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 연쇄살인범의 이름은 김철관입니다. 꽤 악명높은 범죄자였죠.
“아…….”
재언은 그 연쇄살인범을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의 피해자를.
김철관. 그는 15년 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연쇄살인범이었다. 늦은 밤, 귀갓길에 오른 여성들을 한 명씩 납치해 처참하게 토막 낸 뒤 가방에 담아 산속에 버리는 악독한 짓을 반복했다.
자신보다 힘이 약한 여성들을 타깃으로 하는 강약약강의 찌질한 범죄자였다. 하지만 머리를 잘 굴린 탓에 그가 죽인 피해자 수가 열 자리를 넘어가도록 경찰이 증거를 찾는 데 난항을 겪었다.
그러나 아무리 완벽한 범죄자라도 연속된 살인에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결국, 1년 동안 끈질기게 추격한 형사들이 서울 강서구 외곽의 모텔에서 그를 체포했다.
그를 잡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형사는 서울 강서 경찰서의 강력계 팀장으로 연쇄살인 사건의 종지부를 찍었다. 그 뒤로 승승장구해 10년 뒤에는 경찰청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런데 감옥에서 형을 살고 있던 김철관이 탈옥에 성공해 자신을 체포한 형사의 딸을 납치해 잔인하게 토막 내 살해했다. 그 피해자가 바로 조각난 장난감이었다.
‘세상에 이런 우연이…….’
주머니 속에서 조각난 장난감의 눈알이 부르르 떨었다. 재언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조심스럽게 눈알을 꺼냈다. 눈물을 뚝뚝 흘리는 눈알이 안타까워 재언은 품에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지만, 김철관은 조각난 장난감이 산 채로 조각내 하수구에 버려 괴로워하며 죽어 갔다. 그럼에도 조각난 장난감은 김수지가 그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듣는 순간부터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이쪽은 타락한 추기경, 저쪽은 조각난 장난감이라니. 이번만큼은 정말 관여하고 싶지 않아지는군……. 이단 심문관이 이런 사람일 줄 알았다면 오지 않았을 텐데…….’
재언은 내심 가해자의 자식들에게까지 죄를 전가하고 싶지 않다고 여겨 왔다. 하지만 피해자들에게 그들을 용서하라고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그만큼 조심스럽고 어려운 문제였다.
“신경 써 줘서 고마워요, 민재 씨. 시간도 늦었으니 어서 자요. 내일 연락해요.”
- 네. 잘 자요, 재언 씨.
질린 눈으로 라파엘이 있는 쪽을 바라보던 재언은 차민재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통화를 마쳤다.
히어로가 일반인에게 어디까지 정보를 알려 줘도 되는가에 대한 고민을 이제 그만두기로 했다. 이번처럼 필요하고 중요한 정보는 잘 받고 그 외에는 잊어버리면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발길을 돌려 성당으로 들어가자 아직도 누군가에게 기도를 올리는 라파엘이 보였다. 재언은 질린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라파엘은 자신의 원죄를 갚기 위해 교황이 시키는 일을 처리했다고 하지만, 그가 저지른 일은 김수지 같은 피해자를 만들어 냈다. 그렇다면 그가 속죄하려는 아버지의 죄와 멀쩡했던 여성을 나락으로 떨어트린 죄, 어떤 것이 더 강할까.
게다가 바티칸의 이단 심문관인 주제에 다크 카오스를 신이라고 생각하다니, 조금 이상했다. 그리고 세간에는 다크 카오스의 능력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자신의 아버지가 타락한 추기경에게 지은 죄를 갚기 위해서라기엔 명분이 조금 약했다. 재언은 턱을 쓰다듬으며 라파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라파엘 당신… 그때 보고 있었군요.”
“…….”
“지금 당신이 이러는 이유는 당신 아버지가 에렌 성에게 저지른 죄 때문만이 아닌 거죠.”
그러자 라파엘이 기도를 드리는 자세 그대로 고개를 들어 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고개를 끄덕여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감춰 왔던 비밀을 줄줄 읊기 시작했다.
“맞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추기경님을 납치하려고 했을 때도, 그리고 신부님들이 추기경님을 죽이려고 했을 때도 숨어서 모두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를 구해 주셨던 아름다운 분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보았지만, 너무 무서워서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나이가 열아홉 살이랬으니 그때는 더 어린아이였겠지. 그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그리고 신부들을 피해 어떻게 에렌 성을 구할 수 있을까.
무서웠을 것이다. 아이의 방관에 변명거리를 찾자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다음에 이어지는 그의 말을 재언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것만은 믿어 주세요. 저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기도했습니다. 추기경님을 제발 구해 달라고 빌고 또 빌었습니다. 첫 번째에는 제 기도가 미흡했는지 들어주시지 않았지만, 두 번째는 달랐습니다. 신께서 제 기도를 들으시고 추기경님을 구해 주셨으니까요. 당신은… 제 기도에 찾아오신 어둠의 신입니다.”
역시 그는 다크 카오스가 타락한 추기경을 구해 주고 힘을 주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다크 카오스를 신이라고 믿어 온 것이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재언은 결국 참지 못하고 라파엘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라파엘이 아무런 방어 동작도 하지 않고 주먹에 맞아 기절해 버린 걸 확인하고 가면을 벗었다.
돌처럼 단단한 이단 심문관의 몸 때문에 재언의 손이 욱신거렸다. 그래도 황당하고 더러운 기분은 풀어지지 않았다.
‘이거 진짜 사이비 아냐? 말이 앞뒤가 안 맞고 이상한 믿음만 건재하잖아.’
결국, 라파엘은 속죄한다고 해 놓고 김수지를 찾아가 같은 괴로움을 가지고 있다며 접근해 그녀에게 입에도 담기 힘든 몹쓸 짓을 저질렀다. 그래 놓고도 여기서 또다시 속죄하며 기도나 올리고 있었다.
어쩐지 다크 카오스가 나타났을 때 그의 눈빛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반짝인다 싶더라니…….
타락한 추기경을 구했을 때처럼 자신의 기도가 먹혔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교도들을 심판하고 선교하는 역할을 맡은 이단 심문관이 사실 신도 아닌 존재를 믿고 있다니, 너무나도 어이가 없었다. 이 정도면 교황청은 그가 사이비라도 상관없는 게 아닐까.
자신들의 손을 대신 더럽혀 줄 존재라면 어떤 신을 믿든지 개의치 않은 듯했다. 재언의 입장에선 이쪽이고 저쪽이고 온통 사이비들밖에 없었다.
“엔레이드맨. 그를 가두고 내가 부를 때까지 대기하고 있어.”
“네, 위대하신 우리의 아버지.”
허공에서 나타난 엔레이드맨이 라파엘을 데리고 모습을 감추자 어수선했던 성당 안이 고요해졌다. 라파엘이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이 부근에서 개미 한 마리 찾을 수 없을 만큼 아무도 없었다.
“타락한 추기경. 괜찮아. 다 끝났어. 너는 드럼통 안이 아니고 그들에게 복수했잖아.”
재언은 피눈물을 흘리는 타락한 추기경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이렇게 해 주지 않으면 폭발한 그가 이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지도 몰랐다.
이전에 온화한 표정으로 넘어가겠다고 말하기에 괜찮은 줄 알았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 재언의 섣부른 판단은 타락한 추기경의 바티칸 2차 학살로 이어졌었다.
“성자의 시신은 그것만으로도 신성하다고 여겨 몸을 토막 내 약품 처리한 뒤 로마의 각 성당에 안치합니다. 저는 바실리오를 더러운 교황청 놈들이 자기 멋대로 찢어발기는 걸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나의 전지전능하신 아버지여…….”
타락한 추기경의 중얼거림에 고개를 끄덕인 재언은 벗어 놨던 가면을 성당 한가운데에 던져 놓았다. 그리고 여전히 울고 있는 조각난 장난감과 타락한 추기경을 챙겨 급하게 ‘파도치는 절벽 위 별장’으로 돌아갔다.
‘라파엘이 사라지고 이걸 발견한다면 다크 카오스라는 이름만 들어도 이를 가는 바티칸이 이 뜻을 모를 리 없겠지!’
별장으로 들어온 재언은 시간이 늦은 것을 확인하고 다른 자식들에게 타락한 추기경과 조각난 장난감을 잘 보살펴 주라고 거듭 당부했다.
재언도 그들을 가까이 살피고 싶었지만, 예상보다 시간이 걸려 늦은 시간이었다. 내일 지각하지 않고 출근하려면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위대하신 아버지의 부탁에 자식들은 머리를 맞대어 타락한 추기경을 위로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번에 아버지께서 선물한 가면을 경고 차원으로 바티칸에 하사하셨다면서요. 분에 넘치는 선물을 받은 그들이 만약 은혜도 모르고 타락한 추기경 오라버니의 심기를 건든다면 싹 다 잡아 족쳐서 그놈들의 머리를 선물로 드리는 거예요.”
예전에 그들과 한판 붙은 적 있는 귀신들의 성녀가 분노에 찬 표정으로 날카롭게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다니던 소중한 동생의 유품을 망가트린 바티칸에 대해 좋은 감정이 전혀 없었다. 그녀의 말에 소파에 앉아 난로를 바라보던 엔레이드맨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께 또다시 가면을 선물해 드려야 하는군.”
“좋은 생각입니다. 이번에야말로 아버지의 위대하신 명성과 위엄에 맞는 멋진 가면을 만들어드리도록 하지요.”
“아버지께서는 어떤 모습이시든 늘 위대하시지만, 그에 걸맞은 모습을 세상에 널리 알려 그분의 발밑에 두어야 하니까요.”
타락한 추기경을 위로하기 위해 모인 자리가 어느새 다크 카오스의 위대한 업적을 찬양하는 자리로 변모했다. 사실 자식들의 공통된 주제는 언제나 ‘위대하신 아버지’를 위한 일을 꾀하는 것이었다.
다른 형제들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타락한 추기경은 언제나처럼 방 안에서 홀로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피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에렌 성이 조금이라도 눈물을 흘리면 뛰어와 어설픈 위로를 건네주었던 바실리오는 오늘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그의 육신은 영혼이 없는 망자나 다름없으니, 그가 스스로 에렌 성을 껴안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