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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하는 빌런-221화 (221/324)

221화

엔레이드맨은 뒤쪽에서 동생들이 떠드는 소리를 전부 듣고도 모르는 척 레드 헬 파이어를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봤다. 아버지의 명령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감정은 묻어 두자 다짐한 상태이긴 하지만 그에게는 유감이 대단히 많았다.

“이번만 아버지의 명령으로 손을 잡지만, 네 녀석이 히어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명령 따위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나직하게 경고하는 말투로 입을 여는 엔레이드맨을 바라보던 레헬이 입을 손으로 가리고 웃었다. 그에 발끈한 엔레이드맨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왜 웃지?”

“아, 다른 세계에서도 너와 나는 같은 편인 적이 없었는데, 제법 신선해서…….”

“뭐?”

“마마보이가 파파보이가 된 게 제법 웃기잖아.”

엔레이드맨은 레헬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가 기분 나쁜 이야기를 한 것은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역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남자다. 아버지께서는 이 남자의 겉가죽에 속고 있을 뿐, 레헬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음험한 자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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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

재언은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속으로 앓는 소리를 냈다.

7명 정도의 인원이 좁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이곳에 여덟 명이 다 누울 순 있을까 심히 걱정되었다.

재언이 방 안으로 들어가자 7명 중 2명은 흥미로운 시선으로 그를 흘겼고, 3명은 적의 어린 표정으로 한껏 깔보는 시선, 나머지 2명은 벽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쳐다보는 척도 하지 않았다.

‘진짜… 감옥에 온 느낌이네…….’

누명이고 뭐고 당장 뒤집어엎어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겨우 달래며 재언이 인사하고 바닥에 앉았다. 그러자 그에게 관심을 보였던 두 명이 곁으로 다가왔다.

“형님은 잘생겼는데 어쩌다 여기까지 왔어?”

“노란 명찰이잖아. 조직 폭력배였수?”

머리가 짧고 빼빼 마른 남자들은 나이가 서른 살 중후반대로 보였다. 하얀색 명찰을 달고 있는 두 사람은 각각 사기와 절도로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고 했다.

“그놈, 사람을 죽여서 여기까지 왔단다! 그것도 무고한 여자를 토막 낸 사이코패스야.”

재언을 향해 기선제압이라도 하듯 눈을 부릅뜬 남자가 버럭 소리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남자는 짧은 머리에 근육질의 몸, 검은 피부, 붉은 눈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달고 있는 파란색 명찰에 재언은 그가 마약 때문에 잡혀 왔다는 것을 알았다. 마약 때문에 충혈된 눈을 보고 붉은색이라고 착각한 게 아닐까 싶었다.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닌 것도 아닌데 남자는 신재언이 어떤 이유로 왔는지 어떻게 알고 천하의 개호로잡놈 같은 사이코패스라고 소리쳤다.

재언은 벌써 숨 막히는 듯한 기분에 검지로 이마를 꾹 누르며 살의를 참았다. 지금 당장 1%의 확률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집어치우고 당장 박찬수를 고문한 다음 자수하게 만들고 싶었다.

“제가… 안 죽였습니다.”

“다 그렇게 말하더라. 이 호로잡놈 새끼.”

“아…….”

스트레스로 위에 구멍이 뚫리는 기분이다. 신재언을 향해 막말을 내뱉으며 남자가 위협적으로 가슴을 내밀었다. 한번 덤빌 테면 덤벼 보라는 남자의 표정에 재언은 티 나지 않게 한숨을 내뱉었다.

“같은 범죄자라도 상도덕이 있는데, 너 같은 새끼는 평생 저 자리야. 알겠어?”

남자가 손가락질한 곳은 바로 화장실 바로 옆자리였다.

‘내가 사실 구치소니, 누명이니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아닐까?’

재언이 커다란 충격을 받아 주춤거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귓가에 타락한 추기경이 신음을 흘렸다.

화장실은 칸막이도 없이 공개되어 있는 데다가 변기 옆에 분홍색 액체가 담긴 스프레이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진한 섬유유연제의 냄새가 나는 걸 보니 볼일을 본 뒤 그걸 뿌려서 냄새를 없애라는 목적인 듯했다.

상상만으로도 정신에 타격이 심했다. 게다가 다른 남자들마저 손가락을 두둑 거리면서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멘탈이 흔들린 신재언이 당장이라도 타락한 추기경을 불러 남자들을 망자로 만든 뒤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때, 굳게 잠겨 있던 구치소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0515번 신재언, 나옵니다.”

“…….”

간수로 보이는 듯한 남자가 뒤를 돌아본 재언에게 어서 나오라는 듯 고갯짓했다. 뭘 더 물어볼 여력도 없어진 재언이 순순히 밖으로 나가자 그를 데리고 몇 층 더 올라가더니 복도 끝에 있는 문 앞에 섰다.

“방금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착오가 있었다면서 0515번 신재언 씨는 이곳 독방에서 머물게 될 겁니다.”

그가 방 안으로 재언을 들여보내 주며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힐끔거리다가 문을 닫고 나갔다.

레헬이나 경찰청장의 입김이 어떻게 닿은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일반인인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특혜를 주기 힘들었을 텐데 역시 권력이 좋긴 좋구나 싶었다.

재언은 방금 있던 여덟 명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곳과 지금 이곳을 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꽤 화면이 큰 TV에 칸막이가 제대로 설치된 화장실, 번듯한 책상과 의자까지 방의 상태도, 분위기도 천지 차이였다.

자신의 원룸과 비교하자면 썩 좋은 건 아니지만, 방금 겪었던 최악을 떠올리면 여긴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재언은 일단 생각도 정리할 겸 의자에 앉아 손가락을 튕겼다. 3평 남짓한 독방에 짙은 어둠이 깔리며 타락한 추기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CCTV가 있긴 했지만, 타락한 추기경이 나오면서 공간을 비틀어 놓기 때문에 디지털 화면으로는 그를 발견할 수도, 이상한 점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어두운 독방에서 타락한 추기경의 후광이 너무나도 빛나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짙은 사기가 담긴 피눈물이 바닥에 점점이 떨어졌다. 아름다운 얼굴의 에렌 성이 신재언을 보고 희미하게 웃었다.

“자비로우신 우리의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신다면 이 더러운 곳을 당당하게 걸어 나가실 수 있을 겁니다. 저 타락한 추기경에게 맡겨 주신다면…….”

예전엔 절대로 혹하지 않았을 그의 유혹에 재언은 마음이 매우 흔들렸다. 진심으로 여길 다 뒤집어엎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여덟 명의 인원이 모여 있던 그곳에 10분이라도 더 있었다면 토막살인범에서 다크 카오스가 될 뻔했던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하마터면 이쪽 세상도 저쪽 세계만큼 날아갈 수도 있었다는 걸 신재언 이외에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단, 레헬과 애들이 잘하고 있는지 봐 주겠어? 여기서 한시라도 빨리 나가고 싶어…….”

이 사건을 어서 빨리 해결해 주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폭발해 버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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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벽과 저쪽 창문에서 발견된 낚싯줄이다. 이게 팽팽하게 당겨져 하마터면 조각난 장난감이 큰일 날 뻔했지.”

엔레이드맨이 주머니에서 쇠 구슬로 줄줄이 엮인 낚싯줄을 꺼내 보여 주었다. 그가 설명하기로, 낚싯줄은 헬스장 건물 높이의 전봇대와 헬스장 아래 창문에 팽팽하게 설치되어 있었다고 했다.

그 때문에 낚싯줄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가려던 조각난 장난감의 손등에 기다란 자상이 남아 버렸다. 타락한 추기경이 밤낮으로 축복을 걸어 주어 괴사하는 걸 막았지만, 완전히 낫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릴 터였다.

다른 형제 중 조각난 장난감을 가장 아끼는 엔레이드맨이 상처를 보며 저 낚싯줄을 설치한 놈을 잡아 죽여야겠다고 살의를 품었다. 밖으로 나와 4층 높이의 허공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으면 발견하기 쉽지 않았고, 일단 거기에 낚싯줄이 설치되어 있다는 것부터 수상했다.

“4층은… 화장실이군.”

“이 위층이 바로 헬스장이기는 한데, 여자탈의실은 정반대 쪽에 있지. 이하나를 밖에서 죽여 낚싯줄을 이용해 이곳으로 옮겼다고 해도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흐음.”

각 계열에서 최강의 능력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머리를 싸매는 모습은 굉장히 보기 드문 광경임은 틀림없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코루루가 엔레이드맨이 들고 있는 조각난 장난감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위쪽을 가리키며 조각난 장난감을 쳐다봤다.

“간단하네. 사람이 조각난 상태에서 어떻게 위로 올라갔는지 그대로 재현하면 되잖아요.”

“코루루… 아버지께서는 조각난 장난감의 트라우마를 건들지 않기 위해 그녀에게 이곳 기억을 읽는 걸 허락하지 않으셨다.”

“아니, 코루루가 말한 건 조각난 장난감 언니가 기억을 읽는 게 아니라, 그대로 재현해 보자는 소리였어요.”

“…….”

잠시 말문이 막힌 엔레이드맨은 ‘파도치는 절벽 위 별장’의 가장 안전한 상자 안에 잠들어 있는 조각난 장난감의 몸과 머리를 떠올렸다. 그녀를 각성시키고 아버지께서 그녀의 신체에 묻은 피를 정성스럽게 닦아 주며 상자에 넣었었다.

살아생전 대단한 미인에 긴 생머리를 가졌던 그녀의 잘린 목은 창백했고 눈은 파여 있어 도저히 예쁘다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잘린 목과 여섯 개로 찢긴 몸통은 참혹한 광경일 뿐이었다.

오직 그녀의 심장이 갈비뼈 사이로 뛰고 있는 것만 보였다. 재언이 조각난 장난감의 머리를 몸통 위에 올려 두며 상자를 닫는 순간까지도 엔레이드맨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었다.

“조각난 장난감을 위험에 빠트릴 수 없다. 아버지께서도 허락하지 않으셨을 거야.”

“엔레이드맨 오빠는 조각난 장난감 언니만 너무 챙긴다니까요?”

툴툴거리면서도 조각난 장난감이 다칠 수도 있다는 것에 동의한 코루루는 금방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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