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야, 야. 우리 승재가 너만 보면 존나 한숨부터 나온다잖아. 어쭈? 똑바로 자세 안 잡냐?”
짝! 짝!
뺨을 갈기는 소리가 골목길 안에서 살벌하게 울려 퍼졌다.
대여섯 명의 학생들이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의 소년 한 명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들은 친구가 안경을 끼고 있음에도 거리낌 없이 뺨을 내리쳤다.
얼굴이 퉁퉁 붓고 코피가 흘러나올 때까지 소년을 때리던 학생 중 한 명이 휘파람을 불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차! 우리가 씨발, 존나 매너가 없었네. 안경을 끼고 때리다니. 자자, 걱정하지 마, 민수야. 벗겨 주면 되잖아.”
민수는 히죽히죽 웃고 있는 험악한 친구들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저 제발 자신을 도와주러 누군가가 나타났으면 하고 몇 번이고 기도했다.
학생들은 저녁 늦은 시간까지 학원에 있어야 할 민수를 PC방부터 노래방, 놀이터, 공원, 비어 있는 화장실 등등, 여러 곳에 끌고 다녔다. 그리고 놀이를 하듯 벌칙으로 두 시간 동안 투명 의자나 어려운 심부름을 시켰다.
그러다 집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 되면 그들은 슬슬 지겨워졌다는 표정으로 하루의 마지막을 폭력으로 장식하곤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마지막으로 무자비한 구타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재밌어?”
그때, 뒤쪽에서 들린 의문 섞인 중얼거림에 학생들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그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찾았다.
“어? 뭐야, 이 찐따같이 생긴 새끼는?”
학생들의 눈에 그들 자신과 또래처럼 보이는 소년이 보였다. 혹시 작은 불청객이 다른 어른들을 데리고 온 건 아닌지 긴장하던 학생들은 곧이어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표정을 잔뜩 찌푸렸다.
이 일대에서 알아주는 자신들에게 겁도 없이 말을 건 찐따에게 매운맛을 보여 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잠시나마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질 것 같았다.
“어? 이 자식 하피잖아.”
심지어 소년의 팔은 평범한 인간의 것이 아닌 깃털로 가득한 날개였다. 소년이 하피인 것을 확인한 학생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돌변했다.
사실 그들은 이 일대에서 유명한 일진이었다. 같은 학교의 하피 학생 네 명 중 세 명을 전학 가게끔 만들고 한 명은 자살로 몰고 간 파렴치한 놈들이었다.
처벌을 위한 입증이 힘들게 괴롭히면서 주축들은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데다가 학교 측에서 대놓고 그들을 감쌌다. 그렇기에 위원회가 열려도 봉사활동으로 끝나거나 한두 명에게 뒤집어씌워 강제전학을 보내는 것으로 일을 무마했다.
안 그래도 학교에 하피 학생들이 전학으로 도망가는 바람에 심심하던 찰나, 그들의 눈에 아주 좋은 먹잇감이 포착된 것이다.
“승재야. 이 새끼 어떻게 할까?”
특히 그들 중에서도 뒤쪽에 서서 폼만 잔뜩 잡고 있던 학생 한 명의 눈동자가 가장 빛났다. A급 히어로를 부모로 둔 김승재라는 이름의 학생은 이미 초등학생 때 능력을 각성한 능력자에 학교 폭력의 주동자였다.
그는 준수한 외모와 큰 키로 피팅 모델과 아이돌 연습생을 겸하고 있어 대외적으로 상당히 인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본인이 직접 때리거나 괴롭힌 적은 없었고, 뒤에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편이었다.
“조져. 씨발 새끼가… 분수도 모르고 어디서 히어로 흉내야.”
일진들이 대놓고 서슬 퍼런 대화를 나누고 있음에도 눈앞의 하피는 멍하니 고개만 갸웃할 뿐이었다.
“…재밌어? 같은 사람을 때리는 게.”
“하피 새끼가 주제도 모르고 입을 나불거리네.”
김승재가 피식 웃으며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요즘 내가 좆만 해지긴 했나 보다. 이런 새끼들까지 덤비고…….”
요즘 몸을 사린다고 직접 나서진 않았는데, 하피 한 마리 때린 정도는 아버지가 잘 처리해 줄 것이었다. 혹여 논란이 나더라도 SNS에 먼저 시비를 건 쪽은 자신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 제 얼굴 사진만 올려 주면 팬들이 알아서 수습해 줄 게 분명했다.
그의 능력은 손날을 칼날처럼 단단하고 날카롭게 만드는 것으로 히어로 협회에서는 능력 사용을 제한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쓰고 싶을 때 능력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 능력으로 이미 초등학생 때부터 또래 학생들의 인생을 손쉽게 망가뜨려 왔기에 지금은 별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맞아. 너 같은 벌레들을 짓밟는 게 이 세상에서 제일 재밌어.”
담배 연기 사이로 보이는 김승재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그가 히죽 웃으며 손을 휘두르려는 순간,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희 거기서 뭐 하니?”
순찰차에서 내린 경찰들이 골목 바깥쪽에서 그들에게 말을 건 것이다. 그러자 들어 올린 손을 하피의 어깨에 올리며 김승재가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다.
“저희끼리 놀고 있었어요.”
인상이 험악한 다른 불량한 학생들과는 달리 환하게 웃는 잘생긴 얼굴은 누구에게든 호감을 사기 편했다. 하피 학생과 김승재, 다른 학생들을 한참 동안 유심히 살피던 경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도 늦었으니 다들 집으로 돌아가. 여기서 흩어지는 거 보고 갈 테니까.”
내심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경찰은 곧바로 순찰차에 타지 않고 자리를 벗어나는 학생들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김승재는 싱긋 웃는 얼굴 그대로 아무도 모르게 하피 학생의 귓가에 속삭였다.
“너 운 좋은 줄 알아.”
곧이어 김승재와 다른 친구들이 우르르 움직여 골목길에서 사라졌다. 그들을 무표정한 눈빛으로 보던 하피는 혹시라도 경찰이 이쪽으로 오기 전에 자리를 떠나려고 등을 돌렸다.
그런데 골목길 안에 남은 소년이 하피의 날개를 덥석 붙잡아 걸음을 멈춰야 했다.
“구해 줘서 정말 고마워. 너… 꼭 히어로 같았어.”
“…….”
하피, 버드맨의 표정이 일순 흐려졌다. 히어로를 동경하는 반짝거리는 소년의 눈이 마치 지난날의 자신을 떠올리게 했다.
.
.
.
소년을 구한 건 어디까지나 충동적인 짓이었다. 버드맨의 위대하신 아버지께서는 미성숙한 그가 무슨 사고를 칠까 항상 걱정하며 사고 치지 말라는 경고를 버릇처럼 내뱉었다.
아버지의 말을 가슴에 꼭꼭 새기는 버드맨에게 있어 ‘최민수’라는 이름의 학생을 구해 준 건 정말 이례적인 일이었다.
일진들이 한 학생을 둘러싸고 때리며 모욕적인 말과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 광경에 구역질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들은 친구를 때리면서 재미를 찾고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게임을 하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사람처럼 말이다.
불행한 한 명 덕분에 나머지 사람들이 전부 행복한 영화를 본 기분이었다.
“버드맨. 혹시 사고 치고 다니는 건 아니지?”
“아버지……!”
생각에 빠져 있던 버드맨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신재언은 가끔 ‘파도치는 절벽 위 별장’에 들르긴 하지만, 버드맨과 마주치는 일은 그보다 더 적었다. 그건 재언이 일부러 들여다보지 않은 게 아니라 이번처럼 독자적으로 사고 칠 뻔한 버드맨이 지레 찔린 마음에 방에서 나오지 않은 탓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신재언의 변함없는 푸른 눈동자가 버드맨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편안하게 만들었다.
‘세준아.’
‘우리 세준이.’
누군가의 흐릿한 목소리도 귓가에 맴돌았지만, 버드맨은 그 따뜻했던 음성이 순식간에 비수가 되어 날아온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친구를 사귀었다고 들었는데, 혹시 이상하거나 나쁜 놈은 아니지?”
“…친구가 아니에요.”
“뭐… 네가 알아서 하겠지.”
신재언은 버드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런저런 충고를 한 뒤 엔레이드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엔레이드맨 형님에게 무언가 부탁할 것이 있거나 시킬 일이 있으신 게 분명했다.
버드맨은 늘 그게 불만이었다. 어서 능력을 인정받아 위대하신 아버지의 명령을 받으며 위대한 발자국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다.
“청소년 보호법에 걸려서 안 돼!”
하지만 신재언은 버드맨에게 명령하기를 완강하게 거부하며 아이처럼만 대했다.
심지어 마약왕을 통해 외국의 고등학교에 입학할 준비까지 진행되는 중이었다. 버드맨은 아직 학교라는 말만 들어도 속에서부터 열이 끓어올라 주체하기 힘들었기에 아직은 거부하고 있었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운 버드맨은 멍하니 있다가도 계속해서 들리는 환청과 환각에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세준아.’
‘우리 세준이 이리 와. --한테 걸어와 봐.’
“시끄러… 시끄러워……. 당신들은 나를 버렸잖아……. 나한테 문제가 있다고 나를 매도했잖아. 결국… 결국…….”
흔적 없는 상처의 고통을 견디는 버드맨의 이마에 식은땀이 주룩주룩 흘렀다. 비록 눈물은 흐르지 않았지만, 그의 눈가에 땀이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결국 버드맨은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어젖혔다.
@
최민수는 고등학교 2학년생으로 1학년 때부터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머리가 좋은 학생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 없이 할아버지와 단둘이 생활해 왔고, 할아버지는 고물을 주워 팔고 나라에서 나오는 연금으로 생활비를 마련하며 어린 손자를 키웠다.
허름한 집에 넉넉하지 않은 생활비에도 할아버지는 손자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할아버지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 민수는 더 열심히 공부해 한국에서 제일가는 대학의 의예과를 노릴 정도의 성적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전 과목 무료로 다닐 수 있게 해 줄 테니 제발 와 달라는 학원도 여럿이었다. 하지만 그게 최민수 때문에 전교 2등에 머물러야 하는 김승재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을 줄은 누가 알았을까.
요 며칠 동안 김승재는 다른 친구들을 시켜 최민수를 억지로 끌고 다니면서 괴롭혔다. 그래도 최민수는 그런 폭력에 굴하지 않고 견뎌 내서 꼭 성공하고 싶었다.
길을 걷던 최민수는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 주머니에 있는 돈을 확인하고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나왔다.
요즘 새로 사귄 친구 덕분에 김승재에게서 벗어나 겨우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제 슬슬 약이 오른 김승재가 무슨 짓을 해 올지 몰라 무섭긴 했지만 지금 당장은 좋았다.
그때 자신의 뒤에서 들리는 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 환하게 웃었다.
“왔구나! 이거 너 주려고 샀어.”
버드맨은 건네주는 아이스크림을 날개로 받으며 살짝 삐딱하게 서서 최민수를 노려봤다. 하지만 민수는 환하게 웃기만 했다.
그가 일주일 동안 빠짐없이 이 시간에 나타나 김승재에게서 최민수를 구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날개깃들은 마치 의지라도 있는 것처럼 김승재와 그의 친구들이 있는 곳을 알아내 최민수가 피해 갈 수 있도록 길을 안내했다.
아이스크림 포장을 벗기며 버드맨은 마음속으로 혼란스러움과 못마땅함을 동시에 느끼는 중이었다.
‘나는 왜 그를 도와주고 있지? …예전의 내 모습이 겹쳐서? 불쌍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