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근하는 빌런-188화 (188/324)

188화

저주받은 보석가의 능력은 공격력이 강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손이 닿기만 해도 능력이 발동되기에 위험한 축에 속했다. 이 방법으로 지금까지 무려 2명의 S급 히어로들을 무력화시킨 전적이 있었다.

‘신재언’이 피를 토하며 주저앉자 저주받은 보석가는 고개를 뒤로 꺾어 가며 폭소했다. 손이 닿았던 가슴을 중심으로 ‘신재언’의 몸이 점점 투명한 빛을 가진 보석처럼 단단해졌다.

보석화되는 면적이 넓어지는 게 확연히 보일 정도였다. 저주받은 보석가는 무릎을 꿇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신재언’의 무기력한 모습에 커다란 희열을 느꼈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다크 카오스도 별것 없네. 당신도 그냥 그런 사람이지!”

턱을 타고 흐르는 피가 ‘신재언’의 하얀 살결에 흘러내려 더욱 선명하게 눈에 박혔다. 목덜미를 지나 턱까지 올라간 보석화 때문에 숨쉬기 괴로운지 그의 숨결이 거칠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뺨을 따라 주르륵 흘러 목덜미에 맺히자마자 보석 결정으로 바뀌어 바닥에 떨어졌다.

“그 대단하신 빌런왕도 이런 꼴이 됐군. 그리고 당신은 정말 아름다운 보석이 될 거야……. 세상에서 가장 희귀한 보석이 될 거라고. 당신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나라가 전쟁을 하겠지. 당신의 이름 그대로 세상은 지금보다 더 혼돈에 빠질 거야!”

“저주받은… 보석가.”

가슴을 움켜잡고 있던 손끝마저 보석이 되고 마침내 ‘신재언’의 얼굴 끝까지 정교하게 세공한 것 같은 푸른색 보석으로 변했다.

인간으로 만든 대부분의 보석은 붉은빛을 띠는데, ‘신재언’은 이마저도 특별한지 영롱한 푸른색이었다. ‘신재언’의 눈 색과 닮은, 바닷속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아름다운 빛깔을 지녔다.

“하… 하하.”

위대하다는 다크 카오스를 보석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남자는 후련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빌런 왕으로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남자의 최후를 자신의 손으로 만들었다는 데 커다란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어두운 밤하늘에 떠 있는 은하수가 반짝였다. 저 멀리서 불꽃이 터지고 폭발음이 산발적으로 울려 퍼졌지만, 그건 자신이 알 바가 아니었다.

그는 좀 더 자신이 만든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하고 싶었다. 지금 당장 저 포악한 ‘불꽃왕’을 피해 도망쳐야 하건만,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고 싶은 감정이 발걸음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때였다.

바라보고 있던 밤하늘이 이상했다. 은하수가 흐르고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그대로인 것 같은데, 묘하게 위화감이 들었다.

밤하늘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본 그는 그제야 별들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움직임은 아주 느리고 여유로워 처음에 눈치채지 못한 게 당연했다.

하지만 그가 그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별들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지더니 마치 소용돌이처럼 보일 정도가 되었다.

“…뭐지? 하늘이…….”

아무리 그가 미쳤다고 해도 하늘이 무너져 보일 만큼 정신이 이상해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은 자신을 스스로 의심할 만큼 기이했다. 이제는 별들이 그를 향해 쏟아지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움직임이 더욱더 빨라졌다.

괴상한 사태에 남자가 입만 벌리고 당황해하고 있을 때, 그의 뒤쪽에서 익숙한 미성이 들렸다. 낮고 울림이 좋은 목소리는 상냥하면서도 왠지 서늘한 기색이었다.

“능력은… 또 다른 영혼이라고 하잖아. 간절하게 바랐던 욕망이 능력으로 발현되는 거야.”

그럴 리 없다.

자신의 능력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고, 그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든 것을 보석으로 만드는 능력 때문에 인생이 망가졌다.

저주받은 보석가가 떨리는 몸을 애써 진정시키며 뒤를 돌아봤다. 그런 그의 뒤에서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무기력하게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던 ‘신재언’이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푸른색 눈동자를 반짝이고 있었다.

푸른 투명색 보석으로 바뀌었던 육체는 온데간데없이 여느 때와 같은 ‘신재언’이었다. ‘신재언’이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왼쪽 손바닥을 펼치자 보석이었을 때와 똑같은 빛을 내는 푸른색의 보석이 놓여 있었다.

“저주받은 보석가… 네 욕망은 뭐였지?”

“…나는, 난.”

“보석 세공사로 일하면서, 명성을 쌓고 싶었던 거잖아?”

재언은 ‘신재언’이 저주받은 보석가의 능력에서 살아남은 이유가 언럭키 네임리스처럼 ‘상위급 존재’들이 관여했다고 추측했다. 그리고 울부짖으며 소리치는 저주받은 보석가의 욕망을 우연히 엿볼 수 있었다.

저주받은 보석가는 어중간하게 알려진 세공사였다. 그에게 일을 맡기는 고객은 싼값에 예쁜 디자인을 가지고 싶은 학생이나 사회초년생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는 좀 더 위대한 세공을 하고 싶었다. 싸구려 커플링이나 만드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보석을 세공해 값비싸게 파는 그런 일 말이다.

하지만 그걸 위해서는 시간과 돈이 필요했다. 일을 그만두고 공부에 집중하고 싶어도 육아와 아파트 대출금 때문에 불가능했다.

아름다운 장신구를 만들고 보석을 더 정교하게 세공할 수 있게 된다면, 더 비싸고 희귀한 보석들을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그는 문제의 그날, 이른 아침부터 목걸이와 귀걸이 도안을 그리는 데 열을 냈다. 자신만의 독특한 디자인을 만들어야 했다. 어떤 보석을 박아 넣어야 더욱 아름다워질지 온통 그 생각만으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바로 그 순간, 그의 앞에 어떤 것보다도 아름답고 희귀한 보석이 나타났다. 바로 보석이 된 그의 가족들이었다.

“난… 그걸 원한 게 아니었어. 아무리 그래도 내 가족들을 보석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어! 난… 난 차라리 작은 공방에서 그런저런 이름으로 알려져도 상관없었다고……. 내… 가족들만 옆에 있어 준다면.”

하지만 재언은 그가 가족들을 보석으로 만들 생각이 없었더라도 그의 욕망이 언젠간 다른 사람을 보석으로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저주받은’ 보석가는 능력이 각성할 때부터 미쳐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대체… 대체 내 바람을 들어준 존재는 뭐란 말입니까……. 왜 능력이 각성한 거야? 왜 하필 나였냐고. 왜 이딴 능력이 생겨서!”

저주받은 보석가가 횡설수설하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그는 존댓말로 질문하기도 하고 반말로 폭언을 내뱉기도 했다.

재언은 그를 보며 옛날에 읽었던 신화를 떠올렸다.

미다스의 손(Midas touch).

신에게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바꾸는 능력을 받은 남자의 이야기. 사랑하는 딸마저 황금으로 바꾸는 바람에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던 왕.

신화 속의 왕은 신에게 용서를 빌고 원래대로 돌아온 딸과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이었지만, 저주받은 보석가의 가족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간단해.”

손바닥에 놓인 푸른 보석을 꼭 쥐며 ‘신재언’이 서늘하게 웃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건 신(神)이야.”

@

신재언은 생각했다.

‘저쪽 세계의 나는 대체 무슨 일을 겪었다고 저렇게 흑화한 거지? 도저히 눈 뜨고 봐줄 수가 없네……. 이쪽은 평범하게 살아온 30대 남자란 말이야.’

어쨌든 떠오른 기억을 갈무리한 재언은 저쪽 세계에서의 ‘신재언’이 들고 있던 푸른 보석과 이쪽 세계의 미치지 않은 저주받은 보석가가 입에 물고 있던 보석이 같다는 걸 인정했다.

‘신재언’은 그 이후로 푸른 보석을 브로치로 만들어 항상 지니고 다녔다. 그것도 심장이 있는 위치에 달았는데, 그 이유는 재언도 알 수 없었다.

레헬이 가족들을 바다에 수장해 준 덕분에 저주받은 보석가는 미치지도 않았고 다크 카오스와의 접점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던 보석이 엔레이드맨의 손에 있는 것을 보며 재언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역시 운명은 바뀌지 않는 걸지도 몰라요. 이러다 진짜 내가 세상을 멸망시키겠다고 난리 치면 어쩌죠?”

TV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던 재언은 옆에서 풍겨 오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차민재가 예쁘고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마주쳐 오는 게 너무나도 불길했다.

재언은 민재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뭡니까, 그 표정? 제가 원하면 세상도 멸망시켜 주겠다는 얼굴이잖아요. 그만두세요! 제가 실제로 그런 짓을 저지르겠다고 해도 민재 씨가 말려 달라고요!”

어깨에 놓인 재언의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차민재가 속삭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재언 씨. 운명을 거스를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잖아요.”

매력적인 미소를 지은 민재가 자신과 TV 화면을 번갈아 손가락질했다. 그의 말대로 ‘평행 세계’에선 자신이 빌런이었지만, 지금은 히어로가 된 차민재와 화면 속의 저주받은 보석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재언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렇죠. 툭하면 변하는 게 미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민재 씨, 저것 좀 도와주실 거죠?”

언제 어디서 챙겼는지 모를 검은색 피에로 가면을 쓰며 재언이 묻자 민재 또한 붉은색 광대 가면을 쓰며 유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론이죠.”

이런 사람한테 세계의 평화를 맡겨도 되는 걸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