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다른 회사 구내식당은 레스토랑 같다는데 여긴 왜 이래?”
오랜만에 구내식당으로 발을 들인 임 대리가 투덜거리며 수저로 국을 휘휘 저었다.
재언은 물론 팀원들 모두가 3,8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도 구내식당에는 자주 오지 않았다. 대체로 업무에 밀려 시간은 없지만, 편의점 음식에 질렸을 때나 가끔 들르는 곳이었다.
열심히 만드시는 분들껜 정말 죄송하지만, 음식의 맛도 질도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오늘 메뉴는 삼계탕이라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 같이 왔는데 역시나였다.
식사를 받아 보니 시판용 사골 액 1인분에 물을 1리터쯤 섞은 맛에 닭가슴살로 보이는 살코기 두 점만 둥둥 떠다닐 뿐이었다. 반찬으로 나온 제육볶음은 고기가 오래된 듯 누린내가 나고 양념도 싱거웠다.
“이건 삼계탕이 아니라 닭죽이지! 다른 곳은 구내식당이 복지라는데 우린 왜 이런 걸 돈 줘가면서 먹어야 하는 거야? 무슨 비리가 있는 게 분명해.”
“아니, 그보다 여기가 무슨 학교도 아니고 왜 퍼 주는 양만큼만 먹어야 해? 반찬도 코딱지만큼만 주면서!”
“근데… 재언 씨하고 내 것이 어째 다르다?”
재언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불만을 터트리는 사람들의 옆에 앉았다. 이제 보니 재언의 식판에는 제육볶음이 푸짐하게 쌓여 있고 삼계탕이라고 불리는 국에는 닭고기가 가득했다.
차별을 눈앞에서 목도한 사람들은 어이없어하면서도 자리에 앉아 수저를 들었다. 식당 직원들을 붙잡고 불만을 표하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촉박해도 그냥 나가서 먹을 걸 그랬어……. 그리고 나 식권 10장 받은 거 아직도 7장이나 남았어……. 일 년 동안 겨우 세 번 온 거야.”
김 과장이 밥을 입안에 넣으며 주절거렸다. 씹히는 밥알들이 눈에 밟히는 것이 계속 쳐다보다간 그나마 가지고 있던 입맛이 싹 사라질 것 같아서 모두가 일제히 눈을 돌렸다.
통통하고 키가 작은 체구를 가진 김 과장은 요즘 다이어트 중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1년 정도 사귄 여자친구가 한 달 전에 그의 프러포즈를 뻥 찼다는 이유에서였다.
본인이 큰 소리로 떠들고 다니기에 알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알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겨울 휴가는 누가 가나? 재언 씨가 가나?”
“네.”
“무슨 겨울 휴가를 돌아가면서 써. 줄 거면 주고 말 거면 말지.”
“요즘 겨울 휴가 주는 곳도 몇 없어요. 뭐… 내년엔 내 차례니까 꾹 참고 버티려고요.”
“재언 씨는 이번 휴가 때 뭐 하나?”
임 대리가 흥미를 보이며 물어 왔다. 입맛이 까다로운 그녀는 도저히 이 음식들을 못 먹겠다며 수저를 놓은 지 오래였다.
마침 밥을 입에 넣었던 재언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꼭꼭 씹어 삼킨 뒤 입을 열려고 했다.
“아, 저는…….”
그 순간, 재언의 뒤쪽에서 누군가가 말을 가로챘다.
“신재언 씨, 이번에 캠핑 가시죠?”
갑작스럽게 끼어든 낯선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하얀 와이셔츠에 무릎까지 오는 검정 치마를 입은 여성이 보였다. 재언과 같은 사무실을 쓰는 부서는 아니고 텔레마케팅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전체 회식 자리에서나 몇 번 인사만 했던 사람이었다.
물론 재언이 그녀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은 친분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어떤 의미로 사내에서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말을 건 사람을 확인한 임 대리의 표정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네,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다 아는 방법이 있어요. 제가 듣기 싫어도 들리거든요.”
그녀는 자신만만하게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재언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합석했다. 그에 임 대리는 두 번 정도 국물을 떠 마시는 척하다가 먼저 일어나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걸 신호로 함께 밥을 먹던 팀원들도 하나둘씩 일어나더니 결국 테이블에는 신재언만 남게 되었다. 재언 또한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전에 그녀가 먼저 말을 걸었다.
“재언 씨, 조심하세요. 제 능력이 뭔지 아시죠? 정말 무서운 여자가 붙었어요……. 아무래도 재언 씨 옆에 다른 여자가 앉는 걸 아주 싫어하나 봅니다. 저를 노려보고 있어요.”
그녀, 김은정이 같은 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귀신을 볼 줄 아는 능력을 가진 능력자라면서 저런 식으로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대부분 거짓말이었다.
결국 누군가가 매우 기분 나쁜 소리를 들었다며 그만두지 않으면 고소하겠다는 글을 사내 커뮤니티에 올렸다. 그 일로 팀장에게 경고를 받았건만 그녀는 아직도 멈추지 않은 듯했다.
“저는 이제 업무시간이라 들어가 봐야겠네요. 그러면 점심 맛있게 드세요.”
재언은 그녀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대충 대답해 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그녀를 두고 빠르게 구내식당을 빠져나와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에 도착하니 최 과장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는 게 보였다. 그도 다이어트 중이라더니 그새 편의점을 다녀왔는지 샌드위치와 우유가 들어 있는 봉지가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재언은 최 과장의 옆에 다가가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불을 붙였다.
“근데 재언 씨, 캠핑장 간다는 거 사실이야?”
“네. 애인하고 같이 가기로 했어요.”
“오… 사진은 없어?”
“하하하. 없어요.”
최 과장이 어색하게 웃는 재언을 미심쩍게 쳐다봤다. 하지만 재언이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기에 그는 얼마나 미인이길래 숨기느냐며, 보여 주면 어디가 닳냐고 투덜거렸다.
재언은 입이 가벼운 최 과장에게는 애인이 레드-헬-파이어가 아닌 일반인이더라도 보여 주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어디로 가는데?”
“태백이요.”
“엄청 추울걸?”
“같이 가는 사람이 불 능력자라서 걱정은 안 해요.”
“이야… 재언 씨 여자친구 능력자야? 혹시 히어로? 역시 잘생겨서 그런가 사귀는 사람도 대단하네.”
여자는 아니지만, 애인이 히어로에 대단한 사람인 건 맞지.
최 과장은 핸드폰을 들어 화염 계열 능력을 가진 여성 히어로를 검색하면서 혹시 이 사람이냐며 연속해서 물었다. 그중에 당연히 레드 헬 파이어는 없었다.
결국, 그는 신재언의 애인이 누구인지 추측하기를 포기하고 다른 걸 검색하더니 놀라는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재언 씨. 거기 귀신 나온다는데?”
‘…이건 또 무슨 초 치는 소리야?’
재언은 최 과장을 씹고 싶은 마음을 담배 필터를 씹는 걸로 달래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놀러 간다는 사람한테 굳이 안 좋은 리뷰를 보여 주는 눈치 없는 지인이 딱 이 꼴이었다.
“진짜야. 태백 캠핑장 검색하니까 한 곳이 나오는데 여기 평이 다 귀신을 봤다느니 밤에 잘 때 텐트 밖으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고 소문이 자자해. 게다가 거기에 분수대가 하나 있는데, 거기서 하반신 없는 남자가 계속 목격된다네.”
“…태백에 캠핑장이 하나도 아니고… 그곳이 유난인가 보죠.”
“xxx 캠핑장 아니야?”
“…….”
‘…씨발, 맞네.’
최 과장이 들이미는 핸드폰 화면에 보이는 글자가 매우 익숙했다. xxx 캠핑장, 차민재가 이번에 예약했다고 말해 준 곳이었다.
재언은 핸드폰을 건네받아 캠핑장 리뷰를 쭉 읽으며 스크롤을 내렸다. 약 두 달 전부터 괴상한 걸 목격했다는 내용이 꾸준히 나왔다. 재언이 말없이 핸드폰 화면만 보고 있자 최 과장이 신이 난 듯 이것저것 물었다.
“여기 맞아?”
“…네.”
“세상에! 그러다 귀신이라도 만나면 어떡해?”
어떡하긴. 레헬이 영혼까지 태워 버리거나 귀신들의 성녀가 데려가 악귀로 사용하겠지, 뭐.
담배를 피우는 동안 최 과장은 혹시 귀신이라도 보면 꼭 알려 달라는 말을 흥미로운 얼굴로 주절거렸다. 끝까지 사람 기분 초 치려는 모습에 재언은 그의 등짝을 치고 싶어서 손이 움찔거리는 걸 참아 냈다.
멀쩡한 사람이 회사에 와서 이상해지는 건지, 아니면 이상한 사람들이 회사에 오는 건지 이젠 헷갈리기 시작했다.
한숨을 푹 쉬며 뒤를 돌자 재언은 자신을 보고 화들짝 놀라더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는 김은정을 봤다. 그는 그녀가 흡연하는지 안 하는지 관심도 없었기에 그 모습을 힐끗 보기만 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사무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귀신들의 성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 오호호, 아버지. 그곳에 정말 악귀가 나타난다면 제가 데려가겠어요.
귀신들의 성녀는 본인이 놀러 가는 것도 아닌데 잔뜩 신이 난 목소리였다. 재언이 안 된다고 말하기도 전에 말을 이어 가는 목소리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 그건 그렇고 아버지, 아까부터 계속 아버지의 뒤를 쫓아오는 저 여자… 어떻게 할까요?
“누가 날 쫓아와?”
- 네. 식당에서 감히 아버지께 말을 건 그 여자요.
김은정? 그녀가 왜?
어리둥절해하며 사무실로 들어온 재언은 양치 도구를 챙겨 화장실로 들어갔다.
“지금도?”
- 네.
‘하긴, 텔레마케팅 팀은 우리보다 점심시간이 30분 늦지……. 대체 언제부터 쫓아온 거야?’
재언의 의문점을 알아차렸는지 귀신들의 성녀가 덧붙였다.
- 점심시간 전, 아버지께서 흡연실에서 통화하실 때 건물 벽에 딱 달라붙어 엿들었을 때부터예요.
“…….”
재언은 그녀의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양치를 계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