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조각난 장난감이 당한 짓은 참혹했다.
비각성자 일반인인 그녀는 히어로를 꿈꾸진 못했으나 언젠간 자신의 아버지처럼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날만을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렇기에 자신의 꿈을 반대하는 아버지가 못내 서운하고 견디기 힘들었다.
아버지는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고 불안해하셨던 걸까.
한현정은 발끝에서부터 난도질당하는 끔찍한 고통을 이기지 못해 몇 번이나 실신을 반복했다. 차라리 이 모든 것이 꿈이거나 어서 빨리 숨이 끊어졌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그녀는 차라리 죽음이 자비롭다고 느껴질 정도로 참혹한 꼴을 당했다.
“내 아들이 살아 있었다면 고등학교를 졸업했겠지. 마누라는 내가 잡히자마자 나와 아들을 버리고 도망갔어.”
그녀를 난도질하는 남자는 거대한 정육칼을 들고 내려칠 때마다 비통한 듯 소리쳤다.
올해로 55세인 남자는 나이에 맞지 않게 덩치가 크고 근육질이었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만이 남자의 나이를 짐작하게 했지만, 그는 여전히 위협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내 아들은 연쇄살인마의 아들이라는 낙인이 찍혀 왕따 당하는 걸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어. 내 아들이 왜 그런 고통을 느끼며 자살해야 했지?”
남자의 말은 지독하게도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다. 그는 20년도 더 전부터 살인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24명의 무고한 사람을 죽여 온 악독한 살인마였다.
비상한 머리와 힘으로 수사 포위망을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갔다. 한때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미제 살인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지금이야 골목 곳곳에도 CCTV가 설치되어 있지만, 그가 활동했던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주로 해가 떨어지면 암흑이 내려앉는 시골에서 살인을 저질렀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살인을 저질러 온 그는 맞선으로 결혼했을 때나 금붙이보다 더 값진 아들이 태어났을 때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그만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 다짐은 매번 무너졌고, 그는 마치 중독자처럼 살인에 또다시 손을 댔다.
과연 남자가 비통하게 외치는 절규에 진심이 섞였을까. 실제로 한현정을 토막 내는 남자의 얼굴에는 일말의 망설임이나 죄책감도 없었다.
현정의 조각난 몸은 그대로 남자의 백팩에 담겨 버려졌다. 남자는 피가 질질 새어 나가는 백팩을 풀숲에 버려두고 개운한 표정으로 떠났다.
“왜 계속 안 된다, 위험하다고만 하시는 거예요! 왜 내 의견은 요만큼도 들어주지 않느냔 말이에요! 진짜 꼴도 보기 싫어!”
조각난 장난감의 욕망은 삶.
어떻게든 살아서 아버지와 만나 화해하고 싶다는 마지막 바람이 그녀의 욕망이 되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신재언이 각성시켜 주기도 전에 그녀는 온몸이 토막 났음에도 살아 있었다. 완전히 각성한 건 아니었던지라 그대로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려던 찰나, 갑자기 지이익 지퍼 열리는 소리가 나며 백팩이 열렸다.
“으윽……. …이건 진짜 좀… 아무리 나라도…….”
목이 잘린 채 죽어 가는 그녀의 시야에 눈부시도록 시리고 어두운 푸른빛이 들어왔다. 처참한 몰골로 죽어 있는 토막 난 시신에 누군가가 얼굴을 파랗게 물들이고 뒤를 돌아 헛구역질했다.
“어떻게 살아 있지? 아, 이러다가 진짜 죽겠네!”
그렇게 한현정은 신재언을 만나 완전히 각성하여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토막 난 상태로 각성한 탓인지 타락한 추기경처럼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진 못했다.
신재언의 눈과 귀가 될만한 부위는 자식들이 하나씩 챙기고 몸통과 머리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에 보관했다. 조각난 부위들을 이어 붙인 그녀의 전신은 실제로 보면 눈을 질끈 감을 정도로 흉측했기에 그녀는 곧바로 아버지를 찾아가지 못했다.
대신 엔레이드맨과 타락한 추기경이 능력을 이용해 조각난 장난감을 무참히 살해한 연쇄살인마를 붙잡아왔다.
“으아아악, 괴, 괴, 괴물이다!”
인간의 모습으로 괴물 같은 짓을 해 왔던 연쇄살인마는 자신이 토막 낸 조각난 장난감의 신체가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보고 놀란 얼굴로 폭언을 내뱉었다.
조각난 장난감은 연쇄살인마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질 때까지 위협한 후, 그를 자신과 똑같이 토막 냈다. 그리고 능력을 사용해 살인마는 조각난 자기 몸이 하수구 안에서 썩어 가는 걸 똑똑히 지켜보다가 생을 마감했다.
살인마는 죽었고 조각난 장난감의 복수는 완벽하게 끝나는 듯싶었다. 복수가 마무리되어 가자 재언은 딱한 그녀의 사정을 고려해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게 낫지 않겠냐고 설득에 나섰다.
하지만 조각난 장난감은 손가락으로 X를 만들어 완강하게 거부했다. 이미 아버지의 마음에 대못을 박았는데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갈기갈기 찢어질지도 모른다.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 고집이 세고 무뚝뚝한 그녀의 아버지는 흔들림 없이 실종된 딸의 행적을 조사하며 탈옥수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렇게 지옥 같았던 1개월 정도가 지났을 무렵, 한철호는 어느 야산의 풀숲에서 갈색빛이 도는 버려진 백팩을 발견했다. 피로 흥건한 무언가를 담았던 건 확실한데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미칠 것만 같은 나날이 지나고 한철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백팩에 묻은 피가 제 딸의 것과 일치한다는 결과를 받게 되었다.
“묻어.”
경찰청장인 한철호에게 어떤 남자가 싸늘하게 일갈했다. 남자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국회의원이었다.
“연쇄살인마가 탈옥한 것만으로도 나라가 뒤집어질 텐데. 거기에 사람까지 토막 나 죽었다고? 이건 너 하나 옷 벗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그냥 다 뒤집어지는 거라고. 그나마 네 딸이라 다행이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골치 아파졌을 거야.”
딸을 잔인하게 잃은 한철호에게 사형이나 다름없는 선고였다.
@
세상이 조용하네.
조각난 장난감이 당했던 짓에 비하면 너무나도 조용했다. 의아해하는 재언의 곁으로 조각난 장난감의 눈알이 데굴데굴 굴러왔다. 재언은 눈알을 손바닥 위에 올리며 말을 걸었다.
“조각난 장난감. 그래도 한 번 정도는 아버지를 만나 봐야 하지 않겠어? 비록 이런 모습이어도 살아 있다는 걸 알면 기뻐하실 거야.”
그러자 재언의 왼쪽에서 토막 난 손이 불쑥 나타나 볼펜을 잡았다. 살아생전엔 그토록 단정하고 예뻤던 글씨가 삐뚤빼뚤 흉하게 번졌다.
[좋은 소리 못 들을 거예요. 그렇게 말리셨는데 말을 안 들어서 이렇게 된 거니……. 차라리 죽었다고 생각하시는 게 효도일지도 몰라요. 이런 모습의 저를 아버지는 절대로 인정하시지 않을 거예요.]
“…….”
재언은 한철호라는 사람에 대해 전혀 몰랐기에 그녀의 단정적인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처음엔 충격받아서 아무 말 못 하더라도 나중엔 치를 떨며 도망갈 거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자신이 나서서 그녀의 아버지를 찾아가는 건 괜한 오지랖 같기에 재언은 답답한 마음을 해소할 길이 없었다.
“휴… 네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러면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모습이라도 보고 와. 그쪽은 모르겠지만 너는 미련이 철철 넘치잖아.”
마지막으로 한철호의 모습을 확인한 뒤 그녀의 뜻을 따라야겠다고 생각한 재언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조각난 장난감의 눈알을 통해 보이는 한철호가 입에 권총을 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이었다.
“엔레이드맨!”
재언이 엔레이드맨을 불러내 그의 집으로 달려간 건 정말로 척수 반사적인 행동이나 마찬가지였다. 오지랖 부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자식 눈앞에서 자살하려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어쩌면 평행 세계의 ‘신재언’이 부모를 잃고 스스로를 놓아 버린 게 트라우마처럼 그의 무의식에 각인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조각난 장난감의 아버지 앞으로 뛰어드는 게 5초만 늦었어도 그는 그대로 저세상으로 떠났을 것이다.
독하기 짝이 없는 중년 남자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기 때문이다. 입에 넣은 권총을 재빨리 빼냈기에 망정이지 그의 턱과 머리에 끔찍한 구멍이 뚫렸을 것이다.
“…누, 누구요!”
한철호가 갑자기 나타난 재언을 보며 소리쳤다. 재언은 그제야 자신이 얼굴을 가릴 만한 것도 챙기지 않고 경찰청장에게 맨얼굴을 보여 줬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작게 한숨을 쉰 재언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잠시 말씀드릴 것이 있어서요. …떳떳하지 않다는 건 알지만, 이 능력이 당신의 딸을 살렸습니다.”
그렇게 말한 그가 들고 있던 조각난 장난감의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왠지 모르게 조각난 장난감이 울부짖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초면의 남성이 토막 난 손을 들고 있는 모습에 한철호는 당황한 표정으로 쳐다봤다가 익숙한 느낌에 그가 건네준 손을 유심히 살폈다.
“설마…….”
한철호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심하게 흔들렸다. 저 손은 제 딸의 것임이 틀림없었다. 살아 있는 채로 토막 났던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참혹했는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재언은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이 세간에서 그렇게 떠들어 대는 다크 카오스라고 짧게 설명한 뒤 조각난 장난감의 능력을 각성시키고 살려 주었다고 덧붙였다.
사실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한철호가 자신을 체포하겠다고 나서면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팽팽 돌아갔다.
조각난 장난감의 능력을 각성시킬 때까지만 해도 다크 카오스의 평가는 ‘전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빌런’까지는 아니었다. 그저 ‘미래가 두려운 거악 빌런’의 반열에 이름이 올라갔을 뿐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한철호가 당장 히어로 협회에 도움을 청해 신재언의 정체를 폭로하고 수배를 내렸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곧이어 펼쳐진 눈앞의 광경에 재언은 맥이 탁 풀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네가 틀렸어, 조각난 장난감…… 내가 맞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