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근하는 빌런-48화 (48/324)

48화

그는 행색이 정말로 특이했다.

재언은 차민재와 알고 지내며 특이한 사람을 많이 봐 왔지만, 이보다 특이한 사람은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방했다.

물론 차민재의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특이하다고 하면 따라올 사람이 없겠지만, 눈앞의 남자는 진심으로 특이한 사람이었다.

시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창백한 낯빛에 다크 서클이 유난히 짙었다. 검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그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한참 동안 내리깐 채 가만히 서 있더니 들고 있는 스케치북을 펼쳤다.

스케치북에는 장마다 ‘안녕하세요.’, ‘네.’, ‘아니요.’ 같은 것들이 쓰여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재언은 참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지금 차민재의 생일파티에 와 있었다. 아는 지인들끼리 만나 시답지 않게 노는 작은 파티 따위가 아니라, 홀을 빌려 각종 음식을 준비해 유명인사를 초대해 놓은 거대한 파티장이었다.

생일파티라고 해 봤자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서프라이즈랍시고 준비해 준 케이크만 받아 왔던 신재언에게는 지금 이 상황이 눈이 돌아갈 만큼 신기했다.

역시 세계 최강 히어로의 생일파티답게 눈엣가시 같은 온갖 히어로들과 유명인사가 눈앞에 가득했다. 아들인 차민재만큼이나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톱 배우인 어머니 덕분인지 TV에서나 볼 수 있었던 연예인들도 아주 많았다.

차민재의 생일 파티에 초대될 때까지만 해도 그의 지인 몇 명을 소개받고 끝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엄청나게 큰 파티 규모에 기가 죽었다.

‘그냥 밥이나 먹어야겠다.’

한숨을 푹 내쉰 재언은 뷔페 형식으로 파티 홀에 차려진 많은 음식을 향해 걸어갔다. 비싼 거라도 주워 먹고 마음의 위안을 가져야겠다고 중얼거리며 바닷가재 요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그곳에 누가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그게 바로 눈앞의 특이한 남자였다.

툭 하고 한 대만 쳐도 쓰러질 것 같은 인상의 남자는 음식을 앞에 두고 고사라도 지내는지 말없이 가만히 있기만 했다.

혹시 무슨 곤란한 일이라도 있나 싶었던 재언은 이 남자도 차민재의 지인일 수 있다는 생각에 친절을 베풀기로 했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혹시 무슨 곤란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마주친 남자의 눈동자는 빨려 들어갈 만큼 까맣고 어두웠다. 갑자기 말을 걸어서 놀랐을 법도 한데 그의 표정은 아주 평온했다. 아니, 평온하다기보다는 표정이 없는 사람 같았다.

그가 스케치북을 왼쪽 손에 들어 보였다. 거기에는 ‘괜찮습니다.’라는 문장이 있었다.

“그렇습니까? 저는 신재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 김에 명함이나 주고받아야겠다고 생각한 재언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남자는 소리 없이 명함을 받아든 채 고요하게 가라앉은 눈을 내리깔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그가 드디어 천천히 고개를 들었는데, 재언은 그 일련의 동작을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이제 슬슬 이름을 알려 주리라 생각했던 신재언은 고개를 들었음에도 아무런 말이 없는 남자를 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재언을 본 남자가 스케치북을 이리저리 뒤적거렸다. 하지만 본인이 찾는 말이 나오지 않았는지 스케치북 마지막까지 하염없이 넘겼다.

혹시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무례한 행동을 한 건 아닌지 조심스럽게 살펴보던 그때, 저 멀리서 부모의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민재가 다가왔다.

“재언 씨, 그의 이름을 들으면 안 돼요.”

“네?”

“그는 히어로지만, 그의 목소리로 이름을 듣거나 그의 이름을 말하면 저주받거든요. 그는 상위급 존재들에게 사랑받는 남자예요.”

“아!”

재언은 그제야 눈앞의 특이한 남자가 하는 이상한 행동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히어로 중에 이름을 부를 수 없는 남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상위급 존재에게 사랑받는 탓에 그의 이름을 부른 인간은 저주로 반드시 죽게 된다는 S급 히어로 ‘언럭키 네임리스’였다.

아, 이제 보니 반드시는 아니었다. ‘언럭키 네임리스’의 이름을 부르고도 살아남은 사람이 딱 한 명 존재했다. 바로 자신의 옆에 있는 레드-헬-파이어, 인간계 최강의 인간 차민재였다.

그는 ‘언럭키 네임리스’의 이름을 어디선가 몰래 알아낸 뒤 많은 사람이 있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불러 버렸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물론 전 세계가 뒤집어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상위급 존재여도 레헬을 죽일 수 없었는지 그는 살아남았다. 후에 어딘가의 방송에서 무슨 생각으로 ‘언럭키 네임리스’의 이름을 불렀느냐고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 언럭키 네임리스의 이름을 부르면 저주받아 죽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의 이름을 부른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 뭐…….

차민재는 수많은 카메라와 마이크 앞에서도 아무런 감흥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배우인 어머니를 따라 많은 곳에 TV 출연을 해 온 덕분이 아닐까 싶었다.

이전에 민재가 말해 주길, 자신의 어머니는 아들을 트로피처럼 생각하고 자랑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고 말해 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신재언이 봤을 때 그는 가족들에게 제법 사랑받는 외동아들이었다.

아무튼 차민재는 그가 가진 아름다운 외모와 카메라가 익숙한 어머니 덕분에 TV 광고나 모델 출연이 다른 히어로들보다 많은 편이었다.

- 그냥 궁금해서요.

어깨를 으쓱하며 매력적으로 웃은 차민재는 심장이 쿵 떨어질 정도로 잘생겼지만, 그는 정말 위험한 또라이였다.

대체 세상에 누가 목숨을 걸고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을까. 그건 그가 레드-헬-파이어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언럭키 네임리스’는 본명은 물론 가명 또한 그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받아들여 저주의 상대가 되었다. 히어로명까지는 괜찮았지만, 그 외의 어떤 것으로도 그를 부를 수 없었다.

비록 자의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런 살벌한 저주 능력을 가진 그를 히어로 협회에서는 S급으로 묶어 두고 통제하려 했다. 레헬 다음으로 그가 가진 힘과 위력이 너무나도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같은 히어로들조차도 애를 먹는 능력자였다. 그에게 상처입히는 자가 히어로든, 빌런이든 상관하지 않고 상위급 존재들이 쫓아와 괴롭혔다.

이전에 ‘타락한 추기경’과 ‘언럭키 네임리스’가 한판 붙은 적이 있었는데, 타락한 추기경은 그 이후로 그들을 따돌리느라 상당히 애를 먹었다.

그가 가진 능력의 위험성 때문에 히어로 협회에서는 아마 그를 절대로 놔주지 않을 것이다.

재언도 ‘언럭키 네임리스’가 타락한 추기경과 싸웠다는 사실은 알지만, 지금까지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히어로들 중에 가장 베일에 싸여 있는 남자였다.

그런데 그의 얼굴이 정말 툭 치면 쓰러져 죽을 것처럼 생겼다.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분위기 그 자체였다. 버석하게 마른 그의 눈빛이 굉장히 신경 쓰였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딱히 이렇다 할 미련이 없어 보였다. 찝찝한 눈빛과 그가 가진 분위기 때문에 ‘언럭키 네임리스’와의 첫 만남은 나중에도 잊지 못할 만큼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재언 씨, 제 어머니를 소개해드릴게요. 이리 오세요.”

“네? 아… 네.”

‘언럭키 네임리스’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재언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끌고 가는 민재의 손길 때문에 급하게 시선을 돌려야 했다.

마지막까지 바닷가재를 먹지 않고 뚫어지게 쳐다만 보던 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언럭키 네임리스’와의 첫 만남은 마무리 되었다.

차민재의 어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헉 소리가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차민재만 한 아들이 있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동안인 데다가 손끝에까지 우아함이 배어 있는 사람이었다.

차민재가 여자였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모자는 완벽하게 닮아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나긋나긋한 말투에 어울리게 사람 관계에 있어 여유로움을 보여 주었다.

아들이 친구를 데려왔다며 용돈을 봉투 안에 넣어 건네주었는데, 금액이 신재언의 두 달 치 월급을 웃돌았다.

이런 큰돈은 받을 수 없다고 거절하려 했지만, 이미 그녀는 샴페인 잔을 들고 지인들을 향해 총총총 걸어가 버린 후였다.

“이거 어쩌죠… 민재 씨가 가지고 있다가 돌려드려요.”

“그냥 용돈으로 주신 건데 받으시죠. 거절하면 어머니께서 상심하실 겁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데요?”

“그 정도는 아들 친구 용돈으로 줘도 될 만큼 충분히 돈을 벌고 계시니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재언 씨, 지금은 친구라고 소개했지만, 나중엔 좀 더 친밀한 관계에서 다시 소개하고 싶어요.”

소곤대며 걸어오는 수작질에 잠시 넘어갈 뻔했다. 재언은 이런 종류의 유혹에 면역이 없었다.

‘안 돼. 상대는 세계 최강의 히어로라고……. 그는 내가 다크카오스인걸 알자마자 찢어 죽일 수도 있어…….’

재언은 오늘도 그의 외모에 홀리지 않게끔 필사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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