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35/41)

#Outro

“벌써 두 달이 지났어요?”

드물게 놀란 얼굴을 한 케일리가 그렇게 물었다. 한번 죽었다 살아난 것보다도 두 달이 지났다는 사실에 더 놀라는 케일리를 마주한 채 에드워드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게 바뀌었는지 알게 된다면 더 놀란 얼굴을 할까, 아니면 지금까지처럼 겨울 뒤에 봄이 찾아오듯 자연스레 받아들일까.

잘 모르겠다.

잠시간 상념에 잠겨 있던 에드워드의 뒤에서 막 창문 청소를 끝낸 힐이 콩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힐끔, 재회의 감격에 젖어 있는 에드워드의 등짝을 눈치 보듯 살핀 그가 데구루루 눈동자를 굴렸다.

분위기를 깨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문밖으로 나가려면 침대를 지나쳐야 했다. 넓은 방이라고는 해도 통통 걸어가는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둔감한 이는 이 방에 없었다.

창틀 밑에 선 땅딸막한 힐의 존재를 그제야 알아챈 케일리가 에드워드의 어깨 너머로 그를 쳐다봤다. 케일리의 시선을 느낀 힐이 제 몸통만 한 걸레를 쥔 손을 수줍게 등 뒤로 숨겼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케일리는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에디, 요즘 아동학대 해요?”

불쑥 튀어나온 그 물음을 에드워드는 일순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분위기에서 뜬금없이 아동학대가 왜 튀어나온단 말인가.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하도 오래 자서 아직도 꿈속에 있는 줄 아는 건가. 어이가 없어 인상을 찌푸리는 에드워드를 향해 케일리가 진지한 표정으로 에드워드의 뒤를 가리켰다.

“아기가 걸레를 숨겼는데요.”

어딜 봐도 산업혁명 때 자행되던 아동인권 침해를 연상시키는 불법노동현장이었다. 명색이 정부에서 일한다는 남자가 제집에서 당당히 아동학대를 자행하다니. 규칙의 허점은 파고들어도, 규칙 자체는 곧잘 지키는 케일리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무엇보다도 케일리를 충격에 빠트린 건, 아기가 내려온 창문이 창틀만 존재하는 것 같은 착시를 줄 만큼 깨끗하다는 점이었다. 의심 섞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케일리에 반사적으로 코웃음을 친 에드워드가 대답했다.

“걱정 마, 아동 보호국은 인간만 보호하니까.”

힐은 인간이 아니니 노동착취를 하든 말든 상관없었다. 게다가 그가 걸레질을 하는 건 본인이 자청한 거지, 에드워드의 명령도 아니었다.

픽 웃으며 날아온 그 대답에 케일리의 표정이 한층 묘해졌다. 힐을 한번, 에드워드를 한번, 그걸 두 번이나 더 반복한 후에야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케일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에디, 설마 나 모르는 사이에 애 낳았어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곳에서 공격을 넣는 케일리에게는 더 이상 놀랄 기력도 없었다. 에드워드는 잠시간 입을 다물었다가, 등 뒤의 힐을 힐끔 쳐다보았다. 대체 저 땅딸막한 놈과 자신의 어디가 닮았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기준으로 수컷은 애를 낳을 수 없다.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케일리를 향해 에드워드가 뭐라고 대답해줘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하는 사이, 그 낌새를 눈치챈 케일리가 선수를 쳤다.

“인간이 아니라고 했으니 뱀파이어인가 했어요. 게다가 에디랑 똑같은 금발이잖아요. 눈 색깔도 뱀파이어처럼 붉고.”

얼핏 그럴듯하지만 다리가 넷에 몸통이 하나이니 책상과 개가 같은 종족이라는 것만큼이나 어이없는 논리다. 재회의 기쁨도 잠시, 곧 뱀파이어에게 두통을 불러오는 대단한 케일리 바이러스에 이마를 짚은 에드워드가 심호흡을 했다.

처음으로 사랑이 어떤 감정인지 알려준 상대가 그것만으로는 모든 장벽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는 새로운 진리까지 몸소 가르쳐주는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내가 애를 어떻게 낳을 것 같아? 세포분열? 무성생식?”

비교적 온화하게 접근한 에드워드를 향해 케일리가 대답했다.

“저는 자기복제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요.”

“대체 왜?”

“로저랑 같이 서 있으면 같은 틀에 대고 찍어낸 것처럼 닮아서요.”

뭐라고 반박할 수 없는 진실인 데다, 자신에게는 엄청난 데미지를 주는 공격인 동시에 로저가 들었으면 탭댄스를 출 최고의 칭찬이기도 했다.

“너 정말로 저게 뭔지 기억이 안 나? 하기야, 그때보다 훨씬 멀끔해지기는 했다만…… 아무리 그래도 본인이 어쩌다 죽었는지 정도는 기억해야 하는 거 아니냐?”

듬성듬성 이어진 마지막 기억을 되짚어보던 케일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누군가 머리를 밟고 올라선 것처럼 아팠다. 관자놀이를 지압하며 물끄러미 아이를 쳐다봤지만 별로 떠오르는 얼굴이 없었다. 확실히 에디와 닮은 데다 어딘지 비슷한 분위기도 풍기는 아이다. 무슨 관계일까. 잠시간 고민하던 케일리가 결국 두 손을 들었다.

“아는 사람 중에 저 연령대가 없어요. 아기들은 다 비슷하게 생겼으니까 기억을 못하는 것뿐일 가능성도 있기는 하지만……. 그건 그렇고, 결국 저애는 어느 가엾은 이종의 아기이기에 저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노동력을 착취당하게 된 건가요?”

어딘지 착취의 주체를 타박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마도 기분 탓이겠지. 에드워드로서는 그가 정말로 기억을 못하는 건지, 아니면 그저 날개가 사라지고 말라붙은 피나 지저분한 구정물 같은 게 지워져 멀끔해진 탓에 알아보지를 못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별달리 숨길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오동통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힐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에드워드가 말했다.

“진짜 기억 안 나나 보네. 걔잖아, 너 죽인 못돼먹은 꼬마.”

에드워드의 말이 곱게 나가지 않는 건 당연했다. 그는 여전히 힐을 좋아하지 않았고, 힐 또한 그 사실을 알았다. 그래도 은인 취급을 받기는 했으나 에드워드에게는 별달리 기쁜 일도 아니다. 그라고 해서 힐을 구하려는 의도로 움직인 건 아니었다. 오히려 놈들과 같이 그 상황에서 가장 쓸 만한 도구로 이용한 것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힐은 자유를 준 에드워드에게 고마워했다. 그의 날개를 빼앗은 것도, 그를 권속으로, 뱀파이어로 만든 것도 에드워드였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대가를 내놓아야 했다. 힐은 날개를 빼앗긴 것이 자유의 대가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미 지상에서 태어난 탓에 지옥에도 천국에도 돌아갈 수 없는 그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뱀파이어가 되는 게 나았다. 자력으로 살아가기 위한 최상의 조건을 지닌 생물이니 말이다.

에드워드의 대답에 답지 않게 놀란 얼굴을 한 케일리가 물끄러미 힐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죽였다고는 해도, 실상은 에드워드를 공격하려 온 힘을 다해 겨우 날아오른 핏빛 손에 자신의 몸을 가져다 바친 것에 가까웠다.

아마 저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잘 날지도 못하는데 힘겹게 거기까지 올라갔더니 목표물을 대신해 웬 인간이 끼어든 것이었을 테다.

인간이었던 때처럼 머릿속 한켠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졌었지, 냉철한 분석이 지나갔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목숨 하나를 버리고 에드워드의 심장까지 희생하게 된 것까지 전부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머릿속의 계산기와 자신의 감정이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런 생각-혹은 감정.-이 느껴진다는 사실 자체에 케일리는 조금 당황했다. 지금껏 깊게 생각할 필요 없이 한 발짝 떨어져 관망하듯 살아오는 게 당연했다.

그게 당연한 삶이었는데, 어째서인지 힐과의 과거를 지금까지처럼 그런 일이었다고 넘길 수가 없었다. 머릿속을 누군가 자근자근 짓밟는 듯한 기분 나쁜 두통이 찾아왔다.

그 속을 단편적인 기억들이 아무렇게나 헤집었다. 짐승 같은 눈동자, 있는 힘껏 파고든 작은 손, 심장을 옥죄는 끔찍한 통증과 마지막에 목격한 에드워드의 붉게 물든……, 가슴 아픈 시선까지. 그 모든 게 불시에 되살아났다.

한번 죽었다 깨어났더니, 살아 숨 쉰다는 감각이 도리어 생생해졌다. 그렇게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저도 모르게 힐을 외면하듯 고개를 피한 케일리가 에드워드를 향해 물었다.

“그때의 ‘새’를 말하는 건가요?”

그가 자신을 피한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힐이 고개를 푹 숙였다. 더 이상 날개를 달지 않은 등에 둔한 통증이 달렸다.

날개를 생으로 뜯어낸 때의 고통은 끔직했다. 가끔 그날의 꿈을 꾸기도 했지만 악몽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고통에 가득 찬 해방의 감각을 몇 번이고 재생하는 것처럼 기묘한 꿈이었다.

“새가 아니라 신이야. 신이‘었’지.”

에드워드가 그렇게 말했다. 그의 입에서 아무렇지 않게 튀어나온 짧은 단어에 케일리가 잠시간 침묵했다. 뭔가 대단히 어울리지 않는 말을 들은 것 같았는데, 어떻게 잘못 듣기도 어려운 발음이었다.

“이름이…… 신이라는 뜻은 아니죠?”

결국 그렇게 되묻는 케일리를 향해 에드워드가 황당한 얼굴을 했다.

“이름이 신이면 그런 이름을 붙인 부모는 반성하라고 한 15년 감방에 처넣어야지. 애한테 무슨 원한이 있기에 그런 이름을 붙여? 학창시절 내내 괴롭힘만 당하다 사회에 나가서도 존재 자체가 신성모독이라고 쫓겨 살아야 할 것처럼 재수 없잖아. 쟤 이름은 힐이야. 힐레이.”

물론 그의 말에는 케일리도 동의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신이 이름이 아니라 진짜 종의 분류를 뜻한다는 게 훨씬 황당한 일이라는 걸 동의해줄 만한 정상인이 이 안에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인이라기보다는 인간이 없다는 것에 가깝겠지만, 어찌됐건.

“신이 어쩌다가 뱀파이어에게 착취를 당하게 된 걸까요?”

이번에야말로 침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정확하게 묘사한 케일리에게 에드워드가 대답했다.

“과거형이잖아. 지금은 뱀파이어니까 그럴 수도 있지.”

정확히는, 내 권속인 뱀파이어.

덧붙인 말에 케일리는 조금 감탄했다. 순혈 뱀파이어의 권속은 뱀파이어가 된다는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신을 가지고도 그렇게 할 수 있다니 아무래도 상상 밖의 일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신이라는 명사가 다양하게 쓰이는 게 아니라면, 신이 의외로 그렇게 위대하고 전능한 존재가 아닌 것 같다.

“뱀파이어들은 좀 더 신에 대한 존중이라는 걸 기억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대목이네요.”

“존중은 무슨 얼어 죽을.”

“음, 그건 그래요. 무신론이나 불가지론도 하나의 선택이기는 하죠.”

어딘지 자신의 눈치를 보는 것만 같은 과거 신이었던 현재의 아기 뱀파이어에게도 사연은 있을 터다. 하지만 그 사연이 무엇이든 지금 당장 듣고 싶지는 않다는 게 케일리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침대 맡에서 우물쭈물 걸레를 조물락거리는 힐을 무시한 채 케일리는 에드워드를 향해 물음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아킨시나 씨 어떻게 됐나요? 잘 도망갔어요?”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름에 에드워드는 대번에 심기 불편한 얼굴을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케일리의 입장에서는 마지막까지 자신을 도와주려 한 나름대로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는 라이칸이었고 자신을 버리고 혼자 도망쳤으면 그나마 승산이 있었을 텐데 감옥에서 탈출할 때부터 그래도 꼬박꼬박 기다려주다 함께 새장에 갇혔었지.

머리가 나쁜 건지 라이칸이 좋은 건지 애매한 남자였다. 에드워드를 향한 복수를 꿈꾸지만 않았더라면 좀 더 나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안타깝기도 했다. 자신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주려는 생각도 없는 것처럼 보이기야 했다만.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는 미끼가 되어 떨어지는 자신을 향해 안타깝게 손을 내밀어주었다. 에드워드에게 전해달라고 했던 말도 때맞춰 구조가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든 전해줬을 것 같았다. 에드워드를 싫어하는 것과 자신의 마지막 말을 전달하는 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할 것 같은 남자였으니까.

그때에는 유리 아킨시나가 그저 조금 머리가 나쁘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삐뚤어진 어린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크게 틀린 것도 아닐 테지.

거기까지 되짚은 케일리는 문득 자신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까 에디, 뱀파이어는 심장이 약점이었던 거 아닌가요?”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그게 약점이면 약점을 너한테 떼어주고 어떻게 살아 있겠어?”

“분명 아킨시나 씨가……. 아니에요, 무사하면 된 거죠.”

이걸로 두 번째였다. 신, 그러니까 에드워드의 권속이 되었다는 아기 힐을 바라볼 때와 비슷한 감각이 밀물처럼 꾸역꾸역 밀려들어왔다.

아킨시나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고 결국 이 모든 사달이 그걸 철석같이 믿은 자신의 멍청한 짓에서 벌어졌다는 걸 깨닫자 기분이 가라앉았다.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 하나는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그렇게 쉽게 넘길 수가 없었다.

만약 아킨시나와 다시 만난다면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던 것처럼 무심하게 그의 거짓말을 용서해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별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기는 했지만.

역시 한번 죽었다 깨어난다는 게 전과 완전히 같을 수만은 없는 모양이었다. 스스로의 제어 바깥에서 움직이는 감정에 대한 곤혹스러움을 갈무리하는 케일리를 향해 에드워드가 악동처럼 씩 웃어 보였다.

“사실, 굳이 따지면 무사하다는 말은 별로 안 어울리는 상황이긴 해. 비빌 구석이 없어져서 야반도주를 했으니까.”

야반도주.

그것 참 유리 아킨시나와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음, 그……, 어디로요?”

“여기로. 무기한 휴직에 들어간 널 대신해 필드에서 뛰고 있지.”

“아, 전 휴직 중이었군요. 해고당한 게 아니라 다행이에요. 그건 그렇고 필드에서 뛴다니……. ‘그’ 유리 아킨시나 씨가요?”

그렇게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케일리가 보기에 아킨시나는 결코 필드에서 뛸 만한 성격이 아니었다.

자신과 비교해도 전투센스나 실력이 떨어지는데 어쩌다가 그런 꼴이 된 걸까. 차라리 모델을 계속 하는 게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패션업계를 위해서도 올바른 방향일 거라고 케일리는 생각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러시안 라이칸의 왕자님이라니 갈 곳은 많았을 텐데 어쩌다 이민국으로 흘러들어온 걸까.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러시안 라이칸은 특히 스코틀랜드의 라이칸과 사이가 안 좋지. 영국의 라이칸은 대부분이 스코틀랜드에 있는데, 그들은 영국 이민국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거의 한 세기를 이어온 협력관계라고 보면 돼.”

다소 황당함이 섞인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케일리를 향해 에드워드가 뜬금없는 라이칸의 정치적 상황을 꺼내들었다. 라시안 라이칸이라는 건 아킨시나의 부친이 이끄는 무리를 말하는 것일 테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라이칸은 연수원에서 만났던 새끼 라이칸들의 무리다.

그 둘의 사이가 나쁘다는 게 아킨시나가 필드요원으로 이직한 것과 무슨 관계일까? 좀처럼 맥락을 잡을 수 없는 이야기에 아리송한 표정을 하는 케일리를 향해 에드워드가 이어서 말했다.

“눈엣가시 같은 러시안 라이칸 수장 놈의 뒤통수를 거나하게 치고 온 그 집 반항아는 이쪽 입장에서는 아주 먹음직스러운 아군이라 그 말이지.”

“아킨시나 씨가 직접 배신하기로 결정한 건가요?”

“그거야 본인밖에 모를 일 아니겠어? 처음부터 그 질척한 레이디피쉬랑 야반도주를 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고. 그쪽 사정을 내가 일일이 꿰고 있을 리가 없잖아.”

질척한 레이디피쉬는 에드워드와 사라졌던 세이렌을 뜻하는 것 같았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아킨시나와 러시안 라이칸도 그랬지만, 세이렌과의 사이에도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에드워드의 불친절한 설명으로는 예상하기가 어려웠다. 어쨌든 결론적으로는 아킨시나와 세이렌은 사이좋게 배신자가 됐다는 뜻인 것 같았다.

딱하기도 하지. 나름대로 라이칸의 세계에서는 왕자님 취급을 받으며 귀하게 살았을 텐데.

이래서 사람이고 이종이고 카르마를 조심해야 하는 거다. 비단 고대 인도인뿐만 아니라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 데에는 원인이 되는 행동이 있다는 점에서 맞아떨어지지 않는 때가 없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그 원인이 에드워드일 것 같지는 않았으니 결국 뿌린 대로 거둔 꼴이었다.

“게다가 놈은 나한테 팔뚝 하나로는 갚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빚도 있었지. 개인적으로 받아내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그러려면 놈은 목숨이 하나라도 부족할 테니까, 살아 있는 내내 괴롭히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 마음에 안 드는 걸 죄다 죽이고 다니는 것보다 살려두고 고문하는 편이 훨씬 즐겁거든.”

오래 사는 종족다운 지론에 케일리는 조금 감탄했다.

확실히 끝도 없이 괴롭힐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다양한 종교에서 묘사하는 지옥과 비슷한 곳일 테니 살려두는 게 훨씬 효율적인 데다 기분도 풀릴 것 같았다. 물론 그걸 진짜 실행할 수 있는 수명과 능력이 필요하겠지만. 뿐만 아니라 케일리는 어쩐지 에드워드가 말하는 빚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사실 에드워드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도 좀 이상했는데, 마지막에 그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던 말을 아킨시나가 모른 척 입 다물고 넘길 라이칸은 아니었다. 결국 제 입으로 일의 전말을 전부 털어놓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다면 가문을 배신하고 하필이면 영국의 이민국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래서, 계속 고문하려고요?”

“그건 앞으로 생각해보고 정해야지. 일단 노예계약서에 사인하게 만들었으니까 두고 볼 시간은 넘치기도 하고.”

“그것뿐?”

“흠씬 두들겨 패주기도 했어.”

“생각보다는 온건한 복수네요.”

“맞아, 난 이종계의 노벨 평화상을 받아야 할 지경이라고.”

퍽 진심 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리는 에드워드에 케일리가 결국 바람 빠진 웃음을 터트렸다. 죽었다 살아났다는 감각은 거의 없었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조금 긴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상쾌하기까지 했다.

지금까지처럼 생각하려다가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감정을 느끼는 것만이 달라진 점이었다. 그건 아무렇지 않게 넘겨도 되는 일일까?

생각에 잠긴 케일리를 잠시간 물끄러미 쳐다보는가 싶더니, 에드워드가 말했다.

“움직일 만하면 너희 가족들한테 연락이나 한 통 넣어둬. 로저가 네 가족들한테 들들 볶이는 바람에 요즘은 로체스터 비슷한 말만 들어도 경기를 하거든.”

그걸 지켜보는 게 재밌는 건 둘째치고, 가끔 침실에 들어오지도 않고 문 앞에서 음울한 표정으로 훔쳐보다 가는 게 무슨 일을 벌여도 벌일 것 같다며 진지하게 속삭이는 에드워드에는 케일리 또한 동의했다.

로저는 오래 산 뱀파이어보다는 오래 산 노망난 늙은이 같은 성격이다. 너무 오래 살면 애나 어른이나 비슷해진다는 쪽에서 참으로 그 말이 들어맞는 녀석이었다.

“그러고 보니 두 달이라고 했나요? 다들 걱정하고 있겠네요.”

“인간들의 입장에서 보면 짧은 시간은 아니니까.”

게다가 그쪽에서 위성전화조차 터지지 않는 오지로 의료지원사업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언제까지 믿어줄지 장담할 수 없거든.

여상하게 덧붙이는 에드워드의 말에 케일리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안부전화니 하는 걸 주고받는 성격도 아니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저택을 떠났던 적도 없었다. 가족들이 수상하게 생각할 법도 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제대로 된 직업을 가졌다는 것조차 수상하게 생각하고 있었을 테니까 더더욱 그렇겠지.

“에디, 나 좀 이상해진 것 같아요.”

느리게 창밖을 향해 시선을 던진 케일리가 그렇게 말한 건 자신이 자각한 변화가 에드워드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할 것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닿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유일하게 자신의 피를 마실 수 있었던 이유가 사라진 것만 같았다.

호르몬 이상이 온 갑상선 질환 환자의 기분이 이런 걸까.

스스로의 의지와 관계없이 움직이는 감정의 변화를 완전히 지각한 케일리의 밤색 눈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자신의 심장을 대신해 에드워드의 심장을 가지게 된 대가가 이런 것일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황당하기가 짝이 없는 일이다.

지금껏 사람 같지 않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자신이, 집사에 의해 공감능력장애를 의심받아 병원까지 속아 갔던 자신이, 뱀파이어의 심장 하나로 인간적인 감정에 지배당하게 되다니.

하지만 지금껏 무던했던 모든 것이 생생하게만 느껴지는 이 감각을 다른 방법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에드워드를 향해 곧장 스스로의 상태를 토로하려 한 것은 케일리의 입장에서는 뼈아픈 선택이었다. 그래도 어차피 들키게 될 거라면 차라리 자신의 입으로 실토하는 게 상처가 덜하리라는 꼼수에 불과했다. 그래도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과거의 자신이었다면 ‘그렇구나, 어차피 이렇게 된 건 어쩔 수 없지.’ 하고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못했다. 이대로 숨겼다가 에드워드에 의해 쐐기를 박히게 된다면 어쩐지 대단히 상처를 받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결국에는 별로 달갑지 않은 감정까지 잔뜩 선물받아놓고서도, 이기적이기 짝이 없게 자신의 상처만 생각한다는 점이 너무나도 인간다워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거기서 더 이상해질 수가 있다고?”

잠시간 말이 없던 에드워드가 그렇게 물었다. 약간의 황당함과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타박이 섞인 목소리였다.

하지만 케일리는 마냥 평소처럼 되받아칠 수가 없었다. 자신은 딱 평균이라든지,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만큼은 하고 있다는 둥의 말도 나가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에드워드와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를 케일리는 정확히 기억했다.

그 이유가 사라진 자신은 과연 에드워드의 심장을 받을 만큼 가치 있는 상대일까? 잘 모르겠다. 그게 자신의 이기심으로 욕심을 내도 되는 건지조차, 알 수 없었다.

“농담하는 거 아니에요. 정말로 이상해졌다니까요.”

아마 모르는 척 시침을 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그래도 영원히 숨길 수는 없고 결국 들키게 될 거라면 상처가 얕을 때 끝내는 게 나을 뿐이다. 너무 깊어지기 전이라면 아직 잘라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적어도 케일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대체 뭐가?”

그렇게 묻는 에드워드를 향해 케일리는 답지 않게 몇 번인가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기분이 안 좋아요.”

스스로가 너무 인간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게 문제라는 말을 꺼내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일단 그렇게 말한 케일리는 걱정이 스미는 푸른 눈동자를 마주한 채 그 말이 달리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어디 아파?”

말보다 훨씬 직설적인 손이 조심스럽게 뺨에 닿았다. 과거에도 평균보다 훨씬 튼튼했던 자신을, 마치 잘못 다루면 깨어지는 유리 조각을 다루듯 주의하는 에드워드의 손길에 가슴 한켠이 아렸다. 차라리 평범하게 서로를 향한 감정만을 주고받은 관계였다면 쉬웠을 텐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후회’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떠올리며 케일리는 역시 자신의 사고방식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뇨, 몸은 멀쩡해요. 아픈 곳도 없고, 피곤하지도 않아요.”

사람다워졌다는 걸 대단한 문제로 인식하는 우울한 케일리를 꿈에도 모른 채, 에드워드가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런데 왜 기분이 별론데?”

잠시간 말이 없던 케일리가 침울하게 대답했다.

“에디가…… 날 싫어하게 될 테니까요.”

에드워드의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기껏 심장까지 뜯어줘 가며 살려놨더니 이게 무슨 헛소리란 말인가. 하도 어이가 없다 보니 말도 안 나가서 입만 벌린 채 허, 헛숨을 들이켠 에드워드가 침착하게 물었다.

“너 내 복장 뒤집어놓으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지?”

“그런 거 아닌데요.”

“그런 게 아닌데 왜 갑자기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해?”

“냄새나는 인간 싫어한다면서요.”

“너 냄새 안 나.”

“이제부터 날 거예요.”

“역시 복장 뒤집으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 맞지?”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속이 터질 것 같은 대화를 반복한 후에야 에드워드는 그가 뭘 걱정하는지 알게 되었다.

“너 냄새 안 난다니까? 말을 하면 좀 들어라.”

한숨 섞인 목소리가 답답함을 토로하듯 그렇게 말하고서야, 케일리는 아무래도 에드워드가 정말로 자신의 감정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자신만큼이나 인생철학이 분명했던 에드워드라는 걸 믿을 수 없는 발언이었다. 반신반의하는 케일리를 향해 에드워드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설명했다.

“그 능력은 순혈 뱀파이어의 심장에서 나오는 거였고, 네가 가져갔으니 이제 냄새를 맡는 건 내가 아니라 너야. 그러니까 굳이 따지면 지금 걱정해야 하는 건 네가 아니라 나겠지.”

“내가…… 순혈 뱀파이어가 됐다는 건가요?”

“아니, 코만. 쓸데없이 개코가 됐다고.”

“데이브의 초능력 같은 건가요?”

“남의 감정을 냄새로 맡는 초능력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만, 굳이 따지면 그 비슷한 거겠지. 게다가 차라리 죽여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는 끔찍하게 오래 살 수 있을 거고.”

자신의 걱정이 기우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케일리가 멍한 얼굴을 했다. 어딘지 허탈한 것 같기도 하고, 어찌됐건 기쁜 기색은 아니었기 때문에 에드워드가 덩달아 가라앉은 표정을 한 채 이렇게 물었다.

“바뀌는 게 그렇게 나쁜 건가?”

케일리가 변한 건 자신의 심장 탓이다. 살려놓은 데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는 건 우스운 이야기지만, 에드워드는 실제로 그랬다. 케일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그를 지옥에서 끌어올린 건 자신이 맞다. 그러니 그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늘어나버린 감정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도 없지 않다.

“바뀌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것 같기는 해요.”

“하지만, 덕분에 살아남았잖아.”

“하지만 에디, 내가 과거의 내가 아니라도 상관없어요?”

참으로 철학적인 질문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대단히 인간다웠고,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보통 인간들은 무시하고 지나갈 법한 이야기를 굳이 꺼내드는 이상한 녀석이다. 그렇게 언제나와 같은 수준으로 이상한 케일리를 향해 에드워드가 단호하게 결론을 내렸다.

“너는 지금도 너야. 너 같은 게 세상에 더 있다고 생각하면 소름 끼치니까 무서운 말 좀 그만해.”

꾸밈없는 그의 진심이었다. 케일리를 좋아했고, 심장을 내어줄 만큼 아꼈지만 그래도 저런 게 둘이나 있는 건 싫었다. 적어도 그런 세상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는 게 에드워드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흠, 별로 칭찬처럼 들리지는 않네요.”

무성의하게 돌아온 감상에 에드워드가 결국 픽 바람 빠진 웃음을 웃었다.

“그럼 칭찬이겠냐?”

체온이 높은 뺨을 지나 말랑한 귀를 만지작거리며 에드워드가 녹을 듯한 미소를 걸었다.

“넌 원래도 이상했고, 지금도 충분히 이상해. 쓸데없는 걱정 할 시간 있으면 집에 전화나 걸어.”

시니컬한 내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달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말간 얼굴에 안도 섞인 웃음이 맺히는 것을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가 더할 나위 없이 다정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렇기는 해요. 에드워드도 결국에는 벨라를 뱀파이어로 만들었으니까 세상엔 고작해야 한 뱀파이어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들도 있는 법이겠죠.”

씩 웃으며 케일리는 자신에게 찾아온 변화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사실, 받아들이지 않을 방법도 없었다. 굳이 따져보면 이 변화에 따르는 유일한 문제는 에드워드였는데, 그가 괜찮다고 하니 자신이 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기도 했다.

“제발 부탁이니까 날 그 애송이랑 비교하지 말아줘.”

한숨과 함께 불만을 토로하는 에드워드를 향해 케일리가 물었다.

“에디는 몇 년생인데요?”

“워더링 하인츠와 같은 해에 태어났지.”

자국의 문학을 애호하는 에드워드가 뻐기듯 말하자,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드린 케일리가 이해했다는 듯 이렇게 대답했다.

“아하. 그렇다면 확실히 에디가 에드워드보다 쉰 살 정도 연상이긴 하네요.”

자신의 애칭과 이름을 번갈아 부르는 것처럼 들리는 그 말에 잠깐 멈칫한 에드워드가 곧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듣고 황당한 얼굴을 했다.

“너 그 새끼가 몇 년생인지까지 알고 있어?”

“1901년이요. 몇 월 며칠에 태어났는지도 아는데요.”

“대체 어쩌다가?”

“형이 그 시리즈를 엄청나게 좋아하거든요.”

어쩐지 납득할 수밖에 없는 대답이었다.

그래, 여동생도 아니고 형이 좋아하는 미국의 뱀파이어 캐릭터가 몇 년 몇 월 며칠에 태어났는지 정도는 기억할 수도 있겠지.

그 대답을 한 게 다른 인간 사내놈들이었다면 코웃음을 쳤겠지만 케일리는 달랐다. 녀석은 뉴욕행 비행기에서 한번 정독한 백과사전을 줄줄 외우고 다니는 괴물 같은 기억력의 소유자였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러고 보니 이젠 에디가 날 소유격으로 지칭해도 아무 말 못하겠네요.”

하나가 끝나면 어김없이 다른 충격파를 던지는 걸 보면 케일리의 정체가 불안정한 단층인 건 아닌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심심하면 지진과 해일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 그러했다.

“그건 또 왜?”

이젠 더 놀랄 것도 없이 덤덤하게 물음을 던지는 에드워드를 향해 뜬금없는 돌 던지기가 취미인 케일리가 이렇게 대답했다.

“내 목숨은 엄밀히 말하면 에디 거나 다름없잖아요? 에디의 심장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으니까.”

에드워드의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이게 어디서 은근슬쩍 사기를 치려고 해?”

자신의 심정을 숨기지도 않은 채 그대로 내뱉는 에드워드의 말을, 이번에는 케일리가 단번이 받아들이지 못한 채 고개를 기울였다. 의문 어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밤색 눈동자에 대고 에드워드가 단호하게 그의 말을 부정했다.

“네가, 내 심장을 가진 거잖아.”

정말이지, 저 남자에게는 좀처럼 당해낼 수가 없었다.

사실, 케일리는 바득바득 에드워드를 이기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자신은 그의 심장을 가지고, 그는 자신을 가지고. 그걸로 충분했다. 아니, 차고 넘쳤다.

“그럼 절대로 놓아주지 말아야겠네요.”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러고 싶기 때문에.

머릿속을 스치는 이기적인 생각에 케일리가 조금 웃었다. 자신은 생각했던 것보다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지는 못할 모양이다. 에드워드의 심장을 가지고 딱 그가 그랬던 만큼 인간적인 감정을 품게 되었지만, 그래도 본질까지 바뀌는 건 아니었다.

결국 자신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이다. 아니, 지금은 심지어 인간조차 아니었지만. 그러니 그저 가지고 싶다는 이유로 에드워드를 놓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없다.

“당연하지.”

그렇게 말하며 대체 어떤 사고를 해야 그걸 돌려줄 생각을 할 수 있는 거냐고 투덜거리는 에드워드를 앞에 둔 채, 케일리는 그저 활짝 웃어 보였다.

에드워드 애쉬포드.

자신이 주인이 된 심장의 달콤한 그 이름을 다시 한 번 혀 위에 굴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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