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3 (38/41)

#외전 3 - PartB. Flesh and blood

어느 봄날의 일이었다.

노년의 부부마냥 날이 풀린 정원의 흔들의자에 앉아 볕을 쬐던 케일리가 정원을 뛰는-산책이 아니라 정말로 트레이닝을 하듯 뛰고 있었다.- 알렉스를 바라보다 말고 문득 이런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까 어릴 적에 개를 키운 적이 있어요.”

낮잠을 즐기기 위해 눈을 감았던 에드워드가 슬쩍 눈을 뜨고 알렉스를 한번, 케일리를 한번 쳐다보았다. 개라…….

케일리 로체스터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말이 있다면 그건 애완동물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릴 땐 지금과 다른 성격이었던 걸까? 뭔가를 책임지는 데 재주가 없을 것 같은 녀석이 어쩌다 애완동물을 키우게 된 걸까?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던 에드워드에게 케일리가 이어서 말했다.

“아메리칸 폭스하운드였는데, 누이동생의 개였어요. 형은 개를 싫어했고 아버지는 고양이를 키우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지만 고집을 피웠죠. 죽어도 아메리칸 폭스하운드를 키워야겠다고 하더라고요. 어린 여자애가 키우기에 좋은 개는 아니잖아요, 크기도 하고.”

나른한 목소리가 웃음기를 달고 이어졌다.

“그 애는 잉글리쉬 폭스하운드가 아니라 아메리칸 폭스하운드를 키우는 걸 일종의 반항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재미있다는 듯 튀어나온 그 말에, 대체 뭐에 반항하기 위해 아메리칸 폭스하운드를 키울 필요가 있는 건지 에드워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의 심리도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계집아이의 심리를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누이가 있어?”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았다. 전번 로체스터 저택의 만찬에 초대되었을 때는 온통 남자들뿐이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굳이 시간을 내 만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자신들은 평범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그 집 남자들을 보면, 로체스터 가문의 다른 여자들이라고 해서 제정신일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 성년이 되는.”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가 곧장 돌아왔다.

막 나무 밑으로 돌아온 알렉스를 뒤따라 어느새 제법 자라난 힐이 땀을 흘리며 쫓아 들어왔다. 알렉스는 힐의 산책을 담당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개가 인간을 산책시키는 우스운 꼴이었지만, 실제로는 뱀파이어 개가 뱀파이어 신을 산책시키는 이상한 광경이라는 게 픽션을 뛰어넘는 현실이었다.

금세 복작해진 주위에 완전히 잠에서 깬 에드워드가 한바탕 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알렉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끔찍하군.”

진심 어린 그 목소리에 케일리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런가요? 저는 꽤 귀엽다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의외로 제 가족에게 애착이 있는 케일리가 그렇게 말했고,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은 에드워드는 “누이라는 족속들은 죄다 끔찍해.”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 아무렇지 않은 대화가 곧 다가올 파란의 전조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한 이는, 적어도 봄볕 내리쬐는 애쉬포드 가의 정원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 ◆ ◇

“에디!”

노크 하나 없이 벌컥 열린 문을 한 타이밍 늦게 돌아본 케일리가 흠칫 표정을 굳혔다.

좀처럼 당황하는 적이 없는 케일리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잠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문을 박차고 들어온 것이 허리까지 늘어뜨린 구불구불한 금발이 지나치게 어울리는 화려한 미인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건 꼭 에드워드-혹은 로저.-를 여자로 바꿔놓은 것 같은 여자였다.

“네가 돌아왔을 줄은 상상도 못했지 뭐야!”

활짝 웃으며 성큼성큼 다가온 그녀가 양팔을 벌려 케일리를 껴안았다. 자신이 에디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기도 전에-굳이 말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게 더 놀라웠다.- 벌어진 일이었다. 마치 도망갈 것을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강한 힘이었다. 얼핏 가녀려 보이는 팔에서 나오는 것치고는 지나치게, 강했다.

풍만한 가슴에 얼굴이 파묻힌 채 케일리는 이러다 질식하면 자신은 기껏 받은 에드워드의 심장으로도 살아남지 못하는 게 아닐까 진심으로 걱정했다.

숨을 쉬기 위해 버둥거리던 케일리를 그제야 놓아준 여자는,

“그런데 머리는 어쩌다 그렇게 민둥산이 된 거니?”

……아무래도 시력이 아주 안 좋은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에디가 아니에요. 케일리라고 합니다.”

“케일리? 그것 참 계집애 같은 이름……, 에디, 너 성전환 했니?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작아?”

수술을 잘못한 모자란 동생을 대하듯 어딘지 걱정 섞인 표정이다.

과연,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상상조차 하지 못한 참신한 추측에 잠시간 입술을 다문 채 경악에 빠져 있던 케일리는 에드워드의 명예를 위해 일단 이 상황을 적당히 수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에디는 잠깐 나갔어요. 아마 점심 무렵이면 돌아올 것 같은데, 가족 분이신가 봐요?”

“에디가 아니라고?”

“네. 저는 에디의 애인이고 잠깐 저택에서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말이 이어질수록 점점 의심에서 경악으로 물들어가는 미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케일리는 그녀의 정체를 가늠해보았다.

에디의 엄마? 누나? 여동생?

어느 쪽이든 가족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이렇게 닮았는데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쪽이 훨씬 못 믿을 일이었으니 말이다.

입술을 뻐끔거리며 말문이 막힌 그녀의 뒤로 높은 톤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샬롯! 에디 거기 있니?”

쿵쾅쿵쾅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로저와 에디, 그리고 먼저 도착한 여자와 꼭 닮은 얼굴을 한 단발의 미인이 한 명 더 나타났다.

“샬롯?”

의아한 얼굴로 방에 들어온 두 여자를 번갈아 쳐다보며, 케일리는 이 집안의 유전자는 정말로 대단한 것 같다고 진심으로 감탄했다.

“다이앤, 짐은 다 내려놓고 온 거야? 그것보다 에디가 여기 있기는 한데 내 생각에는 못 본 사이에 상태가 더 심각해진 것 같아.”

“거기서 어떻게 더 심각해질 수 있는 건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일단 한번 와서 보라니까?”

단발의 다이앤을 질질 끌어당겨 케일리의 앞까지 데려다 놓은 샬롯이 이렇게 말했다.

“자, 에디 다시 한 번 자기소개를 해보렴.”

여자 버전의 에드워드가 나란히 둘. 기가 막히게 쏙 빼닮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케일리는 조금 곤혹스러웠다.

어째서일까. 저들은 대체 자신의 어디를 보고 에드워드라고 확신할 수 있는 걸까.

뱀파이어가 아닌 관계로 케일리로서는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일단 소개를 해보라고 하니 소개를 하기로 마음먹은 그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에드워드 애쉬포드는 제 애인이고, 저는 케일리 로체스터라는 다른 사람…… 비슷한 건데 믿어주시면 안 될까요?”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해보려 한 케일리의 의도는 완전히 빗나간 모양이었다. 그 소개를 들은 다이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가렸다. 아무래도 자신의 설명을 제대로 알아들은 것 같지는 않은 표정이라고 케일리는 생각했다.

“세상에나……!”

아니나 다를까, 성전환을 잘못한 남동생을 바라보듯 경악에 찬 눈을 한 다이앤이 그렇게 말했다. 먼저 들어와 케일리를 끌어안았던 샬롯이 그녀에게 소곤거렸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가출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애가 저렇게 엉망이 된 거라니? 아무래도 로저를 찾아와야겠어.”

아무래도 그게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은 비단 케일리뿐만이 아니었다.

◇ ◆ ◇

“에디의 애인?”

“심장을 줘?”

각각 다른 포인트에서 놀란 얼굴을 하는 두 여자를 바라보며 소파에 기대앉는 로저의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원하는 책이 들어왔다며 외출을 나간 에드워드는 저녁쯤이나 되어야 돌아올 예정이었다.

다이앤 애쉬포드, 그리고 샬롯 애쉬포드라고 자신을 소개한 두 여자는 케일리가 로저를 발견하자마자 그에게 달려들어 질문을 퍼부어댔다. 대체 너희가 왜 여기에 있냐는 로저의 질문은 모조리 묵살당했다. 십여 분을 질문공세에 시달렸던 로저는 제 손에 얼굴을 파묻은 채 어깨를 늘어뜨렸다.

“왜 대화 좀 한 것뿐인데 이렇게 피로를 느껴야 하는 거지?”

한숨처럼 흘러나온 그 목소리에 케일리가 타박의 말을 던졌다.

“로저, 운동도 좀 하고 그래.”

홱, 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고개를 든 로저가 도끼눈을 떴다. 그럼에도 샬롯과 다이앤에게 시달린 후라 기운이 없기는 한 모양인지 평소처럼 날카로운 말을 던지지는 않았다.

“넌 인류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저혈압 치료제가 될 거야. 애쉬포드 가의 명예를 걸고 장담하지.”

어딘지 힘이 없는 목소리가 그렇게 말했다. 케일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까지 칭찬해줄 필요는 없는데. 어쨌든 고마워.”

“그래, 바로 이런 식으로 말이야!”

혈압이 오르다 못해 뒷목이 당기는 건 아무래도 자신뿐인 것 같아 로저는 서러웠다. 세상에 온통 적뿐이다.

자신의 저택에서 평화로운 주말을 보내고 싶은 게 그렇게 큰 꿈이었던 걸까. 게다가 오늘은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웬수가 둘 늘어나 있었다. 세상을 돌아다니며 저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다니던 녀석들이 하필이면 오늘, 오늘 나타나는 건 어째서일까.

차라리 침실에 처박혀 주말 내내 잠이나 자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엉엉 소리 내 울고 싶은 심정을 갈무리하던 참이다.

“로저, 그러고 보니까 정원에 못 보던 애가 늘어났던데 설마 그것도 에디 작품은 아니겠지?”

아무래도 힐을 말하는 것 같았다. 애쉬포드 저택에 있는 애는 힐밖에 없었고, 같은 순혈 뱀파이어인 샬롯이 그걸 눈치채지 못할 리는 없었으므로 이미 다 알고 묻는 거나 다름없었다. 대답을 하는 것도 귀찮아 “왜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데?” 삐뚤게 묻는 로저를 향해 그녀가 경악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에나, 세상에나! 대체 애를 어떻게 관리하기에 집에는 들어오지도 않던 에디가 자기 심장을 인간한테 넘겨주지를 않나, 권속까지 만들고 다니게 된 거야?”

“걔가 언제는 관리가 되는 애였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애나가 돌아오면 가만히 안 있을걸?”

“그때까지 내가 무사할 수나 있을까…….”

기운 없이 중얼거리며 소파에 몸을 파묻는 로저를 무시한 채 샬롯은 역시나 놀란 얼굴을 한 다이앤에게 말했다.

“에디, 걔는 사회화가 너무 많이 됐어. 정말이지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니까.”

동의한다는 양 고개를 주억거린 다이앤이 말했다.

“과도한 다이어트 때문일까?”

샬롯이 부정했다.

“아냐, 걘 로저가 잘 먹여 키웠던 어릴 때부터 좀 이상했잖아.”

수군수군 오가는 말을 죄다 주워들으며 케일리는 자신의 연인이 가족에게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새삼 감탄했다. 인간-지금은 아니었지만.-이 보기에 특이한 뱀파이어는 뱀파이어들 사이에서도 특이한 뱀파이어인 모양이었다.

몇 마디를 주고받는가 싶더니 샬롯이 생긋 웃으며 케일리에게 다가왔다. 그 옆에 선 다이앤도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기 때문에 케일리는 그들이 자신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에드워드의 심장을 얻은 이후로 자신에게 쏟아지는 감정을 쉽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들은 자신을 환영하고 있다.

“안녕, 아가야. 난 샬롯 애쉬포드고 에디의 형이란다.”

“……형?”

“호호, 사소한 건 신경 쓸 필요 없어. 아가, 혹시 봉사활동에는 관심 없니?”

“봉사……활동이요?”

“누나가 적십자에서 일을 하는데, 일손은 언제나 부족하니까 심심하면 전화하렴. 에디도 끌고 와주면 고맙고.”

“그……, 두 분이 같은 곳에서 일을 하시나 봐요?”

“어머, 아가도 참. 그럴 리가 없잖니. 다이앤은 국경 없는 의사회에서 일한단다.”

순혈 뱀파이어가 있는 적십자사와 국경 없는 의사회라니. 정밀이지, 알면 알수록 세상은 요지경이었다.

그 후로도 에드워드가 돌아올 때까지 둘에게 잡혀 그간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털어놓으며, 케일리는 그가 어째서 누이라는 말에 그렇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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