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일단… 뉴스 내용을 확인한 뒤에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만나서 듣는 게 좋겠어요. 미리 알려 줘서 고마워요, 이레일.”
이레일과 만날 약속을 잡고 통화를 마무리한 재언은 더욱 심해지는 두통에 이마를 문지르며 눈을 감았다. 핸드폰을 꼭 쥔 채 멀뚱히 선 그를 지켜보던 엔레이드맨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아버지,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어머니교의 교주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는 바람에 아버지께서 매우 곤란해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아.”
워낙 우여곡절이 많은 일상을 지내다 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다. 히어로 협회에서는 ‘어머니교’라는 정식 명칭으로 불러 주는 모양이지만, 일반인에게는 사이비 종교에 미친 사이코패스 집단일 뿐이었다.
어머니교.
교주가 신도들의 어머니, 즉 대모라 불리는 것에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다만, 교주보다는 정신 나간 신도들 때문에 악명을 떨치는 집단이었다.
설립된 지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았고, 백 명 안팎의 신자 수로 규모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논란과 범죄를 양산해 왔다.
그동안 어머니교 신자들이 벌인 짓 중에 가장 흉악하고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린 사건은 ‘종로3가역 칼부림 사건’이었다.
사람이 빽빽하게 많은 퇴근 시간의 종로3가역에서 팸플릿을 들고 끊임없이 ‘어머니교’를 찬양하며 홍보하던 한 남자가 칼을 꺼내 들고 휘두른 사건이었다. 그로 인해 사망 3명에 1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었다.
뉴스로 보도된 사건의 전말도 어이가 없었다. 남자가 한창 ‘어머니교’에 대해 연설하던 중, 지나가던 한 무리의 남자들이 자신을 비웃었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더욱더 어이없는 사실은 남자가 비웃은 무리가 아닌 죄 없는 다른 일반인에게 칼을 휘둘렀다는 점이다. 그래 놓고 그는 히어로들에게 제압당하던 도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신도들이 어찌나 극성이고 공격적인지 어머니교를 사이비라고 비난하는 사람을 폭행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히어로 협회에선 ‘어머니교’에 대해 빌런 집단으로 분류하고 신자 몇 명을 지명수배했다.
‘상황이 더 이상하게 돌아가네……. 제이룸이 그런 사이비 종교에 가입했다고?’
신도들은 대모, 즉 교주가 신의 대리인이자 한 몸이나 마찬가지이기에 마땅히 따르고 복종해야 한다고 찬양했다. 또한 그들이 모시는 신이 세상의 모든 만물을 태어나게 했고 언젠간 봉인된 힘이 깨어나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내용의 교리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한술 더 떠 대모는 방송국에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녹음해 보내기까지 했다. 녹음 내용은 한 방송국 뉴스에서 어떤 내용도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생생하게 방송되었다.
대모가 어느 날 꿈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보았고, 그곳의 인간들이 신을 제대로 모시지 않아서 분노한 신께서 세상을 멸망시켰다는 밑도 끝도 없는 내용의 녹음본이었다.
세상이 멸망해도 살아남는 방법은 오로지 대모인 자신을 통해 그분의 용서를 받는 것뿐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한 마디를 덧붙였는데, 그게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당시 월급 전날이라 긴축 생활을 위해 저녁에도 라면을 먹던 재언이 그 말을 듣고 사레가 들려 죽을 뻔했다.
- 저는 다크 카오스의 아내입니다.
“콜록! 콜록, 켁! 켁켁!”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 그녀에게는 미안하지만 다크 카오스는 게이라서 아내를 들일 수 없는 몸이었다. 자신은 절대로 유부남이 될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그때는 차민재의 직진 같은 플러팅과 고백에 정신없던 때였다.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마지막 충격 발언은 그 누구도 깊게 신경 쓰지 않았다. 워낙에 ‘어머니교’ 신자들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기 때문이다.
제이룸이 그런 어머니교 신자인 데다 3년 전 양이연을 자살로 꾸며 살해한 범인이라니, 너무나도 어이없고 놀라웠다.
그가 남학생들에게 총을 쏠 때 보여 주었던 무정하고 잔인한 말투와 행동을 떠올리면 조금은 납득이 갔다.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으니까 말이다.
“그러면 대체 그 남학생들은 왜 죽인 거지? 결국 양이연을 살해한 건 본인인데?”
재언의 의문은 다음 날 아침, 찝찝한 기분과 맞바꾸어 풀리게 되었다.
양이연의 죽음을 재조사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내용의 뉴스 속보로 아침부터 떠들썩했다.
신재언이 관심을 가진 사건에 경찰청장이 은밀하게 조사를 시킨 듯했다. 재조사 과정에서 제이룸이 그녀가 죽기 직전 대학교 건물로 뒤따라 들어가는 영상과 목격자 진술을 새롭게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제이룸이 3년 전에 양이연을 스토킹해 두 번이나 현행범으로 체포되었지만, 모두 경고 차원으로 끝나고 집에 돌아갔다는 기록도 드러났다.
- 유명 스타일리스트 J 씨의 집에서 찾아낸 일기장입니다. 일기장 안에는 3년 전 죽은 Y 씨에 대한 집착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기자가 제법 두툼한 수첩이 찍힌 사진을 가리키며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일기장 안에 무슨 이야기가 적혀 있는지 자세하게 보도되진 않았다.
다만 대략적으로 그녀에 대한 집착 어린 심정과 그들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기자가 전했다.
‘그들’이라는 건 양이연에게 설사약을 몰래 먹인 대학생들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양이연은 왜 죽인 거지? 그 남학생들을 죽인 이유는 뭐고?’
도통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조금이나마 해소된 건 다음 날 개인적으로 만난 이레일 덕분이었다.
검사 결과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확진을 받고 퇴원했지만 이레일은 여전히 팔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나타났다.
“그래도 아무런 이상 없이 퇴원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신 선생님.”
이레일을 데리고 재언은 회사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유명한 일식 돈가스집으로 향했다. 구석진 자리에 마주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삭하게 튀겨져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돈가스가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한입 크기로 먹기 좋게 잘려 나온 돈가스를 몇 점 먹은 재언이 눈치를 보다가 본론을 입에 담았다.
“이레일 씨가 말했던 대로 제이룸이 양이연 씨를 죽인 범인이라던데. 게다가 그 학생들이 그녀에게 설사약을 몰래 먹인 일까지 기사로 올라오는 게, 이번엔 조사가 확실하게 됐나 봐요.”
“네. 경찰 쪽에서 이상하게 재조사에 착실히 임하더라고요.”
이레일이 의아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미 짐작 가는 바가 있어도 말해 주지 못하는 재언은 어설프게 웃을 뿐이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모두 죽어 버려서……. 해명 기사가 나도 딱히 논란거리가 되진 않더라고요.”
“루머는 쉽게 퍼져도 정정 기사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니까요.”
잔뜩 풀이 죽은 이레일의 젓가락이 멈춰서 움직이지 않자 재언이 재빠르게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제이룸은 본인이 양이연 씨를 죽였으면서 복수랍시고 다른 학생들에게 손을 댄 이유가 뭘까요.”
“일기장에 따르면 제이룸은 양이연 씨를 뮤즈이자 원석이라고 칭했어요. 아름다운 보석이 더럽혀진 것에 대한 분노로 살해한 것 같아요.”
조사하는 과정에서 경찰에게 들은 것이 있었는지 이레일이 술술 대답했다.
“그동안의 스토킹 정황들도 자세하게 쓰여 있었는데, 그는 양이연 씨에게 꽤 추잡한 짓도 서슴없이 했더군요. 그녀가 출연한 방송에서 도와주는 대신 나체 사진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미친놈이네.”
이레일은 꽤 격한 재언의 반응에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양이연 씨는 우승하고 싶은 마음에 그걸 허락했고요. 자신이 그렇게 노력해서 얻어 낸 보석인데 그걸 더럽혔으니 치미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나 봅니다. 상당히 오래전부터 살해 계획을 짜고 있었던 것 같아요. 학생들 사이에서 분란이 일어나는 바람에 계획이 틀어졌고요”
“그럼… 그때 독살당한 학생은,”
“네. 제이룸에게 살해당한 남학생들의 짓이었어요.”
말을 마친 이레일이 젓가락을 든 채 잔뜩 힘없는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도주한 제이룸의 행방은 전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아마 어머니교 어딘가에 숨어 있겠죠.”
재언은 입맛이 뚝 떨어진 듯한 이레일을 걱정스럽게 보다가 결국 그를 끌고 나와 근처의 베이커리 카페로 들어갔다. 각자 먹고 싶은 디저트와 아메리카노 한 잔씩을 주문하고 카페의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 잡았다.
재언은 캐러멜 시럽이 예쁘게 뿌려진 크로플을, 이레일은 접시 위에 가지런히 잘린 바게트와 일회용 용기에 담긴 딸기잼을 받았다. 빵에 딸기잼을 발라 먹는 걸 좋아하는지 그늘져 있던 이레일의 얼굴이 조금은 밝게 변했다.
“기억이 잘 나는 건 아닌데,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먹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재언이 자신의 안색을 살피는 걸 눈치챈 이레일이 민망한 듯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저번에 만날 때도 빵을 사고 있더니, 외국인이라 빵을 좋아하나?
재언은 그가 더 신경 쓸까 봐 시선을 돌렸다가 문득 깨달은 사실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이레일… 그런 사실을 일반인인 제게 말해 줘도 됩니까?”
여기까지는 뉴스에 나오지 않은 것 같은데, 이렇게 쉽게 이야기해 줘도 되는지 걱정스러웠다. 나름대로 조사해 본다면 알아내지 못할 것도 없지만, 그가 히어로로서 조사한 내용이기에 마냥 마음 편하게 들을 수가 없었다.
재언의 예상대로 이레일이 대답을 머뭇거렸다.
“일반인에게는 비밀로 해야 하긴 합니다만…….”
“그런데 저한테 말해 주셨잖아요. 괜찮아요, 이레일? 물론 제가 어디 가서 떠벌리고 다닐 생각은 없지만…….”
재언 나름대로 어린 나이의 사회 초년생이 걱정되어서 꺼낸 말이었다. 하지만 이레일이 멍한 표정으로 빵을 들어 올리며 빙긋 미소 지었다.
“하지만 신 선생님께서 관심 가지셨잖아요. 궁금해하시는 것 같았어요.”
‘저게 무슨 소리지?’
재언이 대놓고 의아한 표정을 지어도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한 사람처럼 이레일은 남은 빵에 잼을 발라 입에 쏙 넣었다.
마지막까지 쑥스럽다는 듯 웃는 이레일과 헤어지고 집에 돌아온 재언은 어머니교의 성실한 신자였던 제이룸이 지방의 어느 허름한 모텔 룸에서 총으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양이연 사건처럼 그마저도 주목받지 못한 채 뉴스 보도 한 번만을 끝으로 조용히 묻혔다. 실력 있는 스타일리스트였던 그가 대체 왜 사이비 종교에 빠져 남의 인생을 나락으로 보냈는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신재언은 자신이 더 이상 ‘어머니교’에 관여될 일은 없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