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근하는 빌런-145화 (145/324)

145화

“여기 볶음면이 진짜 맛있거든요. 새로 생긴 곳인데 재언 씨는 아직 와 본 적 없죠? 저희는 그저께 와 봤어요.”

직장인에게 가장 중요한 점심시간. 팀원들과 함께 향한 중식당 앞에서 임 대리가 잔뜩 신이 나서 자랑하듯 입을 열었다.

간만에 밖에 나와서 점심을 먹을 여유가 생긴 재언도 기대하는 표정으로 식당에 발을 들였다. 요즘 느긋하게 밖에서 점심을 사 먹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터라 재언에게는 새로 생긴 맛집들을 탐방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내한한 교황, 아니 교황의 대리가 한국에서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일정이 꼬여서 재언이 맡은 프로젝트를 엎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점심시간에도 미리 편의점에서 사 온 샌드위치나 탕비실에서 컵라면을 끓여 먹어야 했다. 정말 그쪽 동네랑은 상성이 최악이다.

재언이 들뜬 마음으로 주문한 매운 계란 볶음면을 한입 먹자마자 가게 벽면에 있는 TV에서 나오는 속보로 인해 사레가 들어 기침이 쏟아져 나왔다.

급하게 물을 마시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세히 본 TV 뉴스 안에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대피령이 떨어졌고, ‘학살자 버드맨’이 학생들을 인질로 삼았다는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뭐, 뭐 하는 거야!?’

@

김승재는 늘 자신만만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주변에선 그를 떠받들었고, 또래 아이들은 무서워하면서 존경했다. 커 가면서도 잘생긴 외모와 큰 키를 가진 덕에 사람들의 호감이 기본으로 따라왔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모두의 존경을 받는 히어로였다. 그 역시 능력자로서 무서운 것 없는 대단한 학교생활을 보냈다.

어린 나이지만 잔인하기 짝이 없어서 그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폭력을 사용했고 사람을 때리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난다 긴다 하는 일진들조차도 그가 능력을 보여 주면 벌벌 떨기 일쑤였다.

학교에서도 능력자에 공부까지 잘하는 김승재를 어떻게든 감싸고돌았다.

그런 김승재가 지금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 채 덜덜 떠는 중이었다. 그의 깨끗하고 단정했던 교복이 여기저기 찢기고 흙탕물에 구른 것처럼 더러워졌다.

마치 날카로운 칼날에 잔뜩 베인 것처럼 온몸이 자잘한 상처로 가득했다. 17년 평생 동안 이만큼 더러운 꼴은 김승재도 처음이었다.

“날 가만두지 않겠다면서. 근데 넌 지금 날 눈앞에 두고도 가만히 있네.”

버드맨은 날개로 김승재의 뺨을 여러 차례 내려치면서 중얼거렸다.

강세준일 때도 그랬지만 버드맨 역시 폭력을 싫어해 남을 때리려고 한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요즘 그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김승재는 이어지는 폭력을 결국 이기지 못하고 뒤로 벌러덩 드러누워 얼굴을 감싸며 울었다.

“그만, 그만 때려! 너무 아프니까 제발 그만!”

“정말 웃기네……. 네가 때렸던 사람들은 아프지 않았나 봐?”

김승재는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눈엣가시 같던 찐따가 드디어 벌레처럼 빌빌대며 굴복했기 때문이었다.

별것도 없는 놈이 공부 요령만 좋아 시험에서 자신을 이기는 꼴이 아주 아니꼬웠다. 전교 1등만 한다고 그놈이 바라는 대학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웃겼다.

그곳은 자신처럼 아버지의 든든한 후원을 받아 대회나 공모전에서 상을 타고 동아리, 봉사활동도 다니면서 스펙을 쌓은 사람이 가야 했다. 가난하고 공부 외에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최민수가 가야 할 곳이 아니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전교 1등을 유지했던 김승재는 성적표를 받아올 때마다 아버지가 뿌듯해하는 게 매우 좋았다. 전교 2등이어도 잘했다고 좋아하셨지만, 1등을 해서 아버지를 더 기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눈엣가시였던 놈의 할아버지를 건들자마자 물 위의 물고기처럼 파닥거리는 모양새가 너무 웃기고 재밌었다.

김승재는 몇 번이고 녹화한 동영상을 돌려봤다. 옆에 있던 그의 친구들 또한 최민수의 꼴이 계속 생각났는지 계속해서 떠들어 댔다.

“하하하! 그 새끼 꼽등이처럼 튀어 오르는 거 봤어?”

“개 웃겨. 근데 너도 진짜 쓰레기다. 마지막 발악이었는데 얼굴을 발로 뭉개 버리냐.”

그들은 눈물을 글썽여 가면서 배를 움켜잡고 웃었다. 그리고는 동영상을 자기들끼리만 아는 SNS 계정에 올려 공유했다.

“그러고 보니 철웅이 자식 대체 어디 간 거야? 집에도 없고 연락도 안 받고…….”

웃고 떠들던 무리 중에서 누군가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투덜거렸다. 지하 단칸방에서 혼자 살고 있는 학생으로, 박철웅이 가출할 때마다 그의 집으로 찾아가곤 했다.

그런데 이틀째 연락 두절에 집으로 찾아오지도 않으니 살짝 신경 쓰인 마음에 나온 말이었다. 김승재 역시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리 깊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던 중, 김승재 패거리가 수다를 떨며 앉아 있던 자리의 창문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재밌어?”

“뭐야?”

누가 감히 학교에서 저리도 시건방진 말투로 김승재에게 말을 붙일 수 있나. 김승재는 눈살을 잔뜩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왠지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목소리였다.

목소리가 들린 창문을 바라보자 한 명의 하피 소년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 자식 뭐야!?”

“사람을 때리는 게 재미있어서 웃는 거야?”

그렇게 크지 않은 체구에 새 가면을 쓰고 파란색 깃털이 달린 재킷을 입고 있는 불청객의 모습이 굉장히 낯익었다. 히어로인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수배령에 담긴 사진 속 누군가와 똑같았다.

다크 카오스의 마지막 자식으로 떠오르는 여덟 번째 재앙, 학살자 버드맨이었다. 흔치 않은 미성년자 빌런인 데다 그가 죽인 피해자들 또한 같은 나이의 고등학생이었던 걸 고려하면 그는 대한민국을 시끄럽게 만든 역대 최악의 빌런이었다.

아무리 김승재가 나이에 맞지 않게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들, 어디까지나 또래보다 강한 정도였다. 이미 S급 히어로 볼프강을 묵사발로 만든 강한 빌런인 버드맨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빌런의 등장에 학교는 비상사태에 이르렀고, 학생들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우왕좌왕하며 밖으로 도망쳤다.

버드맨이 진심으로 힘을 쓴다면 살아서 도망칠 수 있는 학생은 한 명도 없겠지만, 왜인지 그는 도망치는 학생들을 가만히 놔두었다. 물론 그중에서 김승재 패거리는 예외였다.

손날을 칼날처럼 바꿀 수 있다며 뽐냈던 김승재는 반항이고 뭐고 제대로 도망치지도 못해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나마 정신이 있었던 다른 패거리들은 도망치려다가 버드맨의 공격에 나뒹굴었다.

창문을 통해 느긋하게 안으로 들어오는 버드맨의 움직임과는 다르게 그의 깃털이 도망가는 패거리들의 인대를 정교하게 잘라 냈기 때문이었다.

“으아악!”

“아아악! 사, 살려 줘!”

바뀌지 않아.

변하지 않았어.

버드맨의 머릿속에 눈앞의 상황이 처음으로 능력을 사용했던 그때로 덧씌워졌다.

강세준을 지독하게 괴롭혔던 놈들도 피를 줄줄 흘리며 제발 살려 달라고 빌었었다. 슬금슬금 도망치면서도 제발 그만두라고 울부짖었다.

그러면 뭐 하나. 그들은 제발 용서해 달라고 비는 강세준을 단 한 번도 용서해 준 적이 없었는데.

사람들은 용서를 빌면 당연히 받아 줘야 한다고 말하고 폭력을 비판한다.

왜 가해자가 피해자를 때리고 있을 땐 말리지 않고 방관하다가 피해자가 조금이라도 반격하면 과하니까 그만하라며 말리고 비난하는 것일까. 그런 비난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 전에 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버드맨은 도망가려는 놈들의 인대를 깃털로 모조리 잘라 버리고 꽁꽁 묶은 뒤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들 중에는 공포에 질려 소변을 지린 놈도, 게거품을 물고 기절한 놈들도 있었다.

“살려… 살려 주세요. 저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요? 너무 아파…….”

그렇게 말하는 놈 중에 최민수를 봐준 적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멈춰 줄 의향이 충분했다.

“왜 이러냐고? 너희와 똑같아. 그냥 재밌으니까…….”

강세준은 17년 동안 한 번도 사람을 때리지도 위협 비슷한 짓을 저지른 적이 없었다. 최대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조용하게 살고 싶었던 소심한 학생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강세준을 변하게 만들었다.

하피의 날개는 인간의 팔과는 생김새가 다르지만, 폭력을 쓸 땐 인간과 다를 게 없었다. 버드맨은 김승재와 패거리들의 뺨을 번갈아 가면서 올려붙였다.

모욕적인 버드맨의 행동에도 그들은 대들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미 그들을 속박하는 깃털은 없어진 지 오래였지만 아무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스, 승재야. 너희 아버지를 부르자. 히어로라면서! 우리 다 죽을지도 몰라!”

가장 소리 높여 살려 달라고 외치던 마른 체구의 학생이 긴박한 표정으로 김승재에게 말을 걸었다. 패거리 내에서 말단이나 다름없는 위치의 그는 그 울분을 최민수에게 풀었던 강약약강의 표본인 학생이었다.

그가 한 말에 김승재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런 김승재의 표정을 보던 버드맨이 그의 말에 대신 대답했다.

“불러.”

“…아.”

“네 아버지 불러. 위대하신 히어로라며… 내가 네 앞에서 그 대단하신 히어로 아버지를 어떻게 죽이는지 보여 줄게.”

히어로인 김승재의 아버지는 소중한 아들이 위험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죽음을 각오하고 뛰어올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김승재 또한 잘 알았다.

김승재가 겁에 질려 파랗게 질린 얼굴로 더듬거렸다.

“아, 아버지는 상관없잖아……. 왜, 이런 짓을…….”

상황만 놓고 보면 그는 빌런에게 잘못 걸린 가련한 피해자였다. 피딱지가 얹은 선량한 얼굴로 덜덜 떨며 비는 평범한 사람.

잠시 생각하던 버드맨은 자신이 쓰고 있던 새 가면을 벗고 김승재를 마주 봤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김승재는 눈을 크게 떴다가 안색이 더욱 하얘진 채 고개를 숙였다. 그때의 하피가 사실은 버드맨이었다는 현실을 믿고 싶지 않은 듯 몇 번이고 바보처럼 신음만 흘렸다.

‘머리가 아파……. 이 자식을 죽이면 머리가 아프지 않을까.’

김승재의 머리 위로 날카롭게 만든 칼날 같은 깃털들이 일제히 모여들었다. 버드맨은 김승재를 향해 깃털을 움직이려 했다.

자신의 허리를 끌어안은 손길이 아니었다면 이미 김승재를 벌집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누군가가 필사적으로 버드맨의 허리에 매달렸다.

“그만, 그만해!”

최민수가 마치 찰거머리처럼 버드맨의 허리춤에 딱 달라붙었다. 대피령이 떨어진 지 오래였음에도 밖으로 도망가지 않고 옥상으로 쫓아온 모양이었다.

“왜?”

버드맨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죽이고 싶지 않냐는 것인지, 왜 자신을 말리냐는 것인지 본인도 알 수 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최민수는 울먹이며 대답했다.

“네가 그러고 싶지 않아 하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