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정년퇴임 후 매입한 건물 하나를 매입해 1층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부부는 원래부터 성격이 너그럽고 베푸는 걸 마다하지 않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은 틈틈이 봉사활동도 다니고, 편의점에서 벌어들이는 수익도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등 주변의 평판도 좋은 편이었다.
남편의 이름이 한필교, 아내는 김향숙이라는 걸 경찰 조사를 통해 재언은 우연히 알게 되었다. 부부는 2년 전에 약 12년 정도 키웠던 고양이를 하늘로 보낸 후부터 건물 뒤에 작은 공간을 마련해 버림받은 고양이들을 돌봤다고 했다.
그들은 동네 길고양이를 챙기면서도 이웃들이 불편해할 수 있는 상황까지 충분히 고려해 최대한 마찰이 일어나지 않게 애써왔다.
서랍장을 개조한 네 개의 화장실을 이곳저곳 두어 아침, 점심, 저녁마다 치웠고 자주 오는 고양이들의 중성화 수술도 주기적으로 신청했다. 가끔 시에서 지원이 나오지 않는 고양이에게는 사비로 중성화 수술을 돕기도 했다.
김향숙은 자신이 돌보던 고양이들의 참혹한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는지 비틀거리다가 결국 까무룩 기절했다. 남편이 그런 그녀를 급히 부축해 편의점 물품 창고 안쪽에 박스를 깔고 눕히는 동안 재언과 민재는 눈앞의 참사를 정리했다.
공터 구석구석 토막 낸 사체를 버려 놓은 데다가 피가 많이 흩뿌려져 있었다. 한 마리가 아닐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모아 놓고 보니 죽은 고양이가 세 마리나 되었다.
“누가 이런 짓을…….”
한필교는 어두운 낯빛으로 입을 막으며 고개를 돌렸다. 재언은 시계를 확인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고한 지 몇십 분이 지났는데 경찰차가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경찰이 늦네요… 벌써 20분이 넘게 지났는데…….”
그때, 마침 경찰복을 입은 두 사람이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들은 재언과 민재가 모아 둔 고양이 사체를 보고 눈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그러면서도 익숙한 듯 현장을 쓱 훑어보더니 편의점 주인으로 보이는 한필교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 CCTV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네, 네…….”
여전히 침통한 표정의 한필교는 경찰들을 물품 창고 구석에 있는 CCTV 책상 앞으로 이끌었다. 경찰을 기다리는 동안 이미 CCTV를 확인했던 재언은 세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착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많은 살인사건에는 인과가 존재하지만, 동물 학대는 인간이 오로지 쾌락만을 위해 저지른다고 생각해요. 대체 누가 저런 짓을 한 걸까요.”
CCTV에서는 범인의 얼굴은 전혀 찍히지 않았다. 범인은 이곳의 CCTV 위치를 전부 꿰고 있는 모양인지 사각지대에 서서 고양이 사체를 공터 안쪽으로 던진 것이다.
고양이 살해 추정 시간은 김향숙이 고양이들 밥을 주러 나왔을 땐 멀쩡하게 살아 있는 걸 본 오전 10시 30분에서 발견된 시간인 11시 사이였다. 경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시간을 보니 정오가 넘어가고 있었다.
“저쪽 서초구에서도 길고양이 학대 신고가 많이 들어오고 있어요. 지금 저희가 계속 수사 중이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길고양이들이 저렇게 죽어 가는데 해결되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겁니까. 말 못 하는 동물들을 저렇게 죽이는데, 다음번 타깃이 사람으로 바뀔지 어떻게 알고요.”
한필교가 답답했는지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항의했다. 하지만 경찰들도 딱히 해 줄 수 있는 조치가 없는 듯 수사 중이라는 말만 반복한 뒤 돌아갔다.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재언이 죽은 고양이들이 들어 있는 상자의 뚜껑을 닫자 기절했던 김향숙이 눈을 떴다. 그녀는 남편에게서 설명을 듣다가 눈물을 닦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든 범인을 잡고 싶어요. 제가 아는 민간 동물단체가 있는데, 일단 거기에도 알릴 생각이에요.”
그 말만 남기고 그녀는 머리가 아프다며 위로 올라갔고, 덩그러니 남겨진 한필교가 재언에게 미안한 듯 바구니같이 생긴 것을 내밀었다.
“손님, 죄송합니다……. 이제는 이 애만이라도 안전한 곳에 있었으면 싶군요. 저는 가게에 있어야 해서, 혼자 병원에 가 주실 수 있을지…….”
“아, 그건 상관없습니다. 주소만 알려 주세요.”
그가 내민 바구니 안에 까만 물체가 있는 것이 보였다. 알고 보니 중성화 수술이 필요한 고양이들을 잡아 병원으로 데려가기 위해 김향숙이 편의점 바구니를 개조해 만든 고양이 포획용 틀이었다.
바구니에 까미를 집어넣고 내려오던 중 끔찍한 참상이 벌어진 탓에 까미는 1시간이 넘게 그 안에 갇혀 있었다.
재언은 고양이가 도망치지 않게 바구니 입구를 단단히 막으며 자신이 가져온 이동장의 문을 열었다. 옆에서 검은 고양이를 빤히 보던 차민재가 작게 속삭였다.
“재언 씨, 걱정하지 마세요. 놓치더라도 제가 충분히 잡을 수 있습니다.”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속삭임을 한 귀로 흘리며 재언은 바구니를 열고 검은 고양이의 상태를 살폈다. 고양이는 동공이 있는 대로 커져 잔뜩 겁에 질린 채 쌕쌕거리고 있었다.
억지로 갇힌 데다 밖에서 들리는 소란에 패닉이 온 것 같았다. 하악질도 제대로 못 하고 꼬리를 말고 몸을 잔뜩 웅크린 모양새에 고양이가 혹시 잘못되기라도 할까 봐 얼른 꺼내 이동장에 넣고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경찰이 이미 떠나고 없는 편의점 골목길에 찬바람만 휑하니 불었다.
한필교가 적어 준 주소로 차를 몰고 가는 동안 재언은 이동장을 안고 뒷좌석에 앉아 턱을 쓰다듬으며 차민재에게 말을 걸었다.
“동물 학대는 히어로가 개입할 수 없는 거죠?”
“…사건을 의뢰하면 처리하긴 하는데, 범인을 잡아도 히어로가 처벌할 순 없어요. 유럽에서는 동물학대범을 빌런으로 규정하고 있어서 히어로들이 개입할 수 있지만, 한국은 아니거든요. 한국에선 동물학대범을 경찰에 인계하지 않고 무력을 쓰면 고소당해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동물병원에 도착했다. 푸근한 인상의 남자 수의사가 나와 진료를 봐주었다. 조심스럽게 고양이를 꺼내 들어 올린 그는 볼록 튀어나온 배와 이곳저곳을 살피며 진찰했다.
“임신했네요. 임신 기간 동안엔 예방접종은 어려울 것 같고, 출산하고 2개월 뒤에 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픈 곳도 없고, 피부병도 없어 보이네요.”
그렇게 10분이 채 지나지 않는 시간 동안 진료와 결제까지 모두 끝나고 두 사람은 이동장을 들고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향했다. 온갖 우여곡절을 겪고 집에 도착하니 벌써 오후 2시가 넘는 시간이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이동장을 열어 주었는데, 고양이는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재언이 잠시 한눈판 사이에 갑자기 뛰쳐나가 침대 밑으로 숨어 버렸다.
“꺼낼까요?”
“아뇨. 겁먹었을 테니까 그냥 두죠.”
“네.”
고양이가 숨어 있는 침대 밑을 바라보던 차민재가 눈을 깜박이며 문득 생각난 듯 중얼거렸다.
“그보다 재언 씨, 저 고양이 못생겼는데 데려올 생각을 하셨네요.”
“못생긴 건 아니던데…….”
그의 말에 재언이 편의점에서 산 스파게티 소스와 찬장에서 면을 꺼내며 어색하게 웃었다. 나가서 밥을 먹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배가 출출해진 참이라 간단하게 해먹을 요량이었다.
재언이 부엌에서 재료를 준비하고 면을 삶는 동안 차민재의 시선은 여전히 침대 밑에 고정되어 있었다. 한참 동안 눈도 깜박이지 않고 침대 밑을 바라보던 그는 작은 테이블 위에 접시 두 개와 메인 요리가 놓이고 나서야 퍼뜩 정신을 차린 듯 그제야 식사 준비를 도왔다.
“계속 침대 밑에서 안 나오면 어쩌게요? 제가 데리고 나올 수 있는데.”
“배고프고 화장실이 급하면 알아서 나올 겁니다. 민재 씨는 동물 키운 적 한 번도 없었죠?”
“네.”
부엌 근처에 놓인 고양이 사료 그릇에 사료를 부어 준 뒤 재언은 자리 잡고 앉아 스파게티를 흡입하고 차민재와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저녁 6시쯤 되었을 때 의뢰 임무가 들어왔는지 차민재가 꾸물거리며 일어섰다.
그가 맡은 임무는 대부분 전쟁이나 반정부 테러 같은 국가 차원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한번 나가면 1주일 이상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번엔 간단한 의뢰라 내일이면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
차민재가 나가고 조용해진 집 안, 여전히 침대 밑에서 나오지 않는 까미가 놀라지 않도록 재언은 숨죽이며 핸드폰으로 고양이 학대범에 대해 검색해 봤다.
경찰이 말한 대로 낮에 봤던 것과 비슷한 고양이 살해사건이 산발적으로 일어나는데, 그 수가 많아지는 추세였다. 각기 다른 곳에서 일어난 비슷한 사건들을 검색해 보던 재언은 속이 답답해져서 화면을 끄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눕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재언의 발을 스치는 부드러운 털이 느껴졌다. 따뜻한 체온이 지나가고 오도독거리는 사료 먹는 소리가 들렸다.
그 뒤로도 모래 밟는 소리와 함께 쏴아아 하는 물소리가 들렸는데, 재언은 저게 고양이가 소변을 보는 소리라는 걸 뒤늦게서야 알아차렸다. 곧이어 코를 찌르는 구수한 냄새에 재언은 팔만 뻗어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었다.
개방형 1.5룸의 집이 좁다는 것을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는데, 고양이 똥 냄새로 뼈저리게 느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사박거리는 모래 밟는 소리가 또다시 들리고 찹찹거리는 물 마시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 후로 무슨 소리가 들려올지 귀를 기울이는데 한참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슬그머니 눈을 뜨자 가만히 앉아 신재언을 바라보는 초록색 눈동자가 보였다.
실루엣만 살짝 보이고 눈만 반짝이던 검은 고양이는 재언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침대 밑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침대 밑에 뭐라도 깔아 줘야 하나, 지금 깔아 주면 깜짝 놀라려나 고민했다.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읽은 투명 고양이라는 글을 떠올리고 재언은 움직이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그 글에서는 처음 오는 고양이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마치 고양이가 없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쓰여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재언은 잠이 들었다가 다음 날 아침, 귓가에 들리는 요란스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다크 카오스의 일곱 자식이 신재언의 좁은 집이 꽉 차게 모여 있었다.
“이게 바로 아버지께 선택받은 고양이인가요? 과연, 어둠이 느껴지는 털색입니다.”
체어맨의 어이없는 헛소리와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