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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하는 빌런-22화 (22/324)

22화

“꼬마야. 네 엄마가 아저씨한테 널 맡겼거든? 그동안, 이 누나랑 좀 놀고 있을래?”

기본적으로 골치 아픈 일에는 휘말리고 싶지 않았지만 신재언은 차마 엄마를 찾는 꼬마 귀신을 못 본 척 넘어가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재언은 자식 중 귀신을 가장 잘 다루는 귀신들의 성녀를 불러냈다. 그러자 공포 영화에서 나오는 귀신처럼 방 한가운데서 귀신들의 성녀가 튀어나왔다.

재언은 그녀가 꼬마 귀신보다 더 귀신같고 무서웠다.

“아버지.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이 귀여운 꼬마 도령은 누구예요?”

귀신들의 성녀는 말을 할 때마다 마치 여러 사람이 말을 하는 것처럼 공기가 웅웅 하고 울렸다.

그녀가 무서운 건 꼬마도 마찬가지인지 갑작스레 와아앙!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귀신이 귀신같은 사람을 무서워하다니, 정말 놀라운 광경이었다. 하지만 귀신들의 성녀는 이름답게 귀신을 아주 잘 다뤘다.

“꼬마 도령, 울지 마세요. 이것 좀 보실래요? 아버지께서 제게 꼬마 도령을 잘 돌보라는 명령을 내리셨다고요.”

귀신들의 성녀가 손을 펼치자 손바닥에서 투명한 꽃이 활짝 피었다. 저 꽃은 그녀가 각성하기 전 죽은 동생에게 받은 것으로 지금은 실체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동생이 딱 저 나이 때였겠군.’

어렸을 때부터 귀신을 볼 수 있었던 귀신들의 성녀는 마을에서 따돌림을 받았었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보는 앞에서 목을 매 자살했는데, 부모의 혼령을 볼 수 있었던 그녀는 부모가 죽은 줄도 모르고 아무렇지도 않게 지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웃 주민들과 같은 학교 학생들은 그녀를 꺼리고 기분 나빠 했다. 그런 주변의 눈초리에도 그녀는 네 살 정도의 남동생을 돌보며 묵묵히 살아갔다.

그녀가 등교하고 어린 동생 혼자 집에 남겨진 어느 날, 못된 장난기가 돌았던 이웃 주민은 어린 동생에게 지붕 위에 있는 꽃을 따 오라고 시켰다. 천진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동생은 이웃 주민들이 시킨 대로 꽃을 따기 위해 지붕 위로 올라갔고, 그만 추락해 죽고 말았다.

학교에서 돌아온 그녀는 죽은 동생을 울며 붙잡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천진하고 죄 없는 영혼을 저승사자가 불쌍히 여겨 일찍이 데려가는 바람에 동생은 귀신으로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 이후로 그녀는 영원히 동생과 만날 수 없었다.

아이가 추락사하자 덜컥 겁이 났는지 이웃 주민들은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딱 잡아뗐고 정황상 아무런 증거가 없었기에 사고로 일단락되었다.

며칠 뒤부터 귀신들의 성녀는 이웃 사람들의 집에 불을 내고 다녔다. 현관을 고장 내고 뜨겁게 달궈진 현관문에 온몸이 화상을 입도록 만들었다.

나름대로 그녀의 복수는 성공했다. 하지만 동생을 죽도록 만든 다른 사람들이 아직 다 살아 있었다. 네 누나가 좋아할 거라고 옆에서 꼬드긴 사람이나 얼른 올라가지 않고 뭐하냐고 동생에게 화를 냈던 남자까지 전부.

길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우는 그녀를 지나가던 길에 본 신재언이 딱하게 여겨 능력을 각성시켜 주었다. 그리고 그 마을은 귀신으로 뒤덮였고 그녀를 괴롭혔던 마을 사람 모두가 산 채로 영혼이 빠져나가 귀신이 되었다.

그 뒤로 능력을 이용해 어린 동생을 백방으로 수소문해 봤지만, 어디에서도 동생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누나를 위해 동생이 꺾은 꽃만이 혼령처럼 그녀의 곁에 남아 있었다.

저승에서의 10년은 이승의 1년이니 만약 저승으로 갔다면 지금쯤 환생하거나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흐어엉, 무서워! 이 누나 무서워. 귀신같잖아!”

자신이 죽어서 귀신이 되었다는 걸 자각하지 못한 꼬마는 엉엉 울면서 귀신들의 성녀를 피해 재언의 등 뒤에 숨었다.

손짓 한 번만으로 귀신을 시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지막지한 힘을 가진 그녀는 안절부절못하며 꼬마의 곁을 서성였다.

다른 놈을 부르고 싶어도 귀신을 다루는데 귀신들의 성녀만큼 능숙한 사람도 없었고… 이 일을 해결하는 데 다른 놈들은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

재언은 울어 젖히는 꼬마를 어르고 달랜 뒤 어떻게든 잠재웠다. 귀신들은 잠을 자지 않는다고 하지만 죽은 지 얼마 안 돼 살아생전의 기억이 뚜렷한 혼령은 습관처럼 잠이 들기도 했다.

신재언이 한숨 돌리며 고개를 들자 귀신들의 성녀가 무언가를 집 주변에 뿌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확인하니 검은 재였다.

“뭐해?”

“저승사자들이 오지 않게 막고 있어요, 아버지. 어린 꼬마 귀신은 저승사자들이 빨리 데려간답니다. 악귀가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녀가 주는 정보는 들을수록 신기했다.

재언은 귀신이나 저승과 관련된 건 잘 몰랐다. 하지만 그녀가 저승과 이승을 반복해서 돌아다니기에 이 분야에서만큼은 가히 대적할 자가 없다는 건 잘 알았다.

체어맨의 도움을 받아 신재언은 그녀와 함께 꼬마 귀신의 모친이 입원한 병원을 찾아갔다. 밤늦은 시간에 면회는 불가능하겠지만 그의 자식들과 함께라면 어디든 가지 못할 곳은 없었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여성은 산소호흡기뿐만 아니라 온몸에 이것저것 꼽고 있었다. 귀신들의 성녀가 조심스럽게 검은 십자가를 꺼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한 환자 앞에 가만히 서 있던 그녀가 이윽고 뒤를 돌았다.

“아버지. 이 여자의 혼령… 사라졌어요.”

“뭐?”

“깨어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답니다. 영혼이 몸에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몸은 살아 있지만, 영혼이 없으니… 영혼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녀는 머지않아 죽게 될 거예요.”

생령!

재언은 악령이니 뭐니 하면서 퇴마물을 찍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다. 사실 그는 공포 영화나 게임을 전혀 즐기지 못하는 일명 공찔이었다. 즉 귀신이라는 장르는 신재언에게는 쥐약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얼마나 버틸 수 있지? 영혼이라는 게 그렇게 마음대로 나갈 수 있는 건가?”

귀신이니 뭐니 너무나도 무서워 이쯤에서 손을 털고 싶었으나 눈물을 글썽이며 엄마를 찾는 꼬마 귀신을 생각하면 차마 못 본 척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귀신들의 성녀는 꼬마 또래의 남동생을 허무하게 잃은 기억도 있었다. 그녀가 보는 앞에서 꼬마 귀신을 모른 척하는 게 더 힘들었다.

“영혼이 빠져나간 상태에서 사흘이 지나면 몸과의 연결이 끊어져 돌아갈 수 없게 됩니다. 못해도 이틀 안에 그녀의 영혼이 육체에 들어가야 하지요.”

“불러올 순 없는 건가?”

“죽은 영혼에게는 명령을 내릴 수 있지만, 이 영혼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어서 제 관할이 아니에요. 게다가 영혼이 빠져나가도 살아 있는 육신이라 추기경 오라버니의 관할도 아닙니다. 그녀를 죽이고 완전히 귀신으로 만들거나 시체로 만든다면 모를까…….”

“그 방법은 좀 미뤄 두자.”

잠시 생각하던 귀신들의 성녀는 붉은 입술을 벌려 호호호, 호호호 하며 섬뜩하게 웃었다. 곧이어 소매에서 가지방울을 꺼내 중환자실 곳곳을 돌아다니며 흔들어댔다.

마치 무언가를 쫓아내려는 듯한 움직임에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면서도 알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에게만 보이는 무언가 때문에 하는 게 분명했으니까 말이다.

으스스한 병원 안에서 상상력이 가미되자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아버지. 살아 있는 사람이 생령이 되어 이승을 떠도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너무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무언가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을 때이지요. 그렇다면 그녀는 무엇이 억울했고 무엇이 간절했을까요?”

답은 간단했다.

“차에 치인 게 억울했고, 아이를 찾는 게 간절한 거겠지. 인과가 뚜렷하네.”

부지불식간에 아이를 잃은 그녀가 참으로 안타까웠다. 신재언은 주머니에서 조각난 장난감의 눈알을 꺼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그녀는 참으로 많은 힘이 되어 준다.

“가해자들이 뭘 하고 있는지 가장 중요할 것 같아. 조각난 장난감, 부탁할게.”

눈알이 데굴데굴 구르더니 두둥실 떠올라 병원 창문을 통과해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중환자실 바닥에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비춰 주었다.

으리으리한 집의 거실 바닥에 갓 스무 살 정도로 추정되는 젊은 청년이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중년의 남자가 소파에 기대어 있었다.

‘어라. 이 남자 어디서 많이 봤는데?’

신재언이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아, 이제 생각났다. 그는 XX당의 저명한 국회의원이었다.

그렇다면 대낮부터 마약에 취해 서울을 휘젓고 다닌 남자는 그의 아들이라는 소리였다. 이런 건 어떤 기사에서도 찾을 수 없었는데 참으로 이상했다. 중년 남자가 아들을 매섭게 노려보더니 소리쳤다.

- 하필 애가 즉사했다. 너도 징역은 피할 수 없을 거다. 그래도 잡음이 일어나지 않게 조용히 해결할 테니 당분간 해외에 나가서 몸을 사려라.

- 네, 아버지. 죄송합니다…

그들의 대화나 태도로는 사람을 죽여서 진심으로 반성하는 게 전혀 아니었다. 버드맨 사건 때도 그렇고 저런 쓰레기들을 양산하는 부모가 가장 문제였다.

신재언이 이마를 문지르며 고민에 빠졌다. 꼬마 귀신의 딱한 사정을 생각했을 때 저 부자를 거꾸로 매단 뒤 어떻게 복수하고 싶냐고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닐까 싶었다.

중환자실에 계속 있어 봤자 육신에 영혼이 저절로 돌아오진 않을 테니 재언과 귀신들의 성녀는 병원에서 빠져나왔다.

병원 정문을 빠져나갈 때쯤 귀신들의 성녀가 갑자기 무언가가 떠오른 듯 소매에 있는 붉은색 주머니 안에서 부적을 꺼냈다. 소름 끼치는 문양이 그려진 부적을 그녀는 재언의 눈앞에서 불태웠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이 의아했지만 신재언은 충성심이 높은 그녀가 자신에게 해를 입히는 행위를 하진 않으리라 믿었기에 가만히 있었다.

“으아악!”

‘깜짝이야! 심장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네!’

기이한 생물들이 병원 건물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목이 긴 남자나 혀가 긴 어떤 여자가 창문에 붙어서 기어 다녔다. 게다가 병원 옥상에서부터 1층까지 목을 길게 늘어트린 이상한 생명체까지 보였다.

병원에 상주하는 귀신들이 갑자기 보이게 된 것이다. 게다가 길게 늘어트린 머리에 피처럼 붉은 입술,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귀신이 옆에 서 있었다.

“으앗!”

“아버지?”

“…휴.”

다행히도 귀신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귀신들의 성녀였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했지만 재언은 자신이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정말로 그는 귀신이 너무 무서웠다.

그런데 방금 귀신들의 성녀가 했던 행위는 이전에도 신재언이 받은 적 있는 의식이었다. 일시적으로 귀신들을 보여 주는 부적으로 평범한 사람도 귀안을 트게 했다.

재언은 갑작스러운 의식에 너무 놀란 나머지 가슴이 벌렁거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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