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화로에서 숯불에 구워지는 고기를 내려다보며 재언은 구이용 집게를 달칵거렸다. 해가 넘어가고 주변이 어두워지는데 아직도 귀신들의 성녀가 돌아오지 않았다.
‘대체 어딜 돌아다니고 있는 거야?’
혹시라도 그녀가 광안의 성녀와 마주치기라도 해서 소란을 일으키면 어떻게 하나 조마조마했다. 그러는 사이에 먹음직스럽게 익은 숯불구이를 접시에 담고 테이블로 다가가자 텐트 안에서 차민재가 나왔다.
“민재 씨, 다 끝낸 거예요?”
“네. 들어가 볼래요? 따뜻하게 미리 데워 놨어요.”
해가 지면서 공기가 너무 차가워지기에 두 사람은 텐트 안에서 고기를 먹고 쉬기로 했다. 그래서 재언이 고기를 굽는 동안 차민재는 히터와 에어매트를 준비하기로 했는데 벌써 끝낸 모양이었다.
“와. 공기가 엄청 훈훈해졌네요?”
“네. 제 능력을 담아낼 수 있는 특수 제작 난로예요. 제가 끄지 않는 이상 ‘영원히 불타오르는 불꽃’이니 새벽에 꺼질 일도 없을 겁니다.”
“…….”
사실 그의 ‘불꽃’은 너무나도 익숙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파도치는 절벽 위 별장’의 거실 벽난로에서 타오르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이 바로 레드-헬-파이어의 헬파이어였다.
그것이 거기까지 온 경위는 매우 간단했다. 엔레이드맨이 레드-헬-파이어의 공격에서 간신히 도망쳐 나왔지만, 그의 옷자락 끝에 붙은 불꽃은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을 끄려고 옷을 바다 한가운데 버려 봤지만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장작 몇 개와 함께 벽난로에 던져 놨다. 그랬더니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꺼지지 않고 잘 타오르는 중이었다. 작은 불씨였을 뿐인 그 불꽃이 엔레이드맨의 몸에 닿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지금 떠올려도 아찔했다.
이제는 벽난로 앞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엔레이드맨의 모습이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그의 불꽃이 없으면 섭섭해질 정도였다. 영혼마저 불태운다는 ‘헬파이어’를 난로 대신으로 쓴다니……. 기분이 참 묘하고 무서웠다.
“…아직까진 조용하네요.”
“뭐, 광안의 성녀가 있다고 사건이 터질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재언 씨, 멜론 더 드실래요?”
“그렇죠.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지만, 실은 귀신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예를 들면 경쟁하는 주변 캠핑장에서 수를 썼다든가……. 아니면 여기는 산 아래라서 밤에는 어두컴컴하니 무섭잖아요? 겁을 먹은 사람들이 잘못 봤다든가…….”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던 재언은 잠시 말을 멈추고 입 안까지 배달되는 멜론을 씹어 삼키며 감탄 어린 표정을 지었다.
“와, 엄청 달아요.”
“더 있어요. 많이 먹어요.”
“근데 저 아까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배부른데……. 천천히 주세요.”
“하지만 재언 씨랑 있으면 없던 사건도 만들어질 것 같아서… 잔뜩 먹여 놔야 안심이 되는걸요.”
민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캠핑장 입구 쪽 구역에서 소란스러운 기척이 들렸다.
소형견 한 마리와 함께 캠핑을 즐기던 젊은 연인이었다. 텐트 밖으로 포니테일 머리를 한 여성이 비명을 지르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뛰쳐나왔다.
그녀의 뒤를 따라 검은색 후드티를 입은 남성 나왔는데, 그의 얼굴도 괴물을 본 것처럼 혼비백산한 표정이었다.
“괴물이야, 괴물이에요!”
강아지를 껴안고 텐트에서 나온 두 사람은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신재언과 차민재가 있는 텐트 쪽으로 달려왔다. 그에 재언이 입 안에 있던 멜론을 삼키며 벌떡 일어났지만, 그보다 더 빠르게 대처한 사람이 있었다.
커플과 더 가까이에 있었던 광안의 성녀가 나타나 손에 들린 구슬을 위로 올리며 그들을 보호했기 때문이다.
구슬에서 하얀빛이 터져 나와 어두운 캠핑장을 환하게 비쳤다. 시야가 환해지자마자 재언은 저들이 왜 겁에 잔뜩 질려 뛰쳐나왔는지 곧바로 깨달았다.
그들이 설치한 텐트의 타프 위로 검은색 그림자가 보였다. 팔이 길고 다리가 짧은 그것은 마치 고릴라처럼 앉아 있었다.
좁은 어깨에 비해 머리가 유난히 크고, 한쪽 눈만 비정상적으로 동그랗게 돌출되었다. 몇 가닥 없어 보이는 머리카락에 재언은 저 생물체가 귀신이라기보단 돌연변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돌연변이란 머메이드, 머맨, 하피 같은 다른 종족이 아니라, 유전자가 변이된 인간들로 흉측한 외형 때문에 같은 인간에게 배척받는 사람들이었다.
흉측한 외형을 가졌지만, 돌연변이들은 일반인들보다 신체적인 능력이 한 군데 이상 뛰어난 점을 보였다. 힘이 좋거나 날렵하거나 신체 일부를 변형하거나 단단하게 만드는 등의 능력이었다.
그들은 전 세계적으로 백만 명 중의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확률로 태어났다. 유럽에선 18세기 초까지 그들이 가진 힘과 잔인함에 악마가 인간으로 환생했다고 하며 태어나는 족족 죽이기도 했다.
이전에 재언이 만났던 연쇄 식인 살인마 또한 돌연변이라고 칭할 수 있었다.
돌연변이에 대한 시선이나 취급은 아직도 사회에서 크게 이슈가 되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어딘가 감정적으로 결여’되어 있는 이들이었다.
‘반드시’라고 해도 될 만큼 잔인하고,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켰다. 지금도 부모를 끔찍하게 살해한 돌연변이 자식에 대한 뉴스가 심심치 않게 보도되곤 했다.
“저건… 괴물이 아닙니다. 아직 그에게 살의를 찾아볼 수 없어요.”
“하지만, 저, 저게 우리가 있는 텐트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어요! 우리 뽀미를 데려가려고 했다니까요!?”
강아지를 끌어안은 여성이 울먹이며 소리쳤다. 충격이 상당히 큰지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그녀의 말을 요약하면 텐트 안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입구가 열리며 꼬질꼬질 때가 낀 손이 불쑥 들어왔다. 손은 두 사람이 깜짝 놀라 얼어붙은 사이 더 안쪽으로 들어와 경계하는 강아지를 붙잡았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여성이 강아지를 붙잡은 손을 힘껏 발로 차자 그것이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타프 위로 재빠르게 올라갔고, 그제야 두 사람은 강아지를 챙겨 밖으로 도망쳤다고 했다.
광안의 성녀가 빛을 뿜어내는 구슬을 내밀며 공포에 질린 그들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진정하세요……. 저분과 제가 대화를 나눠 보겠습니다.”
그녀는 아직도 타프 위에 앉아 있는 돌연변이에게 망설임 없이 다가갔다.
“말을 할 줄 아시나요?”
“큭. 크, 크흐흐. 맛있는 고기…….”
“…….”
돌연변이의 커다란 한쪽 눈은 여성의 품에 안긴 강아지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배가 고픈 모양인지 배를 쓰다듬으며 침을 뚝뚝 흘리는 모양새가 다른 것보다도 강아지를 노리는 게 분명했다.
지나치게 더럽고 꾀죄죄한 모습이 버려졌거나 어딘가에서 도망친 게 틀림없었다.
“배고파. 배, 배고파!”
돌연변이가 잠깐의 대치 상태를 깨고 입을 벌린 채 강아지를 향해 달려들었다. 돌연변이를 죽일 생각은 없는 듯 하얀 천을 벗지 않은 광안의 성녀는 구슬을 공중에 띄워 희미한 막을 만들어 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막에 부딪혀 튕겨 나갔을 텐데, 돌연변이는 민첩하게 중심을 잡고 다시 바닥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잠깐, 이것 좀 가져갈게요, 민재 씨!”
상황을 지켜보던 재언은 아이스박스를 열어 남아 있는 생고기를 꺼내 광안의 성녀에게 던지며 소리쳤다.
“이것 쓰세요!”
“신재언 씨… 감사합니다.”
재언이 말하는 게 무엇인지 빠르게 눈치챈 광안의 성녀는 날아온 생고기를 주워 돌연변이의 머리 위로 던졌다. 돌연변이는 고개를 돌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날렵하게 낚아채 우적우적 씹어 삼키더니 어두운 산속으로 등을 돌려 사라졌다.
멍하니 그 모습을 보는 광안의 성녀에게 재언이 다가가 물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네… 신재언 씨 덕분에 아무도 다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보다 저녁 식사였을 텐데…….”
“저희는 다 먹고 남은 거였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후식으로 과일을 먹고 있었는데… 아, 저희 쪽으로 와서 과일 드시면서 이야기 좀 나눌까요?”
아무래도 캠핑장에 온 사람들이 목격했다던 이상한 그림자나 괴물 같은 건 저 돌연변이 탓이 분명했다.
“레드-헬-파이어가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허락받고 올게요.”
“그게 아니라…….”
광안의 성녀가 뭐라 더 말을 덧붙이기도 전에 재언은 이미 민재에게 달려가는 중이었다. 차민재는 재언과 대화할 땐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다가, 광안의 성녀에게 향하는 재언의 뒤에서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광안의 성녀와 함께 돌아오는 재언의 앞에서는 또다시 웃는 표정을 만들어 냈다. 그 모습을 광안의 성녀는 마치 차민재가 ‘지킬 앤 하이드’ 같다고 생각하며 구경하는 마음으로 지켜봤다.
그렇게 훈훈한 공기로 가득한 텐트 안에 인형처럼 얌전한 아이와 광안의 성녀가 함께 들어와 네 사람이 둘러앉게 되었다.
“제가 딸의 이름을 생각해 봤는데……. 라라가 어떨까 싶습니다.”
“라라요?”
“네. 이 애는… 감정표현이 서툴지만, 마법 소녀 라라라는 애니메이션을 볼 땐 제 말도 안 듣고 다 볼 때까지 움직이지 않거든요……. 사람에게는 모두 이름이 필요한 거였는데, 제가 참 무심했죠.”
재언은 민재에게 그녀에 대한 사연을 듣긴 했지만, 직접 들은 이야기가 아닌지라 일단 모른 척 고개를 끄덕였다.
‘껍데기라고 하더니, 이름을 지어 주고 챙겨주네……. 결국은 본인의 영혼이 담길 매개체니까 잘해 주고 싶은 건가? 이쪽도 알기 정말 어렵군…….’
광안의 성녀는 이제 막 ‘라라’라는 이름이 지어진 소녀에게 멜론이 든 그릇을 건네주었다.
“이미 들으셨겠지만… 껍데기에게 이름을 지어 주고 무슨 소용인가 싶지요?”
티 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티가 많이 났나 싶었던 재언은 머쓱하게 웃으며 라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인형에게도 이름을 지어 주면 영혼이 담긴다는 소리가 있잖아요. 분명 비어 있을지라도 당신이 그렇게 불러 준다면, 분명 의미 있는 일이 될 겁니다.”
“…….”
“당신이 지어 준 이름으로 이 아이는 많은 게 바뀔지도 몰라요. 장담합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일단 캠핑장에 나타난 저 돌연변이부터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은데……. 대체 어디서 나타났는지…….”
입에 넣어 준 멜론을 기계적으로 우물거리던 소녀는 눈을 한번 깜박이더니 누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멜론을 한 입 베어 물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