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근하는 빌런-152화 (152/324)

152화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하늘 위로 연기가 하얗게 피어올랐다.

이곳은 재언의 고향보다 훨씬 외지고 가구 수가 적은 시골 마을이었다. 초, 중학교 학생 수를 전부 합쳐도 스무 명이 넘지 않아 언제 폐교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게다가 읍내에 있는 고등학교까지는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마을 사람 모두가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이다 보니 폐쇄적이고 외지인에 대한 경계가 심했다.

그런 마을의 집마다 뜨거운 불길이 크게 치솟았다. 화마가 겨우 진정되었던 건 저녁부터 내린 빗줄기 덕분이었다. 재언은 ‘무언가’를 찾기 위해 마을 근처를 향했다가 빗속에서 까맣게 올라오는 연기를 보고 발길을 돌렸다.

그의 옆에서 푸른색의 화사한 드레스를 입은 코루루가 며칠 전에 끝난 뮤지컬 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왔다. 그녀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비가 얼어붙어 눈의 결정으로 변했다.

타오르는 불길을 한순간에 꺼트린 억센 빗줄기에도 재언은 그녀의 능력 덕분에 옷자락 한 군데 젖지 않고 편하게 걸어 다닐 수 있었다.

“아버지, 저기에 산 사람이 있어요. 아아~ 아닌가? 산 사람이 아니라 불 지른 사람일까요?”

코루루는 마치 무대에 오른 것처럼 과장된 목소리로 놀랐다가 재밌다는 듯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했다.

그녀의 말에 시선을 돌리니 잿더미가 된 집들 사이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한 여성을 에워싸고 손가락질하며 돌을 던지는 게 보였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여성을 향해 욕설을 내뱉거나 화를 내고 있었다.

재언은 하늘을 찌르는 증오에 머리가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 기분 나쁜 년! 얼른 경찰을 불러요. 우리를 태워 죽이려고 했어!”

그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노인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삿대질을 하는 노인의 말에도 사람들 사이에서 주춤거리는 분위기가 흘렀다. 아무래도 그들에게 무언가 걸리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코루루. 저 여성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주변 사람들이 조금 방해되는구나.”

“제게 맡겨 주세요, 아버지! 저 코루루는 언제든 위대하신 아버지의 말에 따를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아직 어떤 상황인지 모르니, 피해는 입히지 마. 저 사람이 악당일 수도 있잖아.”

우는 표정과 웃는 표정이 반반씩 새겨져 있는 가면을 쓴 코루루가 경쾌하게 뛰어나갔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낯선 이에 마을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그러다가 코루루가 양팔을 들어 올리는 순간 여성의 주변에 커다란 얼음벽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혼비백산했다.

“으아악! 괴물이다!”

마을 사람들이 능력자에 대해 잘 모르는 점도 한몫했지만 코루루의 등장 자체가 너무나도 극적이었기에 모두 겁에 질려 도망쳐 버렸다.

울부짖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여성은 절망 어린 표정 그대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억센 비에도 젖지 않은 한 남자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왜 울고 계십니까? 여기… 당신이 이렇게 만들었나요?”

여성은 자신을 마리암이라 소개하며 더듬더듬 말을 이어 갔다. 사실 초면인 사람을 믿지는 않았지만, 도저히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만큼 그녀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절망적이었다.

마리암에게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동생이 있었다. 남동생의 이름은 김준혁으로, 아버지는 같지만, 어머니가 다른 이복 남매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미 결혼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필리핀에서 일하는 동안 현지에 사는 다른 여자와 만나 가정을 차렸다.

마리암이 태어난 직후에 출장 기간이 끝났고, 그는 한국의 가족들에게 결혼 허락을 받고 돌아올 테니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도망쳐 버렸다.

마리암의 어머니가 오랜 시간 한국으로 돌아간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 남자는 한국의 아내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다.

결국, 기다리다 지친 마리암의 어머니가 남편을 찾으러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물론, 남편이 알려 준 주소와 전화번호는 모두 가짜였다.

그때 난관에 봉착한 어머니를 도와 마리암이 나섰다. 마리암이 ‘귀안’이라는 특별한 능력 덕분이었다. 귀신들은 소문이 빠르고 발이 없기 때문에 금방 아버지를 찾을 수 있었다.

필리핀에서 찾아온 외국인 아내와 딸을 본 남자의 한국인 아내는 크게 화를 내며 친정으로 돌아갔다. 눈앞에 놓인 유책 증거에 남자는 어쩔 수 없이 합의 이혼에 서명해야 했다.

그리고 한국인 아내 덕에 가질 수 있었던 직업과 집을 모두 빼앗긴 채 고향으로 돌아와 마리암의 어머니와 재혼했다.

마리암은 이복동생인 김준혁을 진심으로 아꼈다. 남매는 서로를 진짜 가족으로 여기며 잘 지냈으나 그들의 부모는 그러지 못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며 외국인 아내를 미워했고 술을 마실 때마다 손을 들었다. 결국, 마지막에는 아내의 목을 졸라 살해한 뒤 자신도 목을 매고 자살했다.

원래는 자식들을 먼저 죽이려고 했으나 낌새를 눈치챈 귀신들이 마리암을 몰래 빼돌린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귀신과 인간을 제대로 구분할 수 없었던 어린 마리암은 부모가 귀신이 되어 돌아다니는 걸 보고 그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며칠이 지나고 바깥에까지 진동하는 썩은 내에 이웃 주민들이 항의하기 위해 들어가 시신을 목격할 때까지 마리암과 동생은 아무 일 없이 지내 왔던 것이다.

안 그래도 작은 동네에서 사람들은 출신도 안 좋은데 귀신까지 본다며 마리암을 기분 나빠하고 멀리했다. 그뿐이면 차라리 다행이었을 것이었다.

어느 날은 마을 남자들이 그녀를 데려가 집단으로 강간하려고 시도했다. 다행히도 그녀의 곁에 있었던 귀신 중 하나가 그들의 머리 위로 무거운 나뭇가지를 떨어트린 덕분에 불발로 끝난 적도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학교의 누구와도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다. 두 명뿐인 교사들이 마리암을 기분 나빠하면서 학생들의 괴롭힘을 알고도 묵인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교생이 몇 명 안 되는 시골 학교였기에 마리암이 못 견딜 정도로 괴롭지는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도 꿈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올라가 일을 하면서 동생과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꿈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괴롭힘을 묵묵히 견뎠다.

그렇게 초, 중학교 시절을 견디고 읍내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건이 벌어졌다.

…그들은 그저 장난이었을 것이다. 정말로 어린 김준혁을 죽인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그날, 김준혁이 누나와 사소한 일로 다투고 속상해하자 동네 사람들이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다. 다만, 준혁이 그 말을 믿고 지붕 위에 올라가 꽃을 꺾으려다 추락한 것이 문제였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저 불운한 사고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덜컥 겁이 나 구급차도 부르지 않고 길거리에서 널브러진 어린 김준혁을 싸늘하게 죽어 가도록 방치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머쓱한 표정으로 하교하던 마리암이 그런 동생의 시신을 발견했다.

“준혁아!”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 동생을 끌어안았지만, 이미 그의 영혼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리암은 제발 도와 달라고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으나 마을 사람들은 창문으로 고개만 빼꼼 내놓고 한숨 쉬는 게 다였다.

불행히도 마리암에게는 그 흔하다는 핸드폰이 없었다. 그나마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노인이 나오더니 혀를 끌끌 차며 오래된 구식 핸드폰으로 구급차를 불러 주었다.

“안 돼, 안 돼!”

처음에 마리암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하나뿐인 가족마저 잃게 된 자신을 원망하고 비난했다.

왜 어린 동생을 혼자 두고 학교에 갔을까. 자신 때문에 동생이 죽은 것이라고 생각한 마리암은 삶에 대한 의지가 점점 꺾이고 있던 참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술자리에서 입을 놀리지만 않았어도 마리암은 잔혹한 진실을 깨닫지 못하고 평생 자신을 원망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 꼬마도 운이 없지. 아니, 진짜 올라가란다고 올라가냐고…….”

“어디 모자라 보이는 놈이잖아. 우린 잘못 없으니 걱정 말고 술이나 더 먹어.”

마리암은 지나가다가 마을에 있는 평상에서 술자리를 펴 놓고 저들끼리 떠드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들은 동생의 죽음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반성이나 후회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무슨 소리예요? 내 동생이 죽은 게 당신들 때문이야? 거기에 올라가라고 시켰다고? 당신들이 그러고도 사람이야!”

“이 미친년이 갑자기 왜 이래!”

그들은 소리 지르며 갑자기 달려드는 마리암을 밀치고 침을 뱉었다. 그녀는 바닥에 꼴사납게 뒹굴었다.

마을 축제가 열리던 자리였기에 마을 사람들 모두가 모여 있었지만, 그들 중에 마리암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마을 사람 모두가 한통속이 되어 서로 입단속을 시키고 동생을 혼자 두게 한 마리암이 잘못했다며 책임을 전가한 것이었다.

마리암은 그 길로 한걸음에 경찰서로 달려가 신고했으나, 이미 마을의 일원이나 마찬가지인 경찰서가 그녀의 편이 되어 줄 리 없었다. 증거가 없다며 그녀의 신고는 무시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더욱더 기고만장해져 마리암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오히려 마리암이 사고를 날조해 마을 사람들을 살인범으로 만들려 한다고 그녀를 고소하겠다며 협박했다.

마리암은 다시는 그 사건에 대해 떠들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나서야 겨우 마을 사람들의 괴롭힘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그것이 동생이 죽고 난 뒤 2년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원통한 마음을 추스를 길이 없었던 마리암은 결국 견디지 못하고 집마다 불을 질렀다. 그리고 그들이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손바닥에 화상이 입을 정도로 현관문을 붙잡았다.

그러나 하늘은 무심했다. 그녀가 불에 달궈진 현관문을 온몸이 익어 가면서 막았는데, 갑자기 한두 방울씩 떨어진 빗방울이 불길을 모조리 잠재워 버린 것이다.

그녀는 동생에게 작별 인사도 하지 못했고, 복수에도 실패했다. 이제는 방화범으로 감옥에 갈 일만 남아 있었다.

“그날 아침, 동생하고 싸우고 나왔어요. 동생은 나더러 학교에 가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 난 꼭 가야 했으니까요. 고등학교 졸업은 내 욕심이었을까요……. 그 바보 멍청이가… 누나를 속상하게 만들었다며 이깟 꽃을 꺾으려고 지붕에 오를 줄 누가 알았겠어요? 바보 멍청이… 이게 뭐라고……. 왜, 왜 그렇게 빨리 가서… 나도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었는데…….”

마리암은 그날, 학교 근처에 있는 문구점에서 버스비를 아낀 돈으로 동생이 좋아하는 떡꼬치를 사 갔었다. 그런데 매정한 동생은 누나의 사과도 받지 않고 그대로 저승사자를 따라가 버렸다.

동생이 자신을 원망하며 떠나갔다고, 마리암은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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