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머리만 빼꼼히 넣어 살펴본 집 안은 한동안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듯했다.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고, 바닥은 진흙으로 잔뜩 엉망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네요?”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세를 바로 하며 재언이 뒤를 돌아본 순간, 광혼사가 얼굴을 무섭게 일그러트리더니 재언의 팔을 붙잡고 뒤로 잡아당겼다.
“!?”
“이놈!”
재빠르게 재언의 앞으로 나선 광혼사가 왼쪽 발로 흙바닥을 강하게 내디디며 호통을 쳤다. 동시에 갑자기 앞쪽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재언은 품에 안고 있던 라라를 더욱더 강하게 감싸 안으며 바람을 등진 채 몸을 웅크렸다. 한참 동안 등을 때리던 세찬 바람이 잦아들자 고개를 든 재언의 시야에 새파란 빛을 내뿜는 예리한 날을 가진 도(刀)를 들고 있는 광혼사의 모습이 보였다.
라라를 안은 어정쩡한 자세로 재언은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내뿜는 광혼사의 시선을 따라 눈을 위쪽으로 옮겼다. 그러자 나무 위에서 반짝이는 안광과 눈이 마주쳤다. 그에 재언은 머리털이 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다.
‘헉, 깜짝이야!’
우뚝 솟은 나무 위에 쭈그리고 앉아 재언과 광혼사를 내려다보는 이는 바로 저녁때 목격했던 바로 그 돌연변이였다.
“누, 누나… 누나, 나 정말 너무 배고파. 배고파. 누나가 없어, 나 정말 너무 배고파!”
재언의 눈에는 돌연변이 혼자 나무 위에 앉아 있는 걸로 보였는데, 돌연변이는 마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듯이 빠르게 혼잣말을 하며 발광을 해 댔다.
능력을 각성한 이후로 여러 가지 경험을 해 왔지만, 스산하기 짝이 없는 숲에서 보게 된 광경에 눈물이 찔끔 흐를 만큼 너무나도 무서웠다. 겁에 질린 재언과는 다르게 광혼사는 이런 일이 익숙한지 호통치는 걸 멈추지 않았다.
“거기서 뭐 하는 게냐! 지옥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기 전에 썩 저승으로 돌아가지 못할까!”
점잖고 순한 모습만 봐 와서 그런가, 호통치는 모습에서 흘러나오는 박력이 굉장히 낯설었다. 하지만 저승사자가 왜 돌연변이한테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재언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어느새 다가온 귀신들의 성녀가 말을 걸었다.
“위대하신 아버지,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귀안’을 열어드릴게요.”
“어… 그냥 상황만 말해 줘도 되는데…….”
눈을 가리는 차가운 손을 느끼며 재언은 부르르 떨었다. 창백하다 못해 새파란 손이 얼굴을 감싼 장면은 훌륭한 호러 영화의 한 장면 같을 것이다.
이윽고 얼굴에서 손이 떨어지자 떠지지 않는 눈을 간신히 뜬 재언은 천천히 돌연변이 쪽을 다시 한번 쳐다봤다.
“…헉!”
눈으로 확인한 광경에 재언은 다시 눈을 감아 버리고 싶었다. 돌연변이의 어깨와 목에 매달린 여자 귀신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선명하게 보이는 그 모습은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처참했다.
“이승으로 오면서 ‘죽었을 때의 모습’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때의 고통이 영혼에 새겨지고 있을 터, 한시라도 빨리 낭자를 저승으로 데려가야 합니다. 이승에서 저 모습으로 오래 있게 된다면 저승에서도 저 모습으로 지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들었는데 얼마나 끔찍하고 참혹한 사고였는지 하반신이 거의 뜯긴 모습의 영혼이었다. 그나마 온전한 팔로 돌연변이의 목을 끌어안고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그, 그 남자, 남자가 이거 먹으면, 배, 안 고프다고, 그랬는데……. 왜, 왜 계속 배가 고픈 거야? 누, 누나가 사라지고, 배고파서 나…….”
쇠가 긁히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돌연변이는 재언의 품에 안겨 있는 소녀를 보더니, 눈을 번뜩이며 입에서 침을 뚝뚝 떨어트렸다. 돌연변이임을 고려하더라도 재언은 그의 언행에 의문을 느꼈다.
‘무슨 말이지? 그 남자가 뭘 먹으라고 했다고? 저렇게 된 이유가 따로 있다는 건가?’
하지만 재언이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돌연변이가 어깨에 끔찍한 몰골의 귀신을 매달고 나무에서 펄쩍 뛰어내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무서운데 재언은 자신을 바라보며 침을 흘리는 모습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돌연변이가 바닥에 착지한 순간, 돌연변이에게 매달려 있는 귀신을 말없이 노려보던 광혼사가 도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고개를 숙였다.
“삼사관!”
광혼사의 발이 닿은 흙바닥이 움푹 파이며 주변으로 검은색 기(氣)가 연기처럼 퍼져 나갔다. 그가 도를 휘두르자 재언의 품에 있는 어린 소녀를 잡아먹을 듯 달려들던 돌연변이가 무형의 어떤 것에 충격을 입은 듯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고 나무에 처박혔다.
휘날리는 도포 사이에서 꽃 조리개가 영롱한 빛을 내며 딸랑이는 소리를 냈다. 눈에 띄는 꽃 조리개에는 시선을 주지도 못하고 재언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가지 방울을 흔들어 결계를 만들던 귀신들의 성녀가 땀을 훔치며 말했다.
“아버지. 저 저승사자… 저승 십대왕의 힘을 쓰고 있습니다.”
“뭐? 그게 뭔데?”
“저승을 지배하는 열 명의 왕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승과 관련된 것에는 엄청난 힘을 가진 남매였네!’
재언이 감탄하는 것도 잠시, 광혼사의 공격에 깜짝 놀랐는지 돌연변이가 절뚝이며 나무 위로 다시 올라갔다.
분명히 큰 충격을 받을 만큼 강한 공격이었던 것 같은데 머리에서 흐르는 핏줄기가 그새 멈추었다. 아니, 멈췄다기보다는 상처가 말끔히 나았다.
부러진 것처럼 보이던 발목도 제자리를 찾아가는 게 맨눈으로도 확실하게 보였다. 가히 놀라운 재생력이었다.
‘저것과 비슷한 모습을 어디서 봤던 것 같은데?’
몸이 재생되면서 허기가 급격하게 몰려오는지 돌연변이가 배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도망치려는 듯 허겁지겁 뒤를 돌았다.
광혼사가 돌연변이에게 붙어 있는 영혼을 잡으려 그의 뒤를 쫓아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허공이 일그러지면서 돌연변이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누군가가 방해하고 있습니다.”
“누가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예사롭지 않은 힘이 느껴집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인지라…….”
방금까지만 해도 흘러넘쳤던 기백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부드럽게 웃는 저승사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마치 풀이 죽은 듯한 그의 모습에 귀신들의 성녀는 묘한 익숙함을 느꼈지만, 이내 신경을 꺼 버렸다.
“엔레이드맨,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겠어?”
- 죄송합니다, 아버지. 바로 흔적을 찾으려고 했는데…….
엔레이드맨의 추적을 따돌릴 만한 능력자라는 말이었다. 누가 무슨 꿍꿍이로 이런 짓을 벌였는지 전혀 알아내지 못한 채 사건은 더욱 미궁으로 빠져 버렸다.
재언은 풀이 죽은 엔레이드맨을 괜찮다는 말로 다섯 번 정도 달랜 뒤 라라를 고쳐 안고 저승사자와 산에서 내려왔다.
허름했던 폐가는 광혼사의 공격으로 인한 파동 때문에 폭삭 무너져 내렸다. 집터만이 남은 곳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던 광혼사가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제 이틀밖에 안 남았군요. 그때까지 영혼을 저승에 데려가지 못한다면 그녀는 이승에서도, 저승에 가서도 고통받게 되겠지요. 그전에 데려갈 수 있어야 할 텐데요.”
“마치 악귀처럼 그 남자의 어깨에 딱 달라붙어 있었지요. 대체 왜 그런 걸까요?”
“동생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뿐만 아니라 동생 쪽이 더 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집에 남아 있던 동생이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할 것이라고 애통해했죠. 자신이 죽었는지도 모르고 굶고 있을 남동생에게 이제 누나는 이승에 없으니 혼자서 살아야 한다고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광혼사가 씁쓸한 표정으로 꽃 조리개를 내려다봤다.
“하지만 남동생은 귀신이 된 누이를 어깨에 매달고서도 전혀 누이의 말을 듣지 못했으니……. 그녀의 기구한 생이 마지막까지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귀신들의 성녀 역시 음울한 얼굴이 되어 고개를 푹 숙였다. 마지막까지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한 자신의 남동생을 떠올리는 것일까.
‘마지막에 돌연변이를 데리고 간 조력자는 누구였을까. 돌연변이에게 조력자를 만들 만큼 이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머리를 감싸 쥐며 고민하던 재언은 밤도 늦은데다 라라를 계속 데리고 있는 것도 신경 쓰였다. 결국, 재언은 광혼사와 헤어져 일단 텐트로 돌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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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저게 우리들의 ‘위대하신 그분’인가? 조금만 늦었어도 이 남자 때문에 보스가 곤란하게 될 뻔했잖아!”
“닥쳐! 네놈 목소리 때문에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 세상을 지배할 ‘위대하신 그분’께 상처를 입혔다가 네가 퍽이나 무사하겠다!”
능글맞은 목소리에 대비되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숲 속에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이 대화하는 듯한 목소리들이지만, 두 명이 아니었다.
한 명이지만, 하나의 몸에 두 개의 목이 붙어 있었다. 왼쪽에 붙어 있는 얼굴은 능청맞게 생긴 남미계 남자였고 오른쪽은 예민하게 생긴 라틴계 여성이었다.
단단한 철실로 목 두 개가 붙어 있는 몸은 움직임이 매우 부자연스러웠다.
“그렇게 화내지 마, 츠유. 결국, 우리 뜻대로 될 테니까.”
“로에즈. 넌 정말 썩을 놈이야.”
대화를 나누던 두 얼굴은 한참 동안 폭소를 내뱉더니 주머니에서 주사기 하나를 꺼냈다. 두 사람이지만 한 사람이기도 한 그들에게 잡힌 돌연변이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치고 있었지만, 힘이 어찌나 센지 벗어나지 못했다.
“보스가 알면 엄청나게 화낼걸?”
“하지만 이렇게 재밌는 걸 놓칠 순 없잖아.”
“네가 이런 썩을 녀석인 걸 알면서도 보낸 걸 보면 분명 알례리도 이런 상황까지 예측했을 거야. 그러니 이것도 모두 ‘위대하신 그분’을 위한 일이지.”
“맞는 말이야.”
두 얼굴은 서로를 바라보며 깔깔 웃더니 꺼낸 주사기를 돌연변이에게 꽂아 넣었다. 그러자 돌연변이의 몸이 점차 푸르게 변하더니 이내 두 얼굴에 그림자가 크게 드리울 정도로 거대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