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내 이름 부르지 마!”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아! 태우야 너도 여기서 한 번 실종됐었잖아. 혹시 우리 애가 어디로 갔는지 짐작이라도…….”
그는 대답하지 않고 철물점 사장을 밀치고 산속으로 뛰어나갔다. 차민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턱을 쓰다듬으며 그 모습들을 구경했다.
철물점 사장은 언럭키 네임리스가 사라진 이후에도 계속 사정사정하며 재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 산속에서 사는 네가 지리를 가장 잘 알 테니 애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봐 달라고 말도 안 되는 아무 말이나 마구 내뱉었다. 잠시 숨을 고르더니 조금 진정됐는지 다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신재언은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언럭키 네임리스의 본명을 알아 버린 게 가장 충격이었다. 평생 모르고 싶었는데, 어쩌다가 뇌리에 박혀 버렸다.
그의 원래 이름을 불러서 멀쩡하게 살아남은 사람은 레헬 뿐이었다. 재언이 심각한 표정을 풀지 못하자 차민재가 나지막하게 위로하듯 말했다.
“언럭키 네임리스의 이름을 부르면 인간보다 상위급 존재들이 저주를 내린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저주도 무적은 아닙니다. 딱 세 번… 세 번까지밖에 효능이 없어요. 그러니까 세 번을 무사히 넘기면 살아남는 거예요.”
“세 번이요?”
“저는 목욕탕에서 갑자기 켜진 라디오가 욕조 안으로 떨어질 뻔했고 어딘가에서는 위쪽에 설치되었던 조형물이 떨어지기도 하고 제가 가는 길목에 낚싯줄이 걸려 있어 넘어졌으면 그대로 정원 난간에 목이 뚫릴 뻔했죠. 이렇게 세 번을 무사히 넘기면 녀석들도 손을 쓸 수 없는 것 같더군요.”
‘듣고 있으니 하나부터 셋까지 만만한 게 없는 것 같은데!’
그건 정말로 차민재가 레드-헬-파이어여서 살아남은 게 분명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첫 번째에 죽어서 저승에 가 있었을 것이다.
그때, 아래쪽으로 내려간 철물점 사장이 발을 헛디디며 몸이 기울었는데 하필 그가 넘어지려는 곳에 뾰족하게 세워진 나뭇가지가 있었다. 그쪽으로 넘어지면 저대로 목이 뚫려 죽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레헬이 손을 휘두르자 뾰족하게 세워졌던 나뭇가지가 순식간에 화르륵 불타 없어졌다. 다행히 남자는 약간의 타박상은 입었지만 죽을 만큼 크게 다치진 않았다.
레헬이 이것 보라는 듯 신재언을 보며 웃었다.
“그렇죠?”
“네… 그런데 큰일 났네요. 애는 어디 있고 언럭키 네임리스는 또 어디로 사라졌고 이분은 어떻게 지켜드려야 할지…….”
차라리 자식들을 부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들과 관련 없는 민간인을 구할 생각이 있을까. 그리고 레헬의 앞에서 그들을 부르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재언은 일단 눈앞의 급한 불부터 해결하고자 정신없이 아이를 찾는 그를 뒤쫓았다. 철물점 사장은 신재언과 레헬이 자신의 뒤를 쫓아와도 뒤를 힐끔거리기만 할 뿐 계속 소리를 질러 댔다.
“영일아~! 영일아! 어딨니! 아휴, 속 탄다. 속 타…….”
철물점 사장이 가슴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지친 듯 나무에 기대 숨을 고르는 그의 위에서 나뭇가지가 떨어졌다. 굵기가 상당한 나뭇가지였다. 저것이 그대로 머리에 떨어지면 머리에 꽂힐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레헬의 능력에 막혔다. 머리 위에서 순식간에 불타 없어진 나뭇가지가 재가 되어 허공에서 나풀거렸다.
이제 이걸로 두 번째다. 한 번만 더 도와주고 아이를 찾은 뒤 언럭키 네임리스를 찾아 나서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운명은 신재언의 바람대로 가지 않았다.
그 뒤로 철물점 사장에게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내리는 저주이다 보니 상위급 존재들도 제법 신중하게 고르는 중인가 보다. 사람 이름 좀 불렀다고 저주하는 놈들치곤 꽤 조심스러웠다.
그때까지도 주변이 매우 조용했다. 시계를 확인하니 오후 여섯 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해가 슬슬 지고 있는 모습에 괜히 꺼림칙한 느낌이 든 재언이 철물점 사장에게 말을 걸었다.
“어르신. 이제 그만 산에서 내려가고 경찰에 신고합시다. 차라리 히어로 협회에 의뢰를 넣는 건 어떨까요.”
“그거 좋쥬. 누군들 히어로 협회에 의뢰를 넣고 싶지 않겠어요? 하지만 의뢰비가 너무 비싸… 우리 같은 서민은 꿈도 못 꿀 돈입니다요.”
“…찾다 보면 아이를 찾는 데 발벗고 도와줄 히어로가 있을 겁니다.”
“됐어유! 됐네, 됐어! 댁들도 이제 그만 들어가쇼…….”
남자는 어깨에 건 수건으로 얼굴에 맺힌 땀을 닦더니 터덜터덜 산 아래로 향했다. 그를 혼자 뒀다가는 어떻게 될지 몰라 어쩔 수 없이 몰래 뒤를 쫓았다.
그 순간 산 위쪽에서 무언가 넘어가듯 으득거리는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졌다. 마치 나무가 꺾이는 소리 같았다.
재언은 남자와 산 위쪽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일단 소음이 들린 쪽으로 달려갔다. 산 중턱까지는 아버지가 깎은 길로 나름 편하게 왔다 갔다 할 수 있지만, 위쪽은 제대로 된 길도 없고 가팔라서 오르기 힘들었다.
위쪽으로 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산의 나무들이 꺾여서 처참하게 변한 모습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언럭키 네임리스가 머리를 감싸 쥔 채 주저앉아 있었고 그의 앞에 있는 누군가가 쓰러진 나무 기둥에 앉아 있었다.
잔뜩 헤진 검은색 천을 뒤집어쓴 그것은 팔이 네 개였다. 얼굴로 보이는 곳에는 촉수가 길게 나온 괴물의 품 안에 한 소년이 잠자는 듯 누워 있었다.
신재언은 그것의 품에 안겨 있는 게 그들이 지금까지 찾아다니던 철물점 사장의 아들이라는 걸 눈치챘다.
그러나 소년은 전혀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아이의 작은 몸을 네 개의 작은 손이 단단하게 잡고 있었다. 파랗게 질린 안색과 입술이 아이의 죽음을 대신 말해 주었다.
생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아이의 시신을 끌어안은 ‘그것’은 촉수로 가득한 얼굴을 부르르 떨더니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재언은 어릴 적, 자신을 무릎에 앉히고 밤에는 절대 산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당부했던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산에 저런 놈들이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계셨던 게 아니었을까.
“으, 으아악! 저게 뭐야, 괴물이다!”
언제 따라왔는지 뒤쪽에서 철물점 사장이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치다 발라당 넘어졌다.
저 괴물 같은 생명체를 자극하고 싶지 않아 재언은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철물점 사장은 땅바닥에서 돌을 집어 던지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 여기 보소! 귀물이 있잖슈. 괴물이다!”
재언이 그러지 말라고 말리기도 전에, 촉수 괴물이 울부짖던 것을 멈추었다.
이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남자를 한 번 쳐다보더니 죽은 아이를 더욱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전광석화 같은 몸놀림으로 나무 위로 펄쩍 뛰어올랐다.
어찌나 날랜 움직임인지 울창한 나무 사이로 자취를 감춘 촉수 괴물은 검은색 궤적만 남기고 어둠 속에 가려져 더 이상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재언은 아이의 시신이라도 찾아와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했다. 하지만 뒤에서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남자와 머리를 감싸 쥔 채 주저앉은 언럭키 네임리스가 눈에 밟혀서 뒤쫓을 수 없었다.
일단 두 사람을 우선 챙겨야겠다.
“이봐요, 언럭키 네임리스. 괜찮습니까?”
천천히 다가가 고개 숙여 살피니 언럭키 네임리스는 식은땀을 잔뜩 흘리며 정신을 놓은 상태였다. 그를 살피는 재언의 옆으로 차민재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언럭키 네임리스는 머리가 아픈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앓는 듯한 신음만 내뱉었다. 마치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은 모양새에 어깨에 손을 올리려 하자 민재가 손목을 잡아챘다.
“민재 씨?”
의아한 얼굴로 차민재를 올려다보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이 상태의 그에게 손을 대면 안 돼요. 그를 함부로 대하거나 이름을 불러도 저주를 받지만, 걱정하거나 애정이 어린 마음을 가져도 마찬가지라고 하니까요.”
언럭키 네임리스를 보호하는 상위존재의 사랑은 인간이 이해하기엔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과보호였다.
그를 어떻게 대해도 저주받는 건 아닌가 걱정해야 한다니.
그렇다고 악몽을 꾸는 것처럼 저리 괴로워하는데 그냥 보고만 있기도 찝찝했다. 그런 재언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차민재가 그의 멱살을 붙잡아 올렸다.
짜악-!
뭐야! 그에게 해를 끼치면 저주받는다며!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면 괜찮은 거야?
그런 의미에서 레드-헬-파이어는 정말로 무서운 남자였다. 재언은 언럭키 네임리스에게 해를 입히는 일이 사람을 얼마나 귀찮게 만드는지 옆에서 보고 들은 게 있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타락한 추기경이 전에 그와 크게 싸운 적이 있었는데, 둘의 힘이 막상막하였던지라 결론을 내지 못하고 싸움이 끝이 났다. 하지만 그보다도 그 이후가 더 문제였다.
전투 중에 언럭키 네임리스를 다치게 했다는 이유로 타락한 추기경이 상위존재의 개에게 한동안 시달려야 했으니 말이다.
타락한 추기경은 그것들 때문에 ‘파도치는 절벽 위 별장’에서 한 달 가까이 꼼짝없이 시간을 허비했다.
그것들은 다른 말로 틴달로스의 사냥개라 불렸는데, 각이 진 어떤 구석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놈들이었다.
이놈의 사냥개들은 당하는 이가 질릴 정도로 끈질기고 흉포했다. 타락한 추기경의 성기사가 나타난 사냥개들을 베어 넘겼지만 더 강하고 까다로운 놈들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어쩔 수 없이 타락한 추기경은 동그란 원형의 방에서 그놈들이 추격을 포기하고 돌아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 다친 것도 있어서 쉬어야 했지만 사냥개들 때문에 강제로 갇혔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그래서인지 타락한 추기경은 히어로 중에 레드-헬-파이어보다 언럭키 네임리스를 더 싫어했다.
재언이 그와 같이 있다는 걸 모를 리 없을 테니 아마도 지금 이를 갈며 분해하고 있을 터다. 재언이 부르거나 위험에 닥친 상황이 아닌 이상 튀어나오지 않는 게 암묵적인 룰이라 더욱더 원통할 것이다.
그 정도로 아주 귀찮은 존재의 보호를 받는 언럭키 네임리스의 뺨을 때린 것도 모자라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다니.
저주가 걱정되지도 않은지 민재는 그저 심드렁한 기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