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승민이를 가장 마지막으로 본 건 김 선생님이에요. 오늘따라 승민이가 유난히 기운이 없어 보여서 쉴 거냐고 물어보니까 그러겠다고 대답했대요. 그래서 저기 보이는 벤치에 승민이를 앉히고 잠시 다른 아이들을 보는 사이 사라졌고요. 나주희 씨가 물어본 건 그 이후 10분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였어요.”
“네 살짜리가 사라진 지 10분 정도라면 그리 멀리 가진 못했을 겁니다. 보육원 주변의 도로는 확인하셨나요?”
“네, 도로 쪽 CCTV도 확인했는데, 없었어요. 그쪽으로 간 건 확실히 아니에요.”
보육 교사들과 대화를 나누던 마더는 결론이 내려졌는지 턱을 괴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역시… 있을 곳은 여기밖에 없네요.”
몇몇 봉사자들과 보육 교사 한 명은 남아서 보육원 아이들을 돌보기로 하고, 그 외의 사람들은 승민이를 찾아다니기로 했다. 재언은 승민이를 찾는 쪽으로 정해졌다.
한참 동안 자리를 비웠던 차민재가 그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히어로들과 이레일을 대동한 채로 돌아왔다. 아직 앳된 티가 나는 이레일이 신재언을 보고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신 선생님! 오랜만에 뵙네요.”
“아… 키가 더 크신 것 같은데요?”
“어떻게 아셨어요? 5cm나 컸습니다.”
그 뒤 이레일은 마더와 박주연에게도 친근하게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레헬의 사무실에서 온 다른 두 사람은 A급 히어로였다.
믿어지지 않지만, 레헬에게는 번듯한 히어로 사무실이 있었다. 협회에서 관리하는 것이긴 해도 사무실을 구성하는 인원은 레헬이 직접 고르기 때문에 등급이 높은 히어로의 사무실에 뽑히는 건 그 자체로 영광이었다.
실제로 히어로를 목표로 하는 능력자들은 레헬의 사무실로 들어가기를 가장 바란다고 했다.
자신이 데려온 사무실 인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민재와 잠시 거리를 벌려 멀어진 재언은 주머니에서 반지 케이스를 꺼냈다.
어느새 경찰들이 도착해 승민이를 찾는 일에 동참한 것을 보면서 조각난 장난감에게 속삭였다.
“조각난 장난감. 승민이를 찾아 줘. 이곳 어딘가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대. 여기에 S급 히어로가 둘이나 있고 다른 히어로들도 많으니까 최대한 조심해서 다녀. 혹시라도 위험할 것 같으면 그냥 돌아와. 만에 하나라도 네가 다치면 큰일이니까.”
조각난 장난감이 알겠다는 듯 재언의 손바닥 위에서 몇 번 구르다가 두둥실 떠올랐다. 고마운 마음으로 그녀가 멀어지는 걸 보던 재언은 차민재에게 다가갔다. 조각난 장난감과 그가 마주치지 않게끔 감시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승민이를 찾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마더가 운영하는 보육원은 넓이도 상당했고 운동장을 비롯해 어린아이가 숨을 만한 곳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곳곳에 CCTV가 있다지만 사각지대도 상당수 존재해서 찾는 데 시간이 지체되는 중이었다.
그때, 신재언의 손바닥으로 눈알이 스르륵 날아왔다. 조심스럽게 눈알을 챙긴 재언이 작게 속삭였다.
“찾았어?”
그러자 조각난 장난감이 긍정하는 것처럼 눈알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역시 그녀는 이럴 때 아주 큰 도움을 주었다.
그 순간 뒤에서 차민재가 말을 걸었다.
“재언 씨, 거기 누구랑 대화 중입니까?”
화들짝 놀라 급하게 뒤도는 바람에 하마터면 조각난 장난감의 눈알을 떨어트릴 뻔했다. 조심스럽게 눈알을 주머니에 넣으며 차민재에게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아… 아니요, 혼잣말을 좀 했습니다.”
“혼잣말이요?”
“네. 그렇게 어린애가 이렇게까지 꼭꼭 숨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유요?”
“어른들을 골탕 먹이고 싶다는 어린 마음에 그럴 수도 있다지만, 그런 것치곤 너무 본격적으로 꼭꼭 숨어 버렸잖아요. 어느 CCTV에서도 수상한 사람이 발견되지 않았으니 아이가 자발적으로 움직였다는 건데 그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리고 제가 어렸다면 이럴 때 어디에 숨었나 하고요.”
재언의 대답은 민재를 향한 것이기도 했지만 때마침 곁에 있던 마더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녀는 20년간 보육원을 운영하면서 수많은 파렴치한 부모를 많이 봐 왔을 것이다.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 마더와 다른 히어로들에게 둘러싸인 레헬을 두고 몰래 빠져나온 재언은 조각난 장난감이 알려 주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 바로 알아냈다고 사람들을 불러오는 건 수상하기 짝이 없을 테니 아이가 무사히 잘 있는지 확인하고 움직일 심산이었다.
조각난 장난감이 알려 준 곳은 아주 오랫동안 방치된 듯한 지하창고였다.
그것도 창고 가장 안쪽에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로 연결된 숨겨진 공간이었다. 얼마나 오래 방치되어 있었는지 사다리에도 먼지가 잔뜩 앉아 있었는데, 작게 쓸린 흔적이 눈에 보였다.
이런 공간을 찾아낸 네 살짜리 어린아이도 대단한데 그걸 또 발견해 낸 조각난 장난감도 대단했다.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아낼 수 있었는지 둘에게 묻고 싶었다.
“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작은 문을 밀어 올렸다. 그런데 위쪽으로 연결되는 구멍이 너무 작아서 덩치가 큰 재언이 통과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머리는 쉽게 빠져나왔는데 넓은 어깨가 걸렸다. 끙끙거리며 어깨를 움츠려 겨우 나오자 이번엔 가슴이 문제였다.
“후!”
숨을 잔뜩 내쉬며 가슴을 통과하니 다행히도 그다음부터는 수월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 다락방처럼 생긴 안쪽은 높이가 굉장히 낮아서 완전히 서 있을 수는 없었고 허리를 잔뜩 숙여야 했다.
먼지와 거미줄이 자욱하게 쌓인 데다 워낙 어두워서 앞이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재언은 어깨와 머리에 걸리는 거미줄을 치우며 작게 기침했다.
“조각난 장난감. 아이는 어디에 있어?”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조각난 장난감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라 재언을 더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러자 기둥 뒤에 있는 작은 머리통이 보였다.
안도감에 한숨을 푸욱 내쉰 재언이 머리통을 향해 말을 걸었다.
“꼬마야. 승민아, 너 왜 여기 숨어 있니?”
부드러운 말투로 다정하게 말을 걸었지만 자고 있는지 아이는 답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의 곁으로 바짝 다가가 샅샅이 훑어봤다. 다행히 아이는 새근새근 숨을 쉬고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쉰 재언은 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려 보고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곧바로 이마와 얼굴에 손을 대 보았더니 아이의 몸이 불덩이같이 뜨거웠다.
여유롭게 시간을 끌 때가 아니었다. 사람을 불러와야 한다. 허둥지둥거리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려다가 바닥에 떨어트렸다.
나무 바닥에 핸드폰이 부딪치는 요란한 소리가 지하창고에서 크게 울려 퍼졌다. 그러자 아이가 눈을 감은 채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저씨 시끄러워……. 엄마가 화낸단 말이야.”
아이의 목소리에 물기가 잔뜩 어렸다.
“시끄럽다고 오늘 아침에도 혼났단 말이야……. 나보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으라고 했는데 아저씨 때문에… 아저씨 때문에…….”
아이가 나이에 비해 말도 잘하고 똑 부러졌다. 잔뜩 열이 오른 아이의 몸이 걱정된 재언이 혹시 다른 문제가 있는지 이곳저곳 살폈다.
그러다 갈비뼈 쪽에 손을 대니 움찔하고 몸을 떠는 게 아무래도 뼈에 문제가 생긴 듯했다. 뼈에 금이 가거나 부러졌을지도 모른다.
이 정도로 몸이 성치 않은데 이런 구석진 곳을 어떻게 찾았는지 모르겠다.
심한 폭력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아이에게서는 증오 한 점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재언이 아이를 찾기 힘들었던 것도 있었다.
약간의 증오라도 보였으면 좋으련만, 아이는 부모를 미워할 줄 모르는 것이다.
“…네 엄마가 널 이렇게 만들었어?”
“…….”
“너는 엄마가 밉지 않니? 차라리 다른 사람한테 말해서 엄마가 벌을 받으면 되잖아.”
“싫어.”
아이의 대답에 재언은 잠시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다시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가 벌 받는 게 싫어?”
“우웅…….”
아이는 재언이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건드리자 아픈지 더욱 움츠렸다. 최근 기운도 없고 밥도 잘 먹지 않았다는 보육 교사들의 말이 떠올랐다.
이 작은 몸이 한계까지 온 것 같아서 심장이 철렁했다. 재언은 아래쪽 사다리를 향해 크게 소리 질렀다.
“승민이 찾았어요.”
한참 뒤에 근처에서 박주연과 마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승민이 찾았어요?”
“여기인 거 같은데? 어머, 여기에 이런 곳이 있었네…….”
재언은 먼저 두 사람에게 아이를 조심스럽게 건네준 뒤 또다시 힘겹게 구멍을 빠져나와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아래로 내려가자 마더와 박주연이 안도하는 얼굴로 아이를 안고 있는 게 보였다.
열이 나면서 힘없이 늘어진 모습을 지쳐서 그런 것이라고 착각했는지 둘은 그저 아이를 토닥이기만 했다.
“휴, 나주희 씨한테 빨리 연락하자. 얼마나 초조하겠어.”
“응.”
박주연이 핸드폰을 들어 올리는 것에 재언이 아이를 챙기는 척 막았다.
“먼지를 뒤집어썼어요. 일단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재언의 말에 마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지하창고에서 나와 가까운 빨랫줄에 걸려 있는 작은 웃옷을 들고 아이의 옷을 벗겨 냈다. 곧이어 알록달록 멍든 아이의 맨몸이 드러났다.
멍이 좀 빠져 노랗게 된 부분 위로 다른 멍이, 그 뒤로 또 다른 자줏빛 멍이 도드라지게 보였다. 아이가 아파하는 것도 갈비뼈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도 알게 되겠지.
재언은 아이의 상태를 두 사람이 확실히 알 수 있도록 했다는 사실에 잔뜩 긴장한 채로 상황을 예의 주시했다.
경찰은 재언이 한 신고 네 번 모두 부모의 편을 들었다.
‘…당신은 히어로잖아, 마더. 설마 당신도 나주희의 말을 듣고 아이를 돌려보낼 건 아니지?’
신재언은 부디 자신이 나설 일이 없었으면 하고 빌었다. 만약 마더가 이대로 승민이를 부모에게 돌려보낸다면 오늘 밤 승민이의 부모는 체어맨의 지하 고문실에서 싸늘한 주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부디 어린 승민이를 도와주는 게 증오로 가득한 빌런이 아닌 히어로이길 간절히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