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한편, 박찬수에게 누명을 쓰고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신재언은 눈앞의 상황에 이마를 문지르며 생각했다.
‘이건 또 뭐야??’
재언의 앞에 아까 8인실에 있을 때 마주쳤던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신재언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던 두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아주 진한 형광 분홍색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였다. 거기다가 아까는 자세히 볼 엄두가 안 났었는데, 눈가에 노란색의 별 모양 문신까지 그려져 있었다.
‘총체적 난국이네…….’
독방이라서 그런지 구치소에서의 생활은 걱정했던 것만큼 강압적이진 않았다. 변호사와 면회는 다음 날 아침 여덟 시부터 가능했기에 가만히 있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 30분가량의 산책 시간이 주어져 밖으로 나오자마자 같은 방에서 지낼 뻔했던 남자 중 한 명이 접근해 온 것이다. 남자는 재언과 눈이 마주치자 눈을 찡긋거렸다.
“나는 별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야.”
재언은 그가 가리키는 하늘을 한 번 쳐다봤다가 눈을 굴려 그의 하얀 명찰을 쳐다봤다. 저 사람은 사기로 잡혀 들어온 게 분명했다.
“능력으로 인정받진 못했지만, 나는 하늘의 별을 읽을 수 있어. 자기가 들어왔을 때 별자리가 뒤숭숭해졌어.”
“…요즘은 미세먼지 때문에 별도 잘 안 보이는데…….”
“눈에 보이는 그 별이 아니야. 그건 말이야? 내 눈에만 보이는 별이니까.”
그의 말에 재언이 한숨을 크게 쉬었다. 안 그래도 심란해 죽겠는데 이상한 사람까지 접근해 오는 현실에 짜증이 일었다. 이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 대체 이런 놈의 무엇을 보고 피해자들은 사기를 당한 걸까 싶었다.
평소였다면 말을 들어 주는 척이라도 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재언은 현재 인생 최고의 회의를 느끼는 중인 데다 기분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재언은 경계 가득한 표정으로 말없이 남자에게서 등을 돌려 멀어졌다. 그럼에도 남자는 재언의 뒤를 바짝 쫓아오며 헛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별들이 수상하게 움직이고 있다니까. 그냥 요동치는 것도 아닌, 블랙홀에 빠진 것 같은 움직임이야. 거대한 블랙홀에 별이 전부 삼켜지고 있는… 별들이 비명을 지르는 게 읽혀. 당신 옆에 있으면 세상의 진실을 알 수 있을 거라고 말해 주고 있어…….”
남자가 황홀하다는 말투로 바짝 쫓아오는데, 그게 꼭 어딘가에 홀린 사람 같았다. 남자의 행동과 말투가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기겁한 재언은 산책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지만, 그냥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더욱 빨리했다. 그에 남자의 눈에 희미한 별빛이 보이는 듯하다가 사라지는 걸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남자가 걸음을 멈추고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모아 재언의 뒷모습을 그 안에 담으며 중얼거렸다.
“세상의 진실을.”
재언은 이제는 쫓아오지 않는 남자를 힐끔거리면서도 다리를 재빠르게 놀렸다. 자리에 우뚝 서서 이상한 자세로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기분 나빴다.
더군다나 요즘 럭키 가이로서의 감도 잃고 언럭키로 변하고 있는 것 같아서 묘하게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참이다. 언젠간 저 남자를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단 불안감으로 이어졌다.
‘애들은 잘하고 있으려나…….’
어서 이곳을 ‘정상’적으로 나가고 싶었다. 만약 비정상적으로 나가는 일이 생긴다면, 평범함과는 영원히 작별해야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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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철은 눈을 가늘게 떴다. 머리에서 피가 얼굴을 타고 흐르는 게 느껴졌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제정신을 차리는 게 쉽지 않았다.
살해당한 딸의 남자친구라던 박찬수와 골목길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는 다시 한번 지독한 무력감과 허탈감을 느꼈다.
별거 중인 그의 아내는 딸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다 애를 도대체 어떻게 방치했기에 아이가 그렇게 잔인하게 죽었냐며 비명을 지르고 울기를 반복하다가 실신하는 바람에 지금은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의 죽음에 그는 망망대해에 표류한 나그네처럼 삶의 의지를 잃고 말았다.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뒤를 돌아 골목길을 빠져나가려는 이두철의 목에 무언가가 걸리더니 갑자기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커다란 충격이 닥쳤다. 그나마 숱하게 죽을 고비를 넘겨 왔던 내공으로 자신의 목을 조르는 누군가의 명치를 팔꿈치로 정확히 찍었다.
누군가가 주춤한 사이 빠져나와서 다행이었다. 대응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날카로운 낚싯줄에 목이 잘릴 뻔했다.
이두철을 습격한 건 바로 뒤에 있던 박찬수였다. 명치를 감싸고 기침하면서도 박찬수는 이두철을 노려보는 눈을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되레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이두철이 반사적으로 박찬수의 턱을 손바닥으로 올려 쳤다. 그에 머리가 울리는지 박찬수가 고개를 꺾었다.
“커헉!”
박찬수가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 아니었다면 목뼈가 부러져 죽었을지도 모를 만큼의 큰 충격이었다. 이두철의 목에도 칼에 베인 것 같은 자상이 남아 피가 주르륵 흘렀다.
“뭐 하는…….”
이두철이 이를 갈면서 쭈그려 앉은 박찬수를 힘껏 노려봤다. 그는 심상치 않은 느낌에 박찬수의 머리카락을 잡아 고개를 들어 올린 뒤 으르렁거리며 물었다.
“이 상황을 잘 설명하지 않으면 내 멋대로 생각할 줄 알아라. 자세히 설명해야 할 거다.”
이두철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머리가 잡혀 강제로 고개가 젖혀진 박찬수는 기침을 내뱉다가 가까스로 떨리는 손을 들어 허공을 가리켰다.
“오, 오해입니다… 오해. 콜록, 콜록. 저, 저기 좀 보십시오…….”
낚싯줄로 사람 목을 조르려고 한 행동이 어떻게 오해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두철은 아까처럼 그의 말을 믿어 주고 방심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박찬수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이 건물 4층 창문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했음에도 묘한 기류가 느껴져 유심히 쳐다봤던 곳이었다.
이두철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자 박찬수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벽돌을 들어 올렸다.
아무리 단련된 인간이어도 무방비하게 뒤통수가 가격당하면 눈앞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벽돌이 쪼개질 정도로 강한 타격이었다.
이두철이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자 박찬수가 얕은 기침을 내뱉으면서 일어나더니 부서진 벽돌을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언제 준비해 두었는지 쓰레기통 뒤에 있던 쇠 파이프를 들어 올렸다.
“씨발, 다 죽어 가는 늙은이가…….”
그렇게 정신을 잃은 이두철이 눈을 떴을 땐 눈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공간이었다. 두 손이 뒤로 묶여 있었고 몸이 잔뜩 구겨져서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다리를 움직이려 해도 좁은 공간에서는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힘을 주려고 할 때마다 가격당한 머리에 부담이 가해져 눈앞이 흐릿해졌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이두철이 신음을 삼키며 눈을 질끈 감은 순간, 밖에서 수런거리는 말소리가 작게 들렸다.
‘흐음? 여기에 이런 곳이 있었군?’
‘그렇네. 위에서 이렇게 사람을 옮겼던 거야. 그러니 밖에서 죽이고 여기까지 올릴 수 있었던 모양이네.’
‘조금만 조사하면 다 나올 증거들인데. 이렇게 무능할 수가!’
‘무능하지 않았다면 아버지께 죄를 뒤집어씌우지 않았겠지.’
들리는 목소리는 여인의 고운 것도 있었고, 어려 보이는 듯한 것도 있었다. 그리고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한 익숙한 목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워낙 어둡고 머리가 띵해서 정말로 누군가가 있는 건지, 환청을 듣는 건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골목길에서 살해한 후 시체를 넣은 쓰레기통을 낚싯줄로 4층 화장실까지 올리다니. 이 쇠 구슬로 보이지 않는 낚싯줄을 구분했었던 거군요……. 그리고 여기 천장으로 시체를 끌고 와서 해체한 다음…….’
환청 같은 목소리가 점점 뚜렷해졌다. 만약 저 목소리가 진짜라면, 자신의 딸은 이토록 어둡고 좁은 공간에 묶인 채 죽었을 거란 소리였다.
그것도 그 짐승만도 못한 범인의 농간에 부모라는 작자가 엉뚱한 사람을 때려죽일 뻔했다. 그야말로 자업자득이었다.
이두철은 자기 자신에 대한 무력감과 앞길이 창창했던 자식의 인생이 이런 식으로 스러졌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까워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딸의 복수를 하지 못하고 오히려 당했다는 게 천추의 한이었다.
테이프로 입이 막혀 있어서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중년 남성의 꺽꺽거리는 울음소리가 아주 작게 흘러나왔다.
흐느끼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간 것일까, 밖에서 웅성거리던 목소리가 뚝 멎었다.
‘이 남자는 아버지를 그렇게…, …정말 괘씸한 놈이에요.’
‘하지만 -----이 울고 있군. 자기 아버지를 떠올린 모양이야.’
가장 어리게 들렸지만, 누구보다도 엄한 말투를 가진 소년의 목소리가 울리자 기세등등하게 소리치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실제로 레헬을 비롯한 엔레이드맨과 귀신들의 성녀, 코루루는 이두철이 갇혀 있는 청색 쓰레기통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엔레이드맨의 손바닥 위에 있는 조각난 장난감의 눈알이 이두철의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죽었을 때 비통해하던 아버지를 떠올리는 게 분명했다.
자신은 기적처럼 신재언과 만나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 이두철은 딸을 다시 만나지도 못하고 범인의 농간에 놀아났다. 그의 참담하고 괴로운 심정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