. 그걸 뭐라고 정의할 수 있는지는 에드워드도 몰랐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런 존재는 없었고, 앞으로도 생길 것 같지 않았다.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케일리가 가만히 고개를 기울였다. 에드워드는 장난을 치거나 무언가를 빗대어 표현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케일리가 질문을 바꿨다.
“난, 그때 죽은 건가요?”
“맞아.”
“그런데 지금은 살아 있어요. 어떻게 된 거예요?”
“넌 내 심장을 이식받았고, 지금은 그걸로 살아 움직이고 있는 거야.”
사실상 케일리에게 한 것은 심장 이식(Heart Transplant)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심장과 남아 있던 고깃덩어리를 교환한(Heart Trans Meat)것에 가까웠다.
케일리야 원래부터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Heartless) 인간이었으니, 자신의 심장으로 결핍을 채웠다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이식수술이었다. 자신의 심장에 기생하면 그는 혈관에 붉은 피가 흐르는 인간 비슷한 생물로 살아갈 수 있었다. 그건 케일리를 인간으로도, 뱀파이어로도 만들어주지 않겠지만 살아 있게 해준다. 그거면 충분했다.
그는 현재 살아 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였기 때문에 자신의 심장을 다시 빼내지 않는 이상 마음대로 죽을 방법도 없다. 즉, 지금의 케일리는 실질적으로 불사의 몸이나 다름없었다.
대신 뱀파이어의 심장에 기생하는 무언가가 되었으니 본체인 자신에게 어디서 뭘 하든 추적당할 수밖에 없는 생물학적 연결을 지니게 되었고 어떤 면에서는 궁극의 스토킹이나 다름없지만 그런 것쯤은 목숨을 맞바꿨다고 생각하면 아무렇지 않을 터다.
세세한 부분을 생략한 에드워드가 간단히 설명했다.
“이미 죽은 부분은 전부 도려냈어. 살아 있는 나머지는 내 심장으로 살고 있지.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시체인 너는 전부 사라진 거야. 지금 남은 건 살아남은 부분이고, 그걸 살아 있게 만드는 게 내 심장.”
한 박자 느리게 의문 섞인 표정을 한 케일리가 가만히 고개를 기울였다.
“심장이라는 게 수사적인 비유인지 아니면 진짜 장기를 말하는 건지 좀 헷갈려요.”
침대 맡에 걸터앉아 케일리와 눈높이를 맞춘 에드워드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진짜 심장 쪽.”
“그게 없어도 에디는 살 수 있는 거예요?”
“보다시피.”
순혈만이 가지는 고유의 능력을 잃어버렸지만, 그래도 사는 데 지장은 없다. 더 이상 감정을 맡지 않게 되었으니 식생활을 개선할 필요가 없어져 어쩌면 좋은 일일 수도 있다. 그래도 다른 이의 피를 마시고 싶지 않다는 기분의 문제가 남아 있지만 그게 전부였다.
뱀파이어가 언데드로 분류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어차피 뱃속에 넣고 다니던 장기는 대체로 장식품이다. 그중에서 심장은 다른 이들에게 불로불사를 선물하는 보물이었으나, 뱀파이어에게 있어서는 그저 옵션으로 능력 하나를 추가해주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한테나 불쑥 넘겨줄 만한 것도 아니었고, 그런 미친 짓을 하는 순혈은 길고긴 역사를 뒤져도 전무후무하겠지만 그건 에드워드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는 케일리를 향해 그가 손을 뻗었다. 아무렇게나 툭툭 뱉는 대답과는 달리, 느리고, 조심스럽고, 만지면 사라지는 허상을 대하듯 어딘지 겁에 질린 손길이었다.
뼈가 도드라진 마른 손가락이 하얀 뺨에 닿았다. 케일리는 그 손에 가만히 고개를 기울이며 꿈을 꾸듯 나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뱀파이어의 심장을 가진 인간이라…… 낭만적이네요.”
에드워드의 입매가 가늘게 경련했다. 손바닥에 닿는 뺨의 감촉이 뿌듯하게 전해졌다. 따듯했고, 보드라웠고, 그리고…….
“맞아. 죽음보다는 삶이 훨씬 낭만적이지.”
그리고, 행복했다.
“그럼 난 앞으로 뭐라고 자기소개를 해야 할까요? 뱀파이어 인간? 하프 뱀파이어? 하프 인간?”
눈을 가늘게 뜨고 에드워드의 손바닥에 뺨을 기댄 채 케일리가 말했다. 장난처럼 들리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진지한 고민처럼 들리기도 하는 그의 물음에 에드워드는 제 손에 담긴 뺨을 단번에 끌어당겼다.
“포유류 뱀파이어목 영장과 케일리종이라고 해둬.”
어차피 너 같은 게 또 생기지는 않을 테니까, 너 다 해먹어도 돼.
그렇게 속삭이는 에드워드의 목소리에 어딘지 물기가 서려 있었다. 별안간 끌어당겨져, 에드워드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케일리가 머리 위로 떨어지는 뜨끈한 감촉에 팔을 들어 그의 등을 끌어안았다. 간간이 들썩이는 넓은 등을 가만히 쓸어내리며 케일리가 나지막한 목소리를 던졌다.
“에디, 울어요?”
킁, 콧물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렇군요. 아마 꽃가루 알레르기가 생겼나 봐요. 벌써 봄이 왔어요?”
“아직 겨울이거든. 그리고 뱀파이어가 무슨 알레르기야.”
“그럼 우는 거네요.”
“배고파서 그런 거야. 원래 뱀파이어는 배고프면 울어. 배고프면 슬프니까.”
“그렇구나, 난 뱀파이어가 아니라서 몰랐어요. 나 기다리느라 그랬어요? 내 피 마실래요?”
“됐어. 피도 모자라는 게 일어나자마자 무슨 헛소리야.”
그 와중에도 타박을 잊지 않는 에드워드에, 정말로 현실에 돌아온 것만 같아 케일리는 어깨를 흔들며 가늘게 웃었다. 그간의 불안을 대변하듯, 강한 힘으로 자신을 끌어안는 에드워드의 품에서 잠시간 말이 없던 케일리가 고개를 들었다.
선선히 그를 놓아준 에드워드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엉망이었다. 그런 주제에 쓸데없이 예쁜 눈가로 손을 가져간 케일리가 아프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젖은 눈매를 쓸었다.
“미안해요.”
속삭이듯 새어나온 그 말에, 에드워드는 한숨 같은 숨을 내뱉었다.
“멋대로 죽어서, 정말로 미안해요.”
젖은 뺨에 메마른 입술이 내려왔다. 에드워드의 뺨에 키스한 케일리는 그렇게 잠시간 입술을 붙인 채 양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싸 쥔 채였다.
“괜찮아. 너 같은 걸 좋아하면서 그 정도 각오도 안 한 내가 멍청했던 것뿐이니까.”
이마를 맞댄 채 한 치의 농담이 섞이지 않은 그 말을 들으며, 케일리는 다소 복잡한 심경을 느껴야만 했다.
“그게 그렇게 되나요?”
“그래. 난 앞으로 내 마음대로 널 좋아할 테니까, 넌 자유롭게 마음 가는 대로 살아.”
이젠 죽고 싶어도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어졌으니 해볼 테면 해보라고 으름장을 놓는 에드워드에 케일리가 할 말을 잃었다. 그건 네 좆대로 해보라는 막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내가 허락할게. 그건 내 심장이잖아. 그러니까 나한테 그 정도 자격은 있어. 그리고 이건, 네가 어디서 무슨 짓을 저지르든, 속속들이 꿰뚫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야. 게다가 이젠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지. 넌 인생 완전히 저당 잡힌 거라고.”
어딘지 사악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에드워드가 대단히 행복해 보였기 때문에, 케일리는 자신에게 자유를 하사하기로 한 심장 주인의 입술 위로 말없이 제 것을 가져가 눌렀다.
자연스럽게 열린 입술 사이로 혀가 얽혔다. 아무렇게나 꺼내는 말과는, 달리 따듯하고 부드러운 살덩이가 고개를 틀고 입안을 가로질러 더 이상 틈이 없을 만큼 깊게 파고들었다.
세상 그 어떤 스토킹 선언이 이렇게 사랑스러울까.
자신에게 진짜 자유를 준 남자를 마주한 채, 케일리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에드워드의 눈물 맛이 나는 키스는 혀가 녹아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들 정도로 달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