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근하는 빌런-182화 (182/324)

182화

빌런명 ‘저주받은 보석가.’

이름은 김현우, 나이는 서른네 살. 대략 5년 전에 능력을 발현했으며 만지는 대상을 보석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특수한 장갑을 끼면 억제할 수는 있었다.

그가 빌런으로 규정된 이유는 가족 살해였다. 다른 각성자들이 가족을 죽이는 불미스러운 사건을 사고로 둔갑해 정부 소속 히어로가 되는 것을 생각한다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어쨌든 빌런인 저주받은 보석가는 각성한 이후로 지금까지 정부에서 비밀리에 운영하는 감옥에 줄곧 수감되어 있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코루루의 얼굴이 수치심에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그녀는 형제들 앞에서 꼴사납게 비명을 지른 자신의 추태를 곱씹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형제 중 귀신들의 성녀와 가장 사이가 좋긴 하지만 그녀는 호러물에 굉장히 약한 편이었다.

“이 나뭇가지 같은 남자가 저주받은 보석가인가요? 그리고 언제까지 체어맨 오빠에게 달라붙어 있을 생각이죠?”

온몸이 구속구로 꽁꽁 싸매어 있는 남자는 어떻게 힘이 났는지 체어맨의 옷을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스스로는 설 수 없는 듯 사지가 딱딱하게 굳어 쪼글쪼글 말라 있었다. 하지만 남자의 수척한 얼굴 위로 눈빛만큼은 형형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체어맨 형님이… 보석으로 변하면 어떻게 하죠.”

버드맨이 흐릿한 눈동자에 걱정을 담으며 우물쭈물 중얼거렸다. 체어맨의 후줄근한 양복의 앞부분이 보석이 되어 조각처럼 떨어졌다.

“맨살에 닿지 않으면 괜찮은 것 같으니 걱정하지 말렴, 막내야.”

체어맨이 바스러지는 옷을 털며 버드맨을 안심시켰다. 귀신들의 성녀가 가지 방울을 흔들어 악귀들에게 저주받은 보석가를 떨어트리는 걸 지켜보던 엔레이드맨이 한 걸음 나와 손가락질했다.

“저주받은 보석가. 아버지께선 네 보석을 기대하고 계시다. 네 능력으로 위대하신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보석을 만들어 내라. 너도 우리와 같은 빌런이라면 알겠지? 아버지를 위한 일은 영광이고 큰 은혜일 테니까!”

아주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명령이지만, 엔레이드맨은 빌런이다. 빌런인 그가 다른 빌런에게 명령을 내리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저주받은 보석가는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 혼란스러워하며 어디인지 가늠하려는 듯 보였으나 시력이 좋지 않은지 고개를 흔들며 눈을 깜박일 뿐이었다.

“…보석… 좋지… 만들어 줄 수 있지.”

남자는 혀가 굳기라도 했는지 발음도 새고 말이 매우 느렸다. 이제 보니 그의 눈 안에도 보석이 박혀 있었다. 홍채까지 보석으로 변하는 중인 듯했다.

“내 부탁을 먼저 들어주면… 최고의 보석을 만들어 주겠어.”

“우리가 너랑 협상하려고 데려온 줄 알아?”

엔레이드맨의 날카로운 말에도 신경 쓰지 않고 남자는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너무 느리고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뜻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난 이제 죽는 게 무섭지 않아… 곧 죽을 걸 알고 있거든……. 죽기 전 내 소원을 들어줄 사람에게 영혼을 다해 보석을 만들어 주겠다고 다짐했어……. 세계에 단 하나뿐인 보석이야. 당신들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좋아하지 않겠어?”

확실히 자식들이 보기에도 남자는 죽어 가고 있었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그러니 빌런들이 자신을 납치해도 겁 없이 행동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 하나 시선을 교환하며 서로 눈치를 보던 빌런들은 일단 남자의 이야기라도 들어 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아버지께서 사고 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도 있고, 아버지께 최고의 선물을 드리고 싶은 자식들의 마음이 내린 결정이었다.

게다가 남자가 마지막 힘을 쥐어짜 체어맨에게 매달린 탓에 옷깃이 보석으로 변한 것을 보니 영롱하고 아름다우며 묘한 에너지를 내는 것을 모두가 확인했다. 다른 보석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좋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지. 네가 아버지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을 바치겠다고 약속하면 말이야. 단, 말도 안 되는 부탁은 무효야.”

“복수해 달라는 것 아니겠어요? 그거라면 간단하죠. 어느 곳이든 체어맨 오빠가 뚫지 못하는 곳이 없고 엔레이드맨 오빠가 죽이지 못할 것이 없으니까요.”

코루루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턱을 치켜들었다. 저주받은 보석가의 입이 열리고 그가 말을 이어 갈 때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다크 카오스의 자식들의 눈이 크게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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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언은 집안일을 미루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몸이 힘들고 지쳤을 땐 건너뛰기도 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설거지만큼은 건너뛰지 못했다.

그러나 차민재가 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설거지 거리가 눈에 띄게 늘었고, 재언은 그것을 나중에 몰아서 처리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식기세척기 얼마지? 아래에 빌트인으로 둘 공간이 있으려나? 혼자 살기에 딱 좋다고 생각했는데 식기세척기를 놓기엔 주방이 좁아…….’

재언은 허리에 손을 올리고 고민하면서 몇 가지의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한 번 관심을 이 생기니 시간이 날 때마다 이것저것 알아봤다.

작게 나온 것도 있었고 설치가 필요 없는 것도 있고, 빌트인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제품도 많았다. 식기세척기 가격을 알아보는 재언의 최고 관심사는 사실 그것을 사느냐 마느냐로 고민 중이었다.

그러던 중, 주말에 시간이 비어 화장실 청소를 하는 재언에게 고등학교 동창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작년에 결혼한 놈이었다.

- 다음 주에 생일이잖아. 당일엔 애인하고 보내냐?

“어. 전날하고 당일은 시간 내기 어려운데.”

- 그 대단한 신재언 애인이 누구인지 궁금하네. 너 옆 학교에서 제일 가는 퀸카도 찼잖아! 걔 지금 배우로 일하고 있던데 진짜 아까웠다니까.

“할 말은 끝났냐? 나 지금 설거지하러 가야 해.”

- 잠깐만! 그러면 다다음 주에 나올 수 있어? 우리끼리 한번 모여야지.

화장실 청소를 끝내고 화장실 청소 솔을 깨끗이 닦은 뒤 벽에 걸어 놓고 고무장갑을 벗었다. 반짝반짝해진 화장실에 재언은 뿌듯한 마음으로 화장실을 나왔다.

어느새 와 있었는지 코루루가 뚱한 표정으로 앞에 서 있었다. 그동안 차민재 때문에 어지간히 답답했던 모양이다.

코루루의 머리를 쓰다듬고 주방으로 향한 재언은 싱크대에 있는 접시들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 왜 한숨이냐? 우리랑 만나기 싫냐?

“아니. 설거지가 좀 많아서.”

- 아… 나 진이가 식기세척기 사자고 해서 샀는데 좋더라.

친구의 말에 재언이 흥미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그래? 부럽네. 나도 하나 필요하긴 한데…”

- 너도 사지 그래?

“그런데 돈이 좀 아깝잖아. 적은 금액도 아니고 그냥 내가 고생하고 말지 뭐.”

통화를 끝내고 설거지에 집중하니 금방 끝났다. 막상 하면 많지도 않은 기분이라 아까울 것 같아 역시 사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깔끔하게 단념했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본 TV 예능프로그램에서 혼자 사는 출연진이 식기세척기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접었던 마음에 불이 붙었다.

주방 작업대 위에 올릴 수 있는 작은 크기에 그릇들을 넣고 돌릴 수 있는 식기세척기였다. 저렇게 작은 크기로도 설거지가 가능하다며 속으로 감탄했다.

“아, 부럽네…….”

재언은 방금 봤던 식기세척기 모델이 무엇인지 인터넷으로 확인하고 금액을 알아봤다.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 비싼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만만한 금액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걸로 일상생활이 편해지면… 깨끗하게 설거지가 되겠지?

빌런들의 왕이자 많은 이들의 공포의 대상인 다크 카오스는 집 안에서 식기세척기를 살까 말까로 엄청나게 고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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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들 뭐 하는 거야?’

재언은 뉴스 화면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익숙한 실루엣을 보며 입에 있던 맥주를 주르륵 흘렸다. 허둥지둥 옷을 닦는 재언의 낯빛이 하얗게 변했다.

그의 옆에 있는 최강 히어로의 핸드폰에서 끊임없이 불이 반짝였다. 사실 그전부터 시끄럽게 울린 핸드폰에 무음 모드로 변경한 탓이었다.

차민재는 재언의 앞에 손수건을 가져다 대고 맥주로 더러워진 턱을 톡톡 두드리며 달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고 안 친다면서요?”

“그렇게… 얘기는 했는데……. 하하하.”

신재언이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보석이… 갖고 싶었나?”

레헬만 없었다면 전화로든 뭐든 엔레이드맨을 불러냈을 텐데, 그럴 수도 없었다. 대체 저 자식들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궁금했다.

재언이 갖고 싶었던 건 저주받은 보석가의 영혼이 담긴 보석이 아니라 집안일을 편하게 하고 싶은 자취생의 식기세척기라는 걸 모르는 자식들은 현재 푸른 바다에 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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