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장난삼아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었다는 게 이런 경우인가. 살의는 없었어도 악의는 있었지.’
마리암의 사정을 전부 알게 된 재언은 점차 거세지는 빗줄기를 눈으로 좇으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아무리 장난이었어도 자신이 한 말이 누군가의 죽음에 영향을 끼쳤다면 그것은 인과이고 업보가 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마리암의 동생이 죽은 것을 농담거리로 삼고 멍청이에게 어울리는 죽음이라며 비웃었다.
마리암과 그녀의 동생을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했다면 해서는 안 될 조롱이었다. 결국, 재언은 알례리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능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던 다짐이 무색하게 손을 내밀고 말았다.
누군가가 그날을 직접 목격했다면 세상이 멸망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지옥에서 소환된 악귀들이 마을 전체를 뒤덮었다.
하늘에서 내려오고 땅에서 튀어나와 이승에서 실체화된 악귀들은 마을 사람들의 영혼을 강제로 지옥에 끌고 갔다. 그렇게 마리암이 살던 시골 마을은 사람이 살지 못하는 귀신 소굴이 되어 버렸다.
지금은 개미 한 마리도 지나가지 못하도록 히어로 협회의 관리 아래에서 조금씩 퇴마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아직도 그쪽 지역의 정화가 완전히 끝났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으니 폭주한 그녀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상상할 수 있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귀신들의 성녀는 빌런으로 유명해졌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많은 미스터리한 일이 그녀가 벌인 짓일지도 모른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말이다.
물론 마을에서 살아남은 몇 명의 생존자로 인해 그녀에 관한 이야기가 더욱 퍼져가기도 했다. 재언이 관계없는 일반인에게는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미리 명령했었기 때문이다.
“네가 하려는 복수에 관여하지 않을 테니 마음껏 해. 다만, 사건과 관계없는 일반인에게는 절대로 피해를 주면 안 돼.”
죽은 동생의 장례식을 도와주었던 노부부와 구급차를 부를 수 있도록 핸드폰을 빌려준 노인. 그리고 마을에 살지만, 소문에 관심을 두지도 않고, 마리암과 전혀 접점이 없는 마을 사람 몇 명만이 살아남았다.
귀신들의 성녀는 앞서 능력을 각성한 다른 자식들과 마찬가지로 깊은 우울감과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덕분에 금방 털고 일어나 동생을 찾으러 다녔다. 하지만 지옥과 저승을 돌아다니며 이 잡듯 샅샅이 뒤졌지만, 동생의 영혼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동생을 찾으러 가는 게 뜸해졌구나. 무슨 일 있니?”
“어디에도 없었어요. 아버지, 그냥 이젠 동생이 환생해 화목한 가정에서 살고 있다고 믿으려고요.”
그러나 신재언은 그녀의 동생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이전에 만난 적이 있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어린아이 귀신의 어머니를 찾으러 다닐 때 만났던 저승사자 차사 광혼사였다.
세속의 때를 타지 않은 어린 영혼은 저승에서 계속 살아갈지, 아니면 다른 부모의 아이로 새롭게 환생할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를 준다는데 동생은 전자를 선택한 모양이었다.
그가 왜 환생을 선택하지 않고 저승사자가 되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었지만, 아마도 누나인 귀신들의 성녀와 관련되어 있는 게 아닐까 추측할 뿐이었다.
“대인… 앞으로도 제 누나를 잘 부탁드립니다.”
귀신들의 성녀가 얼마나 동생을 그리워하는지 아는 재언은 광혼사의 정체를 알리고 싶었지만 그에게 숨겨야 할 이유가 있을지 모르기에 섣불리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두 남매가 언젠가는 서로를 깨닫고 진실을 알게 될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아끼던 동생과의 유일한 접점이 그녀가 항상 들고 다니던 가지 방울에 달아 놓은 꽃이었다. 그걸 산산조각 내버렸으니 광안의 성녀만 보면 이를 가는 귀신들의 성녀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광안의 성녀 입장에서 그렇게 중요한 물건인지도 몰랐을뿐더러 히어로가 빌런의 사정을 왜 알아야 하나 싶을 것이다. 재언은 그저 이 둘 사이에서 조용히 빠지고 싶었다.
귀신들의 성녀가 바득바득 이를 가는 소리에 재언은 식은땀을 흘리며 광안의 성녀에게 질문했다.
“따님분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
“…….”
재언의 물음에 광안의 성녀가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비록 눈은 가려져 있지만, 그녀가 곤란해하는 게 느껴졌다.
딸의 이름을 묻는 게 이렇게까지 실례되는 일이었나 싶었던 재언이 속으로 당황해하는 사이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글쎄요……. 이 아이의 이름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요.”
“네? 아이가 이름이 없다고요?”
귀를 의심하는 듯한 재언의 표정과는 달리 광안의 성녀는 희미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러네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몰랐습니다. 이번에 서울에 올라가게 된다면 그때 천천히 생각해 볼게요.”
‘뭐지? 너무 이상한데? 이름이 없다는 건 출생신고도 안 했다는 거 아닌가?’
S급 히어로의 몸값은 부르는 게 값이긴 하지만, 그중에서 에스트리아 박재원과 광안의 성녀는 개인적으로 의뢰비를 받지 않는 정의로운 히어로로 유명했다.
특히 대부분의 히어로들이 협회와 별개로 개인의 사무실을 가지는 데 반해 광안의 성녀는 완전히 협회 소속이었다. 그녀는 협회의 명령이라면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달려가 사람들을 치료하거나 빌런을 퇴치했다.
“그러면 캠핑 즐겁게 보내다 가세요. 저는 저쪽 구역에 텐트가 있으니 무슨 일 생기면 도와드리겠습니다.”
반년 전 귀신들의 성녀와 한판 붙어 크게 다쳤을 때도 무보수로 싸웠고, 그녀가 입원한 병원도 협회에서 관리하는 큰 병원이 아니라 작은 동네 병원이었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 딸의 이름을 짓지 않는다니, 너무나도 이상했다. 재언은 찝찝한 표정으로 광안의 성녀와 딸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나이가 열 살은 되어 보이는데……. 설마 학교도 안 보낸다거나… S급 히어로 광안의 성녀가 딸을 학대하는 사람은 아니겠지?’
생각에 잠긴 재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귀신들의 성녀가 잔뜩 불쾌한 표정으로 발을 굴렀다.
“아주 기분 나쁜 여자예요!”
그녀는 부정한 것을 몰아내려는 것처럼 가지 방울을 거칠게 흔들며 재언의 귀가 솔깃할 만한 정보를 마구 쏟아 냈다.
“게다가 그 딸이라는 아이, 몸에 영혼이 없는 빈껍데기였어요. 타락한 추기경 오라버니의 능력과 비슷하긴 하지만, 그 애는 시체가 아닌데도 영혼이 없었다고요. 무슨 꿍꿍이를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세상 다 산듯한 저 표정은 언제 봐도 마음에 들지 않아요!”
투덜거리는 그녀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은 재언은 차민재가 치고 있는 텐트 쪽으로 향했다. 채소를 씻어 오겠다고 한 것치곤 너무 늦은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그런데 가서 보니 텐트는 물론 캠핑용 테이블에 의자까지 전부 세팅을 완료한 차민재가 눈이 부실 정도로 예쁘게 웃으며 재언을 기다리고 있었다.
“민재 씨, 배고프죠? 제가 좋아하는 밀키트인데 맛있어요. 역시 자취할 땐 이런 완제품이…….”
재언은 씻어온 채소와 챙겨 온 오징어 볶음 밀키트 4팩을 몽땅 냄비에 털어 넣었다. 지글지글 익어 가는 요리를 기다리며 민재와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마침 광안의 성녀가 떠올라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저쪽에서 광안의 성녀와 만났습니다. 여기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협회에 의뢰를 넣었나 봐요. 딸과 함께 왔는데 저쪽 텐트에 있다고 했어요. 인사 나누고 오는 게 어때요?”
그러나 차민재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이렇게 보면 그는 무엇보다도 재언에게 성의가 가득하면서 타인에게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무관심했다.
“나름 두 달간… 엄선해서 고른 캠핑장이었는데……. 광안의 성녀가 나설 정도면 꽤 귀찮은 일일 것 같네요. 생각해 보면 재언 씨는 귀찮은 일에 좀… 많이 휘말리는 편 같습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제가 생각해도 그렇네요!’
굉장히 억울하지만 달리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 딸과 함께 놀러 온 것 같았는데, 아이가 낯을 많이 가리는지 아무 말도 안 하더라고요. 또래에 비해서 차분한 것 같기도 하고…….”
“아… ‘그것’ 말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사람한테 그것이라니요.”
재언이 냄비에 가득 찬 오징어 볶음 4인분을 뒤적거리면서 타박하자 차민재가 딱히 숨길 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가벼운 투로 대답했다.
“그건 ‘광안의 성녀’의 또 다른 껍데기입니다. 그들은 능력을 계승하면서 영혼을 옮겨 다니거든요. 딸이라는 그것도 광안의 성녀가 낳은 게 아니라 그녀의 유전자로 만들어 낸 인공 인간입니다. 껍데기가 열한 살이 되는 해 광안의 성녀는 영혼을 옮겨 다른 껍데기에서 다시 태어날 거고요.”
“영혼을 옮긴다니…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광안의 성녀가 가진 능력 덕분이죠. 그녀가 가지고 다니는 구슬은 그녀의 영혼입니다. 그 구슬에 자신의 영혼을 담고 새로운 껍데기에 심으면 또 다른 광안의 성녀가 태어납니다. 뭐, 기억은 리셋되는 것 같지만…….”
“그러면, 그건 완전히 다른 사람이잖아요? 지금의 광안의 성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심각한 표정의 재언과는 달리 차민재는 평온한 얼굴로 햇반을 뜯으며 점심 먹을 준비를 했다.
“그러게요. 아마도 죽게 되겠죠. 또 다른 몸에서 태어날 테지만, 그게 지금의 그녀라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왜… 그렇게 하는 거죠?”
“그녀의 능력을 영혼이 버티지 못하는 겁니다. 그녀가 언제부터 히어로 협회에 몸담았는지 저도 몰라요. 협회는 이용해 먹기 쉬운 그녀를 놔줄 생각이 없거든요. 그러니 계속해서 광안의 성녀를 태어나게 만드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