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근하는 빌런-147화 (147/324)

147화

계속 나를 괴롭히고 있어.

그날부터 벌레들이 뇌 속을 파고들어 와.

강세준도 처음부터 무력하게 당했던 건 아니었다. 하피로 살아오면서 여러 종류의 차별을 받아 왔지만,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교사들에 의해 어느 정도 중재가 가능했다.

하지만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한 이후부터 시작된 괴롭힘은 상상을 초월했고, 학교나 경찰에 신고해도 가해지는 처벌은 모두 미미했다.

처벌을 해 봤자 고작 사흘 정도의 정학 처분으로 끝나는 데다 부모님이 다니는 회사에 타격을 입히거나 가해자의 부모들이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래도 강세준은 포기하지 않으려 애썼다. 학교폭력센터에 전화하고, 경찰에 신고도 해 보고, 인터넷에 공론화를 시도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무력하고, 바보 같은지 깨닫기만 할 뿐이었다.

특히 주동자나 다름없었던 이준혁은 한 회사의 사장이자 히어로 니들맨을 아버지로 두고 있었다. 히어로인 니들맨은 CCTV 조작은 물론 학교에 압력을 넣는 등 아들의 죄를 덮기에만 급급했다.

강세준의 필사적인 반항은 니들맨의 회사에서 일하는 부모님의 일거리만 늘어나게 했다. 결국, 강세준의 부모님은 업무가 점점 지쳐 가는 ‘원인’을 아들의 탓으로 돌리며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력감과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 강세준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양손날검은 굉장히 충격받은 표정으로 핸드폰 화면을 넋 놓고 바라봤다. 착하고 성실한, 하나뿐인 소중한 아들을 지키기 위해 기세 등등하게 소리쳤던 아버지로서의 위풍당당한 모습은 사라지고 입만 벙긋거렸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김승재가 비명을 겨우 삼키고 소리쳤다.

“아버지. 그거 다 거짓, 거짓말이에요! 이, 이 빌런의 말을 믿는 건 아니죠?”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죽는 것보다도 아버지에게 자신의 이중생활을 들키고 싶지 않은 걸까. 쓰레기가 가졌다기엔 웃기지도 않은 근성이었다.

버드맨은 서늘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김승재의 등을 지르밟았다. 김승재는 가슴이 짓눌리는 중에도 소리치는 걸 멈추지 않았다

“이런 빌런의 말을 믿지 마세요. 제가… 제가 아버지를 한 번이라도 실망하게 한 적 있어요?”

양손날검의 얼굴에 점차 희망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래, 착하고 성실한 아들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속을 썩인 적 없이 말을 잘 듣는 아이였다. 어머니 없이 홀로 자신을 키우는 아버지에게 감사의 표현을 아끼지 않았고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싶다며 밤새워 공부하는 모습도 보여 주었다.

저 악랄한 빌런이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허튼짓을 꾸몄던 게 틀림없다.

버드맨은 양손날검의 표정이 점점 바뀌는 것을 보면서 결국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원망할 대상을 찾아내려고 한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역시 ‘그들’은 변함없이 뻔뻔했다.

버드맨의 눈빛이 어둠 속으로 침잠하려던 그때, 덜덜 떨리는 최민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짓말이 아니에요!”

“……!”

늘 당하기만 했던 소심한 최민수가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그, 그 얘기는 사실이에요. 제, 제, 제가 그 피해자니까요! 김승재는 저한테 계속 학교 폭력을 가했어요. 그는 입에도 담지 못할 심한 짓들을 저질렀고, 제 할아버지께도 손을 댔어요! 저를 괴롭히면서 영상을 찍고는 자기들끼리 낄낄거렸고요.”

누워 있는 최민수의 온몸이 덜덜 떨리며 말속에도 흐느낌이 섞여 들어갔다.

“그러니까 버드맨이 하는 말은 모두 사실이에요. 그는 빌런이지만, 내게는 당신들이 악당이야! 당신들이 그런 식으로 눈을 돌려 버리니까, 그러니까… 괴물이 태어나 버리는 거잖아…….”

마지막에 가서는 거의 비명 지르듯 내뱉는 최민수의 모습을 보면서도 김승재는 그저 같잖다는 기분이 들 뿐이었다. 감히 저딴 놈이 강자 뒤에 숨어서 입만 나불거리는 게 어이없고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버드맨은 유일하게 날 도와준 사람이었어요……. 그는 비겁한 사람이 아니야. 그는… 그를 빌런이라고 부르지 마! 진짜 빌런은 당신들이야…….”

양손날검이 들고 있던 핸드폰 화면에 다른 동영상이 재생되었다. 동영상에서는 누워 있는 소년, 최민수가 잔뜩 상처 입은 몰골로 비통하게 울고 있었고, 그를 구경하는 가해자들이 폭소하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찍힌 시간이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은 동영상이었다. 차마 편집할 시간도 없었던 것인지 김승재가 유쾌하게 웃는 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는 자신을 버러지라고 칭하며 사과하는 최민수의 얼굴을 발로 차며 재밌다는 듯 웃었다. 그건 양손날검이 아는 아들의 모습이 아니라, 아들의 탈을 쓴 악마였다.

“아버지! 사실이 아니에요. 제발 제 말 좀 들어 주세요! 저, 저 자식은 계속 절 질투해 와서, 그래서 저 빌런과 손잡고 절 모함하고 있는 거라고요!”

혼란스러운 표정의 아버지, 상반된 주장을 소리 높여 외치는 가해자와 피해자.

버드맨은 억울하게 당할 땐 무서워서 입도 제대로 못 열더니 지금에서야 덜덜 떨면서도 말하는 걸 멈추지 않는 최민수를 바라보며 입술을 굳게 닫았다.

‘악명 높은 빌런’이라는 말은 이제 익숙하다 못해 친근한데, 왜 최민수는 그게 견딜 수 없었던 걸까.

버드맨이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으로 한 걸음 뗀 순간, 하늘에서 거대한 주먹이 옥상 바닥에 내리 꽂혔다. 주먹처럼 보이도록 뭉쳐 있는 깃털들이었다.

버드맨이 다급하게 깃털을 회수해 막아 봤지만, 완전히 공격을 상쇄하진 못했다. 결국, 그 여파로 입술에서 피가 한 움큼 쏟아졌다.

“또 이런 잔악한 짓을 하는군……. 역시 넌 구제도 못 하는 최악의 쓰레기다!”

“볼프강.”

볼프강은 오랜 숙적을 만난 사람처럼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거칠게 웃었다.

버드맨이 들고 있던 새 가면이 달칵 소리를 내며 두 동강이 났다.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버드맨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저번엔 방심했지만, 지금은 방심할 생각 따위 추호도 없다, 학살자 버드맨. 네가 죽인 친구들에게 사죄하며 벌을 받아라.”

볼프강은 자신의 양쪽 날개를 주먹 쥐듯 내밀며 자신만만한 자세를 취했다. 그런 볼프강과 버드맨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최민수가 입을 벙긋거렸다.

버드맨은 자신을 볼 때마다 토할 것 같다면서 너 따위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의 행동은 말과는 달랐다. 결국, 자신을 구해 주었다.

만약 버드맨이 아니었다면 벼랑 끝에 몰린 자신이 어떤 선택을 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만, 그만 해요……. 그는 저 때문에… 저 때문에 김승재를 공격했던 거예요. 내가 답답하고 멍청해서… 내가,”

최민수의 중얼거리는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볼프강은 쉴 틈 없이 버드맨을 공격했다.

두 사람이 가진 능력의 크기는 비등비등하지만, 더 이상 방심하지 않겠다는 볼프강의 말이 사실인지 버드맨이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실전에서의 전투 경험치의 차이였다.

“볼프강! 세상 모두가 너처럼 강했다면 네 말대로 모두 이겨 낼 수 있었겠지! 사람들을 기만한 너는 오만에 빠진 것에 지나지 않아. 너희 히어로들이 제대로 지켰다면, 나 같은 쓰레기는 태어나지 않았을 거야!”

“그러는 넌 무슨 권리로 저 학생들을 벌주는 거지, 학살자! 네가 한 짓은 화풀이에 지나지 않아!”

“약자는 어떤 짓을 당해도 참고 넘겨야 하는 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라는 입에 발린 말 따위로 전부 해결될 거였으면 왜 아직도 세상은 피해자들로 가득한 거지? 세상엔 드러나지 않는 범죄 따윈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간신히 볼프강의 공격을 막아 내며 버드맨이 소리쳤다.

“언제까지 ‘우리들’이 죽고 나서야 뒤늦게 현실을 깨닫고, 그제야 분노하며 제대로 봐줄 거냐고!”

“그건 너희들이 운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운이 없었다고? 당신이 그런 말을 해?”

볼프강은 자신의 마지막 말에 넋을 놓아 버린 버드맨이 보이는 빈틈을 놓치지 않고 치명타를 날렸다.

볼프강의 거대한 주먹이 버드맨의 명치를 강타했다. 낮은 등급의 능력자가 그의 주먹에 제대로 맞으면 며칠 동안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이었다.

순식간에 날아가 옥상 바닥에 처박힌 버드맨은 육체적인 고통보다도 마음이, 심장이 조이는 듯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사람에게 실망하고, 가장 힘들 때 믿고 의지했던 히어로에게마저 배신당했다.

마음이 새카매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더 이상 사람 따위 믿고 싶지 않았다.

볼프강이 바닥에 널브러진 버드맨에게 마지막 일격을 뻗는 순간, 그의 앞을 누군가가 막아섰다. 멍청하고 답답하고 과거 강세준처럼 인내하기만 했던 소년, 최민수가 두 팔을 교차해 온몸으로 볼프강의 공격을 막은 것이다.

그의 앞으로 빛나는 방패 모양의 막이 생겨났다.

“…소년, 모든 불행을 이겨 내고 능력을 각성한 걸 정말 축하하네. 하지만 네가 지금 막아 준 상대가 빌런인 걸 알고 있는가?”

“…그는 저를 구해 주었어요. 그러니까 이젠 제가 그를 도울 차례예요.”

“능력은 또 다른 자신의 영혼이라고 하지. 소년은 누군가를 보호할 수 있는 든든한 방패 같은 영혼을 지녔군. 그러나 지켜야 할 상대를 잘못 잡았어. 그는 흉악한 빌런이고 친구들을 학살한 살인마다.”

버드맨은 자신을 등지고 선 최민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능력 등급은 아직 모르지만, 버드맨조차 막기 버거웠던 S급 히어로가 내뱉은 최후의 일격을 멀쩡하게 막아 낸 모양새가 방어 계열에서 아주 높은 등급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공부밖에 할 줄 모르던 왕따 소년이 자신의 의지로 능력을 각성시켰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무적인 일이지만, S급 히어로의 상대로서는 아직 부족했다.

볼프강은 방금 능력을 각성한 불쌍한 소년이 악의 길로 빠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듯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잠시 누워 있게, 소년. 능력을 각성한 지 얼마 안 돼서 혼란스러운 게 분명하니.”

최민수의 방패 아래로 볼프강의 주먹이 쑥 들어왔다. 허둥지둥 방패를 아래로 내린 최민수의 머리 위로 공격이 내리 꽂혔다.

아무리 뛰어난 방패를 가지고 있어도 전투 경험이 아예 없는 소년은 그의 앞에선 갓난아이나 다름없었다. 부지불식간에 받은 공격으로 최민수가 기절해 쓰러지자 버드맨을 지키고 있던 방패 또한 사라졌다.

볼프강은 안쓰러운 눈으로 최민수를 힐끔 바라본 뒤 공격을 재개하기 위해 버드맨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와 동시에 볼프강의 앞으로 검은색 철문이 번개가 내려치는 것처럼 꽂혀 그와 버드맨의 사이를 막아 버렸다.

“애들 싸움에 어른이 끼어드는 건가요? 그렇다면 볼프강, 우리도 끼워 주시겠습니까. 우리에겐 소중한 막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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