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근하는 빌런-146화 (146/324)

146화

“왜?”

앞서 했던 질문이었지만, 이번엔 다른 의미였다.

딱히 대답을 바란 질문은 아니었는지 버드맨은 잔뜩 비웃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허리춤에 매달린 최민수를 발로 차 떨어트렸다. 꽤 힘을 실어 찼는데도 최민수는 오뚝이처럼 일어나 또다시 달려들었다.

그래 봤자 버드맨은 최민수 같은 일반인이 온 힘으로 말린대도 말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지금 네 얼빠진 모습을 보여 줄까? 착한 척하지 마! 얼간아… 저 자식이 네가 이렇게 해서 구해 준다고 고마워할 줄 알아? 절대 아니야. 저런 짐승만도 못한 놈들은 은혜도 모르는 것들이라고……. 위선 떨지 마. 보고 있으려니 역겨워 죽겠으니까!”

그래도 듣지 못한 척 최민수가 계속 달라붙자 버드맨은 결국 화가 난 얼굴로 그의 머리카락을 잡고 던져 버렸다. 그리고 벽에 처박힌 그의 사지를 옭아매듯 교복에 깃털을 꽂아 넣어 옴짝달싹도 못 하게 만들었다.

최민수를 보고 있으면 두통이 생기는 원인을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그는 과거의 우둔했던 자신과 닮아 있었다.

죽어라 괴롭히던 피해자가 자살해도 가벼운 해프닝으로 넘어갈 놈들에게 괴롭힘 당할 땐 꾹 참았다. 그러다가 그들이 죽을 정도로 잘못했나 하는 죄책감을 계속 느끼고 있었던, 얼간이 같은 강세준과 말이다.

버드맨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강세준은 지금도 괴롭다며 피를 토하고 있었다.

아직도 이렇게 나약한 과거의 잔재 따위에 휩쓸리는 자신이 아버지의 위대한 발자취에 어떻게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

김승재는 최민수가 버드맨과 아는 사이라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최민수와 같이 있었던 찐따 같은 하피가 버드맨인 걸 알리기 위해 일부러 가면을 벗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버드맨이라는 거대 빌런을 눈앞에 두고 공포에 질려 반성하는 듯 보이지만, 막상 살아남으면 그는 최민수를 지금보다 더 악독하게 괴롭힐 것이다.

지금도 죄책감보다는 잘못 걸렸다는 표정이 선명한 것이 그 근거였다. 오히려 버드맨과 한통속으로 묶어서 전과자로 만들거나 최민수의 앞길을 막아 버리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이런 파렴치한 놈들의 심리를 멍청한 최민수는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눈앞의 폭력에 굴복했을 뿐이지 결국 괴롭힘은 피해자가 망가지고 나서야 끝난다는 사실을 버드맨은 너무나도 잘 알았다.

“아냐! 난 그냥, 저런 자식 때문에 네가 더 이상 상처 입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야……. 왜냐면 지금의 너도 너무 괴로워 보이니까…….”

“내가 짜증 난 건 너 때문이야.”

바닥에 처박혀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주제에 주둥이만 나불나불 잘도 지껄인다. 방금까지도 김승재에게 잔뜩 얻어맞고 협박당해서 인생을 잃은 것처럼 절망적인 얼굴로 질질 짜던 놈이 지금은 잘났다는 듯 설교나 하고 있었다.

버드맨은 최민수의 말에 헛웃음을 지으며 김승재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흐아악! 사, 살려 줘! 다신 민수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다짐할게. 빌 수 있어… 정말이야!”

“최민수 때문에 널 죽이고 살릴지 정하는 게 아니야. 그냥 네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처리하는 것뿐이라고……. 너 같은 쓰레기들은 그냥 죽는 게 나으니까!”

최민수는 버드맨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보는 티브이 뉴스나 다른 미디어에서 그가 주제인 특집 방송을 편성할 때, 지나가듯 흘려들은 게 전부였다.

그가 앞길이 창창하고 불쌍한 다른 학생들을 잔인하게 죽였다는 것 정도였다. 당시엔 대한민국 최초의 최연소 재앙 급 빌런이 된 그가 자신과 또래라는 것에 놀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최민수가 직접 보고 대화했던 버드맨은 미디어에서 말하는 것처럼 피도 눈물도 없는 빌런이 아니었다. 버드맨은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지만, 그는 최민수의 몸에 새겨진 멍이나 옷에 묻은 핏자국을 보고 굉장히 아파하는 표정을 지었었다.

그 모습에 민수는 그가 너무나도 상처 입고 괴로워서 단단한 바늘 갑옷 속에 숨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누구도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숨었지만, 겁에 질려 벌벌 떠는 어린애 같았다.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웃기지만, 버드맨이 만약 자신을 위해 김승재를 죽인다면 무언가가 돌이킬 수 없어질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

자신의 앞에서 보여 주었던 무의식적인 행동들이 단단한 껍질 속에 숨어 있던 그가 조금이라도 머리를 내밀었던 순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김승재가 어딘가에서 죽어 버린다 해도 최민수는 전혀 안타깝지 않았다. 오히려 하늘이 벌을 내린 것이라며 기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벌을 버드맨이 주는 건 싫었다. 정말로 버드맨의 표정이 너무나도 괴로워 보여서, 나중에 돌이킬 수 없어지기 전에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약하디 약한 최민수는 그를 단단히 고정한 버드맨의 깃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가 끙끙거리며 답답해하고 있을 때 버드맨은 서늘한 눈빛으로 정면을 향해 날개를 뻗었다.

버드맨의 앞에 깃털들이 모여 커다란 방패가 만들어지자마자 흩날리는 깃털들 사이로 한 중년 남성이 날카로운 검을 들고 나타났다. 아니, 검을 든 게 아니라 양손이 마치 날카로운 검으로 변한 능력자였다.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의 얼굴을 확인한 김승재가 울먹이며 소리쳤다.

“아버지!”

그는 김승재의 아버지 A급 히어로 ‘양손날검’ 이었다. 그는 자신의 소중한 아들과 그의 친구들을 위협하는 버드맨에게 굉장히 분노한 상태였다.

한평생 일반인들의 평화를 위해 싸워 온 평판 좋은 그는 훌륭하고 착하게 자란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내 아들을 죽이려면 나부터 상대하는 게 좋을 거다.”

“…눈물겨운 부자 상봉이군. 어차피 너는 이 자식을 죽이고 바로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수고를 덜게 해 줬네.”

버드맨은 같잖다는 표정으로 닮은 듯 닮지 않은 부자를 번갈아 쳐다본 뒤 피식하고 비웃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잡고 있던 김승재의 멱살을 놓고 바닥에 팽개친 뒤, 그의 얼굴을 발로 잘근잘근 밟으며 조롱하듯 말했다.

“아저씨가 나를 어떻게 말릴 건데? 네 잘난 능력으로 소중한 아들을 어디 한번 빼앗아 보시지? 하지만 공격이 실패할 때마다 이 새끼가 어느 곳 하나 온전하진 못할 거야!”

버드맨이 날개로 김승재의 왼쪽 손목을 자르고 배를 부여잡으며 폭소했다. 두부 자르듯 쉽게 잘린 손목에 끔찍한 비명을 지르는 아들의 모습을 본 양손날검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그만해!”

“뭘 그만하라는 거지? 어서 덤벼 봐. 네가 실패할 때마다 팔다리 하나씩 잘라 줄 테니까!”

김승재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면서 자신의 잘린 손목을 믿기지 않는다는 시선으로 쳐다봤다. 부계로 내려오는 그의 능력은 손이 없으면 있으나 마나였다. 눈앞의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성을 잃고 맛이 간 버드맨은 김승재보다도 훨씬 위험하고 미쳐 있었다. 양손날검이 분노하는 표정으로 공격을 퍼부었으나 버드맨의 단단한 날개는 뚫지 못했다.

결국 버드맨은 양손날검을 비웃으며 보란 듯이 김승재의 오른쪽 발목을 잘랐다. 무자비한 버드맨의 공격에 양손날검이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

“그만해! 차라리 날 죽여! 내 아들이 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그렇게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거냐! 내 아들을 건들기 전에 차라리 날 죽여!”

양손날검의 절규 어린 외침이 계속 이어졌다.

“이 끔찍한 악마 같은 놈! 사회의 부적응자 같으니. 네 부모도 너 같은 놈이 두려워 도망간 게 분명해. 하늘이 천벌을 내릴 놈.”

그의 말에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은 듯 버드맨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그의 말을 잘랐다.

“하늘이 천벌을 내릴 수 있으면 이 자식한테 먼저 내렸겠지. 네 아들이 저놈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전혀 모르는 모양이야?”

버드맨은 잔뜩 이죽거리는 얼굴로 몸을 숙여 발치에서 비명을 지르며 꿈틀거리는 김승재의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눈치챈 김승재가 필사적으로 팔을 뻗었다.

“안 돼……. 아, 안 돼. 아버지에겐… 아아악!”

고통 속에서도 그것만은 감추기 위해 움직인다는 것은, 김승재가 진심으로 그의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증거였다.

어차피 이 자리에서 최민수를 제외한 단 한 명도 살려 보낼 생각이 없었던 버드맨은 그들을 죽이기 전에 한 가지 확인해야겠다는 변덕이 들었다. 비소를 지으며 핸드폰을 양손날검의 앞에 던지고 고개를 까딱했다.

“숨겨진 갤러리를 잘 찾아 들어가 봐. 네 짐승 같은 아들이 무슨 짓을 저질러 왔는지 두 눈 뜨고 똑똑히 보라고.”

어떻게 할까? 버드맨이 아는 한, 부모라는 것들은 모두 하나같이 자식의 죄를 숨기기 바빴다.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양손날검은 갑자기 눈앞에 던져진 핸드폰에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아들을 위해서 우선 버드맨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에 순순히 스마트폰을 열었다. 그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아들이 더 위험해질지도 모르기에.

핸드폰을 켜고 갤러리를 찾아 들어가도 겉으로는 평범한 사진뿐이었다. 하지만 숨김 폴더를 찾아 잠금을 풀고 들어가니 핸드폰 안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사진과 동영상들로 가득해졌다.

대부분 하피나 머메이드 같은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종족들이었고, 성별을 불문하고 같은 나이 또래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피를 흘리거나 멍이 잔뜩 든 채 엉엉 울고 있는 모습이었고, 옷이 벗겨져 무릎을 꿇고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외에도 더 끔찍한 사진들이 많았다. 양손날검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최근에 찍은 듯한 동영상을 재생했다.

- 잘 찍히고 있어?

- 어. 존나.

- 그러면 오늘은 우리 변기가 변기 물을 처먹는 역사적인 순간을 생중계하겠습니다~

변기에 머리가 처박히는 동영상 속 주인공은 저쪽에 누워 있는 소년이었다. 그리고 동영상을 찍는 목소리는 결코 잘못들을 수 없는 익숙한, 자신의 자랑스러운 아들의 것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