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조각난 장난감, 일단 돌아와.”
언럭키 네임리스가 친아버지에게 목이 졸려 죽기 직전에 이르렀을 때가 되어서야 재언은 겨우 충격에서 벗어나 다급하게 조각난 장난감을 불러들였다.
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능력의 장점이지만, 그녀에겐 그것이 곧 단점이기도 했다. 상대방이 기억하는 당시의 감정이 고스란히 그녀에게 흘러 들어가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충격적인 과거를 겪었던 그녀에게 더 이상의 부정적인 감정을 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
신재언이 조각난 장난감과 처음 마주한 건 어느 야산에서였다.
당시 취업준비생이었던 그는 자격증 시험을 대비해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밤늦게 나와 집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문득 저 멀리서 거대하고 새까만 증오가 하늘을 뚫고 오르는 것을 목격했다.
엔레이드맨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찾아간 그곳엔 피로 질척하게 젖은, 아주 불길한 가방 두 개가 나란히 산속에 묻혀 있었다. 가방 안에는 토막이 난 그녀의 신체가 들어 있었다.
나중에 사정을 파악하니 형사였던 그녀의 아버지가 20년 전에 잡아넣은 살인범이 범인이었다.
평범했던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져 다시는 되찾을 수 없게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며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에 입학했건만 모든 것이 꿈처럼 흩어졌다.
재언은 예전 모습을 전혀 떠올리지 못할 만큼 고깃덩이가 되어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신체를 보며 이미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어마어마한 증오를 품은 채 살아 있었다.
예전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해도 살아서 범인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원념을 받아 신재언은 그녀의 능력을 각성시켰다.
그 후에 조각난 장난감은 자신을 그렇게 만든 범인에게 똑같이, 아니 몇 배로 갚아 줬다. 고통스러워하는 범인의 비명은 한 달 반 동안이나 이어졌다.
그런데 복수가 끝난 뒤에도 조각난 장난감은 홀로 남은 아버지를 찾아가지 못하고 며칠 동안이나 머뭇거렸다. 이런 끔찍한 모습을 보여 주기가 겁난다는 이유였다.
그 딱한 사정에 재언은 그녀의 아버지를 자신이 직접 찾아가 그녀가 이런 모습으로 변했는데도 여전히 자식으로서 대할 수 있느냐 질문했다.
고작 잘린 귀와 눈을 보여 주었을 뿐인데도 딸을 알아본 아버지가 오열하며 소리쳤다.
“현정이가 어떤 모습이든 그 아이는 제 딸입니다. 그러니… 내 앞에서는 숨지 않아도 된단다, 얘야. 난 항상 너를 사랑해……. 무슨 일이 있어도 넌 내 딸이야!”
한참을 딸의 신체 일부분을 양손에 감싸고 엉엉 울던 그가 갑자기 재언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제 딸을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평생 목숨을 걸고 따르겠습니다.”
“어… 그럴 필요는 없는데요.”
대체 왜 굳이 부하를 자처하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하지만 감격에 찬 아버지의 귀에 재언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그런 고통스러운 과거가 있는 그녀이기에 언럭키 네임리스의 감정과 통각을 공유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다행히 조각난 장난감은 재언이 말한 대로 울부짖으며 어두운 산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언럭키 네임리스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그가 걱정되긴 하지만, 그를 지키는 존재들은 재언이 걱정할 만큼 약하지 않으니 괜찮을 것이다.
‘…근데 왜 그가 혼자 산속에서 뒹굴고 있는 거지? 레헬은? 레헬이 뒤를 쫓아가지 않았나?’
재언은 이번엔 조각난 장난감에게 레드-헬-파이어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언럭키 네임리스를 찾을 때보다도 훨씬 쉽게 그를 찾아냈다. 그는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숨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양아치나 할 법한 범법행위에 재언은 할 말을 잃었다.
게다가 그의 태도가 너무나도 당당해서 순간적으로 산에서의 흡연행위를 자연스럽게 넘길 뻔했다. 하지만 조각난 장난감을 증인으로 삼지는 못하고 신고도 할 수도 없었기에 그저 기다리기로 했다.
담배를 다 피우고서도 이런저런 딴짓을 하며 시간을 보내던 차민재가 집으로 돌아와 빙긋 웃으며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술술 내뱉었다.
“제가 쫓아가니 자기는 서울로 돌아가겠다고 갔습니다. 그러니 그쪽은 신경 쓰지 말고 저희도 올라가도록 합시다.”
감쪽같이 증거를 모두 숨겼는지 그에게서 담배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그래요? 다행입니다.”
신재언 역시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그의 거짓말에 장단을 맞췄다.
일단 지금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일찍 출발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려는데 문득 언럭키 네임리스의 이름을 불러 저주받은 철물점 사장을 떠올렸다.
“그 남자는 괜찮을까요?”
“쉿.”
그러자 차민재가 서로 마주 보게 돌아눕더니 검지를 재언의 입술에 갖다 댔다.
어스름한 달빛 아래에서 반짝이는 민재의 얼굴이 비정상적으로 예뻐 보였다. 빛이 희미하게 들어오는 어두운 방 안에서도 입술이 저렇게 붉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그는 기다란 속눈썹을 깜박이며 입을 열었다.
“이제 그자를 생각하기만 해도 저주받을지도 몰라요. 그자는 ‘그놈들의 아이’를 죽였거든요. 비록 그자가 ‘아이’의 친부라고 할지라도 그놈들에겐 통하지 않아요. 인간의 상식으로는 통하지 않는 놈들이랍니다. 그러니 언럭키 네임리스의 세 가지 저주와는 상관없이 반드시 잔인하게 죽을 겁니다. 그러니 그쪽으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게 재언 씨를 위해서도 좋아요.”
네 개의 촉수로 작은 아이를 단단히 부여잡고 무언가 오열하는 것처럼 괴상한 소리를 내지르던 그것이 떠올랐다.
그러다 문득 새하얀 날개로 재언의 작은 몸을 끌어안고 신신당부하던 어머니의 목소리를 기억해 냈다.
“재언아, 이리 오렴. 밤에는 산속으로 들어가면 안 돼……. 저기엔 무서운 괴물이 살고 있거든. 재언이를 잡아갈 수도 있어. 그러니까 절대 혼자 밤중에 나가면 안 돼. 알겠지?”
재언은 지금까지도 어머니가 밤늦게까지 못 나가게 하려고 겁을 준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따금 어두운 산속을 볼 때마다 기분이 묘했던 것도 같았다.
어두운 나무 사이에 무언가가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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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이른 새벽, 서둘러 출발하지 않으면 출근에 지장이 가기 때문에 재언은 새벽부터 일어나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인데도 물만 묻혀서 세수한 뒤 잔뜩 부은 눈을 비비고 있으니 부모님도 깨어나셨는지 거실로 나오셨다.
두 사람은 아직도 신재언과 차민재가 집에 있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너 출근은 어떻게 하려고?”
그에 재언이 피곤한 안색 그대로 힘없이 대답했다.
“…지금 출발하면 아마 아슬아슬하게 출근 전까진 도착할 거야.”
시계를 쳐다보며 출근 시간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했다. 차민재가 없었다면 체어맨을 불러 서울에 있는 집에서 좀 더 자다가 출근했겠지만, 옆에 그가 두 눈 부릅뜨고 쳐다보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 레드-헬-파이어를 운전기사로 쓸 기회가 언제 또 있을까. 그렇게 애써 자신을 위로하며 재언은 민재의 차에 올라탔다.
한참 차를 타고 시골길을 빠져나와 산길 도로를 달리고 있으니 맞은편에서 구급차와 119 소방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마을에 큰 사건이 터진 듯한 느낌에 신재언은 뒤쪽을 힐끔 쳐다봤다.
그러다 조각난 장난감의 눈을 통해 봤던 언럭키 네임리스의 처절한 비명이 이명처럼 귓가에 울렸다.
그는 아마 지금까지 자신을 고립시키고 멋대로 주변 사람들에게 저주를 거는 ‘그들’을 원망해 왔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부모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으며 납치되었다 살아 돌아온 어린 자신을 귀신 보듯 쳐다봤던 이유를 드디어 알아차린 것이다.
그가 비명을 지를 만큼 충격받을 만했다. 그런 그가 딱하긴 했으나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언럭키 네임리스는 히어로였고, 가까이하기엔 상당히 위험한 남자였다. 신재언으로서는 두 번 다시 엮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겨우 시간 맞춰 출근하고 뉴스 기사를 살펴보니 그 지역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던 남자가 산에서 아들을 찾다가 실종되었다는 기사가 두세 개 정도 속보로 떴다.
그 외에는 자세히 밝혀진 게 없는 기삿거리들뿐이었다. 하지만 신재언은 뉴스 속 아들과 남자의 최후가 어떻게 되었을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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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폭파됐으면…….’
신재언은 혼이 나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간절히 빌었다. 운석이 떨어져도 좋으니 회사가 폭파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일주일에 여섯 번을 출근하고 그중에 다섯 번이 야근일 수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노동법상 근무시간이 40시간 이상 넘어가면 안 되는 거 아니었어?’
회사는 항상 그렇듯 공식적으로 추가 근무를 지시하지 않는다. 다만, 야근하지 않고는 도저히 일을 끝낼 수 없게 만든다.
나름대로 회사 규정으로 인정해 주는 연장근로시간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이미 초과한 지 오래다.
‘역시 회사가 망했으면…….’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신재언은 회사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머릿속으로는 욕하면서도 몸은 착실하게 일을 끝내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중이었다.
잠시 숨 좀 돌리려 휴게실로 향하려다가 같은 부서 이 과장에게 혼나고 있는 신입을 보고 뒷걸음질 쳤다. 저런 때 과장님 눈에 띄거나 잡히면 신입 교육을 맡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과장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듯한 낯선 얼굴은 이번 분기에 새로 공채로 뽑힌 신입인 듯했다.
부서가 신입들로 북적였지만, 재언은 다행히 ‘김정훈’씨 이후로 신입 교육을 맡지 않았다. 그때 멘탈이 많이 털렸던 재언으로서는 사양하고 싶은 일이기도 했다.
“마침 잘됐다. 재언 씨, 잠깐 이리 와 봐요.”
본능적으로 다시 자리로 도망치려던 재언은 결국 자신을 낚아채는 이 과장의 부름에 피눈물을 쏟으며 다가갔다. 이제 보니 이 신입, 김 대리가 사수를 맡은 사람이었다.
“누가 이렇게 가르쳤어요? 사수가 누굽니까. 김 대리예요? 이런 식으로 가면 컨펌도 안 날 테고 만약 났다면 대형사고로 번졌을 텐데 몰랐습니까? 신입이라 해도 해서는 안 되는 실수가 있는데, 대영 씨는 틀리면 안 될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잘못됐네요. 재언 씨, 이분 다시 알려 주세요.”
“네, 과장님…….”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원래 사회생활이 인내와 고난의 연속이라고 한다지만 이건 너무한 것 아닌가.
분명 저 잘못된 업무 처리방식도 김 대리가 알려 준 게 분명했다. 저렇게 하라고 교육받았을 텐데, 신입은 하라는 대로 잘한 죄밖에 없었다.
사회악인 김 대리는 이게 가장 문제였다.
그가 알고 있는 업무처리 방식이나 내용은 틀리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잘못해 놓고 맞게 한 거라며 우겼다. 너무 뻔뻔하게 우겨서 맞게 알고 있는 사람까지 헷갈리게 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