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광지혜는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오해할 정도의 사적인 내용을 문자에 담아 보내곤 했다. 밤늦은 시간에 전화가 걸려 왔을 땐 조금 황당했지만, 고양이에 관한 대화를 했기에 그냥 넘어갔다.
그녀는 캠핑이를 살려 준 신재언에게 굉장히 호감을 느끼고 친해지고 싶어 하는 게 눈에 보였다. 며칠에 한 번씩도 아니고 매일같이 대화가 끊어지지 않게끔 모바일 메신저에 쌓여 가는 그녀의 연락에 재언은 요즘 젊은이들의 소통방식은 다 이런 식인 건가 식은땀을 흘렸다.
나이로만 따졌을 땐 그렇게 많이 나는 것도 아니나, 타투샵을 운영하면서 이제 막 성인이 된 어린 사람들과도 왕래가 잦은 탓인가 싶었다. 그녀는 좋은 말로는 친화력이 좋았지만, 나쁜 말로는 상당히 가벼운 분위기를 풍겼다.
“…….”
재언은 핸드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쭉 밀어 그녀가 보내온 메시지를 살폈다.
[재언 오빠 뭐해용?]
[이거 영화 보는데 오빠 닮았어요ㅋㅋㅋㅋㅋㅋ]
[이모티콘]
[캠핑이 사진좀 보세요. 지금 설희랑 코 맞대는 중!]
[사진]
[사진]
[친구들이 저 계속 손하니 닮았데여 ㅠㅠ]
[이거
무슨 뜻일까요?]
이걸 보내온 시간이 저녁 여덟 시 정도였는데, 재언은 그날 겨우 사업팀으로 자료를 정리해서 보내느라 눈코 뜰 새 없는 하루를 보낸 참이었다.
잡지뿐만 아니라 공식 홈페이지 어플에도 내용을 바꿔야 하는데, 외국 버전과 한국 버전 어플에 차이가 있어서 일을 두 번이나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했다.
광지혜가 보내 준 사진에는 검은 고양이가 숨숨집에서 나와 울타리 밖에 있는 흰색 고양이와 눈싸움을 하는 사진이었다. 검은 고양이는 어떤 각도에서도, 심지어 뒤통수만으로도 아주 귀여웠다.
그녀가 보낸 메시지에 신재언은 이렇게 답장을 했다.
[잘됐네요. 캠핑이가 적응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1분도 안 걸려서 광지혜의 답장이 날아왔다.
[ㅠㅠ오빠 내 말 안들었죠??]
[무슨 말이요?]
[친구들이 자꾸 손하니 닮았다고 하자나요~~ 이거 칭찬인지 아닌지 모르겠어용!!]
신재언은 그녀가 자꾸 언급하는 연예인 손하니를 떠올렸다. 솔로 가수로 활동 중인 손하니는 스무 살 초반의 나이에 귀엽고 청순한 콘셉트로 가창력도 수준급이어서 인기가 상당히 많았다.
[칭찬 같은데요.]
[근데 손하니 솔까 평범하게 생겼자나여.]
[그러면 안 닮은 거 같습니다.]
[근데 칭구들이 자꾸
닮앗데여ㅠㅠ]
“……?”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논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이 대화를 마지막으로 캠핑이 사진은커녕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평소엔 시시콜콜 아무렇게나 떠들면서 조금 이상한 일이었다. 재언은 회사 건물을 나오며 고민하다가 그녀에게 먼저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지혜 씨, 오늘 캠핑이는 어땠습니까?]
하지만 역시나 한참이 지나도록 답은 없었다. 재언이 핸드폰을 보면서 불안한 표정으로 턱을 쓸고 있자 회사 건물 밖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차민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그래요?”
“아… 광지혜 씨한테 연락이 없어서요. 고양이가 잘 지내나 궁금했거든요. 물론, 사진을 보내 줘야 하는 게 의무는 아니지만… 그래도 잘 지내나 확인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해서…….”
“사람을 한 명 붙일까요?”
차민재의 의미심장한 물음에 재언은 고개를 흔들었다.
“일반인인데 그럴 필요까지 없어요. 요즘 좀 바쁜 모양입니다. 내일까지 기다려 봐요.”
차민재와 나란히 어깨를 마주하고 집으로 돌아간 다음 날 아침, 재언은 문자를 확인하고 이마를 긁적였다.
[오빠 죄송해여 ㅠㅠ
남친이
오빠랑 한 문자보고
엄청 화내고 머라해서
당분간 연락 못할거 같아여…….]
“…꼭 나랑 바람이라도 피운 것같이 말하네.”
한숨을 내쉰 재언은 핸드폰을 두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간단하게 면도를 하고 양치와 세안을 끝냈다. 턱에 난 상처는 이미 깔끔하게 나아 있었다.
얼굴에 흉이라도 지면 안 된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합창한 덕분일까, 연고만 바르고 방치했는데도 말끔히 나았다. 그 연고마저도 중간부턴 귀찮아서 그냥 놔두었는데, 아직 자신의 피부 재생력은 쓸 만한가 보다.
‘그것보다… 당분간 연락을 못 한다고 했는데……. 좀 있다가 사진이라도 보내 주겠지?’
희망적인 마음을 가지며 턱을 쓰다듬던 재언은 조각난 장난감의 눈알을 힐끔 쳐다봤다. 그녀에게 몰래 고양이를 보고 와 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혼자 사는 여성의 방을 염탐하는 게 영 꺼림칙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찜찜한 기분으로 화장실에서 나온 재언은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차민재에게 다가가 앉았다.
“내일은 어디 가신다고요.”
“네. 직장 동기가 아들을 출산했거든요. 이번에 축하도 하러 갈 겸 집들이도 하기로 해서요. 그렇게 늦진 않을 겁니다.”
차민재는 재언이 고개 숙여 자신의 뺨에 입을 맞추고 옆에 눕자 팔을 뻗어 그의 턱을 쓰다듬었다. 더듬거리는 손가락이 마치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했다.
“…그 광신도가 매일 밤 몰래 재언 씨의 옆으로 오는 걸 눈감아 준 보람이 있군요. 상처가 말끔히 나았어요.”
“흐음. 민재 씨가 있는데도 나왔나요? 그 애들도 이제 눈치 보지 않기로 했나 봐요.”
“잘 때 눈치를 보다가 안 되겠는지 모습을 보이더군요. 조금이라도 축복이 늦었다가 얼굴에 흉이라도 생기면 그들도 큰일이었을 테니까요.”
이제 보니 자는 동안 타락한 추기경이 몰래 방으로 들어와 상처가 낫도록 축복을 빌어 준 모양이다. 증오로 각성하기 전, 에렌 성은 그의 축복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만으로도 바티칸을 꽉 메울 만큼 유명했다.
재언은 그런 사람의 축복을 독차지하면서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냥 면도하다가 얼굴에 상처 난 것뿐인데. 그것도 상처가 엄청 얇아서 연고 하나만 발라도 나았을 것 같은데…….’
아무튼 주변 사람들 호들갑은 알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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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주말, 재언은 아주 오랜만에 차민재 없이 토요일 오전을 맞았다. 사실 재언이 지금까지 주말을 연인과 함께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차민재의 노력 덕분이었다.
레헬의 사무실에 잠깐 들렀던 재언이 이레일에게 붙들려 우는 소리를 한참 동안 들어 주다가 알게 되었다.
“사장님의 몸값이 가장 비쌀 때가 주말이에요, 신 선생님~ 이건 해외도 마찬가지란 말입니다! 근데 사장님이 계속 주말 의뢰를 거절하고 계세요. 손해액만 벌서 6천 달러에요…. 흑흑…….”
“왜 거절을…….”
“데이트해야 한대요.”
이레일은 재언이 묻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숨도 쉬지 않고 대답했다. 그런 그와 눈이 마주친 재언은 깜짝 놀라 몸을 움찔했다. 과연 자본주의의 나라, 돈이라는 건 청렴한 청년의 눈을 저렇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마침 재언이 다른 약속이 생겨서 이번 주말엔 차민재가 편히 일하러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다음에도 민재가 편히 일할 수 있도록 약속을 적당히 잡는 게 좋을지 고민했다.
이윽고 재언의 차는 최윤정이 가르쳐 준 아파트 주차장으로 부드럽게 진입했다. 그녀의 집은 신혼부부 청약에 당첨되어 들어온 신축 아파트라고 하더니 좋아 보였다.
주차장에 주차를 완료하고 19층인 최윤정의 집에 도착하자 임 대리가 먼저 와 있었다. 넓은 거실에 있는 쿠션 위에 작은 아기가 곤히 자는 게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사진으로 한 번 봤는데 그때보다 자랐고, 솜털 같은 머리카락도 제법 보였다. 최윤정은 출산 후 고생이 심했는지 얼굴이 잔뜩 해쓱해져 있었다.
“이래서 내년에 복귀할 수 있으려나 몰라. 갔는데 내 자리가 있긴 할까?”
최윤정이 너스레를 떨며 중얼거리자 임 대리가 깔깔 웃더니 그녀의 어깨를 아프지 않게 살짝 밀었다.
“얘, 걱정하지 마. 너 올 때쯤엔 내가 팀 하나 맡고 있을 테니까. 내 밑으로 오면 된다고?”
“와, 언니 진짜 멋있다. 내 남편보다도 훨씬.”
“그럼 나한테 시집오지 그랬냐.”
능청스럽게 말을 주고받던 두 사람이 깔깔 웃자 작은 방에서 흰색 강아지 한 마리가 탁탁탁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강아지는 최윤정이 결혼하기 전부터 함께 살던 8살짜리 반려동물이었다.
처음 보는 손님이 와 있음에도 강아지는 최윤정의 발치에 앉아 아기가 자는 쿠션만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지가 무슨 얘 누나인 것처럼 행동한다니까? 자다가도 다른 사람이 오면 연의를 지키겠다고 복도에 나와. 이럴 땐 강아지가 맞는지 의심스러워.”
그렇게 수다를 떨던 세 사람은 서로 근황을 묻다가 신재언이 이번에 고양이를 임시 보호했다가 원래 주인에게 돌려준 이야기가 나왔다. 재언은 광지혜의 신원이 들키지 않을 선에서 두 사람에게 간단히 설명했다.
둘 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입장에서 조심스럽게 한마디씩 조언을 던졌다.
“계속 사진 요구하는 거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더라. 이미 우리 집 앤데 감시당하는 기분이라고……, 그런데 잘 연락하다가 갑자기 뚝 끊었다면서. 그건 좀 이상하긴 해. 한 번 더 연락해 보는 건?”
캠핑이 근황을 올려 주겠다고 강제로 팔로우한 SNS 계정도 들어가 봤는데, 사흘 전을 기점으로 고양이 사진이 끊겼다. 하지만 그녀의 다른 사진은 오늘도 업로드되었다.
그녀의 작품으로 보이는 타투가 그려진 사진, 환한 미소를 지은 그녀가 손님과 인증사진을 찍은 사진까지 아주 활발하게 SNS 활동을 하는 중이었다.
“…그렇죠. 이번을 마지막으로 저도 이쪽으로는 이제 관심을 끊어야겠습니다.”
검은 고양이 때문에 마음이 심란한 것과는 별개로 동기였던 최윤정이 잘 지내고 있는 걸 보니 마음이 놓였다. 세 사람은 한참을 수다 떨다가 집으로 돌아온 최윤정의 남편과 인사를 나눈 뒤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