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어머, 재언 씨… 정말 고양이 데려온 거예요?”
“네. 말씀드렸잖아요.”
“그쵸… 들었긴 했는데 정말 데려올 줄은 몰랐어요.”
재언과 임 대리가 흡연실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았다. 7년째 금연 중인 임 대리는 담배를 피우진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흡연하러 10분 이상 나갔다 오는 건 괜찮아하면서 탕비실에서 커피 한잔을 5분 넘게 마시고 있으면 눈치를 준다면서 흡연실로 자주 출입하곤 했다. 자신도 흡연자들만큼 쉬고 싶다는 이유였다.
담배 연기가 잘 빠지는 구석 자리에 앉은 임 대리의 맞은편에 선 재언은 전자담배를 꺼냈다. 흡연실에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걸 본 누군가가 어떤 소문을 낼지 모르기에 담배를 피우는 척이라도 할 셈이었다.
네모난 사각 틀에 로고가 붙은 전자담배는 연초를 먼저 끊어 보는 게 어떻냐며 차민재가 선물해 준 물건이었다. 연초와 전자담배를 골고루 피우는 편인데, 임 대리 앞에서 연기가 독한 연초를 피우기가 조금 민망해서 전자담배를 선택했다.
커피를 한 손에 든 임 대리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입을 열었다.
“말해 줘서 알고 있긴 했죠……. 그런데 정말로 데려올 줄은 생각도 안 했다고 해야 하나, 그렇잖아요. 그… 재언 씨는 여태껏 한 번도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었잖아요?”
사실 재언이 임 대리와 친해진 건 최근의 일이었다. 전에는 재언의 동기인 최윤정과 그녀가 언니 동생 하는 사이였기에 그럭저럭 대화를 나누는 정도였다.
지금도 엄청나게 친하다곤 할 순 없지만, 저번 주에 건강한 아들을 낳은 최윤정이 공통 관심사가 되어 대화가 이뤄지곤 했다.
“그러게요. 유독 눈에 밟혀서 그대로 둘 수 없더라고요. 왜 그랬을까요? 어쨌든 좋은 주인 만나서 입양만 잘 가면 좋겠습니다.”
“재언 씨는 꼼꼼하니까 잘할 거예요. …그보다 고양이 사진 좀 더 보여 줄래요?”
귀여운 고양이를 잔뜩 자랑한 뒤, 자리로 돌아온 재언은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가서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머리를 겨우 잠재웠다. 아주 오랜만에 김 대리가 트집을 잡은 덕분이었다.
아까 갑자기 김 대리가 다짜고짜 팀원들이 다 있는 사무실에서 신재언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신 주임! 이 메일 뭐야! 클라이언트에서 누락 파일이 있다고 메일이 왔잖아! 일 처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이번 프로젝트는 해외 잡지사에도 실릴 계획이라고 누누이 말했잖아!”
본인은 저번 주에 발주 자체를 잘못해서 하청 업체에 2천만 원에 달하는 손해를 입혀 많은 이들을 곤경에 처하게 만들어 놓고 저런 식으로 나오는 게 의도가 빤했다. 괜히 트집 잡고 화풀이를 하고 싶은 거다.
요즘 신재언이 대리로 승진한다는 얘기가 간간이 돌고 있어 조심하는 눈치였는데, 이번 기회로 본인의 스트레스도 풀 겸 부장님 앞에서 일부러 저러는 것이다. 팀원들 앞에서도 창피 주려는 빤한 태도에 재언은 남몰래 주먹을 쥐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다음 메일을 확인하시면, 해당 클라이언트에서 파일 확인을 잘못했고 제가 제대로 보낸 게 맞는다며 사과 및 정정 글을 보내셨습니다.”
“뭐?”
재언의 말에 김 대리가 당황한 표정으로 컴퓨터 화면에 떠 있는 메일 목록을 쭉 훑었다.
해외 잡지사와 본사에서 합동으로 진행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영어뿐만이 아니라 급할 땐 불어로 메일을 주고받는 경우가 있었는데, 하필 정정 메일이 불어로 오는 바람에 김 대리가 그걸 읽지 못하고 난리를 친 것이다.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부하직원에게 버럭 화를 낸 셈이었다.
“흠…….”
그 꼴을 보던 박 부장이 헛기침하며 불편한 기색을 보이자 김 대리가 입을 다물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니까 신 주임이 평소에 똑바로 일 처리를 했으면 좋았잖아. 이런 일이 있었으면 사수인 나한테 보고를 했어야지.”
“어머, 이제 김 대리는 신 주임 사수가 아닌데 왜 보고를 해야 하나요? 이제 신 주임 직속은 나인데.”
임 대리가 벌떡 일어나 옆에서 끼어들어 김 대리를 잡아먹을 듯이 쏘아붙였다.
“그리고 난 보고를 받지 않았어도 메일만 보고도 이해했는데요? 본인이 잘못 봐 놓고 소리를 질렀으면 사과부터 하셔야죠. 설마 직급이 아래라고 막 대하신 건가요? 그것도 다 인사고과에 들어가는데 아시려나 모르겠네.”
언제든지 김 대리를 족칠 준비가 되어 있던 임 대리의 말 하나하나에 가시가 돋쳤다. 줄을 잘 선 덕분에 박 부장의 편애를 받아 다음 승진 대상감인 임 대리와 만년 대리 김 대리의 권력 차이가 미미하게 눈으로도 보였다.
“임 대리… 다들 있는데 보기 안 좋게 왜 그러나.”
“어머, 난 또… 다들 있는데 신 주임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길래, 그런 건 상관없어하시는 줄 알았죠!”
임 대리의 비꼬는 말을 듣는 김 대리의 눈이 빨갛게 충혈되기 시작했다. 그는 증오심이 가득 담긴 눈으로 신재언과 임 대리를 번갈아 쳐다보며 이를 갈았다.
이러다 그가 임 대리에게 해코지라도 할까 덜컥 걱정된 재언이 그녀를 말렸다.
“임 대리님. 저는 괜찮으니 이쯤 하세요. 다른 부서에서도 지금 무슨 일인가 살피러 오고 있습니다.”
“…저러니까 머리가 도망가지. 그리고 맡은 업무가 바뀌면서 신 주임 직속 상사는 내가 됐는데, 고작 신입 때 한번 교육했다고 사수니 뭐니……. 웃겨. 아직도 몇 년 전에 살고 있나 봐.”
뒷일이 걱정되긴 했지만 그래도 속은 시원했다. 박 팀장이 부장의 눈치를 살피다가 썩은 표정으로 일어나 김 대리를 데리고 사라졌다. 신재언을 엿 먹이려다 역으로 본인이 핀잔을 받게 된 김 대리의 뒷모습을 보며 재언은 웃음을 삼켰다.
박 팀장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 김 대리는 한참이 지나서야 땀을 뻘뻘 흘리며 자리로 돌아왔다. 박 팀장보다 먼저 돌아온 데다 표정이 나쁜 걸 보니 좋은 소리를 듣진 않은 듯했다. 뭐, 그것도 자업자득이니 재언이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다만 자신을 노려보던 김 대리의 얼굴이 아침에 만났던 그 음침한 남자와 겹쳐서 떠올랐다. 김 대리보다는 어렸지만, 거의 영혼의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분위기가 닮았다. 신재언을 보는 열등감 어린 눈빛도 마찬가지였다.
재언은 저런 사람의 특징을 아주 잘 알았다. 피해망상과 열등감에 찌들어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시비를 걸고 싶어 하는 놈들이다.
아무 생각 없이 힐끔 쳐다봐도 무시한다고 성을 내고 어떻게든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싶어서 미친, 그런 사람들이다. 참으로 귀찮기 짝이 없는 족속들이었다.
‘…그래 봤자 인터넷에 내 사진 올리고 욕하는 것밖에 더하겠냐.’
그리 위협은 되지 않았다. 재언은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
.
.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재언은 아까까지 짜증 났던 마음이 사르륵 녹는 걸 느꼈다. 귀여운 것과 미인이 함께 있으니 양쪽으로 눈이 정화되었다. 가방을 옷걸이에 걸면서 재언이 물었다.
“언제부터 와 있었어요? 한국에는 언제 도착했고.”
“낮에 도착해서 사무실에 들른 다음 여기로 온 거예요. 집에는 30분 전에 왔고.”
차민재가 자기 무릎에서 색색 자는 검은 고양이를 내려다봤다.
“분명 그저께까지만 해도 침대 밑에 숨어서 나오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떨어질 생각을 안 하네요.”
“원래 친화력이 좋은 아이였어요. 저한테도 다짜고짜 몸을 비빌 정도로.”
“흠.”
“길거리에서 사는 애가 사람을 좋아하면 큰일 난다고 다들 걱정해서 왜 그런가 의아했는데……. 정말 걱정할 정도로 사람을 꺼리지 않아요.”
자는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차민재의 모습이 의외인지 재언이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민재 씨는 고양이 좋아하나 봐요?”
“네. 동물을 싫어하진 않습니다. 사람과 달리 욕망이 뚜렷하잖아요.”
인간을 싫어하는 이들은 이유가 대부분 비슷한 것 같다. 차민재의 무릎에 얼굴을 대고 허벅지에 누워 녹아내린 검은 고양이와 그런 고양이를 내려다보는 차민재의 모습에 재언은 평화로움을 느꼈다.
‘마음이 말랑해진다는 게 이런 기분인가.’
어울릴 것 같지 않아서 더 평화로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고양이는 사진에서 본 것처럼 예쁘게 생긴 애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머리가 크고 못생긴 고양이가 있다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못생긴 건 아니지 않나요. 머리가 큰 건 맞지만.”
자는 고양이를 빤히 쳐다보는 차민재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재언이 변명하듯 덧붙였다. 검은 고양이는 체구가 작은 것에 비해 머리가 조금 컸다.
병원에서 수의사도 단지 머리가 큰 것뿐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으니 병이 있거나 아픈 게 아니니 괜찮았다.
“그리고 못생겼는데 귀여워 보이면 그때부턴 답도 없다는데 민재 씨가 나중에 얘 입양 보낼 때 더 아쉬워할지도 몰라요.”
차민재가 눈을 가늘게 뜨며 재언을 쳐다보다가 환하게 웃고 있는 그에게 입을 맞추기 위해 살짝 움직였다. 하지만 입술이 닿기도 전에 들어온 검은 고양이의 방해로 키스에 실패했다.
고양이가 애옹 하고 울며 신재언의 턱을 앞발로 막아 버린 탓이었다.
@
[이 새끼 면상 아는 사람
더러운 *창 새끼임 ㅋㅋㅋㅋ
몸 파는 거 봄.
몸 팔아서 돈 벌어 놓고 자신만만함.
<사진>
<사진>
그놈 면상임.
이 새끼가 키우는 고양이도 더러운 ***임
언젠간 내가 현실을 알려 줄 예정임.]
<12>의 댓글
[x12dd 님의 댓글 : 이거 도촬 아님?]
[eddd님의 댓글 : 존나 잘생겼네…….]
.
.
.
[kim82 : 얘 우리 회사에 다니는 놈인데… 내 부하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