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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하는 빌런-232화 (232/324)

232화

“애옭…….”

남자의 원망 섞인 외침에 놀라 이동장 위로 올라간 재언이 떨떠름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울었다. 눈이 세모꼴로 변한 게 못마땅해하는 게 여실히 드러났지만, 인간이 아닌 고양이가 표현해 봤자 깜찍하고 사랑스러울 뿐이었다.

고양이를 향해 펄펄 뛰며 화를 내려던 남자가 씨근덕거리면서도 헛기침을 내뱉었다.

“…고양이로 변해서 오시다니. 정말 반칙입니다. 귀여워서 화를 낼 수가 없잖아요.”

그런 남자의 모습에 재언은 고양이가 된 자신이 화를 내야 하는데 왜 남자가 도리어 화를 내려다 참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게다가 남자는 마치 자신이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굴었다.

그 와중에 차민재 또한 사랑하는 애인을 고양이로 만든 파렴치한 놈으로서 남자를 대하는 게 아니라 일반인을 대하는 것처럼 예의를 차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설명을 바라는 눈빛으로 차민재를 올려다보자 재언의 몸을 쓰다듬고 있던 그가 남자를 향해 손짓했다.

“이 남자는 히어로 협회 아이템 개발부 총괄 박문석 소장입니다.”

“흠흠. 반갑습니다.”

이제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데 벌써 히어로 협회의 요직을 맡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딘가 비범해 보이지 않는 평범한 사람 같았는데 다시 보니 뭔가 다른 것 같기도 했다.

바로 이 사람이 그동안 재언이 받아 왔던 해괴하고 이상한 아이템들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란 소리다.

히어로 협회의 회장만큼 베일에 싸인 신비주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유명한 사람은 아니라 얼굴을 아예 모르고 있었는데 생각보다도 훨씬 젊은 사람이었다. 그런 남자가 대체 왜 자신을 고양이로 만들었을까 궁금했다.

“야옹? 애오옹?”

재언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앞발을 휘적거리며 가늘게 울자 고양이를 심하게 사랑하는 남자, 박문석이 몸을 부르르 떨면서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초상권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행동이 어제의 차민재를 떠올리게 했다.

“색 분배가 특이하네요. 흰색 베이스에 베이지색과 연갈색이라니……. 눈동자도 선명한 푸른색이고. 털이 이렇게 풍성한데 윤기가 흐르는 게 아주 고와요. 본래 체격이 큰 편이라고 들었는데, 그 때문인지 꽤 체구가 큰 고양이로 변하셨군요.”

남자, 박문석이 고개를 끄덕여 가며 신재언을 꼼꼼히 관찰했다.

그리고 아직도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신재언의 앞에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고등어 무늬의 고양이가 힘없이 창가에 누워 있는 사진이었다.

“이번에 제가 구조한 아이입니다. 이름은 막둥이로 협회 근처에서 밥을 주던 고양이가 낳은 새끼 중 한 마리인데, 일 년 정도 밖에서 돌봐 왔습니다. 데려오기 전까진 저만 보면 반갑다고 울면서 애교를 떨던 놈인데 지금은 이렇게 온종일 누워서 잠만 잡니다.”

남자가 걱정스러운 듯 눈썹을 팔자로 휘었다.

“자유롭게 살던 놈을 제가 억지로 데려온 건 아닌지 걱정되는 마음에 협회의 데이터를 몰래 빼내 고양이가 되는 약을 만들었습니다. 아직 미완성이긴 하지만… 고양이와 대화를 할 수만 있으면, 우리 막둥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들을 수만 있으면 되니까요.”

잠시 말을 멈춘 남자가 눈물을 닦는 시늉을 했다.

“가까스로 약을 만드는 데 성공해 기뻐하던 찰나, 저에겐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가 알약을 물 없이는 삼키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요. 근처 편의점에 가서 물을 골라 계산하던 그때 웬 술에 잔뜩 취한 사람이 들어오더니 잠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약을 홀라당 먹고 도망가더라고요.”

그 놈팡이 같은 놈을 잡기만 하면 아주 혼쭐을 내주려고 했다는 눈빛과 그래도 레드-헬-파이어의 지인인 것 같으니 이쯤에서 봐주겠다는 눈빛이 섞인 채 재언을 바라봤다.

한마디로 남자가 약을 먹기 위해 편의점에 들어갔다가 어떤 취객이 그걸 빼앗아 먹은 탓에 낭패를 봤다는 소리였다. 약을 빼앗아 먹은 가해자는 신재언이고 약을 빼앗긴 피해자는 박문석이었단 것이다.

“애욱…….”

부정이라도 하려는 듯 재언이 울음소리를 내뱉자 떨떠름한 얼굴로 앉아 있던 차민재가 작게 귓속말했다.

“제가 CCTV를 돌려봤습니다, 재언 씨.”

설마 하는 마음으로 재언은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네… 재언 씨가 훔쳐 먹은 게 맞습니다.”

“야아아아옹!(아아아아!)”

그러니까 이 모든 상황이 전부 자업자득이라는 소리였다.

“옭… 애옹… 끄르릉…….”

재언은 한참을 앞발에 얼굴을 묻은 엎드린 자세로 약하게 울었다. 아마 인간이었다면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사과하고 있지 않을까 싶은 분위기였다.

더 화를 낼 것 같았던 박문석은 귀여운 고양이를 보고 이미 마음이 풀려 버렸는지 후련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었다.

“약의 효능은 일주일 뒷면 자연스럽게 풀릴 겁니다. 아마 5일 차쯤부터 풀리기 시작하겠지만… 부작용이나 다른 해프닝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넉넉하게 일주일 정도 기다리는 게 좋습니다. 어쨌든 관리에 소홀했던 제 잘못도 있으니까……. 어디 보자.”

박문석이 옆에 놓아두었던 서류 가방에서 종이를 한 장 꺼냈다.

“빌런의 공격에 휘말려 대략 일주일 정도 히어로 협회의 관리 하에 두겠다는 공문서를 드리겠습니다. 이것만 내면 유급휴가 확정이거든요. 이거 비밀인데, 제 애인도 가끔 이렇게 회사를 빠지곤 합니다.”

마음속으로 가장 걱정하고 있던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 준 그는 사실 천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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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에 휘말린 것도, 저주를 받은 것도,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것도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되자 재언은 힘이 빠져 축 늘어졌다.

지금 그는 이동장 안에 들어가 쉬고 있었고, 자동차 조수석에는 이동장을 끌어안고 앉아 있는 박문석이, 운전석에는 차민재가 앉아 어딘가로 이동 중이었다.

“그것보다… 정말 완벽한 고양이 모습 그대로네요. 조금만 더 보완해서 상용화시킨다면 꽤 유용하게 써먹을 것 같습니다.”

“겨우 한 알 만드는데 5억이 넘어가면서 무슨 소리입니까.”

“…하하. 인류의 발전은 돈과 시간으로 이뤄지는 거랍니다.”

그렇게 친하지는 않더라도 이미 면식이 있는 사이인지 두 사람이 가볍게 대화를 나누었다.

다만, 자신이 받는 연봉의 10배 이상 넘는 금액이 튀어나오는 대화에 재언은 그리 가볍게만 듣고 있을 수는 없었다. 자신이 먹은 알약의 비용을 듣자 심장이 철렁해졌다.

쓸데없는 대화를 나누는 인간 두 명과 지레 찔린 고양이 한 마리는 지금 경기도 이천에 있는 박문석의 집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히어로 협회 중요 부서의 총괄인 박문석의 거주지는 원래 함부로 알려 주지 않는 기밀 사항이었다. 그래 봤자 그가 발명하고 유통하는 아이템들은 만드는 데만 천문학적인 금액이 필요하기에 납치해도 무용지물이긴 했다.

개인이나 기업이 손을 대기에는 규모가 어마어마한 그의 발명품은 히어로 협회가 아니면 받아 줄 곳이 없었다.

그런 그의 집에 가는 이유는 간단했다.

하나뿐인 약을 날름 먹어 버렸으니 이왕 이렇게 된 것, 힘없이 축 늘어진 자기 고양이와 대화하는 걸 재언에게 대신해 달라고 그가 부탁을 했다.

재언도 자신이 잘못한 것이기도 했고 대화하는 것 정도야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막둥이’라는 고등어 무늬의 고양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려 주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차량으로 한 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박문석의 집은 제법 넓은 전원주택이었다. 집 자체도 고급스럽고 마당도 넓었다. 신재언보다도 훨씬 돈을 잘 버는 능력자였다.

두 사람은 현관을 열고 들어가 문 안쪽에 설치된 방묘창을 건너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동장을 바닥에 내려놓고 열어 주자 재언 고양이가 날렵하게 밖으로 튀어나왔다.

재언은 낯선 장소로 오자 심장이 쿵쿵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런 것 때문에 고양이가 낯선 곳을 경계하게 되는 건가 싶었다.

재언은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펴보다가 창가에 누워 있는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폴짝 뛰어갔다. 낯선 사람과 고양이가 집 안으로 들어왔음에도 고양이는 축 늘어져 도통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도 누운 채로 고개만 들어 박문석이 왔음을 확인한 뒤 꼬리만 살랑살랑 흔들었다.

너무나도 게을러 보이는 태도의 고양이에게 재언이 다가가 앞발로 툭 쳤다. 그러자 고양이가 눈동자만 굴려 재언을 쳐다보더니 아주 느릿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치지 마- 귀찮단 말이야야.”

“귀찮다고?”

“그래. 이제야 몸이 편해졌는데 느긋하게 쉬자.”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막둥이가 야옹거렸다. 낯선 고양이가 와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모양새가 배추와는 달리 성격이 무던하고 세상만사가 귀찮은 게으른 고양이 같았다

“네가 어디 아픈 건 아닌지 저 거대 고양이가 널 걱정하고 있던데. 그냥 귀찮아서 움직이지 않았던 거라고?”

재언이 한 말에 막둥이가 고개를 조금 더 들어 올려 박문석을 쳐다보더니 야옹, 하고 울었다.

“야옹-”

“끄르릉.”

“애옭.”

“우우웅.”

두 마리의 고양이가 창가에 앉아 대화하는 동안 박문석은 얼굴을 잔뜩 붉힌 채 눈물 흘리며 쳐다봤다. 그러다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겠는지 소파에 머리를 들이박았다.

마치 미친 사람같이 눈이 돌아가 있는 모습을 애써 무시하며 재언은 막둥이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그가 싫은 건 아니지?”

“아니야~ 좋아해. 왜냐면 날 예뻐해 주잖아~ 나더러 아무것도 안 한다고 다른 고양이들이 날 무척 싫어하는데 이런 나를 좋아해 주는 고양이인걸~.”

막둥이는 박문석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멀쩡하게 대답했다.

“그냥~ 난 너무 지쳤을 뿐이야……. 밥을 먹기 위해 무서운 사람들한테도 다가가야 했거든. 그의 곁에 있으면 더 이상 아프지 않아도, 굶지 않아도 되니까 마음이 놓여서 쉬고 있는 것뿐이야.”

막둥이의 말에 재언은 박문석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왜냐하면 막둥이가 하는 말을 그의 귀로 직접 듣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평생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편안해 보이는 고양이의 표정을 알아볼 볼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여긴 내가 쉴 수 있는 영역이고, 그는 날 계속 지켜 줘. 마음 놓고 쉬고 싶어. 하지만 그가 걱정하면 조금은 움직여 볼게~ 난 그를 정말 사랑하거든.”

인간이었을 땐 고양이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는데, 지금은 막둥이가 노란색 눈동자를 반짝 빛내며 활짝 웃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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