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아.”
세준의 부모님은 거실에 멍하니 서 있는 아들을 보더니, 골치가 아프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특히 아버지가 한숨을 푹 쉬더니 만 이틀 만에 본 아들에게 쏘아붙이듯 말을 시작했다.
“세준아. 너 오늘 학교 안 갔다면서.”
“…….”
“그리고, 들었다. 애들끼리 장난치는 거에 네가 너무 과민하게 대응했다면서. 일하는 곳까지 사장님이 와서 사정하시더라. 너도 그냥 조용히 다니면 안 되겠니? 왜 분란을 만들어서 애들하고 잘 지내질 못해. 네게 무슨 문제가 있으니까 애들한테 따돌림당하는 것 아니냐.”
그가 말하는 ‘사장님’이라는 사람은 세준을 가장 지독하게 괴롭히는 주동자 격 학생의 아버지였다.
A급 히어로이기도 하지만 공장을 운영하는 사장이기도 했다. 명망도 높고 꾸준히 봉사활동을 다니는 그를 두고 인성까지 A급이라고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기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강세준의 부모조차 아들을 믿지 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버지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세준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혀왔다.
옆에서 걱정스러운 눈으로 둘을 지켜보던 세준의 어머니 또한 고개를 흔들며 한 마디 덧붙였다.
“안 그래도 엄마, 아빠 힘든데… 너라도 얌전히,”
콰앙!
저 사람들은 누구지? 생긴 건 부모님이 맞는데! 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지?
자신을 몰아가는 가족들의 태도에 결국 강세준은 정신적으로 버티지 못하고 폭발해 버렸다. 하지만 그는 능력을 각성한 지 얼마 안 돼 제어하는 방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의 양팔에서 나온 날카로운 깃털들이 부모님을 향해 쏘아졌다. 그래도 깃털들이 직접적으로 꽂히지는 않고 비스듬히 날아간 덕분에 부모님은 뒤로 튕겨져 ‘벽에 부딪히며 정신을 잃은 듯 쓰러졌다.
다행히 목숨에 지장은 없겠지만, 자신이 사람, 그것도 부모님을 공격했다는 사실에 크게 충격받은 세준은 밖으로 나가 하염없이 달렸다.
달리면서도 강세준은 필사적으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려 무던히 노력했다. 자신은 진심으로 부모를 죽이려는 의지를 필사적으로 참아 냈다. 사실 그건 그의 양심이나 이성적인 판단에 의한 결과가 아니었다.
“아직 능력을 사용하지 마. 사고 치지 말라는 소리야.”
그의 ‘진정한, 위대하신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었다. 강세준은 아버지의 충실한 부하이자 아들이기에 명령에 따른 것뿐이었다. 그 말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집 안은 피투성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미친 듯이 달리다가 멍한 얼굴로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는데, 누군가와 어깨가 부딪쳤다. 비틀거리는 강세준의 양어깨를 어떤 남자가 힘 있게 잡아챘다. 그는 강세준과 마찬가지로 양팔에 날개를 달고 있었다.
“…아!”
그는 놀랍게도 S급 히어로 볼프강이었다. 갈색 머리에 검은색 눈동자를 가진, 장신의 잘생긴 미남이었다. 그는 시체처럼 비틀거리는 시민을 매정하게 두고 떠나는 히어로가 아니었다. 게다가 같은 하피이기도 했으니 오지랖을 조금 부려 본 것이다.
“괜찮아? 학생, 아픈 것 같은데…….”
“볼프강, 사인회에 늦겠어요.”
볼프강의 옆에 있던 다른 남자가 초조한 듯 재촉했다. 그 역시 하피로 날개가 붉은색인 볼프강의 사이드 킥인 붉은 날개였다.
세준이 볼프강 다음으로 존경하는 히어로였다. 볼프강은 멋진 미소를 지으며 불안한 얼굴의 사이드 킥에게 말했다.
“하지만 시민이 곤경에 처해 있잖아. 학생. 곤란하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말해. 내가 도와줄 테니까.”
“…같은 학교 애들이 괴롭혀요.”
세준의 말에 볼프강과 붉은 날개가 서로 눈치를 주고받으며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오… 미안해. 친구 사이의 일에는 내가 끼어들 수가 없어. 하지만 무슨 일이든 대화로 풀어 봐. 분명 마음이 통하면 그 친구들도 널 이해해 줄 거야.”
엄지를 내밀며 잇몸을 활짝 드러내 웃는 볼프강은 정말로 보기 좋은 미남이었다.
시력마저 좋은지 강세준이 바지춤에 달고 있는 자신의 MD까지 발견했다. 볼프강이 쑥스럽게 미소 지으며 세준의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내 팬인가? 넌 분명 멋진 히어로가 될 수 있을 거야. 꼭 능력자가 아니더라도 히어로가 되는 방법은 많아.”
그렇게 응원의 말을 몇 마디 더 내뱉은 세준의 히어로가 등을 돌려 바쁘게 걸어갔다.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강세준은 넋을 놓고 역 앞에 엉거주춤 서 있었다.
그때, 누군가 그의 어깨를 거칠게 잡아챘다. 강제로 뒤를 돌아보게 되어 고개를 들자 세준을 괴롭혔던 학생들이 악질적인 웃음을 지으며 어깨동무를 해 왔다.
“이 새끼 안 뒤졌네. 야, 만원 내놔 씹새야.”
“아, 좆같은 새끼… 넌 이제 내가 죽인다.”
뒤에서 낄낄거리며 한 학생이 손을 내밀자 다른 학생이 지갑에서 만 원을 꺼냈다. 한 명은 웃고 다른 한 명은 세준을 험악하게 노려보며 둘은 만원을 주고받았다.
곧이어 그들은 익숙하게 세준을 둘러싸 공중화장실로 끌고 갔다. 역에서 먼 곳에 있는 공원 공중화장실에 불량스러운 학생들이 잔뜩 들어오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이 새끼 왜 이래? 넋이 나갔는데?”
“겁먹었나 보지. 야, 뚜껑 열어.”
조르륵-
소변 보는 소리가 화장실 안에 울러 펴졌다. 하지만 변기 물을 내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낄낄 웃으며 세준을 변기가 있는 칸막이로 끌고 갔다.
문득 웃음이 터져 나왔다.
“뭐야, 이 새끼 미쳤나?”
세준을 잡고 있던 학생 중 한 명이 이상함을 눈치채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그의 목덜미를 잡고 있는 손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화장실에 가득 찬 작은 칼들이 학생들을 노리기 시작했다.
“뭐야! 도망쳐! 아아악!”
한참 동안 화장실 안에서 비명이 이어지다가 뚝 멈췄다. 피로 온몸을 흠뻑 적신 세준이 밖으로 나오자 사람들이 화장실을 둘러싸고 웅성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세준을 본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화장실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히어로들이 도착했다.
그 히어로는 방금 세준과 마주쳤던 S급 히어로 볼프강이었다. 볼프강은 세준을 보고 크게 충격받은 얼굴로 화장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윽고 죽은 학생들을 확인하고 화장실에서 나온 볼프강의 얼굴은 충격과 분노로 잔뜩 엉망이었다.
볼프강의 날개깃이 하나둘씩 빠져나와 허공에서 한데 모였다. 마치 주먹을 연상하게 하는 형태였다.
깃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단단함으로 날아오는 공격을 가까스로 피하자 옆에 있던 붉은 날개가 날개를 밧줄처럼 늘어뜨려 강세준의 온몸을 구속했다.
“어떻게, 고작 괴롭힘 당했다고 무고한 친구들을 죽이다니.”
“…당신은 처음부터 강한 사람이었구나.”
볼프강은 열 살 때 능력이 발현되었다. 날개를 단단하게 강화할 수 있는 능력으로 주변의 괴롭힘을 알게 모르게 이겨 낼 충분한 힘이었다.
하지만 세준은 어제까지만 해도 능력 따위 없었고 약해서 괴롭힘을 받아 왔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포박하고 있는 붉은 날개의 날개를 단단히 잡았다.
“붉은 날개!”
붉은 날개의 가슴에 수십 개의 깃털이 날아가 박혔다. 볼프강이 비통하게 소리치며 세준에게 덤벼들었다. 그에 강세준은 호탕하게 웃으며 대응했다.
그날, 볼프강은 거의 죽어 가는 상태로 화장실 안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강세준도 그와 비슷한 상태가 되어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게 되었지만 어떤 문에서 튀어나온 손이 그를 끌고 갔다.
학살자 버드맨의 탄생이었다.
- …그 학생들은 까불기는 하지만 착하고 학우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왔다고 합니다. 가해자와 약간의 충돌이 있긴 했지만 잘 풀어 나가기 위래 노력했다고요. 그런데 화해는커녕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어째서 무고한 학생들이 죽어야 하나요! 저는 절대 버드맨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 버드맨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어렸을 때부터 하피인 자신의 환경을 비관해 또래 친구들과의 트러블이 잦았다고 합니다. 그의 부모는 아들을 다독이려 노력했지만, 아들을 잘못 키웠다며 가해 학생의 부모들에게 찾아가 사과를 한 뒤 해외로 피신해 종적을 감췄습니다.
- 피해 학생의 아버지 A급 히어로 니들맨은 아들을 죽인 빌런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며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습니다. 장례식장에 울려 퍼지는 그의 비통한 울음소리는 많은 추모객의 눈시울을 젖게 만들었습니다. 이 가운데…….
“에휴.”
귀에 이어폰을 꽂고 핸드폰으로 뉴스를 찾아 듣던 신재언은 한숨을 쉬며 입에 물고 있던 담배꽁초를 바닥에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