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근하는 빌런-186화 (186/324)

186화

“저주받은 보석가가 능력을 각성하면서 가족들을 보석으로 만든 사건 기억합니까? 그가 각성한 날, 그는 엄청난 힘으로 아내와 딸을 보석으로 만들었죠. 생명이 깃든 보석은 매우 아름답고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TV 화면 속의 태안 앞바다를 바라보며 차민재의 설명이 이어졌다.

“가족들이 전리품처럼 구경거리가 되어 전시장에 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저주받은 보석가가 제게 보석을 주며 의뢰하더군요. 가족들을 제발 누구의 손도 닿지 않는 곳에 숨겨 달라고요. 보석은 의뢰비를 충당하고도 남을 정도라 부탁을 들어줬죠. 보석이 된 두 사람을 바다 깊은 곳에 빠트렸습니다.”

매우 슬프기 짝이 없는 내용임에도 차민재의 얼굴은 아무런 감흥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저주받은 보석가가 고맙다며 자신의 심장을 보석으로 만들어 제게 뜯어 주었습니다. 그는 심장이 뜯겨도 남아 있는 심장의 잔해로 살아 있을 수 있었죠. 만약 온전한 심장인 채로 살았다면 그는 평생 보석을 만들 힘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네요.”

평범한 사람의 심장이었다면 그것을 뽑거나 보석으로 만든 즉시 멎었을 테지만, 저주받은 보석가의 심장은 보석이 되어도 멈추지 않았다. 심장을 뜯어도 조각이 그을림처럼 남아 남자를 속박했다.

그야말로 저주받은 능력이었다. 차민재의 설명을 듣던 재언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히어로 협회고 정부고… 사실 다 쓰레기 아니야? 누구더러 빌런이라고 욕하는지 모르겠네…….’

어쨌든 저렇게 당당하게 태안 바다 위로 귀신들의 성녀가 모습을 드러냈으니 이번 생일도 조용히 지나가기엔 글렀다.

심란한 마음으로 뉴스 화면을 보던 재언은 귀신들의 성녀가 들고 있는 저주받은 보석가의 얼굴이 어딘지 낯익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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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했던 바닷가.

겨울 바다는 여름만큼 사람으로 북적이진 않지만, 몇몇 커플과 가족들이 오붓하게 해변을 걷고 있었다. 그들은 모래사장에 발자국을 남기며 한껏 바다를 느꼈다.

그런 곳이 갑작스럽게 공포와 비명이 담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허공에서 나타난 여섯 명의 빌런들 때문이었다.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을 벌벌 떨게 만들 수 있는 거대 빌런 여섯이 한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아주 이례적인 일로,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귀신들의 성녀가 저주받은 보석가의 머리를 들어 올리며 툴툴거렸다.

“…이 남자의 머리는 정말 돌덩이 같아요. 무겁다고요.”

“오, 가녀린 내 동생. 이리 주렴. 내가 대신 들어 주마.”

형제를 끔찍이 아끼는 체어맨이 그녀가 들고 있는 머리를 넘겨받았다. 그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사람들은 빌런들이 해수욕장에 있는 이들을 공격할 것처럼 보였는지 비명을 질렀다.

“나도… 내 가족들과 이곳에 왔었지. 아내는 태안 사람이었어. 이 해수욕장에서 처음 만나 번호를 교환했어…….”

저주받은 보석가는 군대 제대 후 막 복학한 대학생 시절 친구들과 태안에 놀러 갔다가 바닷가 근처 술집에서 또래 여성들과 합석을 했다. 그리고 그때 만난 게 아내였다고 말했다.

아내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교와 연계되어 있는 공장에서 경리직으로 일을 하던 직장인이었다. 둘은 번호를 교환해 가끔 만나 밥도 먹고 술을 먹으며 친한 관계를 이어 가다 알게 된 지 1년 만에 교제를 시작했다.

5년 뒤 결혼한 두 사람은 귀여운 딸이 태어나고 행복한 삶을 이어 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남자는 결혼 전부터 SNS에서 소소하게 이름이 알려진 보석 세공사였다. 장신구를 만드는 일은 물론 가지고 있는 원석을 가공하는 것까지 맡아서 돈을 벌었다.

벌이도 나쁘지 않아서 세 식구는 대구에 있는 아파트를 분양받아 들어갔다. 그때쯤 딸의 앞니가 빠졌다.

신축 아파트의 주민들이 텅 빈 화단에 묘목을 심는 일을 진행하면서 타임캡슐도 같이 묻는 것도 유행처럼 번졌다. 그는 아내가 바르고 있던 매니큐어와 딸의 첫 유치를 랩에 싸 도시락통에 넣고 나무 밑에 묻었다.

그것은 아내가 남자와 소풍 갈 때 처음으로 만들어 준 음식을 넣은 도시락통이었다.

불행이 시작된 그날, 아내는 저녁을 차리고 있었고 남자는 유난히 칭얼거리는 딸을 안은 채 식사 준비를 도왔다. 접시를 든 아내와 손가락이 겹친 순간 남자의 능력이 각성할 줄은 꿈에서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늦어도 청소년기 전에 능력이 각성하는 게 일반적인데, 서른이 넘은 자신이 능력자가 되리라고 어떻게 예감할 수 있을까. 그는 떼를 쓰며 칭얼거리던 딸과 평범한 대화를 나누던 아내의 굳어 버린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잔혹하게도 아내와 딸의 마지막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어… 어떤 보석들보다 빛이 났다고…….”

저주받은 보석가가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의 가족들이 전시장에 전시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두렵고 안타까웠다.

제발 가족들을 온전히 땅에 묻어 달라고 사정하는 그의 말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남자는 가족을 죽인 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평생 구금되어 살아갈 살인마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를 가둔 사람들이 원하는 건 단순했다. 그가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보석, 한 가지였다. 히어로 협회와 정부가 합작해서 만든 감옥으로 이송되기 전까지 그를 노리는 빌런들 때문에 납치 시도가 잦았다.

그에 정부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빼앗기지 않으려 레드-헬-파이어에게 따로 의뢰를 맡겼다.

“제발 내 아내와 딸만이라도 편하게 눈을 감게 해 주십시오. 제발 부탁입니다……. 제발, 제발 내 가족들만이라도 고통받지 않게 해 줘.”

“난 돈으로만 움직이는데… 네가 줄 수 있는 건?”

히어로답지 않은 질문을 내던지는 레드-헬-파이어의 시선엔 동정심이 한 톨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검지로 턱을 긁적이면서 사지가 결박되어 꼼짝도 하지 못하는 남자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저주받은 보석가는 보석이 된 아내와 딸의 몸은 언젠간 산산조각이 나 수십 개, 혹은 수백 개로 나뉘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게 되어 팔려 갈 것이라고 예감했다.

차라리 그전에 아예 없애 버리는 편이 나았다. 슬프지만, 그들을 위해서라도 나은 선택일 것이다.

“내… 심장을 주겠습니다.”

레헬은 남자가 건네는 붉은색 보석이 꽤 만족스러웠는지 씩 웃으며 의뢰를 받아들였다.

“어디로?”

“…….”

태안 바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곳, 아내는 바다를 좋아했다. 태안 바다 인근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이 바다에는 자신의 인생이 담겨 있다고 우스갯소리를 한 적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자신 때문에 바다를 포기하고 도시를 선택해 따라왔다.

“태안… 그곳으로.”

레헬은 그 길로 정부에서 보관 중인 둘의 시신을 가져와 태안 바다 한가운데에 깊숙이 빠트렸다. 정부 관계자들은 그의 행동에 반발하려다가 레헬의 살벌한 시선에 입을 꾹 다물었다.

보석으로 변한 두 사람을 남자 몰래 팔아먹으려고 했던 것을 들키면 골치 아파지겠다고 생각한 듯했다. 혹은 레헬을 건드는 걸 두려워한 걸 수도 있다.

결국, 정부와 히어로 협회는 굳이 남자의 아내와 딸을 수색하려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큼 뽑아내려는 듯 저주받은 보석가는 거의 강제적으로 보석을 뽑아내야 하는 지옥을 살아왔다.

과거를 회상하던 저주받은 보석가가 우울한 얼굴을 들어 올렸다.

“다크 카오스, 그자의 분위기는 어떻지?”

그의 말에 엔레이드맨이 불쾌한 표정으로 서늘하게 대답했다.

“네까짓 게 궁금해하실 분이 아니다.”

오금을 저리게 할 만큼 살벌하고 냉정한 일갈이었지만, 저주받은 보석가는 더 이상 무서울 게 없는지 전혀 개의치 않은 얼굴이었다.

“그의 분위기를 알아야 보석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줄 수 있다. 나를 이 바다 아래에 잠재워 준다면 최고의 보석을 선물해 준다고 약속하지.”

그는 자신을 감옥에서 벗어나게 해 준 누군가가 보석을 원한다면, 그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겨야겠다고 줄곧 생각해 왔다.

“…그분은 위대하시지.”

엔레이드맨의 얼굴에 우쭐거림이 드리워졌다.

“그분은 전지전능하십니다.”

타락한 추기경이 피눈물을 흘리며 감격에 젖은 목소리로 뒤를 이었다.

“그분은 자비로우시지요.”

체어맨이 얼굴에 쓴 검은 베일이 이리저리 휘날리는 바람에 그가 잇몸이 보일 정도로 활짝 웃는 게 선명하게 보였다.

“잔인하게,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으시는 분이시죠.”

코루루가 취한 것처럼 몽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노래를 부르는 듯 감미로웠다.

“세상의 모든 인간을 지배하고 계십니다. 호호… 호호호…….”

지옥에서 울리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한 귀신들의 성녀를 마지막으로 자식들의 아버지 소개가 끝이 났다. 종합하자면 위대하신 아버지에 관한 찬양이자 주접이었다.

“많은 사람이 그분의 지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세상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분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요. 누구에게나 공평하시지만, 누구에게나 방관적인 분이십니다.”

방금까지 저주받은 보석가의 말에 끌려다녔던 이들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들은 크게 웃으며 안광을 번뜩였다. 하지만 저주받은 보석가는 돌변한 그들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요구를 이어 갔다.

“…바다로 나를 내려 줘.”

그 말에 남자의 얼굴을 든 체어맨이 허리를 숙였다.

“좀 더… 좀 더.”

“이 남자 자살하려는 거 아닌가요? 체어맨 오빠, 더 내리지 말아 봐요!”

입술이 바닷물에 닿는데도 남자에게서 멈추라는 표시가 없자 지켜보던 코루루가 불만 어린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곧이어 수면 위로 얼굴이 꺼내진 남자는 눈을 감은 채 입에 무언가를 물고 있었다.

영롱하게 빛나는 푸른색의 보석이었다. 바다를 보석으로 만든 것처럼 투명하면서 어딘가 탁하고, 굉장히 어두운 듯한 푸른색이었다.

불길한 기운을 내뿜으면서도 밝게 빛나고 있는 것이 바다의 보석이라 불릴 수 있을 정도였다.

“이게 바로 아버지께 바칠 선물인가? 저주받은 보석가 이놈은 좀 까다롭긴 해도 확실히 보석은 아름답네요. 아버지께 어울리는 영롱함을 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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